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쌓다'에 해당되는 글 341건

  1. 사랑의 잔상들 2019.01.13
  2. 문장수집생활 2019.01.05
  3.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2018.12.05
  4. 독립 생활자들 2 2018.11.12
  5.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6 2018.10.18
  6.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2 2018.09.03
  7. 하루의 취향 12 2018.08.26
  8. 우리, 아이 없이 살자 2 2018.08.25
  9. 잘돼가? 무엇이든 4 2018.08.21
  10.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 6 2018.08.15

사랑의 잔상들

from 서재를쌓다 2019. 1. 13. 21:29


 

   12월 15일 토요일이었다. 일찍 일어났고 상암 메가박스 상영시간표를 검색해봤다. 조조 <갈매기>가 있었다. 망설이다 일어났고 세수를 하고 커피를 내렸다. 상암 메가박스에는 맛난 라떼를 파는 커피집이 있는데 조조 시간대에는 문을 열지 않더라. 겉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영화 시작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극장 한 켠에 앉았다. 12월 어느 날,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다정한 추천 메일을 받았더랬다. 작고 단단한 책을 펼치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문장이 있었다. 


   "야근중인 사무실 책상에서, 극장 안에서, 밤거리에서, 새벽녘의 작은 방 안에서 나는 발표할 기약 없는 이 글들을 십 년간 조금씩 써나갔다. 그러면서 차츰 투명한 응시가 과거를 미래로부터 발견해내는 일임을, 다가올 이미지를 기다리며 무언가를 써나가는 작업, 글을 통해 하나의 이미지를 영속시키는 일이 사랑의 행위임을, 사랑하는 사람이 취하는 하나의 간절한 자세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내게 오늘을 살아갈 힘을 주었듯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러하길 바라며.

   이제 내가 겪고 느낀 그날들의 반짝임을 전하려 한다." (16쪽)


   프롤로그였다. 토요일 이른 아침의 공기과 글의 고백이 내게 어떤 기운을 전해주었다. 약간의 용기.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을 덮고 상영관 입구에서 표를 보여주고 9관 F열 통로 바로 옆자리에 앉아 오래 전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를 보았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했고, 서로 사랑했고, 질투했고, 배신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했다. 어떤 인물이 어떤 인물의 미래 같기도 했고, 어떤 인물이 어떤 인물의 과거 같기도 했다. 이야기의 끝은 비극이었다. 이 영화를 보았다는 나의 메시지에 S는 김영하의 추천 영상을 보내줬는데, 김영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직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읽지 않은 사람을 나는 부러워한다. 왜냐하면 읽고 나면 인생은 그 이전과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날 아침은 여러모로 완벽했다. 


   혜령의 <사랑의 잔상들>도 영화 <갈매기>도 내게 쉽지 않았는데, <사랑의 잔상들>은 어떤 이야기보다는 읽고 난 뒤 마음에 생긴 조그만 물결 같은 것이 책의 제목처럼 흐리게 남아 있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설명해 봐, 하면 어쩐 일인지 설명이 잘 안 된다. 그녀의 시를 한 편도 읽지 않았지만, 시인의 산문집 같았다. 작가소개에 따르면, 십 년간 발표가 기약되지 않은 글을 써 온 그녀는 2017년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  



* 잔상(殘像) : 시각에서, 외부 자극이 사라진 뒤에도 감각 경험이 잠깐 지속되는 상. 잔류 감각.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지난 가을 당신이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어쩌면 당신이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혼자 마음을 다스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늦은 밤이 다 되어 나타난 당신은 미안하다거나 왜 늦었는지에 대한 설명 하나 없이 이제 나갈까, 한마디 말을 내곤 내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바람이 거센 날이었다. 우리는 오래 알았지만 어떤 사이도 아닌 관계였다. 누군가 내 손을 그런 식으로 잡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모르는 손에 이끌려 가는 어린아이처럼 그의 손을 따라갔다. 그는 알지 못했겠지만 눈앞에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12쪽)


   그들은 외로움 때문에 누군가를 곁으로 끌어들이기보다 그저 고독 안에서 '머무르기'를 선택한다. 이는 대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자신에게조차 지켜야 할 거리가 있음을 아는 자의 태도를 뜻한다. (67쪽)


   호세 루이스 게린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은 영화 <실비아의 도시에서>(2007)가 떠오른다. 감독은 예술학교를 다닐 때 좋아하던 여자아이를 십수 년이 지난 어느 외국의 거리에서 발견하고 따라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따라간 것은 자신처럼 나이든 여성이 아니라, 사랑에 빠졌던 그때 그 나이의 여자아이였다. (94쪽)


   사진가로서의 낸 골딘을 세상에 알린 작업은 남자친구에게 얻어맞은 그녀 자신의 얼굴 사진이었다. 그녀는 상대를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그를 애증했던 자신의 시간을 낱낱이 기억하고자 셔터를 눌렀다. 어떤 사람을 사랑했다면 그와의 좋았던 시간만이 아닌 모든 시간이 풀어야 할 수수께끼처럼 주어진다. 그녀는 사진을 찍어 자신의 기억을 수정할 수 없는 것으로 고정하고자 했고, 그러자 비극을 걷어낸 자리에는 가차없는 한 장의 이미지만이 남았다. (116쪽)


   빛은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행복한 순간이 지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순간도 결국 지나간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데는 어떤 시간이 필요하다. 

    베르나르 포콩의 사진집 <사랑의 방>에서 '첫번째 사랑의 방'은 뒤엉켜 있는 밝은 방 안의 연인들로 시작된다. 그러나 '마지막 사랑의 방'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방의 한 모서리를 보여주며 끝난다. 금간 벽 한 귀퉁이, 모서리들이 만나는 한 점으로 눈길이 모아진다. 사랑이 끝나는 순간 우리가 한때 서로의 모서리가 닿았던 지점을 가만히 응시하듯이. (125-126쪽)


    철학자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은 <반딧불의 잔존>을 통해 말한다. 오늘날 반딧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어두운 곳에 있지 못한 거라고. 그러니 반딧불을 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당연하게도 반딧불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이상한 말이었다. 어떤 것을 바라보기 위해 우리가 충분히 어두워져야만 한다는 것은, 그렇지만 뒤늦게 도착한 극장의 어둠 속에 서 있을 때면, 이해하지 못한 영화 앞에서 잠들고 난 다음이면, 왠지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45쪽)


   영화 속 두 사람은 어렸을 적 프랑스의 작은 도시 셰르부르에서 만났다. 여자는 어머니 몰래 남자를 만나며 그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가 알제리 전쟁에 징집되고 그들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결별을 맞는다.

   여자는 남자가 전쟁에서 죽었다고 믿었으며 그와의 하룻밤에서 생겨난 아이를 받아줄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 그러나 슬픈 기적처럼 남자는 살아 돌아온다. 그는 애인이 배신했다는 쓰라린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기다려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이후 그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서로가 연인이던 시절 그들의 아이 이름으로 생각해두었던 이름을 붙인다.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것이 그들이 사랑을 떠나보내는 동시에 그것을 자기 안에 존속시키는 방식이었다. 눈 오는 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주인과 손님으로 수 년 만에 재회한 연인은, 담담한 태도로 서로의 아이 이름을 확인하고 그저 안부를 묻고는 헤어진다. 

   나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말을 보며 영사 사고가 난 것이라 믿었다. 오래도록 영화가 다시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몇년이 지나도 영화는 다시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보게 될 때 이전의 감정을 떠올릴 수 있도록 보았던 모든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를 다시 찾아보는 법을 알지 못했다. 또 그때까지의 영화라는 건 쉽게 다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내가 기억하는 이미지들이 나에게 남은 전부였다.

