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쌓다'에 해당되는 글 341건

  1. 언젠가, 아마도 2019.07.31
  2. 여행의 이유 2019.06.17
  3.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2019.05.24
  4.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2 2019.05.16
  5. 나를 숨 쉬게 하는 것들 2019.05.10
  6. 여전히 카미노를 걷는다 4 2019.04.03
  7. 연인 2019.03.24
  8.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2019.02.27
  9. 손때 묻은 나의 부엌 6 2019.01.24
  10. 소설을 쓰고 싶다면 2 2019.01.20

언젠가, 아마도

from 서재를쌓다 2019. 7. 31. 00:55



   내게 여행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편하게 쉬다 오자고 떠나도 여기까지 돈과 시간과 정성을 들여 왔는데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불안해서 남들이 하는 여행을 검색해보고 따라해보고 기념품들을 샀었더랬다. 그런데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추억들은 남들이 하지 않았던 것, 검색해서 잘 나오지 않았던 것들이다. 숙소에서 하루종일 쉬어도 괜찮은 거였다. 그곳도 내가 고르고 고른 나의 또 다른 여행지인 것이다. 이런 생각도 남들과 비슷한 여행을 여러번 해보면서 느낀 것. 그 경험들을 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들. 비슷비슷한 여행이었음에도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순간순간들이 있었다. 함께 하는 사람 덕분에, 혼자였기 때문에. 아무튼 결론은, 우리들의 여행이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특별하다는 것. 어떤 여행도 잘못된 여행은 없다는 것. 외로운 것도 여행이었다는 것. 정말 좋은 여행이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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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라는 약한 존재가 되고 난 뒤에야 나는 사람의 선의에 기대는 법을 익히게 됐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에게는 근처에 있는 호텔을 찾아가는 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 동네 주민에게는 산책만큼 쉽다. 그러므로 그 여행자에게 필요한 행운은 단 한 사람, 그 호텔의 위치를 아는 현지인을 만나는 일이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대단한 결심이 아니어도 괜찮다. 서로가 약간의 용의를 내기만 하면 된다.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용의, 선뜻 도와주겠다는 용의. 여행지의 행운이란 이런 두 사람의 만날 때 일어나는 불꽃 같은 것이다. 

- 5쪽


   막상 간절하게 원하면 쉽게 구할 수 없다. 이건 오르골의 법칙이다. 이걸 뒤집으면 쉽게 구할 수 없다면 간절하게 원하게 된다. 이건 도루묵의 법칙이다. 그러고 보면 서울의 거리를 걷다가 마치 낯선 여행지처럼 느껴질 때가 몇 번 있었다. 나 혼자 하염없이 걷고 있을 때, 이별했을 때, 이제 다시는 누군가와 웃으며 그 거리를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돌이켜보면 바로 그때가 도루묵의 법칙이 작용했을 때였다.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도 간절히 원하지 않는 인생이란 어쩐지 낭비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 27쪽


  국경 쪽으로 세차게 부는 바람 속으로 날아가던 모자처럼 여행지에 내가 남겨 두고 온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갖가지 잃어버린 물건부터 보지 못하고 온 것과 사지 못하고 온 것에 이르기까지. 그럴 때마다 그랬던 것 같다. 차를 돌릴 수 없으니 마음을 달랠 수 밖에, 라고. 밤의 알람브라가 내게 가르쳐준 것도 그런 것이었다. 여행이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여행을 통해 나는 비정함을 익혔다. 눈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그토록 찬탄하던 곳과 작별하는 법을 알게 됐으니까. 이젠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을 알면서도 말이다. 친구처럼 지낸 이들과도, 또 아꼈으나 잃어버린 물건과도 아무런 미련없이. 이젠 알겠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이 삶의 원리를 배웠다는 사실을. 그레이트! 베리 굿! 다만 그뿐이라는 것. 떠나는 순간에 아쉬움이 남아서는 안 된다는 것.

- 31쪽


   그렇다면 그 시절 나는 청춘이었겠다. 그저 시간만 잔뜩 있을 뿐,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어 낯선 도시의 도서관에 멍하니 앉아 있던 그날 오후의 나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캐리어를 끌고 마드리드 시청역에 도착했을 때부터 나는 어찌나 서툴고 허술했던지. 어쩌자고 나는 이렇게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왔으며, 어쩌자고 마드리드라는 곳은 이런 곳인지. 캐리어는 무겁고, 에스컬레이터 같은 것도 없고, 끌고 가자니 길은 울퉁불퉁하고, 지하철로 다시 내려가자니 계단은 무수히 많았다. 가이드북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인터넷을 수없이 검색했지만, 여행 중에는 뭘 어떻게 하든 능숙해질 수 없다는 걸 실감했다.

- 38-39쪽


   하지만 혼자 여행하는 일의 묘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 거기, 고단함에. 아침에 일어나면 또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막막하다. 책을 읽어도, 음악을 들어도, 걷고 또 걸어도 시간은 좀체 흐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관광지를 둘러보다 보면, 세상의 모든 관광지란 홀로 여행하는 자의 곤란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혼자가 아니었다도 나는 그렇게 열심히 박물관과 미술관, 성과 대성당을 둘러봤을까? 어쩌면 이렇게 비뚤어진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앉아 슈퍼마켓에서 산 샐러드와 빵을 먹던 나는 스트레인저라는 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됐다. 그건 어떤 사회적 연결 고리도 없는 단독자를 뜻한다는 것을. 단과 독, 때로 여행은 그 단어의 뜻을 체험하기 위한 이일이기도 하다. 

- 43쪽


   리스본이 하구의 도시, 석양의 도시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파두 때문이었을까? 장난감 같은 트햄과 골목의 풍경이 하도 애틋해서 였을까? 마치 한 시대가, 한 생애가 끝나는 순간의 감정처럼 막대한 노스탤지어였다. 얼마나 대단한 그리움이었던지 그 순간 리스본에 있으면서도 나는 리스본이 그리웠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는 리스본이 그립다. 

- 102-103쪽


   남자는 장발에 트렌치코트를 걸친 펑퍼짐한 인상의 중년이다. 그는 전철에 타자마자 캔맥주 꼭지를 타더니 시원스레 들이켠다. 하긴 여행자에게는 언제라도 캔맥주의 꼭지를 딸 수 있는 특권이 있으니까. 고토쿠인의 대불 같은 가마쿠라 관광 명소를 둘러보는 동안, 조금씩 밝혀진 남자의 정체는 연극배우였다. 아무래도 예술가여서일까, 그는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면 술부터 찾았다. 그렇게 차수를 늘려가며 동네 술집을 돌아다니는 사이 여행 프로그램은 자연스레 음주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 말하지면 '가마쿠라 술꾼 기행'인 셈이었다. 동병산련일까. 어쩐지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173쪽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되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 178쪽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역을 나서자 아는 골목이 하나도 없는 낯선 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서울은 마치 내가 그토록 읽고 싶어 하던 소설책과 같았다. 표지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 멋진 책을 앞에 놓고서 누가 발췌독을 하리오? (누가 버스를 타고 다니리오?) 누가 요약된 줄거리와 서평에 만족하리오? (누가 패키지 투어에 참가하리오?) 오랫동안 기다린 책이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통독해야 마땅하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끝까지 걸으면서 구경해야만 한다. 

- 191쪽


    여행이 끝나고 원래 머물던 곳으로 돌아오면 사람들은 여행은 잘했느냐고 묻고, 그런데 살은 왜 그렇게 빠졌느냐고 묻는다. 글쎄, 나는 여행 갔다가 살이 쪄서 돌아오는 사람이 더 이상하긴 하지만 "먹는 게 시원찮아서"라고 대답해준다. 그러면 대개 만족하니까. 그들은 만족하고 나는 살이 빠졌으니 더 바랄 게 없다. 

- 193쪽


   한 객실에 11명씩, 마치 군대 막사 같은 공간에 누워 있었다. 옆에 있는 아저씨는 잠이 안 오는지 연신 소주를 마셔댔다. 관부연락선이라는 말은 이상에 대한 소설을 쓸 때 처음 들었다. 죽기 한 해 전 이상은 일본에 가려고 부산으로 내려와서도 도항증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어렵사리 시모노세키행 배에 올라타고 바다를 건너와서는 다시 도쿄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당시 경성에서 도쿄까지는 이틀이 걸렸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도쿄에 도착한 이상의 첫 소감은 "와보니 실망이오"였다. 그렇게 실망할 것이라면 왜 그렇게 도쿄에 가고 싶어했는지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려면 역시 이틀에 걸쳐 배와 기차를 갈아타면서 도쿄까지 가봐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상념 끝에 나는 잠이 들었다. 

- 196-197쪽


   평상시 우리가 배우들처럼 다른 캐릭터가 되어볼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자라면 다를 것이다. 출국 심사를 받기 전에 여권을 심사관에게 건네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그건 자신에 대한 정보가 적힌 여권을 제출함으로써 이 나라에서 살던 자신을 반납했음을 명시하는 절차라고. 잘 안되면 수염이라도 붙여보자.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본래의 나로서만 살아가는 것도 엄청난 낭비일 테니까. 

- 241쪽


   이동 시간이 이처럼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면, 우리는 여행의 목적을 더 잘 알게 되리라. 여행의 목적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꾸는 게 있다는 걸. 그러므로 여행자란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바뀐 풍경은 낯설다. 새롭고 또 신기하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상대적인 이야기다. 나를 둘러싼 풍경만 낯설고 새로운 게 아니라 그 풍경 속의 나 역시 낯설고 새로운 존재, 즉 이방인이다. 하루나 이틀 전, 그러니까 여행을 떠나기 전의 나를 떠올리면 이건 기묘한 변신담처럼 느껴진다. 

