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첫날, 앞으로의 3일을 알차게 보내보겠노라고 일찍 일어나 조조영화를 보러 갔더랬다. <나의 사랑, 그리스>였는데, 동생이 말한대로 영화는 제목만큼 밝지 않았고,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기까지한 우리의 IMF 생각이 났다. 동생은 그때 엄마가 휴지를 사주지 않아서 예전에 엄마 가게에서 쓰려고 만들어놓은 냅킨을 일일이 펴서 일을 봤었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그 시절 혼자 서울에서 흥청망청 산 것만 같아 미안했다. 우리는 이제 그 이야기를 하며 조금은 웃을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의 그리스는 어떨까,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영화를 보고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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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스>는 기다리던 영화였다. 작년에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고 여러 이미지들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을 했다고 해서 그 부분들이 어떻게 영화화되었을까 궁금했다. 영화는 역시 원작의 기대에 미치진 못했지만, 꽤 괜찮았다. 영화를 보고 기사를 찾아보니 마틴 스콜세지는 오래된 가톨릭 신자이고, 젊은 시절에 <침묵>을 읽고 그때부터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여러 번 무산이 되고 그의 나이 60대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나이가 들고 세상을 보는 눈이 젊은 시절보다 깊어진 뒤에 만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내 생각인지 마틴 스콜세지의 말이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로드리게스 신부 역의 앤드류 가필드는 늘 얼굴이 어린 이미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영화에서 그를 좀더 다르게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데, 후반부가 이상한 거다. <침묵>은 저런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결말을 재해석해서 이야기를 좀더 늘어뜨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출간되자마자 사다놓았다가 잘 읽히지 않아 책장에 꽂아뒀던 <침묵의 소리>생각이 났다. 이 책은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가 사람들이 <침묵>을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제목 그대로 '신이 침묵하고 있다'라고 읽어내는 걸 보고 그렇지 않다고 '신은 침묵하지 않고 그 침묵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해주기 위해 그의 말년에 펴낸 책이다. 소설 <침묵>의 집필 과정 등에 대한 에세이와 <침묵>과 관련된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은 잘 읽히지 않았는데, 에세이는 잘 읽혔다. 그리고 소설의 중요한 결말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결말이 관리인의 일지 형식으로 되어 있어 많은 나라에서 책을 출간을 할 때 해설 부분으로 생각을 하고 싣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그 일지 부분이 <침묵의 소리>에 실려있다. 그 일지 부분이 바로 영화의 마지막 결말 부분이다.
책을 읽어나가는데, <침묵>에서 잊혀지지 않던 이미지들이 있었던 것처럼, 영화 <사일런스>의 한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로드리게스 신부, 그러니까 앤드류 가필드가 관청으로 고문을 받으러 떠나는 신자들에게 재차 낮게 읊조리던 장면. 밟으세요, 밟으세요. 순교하지 말고, 신의 조각상을 발로 밟고 배교하라는 것. 그 장면으로 앤드류 가필드를 다시 보게 됐다. 언젠가 나가사키에 가보고 싶다. 엔도 슈사쿠가 주로 머물렀던 호텔을 검색해봤는데, 오래된 호텔이었다. 높은 곳에 있어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좀 힘든 곳이란다. 그 대신 나가사키 전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그 호텔에 머무르면서 나가사키 야경을 내려다보며 소설 <침묵> 속 인물들을 떠올려 보고 싶다. 신을 믿는 신자들에게 신을 새긴 조각상을 발로 밟아도 괜찮다고 했던 신부, 박해받는 이국의 땅에서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던 신부, 갖은 고문과 집요한 강요로 인해 개종을 했지만 마음 속 깊이 자신의 신을 섬기고 있었던 신부. 그리고 끊임없이 배교하고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던 신도.
*
내가 취재하러 가는 목적은 사실을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면 이미 충분히 조사해놓았기에 머릿속에 이미 들어가 있다. 내가 그곳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은 나의 주인공들이 일찍이 거기서 맡았던 공기의 냄새나 귀로 들었던 바람 소리, 눈으로 보았던 태양빛과 풍경인 것이다.
그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확인하면서 '그는 이 바람소리를 이렇게 들었겠지.' '틀림없이 이 바다를 이렇게 보았을 거야'라고 상상한다. 그것이 소설을 쓸 때 자신감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나가사키를 다시 찾아감으로써 내 안의 주인공들의 모습을 차츰 분명하게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 p. 27-28
그러나 "왜 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는가?"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냥 소설가의 감이겠지요."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가란 자기 자신을 투영하기 쉬운 인물을 직관적으로 알아내기 때문이다.
- p. 40
여담이지만, 일찍이 내 소설 중 하나가 대학 입학시험 문제에 출제된 적이 있었다. 작품의 일부가 지문으로 인용되고 나서 "주인공은 어떤 기분으로 그러한 행위를 하였는지, 다음의 보기에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항을 선택하시오"라는 질문이었다. 나중에 나도 문제를 풀어 보았지만,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대학이 정답으로 인정했던 답은 전혀 달랐다. 즉 나는 모든 항목을 다 선택했는데, 대학은 단 하나의 항목만이 정답이라고 정해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말해 두거니와, 그 글을 쓴 작가는 대학교수가 아니라 바로 나다.
