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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울릉도 바다 (2) 2018.09.11
  2.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2) 2018.09.03
  3. 여름휴가 2018.09.02
  4. 하루의 취향 (10) 2018.08.26
  5. 우리, 아이 없이 살자 (2) 2018.08.25

울릉도 바다

from 여행을가다 2018.09.11 21:11


   팔월말에는 울릉도에 다녀왔다. 같이 간 사람의 오랜 꿈이라 했다. 한 번은 친구들이랑 갔는데 배가 뜨지 않아 강원도에서만 있다 왔단다. 태풍이 지나간다 했기에 이번에도 그럴까봐 걱정했지만, 잘 다녀왔다. 준비하는 중에 경비가 너무 비싸 포기하고 나이 들어 패키지로 다녀올까 상의도 했지만, 이번에 다녀오길 잘한 것 같다. 좋은 추억이 되었다. 좀더 긴 얘길 쓰고 싶은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에 쓰면 더 좋겠지, 라고 핑계를 대며 게을러서 못 쓰고 있다. 하루는 맑았고, 하루는 비가 왔는데, 맑은 날은 맑은 대로 비가 온 날은 비가 온 대로 좋았다. 나리 분지가 있는 내륙 쪽으로는 들어가질 않아서, 어디를 가든 곁에 바다가 있었다. 비린내 하나 없는 깊고 짙은 동해바다. 내가 보고 온 울릉도 바다 구경하시라고 올리는 포스팅. 울릉도 가시면 두시간짜리 울릉도 한바퀴 도는 유람선 꼭 타시라. 누워 있을 수 있는 1층 말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는 2층 말고, 제일 꼭대기에 서 계시라. 비 오면 튼튼한 우산 가지고, 우비도 한 벌씩 사시고.














































  1. 페이퍼 2018.09.12 08:56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역시 닿기 힘들어야 그만큼 더 아름다운가봐. 처음에는 그 돈이면 제주도, 그 돈이면 동남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닌거 같아. 언니 사진 보니까 갈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네 ㅎㅎㅎ 너무 좋다. 해지는 풍경도 비오는 풍경도 맑은 날도 다 푸르고 깨끗한 것 같아.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 두배는 더 좋았겠지만. ^^
    추석 연휴를 앞두고 엄청난 인파가 여행을 가는지 우린 다음주가 아주 폭발적이네. 언니도 귀성길에 합류하겠지? 추석 연휴 잘 보내고 오고 우린 꼭 조만간 만나자 : )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9.13 13:26 신고 BlogIcon GoldSoul

      흐흐흐- 그러게. 하려 했던 것은 일단 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 나중에 하자 생각하지만 그 나중이 언제 올지 모르고. 그리하여 울릉도는 좋았다고 합니다. 나는 이제 울릉도 가 본 사람이 되었어. :)
      추석 전이라 진짜 일이 많겠다. 연휴 지나고 만나잣. 조금 쌀쌀해졌으니 간만에 샤브샤브를 오래 먹어도 좋겠다. 연락할게! 구월 잘 보내고 있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스웨덴은 어쩌다 겨울이 늦게 온다고 해도 좋아할 거 하나 없다. 언젠가 오게 되어 있다." 표지와 제목이 좋아서 찜해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독자평을 보고 주문해버렸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북유럽의 겨울을 상상하며 추운 날씨에 따뜻한 온기를 깔고 읽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여름 이야기도 나오니 초록초록한 여름에 읽어도 좋았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겨울성애자로써 첫 문장은 정말로 겨울에 읽었으면 더 좋을 뻔 했다. 작가는 스웨덴에 살고 있다.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전남편이랑은 이혼을 했고, 아이는 자폐 판정을 받았다.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남편과 이혼을 하고, 곁에 있는 친구들에게 힘을 얻고, 또다른 사랑이 찾아오고, 그 사랑을 또 떠나보내고. 이런 커다랗고도 소소한 일들이 제법 두툼한 책에 담겨 있다. 잘 정돈된, 담백한 일기를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남의 일기를 보는 일이 참 좋구나 생각했다.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게 꽤 좋더라. 앞에 이혼을 하고 비로소 평온해진 마음이 나오는데, 뒤에는 이혼 전 지옥같은 마음이 나오고, 앞에 사랑하는 사람을 현실적인 이유로 떠나보낸 작가가 나오는데, 뒤에는 한창 사랑에 빠져 행복해하는 작가가 나온다. 그때그때 삶의 순간들이 담겨 있는 느낌이었다. 작가는 가까운 사람을 그 사람의 특징으로 부르는데 전남편은 거북이, 아이는 선물이다. 그런데 또 사랑하는 사람은 그냥 S였다. 그리고 힘을 주는 친구들의 이름은 실제 이름 그대로이다. 이 각각의 호칭들도 의미있게 느껴지더라. 제목대로 작가는 힘든 고비들을 꿋꿋이 넘기면서 괜찮아지고 있었다. 요즘 에세이들을 연이어 읽고 있는데, 읽고 있으면 좋은 일기를 꾸준히 쓰고 싶어진다. 자칫하면 그냥 지나쳐 버릴 나의 소소한 기쁨과 슬픔도 잘 정돈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내 일기도 누군가에게 읽혀지면 좋겠다. 그 사람이 남의 일기를 보는 것이 좋구나 생각했음 좋겠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고, 제각각 나름의 사정으로 잘들 살아가고 있구나 느껴진다. 그 일들을 좀더 깊이 알고 싶어진다. 에세이가 참 좋구나, 느끼는 요즈음이다.   


