'서재를쌓다'에 해당되는 글 341건

  1. 쇼코의 미소 4 2016.10.30
  2. 사라지고 있습니까 2016.10.12
  3. 자존감 수업 11 2016.10.03
  4. 오무라이스 잼잼 6 2 2016.09.08
  5. 일본의 서양문화 수용사 2016.09.06
  6. 낮의 목욕탕과 술 2 2016.08.30
  7.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2 2016.08.23
  8. 침묵 5 2016.08.18
  9.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2 2016.08.06
  10. 종이달 2016.07.27

쇼코의 미소

from 서재를쌓다 2016. 10. 30. 16:48





   마음이 가을 같다. 갑자기 스산해졌다. 계속 헤매고 있는데, 출구가 어딘지 모르겠다. 무리 속에 끼여서 왁자지껄하게 떠들다가 헤어지면 마음이 더 가을 같아진다. 사실 무리 속에 있을 때도 온통 가을 일 때도 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나, 어떻게 출구를 찾아야 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시월.


   목요일에는 회사 모임이 있었다. 모임이 끝나고 Y씨랑 백석에서 택시를 탔다. 택시 아저씨가 창을 내려줬는데 밤바람이 시원했다. 내가 먼저 내렸다. Y씨는 택시를 계속 타고 갔다. 역 앞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데, 내 앞으로 양복을 입은 외국인이 걷고 있었다. 뽀글뽀글한 컬에 까만 피부를 가진 외국인이었다. 백팩을 메고 있었고, 한 손에 하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야식이거나 다음날 아침일 것이다.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새 구두인건지, 오늘 하루가 힘들었던건지 걸음이 조금 어긋나 있었다. 나는 그의 걸음걸이에 의지해서 걸었다. 어쩐지 우리가 같은 방향일 것 같았는데, 정말 그랬다. 그가 오피스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뒤따라오는 나를 보더니 유리문을 잡고 기다려줬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어디서 왔는지, 한국에 온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결국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까딱이며 먼저 내렸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잡고 올라가는 짧은 시간동안에도 세심한 행동으로 나를 배려해줬다. 어쩌면 오래 보아오고, 오래 얘기해온 사람들보다 (얘기를 나누었다면) 그와의 대화가 요즘의 나를 더 위로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쇼코의 미소> 작가와의 만남 시간이 생각났다.


   시월의 어느 날, 나는 백석의 책방에 앉아 최은영 작가를 기다렸다. <쇼코의 미소>는 올해 내가 읽은 한국소설 중에 제일 좋았다. 최은영 작가는 쑥스럽고 긴장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연을 해야한다는 말을 듣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하지 못해 고민을 하다 써 왔다면서, 써온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종이에는 작가의 대학교 시절 이야기가 있었는데, 소심했고 자존감이 낮은 시절의 이야기였다. 작가가 써온 이야기를 모두 듣고, 책방에 온 독자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한 독자가 말했다. 다행이라고. 소설을 읽고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고, 방금 종이에 써온 이야기를 듣고나니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그러면서 작가에게 고맙다고 했다. 자신이 만나 본 작가 중에 소설과 다른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정말로 그녀는 자신의 소설을 닮은 사람이었다. 따뜻하고 배려심이 있는 사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믿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개개인의 매력을 느끼는 사람, 겸손하고 정직한 사람. 내가 그 날 받은 느낌이었다.

   나는 이 소설집에서 '한지와 영주'가 제일 좋았는데, 어떤 독자가 질문을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보다 영어가 타국어이면서 영어로 소통하는 사람들이 더 서로를 잘 이해하고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작가는 실제로 그런 경험들을 해 보았다고 했다. 같은 언어를 쓴다고 더 잘 통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통하기 위해서 아주 유창할 필요도 없다고. 단순한 말이, 표정과 몸짓이, 가슴을 파고들었던 경험이 많았다고. 그리고 아는 척하면서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전경린의 말을 인용하며 내가 살아보지 않은 나이에 대해서 쓰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영주처럼 실제로 유럽의 수도원에서 2개월동안 생활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힘들었던 시절, 몰타에서 9개월을 생활했는데 그 시절이 자신을 버틸 수 있게 만들었다고 했다. 지금 책이 이렇게까지 잘 팔리는 일이, 기적과 같다고, 아직도 꿈을 꾸는 것만 같다고 했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 <최악의 하루>에서도 마지막 장면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내내 불통했던 주인공이 가을이 만발한 남산의 밤길에서 아침에 잠깐 만났던 일본인 작가를 만나, 아주 간단한 말들로 소통하고 위로받는 장면. 어제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맥주를 마셨다. 누군가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라며 게임을 제안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하나씩 돌아가며 말하는 것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다고 말했고, 요리를 잘한다고 말했다. 끈기는 없지만 호기심이 많다고도 했다. 어떤 사람은 노래를 졸라 잘 부르며, 똑똑하다고 말했다. 고맙게도 어릴 때 부모님에게 사랑을 아주 많이 받았다고도 말했다. 취한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두번째 만나는 거였는데, 첫번째 수업 때 굉장히 사나워보이고 세 보였던 사람과 실제로 얘기해보니 다정한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헤어지고 버스를 탔는데, 술 기운에 살짝 조는 바람에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났다. 덕분에 추운 날씨에 몇 정거장을 걸었다. 그 길이 내 마음 같았다.

   아무래도 가을을 심하게 타고 있는 것 같다. 이번주에는 야근을 여러번 했고, 멀리서 여행 중인 친구의 엽서를 받고 스위스에 있는 도서관을 검색해봤다. 머리를 짧게 잘랐고,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틀어놓고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시월의 주말이 끝나지 않길 바라며 일요일을 조용히 보내고 있다. 다음 주에는 자주 걸어야겠다. 강아솔을 들어야겠다.





   한지와 우연히 마주치면 배와 등의 피부가 따끔따끔했고 피가 머리쪽으로 쏠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고, 자꾸 말을 더듬게 됐다. 한지가 멀리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종아리부터 목뒤에까지 불이 번지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나는 지질시대 구분표를 생각했다.
   나는 중학교 일학년 때 선물로 받은 지질시대 구분표를 벽에 붙여 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려가길 좋아했었다. 나중에는 당시 살았던 생물들의 이름을 시대별로 차례대로 외웠고, 고등학교에 입할할 때쯤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는 분명 존재했던 것들의 이름이 소중하게 느껴져서였다.
   원시지구.
   원시지구에는 어떤 생물도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검은 칠판을 상상했다.
   시생대.
   박테리아와 남조류, 고세균류가 등장했다. 백묵의 끝으로 그린 작은 점들.
   원생대.
   해파리가 나타났다. 몸속이 환히 보이는 투명한 해파리들.
   캄브리아기.
   조개와 산호, 삼엽충.
   오르도비스기.
   불가사리와 바다전갈로 불리는 생물, 사라져버린 코노돈트.
   실루리아기.
   달팽이, 대합, 홍합, 턱이 없는 어류들.
   나는 기도문을 외우듯이 그것들의 이름을 나열할 수 있었다. 턱이 있는 어류, 페어, 육지 달팽이, 해백합, 파충류 같은 포유류, 소철류, 시조새, 원시 현화식물. 그 이름들을 속으로 외울 때면 바깥 세계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고, 내 안의 생각과 느낌들이 무뎌졌으며, 나라는 존재가 조금은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어디에서든, 어느 시간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슬플 때, 불안할 때, 화가 날 때, 누군가가 내 마음을 쥐고 흔들 때, 나는 그 이름들을 그저 간절하게 불렀고, 그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현실의 고통에서 나를 분리시켜줬다. '원시지구'로 시작해서 '여러 종류의 발굽이 있는 동물'까지 중얼거리고 나면,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부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의 이름을 불러준 것 같았다. 그럴 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 '한지와 영주' p. 157~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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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있습니까

