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쌓다'에 해당되는 글 341건

  1.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2 2014.01.16
  2. 그 사람만의 진실 2014.01.16
  3. 사월의 미, 칠월의 솔 2014.01.11
  4. 고독한 미식가 2013.12.31
  5. 기네스 2013.12.25
  6. 요시다 슈이치 4 2013.12.09
  7. 야만적인 앨리스씨 2013.11.30
  8. 윤대녕 소설, 대설주의보 4 2013.09.25
  9.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요 - 마스다 미리 6 2013.09.15
  10. 위화 - 제7일 6 2013.09.14

 

 

    사실 표지에 반했다.  잘 지은 밥에 명란젓 한 쪽. 진짜 맛있어 보인다. 제목도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재미나게 읽었다. 여행 에세이를 읽고 싶은데, 읽다 보면 실망스러운 책이 많았다. 사진만 너무 많거나, 감성적이기만 한 책. 뭔가 정보와 감성이 섞인 여행책을 읽고 싶었는데, 이 책은 재미났다. 일본 규슈의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쓴 책인데, 그 음식들의 역사를 함께 살펴본다. 이 음식이 어찌하여 일본 땅에 뿌리내려 사랑을 받고 있는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그 음식의 맛집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추천사에서 요리사 박찬일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일본행 비행기를 버스처럼 타고 다니느라 집 몇 채를 날려 먹었다는 소문도, 그를 앞세우고 가면 오직 손으로 모든 걸 말하는 쇼쿠닌들을 친구 삼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는 관심 없다." 그리고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은 "가서 먹어봤다며 글과 사진의 흔적을 남기기는 쉽다. 그곳에 왜 그 음식이 있는지 의미망을 엮는 것은 어렵다. 박상현은 일본을 들낙거리며 이 어려운 일을 해치웠다."고 말한다.

 

    우리집 밥솥이 고장났다. 어디선가 밥솥을 청소하는 방법을 본 뒤에 한밤 중에 밥솥을 청소한다고 솥을 씻고 고무밴드도 꺼내서 씻었다. 그런데 고무밴드를 다시 끼는게 쉽지 않았다. 낑낑대며 겨우 끼었는데 그 뒤로 밥맛이 달라졌다. 김도 제대로 나지 않고, 밥을 하고 그냥 하루 놔두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영화 <좋지 아니한가> 생각이 났다. 그 영화에서 밥솥이 고장났는데도 새로 사지 않고 밥을 할 때마다 밥솥을 아빠의 오래된 허리벨트로 꽁꽁 싸맨다. 시집 안 간 노처녀 이모 김혜수는 하나 좀 사지 지지리 궁상이라고 궁시렁거린다. 식구들 모두가 불만이다. 엄마만 밥솥을 고수한다. 그 밥솥 생각이 났다. 막내는 우리 밥솥이 정말 오래된 밥솥이라고 했다. 그럴만도 하다는 뜻이다. 나는 뭔가 밴드를 잘못 껴서 그런거 같은데, 다시 제대로 낄 엄두가 안난다. 오래되긴 했다. 그런데 오래된 기준은 뭘까. 아무튼 요즘 집에서 한 밥은 그리 맛있지가 않다.

 

   이 책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중에서 제일 흥미있었던 부분은 쌀밥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인들은 밥을 정말 중요시한단다. 돈까스며 다른 외국의 음식들이 일본에서는 모조리 밥과 함께 하는 '반찬' 이 된 것은 이런 이유란다. 좋은 원산지의 쌀을 잘 지어 갓 먹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런 부분을 읽을 때면 우리집 밥솥 생각이 나고, 빨리 밥솥을 새로 사야 하는데 생각이 들고, 잘 지은 밥을 갓 먹는 상상을 했다. 책의 표지처럼 좋은 명란젓 한 쪽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 할 수 있을 것 같은 맛난 밥. 그런 밥 한 공기를 생각했다.

 

   "하지만 2개월 동안 먹어 치웠던 수많음 음식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그래서 지금도 수시로 생각나는 음식은 '밥'이다. 음식 좀 아는 체 폼 잡으려고, 혹은 대단히 형이상적인 기준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의도가 아니다. 정말로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하얀 쌀밥이다. 아마도 일본 좀 다녀 본 분이라면 대부분 동의하실 거다.