-


   타인에게 솔직하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이렇다고 믿었던 것들은 곧잘 틀린다. 위기에 놓였을 때 '내가 생각했던 나'의 반응과 그 순간 내 진짜 반응은 종종 전혀 달랐다. 어쩌면 인생이란 나 자신에 대한 발견일지도 모른다. 먼지의 무게마저 버겁던 때 깨달았다. 공부나 일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바라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는 걸.

- 8쪽


   그리고 물었다. 

   '지금 당신의 상황이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무엇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그건 무엇인가요?'

   나도 모르게 진심이 나왔다. 

   '다른 한 사람의 어른에게 진정한 가까움을 느껴보고 싶어요.'

- 40-41쪽


   페이스북에서는 모두가 행복해 보여도 사람들은 별 볼일 없이 산다느니, 스웨덴 가구 중 부부관계 없이 사는 부부가 몇 퍼센트라니 하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누구네 집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위안 아닌 위안을 받았다. '다들 이렇게 살아, 다 가질 순 없어.' 그런 생각으로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았고 나 자신을 돌보지도 않았다. 

- 69-70쪽


   지난번에 저녁을 먹을 때 누군가에게 실망한 이야기를 했더니 울로프가 말했다. '세상에는 말로만 하는 사람들이 있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말로만 하는 사람인 게 느껴지면 끊으면 돼. 그리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들만 간직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간단한 거야.'

   울로프와 에밀리는 내게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나 역시 그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좋은 관계란 정말 이만큼 간단하다. 그 마음이 제일 근본적이고 중요하다. 

- 74쪽


   그는 나와는 달리 하나하나 말로 설명하거나 표현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외국어여서인지 그 사람의 성격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언어는 늘 간단하다. 화려한 수사, 긴 문장은 없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어 행복합니다' 그가 내게 하는 감정 표현의 전부다. 그렇지만 그의 단순한 문장들에는 늘 어떤 힘이 있다. 

- 79쪽


   사랑이 버스처럼 지나가면 또 온다는 건 그냥 하는 말이다. 이 사람이 가면 언제 또 이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이 사람을 만나고서 여러 가지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스톡홀름에 출장 일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내게 언제 다녀오느냐고 물었다. 혹시 금요일이 끼어 있으면 그때 스톡홀름에서 만나자도 하려는 걸까 궁금해 물었다. '아,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내가 물어본 건 당신이 스톡홀름에서 돌아오는 날 저녁을 지으려는 거예요. 저녁을 만들어줄게요.' 지금까지 누구도 내게 이렇게 해준 적이 없었기에 놀라고도 기뻐하자 그는 오히려 조금 당황했다. '이거 별거 아니에요. 당신은 늘 내게 이렇게 해주잖아요.'