from 서재를쌓다 2016. 10. 12. 22:39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다 결국 주문했다.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은 사두고 시간이 꽤 지난 뒤에 읽었지만, 이번 책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읽었다. 책 두 권 읽고, 영화 몇 편 보았다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나는 그런 착각에 빠져 책을 읽었다.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이 에세이가 너무 적다는 거였는데, 이번 책은 모두 에세이다. 좀더 그의 일상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껏 들었고, 좋았다.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추억, 영화를 하기 전 고단했던 날의 이야기, CCTV에서 오랜 연애를 끝낸 연인의 걸음거리를 찾아내려 노력했던 시간, 유부녀가 된 예전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밤, 눈이 많이 내린 날 청주의 대학교에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모텔에 가 쓸쓸하게 누워 있었던 기억, "가면무도회와도 같았던 그녀와의 관계를 떠올리며 나는 조금 다른 방식의 반성을 하고는 한다" 라는 일기를 쓰는 사람, 혼자 하는 여행에서 꽤 지쳐있었을 때 좋은 바람을 만났던 기억, 사소한 기록의 욕구가 영화를 만드는 제1의 이유라는 사람, 좋아하고 매일 지나는 골목에 배우와 스태프를 부르고 그들에게 큐사인을 주는 사람, 시네마테크에서 어떤 위로들을 밥처럼 받아먹고 산 사람, 아름다움을 보고 부러진 날개를 보았을 때 사랑이 시작된다는 사람.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그의 새영화가 상영되었단다. 네 배우가 나오는 그의 새영화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책에 나온 제주도 여행 이야기는 'JEJU'라는 도장이 찍힌 수첩 앞장에 적어놓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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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수업

from 서재를쌓다 2016. 10. 3. 20:39




동생이 읽고 있다. 어떤 부분을 읽곤 박수까지 치더니, 결국 복사까지 해줬다.

힘들 때마다 읽어야 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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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직업들이 직장에서의 상황 때문에 자존감에 영향을 받는다. 앞서 소개한 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때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직장은 낭만적인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직장은 힘든 곳이다. 그래서 월급을 준다. 그것도 날짜를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준다. 안 그러면 남아 있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직장이 그렇게 달콤한 곳이고 가치 있는 곳이라면 우리에게 돈을 줄리 없다. 미안하니까, 나가지 말라고 돈을 쥐여준다. 물론 행복을 안겨줄 때도 있다.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주는 동료도 직장에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시적이라 궁극적인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조금 심하게 말해 직장은 우릴 이용하고 힘들게 하고 화도 나게 한다. 그래서 직장은 우리에게 미안해한다. 잘못했다며 한 달에 한 번씩 합의금을 준다. 월급은 '이만큼 줄 테니 부디 참아주세요' '당신의 시간을 이만큼 내가 썼으니 이걸로 대신하세요'라는 뜻의 위로금이다.


   내담자 중에는 직장 생활에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짐작건대 힘든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 최면도 작용한 것 같다. 이들이 갖는 환상은 직장은 꿈을 이뤄주는 곳, 멋진 커리어우먼,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곳, 아름다운 인간 드라마가 있는 곳이다.


   단언하는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얼마 전 인기를 얻었던 <미생>처럼 직장 생활을 비교적 잘 다룬 드라마도 비현실적이긴 마찬가지다. 불의에 맞서고 인간적이기까지 한 과장은 현실에서는 사장까지 가기 어렵다. 꿈, 성장, 자아실현, 가족 같은 분위기는 죄다 사장들이 꾸며낸 환상이다. 직장은 일을 끊임없이 시키고 그 대가를 쥐꼬리만큼 쥐여주고 생색이나 내는 곳일 뿐이다. 그러니 부디 직장에서 자존감을 시험하지 말 일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이 직장과 직업, 꿈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했으면 한다. 나처럼 직업에는 만족하지만 근무하는 직장에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직업은 별로지만 지금 일하는 직장은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직장과 인생은 분리해야 한다. 우리는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이 우리 삶의 전체가 아니다.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현재 자신의 인생까지 불만족스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회사에서 조금 잘 나간다고 타인의 자존심을 함부로 짓밟아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퇴근 이후의 삶을 위해 살아간다. 퇴근 이후의 삶도 엄연한 인생이고 주말도 중요하다. 근무 시간에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까지 안고 오거나 못 다 한 회사 업무를 갖고 올 필요도 없다. 직장에 대해 오래 고민한다고 일이 해결되지도 않는다.


   직장은 직장이다. 우리는 직장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가끔은 직장에서 떨어져 머리를 완전히 비워야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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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무라이스 잼잼 6

from 서재를쌓다 2016. 9. 8. 22:58





   내게는 마스다 미리 만화책을 모두 사는 친구가 있고, 오무라이스 잼잼 만화책을 모두 사는 동료가 있다. 두 사람은 나에게 만화책들을 빌려준다. <오무라이스 잼잼> 6권이 2015년 11월에 나왔으니까 Y씨는 2015년에 구입을 하고 다 읽고선 금방 나한테 빌려줬을텐데, 세상에나 지금은 2016년 9월이다. 얼마전에 더이상 가지고 있음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 전에 틈틈이 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만연한 가을이 오기 전에 돌려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정이 많이 들어버린 오무라이스 잼잼 가족들. 이번 6권에서는 '규동' 편에서 왠지 짠했다. 규동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 규동은 왠지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먹어야 될 것 같다. 꼭 체인점에서. 든든한 돈지루를 젓가락으로 휘휘- 휘젓고 그릇을 들어 후루룩 마시면서. 이른 아침에 먹어야 할 것 같은 이유는 도쿄에 갔을 때 Y언니랑 비오는 아침에 그렇게 먹었던 까닭이고, 늦은 밤에 먹어야 할 것 같은 이유는 드라마 <사랑이하고싶어사랑이하고싶어사랑이하고싶어>에서 항상 그 시간에 먹었기 때문. 늦은 밤,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규동집 풍경이 좋았다. 후루룩 후루룩- 규동 먹는 소리도.


