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셰프

from 극장에가다 2015/01/22 23:05

 

 

 

   정확한 나이가 기억나질 않는데, 20대 초반 정도였던 것 같다. 우리는 씨네큐브로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를 보고 스파게티를 먹었는지, 스파게티를 먹고 영화를 봤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무튼 씨네큐브 윗층의 스파게띠아에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손님이 별로 없었다. 우리를 포함해 한 세 테이블 정도였는데, 그 애가 혼자 스파게티를 먹고 있었다. 그애와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얼굴이 빨갛고 통통한 그애는 밝고 쾌활하고 웃음소리가 컸다. 외국에서 살다 왔다고 했나, 아빠가 영어 선생님이라고 했나. 영어 실력이 굉장했다. 발음도 네이티브 수준이었고. 성격도 호탕했다. 그 애와 난 그리 친하진 않았다. 1학년 때 이후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이과를 갔던지, 반이 아주 멀었던 것 같다. 그 애를 그 날 광화문 스파게띠아에서 봤다. 그 애는 커다란 스파게티 그릇을 앞에 두고 책을 읽으며 스파게티를 먹고 있었다.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대단하다 생각했던 건 '혼자' 가게에서 음식을 먹었다는 것. 나중에 스파게티를 다 먹고 나와서, 같이 있던 사람에게 말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혼자 스파게티를 먹고 있었어요. 그 애는 1학년 때 내가 느낀 이미지 그대로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혼자 가게에서 밥 먹는 건 내게 쉽진 않다. 하지만 어렵지도 않은 일이 되었다. 지난 일요일, 학원을 마치고 걸어서 광화문까지 갔다. 보고 싶었던 영화 <아메리칸 셰프>를 예매해두고 한 층 더 올라가 스파게띠아에 들어갔다. 좋아하는 크랩날치알스파게티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그리고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책을 읽었다. 영화표를 내밀고 20프로 할인을 받고 나오는데 그 얼굴이 빨갰던 아이 생각이 갑자기 났다. 지금 그 애는 뭐하면서 살고 있을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을 것 같은데.

 

    <아메리칸 셰프>의 셰프도 밝고 쾌활하고 웃음소리가 큰 사람이다. 원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레스토랑의 셰프가 되면서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경영자와의 마찰이 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요리는 창조적이고 반짝반짝하고 자유로운 요리인데, 경영자는 지금까지 쭉 해 왔던,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요리만 하라고 한다. 결국 셰프는 폭발하고 그 행복하지 않았던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그런데 여기까진 좋았는데, 그는 이혼남이고 모아놓은 돈도 없다. 당장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아주아주 유명한 맛 블로거에게 초콜릿 디저트를 손으로 뭉개고 집어 던지며 바락바락 고함을 질러댔다. 그것도 손님이 꽉 차 있던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이 장면을 찍었고, 인터넷을 통해 이 동영상은 널리널리 퍼져 나갔다. 어느 레스토랑에서 이 다혈질의 셰프를 원하겠는가. 셰프의 전 부인은 셰프에게 푸드트럭을 해보라고 한다. 싫다고 하자 셰프가 요리를 처음 시작했던 마이애미로 어쩔 수 없이 가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셰프는 자신의 행복이 시작되었던 그곳에서 쿠바 샌드위치 푸드트럭을 시작한다. 한 걸음에 달려와 준 동료와 행복하지 않았던 일을 하느라 항상 신경 써주지 못했던 아들과 함께.

 

    셰프는 행복했다. 다시 행복해졌다고 느꼈다.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힘이 든 줄 몰랐다. 아들의 트위터 홍보 덕분에, 그리고 기가 막히는 맛 때문에 푸드트럭의 손님은 끊이질 않았다. 그들은 마이애미에서 뉴올리언스를 거쳐 로스엔젤레스까지 샌드위치를 만들며 행복하게 이동했다. 뉴올리언스에서 아들과 함께 꼭 먹고 싶었던 베녜도 먹었다. 일과를 마친 뒤 셰프는 아들과 함께 푸드트럭 위에 앉았다. 건너편 야외의 가게에서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있었다. 아들의 방학이 끝나가고 있었다. 셰프는 말한다. 이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바쁠 거고, 너는 내가 소홀하다고 느낄 거야. 그런데, 아들. 이건 꼭 기억해. 너와 함께 했던 이 여름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는지. 영원히 잊지 못할 여름을 보냈어. 정말이야. 정말 행복했어. 이런 식의 이야기였다. 스파게띠아에서 읽었던 소설에도 이와 비슷한 문장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장면을 보는데 가슴이 벅차왔다. 일요일 낮.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행복한 한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시절은 현재 진행 중인데도, 영화 속 셰프도, 소설 속 그녀도 그 시절이 끝나가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기억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 슬프고 아름다운 장면들.

 

    어느 날 저녁, 그러니까 함께 보내는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캐서린이 조용히 말했다. 마치 멍하니 다른 생각에 잠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빌, 우리가 앞으로 다른 것을 결코 누릴 수 없게 된다 해도, 이번 주의 기억은 남아 있을 거예요. 너무 소녀 같은 말인가요?"

   "그것이 소녀 같은 말이든 아니든 상관없소." 스토너가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사실이니까."

   "그럼 말할래요." 캐서린이 말했다. "이번 주의 기억은 우리에게 남아 있을 거예요."

   마지막 날 아침에 캐서린은 오두막 안의 가구들을 정돈하고, 천천히 세심하게 청소를 했다. 그리고 그동안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서 벽과 벽난로 사이의 틈새에 끼어놓았다. 그녀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에 우리 물건을 하나 남겨두고 싶어서요. 이곳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남아 있을 만한 물건으로. 바보 같죠?"

   스토너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팔을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가 눈 속을 터벅터벅 걸어 관리사무실로 갔다. 그들을 컬럼비아로 데려다줄 버스를 그곳에서 타게 되어 있었다.

- p. 289 <스토너>

 

    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 <스토너>는 2015년 나의 첫번째 별 다섯개 책이다. 그리고 나는 <아메리칸 셰프>를 보며 많이 울었다. 눈물이 계속 났다. 셰프와 아들이 행복하게 여행하는 장면들에서. 사람들은 모두 미소 지으며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나도 그랬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울고 나니 나는 영화를 보기 전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친구가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 이런 우연이라면 그냥 헤어질 수 없지. 친구는 스위스의 구름을 보러 왔다고 했다. 우리는 각자 영화가 끝나면 만나서 맥주 한 잔씩 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상영관을 나오니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와, 세상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오기 전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좋은 영화였고, 좋은 일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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