   S는 나를 늘 보고 있었다. 내가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배려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돌려주려고 했다. 이런 마음이, 이런 사람이 얼마나 특별한지 나는 지금까지의 내 삶을 다 들여서 깨달았다. 

- 94-95쪽


   영화로도 나왔던 소설 <디 아워스>에서 클라리사는 아름다웠던 어느 날을 회상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그때 아 이게 행복의 시작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시작이 아니었어. 행복이었어. 순간이었다고."

   나는 지금 그 순간에 있다. 행복하다.

- 102쪽


   나의 아름다운 주말이자 평안한 평일 저녁이었던 사람이 정말 간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지만 이미 했던 말의 변주곡일 뿐이다. 내가 이전에 한 말을 더 그럴듯하게 한다고 해서 그가 지금 모르고 있는 걸 깨닫게 되는 건 아니다. 그는 이미 다 알고 있고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반복해서 말한다. 사랑해, 행복해.

- 107쪽


    꿈속에서 느낀다. 행복할 수 있다. 다시 사랑할 수 있다. 사랑 받을 수 있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주문처럼 외운다. 

- 238쪽


   아그네스가 말하는 선배 언니는 내가 아는 그 모습이다. 아그네스의 목소리에는 그리움이 가득하다. 아그네스는 아마도 나랑 언니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오늘 더 행복했을 것이다. 오늘 다시 깨달은 거. 잘 살자. 언제 어느 때 나를 아는 누가 다른 나를 아는 누구를 만나 좋은 기억으로 이야기하며 행복해할지도 모른다. 나는 행복의 기억이 되고 싶다. 

- 241쪽


   두 번째 별똥별을 기다리면서 소설가 새라 워터스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40대에 슬픔을 만나게 된다. 마흔 전에는 새로운 것들과 조우하지만 마흔 후부터는 그것들과 이별한다." 그런데 아직 새로운 경험이 나를 찾아온다. 새로움이 지나가고 나서도 이 경험은 경이로울 것이다. 

- 247쪽


  이렇게 아프다니.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감정은 늘 파도처럼 새롭구나. 왜 무뎌지지 않는 건지. 왜 담담하지 않은 건지. 담담함이란 나이를 먹어도 얻지 못하는 지혜처럼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하다.

   이 그리움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직하고 싶다. 지우고 싶지 않다. 나에게 물어본다. 누군가를 이렇게 그리워한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의 허상이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 그 기쁨을 그리워한 적이 있던가? 그만큼 행복해서 그만큼 그립다. 누군가를 이토록 온전히 그리워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안다. 

- 329쪽



  1. 2018.09.07 14:5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9.11 14:10 신고 BlogIcon GoldSoul

      와, 정말요? 어떤 분이 이곳을 추천해주셨을까요? 고마워라. 헤헤-
      동생도 이 책을 읽었는데 읽고나서 푹 빠져서 팟캐스트를 듣다가 이 책 얘기 나오니깐 귀 기울여 들었나봐요. 어제 그 김하나의 팟캐스트를 같이 들었는데, 제가 느낀 거랑 비슷하게 이야기해서 좋은 걸 좋게 느끼는 마음은 이렇게 비슷하구나 생각했더랬어요. 맞아요! 그곳의 생활과 담담한 문장들이 저를 차분하게 만들어주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다시 괜찮아질 거라는 힘이 났어요. 읽어보세요~ 원조 애독자(!!)이시니, 분명 좋을 거예요. :)