  <오무라이스 잼잼> 6권의 규동 편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만화가 아빠와 딸은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아침에 엄마와 아들이 아직 잠들어 있을 때, 둘이서만 조용히 나왔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규동집에 가서 규동와 돈지루, 날계란을 시켰다. 아빠는 딸에게 어린이 세트가 있다고 알려주지만, 딸은 아빠에게 아빠랑 똑같은 걸로 먹겠다고 한다. 비가 내리던 초여름 나가사키(!!)의 한적한 골목길의 규동집에서. 시간이 흐른 뒤, 딸이 어느 한적한 오후에 아빠와 마주 앉아 아빠는 작업을, 딸은 숙제를 하고 있을 때, 턱에 두 손을 괴면서 말한다. "규동 먹고 싶다." 아빠가 "규동? 아빠랑 먹었던 거? 그게 그렇게 맛있었어?"라고 물으니 딸이 그런다. "아빠가 둘이 먹어서 더 좋았어." 아빠는 집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거의 하루종일 음악을 틀어놓는데, 상대방에 취향에 따라 다르게 음악을 튼단다. 딸이랑 있을 때는 감성적인 음악을 트는데, 거기에 '브로콜리 너마저'가 있었다. 어느 날, 아빠와 딸, 둘이 함께 차를 타고 갈 때 아빠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1/10'을 튼다. 딸은 그 노래가 좋아서 혼자서 막 흥얼거린다. (딸은 초등학교 저학년이다) "여래 하나만 기억해줄래~ 우리가 아파했던 나른 모두~" 아빠는 딸에게 묻는다. "근데 너 이 노래가 무슨 뜻인지 알아?"  아빠는 딸에게 가사의 의미를 설명해주고, 묻는다. "우리 은영이는 아빠랑 함께했던 시간들 중에 열에 하나는 기억해주려나?" 그러니 은영이=딸이 말한다. 어여쁜 표정을 지으면서. "열에 여덟은 기억할 거야. 둘은 잊어버리고."


   규동 편이 제일 좋았다. 6권에서. 아, 규동 먹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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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침묵>을 읽고, 그 시기의 일본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책인데, 읽으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심각한 내용일 줄만 알았는데, 서양 문물을 처음 접하고, 거기에 적응해 가는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꽤 재미나게 묘사되어 있다. 같은 시기의 우리나라 모습도 궁금해졌다.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또 다른 책을 찾게 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나게 하며, 언젠가 깊고 풍성한 여행으로 이어질 거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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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에 스페인에는 카스텔라 왕국이 있었다고 한다. 성이 많아 카스텔라라고 불렸는데 일본인이 일본에 와 있던 포르투갈인에게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과자를 가리키며 "이 과자의 이름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카스텔라지방에서 만든 과자"라고 대답한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혹은 선교사들이 가져온 과자의 포장에는 성곽이 그려져 있었는데, 일본인이 과자에 대해 질문하자 선교사는 성곽을 물은 것으로 생각하고 카스텔로라 대답하여 카스텔라라고 불리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쉬어가는 이야기로 이는 '캥거루'의 경우와 같다. 처음 호주대륙에 도착한 영국인들이 들판을 뛰어다니는 이상한 동물을 보고 원주민에게 이름을 묻자 "나는 몰라요"라는 의미로 원주민이 "캥거루"라고 답한 것을 영국인은 이름으로 착각하여 캥거루에게 '캥거루'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니, 캥거루나 카스텔라의 이름의 유래는 결국 동문서답의 결과라 할 수 있다.
- p. 34

   바타비아(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옛 이름으로, 당시에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다)를 떠난 네덜란드선박은 1-2척으로 계절풍을 따라 대개 6-7월에 나가사키에 입항하였다. 1621년부터 1847년까지 일본으로 온 네덜란드선은 모두 715척이었고 난파한 배는 27척이었다고 한다(그 중 2척이 우리나라에 표착하였다).
- p. 58

(...) 이 행사 역시 유명하여 나가사키 판화에 여러 모습으로 등장하였는데, 1818년에 편집된 <장기명승도회>에는 큰 뚜껑요리, 닭고기, 카마보코, 계란 버섯, 소고기 튀김, 돼지구이 통구이, 소시지, 햄, 연어와 가자미의 보토루(버터)조림, 스프 등이 등장하고 "일본의 콩 비슷한 것을 부셔서 더운물에 끓여 백설탕을 넣고 마신다"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p. 62

(...) 시볼트가 쓴 나가사키의 일기에도 카스텔라와 보토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보토루는 저장법이 나빠 짜고 악취가 났는데 나를 방문한 일본인의 신사들은 카스텔라 위에 발라 네덜란드의 맛이 난다고 즐거이 먹었다"고 전한다. 시볼트는 일본인이 서양식사를 동경한다고 생각하였는데, 당시 버터는 폐병의 특효약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 p 63

   가나가키 로분이 쓴 <아구라나베>는 저렴한 소고기 전골가게를 무대로 소고기의 맛과 효능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한량, 창기, 서생, 인력거 차부 등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계층의 인물들이다. 싸구려 회중시계에 금도금을 한 줄을 달고 아로마의 일종인 오데콜론의 향기를 피우는 겉멋 들은 남자는 "이렇게 맛있고 영양있는 소고기를 미신 때문에 여태 먹지 않았다니!"라고 흥분한다. 이어 <아구라나베>에는 "소고기는 최고의 맛이에요. 이 고기를 한번 먹으면 멧돼지나 사슴고기는 못 먹어요. 이런 청결한 것을 지금까지 먹지 않았다니!" "이제 우리나라도 문명개화가 되어서 소고기를 먹게 되었다는 다행이네요. 야만의 풍습이라니, 육식을 하면 신불에 합장할 수가 없다느니, 부정 탄다느니, 그런 촌스러운 말은 과학을 알지 못하니까 그런 거예요. 후쿠지와씨의 <육식의 설>이라고 읽히고 싶네요." 등등의 실감나는 표현이 여기저기에 배어 있다.
- p. 78

(...) 오오노가 개업한 '카이요테이'에서 소개하는 서양요리집의 풍경을 살펴보면 스프를 마시려다 흘리고 고기를 나이프로 자르려다가 입술을 잘라 피가 나는 상황도 연출됐다.
- p. 80

