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놀란 것은 사람들이 책을 매우 열심히 읽는다는 점이다. 아마 겨울이 걸어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독서에 매우 큰 의미가 가치를 두는 듯하다. 집의 서가가 얼마나 충실한가로 그 사람의 가치가 판가름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인구에 비해 대형 서점이 많고, 아이슬란드 문단도 활발해, 1955년에는 할도르 락스네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대표 장편소설 <독립한 민중>을 라디오에서 몇 주에 걸쳐 낭독했고, 그 시간에는 전국민이 말 그대로 라디오 앞에 못박혀 있었다고 한다. 버스가 운행을 멈추고, 어선도 조업을 중지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작가수도 많아서 에리캬비크에만 340명이 '작가'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나가세 마사토시 주연의 영화 <콜드 피버>에서 언급했듯이, 아이슬란드는 인구당 작가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p.27~28


 

   요리뿐만 아니라 주류 가격도 상당히 비싸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옛날부터 음주에 얽힌 말썽이 많아서 (아마도 겨울이 길고 혹독한 탓이리라) 오랫동안 금주제도가 이어지다 제법 근년에 들어서야 폐지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유독 맥주에 대해서는 그후로도 계속 금주법이 적용되어, 놀랍게도 아이슬란드에서는 1980년대 말까지 맥주를 전혀 마실 수 없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자기 집 헛간에서 손수 맥주를 만들어 마셨고, 밀매업자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외국 맥주를 대량으로 국내에 들여왔다.

- p. 33


 

   숲은 전혀라고 말해도 될 만큼 없다. 아이슬란드가 궁핍했던 시기에 사람들이 땔감으로 쓰려고 산림을 모조리 벌체해버렸기 때문이다. 본래 이곳에 자라 있던 수목의 99퍼센트가 사람들 손에 베여나갔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고작이라 나무를 심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 남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며 여기저기서 식수를 시작했는데, 남쪽과 달리 수목의 성장이 더뎌 울창한 숲을 이루려면 아직도 한참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기껏해야 사람 키만한 나무밖에 없다. 그러나 비록 큰 나무가 없다해도, 푸른 이끼에 뒤덮인 용암대지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곳곳에 자그만한 한랭지 꽃이 가련하게 피어 있는 풍경은 매우 아름답다. 그런 풍경 속에 홀로 서 있으면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 소리, 혹은 아득한 시냇물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깊은 내면의 고요가 존재할 뿐이다. 그럴 때 우리는 마치 머나먼 고대로 이끌려온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섬에는 무인의 침묵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이 섬에 유령이 가득하고 말한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무척 과묵한 유령들이리라.

- p. 49



   오로라는 이윽고 말이 꼬여서 의미를 잃어가듯이 서서히 옅어지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빨려들듯 사라졌다. 나는 그것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는 따뜻한 호텔방으로 돌아가서, 꿈도 없는 깊은 잠에 들었다.

- p. 60



   (...) 그러나 이제는 긴 할주로가 생겨, 많은 관광객이 시간을 절약하며 발이 묶일 걱정 없이 유럽 각지에서 이 섬으로 직행할 수 있다. 물론 편리하지만 왠지 서운한 느낌도 없지 않다. 불편함은 여행을 귀찮게 만들지만, 동시에 일종의 기쁨 - 벌거로움이 가져다주는 기쁨 - 도 품고 있다.

- p. 89~90



   나는 몰라보게 밝아진 가게 안을 둘러보고는 "이게 정말 그 파트랄리스 가게라고?" 하며 입을 딱 벌리고 말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선생 '파트랄리스 가게'는 우리 마음에 쏙 들었다. 예전처럼 마리자가 메뉴에 빠지지 않고 올라 있고, 역시 예전처럼 맛있었다. 하나하나 양이 푸짐한 것도 변함없다. 가격은 합리적이고(혹은 상당히 싸고), 그러면서 재료는 신선하다. 생선을 주문하면 주방으로 손님을 데려가 직접 실물을 보여주며 고르게 하고, 그것을 눈앞에서 조리해준다. 이 가게에서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레몬과 올리브오일을 뿌린 신선한 생선 요리를 먹고 있으면 더없이 행복한 기분이 든다. 우리는 이틀 연달아 이 가게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다만 레치나 와인은 톡 쏘는 독특한 향이 예전보다 조금 엷어진 것 같다. 나는 그 촌스러운 향이 무척 좋았는데.

- p. 102~103



   이따금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듯 마음이 가는 상을 만난다. 왠지 반가움 비슷한 감정마저 든다. 그런 상을 만나면 "오호, 네가 이런 데 있었구나"라고 무심코 말을 걸고 싶어진다. 대부분 칠이 벗어지고 표면이 변색되고 귀퉁이가 떨어져나간 것들이다. 개중에는 코나 귀가 아예 사라진 것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어스름 속에서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한눈팔지도 않고, 우기도 건기도 가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시간을 견뎌온 것이다. 백년이고 이백 년이고. 나는 그중 몇몇 조각상과 아무런 이유 없이 마음이 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다정한 친근감을 안겨주는 분위기는 서유럽의 여느 성당들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서유럽 성당에는 보는 이를 압도하며 장엄한 기분을 자아내려는 면이 있다. 물론 그것도 그것대로 멋지지만, 라오스의 사원에서는 '위에서 내려오는 압도적인 힘' 같은 것이 엿보이지 않는다.

- p. 177



   "라오스(같은 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베트남 사람의 질문에 나는 아직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라오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소소한 기념품 말고는 몇몇 풍경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러나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무언가를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 그떄의 떨리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것이 단순한 사진과 다른 점이다. 그곳에만 존재했던 그 풍경은 지금도 내 안에 입체적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결국은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한 책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 p. 181~182



   그 때문인지 가기올레 인 키안티, 라다 인 키안티, 카스텔리나 인 키안티... 등등. 조금 신기한 울림을 가진 토스카나 마을의 이름들이(모두 오래된 성벽이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상하게도 머릿속을 떠날 줄 모른다. 일본으로 돌아와서도 그런 이름을 보거나 듣기만 하면 마을의 풍경과 그곳에서 마신 와인, 이름 모를 레스토랑에서 나온 음식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러면 '아아, 다시 그곳에 가봐야겠다'라고 생각한다. 다름에는 꼭 알과 로메오를 빌려야지, 라고도.

   이것에 나는 개인적으로 '토스카나 열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p. 213~214



(....) 그렇게 오래 혼자 여행해본 건 난생 처음이었다. 혼자서 낯선 땅을 여행하다보니 단순히 숨을 쉬고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쯤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 p. 220



-

   '후기'에서 하루키는 말한다. "잊을 만하면 띄엄띄엄 청탁이 들어와 여행기를 쓰는 작업을 하다보니, 차츰 원고가 쌓여서 이번에 한 권의 책으로 묶게 되었습니다. 한데 모은 글을 새삼 다시 읽어보자 '아, 다른 여행에 대한 글도 써둘걸 그랬다' 하고 은근히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써야 한다! (불끈)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떠나보내며, 한번 더 읽고 싶다고 표시해두었던 문장들을 옮겨둔다. 라오스야, 잘 가라. 그곳에서 행복하렴. 역시 하루키 최고의 여행기는 <먼 북소리>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Trackback Address >> http://goldsoul.tistory.com/trackback/1122 관련글 쓰기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