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가구라자카에서 닛포리 역으로 바로 갈까 했다. 두껍긴 하지만, 반팔을 입고 나와서 너무 추웠다. 계속 비 맞고 다니니 다음날 감기에 걸려 하루를 온종일 날려 버릴까봐 걱정도 됐다. 보고 싶었던 야나카 산책 거리는 타바타 역에서 시작해 닛포리 역에서 끝난다. 책에 의하면 3~4시간 소요. 어차피 보고 싶은 것은 닛포리 역에 다 있으니까 닛포리 역으로 바로 갔다가 조금 둘러보고 숙소로 일찍 돌아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고 언니를 기다리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일본까지 왔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 두 정거장 더 가 타바타 역에서 내렸다.

 

   일단 첫번째 코스. 타바타문사촌기념관이다. 타바타에는 문인들이 많이 모여살았다고 한다. 동네가 좋아 모이고, 함께 사는 사람들이 좋아 모이고 그랬던 모양이다. 문인들이 함께 모여 살며 풍요로운 인연들을 많이 이어간 모양이다. 기념관은 아주 작은데, 원고들 같은 것이 전시되어 있었다. 중년의 남녀가 기념관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본어를 모르니 그냥 물건들을 빠르게 둘러보고, 작가들이 실제로 살았던 마을을 본떠 만든 모형 앞에 썼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도 타바타에 살았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한자이름을 더듬더듬 찾아 버튼을 누르니 오른쪽 가장자리에 주황색 불이 들어왔다.

 

 

 

 

 

 

 

 

 

 

 

 

   야나카 산책하기. 책의 설명은 이랬다. "타바타 역을 마주하고 오른쪽 옆에 있는 건물 3층으로 올라가면 니시닛포리 역으로 가는 전철 선로와 평행한 길이 나온다. 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니시닛포리 역이 보이는 육교가 나오는데 육교 위로 올라가면 닛포리 공원과 사찰을 지나 언덕길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언덕길에서 좌회전하면 마주하는 것이 유야케단단이고, 오른쪽이 야나카긴자 입구다.(도보 40분)"

 

   건물 3층을 올라가라고? 진짜 이상했지만, 올라갔다. 그러자 전철길과 평행한 주택 길이 나왔다. 와! 3층에서 시작되는 타바타 -니시닛포리 길을 보는데, 막 가슴이 설레였다. 여기 안 왔으면 어쩔 뻔 했나. 딱 내가 원하는 길이었다. 한적했고, 전철과 함께 걷는데 옆에는 또 집들이 있어 특별했다. 이 길에서도 이어폰을 꺼냈다. 출발하는 전철도 보고, 비 맞고 있는 공중전화 부스도 보고, 불이 켜 있는 집들도 보고, 사람도 없고 비도 와 조금은 으스스했던 절에도 들어가 봤다. 좋았다. 역시 두 정거장 더 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신나서 걷다보니 금새 닛포리 도착. 물론 그 사이사이 소소한 헤맴은 있었다. 이 길을 걸어보려고 결심한 건 이 문장들 때문이었다.

 

    타바타에서 니시닛포리 그리고 닛포리까지 걷는 길은 가장 일본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닛포리는 '히구라시노사토' 즉, 해가 질 때까지 있어도 질리지 않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경치가 아름다워 에도시대 문인들이 사랑했다고 한다. 일본의 예술인과 문학인들의 작업터, 사찰과 묘지, 드넓게 펼쳐진 전철길, 오랜 시간 비바람과 지진을 견뎌온 나무들, 오며가며 마주치는 동네 고양이까지 모든 '일본'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동네다.

- p.98 <도쿄 일상산책>

 

 

 

   

 

  

 

 

 

   저녁노을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계단이 있다고 했다. 이름하야 유야케단단. 이걸 제일 보고 싶었는데. 흠. 하지만 소용없었던 건 말해서 무엇하랴. 하루종일 비가 오고 있었는 걸. 근사한 노을은 보지 못했지만, 스산한 초가을 비내리는 거리를 걸으며 이것저것 동네 구경을 했다. 일요일이라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았지만, 책에서 본 각 가게의 특성을 그대로 표현한 동그란 그림 간판은 구경할 수 있었다. 지붕 위에 있었던 생생한 모형 고양이들도. 책에서 어두워지면 으스스해지니 가지말라고 했던 묘지에도 갔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묘지 앞에 나팔꽃을 닮은 이름 모를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동네 빵가게, 동네 반찬가게, 오래된 동네 커피집, 한국식당 '짠', 깔끔한 동네 이발소, 서서 술을 마시는 술집 (팟캐스트에서 말로만 들었던!), 아기자기한 것이 많았던 소품가게, 동네 마트, 맥주 자판기 등. 여기저기 구경했다. 산책하는 동안 동네에 스피커로 음악이 울러퍼졌는데, 경음악이었다. 음이 잔잔한 것이 조금 쓸쓸한 날씨와 잘 어울려 나의 산책길을 더욱 근사하게 만들어주었다. 언니와 7시에 메구로 역에서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닛포리 역에 도착하니 그때부터 몸이 으슬슬했다. 자판기에서 따뜻한 녹차 패트를 뽑아 들고 전철을 탔다. 닛포리에서는 고양이 엽서를 한 장 샀다. 여름 축제에 가는 고양이의 모습을 그린 거였는데, 숙소에서 언니에게 보여주니 진짜 귀엽다고 했다. 아, 닛포리에서 고양이도 한 마리 봤다. 진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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