    일본의 밥이 맛있다는 사실이야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는 길어야 일주일 정도에 불과한 단기여행이었기에 맛있는 집만 엄선해서 다녔고, 그러니 밥이 맛있는 거야 당연하다 여겼다. 하지만 일상적인 혹은 대중적인 수준에서까지 그러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한국인의 입장에서 솔직히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저희나 우리나 밥이 밥상의 중심인데, 이 밥에서 밀리다는 것은 크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단히 안타깝게도 다년간의 일본 여행과 두 달간의 체류 경험을 종합해 봤을 때, 일본의 밥은 확실히 우리보다 한 수 위에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 그렇다. 오래전부터 왜 그럴까 고민도 하고 확인도 해 봤다. 쌀이 다른가? 물이 다른가? 밥 짓는 기구나 솜씨가 좋은가?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봤다."

-p.318-319

 

    정말 황교익 추천사의 말처럼 이 책을 읽고 나니 우리가 먹는 우리 음식에도 여러 의문이 생겼다. 며칠 전에 부대찌개가 너무 먹고 싶어 놀부 부대찌개 매장에서 포장을 했다. 포장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생각했다. 그래 부대찌개도 미군이 들어와서 의정부에 어쩌고 저쩌고. 이런저런 역사가 있는데. 황교익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책을 읽는 내내 '한국 음식은...' 하는 물음이 돋았다. 박상현이 의도한 것이다. 책 안에서 그와 나는 일본음식을 먹으며 한국음식 이야기를 나눈다. 한국음식의 과거와 미래가 이 안에 있다." 이렇게 정갈하고 맛깔스런 표지에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운 '우리' 음식 이야기도 나왔으면 좋겠다. 그 책을 읽고나면 뭐를 먹던 간에 예사롭지 않겠지. 그러저나 밥솥! 너무 비싼 거 아닙니까? 우리의 흥청망청 생활비로는 엄두가 안난다!

 

   "입속에 들어간 밥은, 무르익은 봄날 벚꽃이 휘날리듯 산산이 흩어졌다. 막무가내로 흩어진 밥알은 형태가 온전하고 자기주장도 강해 꼭꼭 씹을 수밖에 없었다. 꼭꼭 씹으니 밥맛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향기롭고 달았다. 옅은 소금간이 밥에 생기를 더했다. 밥맛이 절정에 이를 즈음 이번에는 반찬이 가세했다. 밥과 반찬은 섞이면 섞일수록 맛이 깊어졌다. 그럴수록 턱을 더욱 부지런히 움직였다. 음식을 씹는다는 행위가 이토록 즐겁다는 사실을 대체 얼마 만에 느껴 보는 건가 싶었다. 오니기리 한 입, 바지락된장국 한 모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허기나 달랠 요량이었으나 배가 부르도록 오니기리를 위장에 채워 넣었다."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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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만의 진실

from 서재를쌓다 2014. 1. 16. 19:10

 

 

  

    어제 나는 홍대 벨로주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친구가 김형경 작가와의 만남에 당첨되었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서 갔다. 시작 시간에 거의 촉박해 도착했더니 앞자리가 비었다며 앞자리에 앉겠냐고 했다. 친구가 신나했다. 친구는 김형경을 정말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부담스러웠지만 앞자리 제일 중앙자리에 앉았다. 사실 그냥 그런 거였다. 친구가 가자고 해서 갔고, 앞자리에 앉자고 해서 앉은 것. 나는 끝나고 뭘 먹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시원한 생맥주를 먹는 게 좋겠지. 뜨끈한 국물도 좋을텐데. 이런 생각 뿐이었다. 제일 앞자리의 중앙 자리가 부담스러웠다. 7시 40분에 시작한 행사는 9시 30분 정도에 끝났다. 두 시간 여 진행된 행사. 임경선이 함께 나왔고, 초대된 여러 독자들의 고민들을 듣고 두 작가가 이야기를 나눴다. 충고도 해주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마지막 질문은 내 옆에 앉은 남자였다. 자기는 얼마 전에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너무 힘들어 작가님이 말씀하신대로 음주와 섹스로 이 시간들을 견디고 있다고 했다. 김형경 작가가 말했다. 원나잇인가요? 남자가 무어라 말했고, 작가가 다시 말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충고는,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제일 좋은 건 그냥 그 슬픔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슬픈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조용히 슬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게 가장 현명한 치유방법이라고 했다. 옆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9시 30분 즈음에 내가 든 생각은 오늘 여기에, 벨로주에 잘 왔고, 앞자리에 앉아서 다행이었다는 것.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이야기 중에 내가 보이기도 했고, 그래서 작가들이 이야기해주는 답변에 고개가 끄덕여지곤 했다.

