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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1) 2018.07.16
  2. 아멘 2018.07.11
  3. 목포와 함평 2018.07.04
  4. 브루클린 2018.07.01
  5. 아이 필 프리티 (2) 2018.06.28




   가끔 회사를 그만두면 무얼 해야할까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게 되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곤 한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다른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나는 왜 기술이 있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 돈은 계속 벌 수 있을까. 지금 너무 낭비하고 사는 게 아닐까. 아끼고 아껴 좀더 모아야 하지 않을까 등등의 생각. 지금까지 해 봤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면 어떨까. 아니,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일이 좋을까. 책을 좋아하니까 조그만 책방은 어떨까. 어느 월요일, 조금은 울적한 마음으로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다 이 책이 떠올랐다. 장바구니에 오랫동안 담아놓고, 매번 주문 때마다 슬쩍 빼버린 책. 지금이야말로 주문해서 읽을 때라고, 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어땠을지, 왜 책방 문을 닫아야만 했는지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은 술술 잘 읽힌다. 퇴사를 결심하고, 희망으로 가득찬,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긴 책방을 여는 것에서부터 운영을 중단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최종 정리를 하기까지의 일들이 소소하게 담겨 있다. 현실적인 문제들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역시 책방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혼자 운영을 하면 저녁과 주말이 없어지는 거였어, 책 몇 권 팔아서는 책방 유지를 할 수 없는 거였어, 그래서 책방들이 죄다 커피며 맥주까지 파는 거였어, 등등의 작가가 직면했던 현실적인 어려움을 내 것인양 안타까워하며 읽어나갔다. 언젠가 조그만 책방을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은 금세 접혔다. 나는 망할 게 틀림없었다. 역시 월급을 받는 편이 훨...ㅆ


   어디선가 보고 이대에 있었던 여행책방 <일단멈춤>을 꼭 한번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계속 생각에만 그쳐 결국 작가가 말한 것처럼, SNS로만 염탐하는 손님에 그치고 말았지만. 가이드북과 여행에세이들이 그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소설도 있었네. 그래, 여행하는 소설도 있지. 작가가 책방 공간에 어떤 책을 주문할 지 고심하는 에피소드를 읽고 내가 작가의 입장이 되어 잠시 생각해봤는데, 참 좋더라. 책방 주인이 되면 그게 참 좋을 것 같다. 책방과 어울리는 책을 고심해서 주문하고, 예쁘게 진열하고, 볕 좋은 날 한 손님이 들어와 그 책을 만지작거리고, 뒤적거리다 끝내 구입해가는 풍경. 흠. 나는 커피를 파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맥주도.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다, 읽은 책을 그대로 사가지고 온 경험이 내게 있으니.


   나는 실패가 늘 두렵지만, 모든 실패가 진짜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수많은 실패를 하는 것이 어떤 성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 성공이 크든 작든간에. 언젠가 할 수 있지도 않을까. 작가가 책의 말미에 말한 것처럼. 그때 또 실패해도 상관없지. 어떤 성공으로 느리게 느리게 걸어 가고 있는 거니까. 끝내 가보지 못한 이대 책방의 처음과 끝을 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역시 모든 책은 때가 있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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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토크를 세 시간이나 앞두고 책방에 도착한 작가 부부의 손에는 커다란 솥과 가스버너, 식재료 상자가 들려 있었다. 미리 삶아온 쌀국수 면에 판매용 육수를 부을 거란 짐작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녀는 각종 향신료를 넣은 솥에다 생닭을 흐드러지게 끓여낼 작정이었다. 예상치 못한 작가의의 '큰 그림'에 그만 크게 웃고 말았다. 책방에서 닭 육수를 고아낼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금의 엉뚱한 상황이 그저 즐겁기만 하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북토크 신청자들이 하나둘 책방에 도착했다. 두 시간 동안 팔팔 끓인 육수 냄새가 바깥의 찬 공기와 뒤섞이면서 푸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드나들 때마다 꼭 웃풍이 심한 어느 시골 식당에 놀러 온 것만 같다. 고명으로 얹을 고수와 으깬 땅콩, 매끈하게 익은 면까지 준비되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난로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앉았다. 금방 퍼올린 쌀국수 그릇이 손에서 손으로 옆 사람에게 전달됐다. 더운 나라에서 건너온 음식은 서울의 추운 겨울과도 제법 잘 어울렸다. 그날 저녁 우리는 여름날의 치앙마이를 함께 추억했다. 
- 114-115쪽