- 255쪽


   지난 몇 년 동안, 이따금 떠오르는 여행의 기억들을 이 책을 통해 풀어놓았다. 그렇게 떠오른 기억 속의 나는 일상 속의 나보다는 조금 더 고독하고 조금 더 활동적이고 조금 더 유쾌했다. 그런 나의 모습 뒤로는 늘 이국의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달라지면 내가 달라진가는 건 확실했다. 그게 바로 여행의 목적이었다. 이제 모든 여행은 끝났다. 이제는 바로 여기, 지금 이 세상에서도 나를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 세계를 완전히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나 자신을 바꿀 수 있을까? 진짜 여행이 이제부터 시작된다. 

-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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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from 서재를쌓다 2019. 6. 17. 22:30



  에피소드로 가득한 바르셀로나의 나홀로 놀이동산 체험기를 페이퍼로 써갈 생각이었다. 제목이 <여행의 이유>인 줄 알면서도 나는 이 책에 김영하의 여행체험담이 가득할 거라고 생각을 했더랬다. '추방과 멀미'에는 기대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중국비자가 필요한 줄 모르고 출국을 한 뒤 바로 추방당한 작가의 생생한 경험담. 이런 에피소드가 그득하면 <여행의 이유>를 절로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튼 여행담이 적어 아쉬웠다. 오월의 시옷의 책은 내가 선정했는데, 제일 큰 목표는 많은 사람들이 읽어오기. 독서모임이면서 그동안 안 읽은 책들이 많았다. 얇고 잘 읽힐 것 같아서 선정했는데, 잘 읽히지 않았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은 이가 과반수 이상. 일단의 성공. 김영하 작가가 <대화의 희열>에 나와 여행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들이 좋더라. 이 책에서 제일 좋은 부분은 책을 끝까지 읽어야만 읽을 수 있었다. 작가의 말에 있었기 때문. 


  바로 이 부분이다. 나와 함께 여행했던 여러 동행들에게 직접 써서 건네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고맙고 미안했다고. 앞으로의 동행에게도. 고마울 거고 또 그만큼 미리 미안할 거라고. "이 책에 도움을 준 고마운 이름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여행에서 내가 만난 모든 이들, 돈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간에, 재워주고 먹여주고 태워준 무수한 타인들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들은 있다. 바로 긴 여행길에서 나를 참아준 동행들이다. 가끔은 별 것 아닌 일로 다투기도 하고, 날선 말로 감정을 다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께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느낌을 공유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었던 이들. 이들이 없었더라면 여행은 그저 지루한 고역에 불과했을 것이다. 눈을 감으면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지구에서의 남은 여정이 모두 의미 있고 복되기를 기원해본다." (p.213-214)



(...)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 18쪽

 

(...) 인간은 언제나 자기 능력보다 더 높이 희망하며, 희망했던 것보다 못한 성취에도 어느 정도는 만족하며, 그 어떤 결과에서도 결국 뭔가를 배우는 존재다. 

- 23쪽


(...) 마이너리그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원래 추구하던 것과 다른 것을 얻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불행했을 리는 없다. 그들은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자기 인생을 살아냈다. 경기에 출전해 최선을 다했고, 사랑하는 파트너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은퇴한 후에는 코치가 되어 후진을 양성하거나 다른 일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래 얻으려던 것('메이저리거 되기')보다 더 소중한 교훈들을 얻었(거나 최소한 얻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어쨌든 살아남지 않았는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고, 남 보기에는 보잘것없을지언정 평생을 들여 이룬 작은 성취가 있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 24쪽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51쪽

 

(...)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나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 81-82쪽


(,,,) 그렇다면 그냥 현재를 즐기자. 현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과 마주 앉아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 미래는 포기하고 현재에 집중하자고 생각했고 그것은 사실 내가 모든 여행에서 택하는 태도이기도 했다. 

- 109쪽


(...) 여행을 거듭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작가는 '주로 어떤 글을 쓰'는지를 굳이 설명해줄 필요가 없는 이들, 즉 그 글을 읽은, 다시 말해 독자에게만 작가라는 것을. 

- 168쪽


   비슷한 일을 소설이 한다. 부부관계의 파경을 다룬 소설을 읽고 나면 독자 자신의 부부관계도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된다. 탁월한 문장력으로 맥주의 맛을 묘사한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문득 냉장고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그때 마시는 한잔은 늘 경험하던 그 맛이 아니다. 문득 새롭다. 

-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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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어떤 책을 읽고 그 작가의 책을 한 권 빼고 연이어 구입해 읽은 적이 있다. 처음 읽은 책이 무척 좋아서 푹 빠졌었다. 나머지 책들도 나쁘지 않았고, 더 출간되는 책이 없나 기다리게 됐다. S와 이야기를 하다 둘 다 그 첫번째 책을 읽었고,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S는 그 작가의 블로그를 알고 있었는데, 오래전에 정치적인 견해가 달라 친구목록에서 지웠다고 했다. 내가 블로그가 궁금하다고 하니 추적에 추적을 거듭해서 찾아줬다. 나는 몇달정도 블로그를 구독하다가 친구목록에서 지웠다. 내가 상상했던 작가와 거리가 있었다. 물질적인 것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분 같았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너무 달랐다. 나는 그런 밥을 그렇게 자주 사먹을 수 없다. 왠지 조그만 배신감이 들었다. 


  한수희 작가님 책은 지금까지 세 권을 읽었다. 제일 처음은 <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 다음은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 그리고 이번 달에 신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를 읽었다. 출간순대로 읽긴 했는데, <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 전에 출간된 책이 여러 권 있다. <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은 씩씩했다. 세계 이곳저곳을 혼자서, 친구와, 남편과, 아이들과 씩씩하고 활기차게 돌아다니는데, 시원시원한 문장들에 속이 뻥하고 뚫리는 느낌이었다. 다음 책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은 차분했다. 나이가 들고, 사색이 많아지고, 세상일에 지치기도 하고. 그런 사람이 위안을 찾기 위해 교토를 여러 해 반복해서 찾는 이야기였다. 같은 작가가 맞나 생각이 되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는 이 작가의 완전한 팬이 되었음을 알았다. 한때 왕성한 여행욕을 자랑했던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건넸다. 새벽에 동네를 산책해본 적이 있냐고, 운동화를 질끈 묶고 해가 뜨기 전 좋은 기운들로 가득한 공기 속을 천천히 걸어보라고. 매일매일 조금씩 뛰어본 적이 있냐고, 본인이 뛸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며 뛰었을 때 몸의 변화를 직접 느껴보라고.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속옷 말고 정말 나만을 위한 팬티를 입어본 적이 있냐고, 이름하야 엄청난 사이즈의 맥시팬티. 얼마나 편한 줄 아느냐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매번 핑계를 찾고 있지 않냐고, 어디서든 언제든 조금씩 글을 써 내려가면 결국 쓸 수 있다고, 장소와 환경은 중요하지 않다고. 유명한 작가들도 다 그렇게 했다고. 한때 커피집을 열었는데 결국 망해버렸지만 괜찮다고, 그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시간을 결코 허투루 쓰지는 않았다고, 배운 것들이 있다고. 그러니 실패해도 괜찮다고. 


  작가의 신간이 출간되면 알림이 뜨는 서비스를 신청해 놓았는데, 아마 해지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에세이를 줄기차게 읽고 있자 친구가 남의 일기를 왜 그렇게 열심히 읽느냐고 했다. 나는 남의 일기를 읽으면 다름 아닌 내가 잘 살아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 더 잘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남의 일기가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준다고 했다. 2016년에 출간된 <온전히 나답게>도 읽고 싶었는데, 6월에 개정판이 출간된단다. 6월이 되면 새 책을 사야지. 그리고 또 남의 일기를 열심히 읽고, 힘을 얻어야지.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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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이 이 책을 무척 좋아해 호텔에서 하는 북토크 신청을 했다. 언니와 함께 살고 있어요,로 시작하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적었다고 한다. 동생이 먼저 읽고, 다음에 내가 읽고, 그렇게 둘다 읽고 북토크에 갔다. 북토크에 가서 좋았던 점은 책과 인스타로만 보았던 두 작가님의 실물을 직접 보았다는 것. (김하나 작가님은 정말 자그마한 사람이었다) 그 날의 북토크는 책에 있던 에피소드를 한번 더 이야기하는 거여서 좀 아쉬웠다. 어쨌든 북토크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독자의 질문은 "그 아파트는 어디에 있나요?"였다. 동생은 창밖으로 플라타너스 잎이 물결 치는 두 작가님의 망원동 집을 무척 궁금해해 인터넷으로 망원동 아파트를 검색해 볼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분이 또 계셨다! 김하나 작가님이 "그냥 아파트예요. 어느 동네에나 있는 평범한."이라는 답변을 했는데, 그 말이 선명하게 마음에 남았다. 


