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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대기 2019.05.14
  2. 나를 숨 쉬게 하는 것들 2019.05.10
  3. 토마토야채스프 2019.05.10
  4. 다행 2019.05.08
  5. 시옷과 전주 8 2019.04.23
  6. 생일 2019.04.17
  7. 여전히 카미노를 걷는다 4 2019.04.03
  8. 라스트 미션 2 2019.03.27
  9. 우상 2019.03.26
  10. 연인 2019.03.24

물대기

from 모퉁이다방 2019. 5. 14. 22:53



   요즘은 늘 스마트폰이다. 지하철 안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화장실 안에서도, 그 짧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어쩌다 이렇게 중독이 되었을까. 오늘 출근길에 셔틀이 파주에 거의 도착했을 때 스마트폰에서 손을 놓고 밖을 내다 보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던 물 웅덩이들이 생겼더라. 논에 물을 대는 시기구나 생각했다. 물이 가득 채워진 논이 참 예뻤다. 물에 하늘이 비치고, 옆의 산도 비치고, 나무도 비치고. 이렇게 멋진 풍경이 많은 계절에 나는 스마트폰만 보고 있구나. 한심하지만 퇴근길에 또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고. 의식적으로 줄여 나가야 겠다. 이렇게 바보가 될 순 없다!


   요즘 내게는 여러 소소한 고민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너무 많은 말이다. 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나와 뭐든 너무 많은 것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 늘 넘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함을 소중히 여겼던 나이기이에 그런 고민 중에 만난 이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요즘 한수희 작가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를 읽고 있다. 


   나는 이제 어른이,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만약 내가 조언을 하는 나를 보게 된다면 나 자신을 때려주고 싶을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내 인생뿐이다. 그런 내가 어떻게 남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나는 떠든다. 정말 꼴 보기 싫다. 그러고 난 다음엔 언제나 술자리에서의 추태를 떠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어쩌면 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괜찮은 어른으로 비치고 싶어 이런 것을 고민하는지도 모른다. 사랑받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나를 싫어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나를 좋아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나는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은 사람도 아니고 괜찮은 사람도 아니며 대개 지질할 것이다. 나는 그저 나이 든 아주머니일 뿐이다. (119-120쪽) 


   스쳐 지나간,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그런 말들. 곁에 있는 누군가가 했던 그런 말들이 어느 순간 섬광처럼 이해가 될 때가 있다. 그때는 분명 그건 좀 아니지요, 라고 생각했던 일인데. 나는 요즘 그럴 때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구나 생각한다. 많은 경험들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좋은 경험만 쌓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좋은 경험이 많았으면 좋겠다. 결론은, 스마트폰을 열심히 하는 와중에도 책은 찔끔찔끔 읽고 있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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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치다 : 1. 빛이 나서 환하게 되다 / 달빛이 환하게 ~

2. 빛을 받아 모양이 나타나 보이다 / 거울에 ~

3. 투명하거나 얇은 것을 통해 속의 것이 드러나다 / 속살이 비치는 잠옷

4. 뜻이나 마음이 드러나 보이다 / 서운해 하는 기색이 ~

(민중엣센스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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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이 보이는 1호선 안이었다. 한창 책에 빠져 있었다. 신도림까지 가야 하는데, 구로까지만 운행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니 다음역인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내리시라고. 벚꽃이 한창 피어나던 계절이었는데, 날이 흐렸다. 가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모두 한 곳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역사 밖으로 벚꽃나무가 있었는데, 꽃이 흐린 날씨에도 눈이 부셨다. 좋은 책을 읽고 있었는데 좋은 풍경이 나타나니 마구 설레였다.


   이 책은 다들 요가가 좋다는데 한번 해볼까 하고 산 책이다. 샀지만 제목이며 표지가 영 끌리지 않아 책장에 그냥 두었는데 어느날 마음이 가서 꺼내 읽기 시작했다. 정유정 작가와 히말라야에도 함께 갔던 김혜나 작가의 책인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20대 때에 요가를 알게 되고, 배우게 되고, 심취하게 된 이야기이다. 그렇게 소원했던 소설가가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몸과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고 잘 다스리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책을 시작하면서 다짐하다. 최대한 있었던 일만 쓰자. 과장하지 말자. 그런 그녀의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인상깊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녀는 당시에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종일 일을 하는 터라 글을 쓸 시간이 부족했다. 시간을 아끼고자 요가 지도자 과정에 도전한다. 그런데 이 지도자 과정이라는 게 그 전에 수련만 할 때랑은 많이 달랐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무척 힘이 들고 고되었다. 어느 날, 포기하고 싶어졌다. 특강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그대로 요가매트를 접고 도망쳐버렸다. 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가버렸다. 학원에 이제 다시는 가지 말자 결심했다. 그러다 마음을 바꾼다. 지금까지 포기를 많이 해왔는데, 이번만은 그러지 말자고. 한번 끝까지 가보자고. 두 눈을 꾹 감고 다시 시작해보자고. 그렇게 다음 수업에 참석하고, 계속계속 수련해나간다. 그러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고, 지옥 같았던 마음이 괜찮아지게 된다. 지도자 과정도 무사히 이수하고, 요가 선생님이 된다. 그것으로 해피엔딩, 끝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포기를 넘어선 순간을 맛본다. 그것은 내게 부족한 것. 그동안 나의 많은 포기들이 주마등같이 지나갔고, 나도 김혜나 작가처럼 그런 순간을 맛보자고 결심했다. 언젠가 기필코.


