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가다'에 해당되는 글 169건

  1. 여수남해통영 2021.05.28
  2. 호놀룰루 2021.05.21
  3. D-39 2021.05.04
  4. 하와이에서 2021.04.24
  5. 선셋요트투어 2020.08.26
  6. 라하이나 2 2020.08.24
  7. 마우이 2020.08.23
  8. 하와이 4 2020.08.17
  9. 작년, 바다 2 2020.03.03
  10. 선셋 5 2019.10.01

여수남해통영

from 여행을가다 2021. 5. 28. 10:56

 

 

  작년 팔월에는 남해로 여름휴가를 조금 느즈막이 다녀왔다. 첫번째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 기차를 타고 여수에 가 렌트를 한 뒤 남해를 거쳐 통영으로 그리고 다시 여수로 돌아와 렌트카를 반납하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는 코스였다. 이때 수도권에서 코로나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어 엄청 조심하고 조심했는데, 지금까지도 이러고 있을 줄, 그때보다 더 심해질 줄 상상도 못했네. 여행내내 비가 왔다. 심지어 여수에 내려간 첫날에는 태풍이 왔더랬다. 어쩔 수 없이 많이 다니지 못한, 이른바 숙소여행이었다. 일년치 자기계발비를 거의 이 여행 숙소에 다 썼다. 여수에서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자그마한 개별 수영장이 있는 호텔에서 묵었고, 남해에서는 풀빌라에 묵었다. 방문을 열면 개별 바베큐장과 개별 수영장이 있었다. 바로 앞에 바다가 있어 풍광이 아주 좋았다. 통영에서는 예전에 묵었던 에어비앤비를 다시 방문했다. 원래는 동생들도 내려올 거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왔다. 대신 엄마아빠와 넷이서 오붓하게 보냈다. 예전에는 없었는데 숙소 바로 앞에 바베큐를 해 먹을 수 있는 옥상이 생겼더라. 시장에서 조개를 사와 구워 먹었더랬다.

 

  여수에서 창밖으로 몰아치는 태풍을 마주하며 한 잔 하고 있는데 남편이 그런 말을 했더랬다. 우리가 아이 없이 둘이서 잘 살아나가려면 앞으로 많이 노력해야 할 거라고. 같은 취미도 만들고 등등. 나는 왠지 그 말이 좀 무겁게 느껴졌다. 지금은 정말 좋지만, 앞으로 긴 시간 우리가 잘해 나갈 수 있을까, 변함없이? 남해에서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들린 커피집에서 가까운 곳에 기념품가게가 있다는 걸 알게됐다. 아, 기념품가게는 그냥 넘길 수 없지. 찾아가서 파스텔 그림의 남해엽서와 남해지도가 그려진 민트색 마그넷을 사왔다. 통영에서는 숙소 옥상에서 한창 바베큐를 하다 내가 이제 그만 들어가자 해서 들어왔는데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엄마가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고 했다. 아빠는 그전에 뭔가 사온다고 나가서 그 비를 잔뜩 맞고 온몸이 푹 젖어 돌아오고.  

 

  요즘은 단체사진의 중요성을 느낀다. 어디를 가든 사람이 여럿 모이면 단체사진을 꼭 찍어두어야지.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삼각대도 하나 사두었다. 시간이 너무 확확 흐르니까 그때그때 우리들의 모습을 남겨두지 못한 게 아쉽다. 이때도 엄마아빠랑 남편이랑 넷 사진을 남겨두지 못했네. 숙소 옥상에서 풍성했던 하늘구름과 함께 찍었으면 근사했을텐데. 다음번 여행에는 꼭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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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놀룰루

from 여행을가다 2021. 5. 21. 17:16

 

 