   그것은 아날로그의 마지막 시대에 있었던 일.

    그 시절의 기억과 이미지는 얼마간의 부재로 채워져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기억이 언제나 재생 가능하고 그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마저 늘릴 수 있기에 이미지에 대한 절박함이 사라진 지금과는 다른 시절의 이야기다. (176-177쪽)


   그해 여름 몰리노는 내게 현실의 공간이었지만 한국에 돌아오자 그것이 비현실적인 이름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그 무렵 나는 배수아의 <이바나>란 책을 읽었고, 작가가 독일에서 이바나를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아니 보았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바나. 그것은 오래되고 붉은 자동차의 이름이거나, 내가 앞으로 여행하려는 곳, 또는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의 이름. 나는 그녀가 이바나를 특정한 대상의 이름으로 쓰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바나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 돌아와 몰리노를 이야기하거나, 몰리노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게 이상하게 들린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사실적으로 몰리노를 말한다 해도 당신은 내가 보았던 그 도시를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몰리노가 허구의 이름으로 들린다면, 나는 허구의 몰리노들을 지어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편에 더 사실적인 감각을 전할지도 모른다. 

   여행이 끝나자 내게는 몇 가지 비밀이 생겼다. 사랑을 경험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먼 곳으로 떠나본 사람은 누군에게나 각자의 몰리노가 있음을 알게 된다. (22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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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집생활

from 서재를쌓다 2019. 1. 5. 06:39



   작년에 읽은 마지막 책이다. 마지막 장까지 마치긴 했지만 읽는 내내 의문이었다. 이렇게 소설가가 고심해서 쓴 문장을 어순 정도만 달리해서 카피로 써도 되는 걸까. 그걸 이렇게 이용했다고 책으로까지 만들어 놓아도 되는걸까.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건가.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카피라기보다 소설을 그대로 가져다 쓴 카피였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나갔고, 어제 가격 때문에 고심했던 국어사전을 주문했다. 종이 국어사전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구입하지 않았을 거였다. 이 책을 읽은 후 최대의 성과이다.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나는 가급적이면 인터넷으로 빨리 찾을 수 있는 검색사전이 아닌 종이사전을 권한다. 검색을 하면 내가 찾고자 하는 것밖에 알 수 없지만, 종이사전을 뒤적이다 보면 못 보던 단어도 보이고 익숙하지만 다른 뜻이 있는 경우도 덤으로 알 수 있다."(20쪽) 올해의 목표는 내 식대로 해질 종이사전을 자주 넘겨보는 것.


   저자는 소설을 무척 좋아한다. 출근길, 잠들기 전, 상황과 장소에 따라 읽어나가는 소설의 종류도 다르다. 아이가 밥을 느리게 먹는 동안, 차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책을 펼쳐 한줄이라도 더 읽을 정도로 소설을 좋아한다. 문장에 밑줄을 긋고, 출근을 하면 그 밑줄들을 키보드를 두드려 컴퓨터에 정리해둔다. 그렇게 좋은 문장을 다시 읽고, 기록해둔다. 기록의 습관. 어제 북플이 1년 전에 내가 쓴 기록이라고 알려줬다. 그 한 문장을 보니 1년 전에 내가 읽었던 책과 그 책을 읽어나갔던 곳, 그때의 마음들이 단번에 되살아났다. 기록은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다. 기록해두지 않았으면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20킬로그램의 삶>을 읽고 남긴 기록이다. "소박하고 충만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여전하다. 



   가장 매력적인 글을 솔직한 글이다. 글을 쓸 때 쉽게 빠지는 함정은 실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나로 보이기 위해 '포장'하는 것이다. 글이란 왠지 격식을 갖춰 그럴듯하게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런 포장을 스스로도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런데 나를 내려놓을수록, 부족한 나를 드러낼수록 훨씬 더 매력적인 글이 된다는 걸 꼭 강조하고 싶다. 

- 53쪽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가급적 스마트폰을 멀리하자. 물론 그 안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을 기회는 많지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동안 우리는 '생각'을 멈추게 된다.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식당에서, 횡단보도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들여다보자. 거기서도 얼마든지 아이디어는 포착된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작고 사소하더라도 반드시 메모해놓자.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낫다고 했다. 언젠가 반드시 유용하게 쓰일 날이 온다. 

- 98쪽


  예전 어느 퇴근길이었다. 신도림역에서 1호선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팟캐스트 <낭만서점>을 듣고 있었다. <공터에서>라는 신작 소설을 낸 김훈 작가가 나와서 이야길 하는데 이런 말이 나오는 거였다. 


   글은 삶의 구체성과 일상성을 확보해야 한다. 즉 생활에 바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글은 공허하고 헛되다. 


   귀가 솔깃했다. 볼륨을 더 키웠다. 


   나는 글을 쓸 때 되도록이면 개념어를 쓰지 않는다. 개념어는 실제가 존재하지 않고 언어만 존재하는 것 같다. 자기 삶을 통과해 나온 언어를 써야 한다. 

- 140쪽



  오늘 사전이 도착하면, '개념어'를 제일 먼저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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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 길이었나. 약속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던 길이었나. 몇 주 전이었고, 합정역이었다. 망원방향의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는데, 갑자기 울부짖는 소리가 나서 모두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여자분과 남자분이 있었다. 아주머니, 아저씨 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가까웠다. 여자분이 어찌보면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며 남자분의 가슴과 등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있었다.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끊겼다 들렸다 끊겼다 했다. 주위를 의식한 게 아니라 너무 서러워 소리가 끊기는 거였다. 그 순간 남자분의 표정과 소리를 보고 듣지 않았더라면 그냥 여자분이 만취 상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틀거리며 울부짖는 여자분을 부축하는 남자의 얼굴에 울음이 섞인 절망이 보였다. 그런 절망의 표정을 하고서 어떤 소리를 툭하고 내뱉었는데, 그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의 소리였다. 나는 남자분이 병에 걸렸구나 생각했다. 남자분은 죽을지도 모르는 병에 걸렸고, 여자분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남자분의 등과 가슴을 치며 정신을 잃을 정도로 슬퍼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여자분은 어떻게 살라고, 라는 말을 울부짖으며 내뱉었다. 어쩌나 어쩌나. 나는 그 모습을 힐끔힐끔 훔쳐보고 듣다가 그 여자분의 마음이 되었고, 그 남자분의 표정이 되었다. 이제 어떻게 사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마음이 되었다. 곧 전철이 왔고, 출발한다는 방송이 들릴 즈음 전철에 탔다. 아마도 망원방향의 승강장에는 잠시 그 두 분만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 밤의 일은 돌아가는 길에도,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몇 주가 지난 지금도 생각이 난다. 내가 오해하고 내 식대로 해석해서 본 것일 수도 있는데, 계속계속 그 절망의 마음이 생각이 난다. 그러다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나고, 외할머니 생각이 나고, 엄마 생각이 난다. 