   책의 마지막, 그녀는 계속해서 수련을 한다. 처음에는 괴상한 줄 알았지만 실은 내공이 무척 깊은 원장님이 있는 수련원을 발견한 덕분이었다. 새벽요가수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현미로 죽을 만든다. 서두르지 않고. 밥을 하면서는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한다. 반찬은 하나. 그 전보다 적게 먹고, 오래 움직인다. 자신의 몸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이런 결말이 정말 좋았다. 







   너무 많은 것을 쓰지 말자. 공연히 멋을 부리며 내가 경험하지도 않은 것들을 쓰지 말자. 화려한 문장이나 상상력에 의존해 쓰지 말자. 내가 모르는 것 또한 절대로 쓰지 말자. 내 가슴으로 느낀 것, 내 눈으로 본 것, 내 머리로 생각한 것들을 담담하게 쓰자, 라고 결심한 채 한 편, 두 편 이야기를 써 나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내 존재의 비루함과 나약함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요가와 글쓰기를 끝내 놓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7쪽


   그날, 마쓰야아사나(물고기자세)를 할 때에 보았던 세계는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앞에 선연하다. 그것은 추상적으로 느낀 어렴풋한 관념이 아니라 실재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의 삶은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갔다. 소설에 기대어 소설만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소설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을 만들어 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였다. 글을 쓰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등단이라는 것은 하면 좋지만 하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의 마음 상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좋은 글을 쓰기보다 정말 좋은 인간이 먼저 되고 싶었다. 글이 아닌, 소설이 아닌, 나 자신을, 존재 그 자체를 잘 써 나가고 싶은 것이었다. 

- 82쪽


   그러자 곧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작가가 되겠다거나 책을 내겠다는 등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 자꾸만 글을 쓰게 됐다. 이렇게 쓰는 글들을 더 이상 공모전에 응모핮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니 어쩐 일인지 글쓰기가 정말 편하고 즐겁게 다가왔다.

- 84쪽


   글쓰기는... 이런 거구나. 이렇게 자유롭고, 기쁘고, 행복한 것이었구나. 마치 꽃과 같이 피어오르는 것, 새와 같이 날아오르는 것, 축포와도 같이 터져 오르는 것이었다. 글은, 이렇게 써야 했다. 등단을 하기 위해, 작가가 되기 위해, 책을 내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글쓰기가 정말 좋아서 쓰는 것이어야 했다. 그동안 나는 작가로서의 화려한 명성, 그에 따른 부상 등에 눈이 멀어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라며 나 자신을 속인 채로 살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가 만든 테두리에 갇혀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해 항상 숨 막혀 했다. 그 거짓된 욕망과 집착, 좌절과 절망의 세계를 넘어 나에게로 돌아온 글쓰기는 이토록이나 기꺼운 것이었다. 

- 85~86쪽


   사바아사나, 송장자세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나니 매일 밤잠을 자고 다음날 다시 일어나는 행위가 즐거워졌다. 어제의 힘들고 고단했던 '나', 일에 치여 아프고 괴로웠던 '나',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았던 '나'는 모두 죽어 없어지고, 지금 이렇게 다시 태어나 새 생명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매일 저녁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가도 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떠올라 밝게 빛나는 태양처럼 나는 매일매일 태어나고 있었다. 못나고 비루한 '나'는 매일 밤 죽어 없어지고, 새롭게 태어난 '나'로 매일 아침을 시작하는 것. 소멸과 부활의 과정을 통해 새 생명을 받은 나의 오늘이 반짝 빛났다. 매일 매일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해 주는 신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기도를 드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나아가기로 한다. 

- 124~124쪽


   요가 학원에서 홀로 짐을 싸서 나왔다가 다시 수련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을 이후 내 사고는 점점 긍정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힘들기만 하던 수련도 차차 적응이 되어 가고, 근력 중심의 힘겨운 요가 아사나도 척척 해내게 되자 자신감도 한층 업그레이드. 강도 높은 수련을 통해 지구력도 보다 크게 늘어나 있었다. 아직 체중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지만 몸의 라인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허리 통증과 두통이 사라졌다는 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역시 하면 되는구나... 이대로 계속 꾸준히만 하면 나는 정말 건강해지겠구나, 라는 확신이 내 안에 가득 차올랐다. 

- 125쪽


   요가를 하면서부터 나는 신기하리만치 기도를 많이 하게 되었고, 많은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예전에 나는 세상이 나를 전혀 받아 주지 않으며 멀리하고 있다는 생각에 항상 좌절하고 절망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들이 다 나를 향해 열려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는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나에 대한 태도를 바꾼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대한 태도를 바꾸자 비로소 문이 열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소설에 대한 열망으로 오로지 소설만을 바라보는 동안 세상에 대해서는 문을 꽁꽁 걸어 잠근 채 살아왔던 것. 소설에 대한 과도한 열망과 집착을 내려놓고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가 보니 세상은 결코 나를 미워하거나 멀리하지 않는 것이었다. 세상은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향해 열려 있었다. 다만 내가 먼저 세상에 문을 열고 나아가지 못하고 있던 것 뿐이었다.

- 135~136쪽


   죄송합니다. 그동안 이토록이나 큰 미래를 미처 알지 못하고 자꾸만 현실을 원망하고 절망하기만 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직도 많이 어리고 부족하지만, 더 노력하겠습니다. 저에게 삶을 주셔서, 꿈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한 뒤에야 자리에 누워 잠들 수 있었다.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은은한 꽃 향기가 퍼져 들어와 내 안으로 스르륵 스며들었다. 