 

   어느 순간에는 종이를 꺼내고 펜을 꺼내 메모를 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그 사람만의 진실'이 있다는 것.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고 말한 이유는 가만히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면 이해되지 않을 일은 없다는 것. 그러니 그 사람만의 사정이 있고, 그 사람만의 진실이 있다는 거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니까.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박해감'이라는 단어도 있었다. 그 누구도 친구가, 가족이 나를 공격하고 깔보려고 그 말을 한 건 아닐 거라는 거. 그걸 기분 나쁘게 듣는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부터 해야 한다는 거다. 상대가 왜곡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박해감을 내면에서 정확하게 점검해야 진정한 극복이라는 말. 어떤 사람은 만나고, 어떤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 할지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는 말에는, 당연하지만 '시간과 열정을 낭비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소모적인' 사람과의 관계는 끊는다고 했다. 그랬다.

 

   김형경 작가는 신뢰가 가는 목소리 톤을 지녔다. 하는 이야기들도 모두 수긍이 갔다. 그녀가 말하는 대로만 살 수 있다면 나는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없고, 화나는 일도 없고, 나를 자책하는 일도 없겠지만, 인간이므로 또 실수하고, 실망하고, 화를 낼 거다. 그러면 어렵겠지만 조용히 나를 돌아보고 어제의 말들을 떠올려 봐야지. 그럴 수 밖에 없다. 작가는 빙 둘러 이야기하는 걸 참지 못하고, 요점을 정확하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답을 할 때도 다정한 목소리로 직접적으로 이야기했다. 친구도 질문을 하나 했다. 친구에게는 친한 친구에게 하듯이 남자를 만나라고 했다. 지금처럼 행동하면 남자도 매력없어 한다 했다. 친구에게 문제가 있다고 했다. 모두가 우리의 문제다. 바꾸어야 한다고 했고, 지금도 충분히 이쁘다고 했다. 친구는 더더욱 김형경 작가에게 빠졌다. '그 사람만의 진실'을 마음에 새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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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1월의 우리, 김연수'라는 연두색 싸인이 있는 책. 다른 곳에서 먼저 읽었던 소설은 읽지 않았다. 깊은 밤 기린의 말,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 면목동에 살 때 파주 회사까지 1시간 여를 전철을 타야 했다. 출근할 때 1시간, 퇴근할 때 1시간. 그 시간이 아까워 열심히 책을 읽었다. 물론 잠이 모자라 졸고,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하는 시간들이 더 많긴 했지만 그래도 책을 많이 읽었다. 책을 읽는 장소로 전철이 최고였다. 집중이 최고로 잘됐다. 응암동으로 이사를 하고 전철을 타는 시간이 10여 분으로 줄었다. 단편 하나를 읽기에도 짧은 시간이고, 금새 합정역에 도착하니 책 읽는 시간이 줄었다. 요즘 책이 잘 읽히지도 않고. 그래서 그런가. 내가 변한건가. 잘 읽히고 이야기가 궁금해 금새 페이지를 넘겼지만, 마음에 오래 남지는 않았다. 내가 변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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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식가

from 서재를쌓다 2013. 12. 31. 00:01

 

 

   100자평을 살펴보다 깨달았다. 만화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은 전혀 고독해보이지 않았다는 걸. 그러네. 그런데 드라마의 고로 상은 고독해보였나? 흠. 고로 상도 그닥 고독해보이지 않았구나. 그냥 혼자 먹는다는 것 뿐. '고독한'은 말 뿐인 고독함이구나. 혼자, 라는 의미일 뿐.

