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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우이 20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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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1호선 2 2020.08.11
  5. 하면 는다 8 2020.07.19
  6. 소고기무국 4 2020.07.14
  7. 드림캐쳐 4 20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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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유월의 근황 4 2020.06.23
  10. 금밤 10 2020.04.18

라하이나

from 여행을가다 2020. 8. 24. 19:12

 

 

 

    사건은 라하이나 거리에서 시작되었다. 라하이나 거리는 마우이의 메인 스트리트라고 한다. 왠만한 상점들은 이 곳에 다 있어 선물을 사기에도 좋고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고. 별다른 계획없이 하루에 하나씩 기억에 남을 일을 해보기로 한 우리는 전날 바다 위에서 저녁도 먹고 석양도 구경할 수 있는 선셋요트투어를 예약해뒀다. 모이는 장소가 라하이나 거리에서 차로 이십분 정도여서 라하이나 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시간에 맞춰 가기로 했다. 아침은 느즈막히 일어나 전날 마트에서 사온 라면과 남은 고기로 무려 아침 스테이크를 해먹었다. 사이좋게 먹고 길을 나섰다. 오늘도 마우이의 선명함은 이상무. 라하이나에서 주차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점심을 먹으려고 한 치즈버거인파라다이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할 수 밖에 없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부러 해변쪽으로 걸었다. 이때만해도 분위기가 좋았지. 하와이의 파도, 구름, 햇빛. 각자 쪼리와 슬리퍼를 벗고 모래사장의 까슬까슬한 모래와 제법 센 파도를 발끝으로 느끼며 걸었다. 수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서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치즈버거인파라다이스는 유명한 햄버거집이었는데 창문을 열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바다 위에 세워진 오래된 가게였다. 분명 생맥주를 시켰는데 캔맥주가 나왔다. 캔맥주가 이미 컵에 가득 따라진 채 나와서 그냥 마시기로 했다. 컵에 캔을 끼워둔 모양이 귀여웠다. 치즈버거와 어니언링 하나를 시켰는데 양이 많았다. 맛은 나쁘지 않은 정도. 창가에 앉으니 파도소리가 크게 들려 파도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서둘러 요트출발지로 이동했어야 했는데, 현지물건들을 파는 커다란 편집샵에 있어 그곳에 들어갔다가 내가 기분이 상해버렸다. 이유는 어제부터 계속 영어로 말하는 걸 꺼리고 있던 나를 안타까워하던 남편이 계산을 하다 또 못 알아들은 나를 옆에서 도와주지 않고 가르쳤기 때문인데,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다. 매장에서 나오자마자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꼭 그렇게 했어야 했냐로 시작해 큰소리로 쏘아붙였고, 예전에도 그런 격앙된 나에게 질린 (연애 때는 참 많이도 싸웠었다) 남편이 나를 두고 그냥 가버렸다(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 행동에 더 열받은 나는 이 놈을 따라가지 말아버려? 부글부글 상태가 되었지만 방법은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숙소로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남편은 멀리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면서 아주 천천히 걸었다. 결국 시간이 꽤 지난 뒤에 주차장에서 만났고 아슬아슬하게 요트 출발지에 출발시간 가까이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출발지를 찾는데 나는 뛰고 남편은 멀찌감치 따라오고. 급해서 울렁증도 잊고 주위사람에게 찾는 장소가 맞는지 물어봤다. 맞다고 해서 아슬아슬하지만 다행이다 안심했다. 사람들이 요트에 타기 전 명단을 작성하길래 틈에 끼여 이름을 적었더랬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왜 이리 출발을 안 하지. 진행요원에게 물어보니 그 배는 아까 떠났다는 거다. 아. 내가 본 예약 사이트의 시간은 배 출발시간이었다. 그러므로 그보다 훨씬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던 거였다. 아직까지 냉전상태였지만 남편이 물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러니 그 진행요원이 다행스럽게도 사무실에 전화를 해보면 다른 날 배를 탈 수 있게 해줄 거라고 답변해줬다. 이게 2차전의 시작이었다.

    2차전은 숙소에 도착해 그 전화를 하지 않을 거냐는 남편의 말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전에 안타까운 이야기부터 해야지. 그러니까 돌아오는 길에 넓디 넓은 태평양을 높은 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심지어 운이 좋으면 분홍돌고래가 보인다는, 해가 질 때는 석양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서 있기도 힘들다는 장소가 있었는데 뭔가 표지판이 있고 본능적으로 여기가 핫스팟이라는 걸 직감한 남편은 차를 세웠고 내려서 구경을 하자고 했다. 나는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았으므로 거절을 했고 남편은 혼자 보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무척 장관이었다고. (으, 그놈의 자존심) 나중에 그 길을 한번 더 가게 되었는데 그때 내려서 보았지만 밤이라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그러니까 2차전은 여전히 삐져서 숙소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나에게, 간단한 영어도 못해 자존심이 상한 나에게, 남편이 업체에 전화를 걸어 배를 놓친 우리의 사정을 말하고 다시 탈 수 있는지 물어보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다시 격앙되어서 내 돈으로 낼 거고, 나는 전화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 거금을 그냥 날릴 셈이냐고 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입을 다물었다. 남편이 방을 나가서 나는 그 틈을 타고 냉장고에 넣어둔 맥주 한 캔과 핸드폰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숙소 야외 벤치에 앉아 맥주캔을 땄고 와이파이 연결을 확인하고 동생에게 톡을 했다. 나 영어 너무 못해. 그래서 싸웠어. 동생은 신혼여행가면 다 싸운다더라. 그래서 지금 어디야? 라고 물어봐줬다.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그 바람을 맞으면서 동생에게 하소연을 하니 속이 조금 후련해졌다. 동생이 이제 기분 풀고 형부에게 가봐, 라고 했다.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어디갔어? 비도 내리기 시작해 다 마신 캔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호텔 카운터를 몇번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업체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전화를 받지 않아 연결은 되지 않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화해를 했다. 나는 내 영어울렁증에 대해 말했고, 남편의 나의 격앙된 돌변화냄에 대해 말했다. 나는 그래도 그렇게 가버리는 건 아니라고 말했고, 남편은 그건 잘못했다고 했다. 나도 사과했다. 남편은 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영어인데 너무 겁을 먹는 것 같다고 쉽게 생각하고 간단하게 말해보라고 조언해줬다. 그 뒤로 내 영어울렁증으로 싸우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떠나버린 배 따위 말끔히 잊어버리고 내려가서 바베큐를 해먹기로 했다. 비는 그쳤고 바람은 선선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잘 보였다. 수도 많았다. 달도 예뻤다. 그래 이거면 됐지 하면서 맥주병을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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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이