- 138쪽


   '선생'이란, 이런 직업이구나, 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사람들 앞에 서서 자기가 아는 바를 드러내고 내세우며 가르치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발밑에서 그들을 섬기고 보살피는 직업이었다. 자기 자신을 한껏 낮춘 자세로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이가 바로 '선생'이었다. 

- 241쪽


   오 년 전 다시 요가 강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내 삶은 정말이지 눈부시게 변화되어 갔다. 아무리 많은 교육을 받고 경력을 쌓아도 쉽게 얻기 힘든 일자리 들이 저절로 나를 찾아오는 경우가 무척 많았다. 새로운 요가 학원에서 저녁 수업을 맡게 된 것을 시작으로 일 년 사이에 여러 기업체 및 학교, 문화센터, 공공 기관 등으로 강의를 하러 나가는 요가 강사가 되어 있었다. 칠 년 전 처음 요가 지도자 과정에 등록해 수련을 시작하던 때만 해도 결코 상상할 수 없던 미래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노상 걱정하던 생계와 창작, 집필, 건강의 문제들이 어느 순간 다 해결되어 있음을...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이것들은 그 문제에 매달려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기를 쓰고 애를 태워서 해결한 것이 아니라, 그저 소금이 물에 녹듯... 자연히 녹아 없어져 버렸다. 그것들이 해결되던 순간에는 해결되어 진 것 자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나를 뒤돌아보니 이미 다 해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247~248쪽



1호선 안에서 책을 읽으며 들은 모과의 추천 명상 음악. 그 순간, 글과 음악이 딱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EKSJ4Lu6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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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야채스프

from 모퉁이다방 2019. 5. 10. 17:01



  4월의 어느 금요일 밤에 곡예사 언니의 집에 갔다. 우리는 라자냐를 먹고, 통닭을 먹고, 맥주와 까바를 마시면서 다이어트에 대해 이야기했다. 언니는 내게 어떤 글을 보내줬는데, 자신이 몇년 전에 이 방법을 알았더라면 이것대로 했을 거라고 했다. 언니는 몇년 전에 수영으로 시작해 개인 피티로 끝나는 몇달을 보냈는데, 그때 10키로를 뺐다고 했다. 그 글에는 운동없이 한 달에 10키로를 뺄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하얀 것을 먹지 말 것! 하얗게 생긴 것은 물론이거니와 몸 안에 들어가서 하얗게 변하는 것들도. 잡곡도 먹지 말라고 했다. 단 과일도 먹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먹느냐면 토마토와 아보카도. (-_-)


  토마토는 맛이 없어서 싫어했는데, 최근 짭잘이 토마토를 맛보고 어쩌면 토마토를 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더랬다. 한달동안 토마토와 아보카도를 주식으로 하며 살 수는 없지만, 저녁만은 되도록이면 토마토를 먹어보자 결심했다. 처음에는 그냥 썰어서 올리브 오일을 약간 뿌려서 먹었다. 그 다음에는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마늘을 넣은 뒤 계란을 풀고 토마토를 볶아 먹었다. 그리고 이번주에는 토마토 야채스프를 만들어 먹었는데, 대박. 맛있었다! 동생이 매일매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어제 친구를 만나고, 친구에게 스프 얘길 했는데 레시피를 알려 달라고 해서 간단하게 적어본다. 레시피라고 할 게 없긴 하지만. 마트에서 양파와 양배추, 시금치와 냉동 모듬 해물을 사왔다. 집에 토마토와 마늘, 올리브유가 있었고. 마늘을 박찬일 셰프가 알려준대로 칼배로 팍 으깨고 잘게 다져준다. 양파와 양배추도 잘게 다져준다. 시금치도 적당히 잘라준다. 토마토도 작게 썰어놓는다.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을 넣고 볶다가, 양파와 양배추를 넣어주고, 토마토도 넣어주고, 시금치도 넣어준다. 해물도 적당히 넣어준다. 야채에서 물이 많이 나오니 물은 하나도 안 넣어도 되더라. 집에 월계수 잎이 있어 하나 넣어주었고, 그라인더를 엄마가 고성집에 가져가서 후추를 못 넣었다. 소금, 케첩, 올리고당을 약간씩만 넣어줬다. 다이어트 하려면 넣지 말아야 하는데; 아무튼 이렇게 끓이면 제법 맛있는 스프가 완성된다. 파슬리 가루 쓱쓱 뿌려서 나무 숟가락을 떠 먹으면 약간 시큼한데, 맛이 괜찮다. 다음 번엔 소고기도 조금 넣어볼 계획. 인터넷 검색해보니 병아리콩 같은 걸 불려서 넣으면 든든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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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