 

   만화 <고독한 미식가>는 드라마보다 건조하다. 건조하다, 는 표현이 맞나. 현실적이라고 해야 하나. 드라마는 어느 회나 해피엔딩이다. 늘 맛있고, 늘 만족스럽고, 늘 과식하고. 만화는 드라마와 다르게 좀더 실제 같다. 불친절한 서비스가 있기도 하고, 그것에 화를 내기도 한다. 맛이 그저 그런 음식도 등장하고, 주인공은 맛이 없으면 별로라고 한다. (물론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거지만.) 오사카에서 도쿄사람이란 이유로 어울리지 못하고 단답형의 대답만 하기도 한다.

 

   드라마와 만화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 (책 뒤에 있는 대담을 보니 많이 먹기 위해 그렇게 설정한 것도 있다고.)  매번 터무니 없이 많이 주문한다는 것. 그걸 또 다 먹어치운다는 것. 맛있게 잘 먹는다는 것 정도다. 그리고 다른 점. 만화 주인공은 근육질의 남자라는 것. 한여름의 야구장에서 카레를 먹다 너무 더워서 웃통을 벗는데, 와와. 근육이 장난 아니다. 그런데 이건 드라마 쪽이 훨씬 현실적인 것 같다. 가만, 아니지. 고로 상도 비현실적이네. 그렇게 많이 먹는데, 그렇게 마르다니.

 

   만화의 배경 그림에 쏟은 정성이 장난이 아닌데, 만화가의 약력을 보니 <열네 살>을 그린 사람이었다! 오- 아무튼 만화를 보고 나니 드라마가 땡긴다. 못 본 에피소드 찾아 봐줘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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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from 서재를쌓다 2013. 12. 25. 01:04

 

 

 

    매거진 B라고. 특정 브랜드를 월별 주제로 잡는 잡지다. 브랜드 광고도 아니고, 잡지에 광고도 없다. 동생이 커피 브랜드 주제인 잡지를 사길래, 나는 맥주 브랜드 주제를 샀다. 기네스. 이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이유는 크기가 작고 얇은데 정가가 만삼천원인 이유도 있겠고, 내가 좋아하는 맥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재밌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급기야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이기까지 했다. 언젠가 한 잔의 완벽한 기네스를 마시기 위해 아일랜드에 가고 싶어졌고, 그보다 먼저 이태원에 가서 피시앤칩스를 시켜놓고 기네스 생맥을 찐-하게 마시고 싶어졌다.

 

 

   아래는 내가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인 문장들.

 

- 기네스는 고유의 맥주 맛을 어디서나 유지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과학기술을 동원한 각종 기구를 개발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제품 내부에서 질소 가스를 분출시키는 위젯과 초음파를 이용해 거품층을 발생시키는 시저가 있다. p.36

 

- 다카유키 기하라 / 우체국 직원 / 46세

소지품 중 05. 젖은 종이 위에도 쓸 수 있는 톰보의 에어프레소 펜. p.48

 

- 01. 02. 네잎클로버는 아일랜드의 국화다. p. 65

 

- 대부분 바텐더가 탭에서 기네스를 따르는 모습을 보면 퀄리티를 짐작할 수 있죠. 통상 맥주를 5분의 3 정도 잔에 따른 뒤, 잠시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돌아와 마저 잔을 채우는 것이 정석이에요. p.71-72

 

-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기네스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호주와 남아프리카까지 수출을 확장했고, 국내시장 점유율도 400% 가까이 성장했다. 수출하는 나라 중에서는 적도를 두 번이나 건너야 닿을 수 있는 곳도 있어 기네스에서는 맥주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월드 트래블러'라는 직책까지 만들었다. 월드 트래블러는 기네스의 제품과 함께 항해하며 퀄리티, 가격, 에이전트 등은 물론 현지의 문화와 음주 관습까지 더블린 본사에 보고했다. 결국 기네스의 이름은 남극 탐험대의 기록부터 아시아 파미르 산맥의 상점 장부까지 다양한 현장에 등장했다. p.96