from 여행을가다 2020. 8. 23. 17:47

 

 

 

    마우이는 선명했다. 공항에서 내려 렌트카를 찾으러 가는 길에 전차 같은 이동수단을 이용했는데 그걸 기다리고 서 있는데 드는 느낌이 와, 선명하다였다.  초록이 선명했고 야자수들 키가 컸다. 하늘이 맑았다. 구름이 많았고 바람이 불었다. 햇볕이 강해도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그리 덥지 않았다. 하와이에 가면 섬 하나는 가보는 것이 좋다고 해서 자연경관이 좋다는 마우이를 택했다. 숙소는 너무 비싸지 않고 조리를 직접 할 수 있는 곳으로 택했다. 그리고 테라스가 있는 곳. 나의 숙소 선택 필수조건. 이 숙소는 어떤 블로거의 후기를 보고 선택했는데 머무는 동안 한국인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내가 이리저리 여행을 다녀보았다고 하니 영어를 꽤 하는 줄 알았던 남편이 내게 이런저런 것들을 시켰는데 그동안 그나마 있던 영어실력까지 퇴보해 아주 쉬운 것도 들리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나는 있는대로 자존심이 상했고 결국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못하고 마우이에서 남편과 대판 싸웠더랬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아무튼 그 발단은 이 숙소 체크인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야기. 내가 예약을 한 터라 남편은 내가 대답을 하리라 생각하고 가만 있었는데 직원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질문을 했고 내가 대답을 못하고 있자 남편이 응?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남편이 이것저것 대답을 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이때 영어울렁증에 대해 좀더 얘기하고 풀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덕분에 나중에 굉장한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이때도 영어 공부할 것을 깊이깊이 다짐하고 돌아왔는데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러고 있네.

 

   방은 근사했다. 침대가 있었고 소파가 있었고 부엌이 있었다. 테라스도 있었다. 테라스로 가면 선명선명한 마우이가 보였다. 저 멀리 바다와 산도 조그맣게 보였다. 역시 숙소 고르는 능력이 있다고 남편이 칭찬을 해줬다. 체크인 할 때 물어 본 제일 가까운 마트로 바로 나갔다. 냉장고를 하와이 맥주로 가득 채워야지. 마트는 생각보다 컸고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에 해지는 줄도 몰랐다. 남편이 저녁으로 스테이크를 해준다고 고기를 샀다. 나는 한국에서는 비싼, 혹은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하와이 맥주를 가득 샀다. 머무는 동안 다 마실 수 있겠냐고 했는데 나중에 맥주가 떨어져 마트를 한 번 더 왔더랬다. 마트를 나오고 나서야 해가 늬엿늬엿 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 제일 가까운 해변에 가도 해가 떨어진 뒤일 것 같아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석양을 보는 것도 근사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아직 해가 걸려 있어 야외 벤치에서 맥주캔을 뜯었다. 바베큐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 좋다, 정말 좋다, 라는 말을 둘이 번갈아 계속 했다. 근사한 풍경에 시원한 현지 맥주가 우리의 시작을 축복해주는 것 같은 느낌 같은 것은 들지 않았고(하하) 그냥 좋았다. 이제 겨우 여행 첫 날이었으니까. 회사도 안 가도 되고 이렇게 둘이 쉬엄쉬엄 다니며 맥주와 맛난 음식들을 마시고 먹으며 보낼 날들이 많이 남아있으니까.

 