여름휴가

from 여행을가다 2018.09.02 20:36



    2018년 8월 31일 밤 10시 3분에 찍힌 31초짜리 영상. 우리는 8월 마지막 날 양양의 바닷가에 있었다. 횟집이 즐비한 거리를 걷다가 내가 짜증을 좀 내었고, 답답해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회는 좋아하지 않지만 저렇게 밖에 있는 테이블에서 바닷바람을 느끼며 생선구이 같은 걸 먹고 싶은데 먹을 수 없잖아, 라고 말했다. 진작 그렇게 말하지, 하더니 한 가게를 보고 저기 가볼까? 했다. 받아든 메뉴판에 죄다 값비싼 회 메뉴여서 결국 일어나 조명이 밝은 밥집이라 별로일 것 같았던 전라도 식당에 갔다. 생선구이랑 황태찜을 두고 고민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집은 생선구이가 유명하다고 하시길래 생선구이를 시켰다. 보통 맥주와 소주를 각각 시켜마시는데, 거기서는 막걸리를 마셔보고 싶었다. 처음엔 옥수수 막걸리를 시키고, 두번째는 곰취 막걸리를 시켰다. 둘다 강원도산이었다. 1L짜리라 두 병 다 마시니 알딸딸했다. 생선구이와 밑반찬을 모두 다 깨끗하게 비우고 식당을 나섰다. 숙소에 들어가 먹으려고 맥주를 몇 캔 샀는데, 한 캔씩 바닷가에서 마시고 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 색소폰 버스킹을 하는 아저씨 주변에 두세 커플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 만들어 놓고, 즐거이 마시다 간 것이 분명한 스티로폼 테이블에 앉았다. 모래 주머니로 의자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자리에 앉아 각자의 맥주캔을 따니 눈 앞에 해 같은 주황빛 달이 보였다. 바다 위 구름 사이에 어여쁘게 떠올라 있었다. 그 자리에 앉아 커다란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이번 여행이 얼마나 고생스러웠는지, 그래서 얼마나 근사했는지 이야기했다. 싸우기도 했지만 함께 있어 참 좋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찍은 금요일 밤 31초의 영상에는 그 절정의 시간이 담겼다. '광화문 연가'가 색소폰으로 연주되고 있고, 쏴아쏴아 파도소리가 6초에 한번씩 들려온다. 5초에 함께 간 사람이 (달이) 저기 올라간다, 라고 말한다. 16초에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밤인가, 라고 흥얼거린다. 덧붙여 쓰레기만 없으면, 이라는 말도. 그리고 영상의 마지막엔 진짜 시원하다, 와, 대박, 이라고 말한다. 오늘 아침 선선한 동네를 산책하면서 이 영상을 반복해서 들었는데, 정말 적절한 타이밍에 잘 찍은 31초라고 생각했다. 단번에 그 날의 양양 밤바다가 떠오르는 영상이라고. 이번 여름에는 울릉도에 다녀왔다.





