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쌓다341 연인 (...) 나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 34~35쪽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삶의 원칙, 즉 우리의 불행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배웠다. 그러고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게 되었다. 첫 번째 고백을 듣는 사람들은 우리의 연인들이다. 근무지 밖에서 만날 때, 처음엔 사이공 거리에서, 다음에는 정기 여객선에서, 기차에서, 그 후에는 아무 곳에서나, 우리는 속내 이야기를 무한정 풀어 놓는다. - 75쪽 스무 살 때 내게 하루키 소설 읽는 순서를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 생애 첫 하루키 책으로 .. 2019. 3. 24.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좋아하는 티비 프로그램 중에 이 있다. 방구석처럼 꾸며놓은 세트장에 앉아 영화를 소개해주고,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프로그램. 나는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인데, 밤이 오지 않는 어떤 밤에는 이미 봤던 회인데도 그냥 틀어놓고 소리만 듣다 잠들기도 했다. 라는 영화가 있다. 가톨릭 신부들의 아동성추행 사건을 파헤치는 보스턴 글로브 취재팀의 이야기인데, 나는 이 영화가 참 좋았다. 무료 영화일 때 여러번 봤다. 묵묵히 자신이 맡은 바를 취재해가는 팀원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안정이 되었다. 를 다룬 회에 임필성 감독이 나와 이 영화를 참 좋아해서 여러 번 보았다는 말에 격한 공감이 됐다. 얼마 전에는 편을 봤는데, 역시 참 좋았다. 영화도 좋고, 그 영화를 가운데 두고 나누는 이런.. 2019. 2. 27. 손때 묻은 나의 부엌 그렇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던 25년 전부터 쭉 이 양철 쌀통을 사용해 왔다. 쌀 씻기 바로 전, 소쿠리를 한 손에 들고 쌀통 뚜껑을 비켜 연다. 계량컵을 쌀 안에 푹 찔러 넣고 평평하게 깍아 두 번, 세 번. 그러고 나서 수도꼭지를 비틀어 쌀을 석석 씻는다. 십 년을 하루같이 당연하다는 듯 반복할 수 있었던 건 새삼스럽지만 행복한 일이다. (...) 새 쌀 한 포대를 사 와서 포대를 끌어안고 입을 벌려 쌀을 쌀통에 쏴아 붓는 때가 무척 좋다. 쌀이 양철에 부딪히며 마른 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또 그렇게 좋다. 내 스물다섯 해, 수백 번을 반복해 온 소소한 집안일이지만, 그때마다 내 살림의 대들보를 확인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0-11쪽) 녹은 긴 세월 쇠가 품어 기른 드라마다. 그곳에 하나하.. 2019. 1. 24. 소설을 쓰고 싶다면 제임스 설터의 소설은 한 권도 읽지 못했다. 무척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주 지루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누군가의 평, 혹은 보도자료를 보고 를 사두었었는데, 아직까지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늘 이런식이다) 도 SNS에서 누군가 추천을 했는데, 그 글이 좋아서 샀다. 새해 첫 책으로 뭘 읽을까 고민하다 왠지 이 책이 좋을 것 같았다. 새해 첫 책이니까 끝까지 읽었다. 포스트잇도 열여덟 군데나 붙어두었다. 성실하고 섬세하고 꼼꼼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존 케이시라는 작가가 쓴 '나가며'는 앞의 내용과 중복이기도 했고 지루했다.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 책은 제임스 설터가 소설과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연과 인터뷰로 구성되었다. - (...) 결국 나는 프랑스로 갔습니다. 프랑스는 언제.. 2019. 1. 20. 사랑의 잔상들 12월 15일 토요일이었다. 일찍 일어났고 상암 메가박스 상영시간표를 검색해봤다. 조조 가 있었다. 망설이다 일어났고 세수를 하고 커피를 내렸다. 상암 메가박스에는 맛난 라떼를 파는 커피집이 있는데 조조 시간대에는 문을 열지 않더라. 겉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영화 시작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극장 한 켠에 앉았다. 12월 어느 날,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다정한 추천 메일을 받았더랬다. 작고 단단한 책을 펼치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문장이 있었다. "야근중인 사무실 책상에서, 극장 안에서, 밤거리에서, 새벽녘의 작은 방 안에서 나는 발표할 기약 없는 이 글들을 십 년간 조금씩 써나갔다. 그러면서 차츰 투명한 응시가 과거를 미래로부터 발견해내는 일임을, 다가올 이미지를 기다리며 무언가를 써나.. 2019. 1. 13. 문장수집생활 작년에 읽은 마지막 책이다. 마지막 장까지 마치긴 했지만 읽는 내내 의문이었다. 이렇게 소설가가 고심해서 쓴 문장을 어순 정도만 달리해서 카피로 써도 되는 걸까. 그걸 이렇게 이용했다고 책으로까지 만들어 놓아도 되는걸까.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건가.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카피라기보다 소설을 그대로 가져다 쓴 카피였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나갔고, 어제 가격 때문에 고심했던 국어사전을 주문했다. 종이 국어사전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구입하지 않았을 거였다. 이 책을 읽은 후 최대의 성과이다.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나는 가급적이면 인터넷으로 빨리 찾을 수 있는 검색사전이 아닌 종이사전을 권한다. 검색을 하면 내가 찾고자 하는 것밖에 알 수 없지만, 종이사전을 뒤적이다 보면 못 보던 .. 2019. 1. 5. 이전 1 ··· 4 5 6 7 8 9 10 ··· 5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