 

- 메이드 오브 모어의 지면 광고는 얼핏 기네스 맥주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의 인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공했는지를 그린 세밀화다. 검은 맥주 부분에 기타를 배우고 있는 모습을 그린 후 흰 거품 부분에는 무대에 선 록 스타를 표현하는 식. '메이드 오브 모어' 캠페인은 '착실하고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기네스의 전통적 기업 윤리를 반영하는 동시에 이러한 메시지를 완전히 새로운 감각으로 포장하고 있다.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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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

from 서재를쌓다 2013. 12. 9. 23:24

 

   오늘도 엄청난 시간에 퇴근을 했다. 야근을 하고 있으면, 그것도 긴 야근을 하고 있으면 나 지금 뭐하는 거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일하고 집에 가서 씻고 자고 다시 출근한다. 어떤 날은 칼퇴를 하지만, 어떤 날은 야근을 하고, 주말이면 피곤이 쌓이고.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내내 사무실에 틀어 박혀 계절 가는 것도 제대로 못 보고, 첫 눈이 펑펑 오는 것도 못 봤다. 오늘 야근을 하면서 주말에 만난 한 남자 생각을 했다. 그 남자는 자신이 선택한 그 직업을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일을 하는 게 즐겁다고 했다. 그 일을 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68년 생.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말랐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친절했다. 이번엔 북유럽 풍의 작은 컵받침을 선물했는데, 그 받침을 쓰려나. 커피를 맛있게 담은 단단한 머그컵 위에 올려지면 좋을텐데. 자신의 집, 자신의 방에서만 글을 쓰는 그의 책상 위에 올려지면 좋을텐데. 그는 수영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한다. 어제 헌책방에 들렀는데 그의 책이 두 권 있었다. 한 권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거라 샀고, 한 권은 아직 못 읽은 그의 데뷔작이라 샀다. 각각 삼천 오백원. 곡예사 언니는 <요노스케 이야기>에도 사인을 받았다. 제일 좋아하는 책이라고 말하면서. 어떤 아이는 좋아하는 구절에 붙인 포스트잇이 가득한 책을 내밀어 그를 감동시켰고, 내 앞에 있던 어떤 남자는 그가 자신의 이름을 쓰는 걸 동영상으로 찍었다. (나도 따라서 찍었는데 각도가 영) 어떤 아이는 손글씨 편지를 내밀었다. 커다란 종이가방 선물도 있었다. 대부분 여자였는데, 남자도 몇 명 있었다. 혼자 온 학생임이 분명한 그 아이는 사인을 받으면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요노스케 이야기>가 없다. 분명히 샀는데. 알라딘 주문 내역에도 있는데. 팔지도 않았는데. 어디로 간 걸까.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거라고 했는데. 영화는 개봉하면 좋겠다. 어쨌든 결론은, 야근이 싫어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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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

from 서재를쌓다 2013. 11. 30. 01:58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많은 아버지가 있고, 많은 어머니가 있다. 많은 아들이 있고, 많은 형제가 있다. 이 소설은 그 중 한 명의 아버지, 한 명의 어머니, 두 명의 아들, 한 형제의 이야기. '씨발'년인 어머니와 폭력을 방관하는 아버지를 부모로 둔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의 이야기다.

 

   처음엔 뭔가 싶었다. 잘 읽히지 않고 자주 책장이 덮혔다. 이런 식의 이야기 진행이 책장을 빠르게 넘기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황정은이 말하는 당신,이 누굴까 생각했다. 짧은 소설인데, 속도가 더뎠다. 그러다 마지막 장이 가까워지고, 마침내 책을 덮게 되었을 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마음에 남았다.

 

   황정은을 직접 본 적이 있다. 홍대에서 했던 작가와의 만남이었는데, 그 때 황정은이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대화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잘 쓰고 싶어 오래 고심하고 쓴다고. 이번 작품에도 대화가 인상적이다. 부모의 폭력에 무자비하게 노출된 앨리시어와 동생의 대화인데, 이 대화가 거듭될수록 슬퍼진다. 특히 동생이 너무 가엾어진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는 슬픔에 가까운 것이다.