- p. 77
아마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가장 적합한 거리나 장소를 그 어딘가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마음의 열쇠가 꼭 들어맞는 열쇠 구멍을 일본 혹은 외국의 어딘가에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예를 들어서 나는 가나자와를 좋아한다. 집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아름다우며, 음식도 맛있고, 정서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좋아하는 도시'에 불과할 뿐이다.
오카야마에 비세이쵸라는 마을도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그곳은 어머니의 고향이다. 하지만 '나 자신의 거리'라는 느낌은 없다.
'자기의 거리'란 자기 자신이 지금까지 품어왔던 문제, 지금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 이런 것들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장소이다.
호리 타츠오는 자신의 내면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를 나카노 현의 오이와케에서 찾아냈다. 나에게는 그것이 나가사키이다.
어떤 사람에게 나가사키는 단지 하나의 관광도시일지도 모르고, 또 어떤 사람에게 나가사키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도시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경우에는 각자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나가사키는 내가 소년 시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끌어안고 왔던 문제를 모두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마치 맛도 있고 영양분도 풍부한 음식처럼.
나가사키에 가면 그 거리가 내게 끊임없이 문제를 내주고 말을 건네준다. 그것은 그러나 나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나가사키를 보아야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각자만의 문제가 있고, 또 자신만의 마음의 장소가 있다.
- p. 89-90
일본에 신의 복음을 전하러 온 성자인 기리시단 신부(바테렌)는 왜 소박한 일본 신도들에게 가혹한 박해를 참으라는 지혜를 강요했을까? 어째서 박해를 참으면서까지 천국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 왜 가혹한 박해를 벗어나기 위해서 배교하나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신이 만일 자비의 신이라면 이런 경우 배교했다고 해서 벌을 주실 리는 없지 않겠는가?
- p. 108
그들은 여기에서 '어머니'의 이미지를 보았다. 그들은 '아버지'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배교자인 그들에게는 자기의 어두운 과거를 알고 있는 데우스가 무서웠다. 이때 그들에게 있어서 데우스는 추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틀림없이 순교한 서구의 선교사의 이미지로서 느껴졌을 것이다. <순교의 권유>를 그들에게 말하면서 자기 자신도 고문을 참고 견디면서 신앙을 관찰했던 이들 서구 선교사가 그대로 데우스의 이미지와 겹쳐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강한 선교사나 강한 신도는 배교자에게 진노하고, 배교자를 책망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엄격한 '아버지' 대신에 자신들을 용서해주고, 그 상처를 같이 아파해주는 존재가 필요하였다. 분노의 아머지가 아니라 자상하고 부드러운 어머니를 필요로 했다. 개신교도들에게 성모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에게 있어서는 성모는 중개자로서의 의미가 있다. 성모에게 드리는 기도 속에 여러 번 "중개"라는 말이 들어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성모는 배교한 자들과 그들의 자손에게 자신들을 위해 빌어 주시는 어머니가 되었던 것이다.
- p. 114
지오로 일행이 돌아간 뒤에 방에 돌아왔다. 술 탓일까, 열이 나서 창문을 열자 큰 북을 두드리는 듯한 바닷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움은 깊숙이 깔려 있었다. 바닷소리가 어두움과 정적을 한층 깊게 만들고 있는 듯 하였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밤을 보냈지만 이처럼 깊은 밤은 드문 일이었다.
- p, 170
이 글은 밀크팬이 없어 양은냄비로 끓인 핸드메이드 밀크티를 마시며 쓰고 있다.
베를린에 가볼까 했다. 그렇다면 관련된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 검색을 했는데 이 책이 나왔다. 최민석 작가가 '고독한 도시' 베를린에 90일간 머물면서 쓴 일기다. 평에 엄청 웃기다는 얘기가 있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웃겼다. 어떤 페이지는 정말이지 너무 웃겨서 책을 덮고 소리내서 엄청 웃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너무 웃겨서. 그리고 역시 사람은 일기를 써야 돼, 라는 결론을 내렸다. 최민석 작가도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 않는 고독한 도시 베를린에서 가을과 겨울을 보내면서 '한 번 써볼까' 하고 독자에게 선물받은 다이어리가 마침 있어 쓰기 시작한 일기다. 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하루도 빠짐없이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쓰다보니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처음엔 혼자였던 작가에게 꽤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고독한 도시 베를린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일기를 읽어보면 꽤 많은 일들을 했다. 이렇게 완성된 90일의 일기는 근사했다. 매일매일은 별 게 아닌데, 그 매일매일이 500여 페이지로 모이니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작가만의 근사한 어떤 것이 되었다. 나는 그 어떤 것이 부러워, 나의 일상도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500페이지쯤 모아보고 근사할 것이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베를린 일기 표지색을 닮은 대망의 2017년 스타벅스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겨우 이틀치를 썼을 뿐이다. 젠장.
나의 이 게으름은 "밥 먹고 바로 자면 소 된다"의 소만이 이해할 것이다.