  1. 2018.07.20 16:1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아멘

from 모퉁이다방 2018.07.11 23:40



   오늘은 기계 위에서 땀 흘리며 걷기 싫어서 불광천을 걸었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촌동생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사촌동생의 외할아버지라고 하면 멀게 느껴지는데, 숙모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의 거리가 엄청나게 좁혀진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이렇게나 잘해주는 숙모의 아빠인 것이다. 나는 엄청나게 습해진 여름밤길을 걸으면서 그날을 떠올렸다. 명절이었고, 숙모와 사촌동생이 고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 우리를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준 밤. 기약없이 늦어지는 버스를 간이 정류장 벤치에서 기다리던 밤. 인적이 드문 그곳에서 숙모가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나즈막히 이야기했다. 젊은 시절, 숙모의 아버지는 반듯한 분이었다고 했다. 너무 반듯해서 숙모는 좀 느긋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그날 숙모가 묘사했던 반듯했던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다. 자식들을 낳고, 그 자식들을 잘 키워내기 위해 빈틈이 없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나이가 들고, 또 들고, 또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시기 까지. 그러다 오늘 마지막 숨을 내쉰 순간까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고아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뭐랄까, 많이 슬프다. 1시간을 넘게 걷다 들어와 따뜻한 물로 몸을 씻어냈다. 선풍기 바람을 쐬며 어떤 문자를 보내야 할지 고민하다, 이렇게 좋은 숙모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우리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한번도 뵙지 못했지만 정말 감사하다고 전해달라고 보냈다. 이소라의 아멘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




목포와 함평

from 여행을가다 2018.07.04 15:39


   우리 관계가 이랬는데, 그때 니가 가버려 가지구 지금 이렇게 소강상태야. 우리는 비가 쏟아지는 일본식 꼬치집 창가자리에 앉아 있었다. 니가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그래프를 만들었다. 왼쪽 아래에서 시작한 손가락이 미세하게 솟았다 가라앉았다 했다. 전체적으로는 상승곡선이었는데, 어느 순간 상승도 하강도 없이 일직선을 유지했다. 나는 그랬구나, 다시 올려보자, 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니까, 니가 말하는 내가 가버린 그날 이후로 나는 너를 나의 틀에서 벗겨냈다. 이전의 나는 너를 내 틀 안에 데려다놓고 이것저것 이해하려고 애썼는데, 그게 자주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잘못된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 틀이 아니라, 니 틀에서 이해해야 한 거였는데. 그러고 나니 너도, 나도 평온해졌다. 같이 지내는 시간이 점점 쌓여가니 흐릿했던 니 틀이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에는 명확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그래프는 다시 상승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바쁘지 않다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좋은 곳을 다녀오자고 이야기했더랬다. 유월에는 가질 못했는데, 사월에는 목포와 함평에 다녀왔다. 학교 시절, 과제 발표를 할 때 어떤 조의 함평나비축제 소개를 보고 흠뻑 반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언젠가 함평을 꼭 한번 가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한번도 가지 못했다는 말을 해서 올해 축제 날짜를 기억해뒀다 가자고 했다. 함평에는 숙소가 거의 없어 목포에 숙소를 잡았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신시가지의 오래된 호텔이었다. 욕실이 무척 넓었다. 너는 케이티엑스가 처음이었고, 나는 목포가 처음이었다. 둘 다 함평은 처음이었다. 함평의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엑스포 공원을 컨버스화를 신고 오래 걸었다. 입장할 때 받은 쿠폰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우엉차도 샀다. 나비는 박제되어 있기도 하고, 살아 움직이기도 했다. 