  호놀룰루에서는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콘도를 빌렸다. 숙소를 예약할 때 찾아보니 와이키키 쪽에는 호텔들이 오래되어서 시설에 큰 기대를 하지 말라고 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콘도로 예약을 했다. 내부는 리모델링을 해서 그리 나쁘지 않았다. 주방이 있었고 침대가 두 개였다. 테라스도 있었다. 테라스성애자는 대만족. 호놀룰루에서도 실렁실렁 다녔다. 떠나기 전날 정신없이 쇼핑하느라 시내 매장 안에 있은 날을 제외하고는 하와이에서 매일 일몰을 봤다. 콘도 주인 분이 추천했던 남쪽에서 시작해 해안도로를 빙 둘러 북쪽으로 가려던 계획은 길을 잘못 들어 실패했다. 그 반짝반짝 빛나는 해안 드라이브 코스를 놔두고 도로 밖에 없는 섬 중간을 가로질러 갔다. 유명한 푸드트럭 갈릭새우요리를 먹으려고 땡볕에 한참을 서 있다가 어디 가서 이렇게 줄 서서까지 음식은 먹지 말자 다짐했고, 오바마가 좋아했다던 식당에 가서 로코모코를 시켰는데 너무 양이 많고 너무 느끼해서 둘이 겨우 나눠 먹었다. 앱에서 완전 맛집으로 추천해 준 와이키키 타코집에 들어갔는데 토핑 종류가 너무 많아 둘이 어리버리하게 서 있다 제일 기본 맛으로 포장해서 숙소로 돌아오기도 했다. 정인이가 강추했던 브런치 집은 계속 늦잠을 자고 늦게 움직이는 바람에 가보질 못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지만 몇 번 다투기도 했었다. 

 

  그래도 매일 맥주를 마셨고, 함께 있었고, 소소한 즐거움을 누렸다. 가이드북에서 소개한 작은 소품샵의 소품에 꽂혀 별 게 없는 자그만 마을에 가기도 했고, 숙소 근처에 푸드트럭 식당을 발견하고 커다란 맥주를 사서 이것저것 시켜 먹기도 했다. 기둥이 어마어마했던 오래된 나무들이 길가에 즐비했고, 높은 층 숙소에서 바라보는 낮과 밤의 풍경도 근사했다. 그때는 방귀를 트지 않았던 때라 새벽에 방귀가 마려워 테라스로 나왔는데 저 멀리서 해돋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시간 건물들 빛깔도 구름들도 그 사이사이 새어나오는 아침해도 너무 근사해 핸드폰을 가져와 사진을 찍다 남편을 깨워 데리고 나왔다. 너-무 멋지지? 남편은 비몽사몽에 으...응 답하고 들어가고. 친구들과 가족들 선물 사는 재미도 쏠쏠했다. 파타고니아 매장에서는 친구 남편이 예전에 사서 애용한(이 매장에서만 파는 거라고 했다), 이제는 많이 낡아져 버린 모자를 선물하려고 찾아서 계산하려는데 직원이 '라스트 원'이라고 말해줘서 신났었다. 파타고니아 매장 옆에 있던 보석집에서 2+1으로 산 진주 귀걸이는 동생의 애용품이었다. (지금은 잃어버렸다는)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에는 늦게까지 하는 바를 찾아갔다. 야외 자리에 앉아 맥주를 시켰다. 라이브 공연을 하는 가게라 안쪽에서 생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음악도, 머리 위 야자수도, 눈앞의 와이키키 해변도, 시원한 맥주도, 선선한 날씨도 모두 좋았다. 둘이서 너무 좋다는 말을 계속 해댔다. 그리고 쪼리를 벗고 밤파도소리를 들으며 와이키키 모래사장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가 묵은 콘도에는 보증금이 있었는데 퇴실할 때 아무 이상이 없으면 그 보증금을 돌려줬다. 그동안 운전하느라 수고한 남편에게 남은 보증금으로 그렇게 좋아하는 레고를 마음껏 사라고 했다. 지금 군포집 책장에는 그때 산 레고 집과 공룡과 차 비스무리 한 게 전시되어 있다. 아, 마무이 브랜드 맥주가 제일 맛있었는데 그건 하와이에 다시 갔을 때만 맛볼 수 있겠지? 맥주 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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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9

from 여행을가다 2021. 5. 4. 14:34

 