   그때 이 책의 초반부를 읽던 중이었는데,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나아가 그곳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범하게 떠올릴 생각보다 내 마음을 더욱 끌어당기는 것은 바로 이 사건의 '무의미함'이다. 이 개의 죽음은 내게 갑작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구술자에게도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본토에서 온 사회학자가 인터뷰를 위해 자택에 방문한 바로 그날 밤, 집에서 기르던 개가 죽었다. 몇 초의 침묵만 흘렀을 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흘려보낸 까닭은, 그 자리에 있던 나와 구술자 모두에게 그 일이 대화 속에 끼워 넣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치 남아메리카 작가의 작품처럼, '무슨 일이 쓰여 있는지는 또렷이 이해할 수 없지만 묘하게도 기억에 남는 단편소설' 같은 밤이었다."(11-12쪽) 


   나는 이 책이 몇 주 전에 내가 합정역에서 본 그 밤의 기억처럼 강렬한, 남의 이야기이지만 마치 내 것처럼 생각이 되는, 그리하며 마음이 아프고 아린, 그런 이야기들의 모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좋았고, 마음에 담아둔 구절들이 제법 있었다. 길 위에 굴러다니는 돌을 보고 이 드넓은 지구에서 '이' 순간에 '이' 장소에서 '이' 나에게 주워 올려진 '이' 돌이라고 생각하고 감동하는 구절. 세계에는 하나밖에 없는 것이 온 천지 길바닥에 무수하게 굴러다니고 있다는 구절,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철저하게 고독하며 철저하게 방대한 훌륭한 서사는 하나하나의 서사가 무의미함으로써 아름다울 수 있다는 구절. 네모난 종이책은 그대로 온전히 바깥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네모난 창이라고, 우리는 때가 오면 진정 창과 문을 열어젖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곳으로 풀쩍 뛰어나가는 것이라는 구절. 오키나와 바다에서 잠수를 하다 1미터가 넘는 바다거북이를 만난 구절. 어느 날 자신의 가장 아팠던 가정사를 아는 이에게 말했고, 그 사람이 유연하게 들어주었고, 그 뒤로 그 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것이 편해졌다는 구절. 아이가 있는 친구와 자연스레 소원해지는, 저러한 세상의 행복에서 자연스레 멀어져 가는구나 하고 실감하는 구절. 좋은 것에 대한 모든 말은 '나는'이라는 주어로 시작해야 한다는 구절. 남의 생활사를 들을 때면 언제나 차갑고 어두운 밤바다 속으로 혼자 맨몸뚱이로 잠수해 들어가는 감각을 느낀다는 구절.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연인도, 아무리 친한 친구도, 뇌 속에까지 놀러와 주지 않으니, 우리는 고독하다는 구절. 자기 안에는 대단한 것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고, 단지 거기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긁어모은 단편적인 허드레가 각각 연관성도 없고 필연성도 없이, 또는 의미조차 없이, 소리 없이 굴러다닐 뿐이라는 구절. 인생을 버리고 무언가에 도박을 거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속에서 천재가 나올 확률은 높아진다는 구절. 그리고 이런 문장. "그런 인생의 모습. 그것은 그것대로 매우 좋은 것이다."(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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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생활자들

from 서재를쌓다 2018. 11. 12. 22:09


 

   시월에 마음이 안 좋았을 때 찜해둔 책이다. 괜찮아진 십일월 퇴근길에 일부러 한 정거장 더 가 역촌역에서 내렸다. 계단을 올라가 삼층에 있는 책방비엥에서 샀다. 봉투에 곱게 쌓여 있었다. 다음날 출근길에 반 이상 읽었는데, 마음이 차분해지고 좋더라. 작가가 선한 사람인 것 같다. 좋은 사람이 역시 좋은 기운을 줄 수 있지. 좋은 기운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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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책은 유럽기차여행 이야기라고 했다. 여름의 홋카이도를 보통열차를 타고 여행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었던 지라 이번 책도 기대했더랬다. 내게 오지은은 <익숙한 새벽 세시> 전과 후로 나뉘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새빨간 마릴린 먼로 원피스를 입고 널 보고 있으면 널 갈아 먹고 싶다고 노래하던 오지은이 전의 오지은이고, 완연한 봄을 앞에 두고 자꾸만 무기력해지는 자신을 마주하는 오지은이 후의 오지은이다. 이 책도 후의 오지은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깊은 밤, 오지은은 우물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싫어 검색을 한다. 유럽, 베스트, 기차, 경치. 기차덕후 오지은은 비수기 겨울에 론리플래닛이 선정한 유럽 최고의 기차 풍경 베스트에 속하는 몇몇 구간들을 혼자 여행해 보기로 한다. 잘 쉬고 싶고, 신기해하고 싶고, 기차를 타고 알프스를 달리고 나폴리에서 피자를 먹고 싶고,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어서.


   종이가 꽤 두꺼운데, 전체적인 책은 얇다. 그래서 빨리 읽을 수 있다.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겠다 싶었지만, 일부러 짧게 쓴 것 같다. 길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은 것 같다. 겨울의 유럽. 나도 조용히 그녀의 여정을 따라 갔다. 핀란드에서 맛없는 커피를 마시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연어수프를 놓친다. 오스트리아에서 히틀러가 장기투숙한 호텔에서 달달한 아침을 먹고, 눈쌓인 거리를 가만히 바라본다. 일등석 기차에 앉아 입이 쩍 벌어지는 빙하들을 구경하고, 마테호른 봉우리가 보이는 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친퀘테레에서 수많은 터널들을 지나가고, 부은 편도로 병원에 가 하루종일 진료를 기다린다. 피렌체에서 근사한 극장을 찾아가 클래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대문열쇠를 부러뜨리고 만다. 나폴리에서는 해가 지면 쓸쓸해졌고, 외로울 땐 서점에 갔다. 얼떨결에 도서관에 가기도 했다. 소렌토의 미슐랭 맛집 인근 가게에서 엄청나게 맛없는 피자를 먹었고, 시칠리아로 가는 밤기차에서 근사한 시간을 보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고흐를 보았다.


   나는 오지은의 솔직함이 좋다. 무대 위에서도, 책에서도 그녀는 언제나 솔직했다. 그래서 그녀가 하는 말은 모두 다 진짜라고 믿을 수 있었다. 모두가 화려하고 만족스런 여행기를 뽐내는 시대이지만, 나는 이런 작고 솔직한 여행기에 마음이 간다. 나도 그러고 싶고.   


   이 책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은 역시 <익숙한 새벽 세 시>에서도 그랬지만 도입 부분. 프롤로그다. 프롤로그에서 오지은은 이렇게 말한다. "구석을 좋아한다. 카페에서도 밥집에서도 가능하면 가장 구석진 곳의 가장 구석자리에 앉는다. (...) 내 친구 J에게는 출구가 보이는 곳에 앉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상한 부분을 안고 살아간다. (...) 그런 사람이지만 여행을 좋아한다. 구석에 파묻혀 있는 걸 좋아하면서 또한 여행을 좋아하다니. 인생, 아이러니와 계속되는 싸움이다. 아름다운 것이 보고 싶다. 가능하면 구석자리에 앉아서. (...) 아마 나는 여행 내내 구석을 찾아다니고 네보난 방 안에 누워 천장만 보고 싶어하고 혼자 울적하다는 이유로 맛있는 것도 먹지 않고 낯선 곳에서 긴장하고 불안해하다 좋은 순간을 놓치겠지만 알면서도 또 짐을 싸고 여행을 떠나니 괴이한 일이다. 하지만 여행, 그래도 여행, 대체할 것이 없다."