   너 소야 너는 느린 성질인데 빠른 사람을 먹여 살린다. 네가 만약 사람을 먹여 살리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 문명은 없다. 나라는 문명이 없으면 개화는 없다. 그러니 개화의 덕은 너에게 나온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 쌀을 살 돈으로 너를 초대한다. 한 근의 고기를 살 능력이 없어도 너를 생각하고 침을 흘리지 않는 날은 없다. 잘 때는 너의 꿈을 꾸고 눈을 뜨고는 너를 생각한다. 배가 고프면 너를 만나고 먹어도 너에게 질리는 일은 없다. 나와 너의 교제는 실로 깊은 것이다. 따라서 나는 너를 내 배 안에 묻고 오랫동안 너의 묘로 삼겠다. 찌꺼기는 비록 화장실에 흘릴지라도 너의 혼은 내 배에 자리 잡는다. 너의 혼에 혹시 영험한 힘이 있다면 나의 어리석음을 양질의 지식으로 바꾸고 한 달에 얼마만이라도 이득을 보게 해다오. 3년 동안 먹었는데 아직 관직도 얻지 못했고 돈도 모이지 않았다. 너는 단명을 한탄하여서는 안 된다. 살신성인이란 너를 말하는 것이다. 죽어서 이익을 준다면 어찌 이 세상에 원한이 있겠는가. 네가 늙어 찌꺼기 속에서 죽는 것보다 냄비에 들어가서 성불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 듣기로 너는 가끔 미인의 입에도 들어간다는데 이야말로 극락정토의 왕생이다. 어느 때는 영웅의 배에 묻히고 어느 때는 미인의 장 속에 들어간다. 이것 또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도로에서 죽어 허무하게 썩는다면 이런 장례를 할 수 있겠는가. 소여 너는 울어서는 안 된다. 한탄하여서도 안 된다. 나는 아무리 애써도 장관이 되지 않고 지갑을 아무리 열어 보아도 미인의 손을 만질 수는 없다. 너는 죽은 고기인 주제에 살아있는 나보다 훨씬 재수 좋지 않은가.
- p.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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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내가 찾던 이야기도 찾았다.


(...) 부채꼴 모양으로 완성되는 인공섬 데지마는 무역기간 동안 나가사키에 체재하고 계절풍을 이용하여 다시 마카오로 돌아가는 포르투갈 상인이 일본 체재기간 동안 거주할 시설로 지어질 예정이었다. 이것은 포르투갈 상인을 일본사회와 격리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고, 한편으로는 무역을 행하면서 기독교 금교정책을 궁극적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시책의 일환으로 계획된 것이었다.
- p. 46~47
 
(...) 기독교를 불교의 일파 정도로 생각하던 일본은 스페인이 세계각지에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선교사가 우선 어느 지역에 들어가 기독교를 전파하고 이후 점차 군대가 들어와서 그 지역을 정복하기 때문이라는 것과, 기독교의 배후에는 스페인과 같은 국가가 존재하여 전략적으로 선교사들이 파견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 p. 40


    그리하여 소설 <침묵>과 같은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활발히 교류하였고, 인정하였고, 허가하였던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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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목욕탕과 술

from 서재를쌓다 2016. 8. 30. 22:00





   동생이랑 오사카-교토 여행을 갔을 때, 우리는 들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동네 사람들만 갈 법한 자그마한 술집에 들어가 꼬치를 시키고, 맥주를 시키고, 사케와 오뎅탕을 시킬 작정이었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면서, 들어가면 훈훈한 분위기에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믿으며 그렇게 생각을 했더랬다. 그래서 오사카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돌아다닐 때 일부러 큰 길 쪽에 있는 가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골목과 골목 사이를 거닐면서 여긴 어떨까, 여기가 더 낫다,며 많이도 기웃거렸다. 그러다 이 가게다 싶은 곳이 있었다! 크기도, 밖에서 언뜻 보이는 분위기도 딱이었다. 살며시 문을 열었는데, 벌써 만석이었다. 자리가 없었다. 아주 작은 가게였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고, 몇 번을 거절 당하다, 결국 큰 길로 나와 체인점인 것 같아 보이는 커다란 꼬치구이집에 들어갔다. 바 자리에 앉아서는, 그냥 마셔 버리자며 손가락짓과 '구다사이'를 연발하며 생맥주와 꼬치구이와 하이볼을 시켰다. 옆에 앉은 혼자 마시러 온 아저씨가 먹는 치즈 꼬치가 맛있어보여 계속 훔쳐보며 시킬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아저씨가 맛보라며 하나를 줬다. 치즈가 아니라, 떡이었다. 치즈 같이 맛있는 떡이었다.


   이번에 오키나와에 갔을 때는, 숙소 근처에 저녁에만 여는 허름한 술집을 발견했다. 작은 실내 포장마차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낮에 닫혀 있을 때부터 가보고 싶었다. 혼자서 미술관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술집이 열려 있는 걸 발견했다.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좁은 공간에 손님들이 꽉 차 있었다. 모두 근처에 사는 동네 사람들 같았다. 가게가 좁아서 다들 따닥따닥 붙어 앉아 있었다. 용기있게 들어가 생맥주 한 잔을 달라고 하고, 간단한 안주를 시키고, 어색하지 않게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 나의 어색한 일본어를 듣고 힐끔힐끔 쳐다보겠지. 맥주를 반 잔쯤 마신 나와 눈이 마주쳐 씩-하고 웃으면 아저씨가 물어보겠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여긴 왜 왔냐고, 덥지 않냐고, 맥주가 맛있냐고, 언제 돌아가냐고, 너에게 이 곳은 어땠냐고. 자신의 안주로 시킨 꼬치 하나를 내게 건네줄 지도 모른다. 나는 이 곳이 좋으다, 참으로 좋으다, 생각했을 지도 모르고.


   그 날, 나는 결국 그 작은 술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8월의 시옷의 책인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들어가지 못한 술집과, 들어갔던 맥주집과, 언젠가 들어갈 수 있을 그 곳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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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욕을 하고 나와 꼬치구이집에서 생맥주, 일본의 여름이다. 모기향이라도 피워놓았더라면 가슴이 뭉클했을 게다.

  차가운 생맥주는 한순간 여기가 어딘지 잊어버리게 할 만큼 맛있었다.

- p. 169


   컵에 맥주를 따르고 단숨에 쭈욱.

   그리고 후우, 숨을 내쉬었다. 멀고 먼 추억이 이 맛에 깊이를 더한다.

   오늘의 기본안주는 녹미채. 아직 따뜻하다.

   풋콩과 빨간무절임을 시킨다. 맥주 다음은 소주로 하자.

   이곳은 독특한 방식으로 소주를 내놓는다.

   조막병에 상온의 소주를, 알루미늄 물통에 뜨거운 물을 담아 술잔을 낸다. 뜨거운 물에 각자 소주를 섞어 홀짝홀짝 마신다.

   술꾼들에게는 이렇듯 가게 특유의 방식이 묘한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어딘가 어린애 같은 면이 있어서일 것이다.

   두부볶음이나 고구마튀김도 맛있다. 젓갈이나 락교도 더 시키고 싶다.

