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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에게극장에가다 2019. 12. 26. 22:22
왜 오타루에 눈이 가득한 장면이 이상하다고 느껴졌을까. 오타루보다 더 눈이 오지 않나, 라고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을까. 영화 의 배경도 오타루였는데. 겨울에 눈이 쌓인 운하에 ㅂ찔끔찔끔 나던 오타루. 에서 윤희는 오타루에 가게 된다. 옛 친구가 있는 곳. 언젠가 꼭 보고 싶었지만, 어쩌면 영영 못 볼 사람이라 생각했던 고운 사람이 있는 곳. 윤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억누르며 버티고 버티던 직장을 어느 날 그만둔다. 출근할 때만 해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매일 아침 그러고 싶었지만 매번 그러지 못했다. 올해 못 쓴 휴가를 쓰겠다는 말에 돌아오면 자리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책임자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공장을 돌아서 나오던 장면이었다. 내내 침울했던 윤희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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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옷의 책모퉁이다방 2019. 12. 13. 10:26
결국 마피아는 없었다. 조림이, 봄, 병규, 기석이가 후다닥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 게임이었다. 마피아가 아무도 없는 게임에서 모두들 결백을 주장했다. 자신이 선량한 시민이라고 거듭 강력하게 주장을 했던 조림이는 마피아가 없다는 통보를 받고 허무하고 억울하게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끼리 좀더 마시기 위해 테이블을 약간 치우고 있었는데, 책상이 있는 방에 들어가 있던 소윤이와 민정이가 나를 불렀다. 언니 책들은 어떻게 정리해놓은 거야? 분류법 따위는 없고 막 채워넣었다고 답을 하니, 여기는 시집이 있네, 여기는 이런 책들이 있네, 하는데 못 보던 책들이 보였다. 잊지 않으려고 쓰는 이야기들. 헉. 아이들이 블로그 글로 책을 만들어 선물해준 것. 고맙고 부끄러웠다. 나는 책을 가질 글을 쓴 사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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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행모퉁이다방 2019. 11. 17. 18:52
친구의 결혼식을 보고 올라가는 길. 밑에서는 흐리기만 했는데, 충청도에 들어서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동생은 서울에 비가 많이 오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은 아주 춥다는 예보가 있다고. 친구의 신랑은 내 결혼식에서 한 번 보고 오늘이 두 번째인데, 오늘 보니 다부져보였다. 친구는 붉은색 부케를 들었다. 내 결혼식에서 친구가 부케를 받았는데, 세 달 안되는 시간 동안 잘 말려 예쁜 케이스에 담아 내게 다시 선물을 했다. 원래 이러는 거야, 라고 물었더니 요즘 유행이래, 라고 말했다. 어제 이걸 만든다고 잠을 못자 눈이 빨개졌다며. 친구의 부케는 신랑의 친구가 받았다. 남자사람이. 요즘 그런다고들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부러 폴짝폴짝 뛰며 유쾌하게 받아 모두들 즐거워했다. 올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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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닭집서재를쌓다 2019. 11. 14. 22:46
제주도에서 온 친구와 위례에 사는 친구, 파주에서 퇴근을 한 나. 이렇게 셋이 금요일 밤에 양재에서 만났다. 검색을 해보니 양재에서 집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 거의 끝과 끝이었지만, 버스를 한 번만 타면 된다. 우리는 우리의 오래전 아지트 양재닭집에 갔다. 한때 이곳에 정말 자주 왔었다. 바삭바삭한 옛날 통닭에 양도 푸짐하고 장사가 잘되서 그런지 생맥주도 맛났다. 시원하고 톡 쏘는 맛. 여기만 오면 얼큰하게 취했더랬다. 시장 한 켠에 자리잡은 닭집은 여전했다. 맛도 그대로였고, 인기 있는 것도 그대로였다. 우리는 후라이드 치킨 하나와 닭똥집 튀김 하나를 시키고, 맥주와 사이다를 마셨다. 이날 방광염 약을 먹는 바람에 그 시원한 맥주를 마시지 못했더랬다. 간만에 셋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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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킹모퉁이다방 2019. 11. 7. 17:16
막내의 결혼식이 있던 시월의 일요일에 보경이가 놀러오기로 했다. 영종도에서 군포까지. 네이버 지도앱으로 검색해보니 대중교통만 이용했을 경우 두시간 남짓이었다.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냐고 하니 여행하는 기분으로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온다고 했다. 고맙고 미안했다. 산본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고 했다. 친구가 집들이 선물로 전자레인지 겸 오븐을 선물해줬는데 오븐 덕분에 삶의 질이 1도 정도 높아졌다. 갓 지은 밥을 냉동실에 얼려놓고 금방 해동할 수 있게 되었으며, 생선도 냄새 걱정 없이 구울 수 있게 되었다. 고구마도 적당히 구워 단맛이 한껏 오른채 버터를 살짝 녹여 맛나게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베이킹. 오븐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해보자는 생각에 베이킹에까지 이르렀다. 보경이는 케이크도 구워 판매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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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서재를쌓다 2019. 10. 23. 17:39