  "넌 뭐에 대해 쓰고 있니. 여행을 왜 다니니."
  "나 언젠가부터 회색 대륙에 있는 것 같아. 즐거운 순간, 아름다은 순간은 잡을 수 없고 그냥 지나가. 아무것도 잡을 수가 없어. 그래서 기차라도 실컷 타보려고 여기 왔어."
그는 꿈꾸는 듯한 애잔한 표정을 잠시 보이고 이렇게 말했다.​
"아, 나도 한때는 너처럼 생각했어. 허무했지. 하지만 봐봐. 아무것도 잡을 수 없어도 너와 내가 만나기 전과 후는 달라. 우리가 만나서 얘기하고 웃고 나눈 얘기들, 지금 이시간은 진짜야."
순간에 복숭아가 하나 생긴 기분이었다. 분홍빛의 잘 익은, 달콤한 즙을 가득 머금은 복숭아. 먹고 나면 사라진다고 해도 내가 그 황홀한 맛의 시간을 지나온 것은 확실한 사실이니까.
- 34쪽

  글래시어 익스프레스, 다른 이름으로 빙하특급, 별명은 세계에서 가장 느린 특급열차. 300킬로미터의 거리를 여덟 시간동안 달린다. 이렇게 느린 이유는 알프스를 오르기 때문이다. 해발 600미터 쿠어에서 2033미터 오버알프 패스까지 기차는 올라간다. 먼 옛날 빙하가 만든 흔적을 볼 수 있어 빙하특급이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알프스 깊은 골짜기 빙하의 흔적을 볼 수 있다니.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지나치게 탁월한 경험을 해버리면 다음이 없을 것 같아 두려워진다.
- 51쪽

  라스페치아에 돌아오니 밸런타인데이라 모든 맛집이 전부 예약이 찼다. 간단히 누텔라 크레페를 먹고 젤라또를 먹었다. 목은 점점 부어올랐다. 잠시 차가운 것이 들어가니 좋았다. 입안이 달아 역의 맥도날드 겸 매점에서 커피를 샀더니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커피가 나왔다. 이탈리아가 이럴 수 있구나. 약국에서 산 편도용 사탕에서는 소독약 맛이 난다. 마음이 어둡다. 내일은 꿈꾸던 장소에 가자. 피렌체에 가는 게 소원이었던 사람처럼 피렌체에 가자. 카운터의 루카는 누가 복음의 루카답게 예쁘게 말했다. 지난주 날씨는 얼마나 별로였는지 몰라. 넌 얼마나 행운이니. 오늘 봄이 왔어. 넌 정말 운이 좋아.
-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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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스웨덴은 어쩌다 겨울이 늦게 온다고 해도 좋아할 거 하나 없다. 언젠가 오게 되어 있다." 표지와 제목이 좋아서 찜해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독자평을 보고 주문해버렸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북유럽의 겨울을 상상하며 추운 날씨에 따뜻한 온기를 깔고 읽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여름 이야기도 나오니 초록초록한 여름에 읽어도 좋았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겨울성애자로써 첫 문장은 정말로 겨울에 읽었으면 더 좋을 뻔 했다. 작가는 스웨덴에 살고 있다.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전남편이랑은 이혼을 했고, 아이는 자폐 판정을 받았다.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남편과 이혼을 하고, 곁에 있는 친구들에게 힘을 얻고, 또다른 사랑이 찾아오고, 그 사랑을 또 떠나보내고. 이런 커다랗고도 소소한 일들이 제법 두툼한 책에 담겨 있다. 잘 정돈된, 담백한 일기를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남의 일기를 보는 일이 참 좋구나 생각했다.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게 꽤 좋더라. 앞에 이혼을 하고 비로소 평온해진 마음이 나오는데, 뒤에는 이혼 전 지옥같은 마음이 나오고, 앞에 사랑하는 사람을 현실적인 이유로 떠나보낸 작가가 나오는데, 뒤에는 한창 사랑에 빠져 행복해하는 작가가 나온다. 그때그때 삶의 순간들이 담겨 있는 느낌이었다. 작가는 가까운 사람을 그 사람의 특징으로 부르는데 전남편은 거북이, 아이는 선물이다. 그런데 또 사랑하는 사람은 그냥 S였다. 그리고 힘을 주는 친구들의 이름은 실제 이름 그대로이다. 이 각각의 호칭들도 의미있게 느껴지더라. 제목대로 작가는 힘든 고비들을 꿋꿋이 넘기면서 괜찮아지고 있었다. 요즘 에세이들을 연이어 읽고 있는데, 읽고 있으면 좋은 일기를 꾸준히 쓰고 싶어진다. 자칫하면 그냥 지나쳐 버릴 나의 소소한 기쁨과 슬픔도 잘 정돈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내 일기도 누군가에게 읽혀지면 좋겠다. 그 사람이 남의 일기를 보는 것이 좋구나 생각했음 좋겠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고, 제각각 나름의 사정으로 잘들 살아가고 있구나 느껴진다. 그 일들을 좀더 깊이 알고 싶어진다. 에세이가 참 좋구나, 느끼는 요즈음이다.   




   타인에게 솔직하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이렇다고 믿었던 것들은 곧잘 틀린다. 위기에 놓였을 때 '내가 생각했던 나'의 반응과 그 순간 내 진짜 반응은 종종 전혀 달랐다. 어쩌면 인생이란 나 자신에 대한 발견일지도 모른다. 먼지의 무게마저 버겁던 때 깨달았다. 공부나 일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바라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는 걸.

- 8쪽


   그리고 물었다. 

   '지금 당신의 상황이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무엇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그건 무엇인가요?'

   나도 모르게 진심이 나왔다. 

   '다른 한 사람의 어른에게 진정한 가까움을 느껴보고 싶어요.'

- 40-41쪽


   페이스북에서는 모두가 행복해 보여도 사람들은 별 볼일 없이 산다느니, 스웨덴 가구 중 부부관계 없이 사는 부부가 몇 퍼센트라니 하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누구네 집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위안 아닌 위안을 받았다. '다들 이렇게 살아, 다 가질 순 없어.' 그런 생각으로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았고 나 자신을 돌보지도 않았다. 

- 69-70쪽


   지난번에 저녁을 먹을 때 누군가에게 실망한 이야기를 했더니 울로프가 말했다. '세상에는 말로만 하는 사람들이 있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말로만 하는 사람인 게 느껴지면 끊으면 돼. 그리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들만 간직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간단한 거야.'

   울로프와 에밀리는 내게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나 역시 그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좋은 관계란 정말 이만큼 간단하다. 그 마음이 제일 근본적이고 중요하다. 

- 74쪽


   그는 나와는 달리 하나하나 말로 설명하거나 표현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외국어여서인지 그 사람의 성격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언어는 늘 간단하다. 화려한 수사, 긴 문장은 없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어 행복합니다' 그가 내게 하는 감정 표현의 전부다. 그렇지만 그의 단순한 문장들에는 늘 어떤 힘이 있다. 

- 79쪽


   사랑이 버스처럼 지나가면 또 온다는 건 그냥 하는 말이다. 이 사람이 가면 언제 또 이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이 사람을 만나고서 여러 가지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스톡홀름에 출장 일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내게 언제 다녀오느냐고 물었다. 혹시 금요일이 끼어 있으면 그때 스톡홀름에서 만나자도 하려는 걸까 궁금해 물었다. '아,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내가 물어본 건 당신이 스톡홀름에서 돌아오는 날 저녁을 지으려는 거예요. 저녁을 만들어줄게요.' 지금까지 누구도 내게 이렇게 해준 적이 없었기에 놀라고도 기뻐하자 그는 오히려 조금 당황했다. '이거 별거 아니에요. 당신은 늘 내게 이렇게 해주잖아요.'

   S는 나를 늘 보고 있었다. 내가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배려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돌려주려고 했다. 이런 마음이, 이런 사람이 얼마나 특별한지 나는 지금까지의 내 삶을 다 들여서 깨달았다. 

- 94-95쪽


   영화로도 나왔던 소설 <디 아워스>에서 클라리사는 아름다웠던 어느 날을 회상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그때 아 이게 행복의 시작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시작이 아니었어. 행복이었어. 순간이었다고."