    남편이 만들어준 스테이크는 맛있었다. 사실 하와이에서 먹은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다. 심플한 숙소 접시였는데 플레이팅도 근사하게 해줬다. 저녁을 먹고 테라스로 장소를 옮겨 맥주를 좀더 마셨는데 남편이 마시는 도중에 졸아 먼저 자러 들어갔다. 나는 좀더 첫날밤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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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from 여행을가다 2020. 8. 17. 14:00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집앞 마트갈 때 신는 다이소 쪼리로 갈아신었다. 비행시간이 얼마였더라. 벌써 일년 전의 일. 결혼식은 일요일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친척, 가족과 인사를 하고 군포집으로 돌아왔다. 단둘이 군포집에 있는 건 두번째였을 거다. 들어오는 길에 얼음이 가득 든 아메리카노를 사서 마셨다. 집에 들어와서는 대절한 버스에 옮겨두고 남은 캔맥주를 두 개 꺼내 각자의 컵에 가득 따랐다. 그리고 건배했다. 아,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 아침일찍 화장과 머리를 하러 약속시간에 예식장에 갔다. 그 뒤 순식간에 예식이 시작되었고, 아빠는 행진하기 직전까지 주례사를 완성하지 못해 나를 멘붕에 빠뜨렸는데 좋은 하객들 덕분에 웃으며 주례사를 끝낼 수 있었다. 소윤이는 눈물의 축사로 우리를 감동시켰고, 남편은 임창정 노래를 축가로 불렀다. 많은 시간 지나 모두 변한대도 지금 이 설레임들을 아름답게 간직 하는 거야. 둘이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며 고마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푹 자고 다음날 짐을 싸 하와이로 출발했다. 저녁 비행기였다. 저녁 비행기는 처음이었다. 영종도에 사는 보경이가 튜브를 빌려준다며 공항까지 나와 배웅을 해주었는데, 늘 혼자 떠나는 언니를 배웅했는데 이번엔 둘이 있는 걸 보니 왠지 어색하기도 하고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나는 기내식이 맛나다. 사육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는데 나는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좋다. 영화를 보다 책을 보다 시간이 되면 밥을 주고 커피도 주고 맥주도 주고 또 잠을 자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내가 떠나온 곳과 전혀 다른 풍경의 장소에 내려지게 되고 그렇게 여행이 시작되는 것. 또 반대로 그렇게 돌아오는 것. 여행의 시작과 마지막을 잘 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장소 같다. 그 밀폐된 공간이. 우리들의 첫 해외여행이었고, 함께 먹는 첫 기내식이었고, 함께 마시는 첫 비행기 맥주였다. 원래는 태국 끄라비를 알아봤었다. 비행시간이 그리 길지 않고 잘 쉴 수 있는 곳. 그러다 한번 뿐인 신혼여행이니 좀더 멀리 가라는 주변사람들의 조언에 조금 더 돈을 쓰고 조금 더 멀리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한 하와이였다. 나는 자다가 책 읽다가 영화 보다가 했는데, 남편은 한숨도 자지 않고 내리 영화를 봤다. 일년쯤 함께 살아보니 영화 매니아, 드라마 매니아다. 하루종일 끊임없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하와이에 도착했다. 호놀룰루에서 마우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해서 그곳의 뜨거운 태양을 느낄 새도 없이 주내선 갈아타는 곳으로 이동했다. 블로그에서 보니 시간이 꽤 걸린다는 후기가 있어 긴장했었는데 다행히 금새 찾았고 금새 수속을 했다. 출발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 남편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셔보았고 나는 공항맥주를 마셔보았다. 맥주 한 모금 하는 순간 아, 잘 도착했구나. 하와이 로컬 생맥주였다. 마우이로 가는 비행기는 한산했다. 비행시간이 금방이라 주스가 나왔다. 창 아래로 하와이 바다가 구름이 바람이 펼쳐졌다. 아, 우리가 진짜 하와이에 왔구나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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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from 서재를쌓다 2020. 8. 11. 22:27

 

   <하와이하다>를 구입했을 때 함께 온 사은품 달력을 8월로 넘기니 훌라춤을 추고 있다. 저자들과 고양이 한마리가. 그렇다면 8월은 훌라춤을 출만큼 신나는 달인 것인데, 올해는 비에 비에 비네. 종일 장마다. 1호선을 타며 제일 좋은 점은 내내 바깥이 보인다는 것. 겨울에는 출근길에는 해가 뜨기 전이라 퇴근길에는 해가 진 후라 어둠 뿐이었는데 여름이 시작되자 출근길도 퇴근길도 온통 밝고 푸르러졌다. 나뭇잎들이 여리여리한 연두빛이었다가 단단한 초록색으로 변하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어느날 퇴근길에 한강다리를 건너는데 해가 마침 불그스레 지길래 영상을 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멋있네~ 좋은 길로 다니네~" 메시지가 왔다. 바깥이 보여 제일 좋은 순간은 고개 숙여 책을 읽다 좋은 문장을 만나고 가슴이 벅차올라 고개를 들었을 때 좋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을 때. 감흥은 배가 된다.

 

  "....괜찮아지나요?"

  박 선생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민주의 책상 위에 차가 담긴 종이컵을 다시 올려놓았다.

  "그 시기만 지나면 그런 불안한 마음은 괜찮아지나요?"

  민주의 질문에 박 선생은 아무런 말없이 웃더니, "엔딩이 어떻든 누군가 함부로 버리고 간 팝콘을 치우고 나면 언제나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 깨달으면 그다음엔 다 괜찮아져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박 선생은 커다란 배낭을 다시 둘러메더니 과사무실의 문을 열고 아무도 다니지 않는 복도 쪽을 향해 유유히 걸어 나갔다.

  박 선생이 나가고 민주는 자기 자리에 앉아 또각또각 멀어지는 박 선생의 발소리를, "띵"라고 울리는 엘리베이터 신호음을, 복도에 적막이 차오르는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엔딩이 어떻든 언제나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니? 민주는 휴대전화의 버튼을 꾹 눌러 메시지가 와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고 보면 박 선생도 연애를 해봤겠지? 종이컵을 만지작거리면서 민주는 연애하는 박 선생이 있는 과거나, 주호와의 관계가 끝난 이후 변해버렸을 그녀의 미래를 상상해보려 했지만 어느 쪽도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 대신 민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박 선생의 웃음이었다. 그전까지는 민주가 발견하지 못했던, 체념에 얼룩지지 않은 것 같은 말간 웃음. 그렇게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으나 창이 없어 풍경의 변화를 짐작할 길 없는 과사무실에 앉아 민주는 잠깐 동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끝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다만 여기, 여기의 온기에 집중하기 위해 아직은 따뜻한 차를 마셨다.