from 모퉁이다방 2019. 5. 8. 22:58



   아직 추웠고, 잠실이었다. 간만에 셋이 모였다. 가격이 꽤 해서 뭔가 더 시킬 때마다 부담스러웠던 수제맥주집에 있다 근처에 생맥주를 파는 맥주집으로 이동을 했다. 동네의 저렴한 술집을 찾는 거였는데, 거기도 잠실인지라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결 편안해진 기분으로 안주를 시키고, 맥주를 추가해서 마셨다. 술잔을 기울이며 더듬어 보니 우린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왔고, 그게 새삼스러웠다. 셋이었을 때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주로 함께 여행을 간 일. 그 여행길에서 한 헛짓들. 엄청나게 짠 대게를 길 위에서 사고, 맥주가 모잘라 긴긴 밤길을 걷고, 나간 두 사람을 한 사람이 기다렸던 일. 맥주가게 무제한 맥주축제를 기다렸다가 셋이 가서 엄청나게 큰 잔으로 엄청나게 마셔댔던 밤. 내 오랜 친구는 일을 하다 만난 새로운 친구를 내게 소개해줬다. 우리는 한 살 차이가 났는데, 나이 때문이 아니라 만날 때마다 매번 거리를 두는 언니의 성격 탓에 친해지는 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다. 그렇게 친구가 되었고, 그동안 우리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언니는 그 날 처음으로 울었다. 술을 마시다 툭 하고 언니의 마음이 튀어나왔다. 나는 속이 시원했다. 오래 전부터 언니가 우리 앞에서 울어주길 바랬다. 그 얘기를 해 주길 바랬고, 조금 울다가 하하하 웃길 원했다. 내가 사과를 할 수 있길 바랬다. 친구이면서 단번에 달려가지 못한 못난 사람이었음을. 그 밤에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오늘 밤, 동네를 걷다 그 밤이 생각났는데, 그 밤으로부터 또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참 잘 간다. 아물 것은 아물고 터질 것은 터지면서 우리들이 단단해졌음 좋겠다.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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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옷과 전주

from 여행을가다 2019. 4. 23. 23:40



  남을 쓰고 그리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다. 나는 나만 아니까. 남은 모르니까. 타인에 관해서 쓰는 건 자주 실패로 끝났다. 다른 사람이 되어 보려 시도하고 썼던 대사와 문장들은 늘 어설폈다. 어설프지 않으려면 아주 주의싶어야 하고 부지런해야 했으나 나는 남에 대해 쓰는 일에 성급하고 게을렀다. 내가 얼마나 나밖에 모르는 사람인지 독자들에게 뽀록나며 창피를 당했다. 매 문장에서 밑천을 들켜버린다니 글쓰기란 두려운 일 같았다. 

- 181-182쪽


  누구나 남을 자기로밖에 통과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 나는 조금 위안이 되었던가, 아니 조금 슬펐던가.

- 183쪽


  별수없이 각자의 돈벌이는 계속되었다.

  대학생과 잡지사 막내기자와 누드모델을 병행하는 동안 나는 틈틈이 글을 썼다.

  주로 누드모델 일의 디테일에 관한 수필들이었다.

  서럽고 고단했던 순간도 글을 쓰는 동안에는 모두 밑천이 되는 것 같아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 214쪽


   그러다가 이야기가 목까지 차오르는 날에는 글을 씁니다. 

   이야기를 파는 상인을 여전히 잊지 않았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쓴 이야기에는 맨 아래부터 저 꼭대기까지 모든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는 돈을 내기만 하면 상놈이든 귀족이든 극장에 들어갈 수 있게 된 첫 세대의 작가였습니다. 너무나 다양한 계층이 그의 연극을 보러 왔기 때문에 그는 여러 계층을 포함한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장사꾼보다 더 많은 장사 밑천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 233쪽



   우리는 전주에 있었다. 각자의 시간으로, 각자의 방법으로 전주에 모였다. 조용한 카페의 한 테이블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각자의 커피를 마셨고, 각자의 방법으로 읽어 온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군가 이슬아가 어린 시절 사랑을 무척 많이 받은 사람 같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 같다고도 했다. 모두들 이슬아가 무척 솔직한 사람이라는 것에는 동조했다. 기억력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그 기억들이 일부 창작된 것이라 해도.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결론이 맞겠다. 사랑이 많아 어린시절 구석구석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무척이나 성실한 사람. 그녀와 소통한 몇몇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도. 우리는 그녀의 이십대 초반 사진을 찾아보며 책 얘기를 마무리했는데, 사진 속 그녀는 아주 귀여웠다. 


   그날의 전주를 생각하면, 무척 맛있었던 에그 샌드위치(곱게 다진 달걀과 고소한 마요네즈, 잘게 썬 사과, 달달한 잼이 들어간), 함께 걸었던 전주의 길들(카페로, 가맥집으로, 숙소로), 쌓여가던 술병들(황태 부스러기와 함께), 모과의 그 분(누군가를 모임에 데려오는 건 애정어린 일), 소주맛이 1도 나지 않는다는 꿀주를 전파한 한나(봄이랑 나는 소주맛을 느끼고), 나란히 놓인 이부자리들(잠자기 전 급 요가타임도), 정말이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조림이의 깜짝 아침 방문(니카라과에 있어야 했는데), 아침의 해장국과 올해 첫 팥빙수(나눴던 대화들도), 교통법규를 위반하고 꽉꽉 채워 탔던 민정이의 자동차 안 풍경(미안합니다), 늘 리액션 최고 김소윤(애정표현도 최고), 또띠아 피자와 함께한 우리들의 고민들(소윤이의 농협 상품 추천), 그리고 한나가 혼자 남아 선물한 한옥마을의 근사한 일몰까지.


    제일 좋았던 건 함께 걸었던 길들. 나란히 길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서로의 모습을 찍어주고, 야밤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이런 소소한 것들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조림이. 조림이는 예전보다 일찍 니카라과에서 돌아왔는데, 모임날 서프라이즈로 놀래켜주려고 좋아하는 SNS도 끊고 두문물출하다가 갑자기 나타났다. 서울에서 당연히 모임을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전주를 내려간다고 하네, 그것도 잔뜩 가네, 전주를 가야겠네, 하면서 새벽 기차를 탔고, 숙소 방을 알아내기 위해 이곳저곳 연락을 했단다. 우리는 평온하게, 나란히 누웠던 숙소 방에서 화장을 하고, 머리를 다듬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니카라과에 있어야 할 조림이가 표범털옷을 입고 까르르 웃어대며 나타난 것. 