아, 버섯머리, 택시국제호구 등등의 이야기는 정말 웃기다. 버섯머리 일기가 끝나고 문제의 그 버섯머리 사진이 나올 때는 정말 책을 덮고 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흐흐흐흐흐흐-
포스트잇,
고독은 현재 진행형일 때는 처참하지만, 과거 완료형일 때는 낭만적일 수 있다.
자발적인 이 일기가 그 낭만의 증거가 되길 바란다.
일곱 번째 날이었다.
- p. 42
생각보다 체코인의 생활이 풍요롭지 않은 것 같다. 숙소를 제외한 물가가 예상보다 훨씬 낮다. 나보다 나이가 약간 많아 보이는 한 남자가 주변을 살피다, 거리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털어 주머니에 넣었다. 서울에서 평소에 치르는 값의 반, 혹은 1/3을 치르고 먹고 마셨다.
어쩌면 나는 이곳에서 부자일지도 모르겠다. 전혀, 기쁘지 않았다. 순간 "왜 독일은 맥주가 싸느냐?"라는 내 질문에 대한 학과장의 대답이 떠올랐다. "맥줏값이 비싸지면,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요!" 노동자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땀의 가치가 다이아몬드보다 빛난다는 전설이 이 세상에도 통용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프라하는 살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흔한 수사지만, 슬프도록 아름다운 도시다.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열여섯 번째 날이다.
- p. 85
유럽인들이 왜 눈인사를 하고, 즉각 동거를 하고, 시와 소설을 들고 다니고, 사소한 모임에 모이는지 알겠다. 이들은 춥고 외로운 것이다.
- p. 97
오늘은 학원을 개강한 이틀째다.
나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모두가 실업자였다.
그들은 모두 어렸고, 모두 가난했다.
나는 이차와 삼차를 샀고, 전철이 끊겨 택시를 타고 왔다.
택시비는 서울에서 수원까지 가는 비용 이상이 나왔지만 나는 친구를 사그ㅟ었다.
모두가 나를 좋아했다.
Tonight everyone liked me.
구것이 전부다.
- p. 104
지난 한 달간 나는 生에서 人間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아직 생의 종착역까지는 많이 남았다. 내 열차가 너무 많은 승객들로 대화조차 불가능한 것은 곤란하지만, 아무 승객도 없이 그저 운행 일정을 지키기 위해 달리는 열차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종착역은 같지 않더라도,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한 명의 승객이 있었으면 좋겠다.
젠장, 이곳도 가을이다.
서른한 번째 밤이다.
- p. 162
살면서 여러 번 느꼈지만 영어를 전혀 못 하면 인생의 범위는 60억분의 5천만, 즉 120분의 1로 줄어든다. 달리 말해 전 세계의 범위가 1이라면, 인생을 살며 분노를 느끼든, 좌절을 겪든, 정부에 불만이 쌓이든, 혹은 주머니에 돈이 쌓이든 간에 상관없이, 그저 120분의 1의 세계에만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영어를 그럭저럭 구사하면 자신이 머무를 수 있는 세계의 범위는 2분의 1로 확장된다. 스페인어까지 하면 5분의 3, 그 외 불어, 독어, 이태리어까지 하면 자기 세계의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는 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은 고단한 이방인의 삶이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애석하지만 이것이 현실이기에, 다시 영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해 볼까 생각 중이다. 그다음에 어중간하게 끝내 버린 일본어를 다시 해 볼까 싶다. 프랑스엔 별 관심이 없으니 통과하고, 이태리어와 독어는 (양국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다음이다(냉정하게 말하지만, 그만큼 쓸 일이 없는 것이다).
두번째 일기장을 다 썼다.
- p. 251-252
확실히 동독 출신 독일인들은 세속적인 욕심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상을 준다(한국 나이로 예순인 그는 유행이 지난 청바지를 매일 입고, 배낭을 직접 메고 다니며, 학교에서 독일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지낸다). 그러면서 그는 "연금이 나올 때까지 계속 일해야 해" 하며, 내 식사 값까지 치르고 연구실로 갔다.
(...)
돌아오는 길에 캠퍼스 한구석에 대나무가 심겨 있었는데, 그는 잠시 멈추더니 "으음, 한국 냄새"하며 공기 중에 떠다니는 대나무 향을 흠뻑 마셨다.
- p. 281
나는 이제 무엇에도 크게 들뜨지 않거나, 무엇에도 심드렁하거나, 무엇이든 이미 최상의 경험을 해 봤을 나이에 도달했는지 모른다. 혹, 그런 나이가 아니라면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겪고 즐기고, 고통받았는지 모르겠다. 그 탓에 크게 화를 내거나, 크게 실망할 일은 없지만, 이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 p. 302
돌이켜 보니, 일기를 쓰는 시간이 큰 힘이 됐던 것 같다.
돌아갈 날까지 일기를 계속 쓸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실수하면 인정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사과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감사하고, 남은 시간을 소중히 쓰기로 했다.