- 155~157쪽,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언제나 해피엔딩>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면 녹차를 맛있게 우려내 보온병이나 텀블러에 담아두고 어딘가 다른 곳에 가서 잘 닫은 뚜껑을 소리내어 연 뒤 천천히 마시고 싶어진다. 엔딩이 어떻든 다시 시작될 영화를 생각하면서.

 

   벽지에 붙여놓은 포스터가 계속 떨어져 인터넷 검색을 하니 약국에서 파는 3M 테이프로 붙이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 장마라 습해서 그런지 이것도 떨어진다. 길다란 테이블에서 일곱 명의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하는 포스터를 벽에서 완전히 떼어내 창문에 붙였다. 처음부터 창문에 붙이고 싶었다. 햇볕에 색이 빨리 바랠 수 있겠다는 옆사람의 조언을 따른건데 어쩔 수 없지. 햇볕이 비치면 빨간색 카페트는 더 따스해지고 그림의 나무들은 더 생기있어 질 것 같다. 그러니 햇볕아 이제 제발 나와라.

 

  "차가 맛있네요."

  "그쵸? 녹차는 70도로 식힌 물에 딱 일 분 삼십 초만 우려야 맛이 있어요. 더도 덜도 말고 딱 일 분 삼십 초요."

- 152쪽,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언제나 해피엔딩>

 

  샤워하기 전에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씻고 나와 녹차를 더도 덜도 말고 딱 일 분 삼십 초 우린다. 그걸 텀블러에 넣고 뚜껑을 꼭꼭 닫고 회사에 가져가 마신다. 내일 아침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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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는다

from 서재를쌓다 2020. 7. 19. 16:50

 

   내 직업 인생은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맡기 전과 후로 나뉜다. 이런저런 곳에서 말할 자리들이 있기는 했지만 <책읽아웃>을 맡고서야 비로소 '말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까.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새로 시작하는 도서 팟캐스트의 진행을 맡아달라는 섭외를 받았을 때, 처음엔 망설였다. 일단 이름이 괴상한 느낌이었다. 또 난 이미 10년 넘게 프리랜서로 생활하고 있었고 장기 여행도 곧잘 떠나는 편이라 2주에 한 번 고정 스케줄이 생기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이전에 해보지 않은 새로운 영역이었기에 나의 모토인 '하면 는다'를 되새기며 한번 해보기로 했다. 나는 '하면 된다'는 말은 싫어하지만 '하면 는다'는 말은 좋아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일단 해보면 조금은 늘 것이다. 그리고 해봐야만 '아, 이 분야는 나랑 정말 안 맞는구나' 하고 판단이라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지레 겁먹기보다는 해보기나 하자 싶었다. 팟캐스트는 방송에 비해 더 새롭고 캐주얼한 영역이었고, 또 일방적으로 송출하는 방송보다 관심이 생기면 찾아 듣는 구독 방식이 내 성향에도 더 잘 맞을 것 같았다.

- 94~95쪽

 

   나는 늘 그만두거나 도망치는 편이었다.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했지만 본격적으로 해보지도 않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거나 재능이 없어보이면 쉽게 그만뒀다. 도망도 많이 갔다. 그러는 편이 좋았다. 쉬운 길이었으니까. 그만두고 도망을 가면 그 일은 더이상 내 일이 아니었다. 나이가 드니 제일 후회되는 게 그 수많았던 포기와 도망이다. 그때 조금만 더 했으면, 더 그 모임에 나갔으면. 창피해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조금만 더 용기를 내었으면. 그러면 나는 지금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되었을텐데. 김하나의 말처럼 '하면 느는' 사람들을 보았으니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꾸준히 하는 것이 재능이었던 거다.

 

   동생은 계속 '하는' 사람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수영을 잘하고 싶어 수영장을 열심히 다녔는데 다른 수강생에 비해 실력이 늘지 않았다. 나쁜 젊은이들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동생을 뒤에서 비웃는 것도 같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쯤에서 포기하는 사람이다) 실력이 늘어야만 중급반으로 갈 수 있는데 늘지 않아 초급반에 오래 있었다. 비슷하게 늘 출석하지만 실력이 자신보다 더 늘지 않던 할머니 수강생을 보며 의지를 해나갔다. 어느 날 배영을 배우는데 초급반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니 선생님이 동생에게 시범을 보여달라고 했다. 동생은 시범조교가 된 것에 뿌듯해하며 배영을 시작했다. 배를 보이며 물 위에서 열심히 팔을 휘저었다. 멋지게 잘해내고 싶어 정말 열심히 팔을 휘저었다. 그런데 위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 표정이 이상했다. 웃음을 참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결국 웃음이 터져 버린 사람도 보였다. 그제야 자신이 동작을 할수록 점점 가라앉았고 결국 수영장 바닥에서 팔을 휘젓고 있는 게 보였다. 이 에피소드를 집에 오자마자 이야기했고 동생도 나도 엄청 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고민은 했지만, 수영장을 꾸준히 나갔다. 나쁜 젊은이들이 더 비웃는 것 같았는데 뭐 어때, 니네 나쁘다, 는 마음으로 계속 수영을 했다. 결국 중급반에 갔고 수영이 엄청나게 재밌어졌고 잘하게도 되었다.

