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가다'에 해당되는 글 151건

  1. 목포와 함평 2018.07.04
  2. 전주 (6) 2018.05.22
  3. 주문진 (2) 2018.04.04
  4. 네스트 호텔 (2) 2017.10.16
  5. 파코 하코다테 2017.09.19

목포와 함평

from 여행을가다 2018.07.04 15:39


   우리 관계가 이랬는데, 그때 니가 가버려 가지구 지금 이렇게 소강상태야. 우리는 비가 쏟아지는 일본식 꼬치집 창가자리에 앉아 있었다. 니가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그래프를 만들었다. 왼쪽 아래에서 시작한 손가락이 미세하게 솟았다 가라앉았다 했다. 전체적으로는 상승곡선이었는데, 어느 순간 상승도 하강도 없이 일직선을 유지했다. 나는 그랬구나, 다시 올려보자, 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니까, 니가 말하는 내가 가버린 그날 이후로 나는 너를 나의 틀에서 벗겨냈다. 이전의 나는 너를 내 틀 안에 데려다놓고 이것저것 이해하려고 애썼는데, 그게 자주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잘못된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 틀이 아니라, 니 틀에서 이해해야 한 거였는데. 그러고 나니 너도, 나도 평온해졌다. 같이 지내는 시간이 점점 쌓여가니 흐릿했던 니 틀이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에는 명확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그래프는 다시 상승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바쁘지 않다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좋은 곳을 다녀오자고 이야기했더랬다. 유월에는 가질 못했는데, 사월에는 목포와 함평에 다녀왔다. 학교 시절, 과제 발표를 할 때 어떤 조의 함평나비축제 소개를 보고 흠뻑 반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언젠가 함평을 꼭 한번 가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한번도 가지 못했다는 말을 해서 올해 축제 날짜를 기억해뒀다 가자고 했다. 함평에는 숙소가 거의 없어 목포에 숙소를 잡았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신시가지의 오래된 호텔이었다. 욕실이 무척 넓었다. 너는 케이티엑스가 처음이었고, 나는 목포가 처음이었다. 둘 다 함평은 처음이었다. 함평의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엑스포 공원을 컨버스화를 신고 오래 걸었다. 입장할 때 받은 쿠폰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우엉차도 샀다. 나비는 박제되어 있기도 하고, 살아 움직이기도 했다. 


   해가 늬엿늬엿 지기 시작할 무렵 엑스포 공원을 나왔다. 공원 건너편에 작은 시장이 있었고, 번데기와 소라를 파는 가판이 있었다. 알고 보니 둘다 소라를 좋아했다. 한 컵 사서는 하나씩 건져내서 입에 물고 쪽쪽 빨아먹었다. 소라가 큼지막했다. 쪽쪽 빨아먹는 소라살도 큼직했다. 맛있다, 맛있다, 를 연발하다 보니 행복해졌다. 렌트카 주차한 곳까지 걸어가면서 한 컵을 금새 비웠다. 그게 목포함평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다. 칠월이 되어 사월의 일을 생각해보니, 행복할 때 행복하다고 표현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친구와 동생은 지난 주말, 망원의 술집에서 끝맛이 희미한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나의 이런저런 얘길 들어줬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노력하는 거 좋은 것 같아. 필요해. 그렇게 해서 너가 좀더 좋은 사람이 되는 거, 응원해. 너무 달랐던 둘이 점점 하나처럼 닮아가는 게 진짜 좋은 것 같아. 오늘 정밀아의 말처럼 시간이 흐르면 되는 거라 생각해. 괜찮아 보여. 그러니, 좋은 연애인 거야.

















전주

from 여행을가다 2018.05.22 14:30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전주에 여러번 갔었다. 마당이 이쁜 한옥집에서 두 번 잤고, 오래됐지만 깔끔한 시내의 호텔에서 두 번 잤다. 이번에는 지은지 오십년도 넘은 시내의 호텔에서 잤는데, 여기에 여섯명이 한꺼번에 투숙할 수 있는 침대방이 있다고 했다. 심지어 저렴했다. 모과가 전날, 샤워용품과 수건이 있는지 물어봐서 직접 전화를 했다. 전화해보니 친절하기까지 했다. 샤워용품과 수건 모두 있는 걸 확인하고, 정말 그 방에서 여섯 명이서 잘 수 있는지 물어봤다. 다섯 명이 침대에서 자고, 요가 있어 한 명은 바닥에서 자면 된다고, 여섯 명이 충분히 투숙할 수 있는 방이라고 했다. 와, 정말 그런 방이 있다니. 


