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1404 D-1 늦은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와 다 마른 빨래를 개고 있는데 갑자기 거실에 있는 여인초 큰 잎들이 휘청거렸다. 날씨가 좋아 방 창문들을 다 열어놨는데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했다. 밖을 내다보니 작은 숲의 나무들이 세차게 출렁거린다. 오늘 날씨예보에 갑작스런 비가 있다고 했는데 진짜네. 마치 태풍 직전처럼 쏴아쏴아 바람소리가 들리니 이상하게 가슴이 시원해진다. 내일 수술 때문에 자정부터 물 포함 금식이라 세끼를 아주 기똥차게 먹기로 했는데 늦은 아침 덕분에 늦은 점심이 되고 엄청 늦은 저녁이 될 예정이다. 사실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튀어나온 배도, 배 안에서 꿈틀거리는 태동도, 뒤뚱거리며 걷는 것도 모두 마지막이라는 것이. 오늘 출산 전 마지막 엽서를 쓰다가 영화 생각이 났다. 에서 '태어나기 전 세상.. 2021. 5. 30. D-2 아빠는 롯데팬인데, 야구 이야기를 하면 자신은 그리 팬이 아니라고 하신다. 그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니까 그 시간마다 보게 되는 거라고. 신기하게도 이른 휴가가 시작되고 집에만 있게 되자 매일 야구를 챙겨보게 되었다. 아빠 말대로 월요일을 제외하면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니 보게 되더라. 미세먼지 가득한 날도 있지만 맑은 날들도 꽤 있어 푸른 잔디밭과 맑은 하늘, 뻥- 소리를 내며 멀리멀리 날아가는 공들도 볼 수 있고, 뭔가 축구나 농구와 달리 여유로워 보이면서도 긴장되는 경기의 흐름도 그렇고. 경기장 한가로운 자리에서 시원한 생맥주 한 잔하면 정말 좋겠다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다 하루키 생각이 났다. 하루키가 한가롭게 야구경기를 보다 문득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것. 작가의.. 2021. 5. 30. D-3 열달동안 차곡차곡 받아온 마음들. 전탕이야, 소중한 마음들을 잊지않는 고운 사람이 되자. 2021. 5. 28. 여수남해통영 작년 팔월에는 남해로 여름휴가를 조금 느즈막이 다녀왔다. 첫번째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 기차를 타고 여수에 가 렌트를 한 뒤 남해를 거쳐 통영으로 그리고 다시 여수로 돌아와 렌트카를 반납하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는 코스였다. 이때 수도권에서 코로나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어 엄청 조심하고 조심했는데, 지금까지도 이러고 있을 줄, 그때보다 더 심해질 줄 상상도 못했네. 여행내내 비가 왔다. 심지어 여수에 내려간 첫날에는 태풍이 왔더랬다. 어쩔 수 없이 많이 다니지 못한, 이른바 숙소여행이었다. 일년치 자기계발비를 거의 이 여행 숙소에 다 썼다. 여수에서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자그마한 개별 수영장이 있는 호텔에서 묵었고, 남해에서는 풀빌라에 묵었다. 방문을 열면 개별 바베큐장과 개별 수영장이 있었다. .. 2021. 5. 28. D-4 어제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그랬다. 좋은 와이프 얻어서 자기가 이런 호사도 누린다고. 친구는 엘리베이터에서 남편에게 봉투를 건넸는데 이건 너 거야, 금령이꺼 아니라 용효 너 꺼야, 그러니까 꼭 너를 위해서 써, 라고 했다. 봉투 안에는 상품권과 메모가 있었다. 아기와 나는 선물을 많이 받았으니 이건 꼭 너를 위해서 쓰라고, 지금껏 좋은 남편이었고 이제 좋은 아빠가 될 게 분명하다고 쓰여 있었다. 남편은 자기 친구들은 아기를 낳으면 선물 같은 건 하지 않고 아빠가 되는 사람이 술을 한 턱 쏜다며 내 친구들의 연이은 선물과 격려를 놀라워했다. 나도 결혼식 이후 이렇게 벅찬 감정을 느낀 건 오랜만이다. 모두들 너무너무 고맙다. 내가 이렇게 챙김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건지. 아기를 잘 낳고 길.. 2021. 5. 27. D-6 오늘은 수술 전 마지막 정기검진일. 태동검사를 하고 진료를 봤다. 검사 이십분 여 동안 탕이는 조금씩 꼼지락거렸다. 이런 사랑스런 태동도 이번주가 마지막이다. 사람 많은 토요일보다 그나마 사람이 적은 평일이 병원도 간호사 분도 선생님도 여유로우시다. 선생님은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물으셨다. 아직도 머리가 위에 있을까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역시 탕이는 돌지 않았다. 처음으로 선생님이 진료 외 다른 이야기를 건네셨다. 오늘의 날씨에 관한 것이었는데, 밖의 날씨가 어떤가요? 바람이 많이 불어요. 날씨 때문인지 오늘따라 손이 많이 차가운데 배에 손 올릴 때마다 걱정이 된다고. 선생님이랑도 어느새 팔개월 째다. 다 정상이란다. 오늘은 얼굴을 좀더 자세히 보여 주셨다. 뭔가 저번 진료 때보다 얼굴이 성숙해진 .. 2021. 5. 25.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2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