 

   지금은 외국인 선생님에게 영어회화 수업을 받고 있는데 (코로나때문에 화상수업으로 진행한단다) 중급반을 선택하는 바람에 유창한 사람들에게 주눅들고, 선생님의 질문도 제대로 못 알아들어 몰래 번역기를 돌린다. 졸지에 '모든' 동물을 '먹고', 화장실 청소를 제일 좋아하고, 유럽 여행 중에 자신은 미국으로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초급반에 인원이 꽉 차 수업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도 꾸준히 수업에 들어가고 있다. 지난 주엔 '극복하다'는 표현으로 대화를 했는데, 무얼 극복한 적 있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자신은 지금 이 수업을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단다. 매주가 극복이라고. 선생님은 칭찬해주었단다. 계속 수업에 들어오라고. 초급반 노노라고. 동생은 곧 자신의 의사를 영어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김하나의 말처럼 '하면 느니까'.

 

   오늘 골목식당 포항 편을 보면서 울어버렸다. 거기에 '하면 느는' 사람이 나왔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본 게 아니여서 이 사장님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줄은 모르겠다.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고, 요리초보라는 자막이 나왔다. 수제차를 맛있게 만들 줄 아는 사장님이었는데 돈까스를 하고 싶다고 했다. 1년 가까이 공을 들인 터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수제차보다 돈까스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백종원은 이 집은 적어도 하루에 30인분 이상 팔아야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면서 제작진의 점심 30인분을 선결제하고 갔다. 30인분 점심장사를 해보고 돈까스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잘 생각해보라는 것. 처음에 자신있었던 사장님은 결국 점심시간 1시간 안에 스탭의 점심을 모두 제공하지 못했다. 절망했지만 장사를 해야 했기에 자신에게 맞는 음식을 고민했다. 장사 시작 전 준비시간이 길더라도 손님이 주문했을 때 바로바로 나갈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죽은 어떨까, 까지 백종원과 이야기했다. 그 뒤 경북지역 코로나가 심해져 촬영은 삼개월동안 이어지지 못했다. 사장님은 그 삼개월이 손님이 없어 힘들었지만 공부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그동안 하루에 하나씩 요리를 해보고 사진을 찍어두고 노트에 레시피를 기록해뒀다. 그런 노트가 세 권이 되었다. 그리고 '덮죽'이라는 메뉴를 개발해냈다. 흐물흐물한 죽에 건더기를 올려 씹는 맛을 주자는 것이 사장님의 생각이었다. 자신은 없었지만 그동안 연습한 요리를 내보였다. 하나의 덮죽을 내보이고 또 하나의 덮죽을 조리하는 동안 백종원이 시식을 했다. 비주얼이 좋았다. 백종원은 이런 경우 맛이 없죠, 하며 한 입 떠 먹었다. 한 입 더 떠먹고, 한 입 더 떠 먹었다. 그리고 제작진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청 맛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덮죽을 만들어오고 긴장하고 있는 사장님에게 백종원이 사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다고 했다. 그러자 사장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 나도 이때부터 울어버렸다. 백종원은 노트를 만드는 동안 다 공부가 된 거라고 너무너무 잘하셨다고 했다. 사장님이 직접 만든 간장에 포항의 소라와 문어, 부추를 넣은 덮죽은 보기에도 정말 맛있을 것 같았다. 하면 느는 사람이 여기 또 한 사람 생겼다.

 

   친구는 올해 생일선물로 하얀색 라미 만년필과 검고 커다란 몰스킨 노트를 선물해줬다. 카드에는 내가 이 노트에 어떤 것을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그것이 훗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내게도 큰 자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오늘 노트의 비닐을 뜯었다. 나도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언제가 느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몇달 전에 산 3년 다이어리에 오늘은 꼭 일기를 쓰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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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무국

from 모퉁이다방 2020. 7. 14. 22:24

 

   일요일에는 비가 왔다. 혼자 있는 동안 자두를 두개 꺼내 먹고 티비를 보다 잠이 들었다. 선잠이었다. 책을 읽으려다 실패했다. 갑자기 소고기무국 생각이 났다. 냉장고에 반쯤 남은 무가 있었다. 맑고 깊게 국을 끓여 새로 한 밥을 말아 푹 익은 김치를 얹어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귀리를 섞어 쌀을 씻은 뒤 밥솥을 닦고 취사 버튼을 눌러뒀다. 집에서만 입는 얇은 원피스 위에 가디건을 걸치고 츄리닝 바지를 입었다. 우산을 쓰고 정육점에 갔다. 롯데슈퍼는 휴무였다. 슈퍼에 갔으면 뭔가 더 살 게 있었는데 정육점이어서 국거리용 소고기만 샀다. 정육점에 들어가기 직전에 백종원 레시피를 검색한 터라 수입산 국거리 소고기 200g 주세요, 라고 정확하게 말했다. 아저씨는 냉동인데 괜찮아요? 물었고 좋다고 했다. 두덩이를 꺼냈는데 4천원 정도였다. 100g 더 달라고 했다.

  

   집에 오니 갑자기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카모메 식당을 틀었다가 끄고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을 틀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이들이 화면에 차례차례 등장했다. 영화는 여전했다. 등장인물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며 무국을 끓였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순간들도 있었다. 키친타올로 핏물을 살짝 빼고 저울을 꺼내 무의 무게를 재봤다. 껍질을 벗기고 꼭지를 떼어내면 레시피의 무게가 될 것 같았다. 무도, 양파도 먹기 좋게 잘랐다. 백종원의 레시피에는 양파가 들어갔다. 참고한 블로그에는 이 양파가 소고기의 누린맛을 없애주는 것 같다고 했다. 들기름을 두르고 핏물을 뺀 소고기를 넣었다. 소고기가 적당히 익어 썰어둔 무를 넣었다. 무가 적당히 익자 맥주잔 500cc에 물을 채워 세 잔을 냄비에 부었다. (그렇다. 집에 호프집 500cc 맥주잔이 있다!) 까나리액젓이 없어 멸치액젓과 국간장을 넣었다. 간마늘도 넣었다. 그리고 푹 끓였다. 아주 푹. 그렇게 혼자 만든 무국을 둘이서 나눠 먹었다. 과연 마지막에 넣은 파와 양파가 국을 더 깔끔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았다. 일요일이니 이거면 되었다고 생각되는 맛이었다. 이상하게 이번주는 고되네. 화이팅, 이라고 조그맣게 외쳐보는 화요일 밤이다. 여름밤바람이 위안이 된다. 몬스테라 화분이 두 개 있는데, 하나가 잎을 펼쳤고 또 하나가 잎을 준비하고 있다. 식물들도 힘을 내고 있으니 인간들도 화이팅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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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캐쳐