  나의 집을 어떤 집으로 만드느냐는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다. 한없이 작고 초라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작고 초라한 집이지만, 사람도 그렇듯 모든 집도 장단이 있다. 예전에 살던 면목동 집은 낡은 다가구 주택이었다. 번듯한 대문이 없었다. 검정색 페인트로 칠해진, 잠금장치가 단 한번도 작동하지 않았던 문을 열고 들어가면 1층 가게 뒷마당이 나왔다. 그 옆으로 작은 통로가 있었는데, 그 통로 안의 계단을 올라가면 첫번째에 있는 문이 우리 집 문이었다. (2층에는 세 개의 문이 있었고, 한 개의 문은 3층 주인집으로 이어졌다) 화장실과 부엌이 따로 있는 투룸이었는데, 처음 이사왔을 때는 나쁘지 않게 느껴졌는데 오래 살수록 오래 산 티가 났다. 청소해도 청소한 티가 나지 않는 집이었다. 나중에 동생은 그 동네와 그 집에 사는 것을 부끄러워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집이 나쁘지 않았다. 길 건너에 전통시장이 있었고, 지하철 역까지 걸어서 3분이면 충분했다. 2층이라 해가 잘 들었고, 투룸이라 방 하나에는 책과 옷을 보관할 수 있었다. 길 모퉁이에 있는 집이어서 옷방 창문 하나를 활짝 열어놓으면 초여름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창문 앞에 컴퓨터 책상을 두었는데, 거기서 바람을 맞으며 블로그 글도 쓰고, 영화도 보고, 맥주도 마시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는 도서관이 있었다. 백수 시절 매일 도서관에 가 책을 읽었더랬다. 물론 그것은 추억이고, 다시 그와 같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겠냐라고 하면 흠, 흠, 흠 그러지 못하겠다. 그래,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흠.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모두에게는 각기 다른 이유로 플라타너스 출렁 집이 있을 수 있다는 거다. 고가의 집이 아니더라도, 넓지 않더라도, 모두 각자의 플라타너스 출런 집을 가질 수 있다. (흠. 그래도 고가의 넓은 집에 살게 된다면 정말 좋겠지.)


  아무튼 책은 무척 재밌었다. 깔깔거리며 재미나게 읽었다. 인스타에서 김하나 작가님의 일상을 구경하곤 했었는데, 늘 정돈된 좋은 집에서 쿵짝이 잘 맞는 룸메이트와 아무 문제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 부러웠었다. 내 일상은 싸우고 멍드는 투성인데.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그렇게 되기까지 여러 에피소드들이 있었더라. 그래, 사람 사는 거 다 비슷비슷하지. 잘 싸우고 잘 화해해야 잘 살 수 있지. 남녀관계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김하나 작가님은 집이 무척 깔끔하다는 독자의 말에 인스타에 매번 같은 곳만 올라오지 않나요? 저희 집에도 보여질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보여질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라고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또한 집 뿐만이 아닐 거다. 



   강습을 마친 저녁에는, 동해안이니 역시 회를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코스를 1인분으로는 내지 않는 곳도 많아서, 몇 군데 횟집에 전화를 한 다음 겨우 예약에 성공했다. 혼자 차를 몰고 가서 맛있게 먹은 다음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모든 게 예정대로 순조롭고, 착착 빠르게 돌아갔으며, 새로운 경험으로 꽉 찬 2박 3일을 보냈다. 경탄의 순간에도, 좌절의 순간에도 언제나처럼 혼자였다. 그러고 나니 이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라서 못하는 일이 있는 게 싫어서 뭐든 혼자서도 해왔고 또 꽤 잘해왔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세상에는 여럿이 해야 더 재밌는 일도 존재한다는 걸.

- 16-17쪽


   "친구들은 사회적 정서적 안전망이다." 김하나가 늘 강조하던 이야기처럼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같이 살고 있다. 다른 온도와 습도를 가진 기후대처럼, 사람은 같이 사는 사람을 둘러싼 총체적 환경이 된다. 상대의 장점을 곧잘 발견하고 그걸 복돋아주는 김하나의 '칭찬 폭격기(김하나가 진행하고 있는 팟캐스트에서 얻은 별명이기도 하다)'적인 면모에 내가 가장 직접적으로 수혜를 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많은 술을 마시고 어처구니없는 추억들이 쌓인다. 요리를 잘하고 또 잘 얻어먹는다. 이런 데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는 사실을 나는 동거인에게서 배워간다. 김하나라는 신대륙을 발견하고서 열린 새 세계다.

- 26-27쪽


   어떤 차이는 이해의 영역 밖에 존재한다. 나는 김하나를 통해 세상에 딸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대체로 잊어버리고 살다가 같이 장을 볼 때마다 새롭게 놀란다. 그리고 한 알 한 알 먹어치우는 동안 의아하다가 조금 슬퍼진다. 어떻게 이런 게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사람이 같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같은 걸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서 꼭 가까워지지 않듯,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곁에 두며 같이 살아갈 수 있다. 자신과 다르다 해서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평가 내리지 않는 건 공존의 첫 단계다.

- 34-35쪽


   비슷한 점이 사람을 서로 끌어당긴다면, 다른 점은 둘 사이의 빈 곳을 채워준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면 과연 함께 살기 좋은 대상이었을까? 아마 가슴속 깊이 이해하면서 진절머리를 내고 도망쳤을 것 같아. 참 다른 김하나와 함께 살면서 나는 조금은 욕심이 줄고, 얼마간 정돈되었고, 약간은 느긋해졌다(고 믿고 싶다). 이렇게나 다른 나와 같이 살아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내게 그렇듯이 김하나에게도 때때로 찾아오면 기쁘겠다. 과육이 단단하고 탱글한 육볼보라든가 달콤하고 새콤한 향이 조화로운 죽향 같은 딸기 종류를 새로 알게 된다거나, 치킨을 같이 먹을 때 내가 좋아하는 다리, 김하나가 좋아하는 날개와 목을 서로 양보라는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나눠 먹는다거나, 그런 작은 여백이 채워지는 것처럼.

- 36-37쪽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안 하고 있어서 좋은 점은, 세상이 말해주지 않는 비밀을 하나 알게 되었다는 거다. 그게 뭐냐면, 결혼을 안 해도 별일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결혼 안 해봐서 아는데, 정말 큰일 나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생길 수 있을 별일 큰일을 곰곰 생각해봐도, 앞으로 점저 더 결혼할 확률이 낮아질 것 같다는 정도 외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 78쪽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내가 불안하고 초조했던 건 결혼을 못 해서라기보다 '결혼 못 한 너에게 문제가 있어' '이대로 결혼 안 하고 지내면 너에게 큰 문제가 생길 거야'라고 불안과 초조를 부추기고 겁을 줬던 사람들 때문이라는 걸. 오지라퍼들이 아무리 까아내린다 해도 나는 내가 하자가 있는 물건도, 까탈스럽고 분수를 모르는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안다. 다만 몇 번의 연애가 잘 되지 않은 시간이 있었고, 일이 너무 바쁘거나 재미있어서 새로운 사람 만날 시간이 없던 시기가 있었고, 결혼을 하고 싶어서 열심히 소개팅을 나갔지만 번번이 상대와 가치관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맞지 않았던 때가 있었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와 이제 결혼하지 않은 채로도 잘 살아가고 있음을. 나만이 나는 나의 길고 다채로운 역사 속에서 나는 남의 입으로 함부로 요약될 수 없는 사람이며, 미안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이상으로 행복하다. 

-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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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이 보이는 1호선 안이었다. 한창 책에 빠져 있었다. 신도림까지 가야 하는데, 구로까지만 운행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니 다음역인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내리시라고. 벚꽃이 한창 피어나던 계절이었는데, 날이 흐렸다. 가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모두 한 곳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역사 밖으로 벚꽃나무가 있었는데, 꽃이 흐린 날씨에도 눈이 부셨다. 좋은 책을 읽고 있었는데 좋은 풍경이 나타나니 마구 설레였다.


   이 책은 다들 요가가 좋다는데 한번 해볼까 하고 산 책이다. 샀지만 제목이며 표지가 영 끌리지 않아 책장에 그냥 두었는데 어느날 마음이 가서 꺼내 읽기 시작했다. 정유정 작가와 히말라야에도 함께 갔던 김혜나 작가의 책인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20대 때에 요가를 알게 되고, 배우게 되고, 심취하게 된 이야기이다. 그렇게 소원했던 소설가가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몸과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고 잘 다스리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책을 시작하면서 다짐하다. 최대한 있었던 일만 쓰자. 과장하지 말자. 그런 그녀의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인상깊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녀는 당시에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종일 일을 하는 터라 글을 쓸 시간이 부족했다. 시간을 아끼고자 요가 지도자 과정에 도전한다. 그런데 이 지도자 과정이라는 게 그 전에 수련만 할 때랑은 많이 달랐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무척 힘이 들고 고되었다. 어느 날, 포기하고 싶어졌다. 특강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그대로 요가매트를 접고 도망쳐버렸다. 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가버렸다. 학원에 이제 다시는 가지 말자 결심했다. 그러다 마음을 바꾼다. 지금까지 포기를 많이 해왔는데, 이번만은 그러지 말자고. 한번 끝까지 가보자고. 두 눈을 꾹 감고 다시 시작해보자고. 그렇게 다음 수업에 참석하고, 계속계속 수련해나간다. 그러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고, 지옥 같았던 마음이 괜찮아지게 된다. 지도자 과정도 무사히 이수하고, 요가 선생님이 된다. 그것으로 해피엔딩, 끝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포기를 넘어선 순간을 맛본다. 그것은 내게 부족한 것. 그동안 나의 많은 포기들이 주마등같이 지나갔고, 나도 김혜나 작가처럼 그런 순간을 맛보자고 결심했다. 언젠가 기필코.


   책의 마지막, 그녀는 계속해서 수련을 한다. 처음에는 괴상한 줄 알았지만 실은 내공이 무척 깊은 원장님이 있는 수련원을 발견한 덕분이었다. 새벽요가수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현미로 죽을 만든다. 서두르지 않고. 밥을 하면서는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한다. 반찬은 하나. 그 전보다 적게 먹고, 오래 움직인다. 자신의 몸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이런 결말이 정말 좋았다. 







