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옷의 모임이 있었고, 이건 어제의 페이퍼.

 

 

 

 

[7월에 만나는 6월의 시옷 -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빠져들려면 기슭을 떠나야 한다. 구명대 없이. 뭍에서 팔을 몇 번 젓는지 세지만 말고 말이다.” - p.13

 

    우리는 함께 줌파 라히리의 이탈리아어 이야기를 읽었고, 이것은 나의 이야기입니다.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라면, 나는 일본어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처음은 오다기리 죠였습니다. 나는 그 시절, 일본의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드라마며 영화며. 이야기가 좋아 보다보니, 사람이 좋아졌고, 사는 모습도 좋아보였고, 특유의 억양들도 좋아져 혼자 흉내를 내곤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꽤 있어서 일본의 배우들이 내한을 해 무대 인사나 관객과의 대화를 가지는 일이 곧잘 있었습니다. 그때 그와의 만남 자리에 당첨되어 가게 되었어요. 지금 봐도 특이한 패션으로 그는 무대에 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의 옆에는 통역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면, 옆에 있던 사람이 통역을 해줬습니다. 객석에 있던 관객이 질문을 하면, 옆에 있던 사람이 그에게 통역을 해줬습니다. 그 질문에 그가 답했고, 그러면 옆에 있던 사람이 그 말을 또 통역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말만 했는데, 그곳에 있던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커다랗게 웃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통역을 해주기 전에 말이에요. ,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다들 아주 재미나게 웃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나는 사람들의 웃음이 잦아든 다음에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말은 재미나지 않았습니다. 웃음이 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일본말에서 우리말로 한차례 바뀌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내가 좀 바보 같았습니다. 아마도 그 생각 때문에 웃기지 않은 것 같아요. 모두들 그의 말을 알아듣는데, 나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나도 그들처럼 그의 말을 바로 알아듣고 싶다, 그런 생각들을 한 것 같아요. 물론 조금만 기다리면 누군가가 그의 말을 내게 무척이나 익숙한 언어로 최대한 정확하게 옮겨주겠지만, 그건 그의 온전한 말이 아닌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의 온전한 말을 알아듣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외국어라는 게, 줌파 라히리도 그랬듯, 그리 쉽게 익혀지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줌파 라히리에 비하면 게으르고, 성실하지도 않은 사람이니까요. 그렇습니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든 쉽게 포기를 할 수 있는 작심삼일형 인간입니다. 그리하여, 그 뒤로 수도 없는 결심과 다짐을 했고, 시작을 했고, 당연한 듯 포기를 했습니다. 줌파 라히리가 수도 없이 건넌 호수에 발만 담그고 너무너무 깊다고 투정만 부려댔습니다. 언어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닌데 말이에요. 어느 학원 선생님이 그랬어요. “여러분, 분명히 슬럼프가 옵니다. 각자 다르겠지만 언제든 와요. 그때 꾹 참고 어떻게든 하다보면, 결국 해낼 수 있어요.” , 슬럼프는 왔습니다. 여러 번 시도했을 때, 각각의 속도로 어김없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예외 없이 열심히 포기했습니다. 그러면 다음번에 시작할 땐 포기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면 될 것 같은데, 언어라는 녀석은 끊임없이 망각하게 만드는 냉정하고도 무정한 녀석이라, 처음부터 다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언제나 제자리였습니다. 계속 발만 담그고 물장구만 치는 겁니다. 첨벙첨벙. 건너고 싶단 생각만 하면서, 수영도 열심히 배우지 않고. 첨벙첨벙.

 

   일본어 공부에 대한 열정은 들쭉날쭉 변덕스러웠지만,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애정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꽤 괜찮은 세상이 있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있어도 괜찮을까요?” 라고 물었을 때 있어서 좋아.”라고 말하는 세상, '잊고 싶지 않은 것'이라는 노트에 누군가 '남의 집에서 먹는 카레, 이유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라고 쓰는 세상, 어금니를 누르면 '소리가 나는 여자아이가 있는 세상, 각각의 자리에서 폭설을 견딘 아버지와 아들이 숲 속의 고요한 커피 집에서 끝내 재회하는 세상, 10년 전 사라진 비행기가 다시 나타나는 세상, 나이를 먹지 않은 10년 전의 남자친구가 10년의 나이를 고스란히 먹은 나에게 나도 널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 10년 후의 널 사랑할 수 있게 돼서 좋았어. 또 만나자.”라고 말하며 이별하는 세상,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두 사람이 자살을 결심한 사람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그를 함께 구하고, 사랑에 빠지고 마는 세상, 내 여동생을 죽인 남자의 여동생을 사랑하게 되는 세상, 아버지를 미워했던 아들이 아버지의 죽은 얼굴을 마주하고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우는 밤이 있는 세상, 한 테이블에 앉아 정갈한 안주와 함께 한 사람은 맥주를, 한 사람은 청주를 마시는 세상.

 