   제일 먼저 방에 도착한 건 모과와 나. 우리는 터미널에서 남부시장까지 한 시간 넘게 걸었다.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날씨는 쌀쌀했는데,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걸었다. 시장에서 민정이가 추천해 준 식당에서 일본음식과 맥주로 배를 채우고 시내의 호텔로 걸어갔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사들고 체크인을 했다. 방은 침대로 꽉 차 있었다. 싱글침대가 3개, 더블침대가 1개, 그리고 옷장 안에 요와 베개, 이불이 있었다. 침대들은 따닥따딱 붙어 있었다. 창은 넓었고, 자그마한 창문도 열렸다. 천장에 어쩐지 어색한 상들리에가 틈틈이 먼지가 쌓인 채 있었다. 벽에는 한지 장식에 누구의 그림인지 알 것도 같은 옛그림 카피본들이 있었다. 화장실은 널찍했는데, 오십년의 전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화장실이었다. 모과가 화장실에 간 사이, 조금 떨어져 있는 침대를 붙인다고 움직였는데 그 아래 먼지가 그대로 드러나서 깜짝 놀라 물티슈를 꺼내 방을 닦았다. 먼지가 틈틈이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아늑하고 꽉찬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모과는 단 둘이서 처음 버스를 타는 거라 전날밤 긴장해서 잠을 설쳤다고 했다. 졸리다는 모과에게 잠깐 눈을 붙이라고 하고, 반대편 침대에 누워서 가지고 간 책을 조금 읽었다. 우리들 때문에 일찍 일을 끝낸 소윤이가 엄청난 시간을 들여 호텔로 달려왔다. 과자 하나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보고 싶었다고, 와줘서 너무너무 고맙다고, 아기새처럼 지저궜다. 이어서 정시 퇴근을 한 민정이가 새로 산 예쁜 구두를 신고 왔다. 지난주에 만난 사람처럼 그렇게 친숙하게. 봄이지만, 바람이 엄청 휘몰아쳤다. 조금 뒹굴거리다 나가기로 했다. 혼자 있었으면 절대 보지 않았을, 남자와 여자가 함께 생활을 하며 인연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침대에 누워 엄청 큰소리로 웃으면서 봤다.


   8888. 방 번호였다. 다른 방들은 모두 세 자리였는데, 이 방만 네자리였다. 자정 가까이 다시 방에 돌아왔을 때 우리는 여섯이었다. 서울에서 퇴근을 하고 출발한 솔이와 봄이와 함께였다. 첫번째 가맥집에서는 넷이었고, 두번째 가맥집에서 다섯이 되었고, 마침내 여섯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여섯이 모이는 건 처음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전주에서. 바삭한 황태구이와 도톰한 계란말이를 먹었고, 잘 튀겨져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던 닭발도 먹었다. 고추가 들어간 매콤한 통닭도. 물론 맥주도. 호텔 앞 편의점에서 먹고 싶은 간식거리를 잔뜩 사와 방에서 밤시간을 보냈다. 언제 다시 이런 순간이 올까 충만한 생각이 들었던, 나도 모르게 잠이 스르르 몰려왔던 밤이었다. 제일 늦게 잠든 사람에 따르면, 한 사람씩 잠이 들기 시작했고, 한 사람씩 코를 골기 시작했단다. 모두 다른 음으로 각자의 코골이를 하던 전주의 밤.


    다음날 약속에 있었던 모과는 새벽 일찍 떠나고, 우리는 모과가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신발들을 보며 한 사람씩 오십년 전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던 화장실에 들어가 씻었다. 봄이가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했고, 욕실 밖에 있던 사람이 그걸 듣고 즐거워 했던 전주의 아침. 너무너무 추워 가려고 했던 가게에 가지 못하고 근처 가게에 들어가서 갈비탕을 시켰는데, 반찬도, 갈비탕도 정말정말 맛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도 무척 친절하시고. 누군가는 이번에 읽은 책을 중고서점에 팔고, 누군가는 이 엄청난 봄추위를 견딜 스웨터를 샀던 전주의 토요일 아침. 좋아하는 커피집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던 오후. 그런 시간들을 소중하게 보내고 모과에 이어 먼저 서울로 왔다.


