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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쌓다341

잘 먹고 갑니다 '잘'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난해 수술을 하면서 알았다. 수술을 하기 전에 몸을 가볍게 한다고 덜 먹고, 하기 직전에 몸 속의 것들을 모두 빼내고 금식을 하고, 입원을 하면서 먹은 푸짐하고 건강했던 세끼 병원밥, 수술 후에 시간을 들여 챙겨먹은 단백질과 채소와 과일들, 그리고 한동안의 금주, 쉴새 없이 마셔댔던 물과 차. 지금 또 다른 의미로 '잘' 먹고 있으면서 그때 내가 얼마나 건강하고 가벼웠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그래서 이번주부터 조금씩 그날들로 돌아가려고 걷고, 건강한 저녁을 가볍게 챙겨먹었다. 는 병규가 정한 시옷의 책인데, 모임이 미뤄지고 늦어진 탓에 한겨울에 읽었던 책을 저번주에서야 모임을 가졌다. (손꼽아 기다렸지만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나 ㅠ) 병규가 이 책을 한다고 했을 때, .. 2018. 4. 2.
밤의 발코니 ​ 추운 날이었다. 우리는 광화문에서 만났다. 전날만 해도 따뜻했는데, 약속한 날에 칼바람이 불어댔다. 보경이는 수요미식회에 나온 적이 있는 곳이라며 근사한 레스토랑 분위기의 밥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들깨가 들어간 국물과 아삭아삭 채소가 들어간 비빔밥을 먹었다. 실내는 빛이 들어오질 않아 어두웠다. 너무 추워 멀리 못가고, 근처 커피집에 들어가 따뜻한 라떼를 한 잔씩 마셨다. 달달한 케잌은 거의 남겼다. 커피집에서 보경이가 말했다.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쓴 문장을 봤는데, 그 문장을 보는 순간 그 책이 읽고 싶어졌다고. 사서 매일 조금씩 읽었다고. 작가 소개가 있긴 했는데,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언니가 좋아할 지 모르겠다. 언니는 멋낸 문장 안 좋아하잖아. 처음과 똑같은 마음으로 읽어내진 못했다. 처.. 2018. 3. 29.
차의 기분 ​ 읽으면서 생각했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매개체를 통해서든 드러나는구나. 차의 이야기이지만, 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차를 마시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 글들이 짧은데, 결코 짧지 않다. 차를 마시듯 한 모금, 한 모금 그렇게 책장을 넘기며 봤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차를 마셔온 사람으로서, 커피나 여타 음료를 마셔온 사람보다는, 차에 더 가까운 정서를 갖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정서가 알게 모르게 글에 묻어났기를 기대한다. 나는 차를 마시는 사람이고, 차를 마시면서 몸도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고 자신한다. 당신도 나처럼 그랬으면. 나는 이제 심지어 와인보다 차를 더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와인을 약간 더 좋아하고, 차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표현이 올바를 것이다. - 8쪽 .. 2018. 3. 26.
홀딩, 턴 ​​ 책을 먼저 건넨 뒤, 친구는 내 얘길 가만히 듣더니 말했다. 그 책이 지금 너한테 좋을 것 같아. 잘 읽어 봐. 친구는 두 권을 사서 한 권에는 내 이름을, 다른 한 권에는 자기 이름을 적어달라고 했단다. 어떤 부분은 정말 설레였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친구가 한 말이 맞았다. 후반부는 좀 아쉬웠다. 후반부에 내가 한 생각은, 아, 소설이구나. 소설을 읽어도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 소설이 좋다. 지어낸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소설. 요즘 내가 계속 찾고 있는 소설. 마음에 툭툭 걸리는 문장들이 많았다. 우리가 함께 춤추는 순간들은 정말이지 행복했는데,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그렇지만 춤추는 순간들이 있었기에, 함께 한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 고 생각해 본다. 남자는 여자에게 처음 .. 2018. 2. 15.
산다는 건 잘 먹는 것 집에도 바람의 길이 있다. 창문을 연다. 현관을 연다. 그러면 바람의 움직임이 생긴다. 조용히 지나가는 바람이 느껴진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떨 때는 살랑살랑 가늘게, 어떨 때는 두껍게, 가끔은 몰래, 또는 세차게 다양한 바람이 지나간다. 거기 어디쯤 장소를 정해서 가늘게 자른 무, 푸른 잎, 배를 가른 생선, 작은 베리류, 고깃덩어리 등등 생각나는 대로 뭐든지 말린다. 요즘은 배추꼬랑이에 푹 빠져 있다. 채에 펼쳐서 며칠 동안 말린 다음 그것을 잘게 채 쳐서 된장국에 넣으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 43-45쪽 어른들의 여름이라면 역시 아이스케키가 아니라 하이볼이다. 땅거미가 지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긴자의 바 '록피시'의 문을 밀고 들어간다. 바텐더인 마구치 씨가 직접 만든 하이볼이야 당연히.. 2018. 1. 4.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출근을 하지 않고, 점심 전에 충무로에 가는 일정이 있는 아침. 새벽에 일어났는데 침이 잘 넘어가지 않아 목감기가 오는 중이라는 걸 알았다. 동생이 구워준 부침개와 두부와 우유를 넣고 갈아만든 콩물을 아침으로 먹었다. 보이차는 다 떨어져 어젯밤에 티백과 찻잎을 함께 주문했다. 이불을 개고, 바닥의 먼지를 돌돌이 테이프로 훔치고, 간밤의 온기가 사라지지 않게 얇은 이불을 덮어뒀다. 이제 씻어야 하는데 영 귀찮네. 친구가 오늘도 많이 추우니 따뜻하게 입고 다녀오라는 메시지를 보내줬다. 책장 앞에서 새해 첫 책을 신중하게 고르고, 작년에 읽은 책 한 권을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겨울나그네님이 추천해 주신 이병우의 음악과 어제 나온 우효의 새 노래를 가만히 듣는 아침이다. - 어떤 사람들에겐 가게를 연 목적.. 2018.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