   나는 이런 세상들을 화면으로 보면서, 마음에 오래 담아두었습니다. 일본에 가면 진짜 이런 세상이 있겠지, 가보자! 했던 건 아니고, 그때그때 조건이 맞아 몇 번 여행을 갔습니다. 홋카이도에 갔을 때는 일본어 공부를 시작할 때 사둔 (지금 보면 무척 크고 무거운) 자주색 전자사전을 가져갔습니다. 패키지여행이었고, 버스는 관광지와 숙소에 정확하게 내려주었고, 가이드님은 식당에서 밥을 정확하게 시켜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불행히도, 사전을 펼치는 일은 없었습니다. 매일 밤 숙소에서 친구와 우리말을 하며 맥주만 실컷 마셨습니다. (맥주를 살 때도 말은 필요 없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됩니다.) 오사카에 갔을 때는, 겨우 저녁 6시였는데, 외국인이라 말이 안 통해서 그런지 재료가 다 떨어졌다는 팻말을 보이며 팔로 엑스 표를 만드는 가게주인의 기세에 주눅이 들어 매일 밤 생맥주와 꼬치구이만 먹어댔습니다. 꼬치구이 집은 메뉴판에 사진이 거의 있었습니다. 손가락을 가리키며 구다사이- 구다사이-만 하면 되었습니다. 도쿄에 갔을 때는, 드디어 조금의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옹알이 수준의 말이었지만요. 그리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시따라는 말을 알았습니다. 같이 간 일본어를 잘 하는 언니가 가르쳐줬는데, 일본 사람들은 가게에서 나올 때 감사합니다라고도 하지만, 주로 감사했습니다라고 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라니. 우리말과는 다른 표현이다! 가게를 나오며 감사했습니다, 를 직접 내뱉을 때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언니 없이 혼자 다닐 때는 죄송합니다, 저는 일본어를 못 합니다라는 말을 애용했습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죄송합니다. 저는 일본어를 못 합니다. , 그렇군요. 이런 식입니다.

 

   그리고 이번 달 초에 오키나와에 다녀왔습니다. 오키나와에서 나는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일본어로요.

 

미안합니다 / 안녕하세요 (아침인사) / 안녕하세요 (점심인사) / 안녕하세요 (저녁인사) / 감사합니다 / 감사했습니다 / 얼마입니까? / 체크인해주세요 / 이것이 이것입니까? / 빗이 있습니까? / 이것과 이것과 이것을 주세요 / 이것 하나 주세요 / 이것 두 개 주세요 / 생맥주 둘 주세요 / 두 명입니다 / 슈리성에 갑니까? / 미바루비치에 갑니까? / 여기가 어디입니까? / 돌아오는 버스는 어디서 탑니까? / 즐거웠습니다 / 오키나와는 무척 덥습니다 / 아침밥이 있습니까?

 

   마지막 날, 버스 안에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는데, 할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일본어로요.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 한국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 도쿄에서 택시 운전을 했습니다 / 한국에서 오키나와까지 비행기가 얼마입니까? / 20살입니까? 30살입니까? / 결혼은 했습니까? / 30살에서 40살까지는 결혼하기 힘드니, 빨리 하세요 / 북한은 가난하지요? / 오키나와 좋았습니까? / 수영은 했습니까? / 비가 와서 못했습니까? / 오키나와가 많이 덥습니까?

 

   물론 정확하게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와 나는 30여 분 동안 띄엄띄엄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옆에서 내게 익숙한 언어로 통역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와 나 둘 뿐이었습니다. 일본인 누군가가 옆에서 들었다면 형편없는 대화였겠지만, 내게는 이 경험이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예상했겠지만, 전 얼마 전 또 포기를 했거든요. (한결같은 포기입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로마가 있고, 각자의 이탈리아어가 있습니다. 그럴 겁니다. 사실 이 책은 그동안의 줌파 라히리의 소설에 비하면 아주 실망스럽고, 밋밋한 책이었습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나의 로마를, 나의 이탈리아어를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풍성하고 깊은 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필코 호수를 건너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나의 현재가 이곳에서 저곳이 될 수 있도록.

 

난 올여름 문학 축제에 참가차 로마에 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럴싸한 이유 같았다. 이탈리아어가 내게 영감을 줬다고 속마음을 밝히지 않았다. 이탈리아어를 잘 알고 싶은 희망, 아니 꿈을 품고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내 삶과 관계가 없는 언어를 유창하게 말할 방법을 찾고 있노라 이해시키지도 않았다. 이 괴로움으로 애를 태우고 있으며 나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마치 이탈리아어는 열심히 쓰지만 완성할 수 없는 책 같았다.” - p.31-32

 

   모두에게 궁금한 것! 당신의 로마는 어디인가요? 당신의 이탈리아어는 무엇인가요? 왜 그 언어인가요? 그 언어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그 언어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나 문장이 있나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모두가 예상하고 있겠지만 -입니다. -루 중에서도 나마비-. ! -루와 아이데스. 이츠데모 와따시니 비-루오 구다사이. (그럼) 미나상, 아리가또고자이마시따. 간바리마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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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불어넣기

from 서재를쌓다 2016. 6. 16. 21:59





   이 책의 본래 제목은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이었다. 나는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일 때 이 책을 샀다. 누군가 추천해 준 책, 이라고 기억한다. 아니면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해서 따라 읽은 책, 일 수 도 있다. 이 책을, 아니 정확히 말해서 단편 '혼 불어넣기'를 오키나와에서 다시 읽었다. 세상에, 오키나와에서 이 단편을 다시 읽다니. 나는 이 단편을 다시 읽기 전, 오키나와 북부 버스 투어를 했다. 우리는 뚜벅이었기 때문에 북부로 가려면 투어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투어에서 갔던 장소들은 나를 감동시키지 못했지만, 버스 안에서 가이드에게 들었던 오키나와와 오키나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가이드가 말한 오키나와 사람들의 성향은 분명 일반화의 오류일 거다. 모두가 똑같을리가 없지. 그렇지만 나는 상상해봤다.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오늘을 즐기는 사람들, 날씨 때문에 출근을 하지 않는 사람들, 낮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들, 여러 번의 이혼이 흉이 아닌 사람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바다는 뛰어드는 게 아니라 바라보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늘 밝고 긍정적인 사람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을 만든 역사적인 사건들. 나는 오키나와에 와서 오키나와에 대해 좀더 알게 되었다. 그 전엔, 이 책을 통해 오키나와를 알게 되었다. 메도루마 슌은 오키나와에 태어나, 오키나와를 사랑하고 아끼고, 오키나와의 이야기를 쓰는 오키나와 작가이다. 