- p. 319
포르토는 실로 마음에 들었다. 베니스처럼 아름답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친절하고 여유가 넘쳤으며, 적당한 자존심과 적당한 관용을 선보였다. 거리엔 따뜻한 햇살이 넘실거렸으며, 믿기 어렵게도 나는 1월 1일에 노천카페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식사를 했다. 많은 시민들이 시 당국이 설치한 의자에 앉아 햇살을 쬐고 있었다. 아마 훗날 내가 불순한 예술적 반역 행위를 저질러, 모국의 정부로부터 추방을 당한다면 그때 나는 포르투갈의 포르토를 자발적 유배지로 선택할 것이다. 사람들과 풍경과, 바다와 강과, 건물의 적당한 낡음과 거리의 적당한 어지러움이 내 마음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 p. 426-427
어젯밤 택시 기사에게 요금을 두 배로 지불한 것 빼고는 모든 것이 순조롭다(역시, 유럽은 방심할 수 없는 곳이다. 그래도 나폴리나 상하이만큼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 p. 450
많은 사람을 만났고, 해일처럼 그 만남들이 모두 지나가니, 결국 비수기의 해변처럼 쓸쓸하고 차가운 일상만이 남았다. 다시 할 일은 없어졌고, 어쩌면 1년 내내 이런 날들이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인가'하는 상대성이지만, 크게 보자면 지금 맞은 한 해가 여생과 별 차이 없을 지도 모른다.
- p. 491
"아빠, 내가 다시로 군 데리고 들어갈게."
2권까지 다 읽고 요시다 슈이치 인터뷰를 찾아봤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
- 당신은 왜 소설을 쓰는가?
- 언어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이 소설을 통하면,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 사람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3월에 개봉하는 모양이다. 사실 소설보다 영화가 더 좋을 것 같다. 영화 캐스팅을 알고 소설을 읽었더니 영화의 장면들이 눈에 그려졌다. 내 상상 속에서는 동성애 연기를 하는 츠마부키 사토시가 꽤 잘 어울렸다. 두꺼운 두께로 두 권이나 되지만, 가독성이 상당하다. 잔인한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최근 곁에 나타나 아주 친해진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뉴스에서 보도하는 용의자와 생김새가 상당히 비슷하다. 나는 그 사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사람의 말을 백퍼센트 신뢰할 수 있을까?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랬을 거다. 의심하고, 또 의심했을 것이다.
포스트잇,
(...) 그런데 막상 앉아보니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해서 다시로가 그 자리에서 도시락을 먹고 싶어하는 심정도 이해가 갔다.
아이코가 손수건을 풀어 헤치고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닭튀김, 새우튀김, 미트볼, 계란말이, 잔멸치를 뿌려놓은 밥.
아이코가 옆에 있는 다시로에게 시선을 돌렸다. 흥미 없어 보였던 것치고는 도시락 내용물을 꽤나 찬찬히 살펴본다.
"이거 먹어." 아이코가 닭튀김을 손으로 집어서 다시로의 도시락에 넣어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 1권, p.41-42
아스카는 그런 남자들과 10년 가까이 생활하던 무렵에 료를 만났다. 일하고 있던 캬바쿠라에 불쑥 들어온 손님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료가 가게 문을 열기 몇 초 전, 아스카는 '아,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도 뭐가 왔는지는 몰랐지만, 그런데도 뭔가가 왔다는 것만은 강렬하게 느껴졌다.
- 1권, p.79
무인도가 점점 더 멀어졌다. 이즈미는 남자가 있었던 폐가에서 밤을 맞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별이 총총 빛나는 오키나와의 밤하늘은 깊고 깊다. 지금까지 봐왔던 평범한 밤하늘이 밀푀유처럼 켜켜이 겹쳐진 것처럼 보인다. 이즈미는 언제나 그 속에 자기 팔을 넣어보고 싶었다. 끝도 없이 깊이 빠져드는 팔에 따끔따끔한 별들의 감촉이 느껴질 것 같았다.
- 1권, p.132
"어?"
"아냐, 아무것도."
나오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돌아섰다. 유마는 눈을 감고 지금 본 나오토의 얼굴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는지 시험해 보았다. 늘 특징이 없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특징이 없는 얼굴에는 특징이 없는 얼굴 나름의 특징도 있었다.
- 1권, p.151
"그렇군요. 그럼,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복도로 나오는 순간,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복권에 당첨된 백만 엔을 숨길 장소를 찾아 헤매던 가족들의 옛모습이 떠올랐다. 어제까지는 없었던 것인데도 막상 손에 들어 오자, 이제는 그 돈이 사라질까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 1권, p.222
(...) 다쓰야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대만고무나무에 기대어 있는 이즈미만 색칠이 안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슬펐던 것은 기다리고 있던 와카나가 학교 건물에서 나온 순간, 마치 마지막 힘까지 짜내듯 미소 띤 표정을 지으며 와카나에게 달려가는 이즈미의 모습이었다.
- 1권, p.302
결국 소중한 사람이 생긴다는 의미는 지금까지 소중했던 것이 이제 소중하지 않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중한 것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줄어가는 것이다.
- 2권, p.35
'널 믿어도 되겠지?'