   아직 손님은 아무도 없다.

   열린 문으로 늦여름의 바람이 불어온다.

   조금만 지나면 퇴근한 샐러리맨이나 근처 대학생이 길가를 메울 것이다. 해로쿠의 카운터도 단골로 가득 찰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소란스러운 기운이 가게 안을 다정하게 채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전에 계산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설 생각이다.

   아직 저녁 햇살이 남은 거리를 따라 오차노미즈 역에서 주오선을 타고 서쪽으로, 약간 취기를 거느린 채 흔들거리며 돌아가야지.

   오늘이 남아 있다는 기쁨을 천천히 곱씹으면서.

p. 21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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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어홀'이라는 단어가 책에 나오는데, 참 좋은 말 같다. 비어와 홀이라니. 이 세 음절만으로 그 장소의 맛과 들뜸과 왁자지껄함이 연상이 된다. 언젠가 비어홀에 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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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놀란 것은 사람들이 책을 매우 열심히 읽는다는 점이다. 아마 겨울이 걸어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독서에 매우 큰 의미가 가치를 두는 듯하다. 집의 서가가 얼마나 충실한가로 그 사람의 가치가 판가름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인구에 비해 대형 서점이 많고, 아이슬란드 문단도 활발해, 1955년에는 할도르 락스네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대표 장편소설 <독립한 민중>을 라디오에서 몇 주에 걸쳐 낭독했고, 그 시간에는 전국민이 말 그대로 라디오 앞에 못박혀 있었다고 한다. 버스가 운행을 멈추고, 어선도 조업을 중지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작가수도 많아서 에리캬비크에만 340명이 '작가'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나가세 마사토시 주연의 영화 <콜드 피버>에서 언급했듯이, 아이슬란드는 인구당 작가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p.27~28


 

   요리뿐만 아니라 주류 가격도 상당히 비싸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옛날부터 음주에 얽힌 말썽이 많아서 (아마도 겨울이 길고 혹독한 탓이리라) 오랫동안 금주제도가 이어지다 제법 근년에 들어서야 폐지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유독 맥주에 대해서는 그후로도 계속 금주법이 적용되어, 놀랍게도 아이슬란드에서는 1980년대 말까지 맥주를 전혀 마실 수 없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자기 집 헛간에서 손수 맥주를 만들어 마셨고, 밀매업자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외국 맥주를 대량으로 국내에 들여왔다.

- p. 33


 

   숲은 전혀라고 말해도 될 만큼 없다. 아이슬란드가 궁핍했던 시기에 사람들이 땔감으로 쓰려고 산림을 모조리 벌체해버렸기 때문이다. 본래 이곳에 자라 있던 수목의 99퍼센트가 사람들 손에 베여나갔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고작이라 나무를 심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 남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며 여기저기서 식수를 시작했는데, 남쪽과 달리 수목의 성장이 더뎌 울창한 숲을 이루려면 아직도 한참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기껏해야 사람 키만한 나무밖에 없다. 그러나 비록 큰 나무가 없다해도, 푸른 이끼에 뒤덮인 용암대지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곳곳에 자그만한 한랭지 꽃이 가련하게 피어 있는 풍경은 매우 아름답다. 그런 풍경 속에 홀로 서 있으면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 소리, 혹은 아득한 시냇물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깊은 내면의 고요가 존재할 뿐이다. 그럴 때 우리는 마치 머나먼 고대로 이끌려온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섬에는 무인의 침묵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이 섬에 유령이 가득하고 말한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무척 과묵한 유령들이리라.

- p. 49



   오로라는 이윽고 말이 꼬여서 의미를 잃어가듯이 서서히 옅어지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빨려들듯 사라졌다. 나는 그것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는 따뜻한 호텔방으로 돌아가서, 꿈도 없는 깊은 잠에 들었다.

- p. 60



   (...) 그러나 이제는 긴 할주로가 생겨, 많은 관광객이 시간을 절약하며 발이 묶일 걱정 없이 유럽 각지에서 이 섬으로 직행할 수 있다. 물론 편리하지만 왠지 서운한 느낌도 없지 않다. 불편함은 여행을 귀찮게 만들지만, 동시에 일종의 기쁨 - 벌거로움이 가져다주는 기쁨 - 도 품고 있다.

- p. 89~90



   나는 몰라보게 밝아진 가게 안을 둘러보고는 "이게 정말 그 파트랄리스 가게라고?" 하며 입을 딱 벌리고 말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선생 '파트랄리스 가게'는 우리 마음에 쏙 들었다. 예전처럼 마리자가 메뉴에 빠지지 않고 올라 있고, 역시 예전처럼 맛있었다. 하나하나 양이 푸짐한 것도 변함없다. 가격은 합리적이고(혹은 상당히 싸고), 그러면서 재료는 신선하다. 생선을 주문하면 주방으로 손님을 데려가 직접 실물을 보여주며 고르게 하고, 그것을 눈앞에서 조리해준다. 이 가게에서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레몬과 올리브오일을 뿌린 신선한 생선 요리를 먹고 있으면 더없이 행복한 기분이 든다. 우리는 이틀 연달아 이 가게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다만 레치나 와인은 톡 쏘는 독특한 향이 예전보다 조금 엷어진 것 같다. 나는 그 촌스러운 향이 무척 좋았는데.

- p. 102~103



   이따금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듯 마음이 가는 상을 만난다. 왠지 반가움 비슷한 감정마저 든다. 그런 상을 만나면 "오호, 네가 이런 데 있었구나"라고 무심코 말을 걸고 싶어진다. 대부분 칠이 벗어지고 표면이 변색되고 귀퉁이가 떨어져나간 것들이다. 개중에는 코나 귀가 아예 사라진 것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어스름 속에서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한눈팔지도 않고, 우기도 건기도 가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시간을 견뎌온 것이다. 백년이고 이백 년이고. 나는 그중 몇몇 조각상과 아무런 이유 없이 마음이 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다정한 친근감을 안겨주는 분위기는 서유럽의 여느 성당들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서유럽 성당에는 보는 이를 압도하며 장엄한 기분을 자아내려는 면이 있다. 물론 그것도 그것대로 멋지지만, 라오스의 사원에서는 '위에서 내려오는 압도적인 힘' 같은 것이 엿보이지 않는다.

- p. 177



   "라오스(같은 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베트남 사람의 질문에 나는 아직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라오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소소한 기념품 말고는 몇몇 풍경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러나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무언가를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 그떄의 떨리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것이 단순한 사진과 다른 점이다. 그곳에만 존재했던 그 풍경은 지금도 내 안에 입체적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결국은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한 책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 p. 181~182



   그 때문인지 가기올레 인 키안티, 라다 인 키안티, 카스텔리나 인 키안티... 등등. 조금 신기한 울림을 가진 토스카나 마을의 이름들이(모두 오래된 성벽이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상하게도 머릿속을 떠날 줄 모른다. 일본으로 돌아와서도 그런 이름을 보거나 듣기만 하면 마을의 풍경과 그곳에서 마신 와인, 이름 모를 레스토랑에서 나온 음식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러면 '아아, 다시 그곳에 가봐야겠다'라고 생각한다. 다름에는 꼭 알과 로메오를 빌려야지, 라고도.