   나는 오키나와의 바닷가에서 '혼 불어넣기'를 다시 읽었다. 남부의 모래가 가득한 바닷가이면 좋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키나와의 어두운 역사 중 하나인 미군기지가 있었던 아메리칸 빌리지의 아라하 비치에서 읽었다. 나는 둘이라고 말하고 둘의 값을 치르고 하나만 가지고 냉큼 나온 바보같은 외국인으로 넷째날 아침을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산 커피를 들고, 전날 저녁 봐두었던 공간까지 걸어갔다. 그곳은 내가 보기에, 아라하 비치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육지였다. 길이 있었고, 그 길의 끝에 자그마한 크기의 동그란 섬이 있었다. 그 작은 섬에 발을 디디면 온 사방이 바다였다. 오키나와의 커다란 구름이 더 가까이 느껴졌다. 섬의 한켠에는 바다를 바라보고 쭈그리고 앉아 줄담배를 피우는 센언니가 있었다. 나는 커피를 몇 모금 마시고, 가지고 간 책을 펼쳤다. 그러자 몇 년 전 처음 만난 고타로의 혼이 내 옆에 슬그머니 다가와 앉았다.  



   우타는 그 나무로 다가가다가 그늘 밑에 옆모습을 보이고 앉은 한 남자를 보았다.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를 보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까이 가 보니 역시나 고타로의 혼이었다. 우타는 그 옆에 앉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그의 목덜미에 바람을 훅 불어 넣었다. (...)

   고타로의 혼은 멍하니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짧게 깍은 머리, 흰 터럭이 섞인 다박수염, 고기잡이와 농사로 까맣게 탄 얼굴을 두 팔로 껴안은 무릎에 대고 있었다. 늘 애교스러운 웃음을 띠던 평소 모습과는 달리 몹시 쓸쓸해 보였다. 우타도 바다로 눈을 돌리고 잠시 함께 바라보았으나, 하얀 햇빛이 쏟아지는 바다는 눈만 부실 뿐 특별히 달라진 게 없었다.

   "고타로, 후미도 그렇고 겐타로와 도모코도 걱정하고 있어. 빨리 집으로 가자."

   그렇게 말을 걸어 보았으나 고타로는 반응이 없다. 우타는 보자기를 풀어 쟁반에다 쌀을 소복하게 쌓아 올리고 아와모리를 술잔에 따랐다. 백 엔짜리 라이터로 향에 불을 붙여 모래에 꽂은 다음 앉음새를 고쳤다. 합장을 하고 고타로의 옆모습을 지켜보며 우타는 중얼거리듯이 혼이 들기를 빌었다.

- 22~23쪽

 


   전날의 버스 투어에서 가장 기대했던 장소는 추라우미 수족관이었다. 영상에서 본 것처럼, 커다란 고래상어가 아름답게 유영하는 곳.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물고기들의 탈출을 상상했다. 우리에게는 커다랬지만, 물고기들에게는 너무나 좁은 공간이었다. 고래상어와 쥐가오리들은 금방 갔던 곳을 또 헤엄쳐가고, 또 헤엄쳐가고, 또 헤엄쳐가고 있었다. 그들에겐 모험도 없고, 시련도 없었다. 바로 수족관 앞이 드넓은 바다인데. 돌고래 쇼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건너편 바다거북관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수조 앞에 걸터 앉을 수도 있고, 수조를 가까이 만질 수 있는 그곳에서 나는 오래 머물렀다. 어떤 바다거북의 목과 등에는 이끼가 가득 자라 있었다. 나는 그게 신기해서 그 바다거북을 따라 걸었다. 어떤 바다거북은 뭔가를 알고 내 쪽으로 오는 것 같아 손을 내밀고 눈을 맞춰보려고 했지만, 당연하게도 내 손과 눈을 지나쳐 갔다.



   어디에선가 산신과 노랫말 잇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해 우타는 가슴 한 구석이 찡해졌다. 밤에 혼자 바닷가에 나와 본 게 언제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세에도 오미토도 유키치도 전쟁으로 죽고, 자기만 늙은 몸으로 이렇게 바닷가에 앉아 있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외로워져 우타는 고타로의 혼에게 말을 걸었다.

   "뭘 보고 있는 거냐?"

  대답이 없다. 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 빛이 흐려지자 고타로의 모습도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안 가려느냐, 고타로야?"

   우타는 일어서면서 물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는 바다를 응시한 채 고타로는 아주 약간 고개를 갸우뚱거린 듯이 보였다. 나뭇잎 그림자가 움직인 탓에 그렇게 보였는지도 몰랐지만, 자기 마음이 좀 통한 것 같아 우타는 합장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 32쪽



   바다거북도 좁은 수조에 갇혀 헤엄치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적어서 그런지 이 곳은 그래도 살만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개의 수조가 있고 그 앞에 티비가 있었다. 티비에서는 새끼바다거북이 살기 위해 바다로 향하는 화면이 반복해서 나왔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작디 작은 생명체들이 온 힘을 다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 장면 또한, 수 년 전 메도루마 슌의 소설을 읽고 찾아봤던 장면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바다거북관의 공간이 그다지 생경하게 느껴지지도, 그 속을 헤엄치는 바다거북들도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어쩌면 고타로의 아버지 오미토가 빼앗아 가려한 알에서 부화한 거북이일지도 몰라, 어쩌면 고타로의 혼이 따라간 새끼 거북이들일지도 몰라, 이런 말도 되지 않은 상상을 마구마구 했다.