   나는 지금 그 순간에 있다. 행복하다.

- 102쪽


   나의 아름다운 주말이자 평안한 평일 저녁이었던 사람이 정말 간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지만 이미 했던 말의 변주곡일 뿐이다. 내가 이전에 한 말을 더 그럴듯하게 한다고 해서 그가 지금 모르고 있는 걸 깨닫게 되는 건 아니다. 그는 이미 다 알고 있고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반복해서 말한다. 사랑해, 행복해.

- 107쪽


    꿈속에서 느낀다. 행복할 수 있다. 다시 사랑할 수 있다. 사랑 받을 수 있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주문처럼 외운다. 

- 238쪽


   아그네스가 말하는 선배 언니는 내가 아는 그 모습이다. 아그네스의 목소리에는 그리움이 가득하다. 아그네스는 아마도 나랑 언니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오늘 더 행복했을 것이다. 오늘 다시 깨달은 거. 잘 살자. 언제 어느 때 나를 아는 누가 다른 나를 아는 누구를 만나 좋은 기억으로 이야기하며 행복해할지도 모른다. 나는 행복의 기억이 되고 싶다. 

- 241쪽


   두 번째 별똥별을 기다리면서 소설가 새라 워터스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40대에 슬픔을 만나게 된다. 마흔 전에는 새로운 것들과 조우하지만 마흔 후부터는 그것들과 이별한다." 그런데 아직 새로운 경험이 나를 찾아온다. 새로움이 지나가고 나서도 이 경험은 경이로울 것이다. 

- 247쪽


  이렇게 아프다니.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감정은 늘 파도처럼 새롭구나. 왜 무뎌지지 않는 건지. 왜 담담하지 않은 건지. 담담함이란 나이를 먹어도 얻지 못하는 지혜처럼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하다.

   이 그리움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직하고 싶다. 지우고 싶지 않다. 나에게 물어본다. 누군가를 이렇게 그리워한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의 허상이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 그 기쁨을 그리워한 적이 있던가? 그만큼 행복해서 그만큼 그립다. 누군가를 이토록 온전히 그리워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안다. 

- 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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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취향

from 서재를쌓다 2018. 8. 26. 23:07



   어제는 시옷의 모임이 있었다. 이 책은 출간하자마자 읽었는데, 어제 을지로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던 구절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런 문장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마주앉아야 한다.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술이 아니라면 차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야 한다. 그리고 별 거 아닌 오늘 하루를 말해야 한다. 당장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쌓이면 견고한 '우리'가 되니까. '우리'는 함께 즐거울 것이다. 함께 어려움을 넘을 것이다. 오해가 쌓일 틈은 없을 것이다. 서운함이 쌓일 겨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마주앉아 오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이상." 어제 우리는 을지로 노가리 골목 만선호프의 야외자리에 앉아 생맥주와 노가리, 닭똥집 튀김, 두부김치, 오징어 숙회, 김 안주를 차례대로 시키면서 늦여름 토요일 밤을 즐겼다. 을지로 골목에는 맥주 마시는 사람들로 그득했고, 달은 동그랬고, 바람이 간간이 불었다. 책은 멤버의 반은 읽었고, 반은 읽지 않았다. 그 반은 김민철 씨의 책을 모두 읽었는데, 한 작가를 다같이 이렇게 같은 시기에, 같은 속도로 알아가고 있다는 게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튼 책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고, 간만에 만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하며 먹고 마셨다. 둘은 새로운 직장에 출근을 했고, 또 둘은 이사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연애가 계속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늘 에너지가 넘치는 N은 금요일마다 오리발을 들고 출근을 한다고 했다. 수영과 필라테스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G는 내게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글을 써보라고 했다. 2차로 종로의 포장마차까지 간 우리는 각자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술은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새벽 시간까지 깨어 있는 게 정말 오랜만이라 뭔가 피곤하면서도 조금은 벅찬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제의 우리도 <하루의 취향>의 어느 한 챕터를 차지 할 수 있었을 거다. 우리 각자의 <하루의 취향>에. 책날개에 이런 글이 있다. "취향이라는 것은 한순간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실패와 시도 끝에 생겨나는 결과물이다. 고상하고 우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 속에서 계속 스스로와 마주하게 된다는 점. 이 책은 그 과정에 관한 것으로, 그날그날 마음이 이끄는 쪽을 바라보며 쓴 글이다. 좋아하는 음악, 책, 취미처럼 단편적인 것에서 시작해 사람 취향, 싫음에 대한 취향, 나라는 사람에 대한 취향까지, 흔들림의 과정을 통해 선택한 가치들이 삶의 중심이 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시옷의 모임을 하고 나면 늘 나를 마주보게 된다. 그리고 어제보다 좀더 나은 오늘을 살고 싶어진다. 이상하게 그렇다. 이 책도 그런 책이다. 나다운 하루, 좀더 나답기 위해 하는 노력들이 담겨 있다.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 <하루의 취향>까지. 삼 년여에 걸쳐 김민철 작가를 조금씩 알아왔다. 여전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모든 요일의 기록>이지만, <하루의 취향>까지 읽고나니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우리가 바짝 가까워진 느낌이다. 작가의 일상 이야기가 이 책에 제일 많다. 궁금했던 남편 이야기도. 제일 좋았던 글은 지하철에서 다시 읽어보니 '우리도 사랑일까'. <봄날은 간다>의 상우 이야기로 시작해 <우리도 사랑일까>의 루 이야기를 거쳐 자신의 남편 이야기로 끝나는 그 글. 그 글의 끝은 이렇다. "상우의, 루의 사랑 취향을 가진 나는 어떤 남자와 결혼했냐고? 언젠가 남편이 내게 말했다. "사랑은 한 사람을 평생 알아가는 과정이야." 여기, 이 사람의 사랑에 관한 가치관이 모두 들어 있다. '한 사람을', '평생', '알아가는', '과정'. 이 단어들의 의미 하나하나는 설명하지 않도록 하겠다. 어쨌거나 나는 그 말을 한 사람과 결혼했다. 자랑은 여기까지." <우리도 사랑일까>를 다시 봐봐야겠다. 순전한 루의 마음으로.  




  그 말을 오래오래 곱씹었다. 그렇다. 이 집은 우리의 선언이었다. 과도한 대출을 받아서 비싼 동네에 비싼 집을 사고 그게 오를 거라 기대를 하며 하루하루 빚을 갚으며 지금의 행복을 유예하는 삶에 대한 거부. 우리 깜냥의 대출을 받아서 오를 거라는 기대도 없이 나중에 부자가 될 거라는 희망도 없이 지금 잘 꾸며놓고 지금 잘 살겠다는 선언.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우리 둘이 괜찮으면 괜찮다는 우리 삶에 대한 선언. 눈을 질끈 감았다. 마음을 단단히 묶었다. 그렇게 공사가 시작되었다. 

- 29쪽


   몇 주 후 엄마와 이모가 우리 집에 다녀갔다. 가장 반대하던 그들이었기에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하지만 기우였다. 그들은 우리가 꾸며놓은 집을 보는 순간, 단숨에 우리의 선언을 이해했다. 그때 알았다. 원하는 대로, 내 취향대로 살아버리는 것은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한 선언이라는 것을. 내 인생을 선언할 권리는 결국 나에게 있다는 것을.

   그렇게 망원호프는 우리 삶에 대한 선언이 되어버렸다. 

- 29-30쪽


  "어젯밤, 벚꽃 산책 진짜 좋았어요."

  "벚꽃 산책?"

  "응."

  "누가? 우리가?"