   해가 늬엿늬엿 지기 시작할 무렵 엑스포 공원을 나왔다. 공원 건너편에 작은 시장이 있었고, 번데기와 소라를 파는 가판이 있었다. 알고 보니 둘다 소라를 좋아했다. 한 컵 사서는 하나씩 건져내서 입에 물고 쪽쪽 빨아먹었다. 소라가 큼지막했다. 쪽쪽 빨아먹는 소라살도 큼직했다. 맛있다, 맛있다, 를 연발하다 보니 행복해졌다. 렌트카 주차한 곳까지 걸어가면서 한 컵을 금새 비웠다. 그게 목포함평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다. 칠월이 되어 사월의 일을 생각해보니, 행복할 때 행복하다고 표현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친구와 동생은 지난 주말, 망원의 술집에서 끝맛이 희미한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나의 이런저런 얘길 들어줬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노력하는 거 좋은 것 같아. 필요해. 그렇게 해서 너가 좀더 좋은 사람이 되는 거, 응원해. 너무 달랐던 둘이 점점 하나처럼 닮아가는 게 진짜 좋은 것 같아. 오늘 정밀아의 말처럼 시간이 흐르면 되는 거라 생각해. 괜찮아 보여. 그러니, 좋은 연애인 거야.

















브루클린

from 서재를쌓다 2018.07.01 09:36



   아주 멀리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아일리시를 생각한다. 2016년 봄에 보았던 영화를, 2017년 겨울 책으로 다시 읽었다. 2017년 겨울, 내가 아는 한 가장 멀리 다녀온 사람이 아일리시였다. 아일리시는 아일랜드 소도시에서 미국 뉴욕 브루클린까지 간 사람이다. 1950년대에. 똑똑하지만 시대상황 상 그럴듯한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있던 아일리시에게 어느 날 신부가 제안을 해 온다. 브루클린에 가면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기 싫었던 아일리시는 아일랜드를 떠나기 싫어한다. 아일리시를 단호하게 보낸 건 그녀의 친언니였다. 동생의 미래를 위해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별은 힘이 들었다. 향수병도 깊었다. 짙은 향수병 덕에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점점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이탈리아 청년 토니도 만나게 된다. 다정하고 배려깊은 토니를 사랑하게 되고, 점점 브루클린 생활에 애정이 생기게 된다. 야간학교에서의 우수한 성적, 공부가 끝나면 지금보다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으리란 희망, 하숙집 주인의 신뢰, 토니의 깊은 사랑. 그런 시기에 아일랜드에서 소식이 들려온다. 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언니를 잘 보내기 위해, 그리고 슬픔에 빠져있는 엄마를 챙기기 위해 고향으로 잠시 돌아온 아일리시는 그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유일하게 미국 브루클린에 다녀온 사람인 것이다. 오랜시간 배를 타고 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이곳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활을 한. 혼인신고까지 한 토니의 존재를 지워버리며, 그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자신감이 한껏 상승한 아일리시. 그곳의 부유한 집안 아들의 애정공세를 즐기던 아일리시에게 어느 날 날벼락이 떨어진다. 브루클린에서 혼인신고를 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타난 것. 아일리시는 그 길로 아일랜드를 떠난다. 아마도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토니와 결혼을 하고, 잠시동안 다시 머무른 아일랜드에서의 시간들을 추억으로 남겨두고 새로운 직장을 갖고, 아이들을 낳고 생활해 나갈 것이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일리시가 아일랜드로 돌아오고, 토니의 존재를 잊어버리며 고향 친구들 사이에서 달라진 자신의 위상을 즐길 때. 