   그렇게 모두가 바다 저편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드러운 모래 결이 무너져 내린다. 우타는 일어나서 꿈틀꿈틀 기어 나오는 까만 무리를 지켜보았다. 달빛 아래 부채꼴로 퍼지면서 바다로 향하는 새끼 거북들의 속도와 기세에 우타는 놀랐다. 양옆에서 달려든 모래게들이 새끼 거북을 집게발로 잘라 머리 위로 치켜들고 옮겨 갔다. 그래도 여전한 기세로 새끼 거북들은 잇따라 바다로 들어갔다. 새끼 거북의 무리가 사라지자, 우타는 연안의 산호초에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바다거북이 부화하는 날에 관심을 가진 것은 새끼 거북을 노리고 바닷가 가까이로 몰려드는 큰 물고기들 때문이었다. 그 물고기들을 잡으려고 아버지는 작살을 들고 바다로 나갔다. 하얀 물결이 출렁이는 데까지 가는 새끼 거북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우타는 해변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마스 나무 잎사귀들이 살랑거리고, 아단 숲 속에서 소라게가 기어 다니는 소리가 난다. 목마황 방조림이 까만 벽이 되어 바다와 마을을 갈라놓아, 바닷가에 있는 사람은 우타 혼자뿐이었다. 갑자기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몰려와 물가로 내려간 우타는 파도에 발목을 적시며 걸었다. 밀려드는 파도에 바다반딧불이가 빛났다가 사라진다. 파도는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우타는 멈춰 서서 바다를 향해 두 손을 모았다. 그러나 기도는 그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

- 54~55쪽

 

  

   이야기를 모두 읽고, 눈을 감으면 메도루마 슌이 그려낸 슬프고도 따듯한 바닷가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 소설을 쓴 그의 마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수 년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나는 작년부터 운명을 믿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여행 이틀째, 남쪽 바다에서 물이 빠진 바다를 보고 나하 시로 돌아오던 버스 안, 핸드폰에 알림 메시지가 도착했다. 믿을 수 없게도, 메도루마 슌의 새 책이 출간되었다는 메시지. 제목은 '신의 섬', 부제는 '오키나와 현대소설선'. 서울에 도착한 다음날 책을 주문했고, 그 책은 지금 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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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에서 이 책이 내게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옥 숙소에서 불을 끄고 혼자 누워 있다가. 홍대에 있는 카페꼼마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 앞에서는 흠집이 있어 정상 판매를 하지 못하는 책들을 싸게 판매하고 있었다. 그 책들을 둘러보다 발견했다. 김종관 감독의 책. 그렇게 산 책이었다. 한동안 책장에 고이 꽂혀 있었는데, <최악의 여자>를 보고 이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이거나 사랑이 아니어서 죽도록 쓸쓸한 서른 두 편의 이야기'. 서른 두 편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에 대한 김종관 감독의 산문이 있다. 그러니까 예순 네 편 모두 김종관 감독이 쓴 거다. 서른 두 편은 모두 사랑 이야기다. 그것도 섹스에 관한. 끈적끈적한 섹스가 아니다. 촉촉한 섹스이다. 읽는 중에 친구를 만나게 됐는데, 이 촉촉한 섹스책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고백했다. 그러니까, 꽤나 감성적인 섹스다.



   "하나의 천장 아래서 오랫동안 나와 함께한 침대도 있었다. 좋은 침대가 아니었고 매트리스도 바꾼 적이 없다. 매트리스를 가끔 뒤집어주기는 했다. 내가 누우면 빈자리가 남지 않는 작은 침대였다. 물론 나 혼자만 누워 지내지는 않았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낡은 침대는 사연이 많아졌다. 나는 그 사연들을 일일이 신경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너무 오랫동안 하나의 천장만 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는 지치지 않았지만 나는 지쳐 있었다.
   어느 날 심기일전했다. 침대가 바뀌었고 천장이 바뀌었다. 전보다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약간 더 큰 침대를 보며 살고 있다. 자주 시트를 갈고 있다. 아직 매트리스를 뒤집은 적은 없다. 창에는 아직 커튼이 없어서 아침이면 창문을 타고 들어온 빛들이 침대를 돌아다니다가 눈을 찡그리게 한다. 그 시간이면 나는 이불 안으로 숨어들거나 잠에서 깬다.
   요즘은 일어나도 한동안 침대에 있고는 한다. 침대에 기대어 창문 너머 풍경 보는 것을 즐긴다. 책을 읽기도 하고 노트북으로 작업을 할 때도 있다. 가끔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그사이 커피를 쏟아서 얼룩이 생기기도 했지만 괜찮다. 침대에 기대어 창문 너머 바람에 숨을 쉬는 나무 이파리들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그리운 침대에 살고 있기를 바라게 된다."
- p. 56-57


   사실 나는 그를 오랫동안 흠모해 왔다.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본 순간부터. 그 뒤로 실제 그를 보기 위해 낙원의 영화관에 가기도 했다. 그의 단편과 중편 영화를 연달아 상영했던 때였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가서 가만가만 그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그때의 느낌은 영화를 좋아하는, 어린시절이 그렇게 풍요롭지 않았던 사람. 단편영화에 많은 애정이 있는 사람. 그 뒤,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는 한 편의 장편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최악의 여자>가 두 번째 장편 영화. 전주에서 본 영화가 좋아서, 그를 흠모하기 시작했던 예전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그를 좀더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 왠지 그를 좀더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모험의 기회가 생겼을 때, 그 모험에 가담하거나 옆길로 스쳐간다. 때로는 스쳐간 모험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녀와 그 좋은 분위기에서 왜 자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들면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해보고 진도를 나가보자면, 섹스는 재밌었던 것으로, 관계는 결국 안 되는 쪽으로."
- p. 153


  하지만 역시, 잘 모르겠다. 당연하게도. 어떤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알 거 같았는데, 어떤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도통 모르겠다. 이게 그의 이야기일까, 이 사람이 그일까, 이 감정은 그가 느낀 감정일까. 내내 생각해봤지만, 결론은 알 수 없다는 것. 그래, 당연한 결과였다.


