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경주

from 여행을가다 2014/11/22 15:26

 

 

 

 

 

 

 

 

 

 

 

 

 

 

 

 

 

 

 

 

 

 

 

 

 

 

 

 

 

 

 

 

 

 

 

 

 

 

 

 

 

 

 

 

 

 

 

 

 

 

 

 

 

 

 

 

 

 

 

 

 

 

 

 

 

 

 

 

 

 

 

 

 

 

 

 

 

 

    8월, 늦여름. 혼자 경주에 다녀왔다. 여름에 외롭고 쓸쓸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다들 행복한데 나만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느낌. 역시 나는 더운 날씨랑 안 맞나봐. 그래서 혼자 어디론가 가보자고 결심했고, 그렇다면 경주가 어떨까 생각했다. 경주라면 볼 거리가 많으니 혼자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첫날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인터넷 검색을 하다 봐둔 인도 카레 집엘 갔다. 좌식 탁자에 앉아 카레와 맥주를 먹는데, 주인언니가 이런 저런 말을 걸어왔다. 그 중에 그런 얘기도 했을 거다. 이번 여름이 내겐 좀 외롭다는 말.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꽤 시간을 보냈는데, 주인언니가 부탁이 있다고 했다. 경주에 오래 머무른다고 하니 오늘 저녁시간에 조금만 자기를 도와달라고. 밥값도 안 받고, 맥주값도 안 받겠다고, 나중에 맥주도 더 마시라고. 좋은 추억이 되겠다 싶었다. 그 전에 대릉원을 다녀오고, 다시 돌아와 주인언니를 도와줬다. 차이와 맥주도 얻어 마시고, 카레를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 나눠 먹으라고 싸 줬다. 가게 마감을 하고 터미널과 게스트하우스의 위치가 거의 같아서 같이 걸었다. 비가 조금 내리기 시작했는데, 보슬비라 그냥 맞았다. 주인언니가 거절 못하는 성격이죠, 라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다음 날도 자기가 일하는 날이라고 점심 때 오면 밥 그냥 주겠다고 했는데, 양동마을 간다고 들리질 못했다. 어둠이 내려 앉은 경주 시내를 걷는 일. 길 옆에는 크고 작은 능이 펼쳐져 있었다. 내가 꿈꾸던 밤산책길이었다. 죽음과 삶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곳. 어쩌면 쓸쓸했던 여름의 끝에 경주를 택한 건 이 능이 있는 풍경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이틀을 묵은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매일밤 치막 파티가 있었는데, 잔이 달잔이었다. 처음엔 보름달이었던 것이,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반달이 되고, 초승달이 되는 잔이다. 여덟 명 정도가 조촐하게 앉아 이야기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나이들이 다들 있었다. 내가 연장자이긴 했지만, 나와 같은 나이의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둘째날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J씨와 양동마을에 갔다. 둘째날은 비가 굉장히 많이 왔다. 막 쏟아지는 수준이었다. 우선 H씨와 J씨랑 같이, 내가 보고 싶어하는 분황사에 갔다. 땅이며, 탑이며, 조그마한 불상들이며 모두 젖어 있었다. 그리고 고요했다. 빗소리만 들렸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 절의 처마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오래된 돌탑에 떨어지는 빗소리. 그리고 황룡사지를 걸었는데, 비가 많이 와서 운동화가 질퍽거렸다. 마침 견학을 온 초등학생 무리가 있어, 그 틈에 끼여 설명을 들었다. 이 곳에 한 때 9층으로 된 목탑이 있었다니. 얼마나 큰 절이었을까. 여기, 내가 있었다는 흔적만 남기고 있는 절터. 나는 폐사지에 있을 때, 기분이 쓸쓸한 것이 묘하게 좋다. 감은사지에서도 그랬는데, 황룡사지에서도 그랬다. 모두가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게 자연의 순리. 그걸 폐사지에서 생각하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러니 아둥바둥거리지 말자는 생각이 든다. 택시를 타고 커피를 마시러 갔다. 커피집 문이 안 열어 동사무소 흡연장에서 비를 피하다 커피집으로 들어갔더니, 와 여긴 천국. 따뜻하고 평온하다. 각각 한 잔의 커피와 쿠키를 나눠 먹고, 서울에서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H씨도, J씨도 모두 열심히 사는 사람들 같았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 추천 밀면집으로 갔는데, 흠 맛이 그냥 그랬다. 