  낯선 사람들과 함께 일출을 본 날이 있었다. 마우이 할레이칼라 국립공원에서였다. 슬렁슬렁 하루에 한 가지만 계획하는 여행이었다. 이 날은 일출이었다. 가이드북에 아주 캄캄한 때에 올라가야 하고 초행길로는 위험하다고 되어 있었는데 남편이 천천히 올라가면 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미리 예약하지 않은 게으른 자들. 할레이칼라 국립공원은 일출 시간에 하루에 출입할 수 있는 차 수가 제한되어 있었다. 결국 숙소 한 켠에 마련된 투어 예약 부스에 가서 단체버스 예약을 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새벽 3시 즈음 숙소 앞에 버스가 온다고 했다. 한여름이었지만 산 정상은 무척 춥다고 해 패딩을 챙겼다. 버스는 약속된 시간에 와 있었고 미국인 가족이 한 팀 더 탔다. 휴게소 같은 곳에 가니 화장실에 다녀올 사람은 다녀오라고 했고 커피를 마실 사람은 사 마시라고 했다. 이제 차를 바꿔타고 산으로 올라간다고. 가이드는 하와이를 떠난 적 없다는 할머니였는데 열정이 어마어마해서 쉴새없이 하와이와 그 전통에 대한 사랑을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했다. 영어가 짧은 나는 거의 못 알아들었지만 그 열정만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내리기 전 정차한 버스 안에서 가이드 할머니는 정상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다시 모일 시간을 알려줬다. 우리는 패딩을 단단히 챙겨 입고 버스에서 내렸다. 긴 바지에 패딩까지 입었는데도 몸이 오돌오돌 떨렸다. 벌써 일출 보기 좋은 자리는 사람들이 선점하고 있었다. 우리는 적당한 자리에 서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고요히 순간을 기다렸다. 소리를 낮춘 대화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만 들렸다.    

 

 

 

 

 

  죽기 전 일생을 되돌아봤을 때 손꼽을 정도의 최고의 광경, 정도는 아니였지만 가슴 떨리게 만드는 감흥이 있었다. 처음 보는 구름이었고 처음 보는 빛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매일매일 함께 살아갈 사람과 이렇게 멀리 날아와 이렇게 높이 올라와 이렇게 오돌오돌 떨면서 보는 일출이라니. 옆사람 손을 꼬옥 잡게 되더라. 잘 살아보자는 다짐 같은 것도 하게 되더라. 새벽부터 일어나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투어에 아침식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이드 할머니의 열띤 하와이 사랑을 끊임없이 들으며 도착한 골프장 건물의 식당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미국식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새벽에 처음 탔던 버스로 바꿔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 작은 버스는 친절한 할아버지가 운전해주셨는데 숙소 근처 좋은 식당을 물어보니 한 군데를 추천해주셨다. 그 곳은 원더-풀이라면서. 이 날 저녁 그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마우이에서 마지막 밤이었다. 과연 할아버지의 추천대로 음식도 맛있었고 술도 맛났다. 그동안 캔으로만 마셨던 마우이 로컬맥주가 생맥주로 있었다. 무엇보다 식당 앞 풍경이 무척 좋았다. 처음 메뉴판을 받아들고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마셔버렸다. 그래서 더 행복해져 버렸고. 저녁을 먹으면서 일몰을 볼 수 있는 식당이었는데 그 풍광이 너무 멋져서 밥 먹다말고 자꾸 식당 앞 바닷가로 뛰쳐 나갔다. 알콜이 두 사람의 몸에 그득하게 들어가니 우리는 분명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운명인 것 같았다. 해가 지고 계산을 하고 손을 잡고 숙소까지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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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서

from 여행을가다 2021. 4. 24. 22:20

 

이 바람이야말로 하와이구나, 하고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몸이 둥실 떠 있는 듯한, 딱 맞는 온도의 물에 언제까지나 포근히 잠겨 있는 느낌.
아무리 상상해 봐야 실제로 가 보지 않고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눈을 감고 있어도 언제나 바람이 나를 감싸고 있는 그 느낌.
그렇게 멋진 풍광을 안고 있는 지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요시모토 바나나, <꿈꾸는 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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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요트투어

from 여행을가다 2020. 8. 26. 19:12

 
   가이드북을 보니 오래된 마을이 있었다. 마을 곳곳에 컬러풀한 색감을 한 장소들이 있어 걷는 재미도 있고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온단다. 오늘은 이곳으로 결정했다. 처음으로 조식을 챙겨먹었다. 수영장을 내려다보기만 했는데 곁에 두고 아침을 먹었다. 좋아하는 계란요리, 우유, 요거트, 빵을 든든히 챙겨먹었다. 씻고 단장을 하고 차를 탔다. 네비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출발. 오늘은 싸우지 말자 다짐했다. 보조석에 앉아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대박. 혹시나 싶어 남편에게 말은 하지 않고 어제 놓친 요트투어 업체에 글을 남겼는데 오늘 오면 투어를 할 수 있다고 원하면 회신을 달라는 답변이 왔다. 그럼요, 그게 얼마짜리 투어인데요. 우리는 당장 일정을 바꿨다. 빠르고도 친절한 답변이 왔다. 시간을 보니 바로 출발지로 가면 딱 되었다. 이것으로 오늘은 절대 네버 싸울 일이 없을 것이다. 달려가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제의 일을 다시 한번 사과하고 오늘의 일을 끝없이 칭찬했으니.