   "시간은 흐르고 무수한 선택으로 우리는 현재를 만났다. 변한 것과 그대로인 것, 선택한 길과 선택하지 않은 길이 남았다. 어둠 속에 가둔 가능성들 속에서 다른 운명으로 흘러간 나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야기들은 가끔 그곳에서 온다. 벽 너머 어둠 속에 잊혀진 기억 몇 개와 선택하지 않은 길들에 상상을 덧대어 다른 세계가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나와 다르게 움직이는 거울 속의 나를 보게 되지만 그 환영들이 빛이 닿는 곳에 머물 수는 없다."
- p. 187


   <최악의 여자> GV에서 들은 것과 감독이 직접 쓴 제작기에 의하면, 김종관 감독은 많이 걷는다고 한다. 걷다가 커피집에 들어가 마시고, 또 걷다가 지치면 어딘가에 들어가 마시고. 그가 하는 운동의 전부이자 유일한 것이 걷기라고 한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보고 이와세 료에게 빠져 그를 캐스팅했고 (그 전에 영화에 관심을 보였던 일본배우는 누굴까), 이와세 료는 감독님이 마시는 걸 좋아해서 함께 엄청나게 마셨다고 했다. (술과 커피, 차를 말하는 듯. 이와세 료는 술을 잘 못 마시다고.) 김종관 감독은 이와세 료라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영화를 핑계로 계속 불러냈다고 했다. 정말로 인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말들을 듣고 시작한 책인 지라, 책을 읽으면서 뭔가 풀리지 않을 때 계속 어딘가를 걸었을 감독을 상상했다. 서울의 이곳저곳, 골목과 골목 사이를 촉촉하게 걸어다녔을 모습을.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 눈하트를 날리며 무언가를 마셔대는 모습을.


    "잊고 사는 데 무리가 있다면 잘 살아야 한다."
- p. 144


   뒤의 이야기보다 앞의 이야기들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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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은 베트남을 두 번 다녀왔다. 두 번 다 좋았다고 했다. 물가도 싸고,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도 모두 착했다고 했다. 함께 포르투갈어 수업을 들은 루씨 언니도 베트남을 참 좋아한다고 했다. 베트남어를 배워볼까 진심으로 생각해보았을 정도라고 했다. 이런 좋은 이야기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베트남은 어떨까 생각해봤다. 이 책은 베트남을 사랑하는 작가가 쓴, 베트남 국수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베트남이라는 나라와 그 속의 사람들을 아끼듯, 베트남 국수도 아낀다. 그래서 250페이지에 가까운 책에 베트남 국수에 대한 이야기만 썼다. 아, 침 나오게. 작가의 국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언젠가 먹었던 국수 한 그릇을 추억하거나, 언젠가 먹을 또 한 그릇의 국수를 그려보면 좋을 것 같다. 책은 온통 베트남 국수 이야기지만, 실은 어떤 그릇에 담긴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몇 년 전, 엄마와 지리산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는데, 밤부터 아침까지 엄마가 계속해서 했던 말이 "근처에 맛있는 국수집이 있다"는 거였다. 민물고기를 갈아서 걸쭉하게 만든 어탕국수. 엄마는 그 국수를 오래 전에 친구들이랑 먹었는데, 다음날 몸보신한 것처럼 피부가 맨들맨들했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버스를 타고 그 국수집을 찾아갔다. 국수는 맛있었다. 맛집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무척 많았다. 둘이서 땀을 흘리며 국물까지 후루룩 마셨다. 함께 나온 민물고기튀김도 간장에 찍어 바삭하게 먹었다. 그런데 뭐, 엄마가 밤새 말할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제법 괜찮은 한 끼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그 국수 생각이 나더라. 떠나오자마자 그리워졌다. 그리고 어느새 동생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랑 여행가서 어탕국수를 먹었는데, 진짜 맛있더라고. 다시 먹으러 가고 싶다고. 다음날 몸보신 한 것처럼 피부가 맨들맨들했다고. 동네 이름도 특이했다. 꼭 외국 어딘가의 지명 같았다.

 

   이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떠올랐던 국수 한 그릇의 추억. 앞으로 먹게 될 국수들은 어떨까. 누구랑, 어디서, 얼마나 맛있게 먹게 될까. 그리워지는 국수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후띠에우남방 타임머신이 나를 데려다준다. 후띠에우남방을 처음 먹는 나를 위해 학생들이 테이블에 놓여 있는 마늘과 고추와 라임을 적당히 넣어주고는, 첫술을 뜬 내 표정을 지켜보던 그때로, 맛있다고 미소 짓는 나를 보고 나서야 마음 놓고 자기들의 국수를 비비기 시작하던 그날로, 정겹고 따뜻하고 왠지 모를 뿌듯함까지 있던 그 아침들이 좋아서 7시 첫 수업도 신나게 가던 철없던 선생 시절, 어쩌면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때로.

- 46쪽

 

   따뜻하고 부드러운 면이 입술에 닿는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던 메마른 생각들이

   가슴에 맺혀 있다가 어느새 스르르 풀어진다.

- 78쪽

 

   세상에는 꽃 같은 국수도, 바람 같은 국수도, 햇빛 같은 국수도 있다. 그리고 대지 같은 국수도 있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무엇이든 포용하고 자라게 하는 대지처럼 깊고도 깊은 맛의 국수를 먹으러 나는 호이안에 간다.

- 174쪽

 

   벌써 몇 년 전이다. 베트남이 좋아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베트남 쪽에 영화를 배급하면서 극장을 운영하는 회사를 알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베트남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서른이 훌쩍 넘었음에도 과감히 인턴에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극장은 하노이, 호찌민, 그리고 중부에 위치한 다낭에 있었는데 인턴 과정 중 한 달은 다낭의 극장에서 일해야 했다. 다낭은 대도시인 데다가 몇 번 들렀었던 곳이라 생활하기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여행이 아닌 일상의 공간으로서의 다낭은 낯설었다. 아름다운 바닷가도 가까워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었지만 일이 끝나면 지쳐서 숙소로 돌아가기 바빴다. 작은 극장의 직원들은 친절했지만 저녁이 되면 밀려드는 어둠은 마음을 자꾸 가라앉혔다. 아는 이 없는 다낭은 쓸쓸했다.