  이럴 수가. 설마 기억을 못하는 것인가. 완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선배에게 말했다.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는데, 좋은 날이 오면 최대한 길게 늘려야 한다며, 그래서 나 데리고 나갔잖아요."

  "아, 아. 기억난다. 거기 벚꽃 너무 좋지?"

  "완전 완전 완전 좋았어요. 선배는 좋다면서 풀밭에서 막 뒹굴었잖아."

  선배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그러더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내가 뒹굴었다고? 그 풀밭에서?"

  "응. 한강 내려다보이는 그 풀밭에서. 나도 같이 뒹굴까하다가, 나는 관뒀지 뭐."

  "진짜 내가 뒹굴었어? 거기에?"

  "응. 기억 안 나요?"

  "거기 완전... 온 동네 개들이 나 와서 볼일 보는 풀밭이야... 내가... 거길... 뒹굴었다고?"

  나도 완전 굳은 표정으로 선배를 잠깐 바라봤다. 또 선배의 필름이 끊어졌던 것이다. 이제 내가 뒹굴 차례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배를 잡고 뒹굴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 42-43쪽


   "저 너무 대충하죠?"
   선생님은 싱긋 웃더니 대답했다.
   "민철 씨는 스스로에게 참 관대한 것 같아요."
   뭔가 나의 핵심을 순간적으로 간파당한 느낌이었다. 스스로에게 관대하다니, 이건 욕인가 칭찬인가 잠깐 고민을 하다가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살면서 나 스스로에게 관대한 분야가 하나쯤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았으니까. 스스로에게 관대한 그 시간이 나의 숨구멍이 되어주고 있으니까. 물론 바로 옆자리 아저씨에겐 스스로에게 엄격한 그 시간이 숨구멍이 되어주고 있었지만. 숨구멍의 모양도 살아가는 방식만큼 다양한 건 당연한 것이다. 어쨌거나 스스로에게 관대한 마음으로, 이번 주에도 나는 공방 문을 연다. 
- 57쪽

무언가로 향하는 마음이
취향이라면
사람만큼 자신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또 있을까

입꼬리가 예뻐서,
눈매가 선해서,
반바지가 잘 어울려서, 
말이 잘 통해서,
혹은 
침묵이 편안해서,
입맛이 비슷해서,
농담이 잘 맞아서,
실수까지 귀여워서,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서.

모든 사랑에 붙는 
모든 이유는 결국 하나가 아닐까.

당신이라는 사람이 
너무 내 취향이라서.
- 79쪽

   루루는 가장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우리가 늙으면 내가 매일 이 짓을 해왔다는 걸 고백하려고 했어. 당신을 웃게 해주려고."
   아, 나는 이보다 더 극진한 사랑 고백을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한 사람을 보며, 매일 같은 장난을 쌓으며, 늙었을 때 그 장난을 고백하는 장면까지 생각하는 사랑. 늙은 그 사람이 단 한 번 깔깔 웃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매일 마음은 간질거리고 그 마음으로 오늘치 차가운 물을 준비하는 사랑. 한 순간의 떨림은 사랑의 도입부라 인정하고, 같이 쌓는 시간에 더 많은 마음을 내주는 사랑. 둘만 알아듣는 농담담 하나가 생길 때마다, 귀중한 보석 하나를 얻는 기분이 드는 사랑. 물론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은 사랑에 이런 구멍이 생기고, 내일은 또 다른 부분에 구멍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까지도 사랑이라면? 그 구멍이 우리 둘의 사랑에 독특함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라면?
- 86-87쪽

   대단한 깨달음을 주는 스승을 만나지 않아도, 위대한 책을 만나지 않아도, 때론 시간이 훌륭한 스승이 되곤 한다. 20대의 치기 어린 나에 대한 깨달음도, 그때의 치기 어린 나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용기도 결국 시간과 함께 온 것처럼. 
- 93쪽

   삼십 이전에는 고통과 격정에 완전히 자신을 맡겨야 한다.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 그렇다! 털 뽑힌 호랑이가 되어야 한다. 안 그럴 경우, 맥없는 고양이일 뿐이다. 
-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 105쪽

   학생의 세계에서 직장인의 세계로 옮겨간다는 건 단순히 돈을 버는 세계로 편입한 것이 아니었다. 그 돈이 허용하는 수많은 경험들의 세계로 동시에 입장하는 것이었다. 3천 원짜리 학교 앞 밥집에서 1만 2천 원짜리 파스타의 세계로, 천 원짜리 커피에서 5천 원짜리 아메리카노의 세계로 물 흐르듯 입장했다. 못 먹던 것을 먹기 시작했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 들리던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내가 들어온 광고 분야는 그 모든 감각들의 최전선에 있는 세계였다. 알지 못했던 그 모든 감각들과 소개팅 하느라 나는 외로울 틈이 없었다. 매 순간 눈과 귀와 코와 입은 바빴다. 그중 특히 입이 바빴다. 
- 109쪽

   "몇 년을 노력했더니 이제 와인을 따면 와이프가 한 잔까지는 마셔. 든든한 노후 준비 하나를 마친 느낌이야." 선배의 말을 듣다가 무릎을 탁 쳤다. 술 한 잔이 노후 준비라니. 근사한 표현이었다. 정확한 표현이었다. 저녁에 마주앉아 술 한 잔을 같이 마시며 하루의 일을 두런두런 말하는 시간을 확보한 것이 노후 준비가 아니라면 무엇이 노후 준비겠는가. 
- 131쪽

   "광고가 제 인생에 훌륭한 수단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수단'이라는 말 앞에 선배의 표정이 일그러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내 생각은 더 명확해졌다. 누군가에겐 일이 인생의 목적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일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단이 되었으면 했다. 그것이 단순히 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것을 훌륭한 수단으로 만드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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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상이몽>의 한고은 편을 챙겨 보고 있는데, 이번주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포장마차에서 골뱅이탕에 레몬소주를 마시며 더위 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한고은이 말했다. 여보, 나랑 결혼해줘서 정말 고마워. 이 말을 세 번쯤 한 것 같다. 그날의 대화에 의하면 평소에도 남편에게 자주 했던 말이었다. 한고은은 여보가 없었으면, 이라고 말하더니 울컥해져서 술잔을 놓았다. 이를 본 남편이 한고은의 등을 토닥여줬고, 한고은은 울 것같은 표정으로 남편을 안았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결혼하기 전에는 나한테 가장 쉬운 일은 죽는 거였어. 여보랑 결혼하고나서 가장 달라진 건 세상에서 죽는 게 제일 무서워. 한고은은 지난 날이 너무 힘들었고,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남편이 그동안 고생한 자기에게 수고했다며 준 선물같다고 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서 이 행복을  누리고 싶다고 했다. 지금이 너무너무 행복해서 이 행복을 누가 앗아갈까봐 겁날 정도라고 했다. 처음 만날 때부터 남편은 한고은에게 자잘한 칭찬들을 계속 해주었단다. 그게 자존감이 낮았던 한고은이 자기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단다. 어쩌면 이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나는 진짜 괜찮은 사람인 지도 몰라. 그렇게 자존감이 쌓여가고, 자신도 남편처럼 칭찬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단다. 한고은은 남편을 만나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알아간 것 같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는 회사원의 삶, 매달 나오는 월급, 집-회사-집으로 이어지는 쉴틈없는 평일을 보낸 뒤 맞이하는 달콤한 불금과 주말,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먹고 술잔을 기울이는 즐거움. 그래서 비록 살은 쪘지만 더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 없이 살자>. 이 책도 나는 자존감의 이야기로 읽었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호텔에서 근무를 했고, 연애를 하다 결혼했다. 아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무척 다른 사람이었고, 완벽한 하나가 되고 싶었던 여자는 그렇게 되지 않아 힘들었다. 몸에 이상이 왔고, 마음에도 이상이 왔다. 점점 더 예민해져갔다. 결국 아이는 생기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이혼 밖에 없을 것 같은 시간이 이어지고, 남자는 결심을 했다. 우리, 1년동안 세계여행을 가자. 남자는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했고, 여자가 운영 중인 게스트하우스도 타인에게 넘기자고 했다. 남자의 결심에 여자는 쉽게 동조할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상태 그대로 살아가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했다. 결국 두 사람은 1년동안 여행을 떠난다. 남자에게는 세계여행의 꿈이 있었다. 여자는 비행공포증이 있었고, 생리통도 심했고, 장 트러블도 있었다. 여행 초반 여자는 모든 상황이 무섭고, 싫고, 불평스러웠고, 서러웠다. 그래서 눈 앞의 것들을 잘 즐기지 못했다. 그러다 여행 기간이 길어지고, 적응이 되면서, 비로소 받아들이게 된다. 눈 앞의 광경들을, 다시 못 할 이 시간 경험들을, 나와 다른 남편을. 여행지나 여행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여행을 하는 여자의 마음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다. 피폐했던 마음이 어떻게 회복되어 갔는지, 어떤 상황들을 겪어나가며 둘이 단단해졌는지, 아이가 꼭 있어야 완벽한 가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여자가 아이 없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결국 자존감을 높이는 건 좋은 사람이 곁에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그런 준비가 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나저나 남미는 정말 축복인가 보다. 이 책의 저자도 남미의 자연을 보면서 가장 많은 위안을 받았다.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 