    어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헤매지 않고 출발지에 도착했다. 시간이 조금 남아 요트용 선글라스도 구입했다. 기다리고 있으니 스텝이 우리쪽으로 왔고 이름을 확인해줬다. 앱에 가입한 그대로 한글로 명단이 올라가서 스텝이 단번에 우리를 알아봤다. 동양인은 우리 둘 뿐이라. 어떻게 읽는 거냐며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넸다. 신발과 가방은 따로 보관한다며 가져갔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모래사장에 맨발로 한참을 서 있었는데도 마냥 즐거웠다. 어제 놓쳤던 요트를 탄다구. 발이 너무 뜨거워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바닷물에 발을 담궜다. 오늘은 요트 위에서 해지는 걸 본다구.

    승객은 스무명 남짓. 요트에 타자 주의사항과 배 위에서의 일정을 설명한 뒤 출발했다. 바다를 잘 보기 위해 갑판 위로 나왔다. 출렁이기 시작하는 배 위에서 중심을 잡느라 섰다 앉았다 줄을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잠시 뒤 음료가 준비되었다고 해 생맥주와 화이트와인을 받아 다시 올라왔다. 갑판 위에서 건배를 했다. 한 모금 마신 뒤 눈 앞의 바다를 바라봤다. 배의 속도만큼 세진 바닷바람에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고, 몇몇 사람들이 흥겨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이걸 해보지 못하고 마우이를 떠날 뻔 했다구-

    이 투어는 선셋요트투어. 그러니까 하이라이트인 해가 지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술과 음료를 제공했다. 처음엔 함께 할 수 있는 간식을 줬고, 나중에는 배를 든든하게 채울 저녁을 줬다. 그러는 동안 출렁거리는 배의 리듬에 몸도 마음도 적응 되어 갔다. 남편은 운전해야 해서 맥주 한 잔만 마시고, 나는 이 흥겨운 배의 리듬에 부흥하기 위해 계속 잔을 리필해가며 마셨다. 그러는 사이 저 멀리 바다 너머로 해가 늬엿늬엿 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갑판 위로 올라왔고 카메라를 들었다. 음악은 부드럽고 로맨틱한 음악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전까지는 각자의 일행들끼리 시간을 보냈는데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옆에 서 있는 낯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미소와 감탄사를 공유하고 어디에서 왔냐고 묻기 시작했다. 갑판 위 모든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우리도 웃었다. 아주 행복하게. 이건 직접 해 본 사람들만이 얼마나 근사한지 알 수 있을 거라고, 특히 우리같이 바보같이 놓치고 깜짝선물 받은 것마냥 마지막 승차한 사람에게 더더욱 그렇다고, 무척 좋았다고 덕분이라고 이야기했다.

    배에서 내릴 때까지 맨발이었다. 해가 져 조금 차가워진 바닷물에 발을 내딛으니 두 시간 남짓 배에 익숙했던 몸이 기우뚱했다. 그 느낌도 좋더라. 바로 해변을 떠나버리긴 아쉬워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모래사장에 앉아 좀더 머물렀다. 해변에 서서히 어둠이 물들고 해변가에 자리한 음식점 여기저기 음악이 울려퍼졌다. 테라스에 앉은 사람들의 행복감이 마구마구 느껴졌다. 이제 돌아가자. 남편이 말했고 어둠이 완전히 내려 깜깜해진 길을, 그러니까 어제는 싸워서 잔뜩 뿔이 난 상태로 갔던 그 길을, 오늘은 기분 좋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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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하이나

from 여행을가다 2020. 8. 24. 19:12

 

 

 