   그런 나의 하루에 노란 불이 반짝 들어왔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내게 노란 국수 미꽝이 찾아온 것이다. (...) 고소한 미꽝에 나는 반해버렸다. 사랑스러운 노랑이 나를 명랑하게 만들어주었다. 미꽝을 발견한 다음부터 다낭이라는 도시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고 그곳에서의 일상도 여행처럼 설레기 시작했다.

-  178~179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동네에 모여 가까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적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들이 나를 위해 모여 살아주겠는가.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겠지만 상상은 언제나 즐거웠다. 그리고 지금, 허무맹랑한 그 바람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대신 내가 사랑하는 나라들이 한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행운을 얻었다.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이 모두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으니 여행자로서 나는 대단한 행운아이다. 다정하게 옆에 붙어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이웃 나라들로 언제라도 훌쩍 넘나들 수 있으니.

- 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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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새벽 세시

from 서재를쌓다 2016. 4. 1. 00:15

 

 

 

 

 

 

 

   겨울 경주여행을 함께 한 책. 오지은의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공연을 보고, 사인도 받고, 팟캐스트도 들으면서 (내 식대로 이해한) 그녀의 바램대로 나는 그녀를 인간적으로 알아가는 것 같다. 어떤어떤 척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오지은. 언젠가 공연에서인가 라디오에서인가 (아니면 책에서인가) 오지은은 무대 위에서도 다름아닌 오지은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어릴 때 동경했던 노래하는 센 언니들은 무대 위와 무대 뒤에서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다고,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부러 멋있는 척 하고 싶지 않다는 말 같았다. 부러 있는 척 하고 싶지 않다는 말 같았다. 사실 이번 책은 처음 읽기 시작할 때 두근거렸다. 이런 문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짐을 싸서 늦겨울의 교토로 떠났다. 조용하고 쓸쓸한 곳에 가고 싶었다. 옛것이 보고 싶었다. 싸락눈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한 달이 지난 때였다."

 

   교토에서의 일상이 지나고, 서울에서의 오지은의 모습과 생각이 이어지고. 읽다보니, 조금 지루해졌다. 그녀의 홈페이지 일기장에서 보면 좋을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썼을텐데 미안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의 팬이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조금 미안했다. 그러다 어느 페이지에서 그녀가 고백했다. 사실, 자신은 아프다고.

 

   "선생님은 검사를 하나 더 해보자고 했다. 나는 진료실 옆 작은 방에 갔다. 알 수 없는 기계가 있었고 간호사는 내 팔목과 발목에 그 기계를 연결했다. 그리고 오 분간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기계는 계속 무언가를 기록했다. 바로 앞엔 큰 창이 나 있었는데 완연한 봄이었다. 나뭇잎을 보면 좀 평화롭게 기록되지 않을까 해서 계속 바라보았다. 긴장이 됐는지 발이 미끄러졌다. 아, 이 때문에 결과가 스펙터클하게 나오면 어쩌나."

 

   그 뒤부터 나는 인간 오지은을 마주했다.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하면서.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도 (책에 대해)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긴 했지만. 흠. 그녀가 만들어내는 창작물들이 마음에 들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안에 진심이 가득 담겨 있다는 건 알겠다. 그건 정말 확실히 알겠다. 그래서 그런지 사인을 받을 때 한 두 마디 한 게 전부인데, 그녀와 오랫동안 꽤 긴 이야기를 나눠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있는 척하지 않고, 꾸미지 않고, 마음 그대로를 꺼내 보이는, 솔직한 그런 사이. 강아솔이 노래한 가사처럼.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 그 어느 때보다 그대 / 정직한 사람이길 / 그대여 난 온전한 그댈 원해요."

 

   템플 스테이 에피소드가 재미났다. 올해는 꼭 템플 스테이를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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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이었고, 오전부터 합정에 나와 있었다. B에게서 메시지가 왔는데, 메시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이번에 나온 이기호 소설 좋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나는 어떤 책에 꽂히면 그 책을 손에 넣기까지 그 책만 생각하는 (그렇지만 손에 넣었다고 단번에 읽진 않는;;) 조금은 집요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이 날도 온종일 이 책을 재빨리 손에 넣어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결국 오후에 홍대까지 걸어가 재고 한 권 있는 이 책을 구입했다. 짧은 소설 모음집이라 술술 읽혔다. 어떤 소설은 즐겁고, 어떤 소설은 짠했다. 그랬다. 즐겁고 짠하게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책이 끝나 있었다. 특별히 마음에 남는 한 편의 소설을 꼽을 수는 없겠는데, 한 문장은 꼽을 수 있다. 111페이지에 있다. "(...) 그러나 저녁엔 늘 혼자 술을 마셨고 그때마다 지나온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소설의 내용에 상관없이 이 문장이 마음에 계속 남아 다이어리에 따로 적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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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남쪽 나라에서 보낸 나의 겨울은 따뜻했다. 그 200일 동안 긴장을 풀고, 서두르지 않고, 마치 현지인이라도 된 듯 슬렁슬렁 돌아다녔다. 매일 산책을 했고, 책도 많이 읽었고, 제법 글을 쓰기도 했다. 만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적다 보니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고요히 호흡을 고름으로써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필요한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에서보다 생활비가 훨씬 적게 든 건 물론이다. 일상보다 설레고, 여행보다 편안한 날들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겨울이 오면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가는 삶의 방식을 고수하게 될 것 같다. 여행과 일상의 중간지대에 머물며 덜 쓰고 덜 갖되 더 충만한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은 모두가 같은 곳을 찾아가 같은 것을 소비하고, 같은 사진을 찍고, 같은 방식으로 여행하게끔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나만의 여행법을 찾아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리는 여행자가 있다고 믿는다. 자기만의 속도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좇아 떠나는 여행, 여행 안에 여백을 두는 여행, 무엇보다 여행지의 삶과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여행...