from 모퉁이다방 2020. 7. 5. 16:56

 

   모성애라는 거 낳았다고 바로 생기는 건 아닌가봐. 친구가 말한 적 있다. 지금에야 둘도 없는 엄마가 되었지만 출산을 하고 난 뒤 아직 엄마가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함께 시간을 오래 보낸 지금은 서로에게 둘도 없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안방에는 침대와 서랍장, 친구가 선물해준 화분이 있다. 서랍장 위에 티비가 있고 가습기가 있고 여름이 되어 자그마한 선풍기도 마련했다. 청첩장을 담은 나무액자도 올려놓았고 이제는 향이 나지 않지만 여전히 올려둔 보경이의 디퓨저와 다이소 시계, 언젠가 솔이의 마니또 선물이었던 자그마한 조명이 있다. 침대 양옆으로 작은 공간이 있어 각자의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다. 나는 책도 올려놓고 스탠드도 올려놓고 고무줄과 안경도 올려놨는데 남편은 딱 핸드폰 충전기만 올려놓는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내가 안쪽에서 잤다. 부부라는 것도 결혼했다고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닌 거겠지. 새벽에 나쁜 꿈을 꾸다 깨는 날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올해 늦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좋지 않은 꿈을 자주 꾸었고 그때마다 새벽에 깼다. 그러면 내 옆에 동생이 아닌 남편이 누워 있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곤 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 둘이 어느 날부터 한 침대에서 자고 깨는 게 생경하게 느껴졌다. 싸우거나 안 좋은 일을 겪은 것도 아닌데 그 새벽에 땀을 조금 흘리며 깨고 나면 이상하게 그랬다. 결혼한 직후도 아니고 여러 달을 함께 살았는데도. 그럴 때면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옆사람에게 나쁜 꿈을 꾸었다고 말하고 다시 잤다. 그러면 잠결에 응? 그랬어? 라고 대답해줬다. 언젠가 동생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날이 늘었다면서 침대가 딱딱해서 그런가봐 했는데 아마도 같은 이유일 것 같다. 늘 좁은 방에서 복작거리며 잤는데 혼자 자고 깨는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경해지는 새벽이 있을 것이다. 남편도 그럴테고. 

 

   그 날은 비가 오는 금요일이었는데 동생에게 줄 게 있어 퇴근하고 동네로 간다고 했다. 양꼬치가 땡겨 함께 먹기로 했다. 역시 양꼬치 좋아하는 남편이 여차여차해서 동생네 동네까지 온다고 했다. 셋이 만나 일차로 양꼬치를 먹고 이차로 멍게해삼을 먹었다. 시간은 늦었고 비도 오고 술기운에 몸이 느슨해져 동생네 집에서 삼차를 하고 자고 가기로 했다. 동생이 터를 잡은 동네는 오래된 곳이라 구석구석 맛있는 노포들이 많다. 동생은 우리를 좁은 계단이 있는 이층의 맥주집으로 데려갔다. 와 본적은 없는데 맛집이래. 그리고 능숙하게 차가운 소세지와 치즈를 포장해달라고 했다. 집에 와 그 안주를 늘어놓고 와인을 마셨다. 우리가 선물해준 커다란 나무 테이블에 셋이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동생이 칫솔을 꺼내줬고 침대 아래에 요를 펴줬다. 동생은 침대 위에서 우리는 침대 아래 요에 누워 셋이 한 방에서 잤다. 그야말로 숙면했다. 동생은 일찍 일어나 아침을 해먹인다고 식빵을 사왔다. 양배추 넣은 계란토스트 만드는 냄새에 잠에서 깼다. 남편은 그뒤로도 혼자 편안하게 계속 잤다. 토스트를 먹고 번갈아 샤워를 하고 커피까지 마시고 나왔다. 남편이 좋았다, 라고 했다. 편했다고. 그 밤의 풍경이 가끔 생각이 난다. 가습기를 틀어두고 자그마한 방에 셋이 옹기종기 모여 잔 밤. 동생은 그 날도 말했다. 또 와요, 형부. 어제는 방문에 달아두었던 소윤이의 언젠가의 선물을 창문 위에 옮겨 달았다. 방문을 늘 열어두니 잘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잘 보인다. 바람이 불면 살짝살짝 춤을 추는 모습까지. 드림캐쳐라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악몽을 걸러주고 좋은 꿈만 꾸게 해준다는 의미로 만들었던 토속 장신구이다. 지난 달에는 잠자리를 바꿨다. 남편이 안쪽에서 자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책이며 스탠드며 안경을 모조리 옮겼고 안쪽 공간에는 핸드폰 충전기 하나만 놓여져 있다. 남편은 옮긴 자리가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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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원그레이트

from 극장에가다 2020. 6. 29. 09:02

 

(주의. 영화 썸원그레이트 스포일러로 가득한 글입니다.)