   30번이 넘도록 비행기를 탔지만 그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힘들 필요가 없는 일인데, 무언가에 사로잡혀 두려워하는 내 모습이 한심하고 안쓰러웠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분명 힘들었던 시간이 헛되지 않으리란 믿음은 있었다. 그 믿음은 나로 하여금 극도의 무서움을 이겨내고 다시 도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 세상에 100퍼센트 나쁜 일은 없다. 시련은 인간을 성숙시키기 때문이다. 시련의 늪에 빠져 있을 때는 그 시간이 힘들기만 하고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과정이 내 인생에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고, 나를 성장시켰는지 깨달았다. 

    이제는 힘든 일이 있어도 크게 좌절하거나 감정이 바닥을 칠만큼 심하게 우울해하지는 않는다. 또 하나를 배우고 성장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 68-69쪽


   우리 부부는 더욱 외로움과 친해져야 할 의무가 있다. 나이 들어 찾아올 자식이 없는 우리는 노년에 남들보다 더 외로워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언젠가는 둘 중 한 명은 혼자 남을 것이다. 그때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외로움과 친해져야 한다. 

- 191쪽


  10여 년의 치열한 전투와 상처, 1년간의 여행,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그는 잘못한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 또한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다름을 받아들이는 게 서투를 뿐이었고, 어디서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스스로 깨우치며 배우고 있었다. 10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다.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내가 편안해지니 그가 편안해 보였다. 그를 배려하려고 노력하니 그가 알아주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니 상대방이 보였다.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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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돼가? 무엇이든

from 서재를쌓다 2018. 8. 21. 21:42



    책을 살 생각은 없었는데, 동생이 출근길에 이 책의 첫 글인 '눈물병'이 실린 페이지를 보내줬다. 서른 여섯살 여동생이 결혼을 했다. 가족 모두 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경미 감독 혼자서만 울었단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여동생네와 식사를 하고 동생네는 돌아가고 엄마와 함께 뒷산을 실렁실렁 올랐던 시간에 대해 쓴 글이다. 감독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정말 다 짝이 있을까?" 그리고 말한다. "내 짝은 왔다가 갔어, 이미." (그런데 책을 끝까지 읽으면 이 말은 당연하게도 사실이 아니다. 흐흐-) 그리고 이 구절이 있다. "사랑을 잃었다고 무너지면, 나는 끝난다. 나한테는 나밖에 없다. 매일 매시간 매초, 나를 때리며 악으로 버텨왔는데, 창피한 줄 모르고 아무 때나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그렇게 매번 눈물을 흘리고 나면 마음은 편해졌다. 숨 쉴 수 있어서 좋았다. 그냥 내가 마흔을 목전에 둔 서른아홉 가을에 그랬었다는 이야기." 시큰해지더라. 다른 글들도 궁금해졌다.


   두 편의 장편영화를 만드는 동안, 아니 그 전, 그 후, 감독의 일상과 생각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내가 좀더 묵직한 걸 기대했었나 생각이 들었다. 술술 읽힌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변 사람이 아빠와 엄마, 그리고 결국 남편이 된 백인 필수씨인데, 다들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엄마의 문자를 따로 모아놓은 페이지들이 있는데, 킥킥대면서 읽다가 마음이 짠해졌다. 직설적이고, 외모와 건강에 대해서 잔소리하고,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경고 문자를 주의하라고 꼭 전달하는 걸 보면 꼭 우리 엄마 같기도 하고. "어두운 망망대해 위에 혼자 남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때, 엄마의 문자는 그날 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빛이었다." 책은 여동생의 결혼으로 시작해 감독 본인의 결혼으로 끝난다. 초반에 혼자 지낸 힘든 시기들이 많이 적혀 있어서 그런가, 동반자를 찾은 (무려 13살 아래!) 이야기로 끝나니까 해피엔딩인 것만 같다. 이 책이. 한밤중에 마지막 장을 넘겼는데, 뭔가 긍정의 기운이 마구 솟아나는 느낌이랄까. 긍정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참 신기했다. 이상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나를 믿는 일이 제일 어렵다.


어쨌든,

아주 조금씩 가고 있다. 

2010.04.04


-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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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을 읽고 한수희 작가의 책은 챙겨 읽어야지 다짐했었다. 그녀의 글에는 시원시원한 면이 있었다. 솔직했고. 이번에 교토 여행 책이 출간되었다기에 바로 주문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제목을 잘 지었다는 걸 알겠더라.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 여행지가 사람의 기운을 달리 만드는 걸까. 그녀의 말대로 나이가 들어서 이전의 여행과는 달라진 걸까. 차분하고 고요하다. 30대가 된 후 작가는 해마다 교토를 찾는다고 한다. 교토를 위해 한달에 얼마씩 저축을 하고, 예정했던 돈이 다 모이면 1년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난다고. 교토로. 


   책은 교토라는 장소보다 교토를 거니는 작가 자신에 집중한다. 두 아이를 키우는 고단함에 대해, 카페를 열었다 접을 수 밖에 없었던 사연에 대해, 밥벌이의 어려움에 대해, 글쓰기의 즐거움에 대해,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호적함에 대해, 치열했던 젊은 날에 대해, 일본에서 한때 힘들게 살아갔던 친구에 대해, 함께 교토를 여행하는 엄마에 대해. 아, 더 추가해야 겠다. 이번 책은 이전의 글보다 차분하고, 고요하고, 편안하다. 그리고 다음 구절을 읽고 솔직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사람도, 글도 솔직한 것이 좋다. 그래야 믿을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다. 사람에게도, 글에게도. 