   이것에 나는 개인적으로 '토스카나 열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p. 213~214



(....) 그렇게 오래 혼자 여행해본 건 난생 처음이었다. 혼자서 낯선 땅을 여행하다보니 단순히 숨을 쉬고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쯤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 p.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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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에서 하루키는 말한다. "잊을 만하면 띄엄띄엄 청탁이 들어와 여행기를 쓰는 작업을 하다보니, 차츰 원고가 쌓여서 이번에 한 권의 책으로 묶게 되었습니다. 한데 모은 글을 새삼 다시 읽어보자 '아, 다른 여행에 대한 글도 써둘걸 그랬다' 하고 은근히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써야 한다! (불끈)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떠나보내며, 한번 더 읽고 싶다고 표시해두었던 문장들을 옮겨둔다. 라오스야, 잘 가라. 그곳에서 행복하렴. 역시 하루키 최고의 여행기는 <먼 북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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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from 서재를쌓다 2016. 8. 18. 23:09





   친구와 홋카이도를 가기로 결심하고, 홋카이도 책을 찾아봤다. 가이드북 말고 에세이. 책이 적었는데, 오지은의 홋카이도 여행기는 집에 있었고, 이 책이 궁금했다. <혼자가 아닌 시간, 홋카이도>. 평이 좋아서. 홋카이도의 겨울 이야기이긴 한데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합정점 중고서점에서 샀다. 몇장 뒤적거리고 잊고 지내다 여행 가기 직전에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다. 소설가가 쓴 홋카이도 여행기였는데, 무척 감상적인 글이었다. 거기서 <침묵>을 소개 받았다.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서, 선교 활동 중에 붙잡힌 포르투갈 신부 로드리고는 배교를 강요받는다. 배교의 증명은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를 발로 밟는 것으로, 어찌 보면 허무하리만큼 간단한, 그러나 신앙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절차다. 성화를 앞에 두고 한참을 번민과 고통에 사로잡혀 있다가 마침내 '자기 생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 온 것, 가장 성스럽다고 여겨 온 것, 인간의 가장 높은 꿈과 이상으로 가득 차 있는' 성화 위에 발을 올려놓은 순간, 로드리고는 자신의 발에 밟힌 얼굴에게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는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 p.289 문지혁 <혼자가 아닌 시간 홋카이도> 


   이 구절을 읽는데,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읽어야겠다, 싶었다. 알라딘에서 평을 찾아봤다. 어떤 사람은 '좋은 책입니다'라고 이야기해줬다. 어떤 사람은 '무교인 내가 아주 인상적으로 읽게 된 책'이라고 말해줬다. 이 책을 가지고 홋카이도에 가야겠다 싶었다. 새책이 아닌 적당히 낡은 책으로 읽고 싶었다. 누군가가 읽고 선명한 자국까지 남긴 책이 다행히 여행 전에 도착했다. 이렇게 한 권의 책과 나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원래 틈틈이 읽을 예정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이동하는 전철이나 기차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일찍 들어와 씻고 침대에 누워서,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그렇지만 늘 그랬듯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쉬엄쉬엄 여행하기로 한 우리는 이틀동안 엄청나게 걸었으며, 커피집에도 두 번밖에 가질 않았다. 비행기에서 시작한 책은, 모든 첫만남이 그렇듯, 몇 장을 넘기지 못했다. 책에 푹 빠져들게 된 건 오타루에서 삿포로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였다. 전날도 그렇고, 그날도 엄청 걸었다. 핸드폰 건강앱의 '걸음'란에 이렇게 큰 숫자가 표시된 건 처음이었다. 뿌듯했지만, 그만큼 피곤하기도 했다. 30분 남짓의 시간동안 잠들고 싶었는데, 조명이 밝아 잠이 오질 않았다. (사실 나는 불 켜놓고도 잘 자지만;) 친구가 책을 꺼내길래 나도 꺼냈다. 피곤함을 견디며 몇 장 읽기 시작했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이야기에, 인물들에 순식간에 푹 빠져 들어버렸다. 그래서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몸을 담글 때도 몇 장 읽고, 친구가 씻을 때도 몇 장 읽었다. 아침과 밤에는 너무나 궁금했지만, 피곤해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눈꺼풀이 저절로 스르르 감겼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꽤 많이 읽었다. 돌아와서는 다음날 조조로 <나의 산티아고>를 봤는데, 영화를 보기 전에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읽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가까운 커피집에 들어가 커피를 시켜놓고 한참을 읽다 나왔다. <나의 산티아고>를 보면서는 소설 속 인물들이 계속 떠올랐다. 영화의 주인공 하페도 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생각했다. 신은 있는가. 신이 없다면, 이 길의 끝에 섰을 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 되는 건가, 하고. 소설 속 로드리고 신부 역시 끊임없이 묻는다. 신은 존재하는가. 신이 있다면 왜 이런 세상에, 이런 가혹한 일들을 당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인가. 왜 침묵만 하고 있는 것인가. 신은 없는 거 아닌가. 신이 없다면 이 많은 사람들의 순교는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나는 신부인 그가 끊임없이 자신이 섬기는 존재를 의심하는 것이 좋았다. 무교인 내가 종교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바도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나 저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인간은 이 바다의 단조로움이나 그 무서운 무감동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물론 만일의 이야기지만...'
   그때 가슴 한구석 깊은 데서 다른 소리가 속삭였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이것은 무서운 상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만약 그렇다면 나무기둥에 묶여 파도에 씻긴 모키치나 이치소우의 인생은 얼마나 익살스러운 연극인가. 많은 바다를 건너 2년의 세월을 보내며 이 나라에 다다른 선교사들은 또 얼마나 우스운 환영을 계속 뒤쫓은 것인가. 그리고 지금, 사람의 그림자조차 산속을 방황하고 있는 나 자신은 얼마나 우스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 p. 106~107 <침묵>

   그리고, 친구 아버지 장례식장으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그 문장을 읽었다.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만든 문장. 단 두 줄에 가슴이 쿵쾅거렸던 문장. 앞에 있는 문장과 뒤에 이어질 문장이 무척이나 궁금해서 책 한 권을 통째로 읽게 만든 문장.