   너무 많은 것을 쓰지 말자. 공연히 멋을 부리며 내가 경험하지도 않은 것들을 쓰지 말자. 화려한 문장이나 상상력에 의존해 쓰지 말자. 내가 모르는 것 또한 절대로 쓰지 말자. 내 가슴으로 느낀 것, 내 눈으로 본 것, 내 머리로 생각한 것들을 담담하게 쓰자, 라고 결심한 채 한 편, 두 편 이야기를 써 나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내 존재의 비루함과 나약함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요가와 글쓰기를 끝내 놓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7쪽


   그날, 마쓰야아사나(물고기자세)를 할 때에 보았던 세계는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앞에 선연하다. 그것은 추상적으로 느낀 어렴풋한 관념이 아니라 실재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의 삶은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갔다. 소설에 기대어 소설만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소설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을 만들어 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였다. 글을 쓰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등단이라는 것은 하면 좋지만 하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의 마음 상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좋은 글을 쓰기보다 정말 좋은 인간이 먼저 되고 싶었다. 글이 아닌, 소설이 아닌, 나 자신을, 존재 그 자체를 잘 써 나가고 싶은 것이었다. 

- 82쪽


   그러자 곧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작가가 되겠다거나 책을 내겠다는 등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 자꾸만 글을 쓰게 됐다. 이렇게 쓰는 글들을 더 이상 공모전에 응모핮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니 어쩐 일인지 글쓰기가 정말 편하고 즐겁게 다가왔다.

- 84쪽


   글쓰기는... 이런 거구나. 이렇게 자유롭고, 기쁘고, 행복한 것이었구나. 마치 꽃과 같이 피어오르는 것, 새와 같이 날아오르는 것, 축포와도 같이 터져 오르는 것이었다. 글은, 이렇게 써야 했다. 등단을 하기 위해, 작가가 되기 위해, 책을 내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글쓰기가 정말 좋아서 쓰는 것이어야 했다. 그동안 나는 작가로서의 화려한 명성, 그에 따른 부상 등에 눈이 멀어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라며 나 자신을 속인 채로 살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가 만든 테두리에 갇혀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해 항상 숨 막혀 했다. 그 거짓된 욕망과 집착, 좌절과 절망의 세계를 넘어 나에게로 돌아온 글쓰기는 이토록이나 기꺼운 것이었다. 

- 85~86쪽


   사바아사나, 송장자세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나니 매일 밤잠을 자고 다음날 다시 일어나는 행위가 즐거워졌다. 어제의 힘들고 고단했던 '나', 일에 치여 아프고 괴로웠던 '나',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았던 '나'는 모두 죽어 없어지고, 지금 이렇게 다시 태어나 새 생명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매일 저녁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가도 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떠올라 밝게 빛나는 태양처럼 나는 매일매일 태어나고 있었다. 못나고 비루한 '나'는 매일 밤 죽어 없어지고, 새롭게 태어난 '나'로 매일 아침을 시작하는 것. 소멸과 부활의 과정을 통해 새 생명을 받은 나의 오늘이 반짝 빛났다. 매일 매일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해 주는 신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기도를 드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나아가기로 한다. 

- 124~124쪽


   요가 학원에서 홀로 짐을 싸서 나왔다가 다시 수련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을 이후 내 사고는 점점 긍정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힘들기만 하던 수련도 차차 적응이 되어 가고, 근력 중심의 힘겨운 요가 아사나도 척척 해내게 되자 자신감도 한층 업그레이드. 강도 높은 수련을 통해 지구력도 보다 크게 늘어나 있었다. 아직 체중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지만 몸의 라인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허리 통증과 두통이 사라졌다는 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역시 하면 되는구나... 이대로 계속 꾸준히만 하면 나는 정말 건강해지겠구나, 라는 확신이 내 안에 가득 차올랐다. 

- 125쪽


   요가를 하면서부터 나는 신기하리만치 기도를 많이 하게 되었고, 많은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예전에 나는 세상이 나를 전혀 받아 주지 않으며 멀리하고 있다는 생각에 항상 좌절하고 절망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들이 다 나를 향해 열려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는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나에 대한 태도를 바꾼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대한 태도를 바꾸자 비로소 문이 열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소설에 대한 열망으로 오로지 소설만을 바라보는 동안 세상에 대해서는 문을 꽁꽁 걸어 잠근 채 살아왔던 것. 소설에 대한 과도한 열망과 집착을 내려놓고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가 보니 세상은 결코 나를 미워하거나 멀리하지 않는 것이었다. 세상은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향해 열려 있었다. 다만 내가 먼저 세상에 문을 열고 나아가지 못하고 있던 것 뿐이었다.

- 135~136쪽


   죄송합니다. 그동안 이토록이나 큰 미래를 미처 알지 못하고 자꾸만 현실을 원망하고 절망하기만 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직도 많이 어리고 부족하지만, 더 노력하겠습니다. 저에게 삶을 주셔서, 꿈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한 뒤에야 자리에 누워 잠들 수 있었다.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은은한 꽃 향기가 퍼져 들어와 내 안으로 스르륵 스며들었다. 

- 138쪽


   '선생'이란, 이런 직업이구나, 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사람들 앞에 서서 자기가 아는 바를 드러내고 내세우며 가르치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발밑에서 그들을 섬기고 보살피는 직업이었다. 자기 자신을 한껏 낮춘 자세로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이가 바로 '선생'이었다. 

- 241쪽


   오 년 전 다시 요가 강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내 삶은 정말이지 눈부시게 변화되어 갔다. 아무리 많은 교육을 받고 경력을 쌓아도 쉽게 얻기 힘든 일자리 들이 저절로 나를 찾아오는 경우가 무척 많았다. 새로운 요가 학원에서 저녁 수업을 맡게 된 것을 시작으로 일 년 사이에 여러 기업체 및 학교, 문화센터, 공공 기관 등으로 강의를 하러 나가는 요가 강사가 되어 있었다. 칠 년 전 처음 요가 지도자 과정에 등록해 수련을 시작하던 때만 해도 결코 상상할 수 없던 미래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노상 걱정하던 생계와 창작, 집필, 건강의 문제들이 어느 순간 다 해결되어 있음을...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이것들은 그 문제에 매달려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기를 쓰고 애를 태워서 해결한 것이 아니라, 그저 소금이 물에 녹듯... 자연히 녹아 없어져 버렸다. 그것들이 해결되던 순간에는 해결되어 진 것 자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나를 뒤돌아보니 이미 다 해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247~248쪽



1호선 안에서 책을 읽으며 들은 모과의 추천 명상 음악. 그 순간, 글과 음악이 딱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EKSJ4Lu6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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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순례길에 침대와 식사를 제공하는 <스페인 하숙>이 시작되었다. 재미나게 보기 시작했는데, 마침 S가 이 책을 주고 갔다. 순례길을 걸은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다. 순례길 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꽤 읽었는데 또 읽어도 새롭고 흥미롭다. 똑같은 길이라고 해도 그 길을 걷는 사람과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이번에는 십년 전에 걸은 길을 십년이 지난 뒤에야 정리한 이새보미야 씨의 여정이다. 대학교 3학년 때 2학기 등록금 낼 돈으로 무작정 비행기표를 예매한 젊은 순례자는 잘도 걷는다. 그 긴 길을 별로 힘들어하지 않고 잘 걷는다. 부상만 없었다면 더 잘 걸었을 거다. <스페인 하숙>의 첫번째 하숙생이 유해진에게 그랬다. 힘든 현실을 뒤로 하고 이곳에 왔는데 매일매일 걷고 걷고 또 걷다보면 고민이 해결되거나 하진 않고, 그냥 고민 자체를 잊게 된다고. 그냥 매일을 걷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고. 새보미야 씨도 그랬다. 그 길 끝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지만, 조금 달라진 내가 있었다. 그것으로 인생 자체가 달라지거나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십년 동안 품은 이야기가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으니 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그렇게 완성된 책을 이렇게 열심히 읽은 독자가 있고. 언젠가 나도 걸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장을 넘겼다. 걷기 욕구가 마구마구 생기는 책. 일기를 열심히 쓰고, 필름 사진을 열심히 찍어둔 탓이겠지만 십년이 지났는데도 십년 전의 일을 풀어내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면 시간이 꽤 지났다고 해도 그것을 풀어내는 것에 주저하지 말자는 교훈도 얻었다. 



   이날의 일은 카미노에서 겪은 최초의 후회였다. 같이 걷고 싶은 친구를 만났음에도, 일정 안에 가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쳐버린 일 말이다. 나는 이후로도 한참을 더 걷고 나서야 비로소 '걸어야한다'가 아닌 '걷는다'를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다른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걷는다는 건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 43쪽


   종교가 없는 나는, 신이 위대한 건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은 너무도 특별해서, 엄청난 효과를 내곤 한다. 신이 있다면 그건 어떤 길이나 어떤 규칙 그 자체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길을 걸어오며 켜켜이 쌓인 순례자들의 발걸음, 규칙을 세우고 그것을 지키려 노력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 47쪽


  대부분의 구간을 혼자 걸었다. 이따금 자전거를 탄 순례자들이 지나가며 인사를 건넸다. 혼자 걷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카미노에 오기 전 기대한 것과 달리 혼자 걷는 길은 심오한 고민이나 깨달음과는 영 멀다. 대부분 언제쯤 휴식할지, 다음 마을은 얼마나 가야 나올지, 남은 식재료를 가늠하며 슈퍼마켓에선 무엇을 살지, 화장실은 언제쯤 쓸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걷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나의 남은 대학생활이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생각했고, 한국에 돌아간 후 영어 공부를 하거나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장 발 앞의 돌부리를 피하는 일, 당장의 잠자리와 먹거리를 생각하는 일, 바로 지금 여기의 일이다. 이것이 카미노다. 