  "사람들은 글을 쓸 때 좋은 것에 대해서, 아름다운 일들에 대해서, 자랑할 만한 경험들에 대해서만 쓰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사실 인생의 여기저기에 널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때로는 웅덩이에 몸이 흠뻑 젖도록 빠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주의 유일한 실수투성이 피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우리를 힘내어 살아가게 한다. " 

- 22쪽


   교토의 이야기는 내가 기대했던 한수희 작가의 시원시원한 글은 아니었지만, 이런 구절들을 읽으면서 그녀를 더 신뢰하게 되었다. 다음 책도 기다릴 것이고, 읽을 것이다. 그녀는 좋겠다. 든든한 독자 한 명이 생겼으니. 흐흐- 



  예전의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매년 교토라는 도시에 가고 그럴 때는 누군가와 함께이다. 친구, 엄마, 남편. 나는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거의 매일 나는 나 자신과 싸운다. 놀고 싶은 나와 싸운다. 앞날이 캄캄한 나와 싸운다. 멍청한 나와 싸우고, 거짓말을 하려는 나와 싸우고, 모르는 체하려는 나와 싸우고, 근사한체하려는 나와 싸운다. 내가 지긋지긋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또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사람이 되고 싶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인상을 쓰고 싶지 않다.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싶지도 않다. 진지한 이야기도 지겹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굳이 괜찮은 인간처럼 보이지 않아도 좋을 친구와 함께 걸으면서 수다나 떨고 싶다. 수다 떨기도 지겨워지면 각자의 시간을 좀 보내도 좋겠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냥 멍청하게 공상에 빠져 있거나, 그래도 좋을 정도로, 그래도 서로를 불안해지게 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친구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 그런 친구와 함께 타국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즐거운 일을 함께 겪고 기분 나쁜 일도 함께 겪고 말할 수 없이 사치스러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 이런 여행에서 종종 나타나곤 하는 완벽한 순간에 고개를 돌려 "정말 좋다, 그렇지?"라고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교토는 바로 그런 순간에 적당한 도시인 것 같다. 

- 12-13쪽


   그런 내가 이제 마흔이 되어버렸다. 누가 "저는 40이 가까운 나이에..." 라는 식으로 말할 때마다 '아아, 저 사람 나이 들었구나' 라고 생각하다가 내가 마흔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깜짝 놀라는 일의 연속이다. 아이들은 종종 나를 놀린다. "엄만 늙었어!" 그게 놀릴 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데 아마 나도 어릴 적에 그랬겠지. 직접 당해보니 나이 먹는 건 해가 바뀌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감정과는 무관하다. 그러다 나는 문득 내가 어린 시절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책 나이가 들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37쪽


   자전거를 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 잡기이다.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아빠가 뒤에서 나를 밀어주었는데, 어느 순간 등 뒤가 휑한 느낌이 들었다. 무섭고도 짜릿한 느낌이었다. 돌아보니 아빠가 자전거를 잡은 손을 놓고 저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아빠의 얼굴은 재미있는 것 같기도 했고 뿌듯한 것 같기도 했다. 사실 나는 돌아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한 단계를 통과했다는 것을. 자랐다는 것을. 

- 76-77쪽


   그런데 내가 살아가면서 배운 일은 오직 기다림에 관한 것이다. 예전에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잘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원하는 것은 빠르게 손 안에 들어와야 했다. 되고 싶은 것은 빨리 되어야 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일을 할 때는 열정과 재능 외에도 시간의 힘을 믿는 배짱이 필요한 법이다. 하루아침에 쓸 수 있는 책도,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영화도, 하루아침에 짓는 건물도, 하루아침에 성공하는 가게도, 하루아침에 익힐 수 있는 기술도 없다. 몇 번은 운이 좋아 빠르게 이룰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운이 다했을 때는 결국 시간이 이긴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시간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 삶은 불행해진다는 걸 잘 알기에 나는 의도적으로 내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생활의 여기저기에 끼워 넣는다. 느리고 비효율적인 일들을. 천천히 산책하기. 천천히 달리기. 커피를 볶기. 빵을 굽기. 식물을 기르기. 차를 마시기. 수건을 삶기. 텃밭에 농사를 짓기. 책을 읽기. 지하철을 타기. 적금을 붓기. 1년에 한 번 교토로 여행을 가기. 

- 105-106쪽


   내가 <I Love Paris>라는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도 코언 형제나 알렉산더 페인이나 알폰소 쿠아론의 단편들이다. 이 이야기들은 파리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해 그대로 끝난다. 다분히 냉소적인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마음이 따뜻해지거나 슬퍼지는 것들이 숨어 있다. 코언 형제는 파리의 한 역에서 이상한 커플을 만나는 미국인 관광객을, 알렉산더 페인은 짧은 일정으로 파리 여행을 온 외로운 중년 아주머니를, 알폰소 쿠아론은 아침마다 자기 아이를 공동 탁아소에 맡기고 부잣집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러 다니는 이민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들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파리가 있고, 감독들은 그들의 눈과 마음을 통과한 도시 파리를 그린다. 나는 이 감독들의 냉소적인 정직함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정직할 때 비로소 사람은 냉소적일 자격을 얻는 게 아닐까. 

- 147쪽


   꼭 장사가 아니더라도, 어떤 일을 하건 그 일은 처음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초라할 것이다. 가끔은, 아니 꽤 자주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을 느낄 것이고, 아무리 해도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견뎌내야 한다. 아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그런 일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 179-180쪽


   그런데 여행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며칠이 지난 후 다시 내 나라로 돌아왔을 때 나에게 기대하지 못했던 선물을 준다. 이를테면 그곳에서 배워온 사소하고 즐거운 습관과 그곳에서 본 풍경들이, 내 여행 가방 속에 몰래 숨어든 작은 벌레처럼 나를 따라오는 것이다. 

   광저우에서는 차를 마시는 습관이 나를 따라왔다. (...) 피피 섬에서는 빈둥대는 법이 나를 따라왔다. (...) 인도에서 나는 맛있는 짜이가 어떤 것인지를 알았다. (...) 파리에서는 아침을 맛있는 크루아상이나 뺑 오 쇼콜라와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는 습관이 쫓아왔다. 

- 218-220쪽


    이제 나는 무거운 배낭 같은 건 매지도 않고 미지의 땅으로 떠나지도 않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지금의 내가 원하는 것은 그때와는 조금 다른 것들이다. 나는 나이가 들었다. 더 이상 나 자신이 그렇게 궁금하거나 내 가능성들이 절박하지 않다. 이제 나는 그저 아름다운 오래된 것들 속에서 시간의 연장선상에 있는 나 자신을 느끼며 편안히 지내다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좋은 세상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 

   교토에 다녀온 나를 늘 바란다. 내가 걷는 골목이 아름답기를, 집집마다 자신이 사는 장소에 대한 애착이 묻어나기를, 자신뿐만 아니라 이 골목을 걷는 이웃의 마음도 한 번쯤 생각해주기를, 무슨 일을 하건 남이 시키거나 내가 이것밖에 안 되어서가 아니라 이것이 나의 일이라는 자부심으로 충만하기를, 그럴 수 있기 위해서 이 사회가 먼저 달라지기를, 내 아이가 자라서 배관공이나 그 외의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노동자가 되었을 때 그 아이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면서 건강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그리고 이런 세상을 꿈꿀 수 있는 힘을 나는 교토라는 도시에서 가져오는 것 같다. 

- 228-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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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 다 읽은 책은 중고서점에 팔고 있는데, 이 책은 읽다 물을 흘러버려서 팔 수가 없게 되었어요. 자국이 있지만 깨끗합니다. 좋은 책이었으니, 나눌 수 있음 좋겠어요. 읽고 싶으신 분께 보내 드릴게요. 주소와 전화번호 남겨주세요. 저와 소통하셨던 분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읽었던 오키로북스의 <제가 이 여자와 결혼을 한 번 해봤는데요>도 읽고 싶으신 분 있으면 남겨주세요. 짧고 재미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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