하루의 취향

from 서재를쌓다 2018.08.26 23:07



   어제는 시옷의 모임이 있었다. 이 책은 출간하자마자 읽었는데, 어제 을지로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던 구절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런 문장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마주앉아야 한다.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술이 아니라면 차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야 한다. 그리고 별 거 아닌 오늘 하루를 말해야 한다. 당장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쌓이면 견고한 '우리'가 되니까. '우리'는 함께 즐거울 것이다. 함께 어려움을 넘을 것이다. 오해가 쌓일 틈은 없을 것이다. 서운함이 쌓일 겨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마주앉아 오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이상." 어제 우리는 을지로 노가리 골목 만선호프의 야외자리에 앉아 생맥주와 노가리, 닭똥집 튀김, 두부김치, 오징어 숙회, 김 안주를 차례대로 시키면서 늦여름 토요일 밤을 즐겼다. 을지로 골목에는 맥주 마시는 사람들로 그득했고, 달은 동그랬고, 바람이 간간이 불었다. 책은 멤버의 반은 읽었고, 반은 읽지 않았다. 그 반은 김민철 씨의 책을 모두 읽었는데, 한 작가를 다같이 이렇게 같은 시기에, 같은 속도로 알아가고 있다는 게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튼 책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고, 간만에 만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하며 먹고 마셨다. 둘은 새로운 직장에 출근을 했고, 또 둘은 이사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연애가 계속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늘 에너지가 넘치는 N은 금요일마다 오리발을 들고 출근을 한다고 했다. 수영과 필라테스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G는 내게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글을 써보라고 했다. 2차로 종로의 포장마차까지 간 우리는 각자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술은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새벽 시간까지 깨어 있는 게 정말 오랜만이라 뭔가 피곤하면서도 조금은 벅찬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제의 우리도 <하루의 취향>의 어느 한 챕터를 차지 할 수 있었을 거다. 우리 각자의 <하루의 취향>에. 책날개에 이런 글이 있다. "취향이라는 것은 한순간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실패와 시도 끝에 생겨나는 결과물이다. 고상하고 우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 속에서 계속 스스로와 마주하게 된다는 점. 이 책은 그 과정에 관한 것으로, 그날그날 마음이 이끄는 쪽을 바라보며 쓴 글이다. 좋아하는 음악, 책, 취미처럼 단편적인 것에서 시작해 사람 취향, 싫음에 대한 취향, 나라는 사람에 대한 취향까지, 흔들림의 과정을 통해 선택한 가치들이 삶의 중심이 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시옷의 모임을 하고 나면 늘 나를 마주보게 된다. 그리고 어제보다 좀더 나은 오늘을 살고 싶어진다. 이상하게 그렇다. 이 책도 그런 책이다. 나다운 하루, 좀더 나답기 위해 하는 노력들이 담겨 있다.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 <하루의 취향>까지. 삼 년여에 걸쳐 김민철 작가를 조금씩 알아왔다. 여전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모든 요일의 기록>이지만, <하루의 취향>까지 읽고나니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우리가 바짝 가까워진 느낌이다. 작가의 일상 이야기가 이 책에 제일 많다. 궁금했던 남편 이야기도. 제일 좋았던 글은 지하철에서 다시 읽어보니 '우리도 사랑일까'. <봄날은 간다>의 상우 이야기로 시작해 <우리도 사랑일까>의 루 이야기를 거쳐 자신의 남편 이야기로 끝나는 그 글. 그 글의 끝은 이렇다. "상우의, 루의 사랑 취향을 가진 나는 어떤 남자와 결혼했냐고? 언젠가 남편이 내게 말했다. "사랑은 한 사람을 평생 알아가는 과정이야." 여기, 이 사람의 사랑에 관한 가치관이 모두 들어 있다. '한 사람을', '평생', '알아가는', '과정'. 이 단어들의 의미 하나하나는 설명하지 않도록 하겠다. 어쨌거나 나는 그 말을 한 사람과 결혼했다. 자랑은 여기까지." <우리도 사랑일까>를 다시 봐봐야겠다. 순전한 루의 마음으로.  


-


  그 말을 오래오래 곱씹었다. 그렇다. 이 집은 우리의 선언이었다. 과도한 대출을 받아서 비싼 동네에 비싼 집을 사고 그게 오를 거라 기대를 하며 하루하루 빚을 갚으며 지금의 행복을 유예하는 삶에 대한 거부. 우리 깜냥의 대출을 받아서 오를 거라는 기대도 없이 나중에 부자가 될 거라는 희망도 없이 지금 잘 꾸며놓고 지금 잘 살겠다는 선언.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우리 둘이 괜찮으면 괜찮다는 우리 삶에 대한 선언. 눈을 질끈 감았다. 마음을 단단히 묶었다. 그렇게 공사가 시작되었다. 

- 29쪽


   몇 주 후 엄마와 이모가 우리 집에 다녀갔다. 가장 반대하던 그들이었기에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하지만 기우였다. 그들은 우리가 꾸며놓은 집을 보는 순간, 단숨에 우리의 선언을 이해했다. 그때 알았다. 원하는 대로, 내 취향대로 살아버리는 것은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한 선언이라는 것을. 내 인생을 선언할 권리는 결국 나에게 있다는 것을.

   그렇게 망원호프는 우리 삶에 대한 선언이 되어버렸다. 

- 29-30쪽


  "어젯밤, 벚꽃 산책 진짜 좋았어요."

  "벚꽃 산책?"

  "응."

  "누가? 우리가?"

  이럴 수가. 설마 기억을 못하는 것인가. 완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선배에게 말했다.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는데, 좋은 날이 오면 최대한 길게 늘려야 한다며, 그래서 나 데리고 나갔잖아요."

  "아, 아. 기억난다. 거기 벚꽃 너무 좋지?"

  "완전 완전 완전 좋았어요. 선배는 좋다면서 풀밭에서 막 뒹굴었잖아."

  선배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그러더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내가 뒹굴었다고? 그 풀밭에서?"

  "응. 한강 내려다보이는 그 풀밭에서. 나도 같이 뒹굴까하다가, 나는 관뒀지 뭐."