    사건은 라하이나 거리에서 시작되었다. 라하이나 거리는 마우이의 메인 스트리트라고 한다. 왠만한 상점들은 이 곳에 다 있어 선물을 사기에도 좋고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고. 별다른 계획없이 하루에 하나씩 기억에 남을 일을 해보기로 한 우리는 전날 바다 위에서 저녁도 먹고 석양도 구경할 수 있는 선셋요트투어를 예약해뒀다. 모이는 장소가 라하이나 거리에서 차로 이십분 정도여서 라하이나 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시간에 맞춰 가기로 했다. 아침은 느즈막히 일어나 전날 마트에서 사온 라면과 남은 고기로 무려 아침 스테이크를 해먹었다. 사이좋게 먹고 길을 나섰다. 오늘도 마우이의 선명함은 이상무. 라하이나에서 주차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점심을 먹으려고 한 치즈버거인파라다이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할 수 밖에 없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부러 해변쪽으로 걸었다. 이때만해도 분위기가 좋았지. 하와이의 파도, 구름, 햇빛. 각자 쪼리와 슬리퍼를 벗고 모래사장의 까슬까슬한 모래와 제법 센 파도를 발끝으로 느끼며 걸었다. 수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서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치즈버거인파라다이스는 유명한 햄버거집이었는데 창문을 열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바다 위에 세워진 오래된 가게였다. 분명 생맥주를 시켰는데 캔맥주가 나왔다. 캔맥주가 이미 컵에 가득 따라진 채 나와서 그냥 마시기로 했다. 컵에 캔을 끼워둔 모양이 귀여웠다. 치즈버거와 어니언링 하나를 시켰는데 양이 많았다. 맛은 나쁘지 않은 정도. 창가에 앉으니 파도소리가 크게 들려 파도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서둘러 요트출발지로 이동했어야 했는데, 현지물건들을 파는 커다란 편집샵에 있어 그곳에 들어갔다가 내가 기분이 상해버렸다. 이유는 어제부터 계속 영어로 말하는 걸 꺼리고 있던 나를 안타까워하던 남편이 계산을 하다 또 못 알아들은 나를 옆에서 도와주지 않고 가르쳤기 때문인데,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다. 매장에서 나오자마자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꼭 그렇게 했어야 했냐로 시작해 큰소리로 쏘아붙였고, 예전에도 그런 격앙된 나에게 질린 (연애 때는 참 많이도 싸웠었다) 남편이 나를 두고 그냥 가버렸다(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 행동에 더 열받은 나는 이 놈을 따라가지 말아버려? 부글부글 상태가 되었지만 방법은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숙소로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남편은 멀리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면서 아주 천천히 걸었다. 결국 시간이 꽤 지난 뒤에 주차장에서 만났고 아슬아슬하게 요트 출발지에 출발시간 가까이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출발지를 찾는데 나는 뛰고 남편은 멀찌감치 따라오고. 급해서 울렁증도 잊고 주위사람에게 찾는 장소가 맞는지 물어봤다. 맞다고 해서 아슬아슬하지만 다행이다 안심했다. 사람들이 요트에 타기 전 명단을 작성하길래 틈에 끼여 이름을 적었더랬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왜 이리 출발을 안 하지. 진행요원에게 물어보니 그 배는 아까 떠났다는 거다. 아. 내가 본 예약 사이트의 시간은 배 출발시간이었다. 그러므로 그보다 훨씬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던 거였다. 아직까지 냉전상태였지만 남편이 물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러니 그 진행요원이 다행스럽게도 사무실에 전화를 해보면 다른 날 배를 탈 수 있게 해줄 거라고 답변해줬다. 이게 2차전의 시작이었다.