   우리는 서프라이즈를 위한 그녀의 수고를 생각하며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진짜 대단한 사람! 시크한 척하면서 잘 웃지 않지만 실은 마음 속에 엄청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걸 우리는 알고 있지. 사랑을 보여주면 마주앉은 사람 또한 사랑을 주게되고 그러면 그것은 엄청나게 큰 사랑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지. 그러니 우리의 사랑이 앞으로 더욱더 커질 것도. 나의 삼십대 중후반을 함께한 시옷. 좋은 사람들과 좋은 책을 읽고(잘 읽읍시다), 고민과 사랑을 나누면서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다. 












포토바이 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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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도 사먹은 공주밤빵. 여러분 전라도 갈 때 꼭 사먹어야 합니다. 따끈따끈한 것이 최고.

조림이가 원조알림이를 헷갈리긴 했지만(나라구!), 결론은 정말이지 J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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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from 극장에가다 2019. 4. 17. 21:36



   엄마아빠와 한바탕 하고 올라온 날, 더 울고 싶어 극장에 갔더랬다. 아이스 라떼 큰 사이즈를 사고 왼쪽 복도자리에 앉았다. 많이 울었다. 펑펑 울었다. 영화를 보는 중간 아이를 잃은 전도연의 마음이 되었다가,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한 설경구의 마음이 되기도 했다. 또 어떤 순간에는 오빠를 잃은 동생의 마음이 되었다가, 또 어떤 순간에는 옆집에 사는 이웃의 마음이 되었다가 했다. 영화를 본 다음날 저녁에는 운동을 하러 갔는데, 켜놓은 티비에 전도연이 나왔다. JTBC 뉴스였다. 손석희가 그랬다.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울어대는 전도연을 바라보는 이웃들의 다양한 모습이 현실에서 세월호를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인 것 같았다고.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사람의 몸에서 어쩌면 저렇게 큰 소리가 나는가 생각했다. 옆동까지 다 들릴 정도로 커다란 울음. 모든 몸의 창문들이 다 열린 채 울부짖는 그런 울음. 전도연은 잘 늙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기미가, 그녀의 주름이 거기 있어줘서 참 다행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참 좋았던 건 수호 엄마와 수호 동생이 살던 오래된 아파트였다. 돈이 없어 이사를 했다는 설정이었지만, 나는 이 오래된 아파트가 참 좋았다. 창문 바깥으로 나무가 보이고, 짐들이 많지만 잘 정돈되어 있었다. 걸레가 많이 닿았을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등장인물들이 각각의 힘으로 어찌어찌 잘 살아가고 있었지만, 가장 잘 살아가고 있는 건, 가장 힘을 내고 있는 건 이 집인 것 같았다. 이 집이 있어 설경구가 돌아올 수 있었고, 이 집이 있어 더딘 화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이 집이 있어 수호가 곁에 있다고 믿을 수 있었다. 이 집이 있어 이웃에게 안길 수 있었고, 이 집이 있어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 집의 카드키에 숫자를 누르고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안방에서 이불을 꺼내고, 창문을 열어둔 채 오후의 아파트 소리를 듣다 잠들고 싶었다. 그러면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극장을 나와 전철을 탈 수 없는 심경이 되었기에 걸었다. 불광천의 벚꽃은 지고 있었지만 아주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 덕분이었다. 그래, 나는 항상 영화에 위안을 받았지, 문득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걸어가면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고, 전화하려 했는데 먼저 잘했다, 라는 말을 들었다. 엄마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는데, 그 말은 다음날 지켰다. 가족은 어떤 때는 참 힘겹고, 어떤 때는 엄청난 힘이 되는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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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순례길에 침대와 식사를 제공하는 <스페인 하숙>이 시작되었다. 재미나게 보기 시작했는데, 마침 S가 이 책을 주고 갔다. 순례길을 걸은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다. 순례길 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꽤 읽었는데 또 읽어도 새롭고 흥미롭다. 똑같은 길이라고 해도 그 길을 걷는 사람과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이번에는 십년 전에 걸은 길을 십년이 지난 뒤에야 정리한 이새보미야 씨의 여정이다. 대학교 3학년 때 2학기 등록금 낼 돈으로 무작정 비행기표를 예매한 젊은 순례자는 잘도 걷는다. 그 긴 길을 별로 힘들어하지 않고 잘 걷는다. 부상만 없었다면 더 잘 걸었을 거다. <스페인 하숙>의 첫번째 하숙생이 유해진에게 그랬다. 힘든 현실을 뒤로 하고 이곳에 왔는데 매일매일 걷고 걷고 또 걷다보면 고민이 해결되거나 하진 않고, 그냥 고민 자체를 잊게 된다고. 그냥 매일을 걷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고. 새보미야 씨도 그랬다. 그 길 끝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지만, 조금 달라진 내가 있었다. 그것으로 인생 자체가 달라지거나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십년 동안 품은 이야기가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으니 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그렇게 완성된 책을 이렇게 열심히 읽은 독자가 있고. 언젠가 나도 걸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장을 넘겼다. 걷기 욕구가 마구마구 생기는 책. 일기를 열심히 쓰고, 필름 사진을 열심히 찍어둔 탓이겠지만 십년이 지났는데도 십년 전의 일을 풀어내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면 시간이 꽤 지났다고 해도 그것을 풀어내는 것에 주저하지 말자는 교훈도 얻었다. 