이런 나쁜 년이 있나 생각했다. 그렇게 착한 애였는데, 미국물이 이 아이를 이렇게 나쁘게 만들어 버렸네, 생각했다. 혼인신고를 한 사실이 발각되자 후다닥 떠나버리는 것을 보고도 나쁜 것 나쁜 것, 돌아가서 토니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엄청 보고싶었다고, 너밖에 없다고 속삭이겠지, 욕했었다. 소설을 읽고는 생각이 좀 바뀌었는데, 여전히 나쁜 행동이긴 했지만, 아일리시는 본능에 충실했던 보통의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물인 것이다. 다른 인물들은 지극히 평면적이다. 동생을 위해 헌신하는 언니, 첫눈에 반해 끊임없는 사랑을 펼치는 토니,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한 늘 외로운 엄마. 아일리시는 비록 타의에 의해 자기 일생의 굵직굵직한 일들을 실행했지만, 그 일들에 적응해가면서 그때그때의 감정들에 지극히 충실했던,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처음 브루클린을 떠날 때 배 위에서의 시간, 언니의 부고를 듣고 브루클린에서 아일랜드로 돌아가며 겪은 시간, 도망치듯 아일랜드에서 또다시 브루클린으로 돌아가며 보낸 배 안의 시간. 아일리시는 지난 겨울, 내가 아는 한 가장 멀리 다녀온 사람이었다. 멀리 다녀온 사람은 그러한 경험을 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알아볼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을.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아일리시는 저녁 식사를 건너뛰고 교구 사제관까지 걸어가서 플러드 신부에게 그 공문을 보여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키호 부인에게 메모를 남기고 거리로 나선 아일리시는 저녁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나무는 잎이 무성했고 거리엔 사람들이 나와 있었으며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건물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브루클린에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 편지가 기운을 주고 새로운 자유를 준 것 같았다. 기대하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아일리시는 플러드 신부가 사제관에 있다면 이 편지를 보여줄 생각에, 다음 날 약속대로 토니를 만나면 토니에게도 보여줄 생각에, 그리고 편지로 이 소식을 집에 알릴 생각에 마음이 부풀었다. 1년 후면 정식 부기원이 되어 더 나은 일거리를 찾을 것이다. 그 1년 동안 날씨는 점점 찾을 수 없을 만큼 더워지고 다시 열기가 수그러들면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릴 것이며 그러면 브루클린에 다시 겨울이 올 것이다. 그리고 겨울 또한 봄으로 녹아들고 퇴근 후에도 저녁 늦게까지 햇빛이 남아 있는 초여름이 되었다가 그녀는 다시, 브루클린 칼리지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을 것이다. 

   다가올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갈지 꿈꾸면서 길을 따라 걷는 동안, 아일리시는 미소 짓는 토니의 존재, 그의 관심,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들, 어느 길모퉁이에서 그녀를 끌어안은 그의 손길, 키스해 오는 숨결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냄새, 그가 그녀에게 집중할 때 느껴지는 소중한 기분, 그녀를 감싼 그의 팔, 그녀 입에서 느껴지는 그의 혀를를 상상했다. 아일리시는 그 모든 것을 갖고 있었다. 이 편지까지 받게 된 지금, 그녀가 가진 것들은 처음 브루클린에 도착할 때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았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할까 봐 아일리시는 걸으면서도 자꾸 웃음을 참아야 했다. 

- 223~223쪽



아이 필 프리티

from 극장에가다 2018.06.28 22:02


 