 

    소설은 고요하게 시작했다 고요하게 끝난다. 뭔가 커다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한 건 주인공의 '행동'이 변화되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한차례의 냄새나는 하수가 동네를 휩쓸고 그렇게 소설은 끝난다. 앨리시어가 뭔가 행동해야 했어야 했는데. 책을 덮고 바로 든 생각이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황정은의 소설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은 게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

 

(...) 차갑게 식은 몸으로 바닥에 눕는다. 꿈도 없이 짤막한 잠을 자고 새벽녘 정적 속에서 눈을 뜬다. 높다란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곧 날이 밝을 것이다. 앨리시어는 부은 손가락들을 가슴에 올리고 눈을 깜박인다.

눈을 뜨기 직전에 무슨 소리인가를 들었다고 생각한다.

퍽, 하고 눈꺼풀이 벌어지는 소리. 뼛속의 성장판이 끓는 소리. 그 소리와도 같은 소리.

목이 마르다.

p.148-149

 

    인터뷰를 읽었는데, 똑같은 문장으로 끝나는 세 편의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두 편을 완성했는데, 그 중 한 편이 <야만적인 앨리스씨>라고. 쓰다보니 두번째 소설을 같은 문장으로 끝내지 못했다고 한다.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마지막 문장은 이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천천히 올 것이고, 그대와 나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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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동안 나와 함께 한 책. 이번 추석에 이 책과 나의 궁합이 잘 맞았다. <눈의 여행자>를 읽고 눈이 내리는 소설이 좀더 보고 싶어서 읽은 책이다. 소설집인데, 표제작인 '대설주의보'에서 눈이 많이 내린다. 펑펑 내려서 대설주의보까지 내려지고, 강원도의 절에서 여자와 만나기로 했던 남자는 발이 묶인다. 인연이었던 남자와 여자가 긴 세월을 둘러 다시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소설집 중에서 이 소설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특히 마지막 장면.

 

    갤로퍼는 유턴을 한 다음 곧 눈발 속으로 사라졌다. 윤수는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눌러쓰고 주차장을 모로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산문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갈수록 바람이 잦아들어 그다지 추운 느낌은 없었다. 길은 완만했으나 정강이까지 눈이 차올라 걸음이 더뎠다. 손전등을 빌려오지 않았더라면 사위조차 분간하기 어려웠으리라. 윤수는 해란과 백담사로 처음 소풍 왔던 날을 아득히 떠올리고 있었다. 돌아보니 그새 12년 전의 일이었다.

   어디까지 왔을까. 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위에서 윤수는 발을 멈추고 캄캄한 눈 속을 노려보았다. 어디쯤일까. 멀리 솜뭉치 같은 부연 빛이 윤수의 눈에 빨려들어왔다. 벌써 백담사 가까이 온 것은 아닐 텐데. 실눈을 뜨고 재차 노려보니 그 빛은 이쪽을 향해 느리게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이 전조등 불빛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잠시 후였다.

   차가 다가올 때까지 윤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윽고 눈을 잔뜩 뒤집어쓴 알브이 차량이 체인을 쩔렁대며 그의 앞에 다가와 커다란 짐승처럼 멈춰 섰다.

   운전석에는 젊은 스님이 타고 있었다.

   이어 조수석의 문이 열리고 해란이 차에서 내렸다.

- 대설주의보, p.120-121

 

    저 문장으로 소설은 끝이다. 소설은 끝났지만, 해란과 윤수가 만나는 장면이 그려졌다. 두 사람이 눈 내리는 백담사로 들어서는 장면이 그려졌다. 오랫동안 끊어졌던 두 사람이 다시 이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지. 이 소설집의 내용이라고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고,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잊고 살다가, 또 다시 만나고, 헤어지고. 술 마시고, 여행가고, 먹고, 또 마시고.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요즘 세상에 있을까 싶은 정도로 올드한 말투를 구사하고. 한때 윤대녕의 소설이 재미없어지던 때가 있었다. 어떤 소설을 읽은 후였는데, 어떤 소설인지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이번 소설집도 특별히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재밌었다.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푹 빠져서 읽었다.