   이날의 일은 카미노에서 겪은 최초의 후회였다. 같이 걷고 싶은 친구를 만났음에도, 일정 안에 가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쳐버린 일 말이다. 나는 이후로도 한참을 더 걷고 나서야 비로소 '걸어야한다'가 아닌 '걷는다'를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다른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걷는다는 건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 43쪽


   종교가 없는 나는, 신이 위대한 건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은 너무도 특별해서, 엄청난 효과를 내곤 한다. 신이 있다면 그건 어떤 길이나 어떤 규칙 그 자체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길을 걸어오며 켜켜이 쌓인 순례자들의 발걸음, 규칙을 세우고 그것을 지키려 노력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 47쪽


  대부분의 구간을 혼자 걸었다. 이따금 자전거를 탄 순례자들이 지나가며 인사를 건넸다. 혼자 걷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카미노에 오기 전 기대한 것과 달리 혼자 걷는 길은 심오한 고민이나 깨달음과는 영 멀다. 대부분 언제쯤 휴식할지, 다음 마을은 얼마나 가야 나올지, 남은 식재료를 가늠하며 슈퍼마켓에선 무엇을 살지, 화장실은 언제쯤 쓸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걷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나의 남은 대학생활이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생각했고, 한국에 돌아간 후 영어 공부를 하거나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장 발 앞의 돌부리를 피하는 일, 당장의 잠자리와 먹거리를 생각하는 일, 바로 지금 여기의 일이다. 이것이 카미노다. 

- 56-57쪽


   나의 카미노는 아직 스마트폰이 없는 시대였다. 애초에 아예 휴대폰조차 들고 가지 않았다. 굳이 필요가 없으니까.

  스마트폰이 있는 카미노를 생각하면 아주 생경하다. 구글맵이 있는 카미노, 맛집을 검색하는 카미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소식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카미노, 침대에 누워 화면을 보는 카미노...

  앞서 말한, 짝사랑했던 친구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카미노 사진을 보여주었다. 폰으로 찍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 친구 앞에서 대부분 멍청이처럼 굴었지만 그중에서도 카미노에 대해 얘기했던 날이 가장 못났던 것 같다. 

   나는 가을에, 그 친구는 봄에 카미노를 걸었다. 나는 거의 혼자였고, 그 친구는 시작 무렵부터 뭉친 크루가 있었다. 나는 나보다 오래된 필름카메라 한 대를, 그 친구는 스마트폰을 갖고 걸었다. 나와 그의 차이는 우리가 각자 걸었던 카미노만큼이나 달라서, 그가 나를 좋아할 일은 영원히 없을 것만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70쪽


   이탈리아인 부부 호스피탈레로는 친절하고, 무엇보다 이곳의 분의기가 정말 멋지다. 일기장에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흘러나오는 라디오, 비스듬하고 높은 지붕,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체스판, 피아노, 계단... 다락에 깔린 매트리스가 오늘의 잠자리인 것도, 지붕창을 통해 하늘이 보이는 것도 낭만적이다. 

- 74쪽


   토산토스는 따뜻하고 아주 아늑하다. 호스피탈레로들은 장난스럽고 유쾌하다. 생각해보면 어떤 장소를 아름답게 하는 건 공간 자체보다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들에겐 내가 스쳐지나가는 많은 순례자 중 한 명이겠지만, 내겐 그들이 너무나 특별하고, 그래서 이곳도 몹시 특별한 것이다. 

- 79


   이제 조금 익숙해졌는지 기상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아침엔 몹시 행복해서, 거대한 전나무 숲 사이 자갈길을 걸으며 연신 노래를 불렀다. 미묘하게 음치박치인 나의 노래는 다른 순례자들을 퍽 즐겁게 해주었다. 

- 81쪽


   故최진실의 뉴스를 들었을 때 주변엔 다른 나라의 순례자들도 몇 있었지만, 이 소식의 무게를 제대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뿐이었다. 최진실이 죽었다. 아주머니가 손으로 눈물을 닦았던 순간은 내 카미노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장면 중 하나다. 

-85쪽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알베르게는 너무너무 추워서, 새벽 6시도 훨씬 되기 전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침대 속에 있어도 어차피 추우니, 차라리 일찍 걸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강 짐을 꾸려 문을 나섰는데- 하늘에 별이 너무 많았다! 마치 바다처럼. 이렇게 별이 많은 하늘은 열 살 무렵 시골의 이모할머니 댁 앞에서 야영했던 밤 이후 처음이었다. 하늘은 너무 넓고, 깊고, 까맸다. 엄청나게 깊은 바다 끝 어딘가 같았다. 나는 그 광경에 압도되어, 알베르게의 문을 등지고 몇 번이나 출발하려고 시도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겐 심해 공포증이 있는 모양이다. 한 발 내딛는 순간 다른 세계로 훅 빠져들어 그대로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수십 분 동안 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두 명의 순례자가 나왔다. 스페인 중년 부부였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만 어쨌든 그들은 내가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았고, 하늘이 바다 같다는 것도 이해했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손을 잡고 걸었다. 잠시 후 별은 빛을 잃고, 천천히 동이 텄다. 하늘 좋아하세요? 정말 멋지네요! 고맙습니다. 