   "형식으로만 밟으면 되는 거요."
   신부는 말을 들었다. 발이 저린 듯한 무거운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형식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 온 것,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 인간의 이상과 꿈이 담긴 것을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그때, 밟아도 좋다고, 동판에 새겨진 그분은 신부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멀리서 닭이 울었다.
- p. 267

   읽기 전에 찾은 평들이 맞았다. '좋은 책'이었고, '무교인 내가 아주 인상적으로 읽게 되었다'. 나는 로드리고가 믿는, 침묵하고만 있다고 원망하는 '신'에 다른 무언가를 넣어보았다. '로드리고'라는 사람에도 다른 사람을 넣어보았다. 수없이 배교를 하고,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자신은 그저 강하지 못한 사람일 뿐이라고 여러번 외쳤던 '기치지로'에는 '나'를 비추어 보았다. '기치지로'는 용감하지 못하고, 비겁하지만, 그를 무턱대고 욕할 사람이 있을까. 나는 욕하지 못했다. 작가는 '기치지로'를 소설의 처음, 이렇게 묘사한다. "지금 저희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그에게 상당히 교활한 성격이 있으며 그 교활함이 이 남자의 연약한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입니다." 이 문장에 연필로 밑줄을 그어뒀다. 종교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나는 인간의 이야기로 이 소설을 읽어냈다.

   좋은 문장들도 많았고, 아파서 더욱 아름다운 묘사들도 있었다. 언제고 내가 좋아하는 당신이, 꼭 한번 읽었으면 좋겠다. 나를 <침묵>으로 이끈 홋카이도 여행기의 다음 문장은 이렇다. "하코다테의 어느 오래된 성당에서, 나는 그때 로드리고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그의 발로 전해졌을 둔중한 아픔과, 신앙과 믿음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수수께끼를. 어디선가 내게도 낮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 계획은 이렇다. 언제고 마음이 힘들어질 때 삿포로행 티켓을 사는 거다. 단, 그때가 겨울이어야 한다. 홋카이도에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비행기를 타고 그곳에 날아가 기차를 타는 거다. 삿포로에서도 내리지 않고, 오타루에서도 내리지 않고, 몇 시간을 쭉 달려 하코다테로 가는 거다. 바다로 보이는 창이 있는 따뜻한 숙소를 잡고, 따뜻한 모자를 쓰고, 따뜻한 장갑을 끼고, 두꺼운 어그 부츠를 신고 추운 밤거리를 걷는 거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곳에 들어가 따뜻한 음식도 먹는 거다. 춥긴 하겠지만 맥주도 한 잔 하는 거다. 그애는 나의 친구니까. 그리고 다시 숙소에 들어가 따뜻한 물로 씻고, 라디오나 티비를 낮게 틀어놓고 다시 <침묵>을 읽는 거다. 그때는 책이 더 너덜너덜해졌겠지. 그러다 잠들고, 다시 깨면 또 읽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엔 교회들이 가득한 모토마치를 조용히 걷는 거다. 교회 안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어 보기도 하고. 내게도 로드리고의 어떤 목소리가 들릴지도 모르지. 그가 스윽- 조용히 내 곁에 앉을 지도. 그도 그가 믿었던 신처럼 침묵하겠지만. 내가 알아들으면 되니까. 그런 겨울을 언젠가 꼭 보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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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도 안 가봤지만 숲님이 추천해 주셔서 언젠가 가 보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동네 북카페가 있다. 한번도 안 가본 주제에 블로그를 즐겨찾기 해 놓았는데, 어느 날 소규모의 일본어 스터디를 진행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일본인이 가르쳐주고, 수업 속도도 빠르지 않고 천천히 진행하려고 한다는 설명과 함께. 이거다 싶었다. 공부도 하고, 새로운 사람도 사귀고. 전화로 문의를 했는데, 설명을 해주시는 분의 목소리와 말투가 좋았다. 목소리 만으로 좋은 사람이구나 신뢰감이 느껴졌다. 카페 스텝인데, 스터디에서 함께 공부를 할 거라고 했다. 일본여행을 가면 서점에 가곤 하는데, 무슨 책인지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서 공부를 할 결심을 했다고. 여러 가지로 좋았는데, 수업료가 비쌌고, 히라가나부터 수업을 시작한다고 해서 망설여졌다. 결심이 서면 연락을 달라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키나와에서 마지막 날, 돌아가서 해보기로 결심했다. 왠지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본어도 처음부터 단어 하나하나 빼먹지 말고 익히는 계기를 만들자 싶었다. 마침 여행이 끝나고 먼저 연락이 왔다. 그런데 요일이 바뀌어서 퇴근하고 가기엔 좀 벅찬 시간이었다. 셔틀이 없는 요일이라. 그래서 좀더 나중에 함께 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다. 오키나와에 다녀와서 열심히 다시 시작해 볼 생각이었다는 말과 함께. 그러자 그 분이 이 책 얘길 했다. 오키나라에 울랄라라는 헌책방이 있는데, 그곳을 가보기 위해서라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오키나와라고. 그래, 내게도 이 책이 있다. 오키나와 가기 직전 사 두었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책. 카페 스텝 분 덕분에 책장에서 책을 꺼냈다.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사실 책을 구입하면서도 큰 기대는 없었다. 가이드북을 사야했는데, 가이드북이 헌책이라 배송료가 들었다. 배송료를 없애려면 다른 책을 한 권 더 사야했는데, 소개글과 독자들의 평을 읽는데, 아무래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구입을 했더랬다. 그런데 읽기 시작하자, 꽤 재밌었다. 소설도 아니면서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친구와 함께 치맥을 하기로 한 날은 먼저 가게 안에 들어가 맥주를 시켜놓고 친구가 올 때까지 야금야금 읽었다. 마지막의 중국 이야기는 그저 그랬는데, 그 전의 오키나와 이야기가 재밌었다.


   저자는 도쿄의 서점에서 근무를 했는데, 오키나와 나하시에 분점이 생기자 그곳으로 가고 싶다고 지원을 했다. 오키나와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하 지점에서 2년동안 근무를 했다. 향토책 코너를 맡으면서 오키나와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오키나와와 오키나와 사람들 속으로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오키나와는 특이하게도 오키나와 지역 출판사가 출간하는 오키나와 현산 책이 많다. 그 책들은 주로 오키나와 내에서만 유통이 된단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고 한다. 그래서 오키나와의 역사나 문화에 관련된 책이나, 오키나와 출신 작가가 쓴 책은 신기하게도 꽤 많이 팔린단다. 이런 이야기들이 재미있고, 신기했다. 확실히 오키나와는 본토와는 다른 독특한 자체 문화가 있는 것 같다. 오키나와에는 헌책방들도 많은데, 어쩌다 저자는 그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책방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누군가 한번 해봐, 라고 권유하는데 그래, 진짜 한번 해볼까,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게 우다 도모코 씨는 오키나와의 복작거리는 시장 안에 세상에서 제일 작은 서점을 열었다.