   관계란 함께 노력하는 것이라는 걸 시옷을 통해 새삼 깨달아갔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먼저 마음을 보여주는 것, 그 마음을 보여주었을 때 내 마음을 내어주는 것. 나이에 상관없이 그런 시간들과 마음들이 더해졌을 때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아갔다. 아니, 지금도 그러고 있다. 2018년 봄, 전주에서 두고두고 펼쳐볼 수 있는 또 다른 좋은 추억이 이렇게 생겼다.



      

  1. BlogIcon wonjakga 2018.05.22 17:25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는 또 생각해요. 이렇게 좋은 글을 이렇게 편하게 공으로 읽어도 되나. 미안하면서 고마운 마음. 휴일이 끝나가네요. 빗소리가 듣기 좋구요. 끝나가는 휴일은 아쉽구요.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5.22 18:40 신고 BlogIcon GoldSoul

      집에 있을 때 비 오니까 이렇게 좋은데, 내일은 출근해야 한다는 현실. ㅠ.ㅠ 그렇지만 곧 현충일도 있고, 선거도 있더라구요! 그런 6월이 우릴 기다리고 있으니 힘을 내어 보아요. 저는 어이없게 이 계절에 감기예요. 갑자기 확 걸려버렸어요. 현정씨도 감기 조심해요. 잘 읽어줘서 제가 더 고마워요. :)

  2. BlogIcon 오혜진 2018.05.24 00:42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금령씨
    마지막 문단의 글이 정말 좋아요!
    나 오랜만이죠 블로그에 글 남기는 것.
    우리도 좋은 친구 맞죠?

    저 마지막 문단의 글, 내가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해줘도 되죠?

    이 글을 읽고 금령씨 엽서를 다시 한번 읽었어요.
    제법 추운날 많은 사람이 함께 한 여행.
    참 좋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한 여행을 해본지가 언제인지....
    금령씨 글을 읽으며 나도 상상해봐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여행.

    오늘 긴 편지를 썼어요.
    내일이나 모레 부치면 담주쯤 도착하겠다.
    요즘의 마음에 대해 편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게 새삼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밤이어요.
    잘자요~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5.24 21:47 신고 BlogIcon GoldSoul

      와, 편지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도 이번엔 편지로 답장할게요!
      신나라 :-D
      그럼요, 우리 좋은 친구예요. 맞아요, 좋은 친구!
      혜진씨, 오늘도 좋은 꿈 꾸어요.

  3. 하진 2018.05.24 01:52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니카라과에서 부러워 죽는 1인.

주문진

from 여행을가다 2018.04.04 21:47

​​



   주문진에 다녀와서 대게와 홍게보다 더 생각이 났던 건, 파래전이었다. 심심하게 생긴 전이 기본반찬으로 나왔는데, 무심히 먹다 바삭한 것이 너무 맛나 사장님께 무슨 전이냐고 물어봤다. 츤데레 스타일의 사장님이 말씀하시길, 파래전이래요. 파래로 전도 만드는 구나. 맛나게 먹고 한 장 더 달라고 했다. 두 장째 먹는 데도 맛있더라. 주문진에서 하룻밤 자고 인천으로 왔는데, 인천의 해물찜 식당 티비에서 파래전 부치는 장면이 나왔다. 돌아와서 파래전 만드는 법을 검색해봤다. 별 게 없었다. 파래를 씻어서 다른 재료들과 섞어 전을 부치면 됐다. 인터넷 속 파래전의 재료들은 화려했는데, 주문진에서 먹은 건 파래와 옥수수 딱 두 가지만 들어갔다.