- 56-57쪽


   나의 카미노는 아직 스마트폰이 없는 시대였다. 애초에 아예 휴대폰조차 들고 가지 않았다. 굳이 필요가 없으니까.

  스마트폰이 있는 카미노를 생각하면 아주 생경하다. 구글맵이 있는 카미노, 맛집을 검색하는 카미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소식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카미노, 침대에 누워 화면을 보는 카미노...

  앞서 말한, 짝사랑했던 친구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카미노 사진을 보여주었다. 폰으로 찍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 친구 앞에서 대부분 멍청이처럼 굴었지만 그중에서도 카미노에 대해 얘기했던 날이 가장 못났던 것 같다. 

   나는 가을에, 그 친구는 봄에 카미노를 걸었다. 나는 거의 혼자였고, 그 친구는 시작 무렵부터 뭉친 크루가 있었다. 나는 나보다 오래된 필름카메라 한 대를, 그 친구는 스마트폰을 갖고 걸었다. 나와 그의 차이는 우리가 각자 걸었던 카미노만큼이나 달라서, 그가 나를 좋아할 일은 영원히 없을 것만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70쪽


   이탈리아인 부부 호스피탈레로는 친절하고, 무엇보다 이곳의 분의기가 정말 멋지다. 일기장에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흘러나오는 라디오, 비스듬하고 높은 지붕,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체스판, 피아노, 계단... 다락에 깔린 매트리스가 오늘의 잠자리인 것도, 지붕창을 통해 하늘이 보이는 것도 낭만적이다. 

- 74쪽


   토산토스는 따뜻하고 아주 아늑하다. 호스피탈레로들은 장난스럽고 유쾌하다. 생각해보면 어떤 장소를 아름답게 하는 건 공간 자체보다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들에겐 내가 스쳐지나가는 많은 순례자 중 한 명이겠지만, 내겐 그들이 너무나 특별하고, 그래서 이곳도 몹시 특별한 것이다. 

- 79


   이제 조금 익숙해졌는지 기상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아침엔 몹시 행복해서, 거대한 전나무 숲 사이 자갈길을 걸으며 연신 노래를 불렀다. 미묘하게 음치박치인 나의 노래는 다른 순례자들을 퍽 즐겁게 해주었다. 

- 81쪽


   故최진실의 뉴스를 들었을 때 주변엔 다른 나라의 순례자들도 몇 있었지만, 이 소식의 무게를 제대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뿐이었다. 최진실이 죽었다. 아주머니가 손으로 눈물을 닦았던 순간은 내 카미노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장면 중 하나다. 

-85쪽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알베르게는 너무너무 추워서, 새벽 6시도 훨씬 되기 전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침대 속에 있어도 어차피 추우니, 차라리 일찍 걸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강 짐을 꾸려 문을 나섰는데- 하늘에 별이 너무 많았다! 마치 바다처럼. 이렇게 별이 많은 하늘은 열 살 무렵 시골의 이모할머니 댁 앞에서 야영했던 밤 이후 처음이었다. 하늘은 너무 넓고, 깊고, 까맸다. 엄청나게 깊은 바다 끝 어딘가 같았다. 나는 그 광경에 압도되어, 알베르게의 문을 등지고 몇 번이나 출발하려고 시도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겐 심해 공포증이 있는 모양이다. 한 발 내딛는 순간 다른 세계로 훅 빠져들어 그대로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수십 분 동안 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두 명의 순례자가 나왔다. 스페인 중년 부부였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만 어쨌든 그들은 내가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았고, 하늘이 바다 같다는 것도 이해했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손을 잡고 걸었다. 잠시 후 별은 빛을 잃고, 천천히 동이 텄다. 하늘 좋아하세요? 정말 멋지네요! 고맙습니다. 

- 86쪽


   길을 잃고 잠시 헤맬 때 양떼를 치던 아저씨가 다가와 지도를 보더니 길을 알려주었다. 조세프는 프랑스어로, 양치기 아저씨는 스페인어로 말했는데 대화가 통했다. 남부 프랑스의 말과 비슷하단다. 국경이 닿아 있는 세상은 이렇구나. 금을 건넌다고 전혀 새로운 언어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걸을 때 바뀌는 풍경처럼 사람들의 말도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 89쪽


   이를 닦다 별똥별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일기장을 펼쳐놓고 아무렇게나 끄적이다가 그냥 두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칠흑 같은 밤이라고 생각했지만 창밖에 별이 보인다. 색색거리는 다른 순례자들의 숨소리가 평소보다 더 크게 닿는다. 평화롭고, 깊이 침잠하는 기분. 이 어둠에는 따뜻한 온도가 있는 것 같다. 멋지고 귀중한 시간이다. 

- 93쪽


   생각해 보니 나는 카스트로헤리스에서 이테로 데 라 베가까지의 풍경을 알지 못한다. 어두컴컴하게 비가 쏟아졌기 때문에 그냥 끝없는 폐허를 걷는 것만 같았다. 카미노는 수많은 우연의 연속이구나. 어떤 곳, 어떤 시간, 어떤 날씨, 어떤 컨디션. 그 모든 가능성이 만나 이루어진 순간에 내가 있다. 다시 이 부근을 걷는다면, 그때는 날이 맑아질 때까지 기다려 아주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 

- 97쪽


   독일에서 온 한 순례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너무 애석하다. 이 젊은 청년은 독일에 있는 자기 집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왔다. 피곤에 찌들고 옷과 신발은 낡았으며 몸은 말랐다. 벌써 두 달을 걸었다고 했다. 2,000km도 넘는 거리다. 그는 말했다. 이 길만이 카미노는 아니라고. 그의 순례길은 지난여름 현관문에서 시작되었다. 아니, 산티아고에 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말을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내 순례길이 생장피드포르에서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았을 때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순례자의 그림을 본 순간 처음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112쪽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

   포르투갈 길의 수도 리스본에서 출발하는 길. 해안마을 포르투Porto를 지나며 대서양 해안을 끼고 걷는 아름다운 길로, 카미노 루트 중 두 번째로 순례자가 많다고 한다. 약 630km

- 113쪽


   정확히 말하면 발렌틴은 순례자라고 할 수 없었다. 그의 목적지는 산티아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발렌틴이 진짜 순례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질문이 뭔지도 알지 못하는데, 발렌틴은 답의 영역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못내 부러웠다. 

- 135쪽


   고양이들과 함께 벽난로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카미노에서 세 번째로 맞는 비 내리는 날이다. 곁에선 나무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고 있고, 내가 글씨 쓰는 소리를 빼면 정적- 카미노에서 많은 것을 경험한다. 정적, 바람, 지평선, 일출과 일몰, 밤하늘, 비, 완전한 홀로 있음 등등. 그리고 따뜻함도! 내 생각엔 카미노가 천국이 아닐까 싶다. 카미노에 오기 전 수하물 분실로 파리에 먼저 들른 건 천운이었다. 카미노를 걷고 나서 파리를 관광했다면 별로 좋지 않았을 테니까.

- 142-143쪽


   나는 세르조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고 생각한다. 서쪽을 향해 해를 등지고 걸었던 길과 동쪽을 향해 해를 온몸으로 마주하며 걷는 길의 풍경은 전혀 다를 것이므로. 그것을 어떻게 똑같은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목적지에 당도했다고 해서 길이 끝나는 것은 아님을, 그 이후에도, 이미 걸었던 길 위에서도 새로이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있음을. 

- 151쪽


   차도의 옆으로 이어진 완만한 길이었다. 차는 거의 없었는데, 이따금 지나가더라도 걷는 순례자를 배려해 천천히 지나가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은 마을들을 지났다. 날은 맑고, 길을 고요하며, 나는 혼자 걷고 있었다. 

   세상은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가득 차 있다. 

- 167-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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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from 서재를쌓다 2019. 3. 24. 21:09



(...) 나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 34~35쪽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삶의 원칙, 즉 우리의 불행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배웠다. 그러고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게 되었다. 첫 번째 고백을 듣는 사람들은 우리의 연인들이다. 근무지 밖에서 만날 때, 처음엔 사이공 거리에서, 다음에는 정기 여객선에서, 기차에서, 그 후에는 아무 곳에서나, 우리는 속내 이야기를 무한정 풀어 놓는다. 

- 75쪽



    스무 살 때 내게 하루키 소설 읽는 순서를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 생애 첫 하루키 책으로 어떤 책을 골랐는데, 그것보다 다른 책을 읽는 게 더 좋다고 추천해줬다. 그는 하루키의 열혈 팬이었다. 작가의 작품을 읽는 데 스무 살 적 그 사람처럼 순서가 있다고 생각하는 주의가 아니지만,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을 읽으면서, 그 전에 읽었던 <이게 다예요> 생각이 났다. <이게 다예요>는 나의 첫 뒤라스 책이었는데, 대부분의 글귀들이 마음 깊이 와닿지 않았다. 그저 책에 여백이 많아서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연인>을 읽을 수 있었던 건, 제임스 설터 때문이다. <소설을 쓰고 싶다면>에 이런 문장들이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는 보고 듣고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을 읽고 있었을 때 내가 프랑스령 인도 차이나에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대로를 보았고, 흰옷 입은 사람들과 중국인 거리를 보았습니다. 나는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를 알고 있고, 엘렌 라고넬의 믿을 수 없는 알몸을 알고 있고, 애처로운 연인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과거에 있었던 일이지만 동시에 이 글을 쓴 여자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어요. 그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쓴 작품입니다. 그것은 고백적인 글이지만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지요. 하지만 나는 그걸 믿었어요. 그것은 나의 세계사의 일부가 되었지요." (11~12쪽) 통영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프랑스령 베트남의 무더위 속에 있었다. 설터의 말처럼 정말 그랬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면 2019년 한국의 풍경이 펼쳐졌지만, 다시 고개를 숙이면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 시절 동남아 더위가 느껴졌다. 뒤라스는 어머니와 오빠가 세상을 모두 떠난 뒤에야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비로소. 