나오토에게 전하고 싶었던 간단한 말이 그것이라고 알아차렸다. 그러나 말로 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웠다. 유마는 오렌지를 나오토 손에 건네주고, "됐어. 말하고 싶지 않으면"이라며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 2권, p.45
친구가 가자고 청하면 클럽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지난번에는 아침까지 마시며 떠들썩하게 즐기다 그 클럽에서 알게 된 남자와 호텔에 갔다. 나오토를 만나기 전의 생활로 돌아가면, 다 잊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오토를 만나기 이전의 생활과 나오토를 모르는 생활은 다르다. 이미 만난 이상, 안 만난 것으로 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뼈저르게 깨달을 뿐이었다.
- 2권, p.254
제주도에 가져가서 다 읽고 오려고 했지만, 역시나 여행에서는 얼마 읽지 못했고 다녀와서 다 읽었다. 표지도 좋고, 크기가 작고 두께가 얇은 것도 좋은데, 글씨가 좀 크다. 글씨를 적당히 줄이고 더 얇게 만들어도 좋았을 텐데. 작가 소개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평생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콜로라도 주를 배경으로 '홀트'라는 가상의 마을을 만들고 쓴 소설 <이븐타이드> <베네딕션> 등, 총 다섯 편의 소설과 유작인 <밤에 우리 영혼은>을 남기고 2014년, 71세에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상의 마을을 만들고 그곳의 이야기를 연이어 쓰다니,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 멋진 가상의 마을 '홀트'에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며 오랜 시간을 보낸 여자와 남자가 있다. 여자의 남편도, 남자의 부인도 세상을 떠났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 어느 날 여자는 남자에게 제안을 한다. 자신과 자러 자신의 집에 와달라고. 혼자가 된 지 오래되어 외롭다고. 외로우니 밤에 자신을 찾아와 함께 잠을 자고,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느냐고.
아니, 섹스는 아니에요. 그런 생각은 아니고요. 나야 성욕을 읽은 지도 한참일 텐데요. 밤을 견뎌내는 걸,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말하는 거예요. 나란히 누워 밤을 보내는 걸요.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그렇죠?
- p. 9
두 사람은 함께 밤을 보낸다. 처음엔 어색하고 긴장했지만, 점점 편안해진다. 여자는 와인을, 남자는 맥주를 한 잔씩 하고 여자의 집 이층으로 올라가 이를 닦고 침대에 나란히 눕는다. 잠들기 직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 나눈 이야기들은 대체로 가벼운 것들이었지만, 함께 지내는 밤이 늘어날 수록 대화는 깊어진다. 두 사람은 젊은 시절 서로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데, 밤에 그런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러면서 두 사람은 깊어진다. 벌레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아늑한 여름밤처럼 깊어진다.
그러기를 원해요. 그녀가 말했다. 이미 말했듯, 난 더이상 그렇게,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며, 그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쓰며 살고 싶지 않아요. 그건 잘 사는 길이 아니죠. 적어도 내겐 그래요.
좋아요. 내게도 당신 같은 분별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당신 말이 옳아요, 물론.
이제 괜찮은 거죠?
뭐, 거의.
맥주 한 병 더 마실래요?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이 와인을 더 하고 싶다면 함께 앉아 있어줄게요. 그냥 당신을 보면서요.
- p. 33
홀트는 작은 동네라, 금새 소문이 돈다. 남자가 밤마다 여자 집에 가더라. 둘이서 그 집에서 무슨 짓을 하는 걸까. 그러면 안되지 않나. 자식들도 있는데. 다 늙어서 무슨 주책이냐.
그들은 상점에서 나왔다. 애디는 식료품들을 뒷좌석에 실은 뒤 운전석에 앉았다.
루스는 고속도로의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들과 가축이나 곡물을 실은 트럭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가끔 여기가 정말이지 싫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럴 수 있었을 때 떠났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그 꼬딱지만 한 도시와 편협하고 짜증나는 주민들. 그녀가 말했다.
- p. 41
두 사람은 부모의 별거로 할머니 집에 맡겨진 손자의 상처를 쓰다듬어 주며 셋이서 함께 잘 지낸다. 정말 잘 지낸다. 마음을 닫고 있던 손자는 서서히 마음을 연다. 손자는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 남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캠핑을 하고, 남자가 손자를 위해 데려온 개를 마음 깊이 보살피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낸다. 처음에 손자는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아빠가 지금 그러고 있는 것처럼, 할머니도 자기를 떠날까봐 불안해했지만 세 사람이 함께 하는 시간 덕분에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아끼는 개도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걸 믿게 된다.
어두운 침실 바깥에서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열린 창안으로 거세게 밀려들어오면서 커튼이 이리저리 펄럭거렸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닫는 게 좋겠어요.
꼭 닫지는 말아요. 냄새가 예쁘잖아요. 지금 가장 예뻐요.
정답이에요.
그가 일어나 약간만 남기고 창문을 닫은 뒤 침대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빗소리를 들었다.
우리 둘 다 인생이 제대로, 뜻대로 살아지지 않은 거네요. 그가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이 순간은, 그냥 좋네요.
- p. 109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두 사람을 바라봤고, 결국 여자는 남자와 더이상 밤을 보내지 않기로 결심을 한다. 남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결국 그녀의 의견을 존중한다. 두 사람은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낸다. 이 부분은 내가 이 소설 전체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누군가를 만난 후 그 이전의 내가 아니게 되는 것. 그 순간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니까 이게 우리의 마지막 밤이군요.