    2차전은 숙소에 도착해 그 전화를 하지 않을 거냐는 남편의 말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전에 안타까운 이야기부터 해야지. 그러니까 돌아오는 길에 넓디 넓은 태평양을 높은 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심지어 운이 좋으면 분홍돌고래가 보인다는, 해가 질 때는 석양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서 있기도 힘들다는 장소가 있었는데 뭔가 표지판이 있고 본능적으로 여기가 핫스팟이라는 걸 직감한 남편은 차를 세웠고 내려서 구경을 하자고 했다. 나는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았으므로 거절을 했고 남편은 혼자 보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무척 장관이었다고. (으, 그놈의 자존심) 나중에 그 길을 한번 더 가게 되었는데 그때 내려서 보았지만 밤이라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그러니까 2차전은 여전히 삐져서 숙소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나에게, 간단한 영어도 못해 자존심이 상한 나에게, 남편이 업체에 전화를 걸어 배를 놓친 우리의 사정을 말하고 다시 탈 수 있는지 물어보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다시 격앙되어서 내 돈으로 낼 거고, 나는 전화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 거금을 그냥 날릴 셈이냐고 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입을 다물었다. 남편이 방을 나가서 나는 그 틈을 타고 냉장고에 넣어둔 맥주 한 캔과 핸드폰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숙소 야외 벤치에 앉아 맥주캔을 땄고 와이파이 연결을 확인하고 동생에게 톡을 했다. 나 영어 너무 못해. 그래서 싸웠어. 동생은 신혼여행가면 다 싸운다더라. 그래서 지금 어디야? 라고 물어봐줬다.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그 바람을 맞으면서 동생에게 하소연을 하니 속이 조금 후련해졌다. 동생이 이제 기분 풀고 형부에게 가봐, 라고 했다.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어디갔어? 비도 내리기 시작해 다 마신 캔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호텔 카운터를 몇번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업체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전화를 받지 않아 연결은 되지 않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화해를 했다. 나는 내 영어울렁증에 대해 말했고, 남편의 나의 격앙된 돌변화냄에 대해 말했다. 나는 그래도 그렇게 가버리는 건 아니라고 말했고, 남편은 그건 잘못했다고 했다. 나도 사과했다. 남편은 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영어인데 너무 겁을 먹는 것 같다고 쉽게 생각하고 간단하게 말해보라고 조언해줬다. 그 뒤로 내 영어울렁증으로 싸우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떠나버린 배 따위 말끔히 잊어버리고 내려가서 바베큐를 해먹기로 했다. 비는 그쳤고 바람은 선선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잘 보였다. 수도 많았다. 달도 예뻤다. 그래 이거면 됐지 하면서 맥주병을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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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이

from 여행을가다 2020. 8. 23. 17:47

 

 

 

    마우이는 선명했다. 공항에서 내려 렌트카를 찾으러 가는 길에 전차 같은 이동수단을 이용했는데 그걸 기다리고 서 있는데 드는 느낌이 와, 선명하다였다.  초록이 선명했고 야자수들 키가 컸다. 하늘이 맑았다. 구름이 많았고 바람이 불었다. 햇볕이 강해도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그리 덥지 않았다. 하와이에 가면 섬 하나는 가보는 것이 좋다고 해서 자연경관이 좋다는 마우이를 택했다. 숙소는 너무 비싸지 않고 조리를 직접 할 수 있는 곳으로 택했다. 그리고 테라스가 있는 곳. 나의 숙소 선택 필수조건. 이 숙소는 어떤 블로거의 후기를 보고 선택했는데 머무는 동안 한국인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내가 이리저리 여행을 다녀보았다고 하니 영어를 꽤 하는 줄 알았던 남편이 내게 이런저런 것들을 시켰는데 그동안 그나마 있던 영어실력까지 퇴보해 아주 쉬운 것도 들리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나는 있는대로 자존심이 상했고 결국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못하고 마우이에서 남편과 대판 싸웠더랬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아무튼 그 발단은 이 숙소 체크인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야기. 내가 예약을 한 터라 남편은 내가 대답을 하리라 생각하고 가만 있었는데 직원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질문을 했고 내가 대답을 못하고 있자 남편이 응?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남편이 이것저것 대답을 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이때 영어울렁증에 대해 좀더 얘기하고 풀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덕분에 나중에 굉장한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이때도 영어 공부할 것을 깊이깊이 다짐하고 돌아왔는데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러고 있네.

