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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에어 - 기린님, 나는 괜찮아요 어떤 외로움은 외롭다는 느낌보다, 말이 먼저 온다. 내가 봤다. 그런 사람. 그이는 자신이 전혀 외롭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혼자가 편하다고 했다. 집을 평생 사지 않겠다 했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외롭다고 말했다. 실은 외로워요. 그러자 그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혼자가 편한 사람이었는데, 평생 집을 사지 않겠다, 결혼따위 절대 하지 않겠다 결심했던 사람이었는데. 그는 그렇게 외로운 사람이 되었다. 외로운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표정은 꼭 십대에 실연 당한 소년의 것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손을 뻗어 스크린에 대고 그 뺨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라이언,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당신은 외롭지 않은 사람이었잖아. 어떤 외로움은 말이 먼저 온다. 영화는 결국 '쿨'하지 않은 결말로 끝.. 2010. 3. 27.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 여름의 끝자락, 시를 읽다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이성미 지음/문학과지성사 도서관에 들렀다. 시를 잘 읽지도 않는 주제에 시를 읽고 싶은 날이란 생각에 시집을 빌렸다. 이성미 시인의 라는 시집이었다. 집에서 도서관까지 가는 시간은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데, 제일 빠른 길은 이렇게 가는 길이다. 대문을 나서 '오이마트'에서 좌회전해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내가 순간적인 판단으로 '컷트머리로 잘라달라고 한 미용실'에서 좌회전해서 2분정도 걸어가면 도서관이 있다. 4층이 내가 늘 가는 종합자료실이다. 크리스마스 아침 도서관 가는 길에 우리 자매가 종종 이용하는 술집이 즐비해 있다. '황룡성'이라는 중국집을 닮은 치킨집은 얼마 전 '푸닥푸닥'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하며 떡이며, 머릿고기를 돌렸다. 이 집은 조명이 푸른 색이다. 역시 '.. 2008. 8. 27.
여름밤의 기억 어젯밤 그날 밤 그리고 이런 詩 우주로 날아가는 방1 김경주 이건, 7월의 밤 2008. 8. 14.
20세기 소년의 청춘의 빛 들어봐요. 이 노래는 흔한 사랑노래, 로 시작하는 20세기 소년의 '사랑노래'를 듣다가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고, 하루종일 엉엉 소리내어 울었던 그날들이 생각났다. 아주 오랜만에. 밤새 잠을 한 톨도 자지 못하고 친구의 꼭대기 삼각형 방으로 올라가 꾸역꾸역 울음을 삼키며 이야기를 시작했던 아침. 그 때 친구의 표정. 이불을 덮고 엉엉 울고 있는 내 방 문을 친구가 열어보곤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닫았던 밤. 그 날의 실루엣. 이상하다. 이건 들어봐요. 이 노래는 흔한 사랑노래, 로 시작하는 아주 예쁜 멜로디의 예쁜 가사인데. 나는 이제 그 날을 예쁘게 추억하게 된 걸까. 이 앨범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강(江)'. 특히 이 부분. 저 강물은 흘러가네. 그댄 잊혀지네. 미운 그리운 마음.. 2008. 7. 9.
바닥, 옥산휴게소 어제, 너무 화가 나서 도저히 집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반납할 책을 챙겨 들고 나와 조금 걸었다. 주말, 비가 오래 올 줄 알았는데, 하룻밤뿐이었다. 비온 뒤 쾌청한 하늘이 아주 새파래서, 썬크림도 안 바른 얼굴로 오래오래 하늘을 올려다봤다. 자주 걷는 그 길에는 얼마 전, 주홍색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침엽수같이 생긴 진한 초록의 식물에는 연한 연두빛 새순이 돋아나 있었다. 나는 그것이 신기해 한참을 들여다봤다. 진하디 진한 초록과 연하디 연한 연두가 한 몸으로 이어져 있다. 간밤에 시인의 낭송 소리를 엠피쓰리 플레이어에 담아뒀다. 다 옛일이 되었다, 이 구절 하나에 마음이 먹먹해져 버렸던 기억. 바닥 문태준 그리고. 도서관에서 이런 시를 읽었다. 옥산휴게소 정호승 오늘은 하늘이 조금 .. 2008. 6. 30.
치자꽃 설화 치자꽃 설화 박규리 작년에 치자꽃향을 그려보려고 애썼던 계절이 있었다. 봄이였으면 분명 화분을 사러 갔을텐데 그렇지 않았던 걸 보면 가을즈음이였던 것 같다. 치자꽃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향기로운지에 대해 쓴 글을 읽고선 그 향기를 지금 맡아보지 않으면 안 될 사람처럼 킁킁거렸었다. 분명 내가 언젠가 맡아보았던 향일텐데. 그리 진하다는데. 아카시아 향이랑 비슷한가. 냄새에 민감하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였다. 고작 기억나는 향이라곤 아아아아아아아~ 아카시아 향. 아쉬운 마음에 인터넷에서 치자꽃 사진들을 검색해서 보며 내년 봄에는 꼭 치자 화분을 사리라, 다짐했다. 곁에 오래 두고, 오래 냄새 맡을 수 있도록. 명절에 엄마가 치자물을 만들어와선 야채전에 넣어 노랗게 구워내면서 색이 이쁘다, 이쁘다.. 2008.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