네.
두 사람은 이층으로 올라갔다. 어둠 속에서 침대에 누워 그들은 이야기를 조금 더 했다. 에미는 울었다. 그가 그녀의 몸에 팔을 둘러 끌어안았다.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루이스가 말했다. 당신 덕에 나도 많이 변했고요. 고마운 마음이에요. 감사해요.
지금 비꼬고 있는 거죠?
그럴 생각 없어요. 진심이에요. 당신은 내게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 이상 더 뭘 원할 수 있겠어요? 당신과 함께한 후 난 이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어요. 당신 덕분이에요.
- p. 182-183
좋은 사랑을 하면, 좋은 이별을 할 수 있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소설에 대화가 무척 많아서 꼭 연극을 보는 것 같다.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데, 나는 이 이야기를 영화보다 무대로 보고 싶다. 무대 위에 침대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다. 아, 여름밤 냄새와 여름밤 소리와 여름밤 풍경이 보일 창도 있어야지. 밤이 되고, 또 밤이 되고, 또다시 밤이 되는 연극. 이 책을 읽게 된 건 <시애틀 타임스>의 추천글 때문이었다. 내가 반한 문장은 이거다. "여름날 저녁 일몰 직후 아직 하늘에 빛이 남아있을 때, 제대로 들여다보면 볼 것들이 많은 그 순간을 위한 소설이다."
요즘은 집에 늦게 들어올 때도 꼭 뭘 먹는다. 배고픔을 참질 못하겠다. 이러니 살도 찐다. 집에 만들어놓은 음식이 없으니 뭔가를 사온다. 이 날은 떡볶이 생각이 간절해서 단골 튀김집에 갔다가 떡볶이와 튀김을 사왔다. 다 먹진 못하고, 다음날 못 먹을 지경이 될까봐 튀김만 해치웠다. 예전엔 그렇게 먹고 자도 별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 속이 부대끼는지 새벽에 종종 잠이 깬다. 조용한 새벽에 가만히 앉아서 왜 배가 아픈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생각의 끝에 전날 잠들기 직전에 먹은 자극적인 음식들이 있다. 아, 나도 늙어가고 있구나, 생각한다. 새벽 5시 즈음에 눈이 떠졌다.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더 잘 생각이 안 들었다. 스탠드를 켜고 10여 페이지가 남은 <13월에 만나요>를 펼쳤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새벽독서란 이렇게 좋은 거구나.
출간되었을 당시에 사놓은 책인데 손이 가질 않았다. 작가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한 권 선물했고, 몇 페이지 읽다 다시 책장에 넣어뒀다. 친구는 나중에 이 책을 가지고 유럽을 여행하며 조금씩 음미해가며 읽어내려갔다고 이야기해줬다. 사람이고, 책이고, 때가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어느 날, 쓸쓸한 이야기가 읽고 싶었는데,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이 마침 보였다. 구입했을 당시에 얼마 읽히지 않던 책이 술술 읽혔다. 어느 날 아침,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 눈물도 훔쳤다. 실은 실제로 한번도 만나지 못한 친구의 유럽 여행을 상상해봤다. 여행 중간중간 책을 조금씩 읽어나갔을 모습을. 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 생경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느꼈을 감정들도. 우리도 언젠가 때가 되면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포스트잇,
관계의 궁극적 결말은 영원이 아니다. 결말이 영원이었던 관계가 있다면 믿지 않을 작정이다. 내 결말이 늘 영원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p.28
추억을 만들어주는 사람은 소중하다. 소중해진 것 다음에는 그것이 어떻게 내게서 멀어지는지를 겪는 것이다. 견디어보는 것이다. 견딜 수 있어도 견딜 수 없어도 사랑이다. 서로 기도 같은 것을 하고 살다가 기도를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었을 때쯤, 윤은 녹사평으로 이사를 했다면서 전화를 해왔다.
- p. 49
함께 있어보면 그 사람 안의 나의 무게를 가늠하게 될 때가 있는데 여행이 그렇다. 여행이 동거와 다른 점은 집중력에 있다. 집중력이 생활에서는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함께 사는 일은 지루해지고 어려워진다.
- p.70
장의 담배 연기에서 박하향이 난다. 외롭고 고독한 사람이 웃으니 나도 기쁘다.
- p. 94
진주는 진주 사람만큼 멀었다. 나는 땅을 가끔 옮겨 사는 기질을 갖고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부터는 여기저기 낯선 곳을 찾아다니는 나를 걱정하지 않기로 하였다. 가만히 잘 살다가 가고 싶은 곳이 떠오르는 편인데, 이번이 진주였다.
- p.131
"그렇게 보이는 게 불편해요?"
"불편해요. 그 사람이 그냥 말하면 생각 없어서 불편하고 그 사람이 의도가 있어서 말하면 솔직하지 못해서 불편하고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면 부담스러워서 보기 싫고 그 사람이 나를 경계하면 섭섭해서 슬프고요. 그러니까 불편해요."