- 86쪽


   길을 잃고 잠시 헤맬 때 양떼를 치던 아저씨가 다가와 지도를 보더니 길을 알려주었다. 조세프는 프랑스어로, 양치기 아저씨는 스페인어로 말했는데 대화가 통했다. 남부 프랑스의 말과 비슷하단다. 국경이 닿아 있는 세상은 이렇구나. 금을 건넌다고 전혀 새로운 언어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걸을 때 바뀌는 풍경처럼 사람들의 말도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 89쪽


   이를 닦다 별똥별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일기장을 펼쳐놓고 아무렇게나 끄적이다가 그냥 두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칠흑 같은 밤이라고 생각했지만 창밖에 별이 보인다. 색색거리는 다른 순례자들의 숨소리가 평소보다 더 크게 닿는다. 평화롭고, 깊이 침잠하는 기분. 이 어둠에는 따뜻한 온도가 있는 것 같다. 멋지고 귀중한 시간이다. 

- 93쪽


   생각해 보니 나는 카스트로헤리스에서 이테로 데 라 베가까지의 풍경을 알지 못한다. 어두컴컴하게 비가 쏟아졌기 때문에 그냥 끝없는 폐허를 걷는 것만 같았다. 카미노는 수많은 우연의 연속이구나. 어떤 곳, 어떤 시간, 어떤 날씨, 어떤 컨디션. 그 모든 가능성이 만나 이루어진 순간에 내가 있다. 다시 이 부근을 걷는다면, 그때는 날이 맑아질 때까지 기다려 아주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 

- 97쪽


   독일에서 온 한 순례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너무 애석하다. 이 젊은 청년은 독일에 있는 자기 집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왔다. 피곤에 찌들고 옷과 신발은 낡았으며 몸은 말랐다. 벌써 두 달을 걸었다고 했다. 2,000km도 넘는 거리다. 그는 말했다. 이 길만이 카미노는 아니라고. 그의 순례길은 지난여름 현관문에서 시작되었다. 아니, 산티아고에 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말을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내 순례길이 생장피드포르에서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았을 때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순례자의 그림을 본 순간 처음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112쪽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

   포르투갈 길의 수도 리스본에서 출발하는 길. 해안마을 포르투Porto를 지나며 대서양 해안을 끼고 걷는 아름다운 길로, 카미노 루트 중 두 번째로 순례자가 많다고 한다. 약 630km

- 113쪽


   정확히 말하면 발렌틴은 순례자라고 할 수 없었다. 그의 목적지는 산티아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발렌틴이 진짜 순례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질문이 뭔지도 알지 못하는데, 발렌틴은 답의 영역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못내 부러웠다. 

- 135쪽


   고양이들과 함께 벽난로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카미노에서 세 번째로 맞는 비 내리는 날이다. 곁에선 나무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고 있고, 내가 글씨 쓰는 소리를 빼면 정적- 카미노에서 많은 것을 경험한다. 정적, 바람, 지평선, 일출과 일몰, 밤하늘, 비, 완전한 홀로 있음 등등. 그리고 따뜻함도! 내 생각엔 카미노가 천국이 아닐까 싶다. 카미노에 오기 전 수하물 분실로 파리에 먼저 들른 건 천운이었다. 카미노를 걷고 나서 파리를 관광했다면 별로 좋지 않았을 테니까.

- 142-143쪽


   나는 세르조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고 생각한다. 서쪽을 향해 해를 등지고 걸었던 길과 동쪽을 향해 해를 온몸으로 마주하며 걷는 길의 풍경은 전혀 다를 것이므로. 그것을 어떻게 똑같은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목적지에 당도했다고 해서 길이 끝나는 것은 아님을, 그 이후에도, 이미 걸었던 길 위에서도 새로이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있음을. 

- 151쪽


   차도의 옆으로 이어진 완만한 길이었다. 차는 거의 없었는데, 이따금 지나가더라도 걷는 순례자를 배려해 천천히 지나가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은 마을들을 지났다. 날은 맑고, 길을 고요하며, 나는 혼자 걷고 있었다. 

   세상은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가득 차 있다. 

- 167-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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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미션

from 극장에가다 2019. 3. 27. 20:27



   나이가 많이 들면, 하고 싶은 말이 점점 뚜렷해지는 거겠지. 기다리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가 개봉되었고, 혹여나 빨리 내릴까봐 개봉주에 가서 보았다. <그랜 토리노>는 정말 좋았다. 그 뒤 십년이 지났고, 이스트우드는 좀더 크게 그리고 확실하게 이야기한다. 일 그렇게 많이 하지마. 그거 다 소용없어. 지금에 집중해. 나중에 말고, 지금의 가정에, 지금의 사랑에, 지금의 행복에 집중해. 핸드폰도 좀 그만하고! 미처 알지 못하고 범죄에 가담하게 된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나쁜 일이라는 걸 안 다음에도 그 일을 계속한다. 돈을 벌어서 빚에 넘어간 농장도 되찾고 싶었고, 자신을 줄곧 믿어준 손녀 결혼식 비용도 보태고 싶었고, 학비도 대주고 싶었고, 전쟁용사들의 쉼터도 다시 살리고 싶었으니까. 결국 붙잡힌 그는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고, '더 길티'라고 말한다. 그리고 죄값을 치룬다. 이야기하는 바가 너무 명확해서 조금 실망스러웠지만(그러나 그의 말이 맞다. 핸드폰은 그만 좀 봐야함;), 아흔을 맞이한 '건강한 보수주의자' 그의 영화를 좀더 보고싶다. 그러니 건강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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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from 극장에가다 2019. 3. 26. 21:05



   요즘 '잊지 않으려고 쓰는' 일이 예전 같지 않다. 읽는 일도, 보는 일도 예전 같지가 않다. 끙. 써놓고 보면 부족하고, 내가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닌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많은 말을 쓴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설명을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지. 그렇지만 그때는 그래도 쓰려고, 남기려고 나름 노력했는데. 잊지 않으려고 말이다. 그리하여 다시 열심히 해보자는 다짐. 짧은 글이라도 부지런히 남겨보자는 다짐이다. 아자아자.