 

   방은 근사했다. 침대가 있었고 소파가 있었고 부엌이 있었다. 테라스도 있었다. 테라스로 가면 선명선명한 마우이가 보였다. 저 멀리 바다와 산도 조그맣게 보였다. 역시 숙소 고르는 능력이 있다고 남편이 칭찬을 해줬다. 체크인 할 때 물어 본 제일 가까운 마트로 바로 나갔다. 냉장고를 하와이 맥주로 가득 채워야지. 마트는 생각보다 컸고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에 해지는 줄도 몰랐다. 남편이 저녁으로 스테이크를 해준다고 고기를 샀다. 나는 한국에서는 비싼, 혹은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하와이 맥주를 가득 샀다. 머무는 동안 다 마실 수 있겠냐고 했는데 나중에 맥주가 떨어져 마트를 한 번 더 왔더랬다. 마트를 나오고 나서야 해가 늬엿늬엿 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 제일 가까운 해변에 가도 해가 떨어진 뒤일 것 같아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석양을 보는 것도 근사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아직 해가 걸려 있어 야외 벤치에서 맥주캔을 뜯었다. 바베큐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 좋다, 정말 좋다, 라는 말을 둘이 번갈아 계속 했다. 근사한 풍경에 시원한 현지 맥주가 우리의 시작을 축복해주는 것 같은 느낌 같은 것은 들지 않았고(하하) 그냥 좋았다. 이제 겨우 여행 첫 날이었으니까. 회사도 안 가도 되고 이렇게 둘이 쉬엄쉬엄 다니며 맥주와 맛난 음식들을 마시고 먹으며 보낼 날들이 많이 남아있으니까.

 

    남편이 만들어준 스테이크는 맛있었다. 사실 하와이에서 먹은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다. 심플한 숙소 접시였는데 플레이팅도 근사하게 해줬다. 저녁을 먹고 테라스로 장소를 옮겨 맥주를 좀더 마셨는데 남편이 마시는 도중에 졸아 먼저 자러 들어갔다. 나는 좀더 첫날밤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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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from 여행을가다 2020. 8. 17. 14:00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집앞 마트갈 때 신는 다이소 쪼리로 갈아신었다. 비행시간이 얼마였더라. 벌써 일년 전의 일. 결혼식은 일요일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친척, 가족과 인사를 하고 군포집으로 돌아왔다. 단둘이 군포집에 있는 건 두번째였을 거다. 들어오는 길에 얼음이 가득 든 아메리카노를 사서 마셨다. 집에 들어와서는 대절한 버스에 옮겨두고 남은 캔맥주를 두 개 꺼내 각자의 컵에 가득 따랐다. 그리고 건배했다. 아,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 아침일찍 화장과 머리를 하러 약속시간에 예식장에 갔다. 그 뒤 순식간에 예식이 시작되었고, 아빠는 행진하기 직전까지 주례사를 완성하지 못해 나를 멘붕에 빠뜨렸는데 좋은 하객들 덕분에 웃으며 주례사를 끝낼 수 있었다. 소윤이는 눈물의 축사로 우리를 감동시켰고, 남편은 임창정 노래를 축가로 불렀다. 많은 시간 지나 모두 변한대도 지금 이 설레임들을 아름답게 간직 하는 거야. 둘이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며 고마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푹 자고 다음날 짐을 싸 하와이로 출발했다. 저녁 비행기였다. 저녁 비행기는 처음이었다. 영종도에 사는 보경이가 튜브를 빌려준다며 공항까지 나와 배웅을 해주었는데, 늘 혼자 떠나는 언니를 배웅했는데 이번엔 둘이 있는 걸 보니 왠지 어색하기도 하고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나는 기내식이 맛나다. 사육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는데 나는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좋다. 영화를 보다 책을 보다 시간이 되면 밥을 주고 커피도 주고 맥주도 주고 또 잠을 자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내가 떠나온 곳과 전혀 다른 풍경의 장소에 내려지게 되고 그렇게 여행이 시작되는 것. 또 반대로 그렇게 돌아오는 것. 여행의 시작과 마지막을 잘 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장소 같다. 그 밀폐된 공간이. 우리들의 첫 해외여행이었고, 함께 먹는 첫 기내식이었고, 함께 마시는 첫 비행기 맥주였다. 원래는 태국 끄라비를 알아봤었다. 비행시간이 그리 길지 않고 잘 쉴 수 있는 곳. 그러다 한번 뿐인 신혼여행이니 좀더 멀리 가라는 주변사람들의 조언에 조금 더 돈을 쓰고 조금 더 멀리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한 하와이였다. 나는 자다가 책 읽다가 영화 보다가 했는데, 남편은 한숨도 자지 않고 내리 영화를 봤다. 일년쯤 함께 살아보니 영화 매니아, 드라마 매니아다. 하루종일 끊임없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하와이에 도착했다. 호놀룰루에서 마우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해서 그곳의 뜨거운 태양을 느낄 새도 없이 주내선 갈아타는 곳으로 이동했다. 블로그에서 보니 시간이 꽤 걸린다는 후기가 있어 긴장했었는데 다행히 금새 찾았고 금새 수속을 했다. 출발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 남편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셔보았고 나는 공항맥주를 마셔보았다. 맥주 한 모금 하는 순간 아, 잘 도착했구나. 하와이 로컬 생맥주였다. 마우이로 가는 비행기는 한산했다. 비행시간이 금방이라 주스가 나왔다. 창 아래로 하와이 바다가 구름이 바람이 펼쳐졌다. 아, 우리가 진짜 하와이에 왔구나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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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바다