 

   혼자 남은 토요일 밤이었다. 그냥 티비만 보기는 왠지 아쉬워 넷플릭스를 켜고 볼만한 영화가 없나 뒤적거렸다. 너무 무거운 영화 말고 조금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 "낯선 도시에 근사한 직장을 구한 저널리스트 제니. 뉴욕을 떠나야 하는데, 애인이 먼저 떠나버렸다. 실연의 상처엔 역시 친구들과 술 한잔. 뉴욕에서 마지막을 불태우리라!" 영화 소개글이었다. 너무 가볍지 않을까 싶었는데 먼저 본 사람들의 평이 나쁘지 않았다. 커튼을 닫고 쿠션을 끌어안고 소파에 앉아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괜찮은 음악들을 배경으로 이십대 친구들의 발랄한 연애사를 지켜보고 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터트린 건 제니가 헤어진 남자친구를 공연장에서 만났을 때였다.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우연이었지만 제니는 남자친구가 온다는 걸 알고 작정하고 힘들게 표를 구해 찾아간 공연장이었다. 남자친구가 갑작스레 이별을 고했고 제니는 그의 이별통보를 믿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대학교부터 아주 오랜시간 사랑을 나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다툼이 있었지만 결코 헤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작정하고 찾아간 거였지만 막상 그를 마주하니 그이 쪽으로 발을 한 발짝도 뗄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났다. 그저 멀리서 변함없는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가 고개를 돌렸고 제니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소리 내지 않고 입모양만으로 인사를 나눴다. 제니는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며칠 전만 해도 내 사람이었는데 이제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하겠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 친구를 따라 뒤풀이 장소에 간 제니는 돌아가 그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분명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고. 뒤풀이장에서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둘만의 추억장소로 간다. 분명 그도 그리로 올 거라고 확신하면서. 지하철 안에서 제니는 수첩과 펜을 꺼내 지금의 이 마음들을 모두 쓴다. 펑펑 울면서 멈추지 않고 쓴다. 그렇게 도착한 둘 만의 추억 장소. 두 사람은 재회한다. 제니는 다시 다정한 그를 만난다. 그의 체온을 느낀다. 그를 껴안고 입맞춘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다. 아, 이 부분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다정한 그이 대신 사려깊은 친구들이 그의 곁에 있었다. 여기서 자면 얼어죽어, 제니. 제니는 자신이 괜찮아질 거라는 걸 깨닫는다. 이제 더는 죽을 것 같이 술을 마시지 않을 거고, 새로운 도시 새로운 직장에서 자신의 재능을 열심히 펼칠 거다. 언덕과 바다가 있는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지. 가끔 생각나겠지만 뉴욕의 그도 애틋한 추억이 되겠지. 언젠가 'Dreaming of you'를 울지 않고 웃으며 들을 수 있겠지. 영화가 끝나고 제니가 이제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한 건 지하철에서의 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생각들과 마음들을 글로 써내려간 덕분에, 그 시간들 덕분에 제니는 괜찮아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기록을 멈추지 말하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짐한, 혼자여서 꽤 괜찮았던 토요일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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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근황

from 모퉁이다방 2020. 6. 23. 22:22

 

  시옷의 독촉이 없었다면 이 글은 아마도 아주 나중에 쓰여지거나 아예 쓰여지지 않았을 거다.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요즘 흥미롭게 보고 있는 왓챠의 <검사내전>을 보았을 거고 그러다 벌써 11시네, 자야겠다 그러면서 씻고 정리하다 12시가 되었을 거다. 그러다 진짜 잠들었겠지. 요즘은 정말 눕자마자 잔다. 아, 아니다. 지난 주에는 밤산책도 했다. 긴 출퇴근 끝에 군포에 입성하면 외식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집에만 있는데 어느 날 동생이 자고가면서 동네 산책길을 알게 됐다. 밤에 굉장히 많이 먹고 잤는데 동생이 아침에 눈뜨자마자 걸어야겠다고 했다. 좀더 오래 걸어보고자 평소에 가지 않는 길로 갔는데 왠걸 일년 가까이 모르고 있던 멋진 산책코스가 있었다. 그 길에 몇백년 된 은행나무도 있고, 나무의자와 테이블도 있고, 물놀이 놀이터도 있었다. 노을을 멋지게 볼 수 있는 장소도 있었다. 물론 그 날은 노을을 보지 못했지만. 동생과 아침에 걸었던 길을 밤에 둘이서 걸었다. 곳곳에 조명이 들어와 아침과는 다른 느낌으로 근사했다. 주말에 혼자 아침산책을 해봐야지 했는데 그러지 못했네. 오늘은 남편이 약속이 있어 혼자 저녁을 먹고 밀린 설거지를 했다. 빨래까지는 개지 못하겠어서 바닥에 (하하) 그대로 뒀다. 식물들에게 안부를 물었고. (식물에게 말을 거는 것까진 괜찮은데 식물들이 답을 해오면 그건 정신이 이상한 거란다. 아직까지는 나만 말을 건다. 언니 왔어~ 잘 있었니? 오늘 더웠지? -_-;) 출퇴근길에 책을 많이 읽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핸드폰을 자주 본다. 사고 싶은 식물도 들여다보고 밤새 골라놓은 물건도 주문한다. 지난 주말에는 화원에 가 보경이가 향이 좋다며 추천했던 율마를 샀다. 세 포기로 나눠 심을 수 있을 것 같아 작은 화분과 흙도 주문했다. 집에 푸른 잎들 뿐이어서 꽃이 있는 자그마한 화분도 하나 샀다. 꽃이 오래 핀다는데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요즘 식물에 빠져있다는 이야기. 사실 이 글의 제목은 <썸원그레이트>였는데 그 영화 이야기는 시작도 못하고 끝나네. 제목을 바꿨다. 유월의 근황으로. 분류도 바꿨다. 극장에 가다에서 모퉁이다방으로.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이건 남겨둬야지, 이 이야기는 써둬야지, 하면서 두 달동안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못했네요. 후회막심입니다. 머릿속의 생각들은 연기처럼 사라지는 건데. 여름에는 더욱더 분발해서 기록을 남기겠습니다. 아, 요즘 왠일인지 여름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여름맥주는 꿀맛이고, 해가 긴 것이 이렇게나 축복인지 몰랐네요. 그러니 올 여름도 화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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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

from 모퉁이다방 2020. 4. 18. 14:16

 