   삼월의 어느 목요일, 퇴근을 하고 상암으로 가 <우상>을 봤다. 시간이 딱딱 잘 맞았다. 자유로도 막히지 않았고, 7시 즈음 시작하는 영화가 있었고, 여유가 있어 좋아하는 커피집의 라떼도 샀다. 그런데 영화가 계속될수록 그냥 집에 갈 걸, 가서 책이나 티비를 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무거웠고, 어려웠고, 잔인했다. 어쩌면 무료할 수 있는 평일의 일상을 보낸 내가 퇴근을 하고 기분을 전환하고자 하루의 끝에 볼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제일 많이 한 생각은, 배우의 삶은 괜찮을까 였다. 저런 극한의 상황에 그야말로 자신을 풍덩 던지는 일, 그 끔찍한 상황들 속에서 '내'가 되어 몇 달씩 살아가는 것, 촬영이 끝나면 온전한 나로 다시 돌아오는 일. 그런 것들이 걱정이 되었다. 물론 그녀, 그들은 프로니까 잘 해내겠지. 그리고 반대의 좋은 상황 영화일 경우 역할에서 온전히 빠져나올 필요도 없겠지. 예전에 내가 멋지다고 생각했던 직업들이 마흔이 가까운 어른이 되니 점점 그렇지 않은 것도 같다. 나는 크고 화려한 것 보다, 평범하고 소소한 것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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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from 서재를쌓다 2019. 3. 24. 21:09



(...) 나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 34~35쪽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삶의 원칙, 즉 우리의 불행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배웠다. 그러고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게 되었다. 첫 번째 고백을 듣는 사람들은 우리의 연인들이다. 근무지 밖에서 만날 때, 처음엔 사이공 거리에서, 다음에는 정기 여객선에서, 기차에서, 그 후에는 아무 곳에서나, 우리는 속내 이야기를 무한정 풀어 놓는다. 

- 75쪽



    스무 살 때 내게 하루키 소설 읽는 순서를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 생애 첫 하루키 책으로 어떤 책을 골랐는데, 그것보다 다른 책을 읽는 게 더 좋다고 추천해줬다. 그는 하루키의 열혈 팬이었다. 작가의 작품을 읽는 데 스무 살 적 그 사람처럼 순서가 있다고 생각하는 주의가 아니지만,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을 읽으면서, 그 전에 읽었던 <이게 다예요> 생각이 났다. <이게 다예요>는 나의 첫 뒤라스 책이었는데, 대부분의 글귀들이 마음 깊이 와닿지 않았다. 그저 책에 여백이 많아서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연인>을 읽을 수 있었던 건, 제임스 설터 때문이다. <소설을 쓰고 싶다면>에 이런 문장들이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는 보고 듣고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을 읽고 있었을 때 내가 프랑스령 인도 차이나에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대로를 보았고, 흰옷 입은 사람들과 중국인 거리를 보았습니다. 나는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를 알고 있고, 엘렌 라고넬의 믿을 수 없는 알몸을 알고 있고, 애처로운 연인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과거에 있었던 일이지만 동시에 이 글을 쓴 여자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어요. 그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쓴 작품입니다. 그것은 고백적인 글이지만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지요. 하지만 나는 그걸 믿었어요. 그것은 나의 세계사의 일부가 되었지요." (11~12쪽) 통영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프랑스령 베트남의 무더위 속에 있었다. 설터의 말처럼 정말 그랬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면 2019년 한국의 풍경이 펼쳐졌지만, 다시 고개를 숙이면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 시절 동남아 더위가 느껴졌다. 뒤라스는 어머니와 오빠가 세상을 모두 떠난 뒤에야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비로소. 


   <연인>을 읽은 뒤에 마치 예정이라도 되어 있었던 것처럼 경향신문에 뒤라스의 생애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글 쓰는 여성을 다루는 연재글이었다.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거기에 <연인>에도 나왔던 어머니의 투자실패 이야기, 무능하고 폭력적인 큰 오빠 이야기가 있었다. 기사의 제목에 뒤라스의 생애가 함축되어 있었다. "가난.모친의 멸시 극복한 작가, 문학은 결코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뒤라스가 자신과 달리 멋지게 살게 되면 자신이 너무 초라해질까봐, 그렇게 언젠가 자신을 홀연히 떠나버릴까봐 두려워했다고 한다. 나는 이 부분이 이해가 안 가기도 했지만, 어느 면에서 이해가 되었다. 어머니는 약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를 떠난 그녀가 평생 글을 써 온 이야기가 그 기사에 짧게 함축되어 있었다. 고작 작품 한 권 더 읽고, 그녀를 다룬 기사 한 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다시 <이게 다예요>를 읽는다면, 그때와 다르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다예요>는 유서와도 같은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말년에 서른다섯살 연하의 남자와 십오년을 함께 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어머니와는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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