 

   비싼 여행비를 감당할 수 없는 가난한 20대의 청춘들이, 살아남기 위해 달려왔지만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 건가 가끔씩 두려워지는 30대와 40대가, 아이가 성장하거나 직장에서 은퇴해 이제야 겨우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50대와 60대가, 여전히 젊은 정신을 간직한 70대와 80대가 이 책을 읽고 떠날 수 있다면, 그래서 저마다의 따뜻한 남쪽 나라를 경험할 수 있다면, 나에게도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힘이 생겨날 것 같다.

- p. 8-9, 프롤로그

 

 

    지난 남미 이야기에 실망을 한 부분이 있어, 따뜻한 남쪽 나라 이야기를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망설였는데, 표지의 바다빛깔이 너무 고아서 바로 주문했더랬다. 이번 여행기는 프롤로그에서부터 마음에 들었다. 서울의 추위를 피해 떠난 남쪽 나라에서 걷고, 먹고, 생각하고, 만난 이야기들. 특히 치앙마이에서는 E언니가 내가 좋아할 것 같다고 추천해준 블로그의 주인장이 등장해서 깜짝 놀랬다. 그녀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태국 남자와 만나 단번에 사랑에 빠졌고, 그 남자의 나라에서 아이 셋을 낳고 살아가고 있는 강하면서도 고요한 사람. 영화 <수영장>의 촬영지였던 호시아나 빌리지 이야기도 나온다. 언젠가 치앙마이에 가게 되면 이 두 곳에서 묵어보고 싶다.

 

    올해 여름휴가를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 중이다. 하반기에 또 팀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여름성수기 전에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어디가 좋을까. 아직 형편없지만 일본어를 배우고 있으니 써 볼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기도 하고, 일본은 여러 번 갔으니 가본적 없는 이국적인 곳으로 가고 싶기도 하고. 일단 교토 한 곳에서 느긋하게 머무는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 혼자서 이국에서 생일을 보내보는 것도 생각중이다. 교토의 이곳저곳을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한 책자가 있어 주문해놓았는데, 지금 실력으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디가 될지 모르겠지만 가게 되면 한 곳에서 오래 머물고 싶다. 김남희처럼 하루정도 그 나라 전통음식을 배워볼 수 있는 요리수업도 꼭 한번 들어보고 싶다. 이런저런 꿈들을 꾸어본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은 익숙했던 상대를 재발견하게 만든다. 내 안에 단단하게 굳어있던 상대에 대한 이미지를 녹여준다.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나오다니, 참 잘했다. -p.29

 

  내 이름은 그의 추억 속에 잠시 머물 것이다. 서치의 이름도 그럴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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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다 미리 책을 모두 사는 친구가 있다. 지금은 너무 많이 나와버려서 친구도 중간 즈음에 멈췄다. 매번 친구에게 빌려 읽었다. 처음엔 무척 좋았는데,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많다보니 새 책이 나와도 제목만 보고 이건 안 읽어도 되겠다고 심드렁해질 때가 있었다. 이번에 에세이와 만화책이 함께 나왔는데, 만화책 제목을 보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다 미리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매번 빌려 읽어서 친구에게 이번 건 내가 선물해주겠노라고 말했다. 친구는 그러면 먼저 읽고 주라고 했다. 그렇게 읽은 마스다 미리 이야기.

 

   만화가가 되기 전의 이야기, 초보 만화가가 되어 직접 홍보하고 다닌 이야기, 일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던 시기,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마스다 미리가 만난 편집자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편집자들이 대부분 재수없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공' 생각이 났다. 공도 그림을 그리는데, 얼마 전 몹쓸 편집자 때문에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물론 좋은 편집자들도 나온다.

 

   좋았던 부분이 많았는데, 책을 친구에게 선물한 뒤라 세세하게 생각이 안 나지만, '엄마의 얼굴' 부분은 또렷하게 생각난다. 마스다 미리가 도쿄에 가서 생활을 해보기로 결심을 하고 떠나는 날. 엄마는 마스다 미리의 짐을 자전거 뒤에 실고 역까지 배웅해준다.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말들을 했던 것 같다. 그 대화들은 생각이 안 나는데, 마지막 엄마 얼굴은 생각난다. 엄마가 뭔가 따뜻한 말을 건넸고, 그 순간 줄곧 동물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엄마가 사람의 얼굴로 바뀐다. 아, 그 사람 얼굴을 보는 순간 뭉클해져 버렸다. 눈물이 찔끔 났다. 좋았다, 이번 만화. 원서로 사서 읽어보려고 노력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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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들

from 서재를쌓다 2015. 12. 27. 19:40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그해 읽었던 최고의 소설이었다. 어떤 단편은 세 번이나 읽었다. 그 단편의 어떤 장면이 머릿 속에 계속 맴돌아 다시 꺼내 읽었다. 여자주인공이 늦은 밤 뒷마당에서 혼자 조용히 오열하는 장면이었다. 세 번 읽어도 좋았다. 작가의 이름이 외워두고, 언제 새 책이 나오나 주시하고 있었는데, 지난 9월에 새책이 나왔다. 그것도 장편소설. 출간되자마자 주문해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장편은 읽으면서 첫 소설집만큼의 느낌은 없었다. 한 가족의 이야기다.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고, 오빠가 있고, 여동생이 있다. 아빠와 엄마는 오랜 갈등 끝에 이혼을 했고, 오빠는 게이고 시인으로서의 재능이 있지만 미래에 대한 의욕이 없다. 여동생은 폭행사건에 휘말린 남자친구의 도피를 도와주고 있다. 소설은 이들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챕터에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무려 550쪽이 넘는 긴 이야기다. 처음에 좀 심드렁하게 읽다가, 점점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이 가족의 미래가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네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형편없었지만, 어떤 면에서 모두 이해가 되는 인물들이었다. 여동생의 남자친구 라자를 포함해서. 왜 이렇게 행동할까 답답하기도 했지만, 내가 그이들이라고 생각해보면 그이들처럼 행동했을 것 같았다.