양이 너무 많아서 더 맛이 그냥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밀면을 먹고, 운동화가 너무 질퍽해져 삼선 슬리퍼를 시장에서 샀다. (덕분에 발이 나중에 다 까졌지만) 불국사로 가는 H씨와 헤어지고, 아슬아슬하게 양동마을 가는 버스를 탔다. 꽤 오래 버스를 탔는데, 노곤해져 살짝 졸았다. 양동마을은 우비를 입고 돌아다녔다. 마을 초입에서 해설하시는 분을 만나 그 분 설명을 들으며 함께 걸었다. 여러 인상 깊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지금 기억나는 건 백일홍 이야기. 옛날 글공부하던 선비들은 과거에 합격을 하면 마당에 백일홍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백일홍은 백일동안 꽃을 피우고 지는데, 벼슬도 권력도 언젠가 올라가면 내려올 때가 있다고, 그러니 의기양양하지 말고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그걸 백일홍을 보면서 항상 생각하자고, 그런 의미라고 한다. J씨와 마을 간이 찻집에서 따뜻한 차를 한잔씩 마셨다. 가정집이었는데, 마당에 우물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경주 시내로 와 불국사 갔다 온 H씨와 저녁을 먹었다. J씨와 나는 비 맞고 걷느라고 너무 지쳤는데, H씨는 팔닥팔닥했다. 역시 젊음이란. 게스트하우스에 와서 잠시 쉬다가 치막파티에 참가했는데, 이 날은 사람도 많고 아이들이 대부분 무척 어려서 (물론 내 기준!) 마치 짝짓기 파티의 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례한 아이들도 있었고. 잠을 자는 방에서도 그 무례한 아이들 때문에 어디서나 잘 자는 내가 잠을 설쳤다. 물론 그 중에 좋은 아이도 있었다. 첫 날은 이층 침대 아래서, 둘째날은 이층 침대 위에서 잤는데 신기했다. 그 좁은 침대 안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셋째날은 엄마가 오기로 했다. 마지막 날은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숙소를 좋은 호텔에 잡았다. 좋은 호텔방에 혼자 자는 게 아까워 엄마를 불렀다. 마침 엄마도 시간이 맞았다. 터미널에서 엄마를 만나 택시를 타고 교촌마을에 갔다. 셋째날부터 날이 맑았다. 덥기까지 했다. 교촌마을에서 어제 치막파티에서 만난 아이를 만났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어제 방에서 이야기해 보니 좋은 아이였다. 그 아이도 딸 셋이었고, 둘째였다. 어린 나이인데 혼자 여행을 자주 다닌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부럽다고. 나도 어릴 때부터 그랬으면 좋았을 걸, 생각했다. 요즘은 젊음 자체가 부럽다. 아이는 좋은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주소라도 받아둘 걸 나중에 후회했다. 교촌마을에서 교리김밥을 먹고, 조금 걸었다. 들어가 보고 싶은 곳들이 있었는데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았더라. 비단벌레차라고 전기열차를 타고 교촌마을과 첨성대 그 일대를 천천히 둘러보는 게 있더라. 날씨가 무척 더워서 딱이다 싶어 탔다. 엄마는 열차안내멘트를 듣다가 최씨 부잣집의 가훈이 마음에 든다며,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적어 달라고 했다. 열차 마지막에 신라시대에 관한 영상을 봤는데, 신라시대가 궁금해졌다. 좋은 책이 있으면 찾아 읽고 싶어졌다. 버스를 타고 보문단지로 가 호텔에 짐을 맡기고, 불국사로 갔다. 불국사는 여전했다. 내가 좋아하는 석가탑은 여전히 공사중. 고은 시인의 글귀대로 겨울의 불국사에 한번 와보고 싶은데, 이번 겨울에는 오게 될까. 다음 겨울에 오게 될까. 엄마가 맛집에 가고 싶다고 해서 보문단지 근처 순두부집을 검색 끝에 찾았다. 가서 순두부찌개와 녹두전을 먹고, 신라의 달밤 막걸리를 한 잔씩 했다. 맛있더라. 호텔로 돌아와 체크인을 했는데, 엄마가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미안했다. 씻고 보문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호수는 잔잔했고, 바람이 조금 불었고, 오리배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산책길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 스산하기까지 했다. 엄마가 분기별로 한번씩 이렇게 여행을 오면 살 맛이 나겠다고 이야기했다. 마트에 들러 간단한 요깃거리를 샀다. 당연히 캔맥주도 샀다. 방에 들어와 티비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잤다. 이불에서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났다.