 

   몇 주 뒤에 만나서 무언가를 먹다가 아, 파래전 생각난다, 라고 말했다. 진짜 맛있었지, 라고 해서 고개를 끄덕였더니 또 놀러 가서 먹으면 되지, 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치, 그 맛을 여기서는 느낄 수 없지. 그 파래전에는 파래와 옥수수만 들어간 게 아니지. 주문진까지 가는 길에 본 높은 산에 둘러쌓인 눈꽃들과 쌓인 눈이 날리던 풍광, 실패한 스팸무스비, 산을 넘으니 한겨울에서 늦겨울로 바뀌던 온도, 크지 않은 바닷가 마을의 짠내, 8층 높이에서 올려다보고 내려다보았던 구름낀 하늘과 잔잔해보이던 바다, 함께 걸었던 복작복작했던 수산물 시장과 아무도 없던 항구, 해일 때문에 출입 통제되었던 등대까지. 이 많은 것이 파래전의 바삭함을 만들어 냈지.


   인천의 숙소가 훨씬 비싸고 좋은 곳이었는데, 나는 주문진의 숙소가 정말 좋았다. 모텔을 리모델링했다는데 깔끔하고, 조용했다. 창문성애자, 테라스성애자인 나를 쏙 만족시켰다. 방은 작았는데, 사실 클 필요도 없지. 화장실도 깔끔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몇 발자국 안 가 커튼을 치면 주문진 동해 바다가 보였다. 유리문을 열고 자그마한 테라스로 나가면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저녁으로 대게를 먹고 걸어서 숙소로 왔다. 오는 길에 아직 문이 열려있던 건어물 가게에서 황태 껍질을 사고,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샀다. 테라스에 가지고 온 캠핑 의자를 폈다. 깜깜해서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실은 바다가 있는, 그곳을 보면서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셨다. 커튼을 닫지 않고 잠을 잤는데, 아침이 되자 누운 자리에서 선명한 일출이 보였다. 바로 앞에 생선구이 맛집이 있어 아침도 든든히 먹었다. 


    아빠는 언젠가 삼촌들, 고모와 함께 한, 몇 밤을 잔 여행에서 돌아와서 심한 후유증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가슴이 실제로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아팠다고 했다. 너무 아파서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단다. 너도 그러냐고 물어봤단다. 고모가 오빠 며칠만 지나면 괜찮아 질 거예요, 했단다. 그 말을 시간이 지난 후에 아빠에게 전해 듣고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마음이 아팠는데, 주문진을 다녀오고 몇 주 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또 가면 되지, 라고 심드렁하게 이야기했지만, 그 말이 고마웠다.




  1. 2018.04.10 14:2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4.10 21:26 신고 BlogIcon GoldSoul

      저도 광화문의 극장에서 <더 포스트>를 봤더랬어요. 좋았어요. 보고선 친구랑 정동길을 걸어서 둘둘치킨을 먹으러 갔답니다. 창밖에선 엄청난 바람소리가 들려오고, 잔잔한 좋은 영화가 생각나는 밤이에요. :)

네스트 호텔

from 여행을가다 2017.10.16 17:04
























   우리는 밖에서 맥주 한 캔씩 하고 들어와 차례로 씻었다. 큰 침대 하나와 소파 하나라 잠자리를 정해야 했는데, 모두들 소파에서 자고 싶어했다. 사다리 게임을 했고, 결국 친구와 내가 침대에서 자기로 했다. 나는 꼭 욕조를 이용해보고 싶다고 우겼는데, 친구들이 그러라고 했다. 욕조에 창이 있었다. 낮에는 밖이 훤히 보여 근사했는데, 밤이 되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라. 욕조용 소금이 있어 잔뜩 녹여 몸을 담궈 보았다. 씻고 나와 소파 위와 아래에 앉아 티비를 보며 맥주를 한 캔씩 더 마셨다. 외국친구들이 한국에 놀러와 여행하는 프로를 하나 봤고, 남자와 여자들이 같은 공간에 함께 머물며 짝짓기 게임을 하는 듯한 프로도 하나 봤다. 운전하느라 피곤했던 s는 두번째 프로가 시작되자 골아 떨어졌다. 나는 막판에 거의 졸았고, 친구는 끝까지 봤다. 티비도 끄고, 불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친구가 방금 커플이 된 남자를 검색해봤는데, 직업이 변호사였어, 라고 말했다. 친구 말로는 내가 와, 라고 말하더니 바로 잠들었단다. 다들 소파에 자고 싶어했던 건 잘못된 거였다. 침대에 눕자마자 나는 그 매트리스와 사랑에 빠졌다. 와, 이렇게 편안한 침대라니. 다음날 소파에서 잔 s에게 침대에 누워 봐봐, 장난 아니야, 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 그 침대 매트리스를 가져오고 싶었다.