   <연인>을 읽은 뒤에 마치 예정이라도 되어 있었던 것처럼 경향신문에 뒤라스의 생애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글 쓰는 여성을 다루는 연재글이었다.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거기에 <연인>에도 나왔던 어머니의 투자실패 이야기, 무능하고 폭력적인 큰 오빠 이야기가 있었다. 기사의 제목에 뒤라스의 생애가 함축되어 있었다. "가난.모친의 멸시 극복한 작가, 문학은 결코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뒤라스가 자신과 달리 멋지게 살게 되면 자신이 너무 초라해질까봐, 그렇게 언젠가 자신을 홀연히 떠나버릴까봐 두려워했다고 한다. 나는 이 부분이 이해가 안 가기도 했지만, 어느 면에서 이해가 되었다. 어머니는 약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를 떠난 그녀가 평생 글을 써 온 이야기가 그 기사에 짧게 함축되어 있었다. 고작 작품 한 권 더 읽고, 그녀를 다룬 기사 한 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다시 <이게 다예요>를 읽는다면, 그때와 다르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다예요>는 유서와도 같은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말년에 서른다섯살 연하의 남자와 십오년을 함께 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어머니와는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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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티비 프로그램 중에 <방구석 1열>이 있다. 방구석처럼 꾸며놓은 세트장에 앉아 영화를 소개해주고,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프로그램. 나는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인데, 밤이 오지 않는 어떤 밤에는 이미 봤던 회인데도 그냥 틀어놓고 소리만 듣다 잠들기도 했다. <스포트라이트>라는 영화가 있다. 가톨릭 신부들의 아동성추행 사건을 파헤치는 보스턴 글로브 취재팀의 이야기인데, 나는 이 영화가 참 좋았다. 무료 영화일 때 여러번 봤다. 묵묵히 자신이 맡은 바를 취재해가는 팀원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안정이 되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다룬 회에 임필성 감독이 나와 이 영화를 참 좋아해서 여러 번 보았다는 말에 격한 공감이 됐다. 얼마 전에는 <빌리 엘리어트> 편을 봤는데, 역시 참 좋았다. 영화도 좋고, 그 영화를 가운데 두고 나누는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좋고. 제일 기억에 남는 대화는 빌리가 천신만고 끝에 로얄발레학교 면접을 보고, 합격 불합격 여부가 담긴 통지서를 받아든 장면의 이야기였다. 빌리는 우편물을 받아들고 자기방으로 들어간다. 혼자 조용히 보기 위해서. 가족들은 기다린다. 시간이 충분히 지났는데도 기척이 없자 문을 열어본다. 빌리가 의자에 푹 파묻혀 울고 있다. 가족들은 불합격한 줄 알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데, 빌리가 잠시 흐느끼다가 합격했다고 말을 한다. 이 장면을 두고 빌리는 이런 성격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기쁨이 왔을 때 주체하지 못하고 바로 배출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 기쁨을 보고, 느끼고, 내 속에서 충분히 체화한 뒤에 발설하는 스타일. 그런 시간이 꼭 필요한 스타일. 나는 이 책 또한 그러한 사람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최혜진의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이 책에서 제일 좋은 부분은 책의 시작에 있는 '작가의 말'이다. '작가의 말'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좋았다. 두근두근 설레이는 마음으로 이 책을 첫 페이지로 안내해주었다. 늘 (지금도) 북유럽으로의 여행을 꿈꿨는데, 잘한 일인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북유럽은 생각했던 것만큼 춥고 (추운 것 좋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일상의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최혜진 작가는 오직 그림을 보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데, 내게도 작가의 그림같은 여행의 동기이자 목적이 있었으면 좋겠다.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며 그것을 찾아갈 예정. 묘지를 가는 것 또한 좋았는데, 바르셀로나에서 두 번의 묘지를 방문했던 기억이 특별하고 묘해서 계속 생각이 난다. 정말 좋았던 구절이 있었는데, 책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찾을 수가 없네. 결론은 아무래도 이 작가를 계속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것.서둘러 표현하지 않는, 속이 꽉- 찬 빌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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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의 중심부에 제대로 도착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 있다. 먼 곳을 보기 위해 떠나서 가장 가까운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 이런 여행은 자국을 남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지 않고 오히려 선명해져서, 결국 한 시를 닫고 새로운 시기를 여는 경계석이 된다. 

- 9쪽


   "너는 이 세상에 너랑 나 단둘밖에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거든."

   집중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머지 세상이 신기루처럼 스르륵 사라지고 대화하는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온기와 교감으로 조그마한 소행성을 만드는 신비를 경험할 수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할 때도 몰입감을 빼놓을 수 없다. 처음부터 글이 술술 써지면 정말 좋겠지만 책상에 앉기까지 마음에서 온갖 번뇌가 인다. 쓰기 전에는 늘 괴롭다. 도망가고 싶다. 여차저차 겨우 한 줄을 쓰고 나면 앞의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불러오고, 그 문장이 또 다음 문장을 불러온다. 점점 호출 속도가 빨라지는데 어느 순간이 되면 시간도 잊고, 어제 일어난 쪽팔린 사건도 잊고, 내일 보내줘야 할 기획안 걱정도 잊고, 잘 썼네 못 썼네 잘잘못을 따지는 내면의 비평가도 잊는다. 세상이 점점 하얗게 바뀌면서 오로지 글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순간에, 나는 행복하다. 나머지는 다 괴로운데 이것 하나가 좋아서, 어쨌든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닌다. 

- 42-43쪽


   크로그가 밀려난 사람들의 고통에 깊이 이입했기 때문에 나 역시 작품을 보며 빵을 향해 간절히 손 뻗는 군중 속 한 명의 자리로 건너간다. 그들 속에 있어본다. 상상한다. 이윽고 질문한다. 내 주변에는 이런 일이 없을까? 눈에 띄지 말 것을 강요받는 사람들이 정말로 없을까? 나도 혹시 제복 입은 사내처럼 모른 척, 안 보이는 척 태연하게 거리 두기를 하고 있진 않은가?

- 53쪽


   망상증에 시달렸던 천재 화가 P.S. 크뢰위에르가 그린 작품 중에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두 여성이 스카켄 해변을 걷고 있는 뒷모습을 포착한 '스카겐 해변의 여름 저녁'이란 작품이 있다. 왼쪽 여성은 아나 안셰르, 오른쪽 여성은 마리 크뢰위에르다. 관습과 싸우며 예술가로 살기를 선택했던 여자와 사랑에 모든 걸 걸기로 선택했던 여자. 이들의 녹록지 않았던 생애가 하늘거리는 하얀 드레스 자락에 포개져 알 수 없는 비애감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또한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지가 그의 생애의 범위를 결정한다고. 우리는 결국 믿은 만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 59쪽


   189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북구와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들' 전시에서 노르웨이 화가 크리스티안 크로그는 이렇게 말했다. "북구와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들'이라는 전시 제목은 잘못됐습니다. 오직 프랑스 화가들만이 진정한 의미의 인상주의 화가라 할 수 있어요. 북유럽 화가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걸 배웠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 오직 색채와 명암만 볼 용기를 배워오지 않았습니다." 북유럽 화가들은 망막에 남은 인상보다 마음에 느껴지는 감정 표현에 더 관심이 많았다. 또한 보편성을 늘 염두에 두면서 주관성을 추구한 덕분에 일부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처럼 차가운 관념의 덫에 걸리지 않았다. 

- 70쪽


   어안이 벙벙했다. 그저 끌림이 이끄는 대로 발을 똈을 뿐인데 온 세계가 기다렸다는 듯 반응하며 문을 벌컥 열어주는 느낌. 힘껏 사랑하려 노력할 때 벌어지는 고요한 기적을 스카겐은 내게 선물해주었다. 

- 81쪽


  목소리를 단단히 여미고 H에게 일러줬다. 

  "밥을 잘 챙겨 먹는 것도 자기를 돌보는 거예요. 입으로 들어가는 건 좋은 걸로 골라 먹어요. 라면 같은 걸로 때우지 말고."

   "마음 서성대면서 새벽까지 깨어 있지 말고, 잠을 자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도 자기를 돌보는 거예요."

   "기분이 우울하고 마음이 힘들 때 집에 혼자 있지 말고, 나가서 햇빛이라도 쬐어주세요."

   "술에 기대지 마시고요."

   "어떤 감정을 너무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지 마세요. 에이, 그냥 잊어버릴래, 하고 털어내려 노력하는 것. 그것도 나를 돌보는 거고요."

   "외로우면 외롭다고 징징거리기도 해야 해요."