7월이었다. 종로에 반지를 보러 가는 날이었는데, 일찍 도착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카페 뎀셀브즈에 갔다. 아주 예전엔 종로에 오면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었는데. 맥주도 한 잔 하고. 스폰지하우스가 있고, 이런저런 작은 영화들을 볼 수 있었던 아주 예전에. 카페 뎀셀브즈에 가면 언제나 그 시절 생각이 난다. 그립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내가 첫 손님인 듯 했다. 매장에 직원들만 있었다. 출출해서 샌드위치를 먹어볼까 케잌을 한조각 먹어볼까 고민하다 그냥 커피만 시켰다. 곧 점심을 먹을 거니까. 차가운 커피가 담긴 쟁반을 받아들고 2층으로 가 아무도 없는 넓은 홀의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다시 읽기 시작한 책. 처음에 잘 읽히다가 중간쯤 진도가 나가지 않자 덮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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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모퉁이다방 2019. 10. 23. 00:39
오늘은 커피필터를 사야했다. 주말에 필터가 떨어져 월요일과 화요일 커피를 못 내리고 출근을 했다. Y씨가 셔틀 안에서 저녁 먹고 갈래요? 라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합정 안쪽 골목길로 들어갔다. Y씨가 감바스를 먹고 싶다고 해서 감바스와 문어머리 튀김을 시켰다. 감바스는 무척 맛났지만, 살이 많이 찔 것 같았다. 새우와 야채를 다 먹은 뒤에 스파게티 면을 추가해서 먹었다. 맥주도 두 잔 마셨다. 살이 더 찔 것 같았다. 8시 반쯤에 시계를 보고 9시쯤 일어서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시계를 보니 9시 반이었다. 읔. 내일은 꼭 커피를 내려 마셔야 하므로 합정에 있는 다이소에 들렀다. 올해 안에는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넉넉하게 샀다. 올해가 벌써 두달 밖에 남지 않았다. 아침 일찍 뜨끈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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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모퉁이다방 2019. 10. 14. 22:05
욕심이 쌓이고 쌓이기만 한다는 이유로 요즘 명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생이 어느 날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책 읽는 것도 명상 같아. 집중해서 그 안에 있잖아. 좋은 책이 내가 가고 싶은 마음상태나 모습으로 가게 해주는 거 아닐까." 동생에게 명상을 알려주시는 분이 그러셨단다. 명상이란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상상하고 그려보고 그 안에 머무르는 거라고. 욕심을 버리고 싶으면 욕심을 버리는 내가 되는 것이다. 눈을 감고 차를 마시고 생각을 비워가면서. 동생이 저 메시지를 보낸 뒤로부터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명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땅 밑으로 들어가 모험을 하기도 하고, 사고를 당해 죽어가는 아내를 둔 남편이 되어 하와이의 일상을 살아보기도 한다. 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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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티비를보다 2019. 10. 10. 22:17
월요일과 수요일, 금요일에는 거의 옆사람이 먼저 퇴근해 있고, 내가 여덟시 즈음에 집에 도착한다. 살이 찌고 있는 심각성을 깨닫고 있지만 그래도 아쉬워 뭔가 간단하게 하거나 시켜서 먹는다. 저녁에는 항상 티비 앞에 상을 펴놓고 나란히 앉아 먹는다. 한글날을 앞둔 화요일 밤, 그러니까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공휴일을 앞둔 아주아주 신나는 밤에 멕시카나에 치킨을 시켰다. 후라이드 반, 양념 반. 맥주를 시키지 않았다고 해서 말이 되냐고 다시 전화를 하라고 했다. 멕시카나 주인분이 말씀하시길, 뜨근뜨근한 치킨과 함께 배달하면 미지근해져서 그런지 맛이 없다는 항의가 많이 들어와 이제 맥주는 배달하지 않는단다. 아쉽지만 냉장고에 친구가 주고 간 맥주가 있으니까. 따끈따끈한 치킨에 각자의 맥주와 소주를 따라놓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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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여행을가다 2019. 10. 1. 22:32
하와이에 있는 동안 이틀을 제외하고 매일 일몰을 봤다. 이틀은 쇼핑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와서, 차 안에서, 요트 위에서, 투어 아저씨가 추천해 준 식당에서, 말로만 듣던 와이키키 해변에서. 그렇게 매일매일 보는데도 질리지가 않았다. 아름답고 아름다웠다. 일출을 보러 에베레스트 다음으로 높다는 산에도 올라갔지만, 해가 뜨는 건 한 순간이었다. 뜬다뜬다 하다 짠-하고 뜨고 나면 끝이었다. 순식간에 환해지고,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한순간에 보였다. 해가 지는 건 달랐다. 나 진다진다 하다 뚝-하고 사라져버리는 게 아니었다. 나 간다간다, 가고 있다고, 그런데 진짜 가도 되겠어? 아쉽지 않겠어? 좀 더 보라고, 얼마나 보고싶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