from 여행을가다 2020. 3. 3. 18:58

 

  지난해 시월에는 태안을, 십일월에는 주문진을 다녀왔다. 여럿이서 갔다. 나의 교우관계는 늘 나의 지인들, 조금 더 넓히면 친구의 지인들까지였는데 이제 남편의 친구들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남편과 내가 다른 사람이듯 내 친구들과 그의 친구들 역시 무척 다른 사람들인지라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만남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조금씩 친숙해지고 있다. 어떤 조심의 끈은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있고. 관계란 좋지만 어려운 것이기도 하니까. 실컷 보지는 못했지만 두 군데 다 바다가 있었다. 서해와 동해. 올 상반기에 어딘가 놀러 갈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의 장거리 항공권 예약취소가 이어지고 있다. 오랜 고민 끝에 날짜를 정하고 돈을 지불한 건데. 집순이라 집에 있는 게 좋지만, 강제적인 거라 답답하기도 하다. 사진들을 돌이켜보니 아, 바다보다는 대게네. 대게. 또 대게 먹으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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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from 여행을가다 2019. 10. 1. 22:32



  하와이에 있는 동안 이틀을 제외하고 매일 일몰을 봤다. 이틀은 쇼핑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와서, 차 안에서, 요트 위에서, 투어 아저씨가 추천해 준 식당에서, 말로만 듣던 와이키키 해변에서. 그렇게 매일매일 보는데도 질리지가 않았다. 아름답고 아름다웠다. 일출을 보러 에베레스트 다음으로 높다는 산에도 올라갔지만, 해가 뜨는 건 한 순간이었다. 뜬다뜬다 하다 짠-하고 뜨고 나면 끝이었다. 순식간에 환해지고,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한순간에 보였다. 해가 지는 건 달랐다. 나 진다진다 하다 뚝-하고 사라져버리는 게 아니었다. 나 간다간다, 가고 있다고, 그런데 진짜 가도 되겠어? 아쉽지 않겠어? 좀 더 보라고, 얼마나 보고싶을 텐데, 이건 오늘만 보여줄 수 있는 빛깔이라고. 봤어? 확실히 본거지? 응응? 아주 미련이 많은 아이더라. 방금 본 풍경도 그 아이의 손길이 닿으면 그 전과는 다른 낭만적인 모습이 되었다. 찰나의 일출보다 여운이 긴 일몰이 더 마음에 들었다. 내 스타일이었다. 덕분에 아름답게 지는 해를 오래 볼 수 있었다. 


   일요일에는 아침에 학원에 가서 저녁이 되어서야 들어오는 옆사람이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말했다. 서쪽하늘을 봐. 지금 당장. 엄청 예뻐. 탁 트인 채로 운전을 하는데 순간 하와이 같이 엄청나게 예쁜 하늘이 보였단다. 집에 있던 나는 건물들에 막혀 약간의 붉은 하늘만 보였지만, 예쁜 하늘을 발견하고 같이 보자고 전화해준 마음이 고마웠다.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여운이 그득한 일몰의 멋진 광경은 바다 건너 하와이 뿐만 아니라 지금 이 곳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단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옆사람이 집에 도착한 뒤 밥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기까지 옅어졌지만 주황색 빛이 아직 있었다. 그렇지만 그곳의 하늘은 정말 예뻤지. 머리카락이 기분좋게 흔들렸던 선선한 바람도, 쏴아쏴아 높지 않던 바다소리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나란히 앉아 그 광경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던 일도. 오래오래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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