- p. 145
지연씨는 아버지 이야기를 가끔 해주었는데 그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성큼성큼 걸어와 나와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나도 모르게 검은 한복을 입은 지연씨와 손을 잡고 있었고, 무뚝뚝한 지연씨는 내 손등을 문지르고 있었다. 위로하러 와서 위로를 받고 가는, 경우 없고 사람 노릇 못하는 족속이 되어버렸지만 그렇게라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좋아한다는 것,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그것은 처음의 일이 아니다. 이처럼 세상을 떠나는 순간 속에서 보여지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중의 일이다. 내가 처음보다 나중에 함께 남는 손님이 될 수 있을 때 나라는 존재의 실체를 느낀다.
- p.187
아침마다 눈 떠지는 일이 막막할 떄가 있다. 또 눈을 떴구나... 이런 현상은 가장 좋은 계절에 몇 번씩 찾아오곤 한다. 오래된 아파트, 웃바람으로 싸늘한 아침, 생강차를 끓여 마신다. 어릴 적 김장철 심부름으로 생각을 깔 때는 그렇게 지독하더니 어른이 되어 생강 향이 좋아진다. 생강 향은 고급스럽고 맑고 맵고 청아하다. 무척 진하게 만들어 먹으면, 죽고 싶은 아침 죽어버리고 싶은 그 아침이 한 번 더 살아보는 아침으로 변하는 약차 같은 것이 된다.
- p. 250
그러니, 생강차를 마시자.
기석이가 고른 책은 다 기석이 같다. 그동안의 책 중 가장 얇고, 글자가 적은 덕분에 다 읽었지만, 녹록치 않았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두 장을 한꺼번에 넘긴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계속 읽었다. 무심코 앞장을 넘기다 너무나 생경한 페이지가 있어 앞뒤를 넘겨보니 내가 건너뛴 페이지였다. 어제는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내가 읽고 있는 기석이라는 사람에게도 그런 페이지가 있는 건 아닐까. 건너뛴 페이지가 자연스러웠다면, 돌아가 부러 발견하고 다시 읽는 게 좋은 걸까, 그 페이지 쯤은 발견하지 않은 채 흘러 가게 두는 게 좋은 걸까. 누구에게나 그런 페이지가 한 두장씩은 있겠지.
제목과 표지가 무척 아름다운 2017년 첫 시옷의 책 <남편의 아름다움>. 세 개의 포스트잇을 붙여뒀다.
14페이지,
그는 행복한 듯 했다. 당신은 베네치아 같아 그가 아름답게 말했다.
53페이지,
당신은 말하곤 했다. "욕망이 두 배면 사랑이고 사랑이 두 배면 광기야."
광기가 두 배면 결혼이지
내가 덧붙였다
그 독설이 황금률을 만들 의도가 없는
무심한 것이었을 때.
75페이지,
완전함이 잠시 그들 위로 호수 위의 고요처럼 내려앉았다.
고통이 내려앉았다.
아름다움은 내려앉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의 관자놀이를
만지고
돌아서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누군가 내게 당신은 어떤 도시 같아, 라고 말해주는 상상을 해봤다. 그 도시는 화려하지 않지만 아름답고, 소박하고 깊이가 있는 곳. 예를 들면, 당신은 포르토 같아.
예전부터 궁금했던 책이었는데, 지난 늦여름 노홍철의 책방에 가서 뭔가를 구입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발견했다. 벽면에 전시되어 있던 책 딱 한 권이었는데, 계산을 하려고 할 때 노홍철이 이 책을 왜 사느냐고 물었다. 궁금했던 책이라고 말했고, 자기는 이 책을 다 읽고나니 '그래서 어쩌라구?'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읽고나면 어떤 느낌인지 꼭 알려달라고도 했다.
거기서 나는 위안을 찾았다. 손등으로 코를 훔치고 서가를 둘러보았다. 꽃에서 정성스레 추출한 향이 향수에 담겨 있듯이, 책장에 꽂힌 책들에는 내 삶이 스며 있었다. 나를 바람맞힌 소개팅 상대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읽은 바버라 터크먼의 <희미한 거울>이 보였다. 여러 번 읽어 두툼해진 <안나 카레리나>도 있었다. 나는 <중력의 무지개>를 집어 들었다. 책을 펼치자 글이 57쪽까지만 있고 그 뒤로는 없었다.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이었다. 내가 읽다 만 페이지에 아이스크림 막대가 꽂혀 있었다.
- 오드리 니페네거 <심야 이동도서관> 中
혼자 있을 때, 자다 읽어났는데 혼자이고, 어느새 해가 늬엿늬엿 지고 있을 때, 마찬가지로 혼자가 된 사람들을 생각해보는 순간이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난 뒤 사무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아버지,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전화를 받고 표를 겨우 구해 버스를 타고 가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는 친구, 젊은 시절의 어머니, 그 시절의 나. 그럴 때 온전히 그 사람이 되어 본다. 그 사람이 되어 그 공간에 있어보고, 앞에 있는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을 해 본다. 그러면 아주 쓸쓸해지는데, 이내 따뜻해지기도 한다. 모두가 때때로 아주 많이 고독하다는 생각에. 내가 고독한 사람을 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심야 이동도서관>은 그런 이야기이다.