 

   이 책에 반한 건 마지막 결론때문이었다. 여동생은 멕시코 국경을 앞두고 A와 B라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녀는 B라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A라는 선택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B라는 길에서 잘 살아나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한치의 흔들림 없이. 그 선택은 그녀를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힘들게 만들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이 삶이기에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해 하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녀와 라자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내게도 그런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그녀처럼 행동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어려운 일이었다. 무척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녀는 선택했고, 후회하지 않았다. 멋졌다. 그애의 이름은 클로이, 아니 앤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이들 가족이 아니라, 막내 클로이의 남자친구 라자이다. 나는 그애한테 한동안 반해 있었다. 라자의 친구로 승이라는 한국계가 나오는데, 좀 비열한 역할이라 읽으면서 마음이 씁쓸하기도 했다.  

 

 

   

좋았던 구절들.

 

 - 언젠가 N언니가 말했다. 그해 언니가 극장에서 본 영화가 지금까지 살아온 해 중에 가장 많았는데, 그건 외로웠단 증거라고. 그리고 언젠가 시옷의 모임에서 왜 책을 읽느냐고 S가 물었는데, 나는 내 삶이 무료해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라자도 그랬다. 

 

   그때 내 유일한 안식처가 영화관이었어, 라자는 말했다. 그곳에서는 몇 시간이고 날 잊어버리고 주위의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어. 어둠 속에서는 내가 누구고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 상관이 없었으니까. 최소한 몇 시간 동안은 어떤 사람도 될 수 있었지. 그 몇 시간 동안은 어디라도 갈 수 있었다. 프랑스령 유럽 국가로도, 1960년대의 런던으로도, 미주리 동부 평원의 구릉지대로도. 매주 금요일 밤이면 난 혼자서 뉴어크에 있는 달러시네마에도 가고, 주말이면 NYU에서 열리는 영화제나 뉴욕의 엔젤리카 극장에서 하는 특별상영회에도 갔어. 내 영화 공부가 시작된 곳이 바로 거기야. 그는 말했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고다르를 알게 됐지. 

p. 345

 

- 가족은 각자의 이유로 모두 외로웠다. 엄마의 이야기. 그녀는 이른 나이에 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그녀의 가정은 부유했지만, 계속 행복하지는 않았다.

 

   겨울방학이면 때때로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오곤 했다. 뒤뜰 베란다에 앉아 수영장을 내다보며 맥주를 마시면서 그들은 실패한 연애나 늘어가는 카드빚, 학자금 대출 등에 대해 이야기했고, 동시에 그녀의 집과 수영장과 아이들에 대해, 그리고 너무나 안정되고 어른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감탄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떠나고 나면 그녀는 가슴에 밀려드는 공허함을 느끼곤 했다. 어쩐지 뒤에 남겨진 듯한 느낌. 그다지 원했던 적도 없으나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아쉬워진 어떤 삶을 속임수에 빼앗겼다는 느낌.

p. 386

 

 

  1972년생 미국 작가, 앤드루 포터. 그의 다음 소설도 여전히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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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from 서재를쌓다 2015. 12. 22. 23:56

 

 

 

   함께 책을 읽는 친구가 있다. 먼저 읽으면 좋은 책을 읽었다며 선물해주기도 하고, 좋은 책일 것 같은 예감이 마구 드는 책은 처음부터 함께 읽기도 하고. 그렇게 읽고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지난 가을, 친구가 물었다. 혹시 <나를 버리지 마> 읽었어? 아니. 다음에 만날 때 선물할게. 친구가 가지고 나온 책은 <나를 보내지 마>였다. 하지만 나를 버리지 마, 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복제인간의 이야기를 지금 이 땅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복제인간 이야기지만, 지금의 우리 이야기이기도 한 이야기.

 

   추석 연휴에 이 책을 읽었다. 서울에서 장유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다 읽었다. 좋아하는 음악들이 랜덤으로 이어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낮이었다. 다행히 차는 막히지 않았다. 여러 개의 터널을 지나는 중이었다. 이어폰에서 이소라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현우의 노래를 이소라가 부른 거였다. 터널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바람에 어두워져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이 책에는 세 명의 아이가 나오는데, 토미와 캐시와 루스다. 터널 안에서 이소라의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는데, 이소라가 이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보고 싶지만 가까이 갈 수 없어. 이제 그대 곁을 떠나가야 해. 외로웠었던 나의 메마른 두 눈에 크고 따뜻한 사랑을 주었던. 그대 곁을 이제 떠나는 것을 후회할 지도 모르지만 그댈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대만을 사랑하는 걸 잊을 수는 없지만,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사랑하는 그대여 안녕.

 

   지난 추석, 나는 이소라 때문에, 터널 때문에, 토미와 캐시, 루스, 이 세 아이 때문에 꽤 오래 가슴이 먹먹했더랬다.


 

 

    그런 다음 우리는 짧고 가벼운 입맞춤을 했고, 나는 차에 올랐다. 내가 시동을 거는 동안 토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 후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뒷거울로 그런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곳에 서 있었다. 이윽고 그는 한 손을 애매하게 들어 올리고 나서 돌출된 지붕 쪽으로 몸을 돌렸다. 차의 뒷거울에서 광장의 모습이 사라졌다.

 

   며칠 전에 맡고 있는 한 기증자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는 정말 소중한 기억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퇴색하고 만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기억은 결코 퇴색하지 않는다. 나는 루스를 잃었고, 이어 토미를 잃었지만 그들에 대한 나의 기억만큼은 잃지 않았다.

- <나를 보내지 마> p. 39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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