    서울의 나는 책을 읽으면서, 오키나와의 울랄라 씨를 상상했다. (울랄라는 저자의 별명이다) 반찬가게, 우산가게로 복작거리는 시장 안에 조그맣게 열려있는 서점, 작은 공간의 벽면에 책장이 꽉 차 있고 그 책장에 책들이 꽉 차 있는 모습, 그 서점 한 켠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울랄라 씨. 오키나와 여행을 마치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여행 전에 먼저 읽고 가보질 않은 걸 후회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가보지 않은 것도 좋았다, 라고 생각했다. 가보지 않은 대신 상상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책에는 울랄라 서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상은 제법 근사했다. 사실 울랄라 씨가 여자라는 사실도 책의 중간 즈음 울랄라 씨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나오면서 알았다. 그 떄의 충격이란! 지금까지 정말 남자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러웠다. 자신의 가게를 갖고 싶다는 꿈을 결국 이뤘고, 그 꿈이 일상이 되었고, 꿈이었던 시절보다 현실은 녹록하고 조금은 무미건조할 수 있지만, 그 일상을 기록하며, 또 하나의 꿈이었을 게 분명한 책까지 썼으니. 그걸 오키나와 사람 뿐만 아니라, 본토 사람들도 읽고, 일본 사람 뿐만 아니라 바다를 건너 나같은 외국인들도 읽고 있으니. 아아, 책을 보면 중국 독자도 있었다. 일상이 이야기가 되고, 마침내 책이 된 사실이 부럽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것. 앞으로도 열심히 읽겠습니다아. 울랄라 씨도, 세상에서 제일 작은 서점도 힘내주세요. :)



   "오키나와 좋아요?"

   "네."

   "어디가 어떻게?"

   "살기 좋고, 사람들도 좋고요."

   진심이었다. 하지만 오키나와 역사와 서민 생활에 대해서는 제쳐둔 채 내게 득이 되는 부분만 보고 오키나와를 판단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처음 한 해는 정신없이 살았다. 두 번째 봄을 맞으며 이후의 삶을 고민할 여유가 좀 생겼다. 오키나와에 오기 전에 상사는 "2년만 다녀오라"고 말했다. 그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겨우 2년 만에 도쿄로 돌아간다면 관광객과 다를 게 없으니까.

   오키나와 생활을 단순한 경험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애써 큰맘 먹고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정말 오키나와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딱히 답을 내지도 못한 채 떠나야 한다니...

   고쿠사이 거리를 걷다가 선물 가게에 들어섰을 때 예의 "보고 가세요"란 권유를 듣는 일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이방인이 아닌 걸까? 전근을 핑계로 벗어나려 했던 쳇바퀴 같은 삶을 이제는 끝내야 했다.

- 49~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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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from 서재를쌓다 2016. 7. 27. 23:00



    이런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몸 속 어딘가에, 아니 마음 속 어딘가에 누군가가 내게 했던 말들을 보관하는 장소가 있는 것 같다고. 전혀 잊고 있었던 말인데, 어느 순간 문득 떠올라 나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때의 그이는 이런 마음이었던 거구나. 그때의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그 마음을 백프로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거다. 그 말들은 아주 소소한 말들부터 의미심장한 말들까지 다양하다. 따뜻한 말도 있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말도 있다. 얼마 전 만난 남희언니는 친구 얘기를 하며, 그즈음엔 술을 마시면 신이 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 신이 나는 게 미안했어,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이 어느 저녁 친구네 집으로 가는 지하철 계단 위에서 불쑥 떠올랐다. 그리고 언니는 언젠가 그해에 영화를 정말 많이 봤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부럽다고 하자, 언니는 그만큼 외로웠다는 거야, 식의 이야기를 했다. 어느 날 극장 안에서 혼자 있다가 생각이 났다. 차장님의 내 나이엔 기름종이가 필요없어, 라는 말도. 흑흑.


   소설의 경우도 그렇다. 어제 일본의 장애인 살인사건을 접하면서 이 소설이 생각났다. 이 소설은 살인사건 이야기도 아닌데, 생각이 났다. 같은 일본의 이야기라서 생각이 났던 건 아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거액의 은행돈을 횡령한 주부의 이야기를 범죄 자체보다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냈기 때문인 것 같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어떻게 자라났고,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었을까. 사건 후에 어쩔 생각이었을까. 이 소설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여기서 나가게 해줘요." 이 말은 한때는 함께 돈을 쓰는 게 즐거웠지만 이제는 그녀의 모든 것이 부담스러워진 불륜의 연하남이 주인공에게 한 말이기도 하고, 주인공이 태국에서 도피생활을 하다 이렇게는 더는 살 수 없을 거 같다 결심하고 라오스 국경을 넘으려다 뭔가 낌새를 알아차린 거 같은 경찰에게 중얼거리듯 건넨 말이다. 두 사람 모두에게 '여기'는 장소를 의미하기도 했고, 그보다 더 많은 걸 포함하고 있는 말이기도 했다.

    리카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결혼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뒀고 임신을 하고 싶었지만 잘 되질 않았다. 집안일만 하며 계속 있는 것이 그래서 일을 구했다. 은행의 파트타이머였다. 일하는 즐거움을 소소하게 느끼다가 어느 날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살 때 현금이 부족해 고객의 돈에 손을 댄 이후로 리카의 인생을 조금씩 달라졌다. 한 아이를 만났고, 횡령이 시작됐다. 조금만 조금만, 금방 채워넣으면 돼, 했던 것들이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의 횡령으로 이어졌다. 소설을 읽으면서 리카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 생각하고 읽었는데, 소설을 읽고 꽤 지난 어느 날 불현듯 깨달았다. 내 안에도 리카가 있다는 걸. 나도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다는 걸. "여기서 나가게 해줘요."

    이 이야기는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도 그만큼 좋다고 해서 보았는데, 정말로 소설도 좋고, 영화도 좋다. 같은 이야기지만 다른 이야기같기도 하다. 소설과 영화 중 뭘 먼저 보든, 나중에 다른 것도 꼭 보는 걸 추천한다. 영화는 리카가 연두빛이 가득했던 커다란 창을 깨어부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고, 소설의 경우는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는, 태국에서의 도피생활 부분이 좋았다.

   나온 것은 닭고기와 바질 볶은 것에 달걀부침을 올린 밥이었다. 리카는 하야마 것까지 맥주를 추가 주문하고 먹기 시작했다. 입에 넣자 은근히 달았지만, 삼키는 순간 놀라울 만큼 매워졌다. 매워, 라고 조그맣게 말하자 하야마가 웃었다. 리카는 너무 매워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얼른 맥주를 마시고 식사를 계속했다.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과 식사하고, 사람과 웃는 것이 얼마 만인지. 방심하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추억 때문에 좀 전까지 단단하게 뚜껑을 닫았다고 생각했는데, 물이 새듯 어느덧 리카의 마음속에 추억이 스멀스멀 퍼져나갔다.
- 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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