   이런 사소한 방법도 몰라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질문이라고 내뱉을 수밖에 없는 H가, 그리고 그 시절의 내가 안쓰러워 지침을 늘어놓다가 목울대가 점점 뻐근해졌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연거푸 와인을 마셨다. 싸리비로 누가 쓸어대는 것처럼 마음이 서걱서걱했다. 밤이 지나고 다시 돌아온 아침. 신선한 야채를 갈아 마셨다. 밤사이 굳은 근육 곳곳을 공들여 풀었다. 공원에 나가 걸었다. 심호흡을 길게 했다. 

- 96-97쪽


  당연하게 누리던 생, 믿어 의심치 않았던 현실을 기어코 다르게 보게 만들었다. 종국엔 우리가 떠나고 남을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편지꽂이를 가득 채운 안부를 주고받는 살가운 마음, 닮고 싶어 안달했던 작가의 책과 글, 별것 아닌 작디작은 수집품과 추억, 오래 기억하고 싶은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

   이 삶의 증거들이 정말로 부질없다고 누군가 말해버린다면, 서운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 106-107쪽


  아카데미 시절에 이미 채색과 삽화 등 각종 아르바이트로 본인은 물론 부모님 생활비까지 해결할 정도로 테크닉이 탁월했지만, 졸업 후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여느 초년생처럼 칼 라르손 역시 좀처럼 작가로서 자기 확신을 갖지 못했다. 일명 '화가들의 마을'로 불리는 프랑스 바르비종에서 2년이나 머물며 작업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나지 않아 좌절한 시기도 있었다. 작은 일에 쉽게 흔들리고, 생각이 많고,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자학에 빠지고, 수줍음 많이 타던 그는, 그림 공부를 위해 떠났던 프랑스 파리 근교 그레 쉬르 루앙에서 스웨덴 출신 화가 지망생 카린 베르게를 만나고 정서적 안정을 느낀다. 카린과의 결혼 후 비로고 수채화에 정착해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며 미술계의 이목을 처음으로 받게 되었고, 1883년에는 파리 살롱전에서 입상하고, 1884년에 첫 아이 수사네가 태어난다. 

- 144쪽


    어떤 여행지를 꿈꾸게 되는 계기는 사실 사소할 때가 많다. 잡지를 뒤적이다 본 한 장의 사진, 인터넷 서핑을 하다 발견한 몇몇 구절, 지인에게 들은 짧은 정보에서도 동경은 싹튼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뭉크의 그림 100여 장을 몰아서 보았다. 누군가의 내밀한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몰래 훔쳐보는 느낌에 볼이 붉어졌다. 이렇게 날것까지 기록해놓다니, 정말 뭉크에게 예술은 스스로를 위한 일기였구나, 일기! 일기에 대해서라면 나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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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던 25년 전부터 쭉 이 양철 쌀통을 사용해 왔다. 쌀 씻기 바로 전, 소쿠리를 한 손에 들고 쌀통 뚜껑을 비켜 연다. 계량컵을 쌀 안에 푹 찔러 넣고 평평하게 깍아 두 번, 세 번. 그러고 나서 수도꼭지를 비틀어 쌀을 석석 씻는다. 십 년을 하루같이 당연하다는 듯 반복할 수 있었던 건 새삼스럽지만 행복한 일이다. (...)

   새 쌀 한 포대를 사 와서 포대를 끌어안고 입을 벌려 쌀을 쌀통에 쏴아 붓는 때가 무척 좋다. 쌀이 양철에 부딪히며 마른 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또 그렇게 좋다. 내 스물다섯 해, 수백 번을 반복해 온 소소한 집안일이지만, 그때마다 내 살림의 대들보를 확인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0-11쪽)


   녹은 긴 세월 쇠가 품어 기른 드라마다. 그곳에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있고, 녹은 다름 아닌 그들의 이야기꾼이 된다. 무쇠 표면 위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시간을 아로새겨 온 확실한 강인함과 늠름함이 있기에 우리들은 그곳에서 흔들림 없는 미를 발견하고 감탄하는 것이리라. (42쪽)


   흙과 불과 손기술. 내가 마음을 빼앗긴 아시아의 그릇은 모두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돼 탄생한 하나의 아름다운 형상이다. 미묘한 일그러짐이 자아내는 태평함과 너글너글함. 자연유나 요변에서 오는 재미. 투박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품격까지 느껴지니 지루하지 않다. 그래서 이 그릇을 우리집 식탁에 올리고 싶다. 매일 쓰고 싶다. (154쪽)


   차도 취한다.  

   술에 취하면 머리가 붕 뜨지만, 차에 취하면 두 발이 땅바닥에서 10센티미터 정도 뜬다. 머리는 맑고 또렷한데, 몸이 붕붕 부유한다. 게다가 차에 취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 도둑을 만나게 된다. 술을 마시면 시간 속에 흠뻑 젖어 무겁게 침전해 가는데, 차를 마시면 시간이 쌩 하고 질주한다. 차 마시면서 정신없이 이야기하다가 기껏 해야 한 시간 남짓 됐으려나 생각해 시계를 보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어 기겁을 한다. 그것도 좋은 차일수록, 무엇 때문인지 중국차일수록 그렇다. (213쪽)


   중국차는 팽팽하고 과격하게 취하지만, 일본차는 느릿느릿 취한다. 차를 홀짝이다 보면 분위기가 누그러지고, 기분이 붕 뜨면서 평온해진다. 오후의 따뜻한 양지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마메가시와 아라레를 좋아하는 접시에 적당히 골라 담으며 우리 꼭 할머니 같지 않냐며 마구 보고 씨익 웃는다. 

   예를 들면, 옻칠한 작은 쟁반 위에 오래된 세토 접시를 얹고 다과를 골라 담는다. 혼자 마시든 누군가와 함께 마시든 마찬가지로. 그 작은 놀이가 자아내는 긴장이 티타임을 특별하게 해준다. 

   뜨거운 차를 홀짝이는 느긋한 오후는 꽤나 즐겁다. 그날 밤 차예관에 필적할 만큼. (216쪽)


   이단 도시락을 포개고, 흐릿한 하늘에 지리멘 보자기를 골라 꽉 졸라맸다. 자전거로 옮기면 달그락거릴 것 같아 꾸러미를 그러안고 서둘러 꽃집으로 향했다. 참 당연한 마음이었다. (220쪽)


   편지는 늘 깊은 밤에 쓴다. 엽서나 컴퓨터라면 낮에도 쓸 수 있지만, 공들여 고른 봉투와 편지지에 끄적이고 싶은 날의 편지는 역시나 밤이다. 

   업무용 책상이 아니라 거실 테이블로 향한다. 창문을 크게 열어젖히고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정원의 나무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조금씩 만년필 끝에 마음이 모아진다. 다 쓰면 그것으로 끝이다. 탈고하거나 다시 쓰지 않는다. 종이에 잉크가 스미는 그 순간, 한 글자 한 글자에 생명이 피어나고, 언어가 우뚝 일어선다. 이는 '쓴다'는 행위가 주는 원초적 쾌감임이 분명하다. (235쪽)




    히라마쓰 요코의 새 책. 이제 나는 이 분의 부지런한 독자가 되어 새 책이 출간되었다고 하면 무조건 사본다. 이번에는 어떤 소소하고도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기대하면서. 이번 책은 부엌에 있는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제목 그대로 히라마쓰 요코의 손때가 잔뜩 묻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다시 제일 첫장으로 돌아가 목차를 펼치면 그녀의 부엌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쏴아 쌀 붓는 소리가 나는 넉넉한 양철 쌀통, 가족 모두 길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던, 그리하여 아주 깊은 물맛을 갖게 된 무쇠 주전자, 요리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 각국의 냄비들, 우리나라의 돌솥까지. 정말 탐났던 베트남에서 산 모기향로는 연기가 피어나는 모습이 근사했다. 마루가 있는 옛날집에 모기향이 솔솔 피어오르는 여름밤 한 켠을 상상해봤다. 꽤 비싼 고등어초밥을 교토에서 사와 초밥이 담겨 있던 나무통에 버터를 담아 쓰기도 한다.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사온 차통은 손때가 묻을수록 근사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의 다음 여행에서는 꼭 생활용품을 사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념품 말고, 생활용품. 자그마한 그릇이나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향신료, 편안한 수저 같은 것들. 그것들이 내 손때를 타며 그 곳의 추억에 이 곳의 추억을 더해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어떤 것으로 깊어질 수 있게. 봄이가 파리에서 사와 선물해준 저 파란 접시처럼. 저 파란 접시를 꺼낼 때면 봄이가 경험한, 나는 가보지 못해 그저 상상하는, 그 여름 파리가 생각난다. 


* 손때 : 1. 오랜 세월을 두고 매만져서 길이든 흔적. ~가 타다. 2. 손을 대어 건드리거나 매만져서 생긴 때. 손끝.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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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설터의 소설은 한 권도 읽지 못했다. 무척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주 지루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누군가의 평, 혹은 보도자료를 보고 <아메리칸 급행열차>를 사두었었는데, 아직까지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늘 이런식이다) <소설을 쓰고 싶다면>도 SNS에서 누군가 추천을 했는데, 그 글이 좋아서 샀다. 새해 첫 책으로 뭘 읽을까 고민하다 왠지 이 책이 좋을 것 같았다. 새해 첫 책이니까 끝까지 읽었다. 포스트잇도 열여덟 군데나 붙어두었다. 성실하고 섬세하고 꼼꼼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존 케이시라는 작가가 쓴 '나가며'는 앞의 내용과 중복이기도 했고 지루했다.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 책은 제임스 설터가 소설과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연과 <파리리뷰> 인터뷰로 구성되었다.