 

    아, 소설도 소설이지만 해설을 쓴 신형철의 문장도 근사하다. 바로 이 문장. "아름다운 단편소설 한 편을 읽는 일. 시는 너무 짧고 장편소설은 너무 길다. 자기 문장을 갖고 있는 작가의 좋은 단편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시간은 음악처럼 흐르고 풍경은 회화처럼 번져갈 것이다. 다 읽고 나면, 기다린 그 사람이 온다. 윤대녕이면 좋을 것이다." 다 읽고 나면, 그 사람이 온다! 내게도 매년 이른 봄에 찾아가는 온천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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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맥주를 사러 나갔다. Y씨에게 이 책들을 빌렸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처음 세 권의 책을 빌려 읽어서 그런지 마스다 미리 책은 계속 빌려 읽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사지 않고 기다렸다. 이번에 책을 대거 구입한 Y씨가 비닐도 뜯지 않은 이 책들을 빌려줬다. 오후 내내 잠에 취해 있었다. 영화가 보고 싶어서 무료영화를 찾아보다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를 틀어놓고 잠이 들었다. 그 전에는 Y언니가 추천한 <마호로역전번외지> 2회를 보다 중간중간 잠이 들었다. <아빠 어디가> 할 때쯤 잠에서 깨 추석을 앞둔 주말에 이게 뭔가,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들었다. <아빠 어디가>를 보고 마스다 미리 만화를 읽기 시작했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를 읽은 후에 맥주가 땡겼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편의점에 다녀왔다. 요즘 나의 홈메이드 안주는 번데기. 통조림 국물을 다 따라내고 물을 약간 넣어 끓인다. 마늘 다진 것과 청량고추를 넣고.

 

   신기했다. 세 권의 책을 두고 뭐부터 읽을까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싫은 사람>이 제일 괜찮고 격하게 공감이 된다는 얘기를 들어서 일단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를 읽었다. 그 다음으로 <아무래도 싫은 사람>을 읽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제일 기대한 <수짱의 연애>를 읽었다. 나중에 보니 신기하게도 이게 맞는 순서였다. 수짱의 나이순서대로였다. 오, 나 제법이다, 감탄했다. 읽으면서 맥주가 땡겼던 이유는 만화에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와서가 아니었다. 수짱은 맥주를 마시기 보다, 장을 보고, 목욕을 하고, 혼자 먹어도 어색하지 않은 체인점에서 끼니를 때우고, 차를 마신다. 그런데 맥주가 땡겼던 건 수짱이랑 나랑 너무 비슷해서. 일본의 한 만화가가 너무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내가 이렇게 나이 들어가고 있어서. 이렇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 사람이 나 혼자 만이 아니여서. 고맙고도 외로워서, 맥주가 필요했다.

 

    아, 수짱의 연애는 어떻게 되었을까. 너무 설레이게 끝내버렸어. 어떻게 된 건가. 여자친구가 있는 그 남자는 수짱을 계속 만났을까.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서른 일곱의 수짱은? 늘 고향 가고시마의 특산물을 택배로 보내고 전화통화로 결혼은 언제 할거야? 남자친구는 있니? 라고 스트레스를 주던 수짱의 엄마는 어느 날, 조카의 결혼식 때문에 수짱의 집에서 하룻밤 머문다. 수짱의 엄마는 수짱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면 어쩔 수 없지. 그걸로 된 거야. 너도 이제 서른여섯이니까. 슬슬 자신의 감을 믿을 나이가 됐지." 수짱! 응원합니다. 아, 맥주 다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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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 제7일

from 서재를쌓다 2013. 9. 14. 23:32

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푸른숲

 

 