   9월의 첫날, 우리는 셋은 함께 교토에 가기로 했다. 친구와 나는 오랫동안 돈을 모았는데, 그 돈이 꽤 되었다. 공연을 보자고 시작한 거였는데, 모아지기 시작하니 아까워 좀더 많이 모아 여행을 가자고 했다. 이제는 나의 친구이기도 한, 친구의 한살 어린 친구 s가 중간에 합류하면서 계획이 구체화됐다. 이름하야, 육아휴직 복직기념여행. 친구는 그동안 결혼을 했고, 임신을 했고, 출산을 했고, 6개월동안 육아를 했다. s와 나는 계속 그냥 있다. 하하. 친구의 복직을 앞두고 가까운 데로 2박 3일 정도 다녀오기로 했는데, 그곳이 교토였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셋다 조식 매니아여서 숙소는 호텔로 잡고, 관광지는 최소한으로 가고, 맛있는 걸 잔뜩 먹고 오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s 회사의 연내 가장 큰 프로젝트 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취소가 되었다. 그렇지만 친구의 복직을 앞두고 아무 것도 하지 않기가 그래서 가까운 인천의 호텔에 하루 묵고 오기로 했다. 조식도 맛있고, 해가 뜨는 걸 방에서 볼 수 있다는 네스트 호텔로 결정. 여행날은 더웠고, 미세먼지가 그득했다. 우리는 조개구이를 먹고, 호텔방에서 뒹굴가다 산책을 하고, 월미도엘 가고, 차이나타운에서 자장면을 먹었다. 수요미식회에 나온 곳이라고 해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먹었다. 그러다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오래전 일제시대 건물들을 복원해 카페 등으로 쓰고 있는 거리였는데 꽤 근사했다. 많이 추운 날 다시 오고 싶었다. 길을 걷다보니 흑백사진관이 있어서 셋이서 사진도 찍었다. 당시에는 별 거 아닌 일들 같았는데, 돌이켜보니 근사했네. 우리들의 1박 2일이.


   아침에 화장실을 간다고 1층 로비로 내려왔는데, 내려온 김에 사우나에 들렀다. 네스트 호텔 사우나가 꽤 괜찮았는데, 그리 크지 않지만 쾌적했다. 샤워하는 공간에 칸막이도 잘 되어 있고, 노천탕도 있었다. 앞은 거의 막혀 있고, 하늘만 볼 수 있는 구조였는데, 이른 아침시간이라 조용했다. 클래식 음악이 흘렀고, 공기는 조금 쌀쌀했다. 엄마와 여자아이가 탕에 들어와 곰이 들어간 동요를 부르며 놀다가 나갔다. 눈이 내리는 추운 날 이른 새벽 시간에 오면 참 좋겠다 생각했다.




  1. 2017.10.16 19:4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address  modify / delete 2017.10.17 18:37 신고 BlogIcon GoldSoul

      이 호텔 추천이요. 체크인부터 체크아웃까지 호텔에서만 머물면서 뒹굴뒹굴해도 좋을 것 같았어요. 언젠가 혼자 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는데, 너무 비싸서 안될 것 같아요. 흐흐-
      새봄씨도 감기 조심이요! :-)