    어제는 외식을 하기로 했다. 역에서 내려 마을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짧은 나무 길이 있는데, 그 옆으로 약국이 있고 치킨집이 있고 초밥집이 있다. 길과 가게 사이에는 작은 화단이 있는데 초밥집은 간이 테이블을 화단 너머 길가에 놓아놓고 회와 초밥을 포장해서 내놓고 팔고 있었다. 평소 지나가면서 맛집일 거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초밥집 얘길 꺼냈다. 너 걸어오는 길에 초밥집 있지? 거기 회사 사람들이랑 갔는데 꽤 맛있더라고. 언제 한번 가자.

 

   들어가보니 정말 작은 가게였다. 작은 테이블이 세 개 있고 한쪽 벽에 1인석 바가 있었다. 메뉴도 단촐했다. 회와 초밥, 산낙지 같은 국물 없는 메뉴들. 숙성회를 파는 가게였다. 작지만 천장이 높아 그리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주방장이자 사장님이신 나이가 꽤 많으신 남자 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깔끔하게 흰색의 요리복과 모자를 쓰고 계셨다. 초밥 열피스 하나, 이만원짜리 모듬 회, 테라 한 병, 후레쉬 한 병. 사장님이 우리가 시킨 메뉴를 기분 좋게 한 번씩 소리내서 말했다. 잘 오셨어, 느낌이 드는 톤이었다. 미소장국이 나왔고 초록콩이 나왔다. 동그랗고 투명한 접시에 예쁘게 담긴 숙성회가 나왔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초밥 열 피스가 나왔다. 우리는 소맥을 말았다. 사장님이 보시더니 소맥, 좋지요, 말씀하셨다.

 

   남편은 이제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에 대해 조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처음 그걸 내게 말했을 때 만취한 상태에서 아주 많이 서럽게 울면서 이야기를 했었다. 그뒤로도 어두운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했었다. 어른이 왜 그랬을까. 나는 아무 잘못한 게 없는데.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았다고 했다. 시골집에 가면 할머니도 고모님들도 아버님도 남편이 어릴 때부터 아주아주 착했다고, 순하고 뭐든 얘기하면 그대로 잘 따랐다고 칭찬을 많이 하신다. 어느 날 남편은 내게 왜 그랬는지 아냐고,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자신도 마냥 착한 아이라서 그랬던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성질 부리는 나를 마냥 받아주지 않고 이따금씩 자신도 성질을 부릴 때 고맙다. 그래, 너도 성질 내. 마냥 착하게만 굴지 말고. 이제 나도 남편의 상처에 대해 조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어제도 그랬다. 아직도 왜 그랬을까 많이 생각한다고. 그러면 나는 괜찮어, 보이지 않지만 모두의 집에 각자의 문제들이 있어, 너만 그랬던 게 아니야. 우리집을 봐. 남편은 그래도 그건 너무 큰 상처였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야기를 이어나가다가 술잔을 부딪힌다. 잘 살아보자고 다짐하면서. 그것 역시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

 

   사장님은 다 듣고 있었을 거다. 워낙 작은 가게이고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으니까. 정말 놀라웠던 건 밖에 내놓은 간이테이블 위의 회를 누가 사가나, 사가기나 할까 싶었는데 가게 안에 앉아 있어보니 많은 사람들이 회를 사갔다. 사장님은 단골들이 있다고 했다. 한번 맛본 사람들은 착한 가격에 맛도 좋아 꼭 다시 온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다시 와야지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뭔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우리만의 아지트가 생긴 기분이었다. 사장님은 우리에게 보기 좋아 보인다고, 남편에게 아내를 잘 얻은 것 같다고 인상이 좋다고 말해주셨다. 고맙게도. 우리는 회도 초밥도 정말 맛있다고 다시 또 올거라고 말했다. 사장님이 회를 뜨는 곳에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가만 보니 사장님의 아주 젊은 시절의 모습이었다. 심지어 잘 생기셨다. 내가 사장님이냐고 물었고, 사장님은 맞다면서 자신은 국민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줄곧 이 일을 했다고 했다. 장인이라는 게 따로 있겠냐면서 제주도의 큰 가게에서 주방장으로 일했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자신의 간식으로 싸온 자그마한 고구마도 두 개 챙겨주셨다. 연세가 많아 보였는데 중학교이나 고등학생 즈음인 아들이 있었다. 아들에게 어딘가로 배달을 시키는 것 같았는데, 갔다오면 아빠랑 같이 저녁 먹자, 라고 말씀하셨다. 아빠. 아빠. 나도 늘 부르는 호칭인데 나이가 지긋하신 사장님이 말하니 뭔가 더 의지가 되는 느낌이었다. 무척이나 다정하게 들렸다.

 

   또 가야지. 화원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있는 그 곳. 가서 또 천천히 금밤을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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