 

    마지막 날, 넷째 날. 근사한 풍경을 옆에 두고 조식을 먹었다. 엄마는 병원 검진 때문에 점심 때 경주를 떠나야 했는데 그 전에 한 군데라도 더 가고 싶다고 했다. 어제 비단열차 마지막에 본 영상에 선덕여왕 얘기가 나왔다. 진평왕에겐 아들이 없었고, 그래서 딸인 선덕이 왕이 되었고, 무척 어진 왕이었다는 이야기. 딸만 있는 엄마는 그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 선덕여왕릉도 있다고 하니, 그럼 거길 한번 가보자고 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선덕여왕릉에 갔다. 트럭들이 무서운 소리를 내며 달리는 도로가에 선덕여왕릉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길을 걸으니 점차 요란한 차 소리가 희미해지고 조그만 새 소리가 들렸다. 선덕여왕은 고요한 곳에 있었다.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자리란다. 너무 고요해서 그 고요함에 눌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용히 능을 둘러보고 나왔다. 엄마는 수첩을 꺼내 안내문에 적혀 있던 글귀들을 따라 적었다. 그곳에도 폐사지가 있었다. 엄마와는 버스에서 헤어졌다. 내가 먼저 내리고, 엄마는 좀더 가 터미널에서 내리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려 동생이 찾아준 커피집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봉황대가 창 밖으로 보이는 커피집이었다. 그러니까 능을 마주하고 커피를 마셨다. 봉황대는 무덤인데, 그 위로 나무들이 자라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생각하면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집에서 가지고 간 책도 다 읽었고, 엽서도 다 썼다. 마지막 식사를 하고 경주를 떠나는 일만 남았는데,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처음의 그 카레집에 갔다. 첫날 만난 주인언니가 휴무인 날이었다. 알고서 일부러 갔다. 전혀 스타일이 다른 사장님이 카레를 내줬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아서 가게가 꽉 찼다. 모르는 사람과 커다란 좌식 탁자에 함께 앉아 카레를 먹고, 차이를 마셨다. 방명록 노트에 주인언니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나오는 길에 또다른 사장님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경주에서 쓴 엽서는 첫날 모두 구입했는데, 이 또다른 사장님이 여행을 하면서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거라고 했다. 첫날 여기 와서 엽서를 샀다고 하니, 정말요? 그러면서 좋아해줬다. 기차역으로 가기 전에 우체국에 들러 우표도 잔뜩 샀다. 내려올 때 계획했던 <비긴어게인> 시네마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해가 막 지고 있었다. 노을이 참 예뻤다. 노을이 괜찮은 여행을 하고, 잘 돌아왔다고 다독거려주는 것 같아 한참을 쳐다봤다. 조금 늦게 기록한 늦여름 경주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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