파코 하코다테

from 여행을가다 2017.09.19 22:22

















   오늘 같이 흐리고, 또 비가 쏟아지는 날씨였다. 올 여름 나흘 동안 머무른 하코다테의 날씨가 그랬다. 비가 왔다 그쳤고, 흐렸다가 다시 비가 왔다. 맑은 하늘은 떠나는 날 잠시 보았다. 하코다테를 처음 간 건 친구와 함께 간 홋카이도 패키지 여행에서였다. 패키지 답게 홋카이도의 핫 스팟을 거의 다 찍었다. 서양식 건물들이 많은 모토마치 거리를 가이드와 패키지 일행들과 함께 걸었고, 세계 3대 야경이라는 하코다테의 야경을 보러 버스를 타고 올라가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그때 연락을 하고 지내던 아이에게 야경 사진을 보내줬는데, 하코다테라는 이름이 참 이쁘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자아이인 줄 알고 있었다. 작년에 삿포로에 갔을 적에는 오도리 공원으로 걸어가던 중에 커다란 건물 위에 걸려 있는 하코다테 그림을 봤다. 내가 친구에게 이게 하코다테다, 라고 하니 친구가 언젠가  같이 가자, 라고 했다. 그렇게 이듬해 우리는 하코다테에 왔다.


   숙소가 내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뒤로 더 엄선해서 숙소를 고르고 있다. 너무 비싸면 안되고, 창문이 꼭 있어야 하며, 열리는 곳이 좋다. 테라스가 있으면 그건 무조건 합격이다. 하코다테에서 그런 곳을 찾았다. 관광지와 조금 떨어져 있어 이동하기에 불편하다는 평이 있었지만, 거의 모든 평이 만족스럽다, 였다. 어차피 하코다테라는 도시 자체가 작아서 괜찮을 것 같았다. 


   첫날 치토세 공항에서 인포메이션 직원이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쓰게 될 총 교통비를 긴 시간동안, 아주 친절하게 계산해줬다. (물론 우리가 물어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날 JR패스를 타러 삿포로 역에 가보니 그녀의 계산이 틀렸다. 이동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패스보다 일반 표를 각각 구입하는 게 훨씬 쌌다. 역무원은 짧은 시간에 우리의 계산이 틀렸다는 걸 계산기를 두드리며 보여줬다. 지정석, 비지정석, 만석, 출발시간, 도착시간 등 점점 말이 통하지 않자 인상을 쓰기 시작하던 역무원에게 표를 각각 다섯 장씩 받아들고 기차를 타러 갔다. 자유석이라 자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지정석 줄에 서있다가 뒤늦게 자유석 줄에 합류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선 제일 먼저 팜플렛에 있는 에키벤 메뉴부터 훑어봤다. 낮시간이고 아무 것도 못 먹은 터라 엄청 배가 고팠다. 그런데 기차가 출발하고 1시간 쯤 지나자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맙소사, 자유석 통로에 좌석에 앉지 못한 사람들이 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카트가 지나갈 자리가 없다구. 우리는 4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야 한다구. 도시락도 없고, 맥주도 없다. 결국 친구가 지갑을 달라고 했다. 오지 않는다면 찾아가보겠어. 친구의 부재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친구의 성공을 확신했다. 친구는 통로에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아주 당당하게 에키벤 두 개와 맥주 네 캔을 들고서. 밥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나니, 통로의 사람들도 어느새 빠져 나갔다. 맞은편 창가에 바다가 나타났다. 돌아올 때는 방향을 기억해뒀다가 앉자, 라고 말하며 건너편 바다를 봤다. 바다가 철도 가까이 있어, 아니 철도가 바다 가까이 놓여 있어, 건너편에서 보아도 선명하게 보였다. 그렇게 하코다테에 왔다.   


   구글 지도를 검색해보니 10분 조금 넘게 걸린다고 해서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보기로 했다. 역 바로 앞에 가든 비어 페스티벌을 한다는 포스터가 있었다. 광장 한 켠에 준비 중인 가판대들이 있었다. 삿포로에서 시간이 늦어 맥주 축제를 놓친 터라 나중에 와보자고 했다. 그렇게 역에서 숙소까지 쭉 직진을 하면서 생각했다. 하코다테는 바람이 세고, 조용하고, 한적하구나. 도착하고 보니 이런 곳에 머물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하도 세서,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에 있을 것이 분명한 바다가 느껴졌다.