  "진짜 내가 뒹굴었어? 거기에?"

  "응. 기억 안 나요?"

  "거기 완전... 온 동네 개들이 나 와서 볼일 보는 풀밭이야... 내가... 거길... 뒹굴었다고?"

  나도 완전 굳은 표정으로 선배를 잠깐 바라봤다. 또 선배의 필름이 끊어졌던 것이다. 이제 내가 뒹굴 차례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배를 잡고 뒹굴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 42-43쪽


   "저 너무 대충하죠?"
   선생님은 싱긋 웃더니 대답했다.
   "민철 씨는 스스로에게 참 관대한 것 같아요."
   뭔가 나의 핵심을 순간적으로 간파당한 느낌이었다. 스스로에게 관대하다니, 이건 욕인가 칭찬인가 잠깐 고민을 하다가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살면서 나 스스로에게 관대한 분야가 하나쯤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았으니까. 스스로에게 관대한 그 시간이 나의 숨구멍이 되어주고 있으니까. 물론 바로 옆자리 아저씨에겐 스스로에게 엄격한 그 시간이 숨구멍이 되어주고 있었지만. 숨구멍의 모양도 살아가는 방식만큼 다양한 건 당연한 것이다. 어쨌거나 스스로에게 관대한 마음으로, 이번 주에도 나는 공방 문을 연다. 
- 57쪽

무언가로 향하는 마음이
취향이라면
사람만큼 자신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또 있을까

입꼬리가 예뻐서,
눈매가 선해서,
반바지가 잘 어울려서, 
말이 잘 통해서,
혹은 
침묵이 편안해서,
입맛이 비슷해서,
농담이 잘 맞아서,
실수까지 귀여워서,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서.

모든 사랑에 붙는 
모든 이유는 결국 하나가 아닐까.

당신이라는 사람이 
너무 내 취향이라서.
- 79쪽

   루루는 가장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우리가 늙으면 내가 매일 이 짓을 해왔다는 걸 고백하려고 했어. 당신을 웃게 해주려고."
   아, 나는 이보다 더 극진한 사랑 고백을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한 사람을 보며, 매일 같은 장난을 쌓으며, 늙었을 때 그 장난을 고백하는 장면까지 생각하는 사랑. 늙은 그 사람이 단 한 번 깔깔 웃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매일 마음은 간질거리고 그 마음으로 오늘치 차가운 물을 준비하는 사랑. 한 순간의 떨림은 사랑의 도입부라 인정하고, 같이 쌓는 시간에 더 많은 마음을 내주는 사랑. 둘만 알아듣는 농담담 하나가 생길 때마다, 귀중한 보석 하나를 얻는 기분이 드는 사랑. 물론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은 사랑에 이런 구멍이 생기고, 내일은 또 다른 부분에 구멍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까지도 사랑이라면? 그 구멍이 우리 둘의 사랑에 독특함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라면?
- 86-87쪽

   대단한 깨달음을 주는 스승을 만나지 않아도, 위대한 책을 만나지 않아도, 때론 시간이 훌륭한 스승이 되곤 한다. 20대의 치기 어린 나에 대한 깨달음도, 그때의 치기 어린 나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용기도 결국 시간과 함께 온 것처럼. 
- 93쪽

   삼십 이전에는 고통과 격정에 완전히 자신을 맡겨야 한다.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 그렇다! 털 뽑힌 호랑이가 되어야 한다. 안 그럴 경우, 맥없는 고양이일 뿐이다. 
-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 105쪽

   학생의 세계에서 직장인의 세계로 옮겨간다는 건 단순히 돈을 버는 세계로 편입한 것이 아니었다. 그 돈이 허용하는 수많은 경험들의 세계로 동시에 입장하는 것이었다. 3천 원짜리 학교 앞 밥집에서 1만 2천 원짜리 파스타의 세계로, 천 원짜리 커피에서 5천 원짜리 아메리카노의 세계로 물 흐르듯 입장했다. 못 먹던 것을 먹기 시작했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 들리던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내가 들어온 광고 분야는 그 모든 감각들의 최전선에 있는 세계였다. 알지 못했던 그 모든 감각들과 소개팅 하느라 나는 외로울 틈이 없었다. 매 순간 눈과 귀와 코와 입은 바빴다. 그중 특히 입이 바빴다. 
- 109쪽