    위화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과거를 가진 작가일까. 이번 신작을 읽으면서 새삼, 그게 궁금해졌다. <허삼관 매혈기> 를 읽고 엉엉 울었었다. 언제 그 책을 읽었는지,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오래 전 기억이라 자세하게 떠오르지 않는데, 그 소설을 읽으면서 엉엉 울었던 기억은 있다. 내겐 <허삼관 매혈기>의 절판된 하얀 표지의 책도 있고, 새로 개정된 빨간 표지의 책도 있다. 같은 내용인데 이 책만은 두 권 다 가지고 있다. 한 권도 처분을 하지 못하겠다. 흰색의 조금은 촌스런 절판된 책에 더 정이 가긴 한다. 처음 읽었던 판본이니까. 그렇게 위화의 책을 만난 뒤로 예전에 썼던 책을 읽기도 했고, 후에 출간된 책도 읽었다. 모든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내가 읽은 그의 모든 책은 애정을 가지고 읽었다. 이번엔 <제7일>. 이승에 대한 이야기이고, 역시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잘 읽힌다. 요즘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책이 잘 안 읽혀서, 출근하면서만 책을 읽고 있는데. 셔틀에서도 내내 읽었다. 금새 읽었다. 나름 곱게 화장을 하고 나왔는데, 출근길에 자꾸 눈물이 나서 혼났다. 그것도 그렁그렁 맺히는 게 아니라 뚝뚝 떨어져서 혼났다. 사실 나는 <허삼관 매혈기> 후 (내가 읽은 기준) 그의 최고의 책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제7일>도 <허삼관 매혈기>보다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건, 위화가 60년생. 우리나라 나이로 54살이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기 전에 위화가 이렇게 나이가 먹은 줄 몰랐다. 그도 내년이면 55살이 되고, 내후년이면 56살이 된다. 그리고 내가 마흔이 코앞이듯 그도 환갑이 코앞이다. 아,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구나. 위화는 어느덧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나이가 되었던 것 같다. 주위에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들도 한 둘, 혹은 더 많이 있었을 것 같다. 저승은 어떤 세상일까 궁금했을 것 같다. 그리고 상상해봤을 것 같다. 매일매일 말도 안되게 일어나고 있는 여러 뉴스에도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어쩌면 세상이, 인간들이 이럴 수가 있나 가슴을 쳤을 것도 같다. 내 생각에는, 이 소설은 그렇게 나온 소설인 것 같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영원한 인연을 다시 찾은 7일간의 이야기'라고 표지에 적혀 있다. 주인공이 있다. 주인공은 기차가 달리는 중에 태어났다. 그의 친어머니는 아이가 나오는 줄도 몰랐다. 그저 배가 아팠고, 다른 용무인 줄 알고 힘을 줬다. 아이는 기차선로에서 태어났다. 기차역에서 근무하는 아버지가 주인공을 발견했다. 그의 나이는 아주 어렸다. 스무살 즈음이었다. 아버지는 아이를 키운다. 젖동냥을 하며 자기 자식처럼 키운다. 아버지에게 한 번, 결혼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 여자는 주인공을 부담스러워 했다. 아버지는 정말 정말 정말 큰 마음을 먹고 아이를 버리기로 한다. 하룻밤 아이를 버린다. 정말 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 아버지는 후회한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닫는다. 세상에. 세상에. 아이를 버린 그곳에 다시 가 아이를 찾는다. 소설은 주인공이 죽은 후 7일간의 이야기이다. 7일 안에, 주인공과 아버지는 재회한다. 저승에서의 재회. 아버지는 삐쩍 마른 해골이고, 아들은 죽음의 여파로 입도 코도 눈도 제 위치에 있지 않지만, 두 사람은 이제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수 있다. 죽음이 이들을 갈라놓을 수 없다.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고, 언제든 손을 맞잡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이 재회했을 때 서글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위화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곳은 기억의 땅, 이해의 땅, 용서의 땅, 위안의 땅, 평등의 땅.

 

    아, 나 정말 이 글을 쓰면서야 위화의 현재 나이를 계산해봤다. 내가 아는 위화의 글은 쉽다. 그가 전하는 메세지도 쉽다. 그런데 그 파장은 깊고 길다. 강하다. 오래 간다. 그가 건강해서 더 많은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려줬음 좋겠다. 나는 분명한 그의 팬. 아버지는 말한다.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조금도 두렵지 않단다. 내가 두려운 건 다시는 너를 못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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