    숙소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내려다보이는 풍경도 좋았고, 일본의 숙소라 믿을 수 없이 넓었고, 화장실의 욕조도 문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번화가와 떨어져 있긴 했는데, 그래서 저렴했던 것 같다. 커튼을 치고 테라스로 나가니 양 옆으로 바다가 펼쳐졌다. 오른쪽을 봐도 바다, 왼쪽을 봐도 바다였다. 여기 있었네, 바다가. 여행을 하며 나도 모르게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던 나쁜 마음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물론 그 아이들은 재생력이 뛰어나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여행하는 동안 이 공간에 좀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그러진 못했다. 여행을 왔으니 돌아다녀야 했고, 친구는 바깥에서 가능한 오래 시간을 보내길 바랬다. 각자의 시간을 가져볼까 했지만, 그 이야길 좋지 않은 순간에 꺼내서 정말로 그렇게 해버리면 둘다 마음이 상해버릴 것 같았다. 결국 그러고 난 뒤에 함께 야경을 보러 산에 올라갔던 일도 좋았고 (얼어 죽을 것 같이 추워 암흑 속에서 이어폰으로 90년대 가요를 들으며 춤을 춰댔다), 다음 날에 멀리 가 자전거를 탔던 것도 좋았으며 (공원이 너무나 넓어 힘들었는데, 체력이 약하다며 평소에 운동을 좀 하라는 친구의 말에 벌컥 짜증을 내버렸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세계 음악 춤 축제를 구경했던 것도 (세일러복장을 한 일본 아저씨가 원맨쇼를 하는 것을 보다가 재미없다고 나와버렸는데, 친구 말로는 제일 마지막에 그 전에 할 것처럼 하다가 계속 하지 않던 묘기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다) 좋았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짧지 않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우리는 이 숙소에서 각자의 침대를 정했고, 세 번의 밤을 보냈고, 세 번의 아침을 맞았다. 작년 삿포로에서 사두었다가 다 쓰지 못한 입욕제를 친구가 가져왔고, 그걸 세 번 정도에 나눠서 썼다. 매일 아침, 전날 마신 맥주로 배에 가스가 가득 찬 채로 조식을 잔뜩 먹었으며, 매일 재료를 달리 하며 나왔던 냉스프가 무척 맛있어 서울에서 레시피를 찾아 해봤는데 전혀 그 비슷한 맛도 나지 않았다. 추억의 음식으로 자리잡을 듯 하다. 매일 밤 마실 캔맥주를 냉장고에 잔뜩 넣어뒀으며, 친구는 이틀은 마시지 않을까 싶었던 양을 하룻밤에 해치우기도 했다. 나는 저질 체력을 뽐내며 맥주를 많이 마시지 못하고 일찍 잠이 들어 친구를 실망시켰기도 했고, 어느 날은 조금 토라진 것 같은 친구가 먼저 잠이 들기도 했다. DVD 플레이어가 있다기에 서울에서는 거의 틀 일이 없는 DVD를 한.중.일로 엄선하여 세 개 챙겨왔는데, 일본은 재생 자체가 되지 않았고, 중국은 내 저질체력 때문에 친구 혼자 보았고, 한국만 둘이 끝까지 보았다. 간만에 만난 와니와 준하는 여전하더라. 들어가 살고 싶은 와니의 이층 집도 여전하고. 하코다테에 온 첫 날 친구는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며 꽃을 사서 테이블 위에 놓았다. 마지막 밤에는 꽃과 스탠드를 테라스에 들고 나가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셨는데, 너무 추워 목욕 가운까지 걸치고 있었다. 결국 얼마 못 가 안으로 들어와 버렸지만. 팔월 초순에 그 정도의 추위라니. 하코다테 바다여. 그 밤을 떠올리면 코 끝이 기분 좋게 얼얼해진다. 주방이 있어 계란말이도 해 먹고, 햄도 구워 먹고, 치즈도 녹여 먹었다. 인스턴트 나폴리탄도 해 먹었다. 계란 후라이도 얹어서. 아무 것도 든 게 없는 인스턴트 카레 우동은 친구 혼자 먹었는데, 내 맛도 니 맛도 아닌 맛이라 했다. 깔끔한 친구는 세제가 없는데도 매일 깨끗하게 설거지를 했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 이 곳을 떠올리면 다른 것은 다 잊어도 이것만 생각나면 될 것 같다. 테라스에 나가 오른쪽을 봐도 바다, 왼쪽을 봐도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