(...) 결국 나는 프랑스로 갔습니다. 프랑스는 언제나 작가가 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곳이고, 그곳에서 나는 언제나 글을 쓸 수 있었으니까요. 모든 작가가 프랑스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사실 난 프랑스는 지나치게 많이 사랑받아왔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 그런 생각이 하나의 정서로 자리 잡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 아무튼 나는 프랑스에서는 늘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23쪽)


   그는 문장 하나하나를 저울질했습니다. 각각의 단어를 고르고 퇴짜 놓고 다시 골랐습니다. 그는 "산문에서 좋은 문장은 시에서의 좋은 행처럼 리드미컬하고 듣기 좋고 바꿀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했지요. 플로베르는 자신이 '고함치는 집'이라고 명명한 그의 집에서 자신이 쓴 글의 리듬과 매끄러움을 판단하기 위해 문장과 단락을 큰 소리로 읽어대곤 했어요. 또한 매주 의식을 치르듯 자신이 쓴 글을 친구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었답니다. (26쪽)


   나는 그때까지 장편소설을 한 편도 쓰지 못했습니다. 쓰려고 노력은 해보았지만 말입니다. 단편은 쓴 게 있었습니다. 결국 나는 훨씬 긴 소설을 써서 친한 친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친구와 친구의 약혼녀가 그 소설을 읽고 나서 내게 그걸 찢어버리라고 충고해주더군요. 자기 자신에 대한 글을 쓰고서 그걸로 조롱받는 일은 유쾌한 일이 아니지요. 물론 나는 나에 관해 쓴 게 아닌 척했지만 매 페이지에서 내 얘기라는 걸 알 수 있었을 거예요. (35쪽)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첫 단락을 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첫 단락을 쓰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고 했지만, 일단 첫 단락을 쓰고 나면 나머지는 쉽다고 했습니다. 마르케스는 문체를, 어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시작하여 그걸 전달할까 하는 것이었어요. 첫 단락은 작품의 나머지 부분은 어떠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본보기였습니다. (43쪽)


   (...) 처음에는 어디에서든 글을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많은 시간을 글쓰기에 사용해야 하고, 생활 대신 글쓰기를 해야 합니다. 뭔가를 얻어내는 것은 아주 소소한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건 의미 있는 거죠. 세상에 확립된 가치가 있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은 많은 것을 바쳤지만 얻은 것은 별것 없습니다. 거의 아무 대가 없이 그 모든 것을 한 것입니다. 저스틴이 처음엔 면 셔츠 하나를 얻으려 성관계를 갖듯이 말입니다. (44쪽)


   여러분은 자기 인생의 영웅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만의 것이고 흔히 첫 번째 소설의 기초가 됩니다. 그 어떤 이야기도 자신의 이야기만큼 잘 쓸 수 있는 것은 없지요. 필립 로스가 쓴 첫 번째 책은 <굿바이, 콜럼버스>인데, 그것은 자신의 얘기와 젊은 시절 뉴저지에 사는 여자와 나누었던 사랑 얘기를 쓴 것입니다. 그의 삶에서 그 부분은 이야기고, 그 이야기의 뒤얽힌 관계가 플롯을 이루는 거랍니다. (45쪽)


   존 오하라는 의사의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늘 자신이 빈곤층 출신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는 프린스턴이나 예일 대학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해, 자기는 그런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해 매우 민감했어요. 그는 신문기자였고, 그 역시 드라이저처럼 인간 행동에 대한 냉철한 지식에 걸맞은 면밀한 관찰 습관을 키워나갔습니다. 글솜씨와 이야기에 대한 감각 또한 신문기자 생활의 장점이지요. 오하라의 단편소설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보통 등장인물을 알기 위해 또는 묘사하기 위해 그리 많은 수고를 하지 않습니다. 그의 방법은 다음과 같아요. 그는 타자기에 종이 한 장을 넣고 두 사람의 얼굴을 생각하죠. 기차 안에서 그 두 사람을 보았는데 그들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일 수 있습니다. 오하라는 그 두 사람을 식당에 함께 넣거나 비행기에 태우기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합니다. 처음 한두 페이지에서는 잡담을 하는데, 그러면 그 인물들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죠. 전부 대화를 통해서입니다. 인물들이 서로 번갈아가면서 얘기를 할 때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오하라가 얼마나 깊이 자신의 인물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어 하는가 하는 문제일 뿐입니다. 그는 대화를 탁월하게 구사하는 작가였고 모욕적인 언동과 미묘한 사회적 차이 - 아무개가 사회계층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하는 것 - 를 능숙하게 다루는 작가였으며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작가였지요. (47-48쪽)


   셀린은 작가는 자신이 쓴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짜로 얻을 수는 없다는 거죠. "작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지어낸 이야기는 아무 가치도 없다. 자신이 대가를 지불한 이야기만이 중요한 것이다. 대가를 지불하면 그제야 그 이야기를 변형할 권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허무주의도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혼자일 때가 오게 된다." 셀린은 자기한테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기 오래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모든 게 끝장에 이른 때가 올 수 있는 법이다. 그건 세상의 끝이다. 슬픔조차, 자신의 커다란 슬픔조차 더 이상 자신한테 응답하지 않는다. 당신은 왔던 길을 되짚어가서 사람들 사이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들이 누구든 상관없다."

   작가들은 교유하고 제안함으로써 각자의 재능이 서로를 자극하여 서로 이익을 얻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것은 작가들의 우정에 의해서, 또는 작가 그룹이 서로 가까이 지내는 데서 형성된 느낌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화가들에게 더 들어맞는 얘기일 테지만 아무튼 셀린의 경우에는 맞지 않는 얘기입니다. 셀린은 아프리카 여행도 혼자 떠났고 전쟁 후에는 미국 여행도 혼자 했으며 삶의 마지막 나날도 혼자였으니까요. (54쪽)


   그는 책을 읽고 극장에 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88쪽)


   나는 모든 작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규칙적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렇게 쓰고 있어요. 날마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답니다. 글을 다시 계속 써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한 줄 또는 몇 마디 단어를 끄집어낼 수 있다면 좀 더 잘 진행됩니다. 때때로 잘 풀리는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 풀리는 날이 더 많아요. 나는 내가 쓴 글에 실망할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때도 글을 씁니다. 그러나 글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쓰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지 - 정확히 누구라고 규정하진 않겠지만 아마 한 여자일 것입니다 - 모든 사람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벨이 말한 것처럼 지적인 한 여자일 거예요.

   나는 펜을 쥐고 손으로 씁니다. 그런 다음 전동 타자기로 타이핑을 하지요. 손쉽게 노트북컴퓨터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나는 전동 타자기의 소리를, 타자기의 키가 두드려대는 약간 불규칙한 소리를 좋아니다. 난 두 손가락으로 자판을 친답니다. (91쪽)


   나는 다시 한 번 설터가 진행하고 있는 작업에 커다란 흥미를 느끼며 이사크 바벨의 사진을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항변한다. "바라되 열광하지 않는 것이 작가로서 적합한 상태다." (100쪽)


- 글을 써나가면서 수정을 하는 겁니까?

상황에 따라 달라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러지 않아요. 나는 큰 부분들을 한꺼번에 쓰고 그걸 묵혀두지요. 글은 오래 놔두지 않으면 위험해요. 그리고 정말 좋은 거라면 한달쯤 치워두어야 하는 거예요. (101쪽)


- 당신의 문체는 대단히 독특하고 아름답고 확고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런 문체를 가지게 되었는지요?

나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해요. 글쓰기에 감동을 받지요. 그 이상으로 분석하지는 못해요. (102-103쪽)


- 특별히 당신에게 영향을 미친 다른 프랑스 작가들이 있습니까?

(....) 어떤 좋은 작품을 읽으면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영화관엘 가는 것도, 심지어 신문을 읽는 것조차 재미없게 생각되죠. 읽고 있는 책이 그 무엇보다도 더 매혹적이니까요. 셀린은 그런 자질이 있는 작가랍니다. (114-115쪽)


- 조종사 생활에서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걸 배운 게 있나요?

조종사로 복무한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것은 신발 가게에서 종일토록 일한 것과 다르지 않아요. 문학 이력에서 그 기간은 제해야 해요. (123쪽)


- 당신은 30대 중반에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늦게 시작한 거죠?

30대 중반에 책을 내기 시작한 거예요. 글은 그 전부터 썼죠. (124쪽)


- <아메리칸 급행열차>에 나오는 단편들은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쓴 작품들입니다. 그렇지만 그 작품들에는 일관된 관심과 구성이 있어요. 단편소설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지요?

단편은 무엇보다도 흡인력이 있어야 해요. 우리가 지금 문학의 모닥불 주위에 앉아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어둠 속에서 여러 목소리들이 들려와요. 그것들이 얘기를 하기 시작해요. 어떤 목소리를 들으면 우리의 마음은 산만해지고 졸려요. 그러나 어떤 목소리들에는 귀를 쫑긋 세우고 한 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이게 되죠. 첫 줄, 첫 문장, 첫 문단, 그 모든 게 우리를 끌어들여야 해요. 나아가 기억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의미가 있어야 해요. 그저 뭔가를 썼다고 해서 정당화되지는 않는답니다. 독자를 놀라게 할 필요는 없어요.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은 놀라게 하는 것을 경멸하지요. 극적일 필요도 없지요. 피터 테일러의 <내슈빌의 아내>는 극적인 요소가 없답니다. 단편이 해야 할 일은 어떤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어느 정도 완전한 느낌을 주어야 해요. (142-143쪽)



* 소설(小說) : 1.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 (분량에 따라 단편.중편.장편으로 나눔) 2. '소설책'의 준말.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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