   "몇 년을 노력했더니 이제 와인을 따면 와이프가 한 잔까지는 마셔. 든든한 노후 준비 하나를 마친 느낌이야." 선배의 말을 듣다가 무릎을 탁 쳤다. 술 한 잔이 노후 준비라니. 근사한 표현이었다. 정확한 표현이었다. 저녁에 마주앉아 술 한 잔을 같이 마시며 하루의 일을 두런두런 말하는 시간을 확보한 것이 노후 준비가 아니라면 무엇이 노후 준비겠는가. 
- 131쪽

   "광고가 제 인생에 훌륭한 수단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수단'이라는 말 앞에 선배의 표정이 일그러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내 생각은 더 명확해졌다. 누군가에겐 일이 인생의 목적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일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단이 되었으면 했다. 그것이 단순히 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것을 훌륭한 수단으로 만드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 149쪽



  1. BlogIcon wonjakga 2018.08.27 23:38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읽었어요 :) 한 번 더 읽어보려구요. 저는 작가를 이 책으로 처음 만났는데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어요.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9.02 19:34 신고 BlogIcon GoldSoul

      아, 그렇구나.
      읽어보세요. 좋아요- :)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9.20 19:52 신고 BlogIcon wonjakga

      이번주에 김민철 작가의 강연이 있어서 갔었어요. 요즘 일에 치여사는지라 갈까말까 고민 많이 했는데 가길 잘했다 생각했답니다. 금령님 생각도 났어요 헤헷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9.21 08:18 신고 BlogIcon GoldSoul

      앗! 저도 갔었어요. 광화문 교보 맞죠?
      와와, 우리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네요!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9.21 08:24 신고 BlogIcon wonjakga

      대애박!! 완전!! 넘 신기해요!!!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9.21 13:16 신고 BlogIcon GoldSoul

      진짜요! 저는 살짝 늦었는데, 엄청 말 잘하셔서 놀랐어요.
      기록을 꾸준히 해야겠다 생각했고, 나를 자주 들여다 봐야겠다고도 생각했고, 왜? 라는 질문도 자주해야지 생각했더랬어요. ㅎㅎ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9.21 17:32 신고 BlogIcon wonjakga

      제가 그곳에서 금령님 생각이 났던 건 이미 일상의 기록을 근사하게 하고 계신 분이기에 :) 같은 곳에 있었다니 더 반갑네요. 연휴 잘 보내시구요 나중에 또 어디선가? 뵈어요-

    •  address  modify / delete 2018.09.21 18:43 신고 BlogIcon GoldSoul

      앗, 근사한이라니, 너무나 좋은 것! 헤헤
      현정씨도 추석 잘 보내요. 연휴 시작전 금요일 저녁,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아요. 으하하!
      우리 좋은 가을 보내보아요.
      그리고 또, 만나요! ㅎㅎ