그는 맨 처음 이곳에 내려 왔을 때,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기억들을 이야기했다. 나이가 많은 편도 아니었기에 서툴렀고, 그래서 가로막히는 막막한 순간이 계속됐다. 지역을 되살리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맡은 일을 잘 해내야 되겠다는, 어떻게 보면 그리 크지 않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일을 진정성 있게 해나가면서 나 자신에게 가장 떳떳하기 위해선 지금의 묵호를 이해하고 만들어 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지역을 잘 담아내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그는 보다 가깝게 묵호의 일상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통하며 다양하게 지금의 묵호를 그려내고 있는 중이다.
- p. 33
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지만 그는 한창 젊었다. 무척 앳된 얼굴에 깜짝 놀라고, 그와는 다르게 묵호에서 스스로 헤쳐나갔던 많은 이야기에 더욱 크게 놀라는 시간이 계속됐다. 젊은 친구가 묵호에 내려와 이런 것들을 해나간다고 했을 때, 막상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벽에 부딪혔을지는 말을 아끼는 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크게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이곳에 있는 게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으면 하지만 이곳에서 무언가를 이뤄야겠다는 큰 뜻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무언가를 이뤄야겠다는 큰 뜻은 없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니까 재미있으면 된다고, 무슨 일이든 장난 삼아가 아니라 재미 삼아 하고 싶다는 그는 묵호를 통해 재미있는 삶을 실현하고 있었다. 타자인, 젊은 친구, 예술가. 어쩌면 그는 이 지역에서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지닌 이러한 모습은 오히려 그의 가능성이고, 그가 만들어갈 묵호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그 앞에 놓인 수많은 과제를 혼자 힘으로 해결해 나간 것은 아니지만 그와 함께 이 곳의 재미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재미를 알아가는 마을 사람들은 그를 필두로 꽤나 잘 이뤄온 것 같다. 밋밋하던 묵호에 알록달록 색을 그려넣고 있는 그는 이곳 사람들의 삶을 보다 다채롭게 만드는 중이다. 순간순간 서울에 가고 싶을 때도 있다고 얘기했지만, 묵호의 재미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다른 이들에게 더 큰 재미를 전해주는 지금, 이 작업보다 그에게 재밌을 작업이 또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서툴고, 느리더라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묵호를 칠하고 있을 그 덕분에 묵호를 알아가고 있는 사람이 점차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그려가고 있는 묵호는 분명 변해가고 있다는 거다.
- p. 37
건물 안에 들어가 보면 지하에 여러 방이 나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조각조각 나뉜 공간에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주거 공간이 부족해 사는 게 열악했어도 그때 당시 이들의 삶은 풍요롭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집 한 채가 70~80만 원이던 시절. 광부의 월급은 30만 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만큼 목숨 걸고 모진 일을 하는 이들은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씀씀이가 무척 커서 이 작은 동네에 온갖 메이커 의류들이 즐비했고, 수많은 유흥업소도 성업했다는 해설사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태백이 고기로 유명한 것도 돼지고기가 묵은 때를 씻겨 내려준다는 속설 때문에 광부들이 탄광 일을 마치고 먹은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한편, 그때 당시 태백의 어린 아이들은 탄광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물 때문에 시냇물은 당연히 검은색이라고 생각했다는 웃지 못한 이야기까지. 탄광과 광부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철암은 광부가 있었기에 가능한 도시였다.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전시장은 물론, 갤러리, 그리고 역사관까지 그들의 공간에 만들어놓은 이곳은 그래서 더욱 가슴으로 읽어내려 갈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이렇게 잘 꾸며놓은 곳이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는 것에 의아해서 여쭤보니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고픈 마음이 가장 먼저였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태백과 광부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이 공간의 바람이 퇴색되는 것을 우려하여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해설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돌리는데, 광산에서 목숨을 잃은 광부들의 이름이 빼곡히 쓰여 있는 공간이 보였다. 1989년까지 태백의 광산에서 순직한 광부는 3,611명이고 지금까지는 4,100여 명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광부들의 10%가 매년 죽거나 다쳤다. 가족을 위해, 그리고 나라의 산업 역군으로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살아갔던 이들의 최후가 죽거나 혹은 살아서도 진폐증으로 고생하는 삶이라니. 우리가 너무도 쉽게 폄하하며 말하는 막장은 우리의 아들딸들을 키울 수 있던 곳이었고, 나라를 발전시켰던 곳이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삶이었는지 반문하게 되지만 그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명심해야 할 건 최선을 다해 살았던 광부들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이들의 피과 땀으로 점철된 탄광의 삶을 잊지 않는 것 밖에는.
- p. 83
-
응원하고 싶은 잡지가 생겼다.
덕분에 따뜻해졌다.
덕분에 힘이 났다.
어디든 이야기가 없는 곳이 없다.
어디든 하찮은 곳이 없다.
이 이야기들이 나를, 우리를 살게 만든다고, 생각해 보는 시간.
아,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기차 타고, 눈 내리는 소리 듣고 싶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