   극장에 가는 중이었다. 집에서 연신내까지는 걷고, 연신내에서 버스를 타고 은평몰까지 가기로 했다. 아직 초여름이고, 아침이었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편 커다란 나무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는데, 순간 엄청나게 행복해졌다. 나뭇잎들이 보이고, 그 나뭇잎들이 만들어낸 그늘이 보이고, 그 나뭇잎들을 흔들거렸던 바람이 내 얼굴에 닿는 것이 느껴지고. 어제까지의 나는 조금 불행했던 것 같은데, 오늘의 나는 무척 행복했다. "나는 나!" 얼마 전에 읽은 문구를 떠올렸다. 그래, 나는 나. 이렇게 초여름 아침 바람에 행복해지는 사람. 이 풍경에, 내가 그동안 겪었던 온갖 소소한 행복들이 줄줄이 떠올려지는 사람. 이런 나를 기억하자고, 이런 나를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내가 행복해져야 함께 있는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다. 영화는 흠.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잘 알겠는데,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너무나 유치했다. 그래도 아침의 시간들이 있어 아깝진 않았다. 사실 웃으면서 잘 봤다;; 보경이와 덕수궁을 거니는데, 보경이가 그랬다. 무엇보다 내가 굳건해야 한다고. 내 마음과 의지가 든든하게 뿌리 내려 있어야 어떠한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내가 굳건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옳을 수 있다고. 정말 그런 것이다. 내가 단단하면 남들이 생각나는 나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유월에는 공휴일이 많았던 탓에, 평일휴일이 없는 저번주와 이번주는 너무나 더디게 가고 있지만, 내내 생각하고 있는 건 나의 뿌리, 나의 줄기, 나의 영양분, 나의 잎맥, 나의 생기. 그나저나 미셸 윌리암스는 왜 그 역할을 맡은걸까. 상암CGV가 없어지고 영화보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었다. 흑-





  1. 페이퍼 2018.06.30 08:46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정작 그 말을 한 사람은 부채같은 바람에도 흔들렸다고 한다. 큰 일에는 오히려 담담하고 대담한 마음을 먹고 티끌같은 일에는 사정없이 휩쓸렸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
    요즘 나는 그 날 내가 언니한테 커피집에서 했던 얘기, 덕수궁에서 했던 얘기들을 나 자신에게 하고 있어. 어떤 날은 마음이 너무 평온하고 어떤 날은 걷잡을 수 없기도 해. 그런데 어제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들을 만났거든? 그 중에 한 친구가 내가 해주는 얘기에 막 웃더니 한참 후에 그런 얘길 하더라고. 나는 그런 사사로운 감정을 느껴본 지가 언젠지 모르겠다고. 언젠가부터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고. 행복해 보인다. 라고 얘기하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 나는 짜증나! 힘들어! 하고 얘기한 일인데 상대방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조차 부럽다고 한다니. 얼마나 피곤하고 지쳐있는걸까 걱정도 되고 말야.
    언니가 쓴 글 처럼 결국 나인 것 같아. 어떤 상황이 온다 해도 나를 놓치지 않는게 제일 중요할테니 오늘도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ㅎㅎ

    언니가 선물해 준 책은 다음 독서 모임 책으로 정해졌어! 열심히 읽고 열심히 얘기 해 본 후에 또 언니랑도 책 얘길 하고 싶다!
    여름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여름이 오면 유럽에서 혼자 여행하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 진짜 더웠는데 지금 내가 이 거리를 걷고 있다는 현실이 믿기지않고 감격스럽고 아주 작은 풍경도 감동적이었던 그 날의 내 모습같은 거. 아직 남은 여름은 행복했던 여름의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이겨보자 ㅎㅎㅎ
    좋은 주말 보내 : )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7.01 09:17 신고 BlogIcon GoldSoul

      부채같은 바람에 흔들려서 더 인간적이었어! 흐흐-
      우리 뼛속까지 잘 알고 있으니, 나를 잘 일으키기 위해 매순간 노력하는 것이야.
      나도 부정적인 마음이 들 때마다 계속 생각해. 나는 나! 나를 굳건하게 만들자아.
      그치? 정말 그렇지? 여름의 열기가 후끈하게 느껴지면 나도 그때 혼자 걸었던 길들이 막 생각나. 그때는 많이 외로웠었는데, 이렇게 그리워하게 될 지 몰랐지 하고. 잘 보내자!
      책도 많이 읽구, 나를 굳건히 하고. 책 다 읽고 우리 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