  2. 2018.08.29 02:4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동상이몽>의 한고은 편을 챙겨 보고 있는데, 이번주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포장마차에서 골뱅이탕에 레몬소주를 마시며 더위 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한고은이 말했다. 여보, 나랑 결혼해줘서 정말 고마워. 이 말을 세 번쯤 한 것 같다. 그날의 대화에 의하면 평소에도 남편에게 자주 했던 말이었다. 한고은은 여보가 없었으면, 이라고 말하더니 울컥해져서 술잔을 놓았다. 이를 본 남편이 한고은의 등을 토닥여줬고, 한고은은 울 것같은 표정으로 남편을 안았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결혼하기 전에는 나한테 가장 쉬운 일은 죽는 거였어. 여보랑 결혼하고나서 가장 달라진 건 세상에서 죽는 게 제일 무서워. 한고은은 지난 날이 너무 힘들었고,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남편이 그동안 고생한 자기에게 수고했다며 준 선물같다고 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서 이 행복을  누리고 싶다고 했다. 지금이 너무너무 행복해서 이 행복을 누가 앗아갈까봐 겁날 정도라고 했다. 처음 만날 때부터 남편은 한고은에게 자잘한 칭찬들을 계속 해주었단다. 그게 자존감이 낮았던 한고은이 자기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단다. 어쩌면 이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나는 진짜 괜찮은 사람인 지도 몰라. 그렇게 자존감이 쌓여가고, 자신도 남편처럼 칭찬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단다. 한고은은 남편을 만나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알아간 것 같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는 회사원의 삶, 매달 나오는 월급, 집-회사-집으로 이어지는 쉴틈없는 평일을 보낸 뒤 맞이하는 달콤한 불금과 주말,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먹고 술잔을 기울이는 즐거움. 그래서 비록 살은 쪘지만 더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 없이 살자>. 이 책도 나는 자존감의 이야기로 읽었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호텔에서 근무를 했고, 연애를 하다 결혼했다. 아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무척 다른 사람이었고, 완벽한 하나가 되고 싶었던 여자는 그렇게 되지 않아 힘들었다. 몸에 이상이 왔고, 마음에도 이상이 왔다. 점점 더 예민해져갔다. 결국 아이는 생기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이혼 밖에 없을 것 같은 시간이 이어지고, 남자는 결심을 했다. 우리, 1년동안 세계여행을 가자. 남자는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했고, 여자가 운영 중인 게스트하우스도 타인에게 넘기자고 했다. 남자의 결심에 여자는 쉽게 동조할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상태 그대로 살아가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했다. 결국 두 사람은 1년동안 여행을 떠난다. 남자에게는 세계여행의 꿈이 있었다. 여자는 비행공포증이 있었고, 생리통도 심했고, 장 트러블도 있었다. 여행 초반 여자는 모든 상황이 무섭고, 싫고, 불평스러웠고, 서러웠다. 그래서 눈 앞의 것들을 잘 즐기지 못했다. 그러다 여행 기간이 길어지고, 적응이 되면서, 비로소 받아들이게 된다. 눈 앞의 광경들을, 다시 못 할 이 시간 경험들을, 나와 다른 남편을. 여행지나 여행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여행을 하는 여자의 마음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다. 피폐했던 마음이 어떻게 회복되어 갔는지, 어떤 상황들을 겪어나가며 둘이 단단해졌는지, 아이가 꼭 있어야 완벽한 가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여자가 아이 없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결국 자존감을 높이는 건 좋은 사람이 곁에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그런 준비가 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나저나 남미는 정말 축복인가 보다. 이 책의 저자도 남미의 자연을 보면서 가장 많은 위안을 받았다.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 


   30번이 넘도록 비행기를 탔지만 그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힘들 필요가 없는 일인데, 무언가에 사로잡혀 두려워하는 내 모습이 한심하고 안쓰러웠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분명 힘들었던 시간이 헛되지 않으리란 믿음은 있었다. 그 믿음은 나로 하여금 극도의 무서움을 이겨내고 다시 도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 세상에 100퍼센트 나쁜 일은 없다. 시련은 인간을 성숙시키기 때문이다. 시련의 늪에 빠져 있을 때는 그 시간이 힘들기만 하고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과정이 내 인생에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고, 나를 성장시켰는지 깨달았다. 

    이제는 힘든 일이 있어도 크게 좌절하거나 감정이 바닥을 칠만큼 심하게 우울해하지는 않는다. 또 하나를 배우고 성장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 68-69쪽


   우리 부부는 더욱 외로움과 친해져야 할 의무가 있다. 나이 들어 찾아올 자식이 없는 우리는 노년에 남들보다 더 외로워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언젠가는 둘 중 한 명은 혼자 남을 것이다. 그때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외로움과 친해져야 한다. 

- 191쪽


  10여 년의 치열한 전투와 상처, 1년간의 여행,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그는 잘못한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 또한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다름을 받아들이는 게 서투를 뿐이었고, 어디서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스스로 깨우치며 배우고 있었다. 10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다.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내가 편안해지니 그가 편안해 보였다. 그를 배려하려고 노력하니 그가 알아주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니 상대방이 보였다.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 206쪽




  1. 하진 2018.08.31 01:47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언니. 한고은 남편 너무 괜찮지? 티비로밖에 볼수 없지만 너무 괜찮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