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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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서재를쌓다 2014. 7. 14. 21:54
택시 안이었다. 혹시 인디밴드 음악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그렇다고 하니,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일산에서 1차를 하고 2차를 하러 합정으로 넘어가는 택시 안이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우리가 만나기도 전, 같은 공간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크리스마스 날, 루시드 폴의 공연장에. 그것도 그녀도, 나도 혼자서. 좋아할 것 같다면서 이 만화책을 빌려줬다. 정말 아끼는 만화라면서. 바닷마을 다이어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영화화한다는 뉴스를 보고, 기억이 가물가물해 고민하다가 주문을 했다. 누군가 이 책의 100자평에 "계속 벼르다가 산 만화책들. 안 샀다면 정말 후회했을 것 같다."라고 남긴 걸 보고서 바로 주문했다. 다시 읽는데,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처음 읽는 것만 같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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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서재를쌓다 2014. 6. 11. 22:12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133페이지. 책을 읽기 시작한 날, 퇴근을 하고 그대로 소리없이 집에 들어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고 들어와 가방을 놓고 옷을 갈아 입었다. 화장실 불을 켜고 수도꼭지를 틀어 비누거품을 내 발을 씻었다. 얼굴도 씻었다. 수건으로 닦고 화장실 불을 끄고 화장대 앞으로 가 스킨과 수분크림을 발랐다. 그리고 보조등을 켜고 그대로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때 이 페이지를 만났다. 133페이지. 저 문장들은 오른쪽 제일 아래줄에 있었다. 그 뒤의 문장을 읽으려면 한장을 넘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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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카레, 내일의 빵서재를쌓다 2014. 6. 5. 23:53
이 책에 대한 어떤 바램이 있어서 출간되었다는 걸 안 순간 깜짝 놀랐다. 이렇게 일찍 번역본을 읽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은행나무에 기자라 이즈미의 팬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은 그동안 봐 왔던 기자라 이즈미의 드라마와 비슷했다. 조금은 밋밋하고, 뭔가 여운이 돌고, 어느 순간 마음이 찡해지기도 하다가, 어느 정도의 행복감으로 충만해지는 것. 이 연작소설집에는 죽음이 늘 존재한다. 여자가 있다. 여자는 꽤 괜찮은 남자를 만난다. 남자에게는 은행나무가 있는 집이 있다. 여자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남자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여자는 죽는다. 남자와 남자아이는 은행나무가 있는 집에서 살아간다. 남자아이는 남자어른이 되고, 한 여자를 만난다. 둘은 결혼을 한다. 그러다 한 명의 남자아이도, 한 명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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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서재를쌓다 2014. 6. 4. 17:31
그렇게 해서 추풍령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추풍령을 넘어가면 거기서부터는 충청도가 시작되는데, 내 힘으로, 내 두 다리로 그렇게 먼 곳까지 갔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이었다. 나는 완전히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추풍령휴게소에서 우리는 김밥 같은 걸 사먹고,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다가 죽은 노동자들을 위해 세운 위령탑의 글귀를 읽고, 원숭이와 공작을 구경했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내려가는 길은 직지사 삼거리까지 페달을 한 번도 밟지 않아도 갈 수 있는 상쾌한 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게 되니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이제 가지 못할 곳이 없었다. 서쪽으로는 양천, 남쪽으로는 남면, 동쪽으로는 아천, 북쪽으로는 직지사까지 나는 신나게 쏘다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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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오키나와 여행서재를쌓다 2014. 6. 1. 10:12
오키나와에 있는 것 같았다. 책장을 펼치면. 여행에세이와 가이드북 중 가이드북 성격에 더 가까운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만 가지고 여행을 떠나기엔 부족하지만, 이 책을 참고한다면 좀더 다채로운 오키나와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된 곳들은 오키나와의 카페, 빵집, 공방, 숙소. 카페와 빵집이 압도적으로 많다. 책의 표지도 밝고, 하늘도 밝고, 사진들도 밝고, 사람들의 표정들도 밝다. 소개된 곳의 영업시간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반나절 정도인 경우가 많다. 12:30-18:30 (품절되는 대로 종료, 정기휴일 화.수요일) 12:00-18:00 (영업일 수-목요일) 11:30-18:00 (정기휴일 일.월요일) 14:00-17:00(정기휴일 수.목요일) 11:30-17:30(정기휴일 수.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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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서재를쌓다 2014. 3. 12. 16:45
하루키 편을 읽다가 읽다 만 하루키 소설이 생각났다. 에서 하루키의 인터뷰는 움베르트 에코, 오르한 파묵 다음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인터뷰가 무척 궁금했지만 책의 순서대로 읽기로 했다. 그래야 즐거움이 증폭되니까. 그런데 뭐랄까. 에코와 파묵 다음에 이어진 하루키의 인터뷰는 기대했던 것만큼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존 레이의 글에서처럼, 하루키는 역시나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존 레이는 '가급적 정확한 대답을 찾으려고 오래 뜸을 들이기도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하루키의 담백한 인터뷰를 읽고나자 생각이 났다. 다자키 쓰쿠루의 이야기를 끝내야지 생각했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어떤 이유 때문인지 잘 읽히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잘 읽혔다. 책장도 잘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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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여행서재를쌓다 2014. 2. 12. 21:23
군산에 가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최갑수였다. 어느 토요일, 늦은 아침으로 죽을 사 먹고 들른 커피집에서 보게 된 최갑수 시인의 글 때문이었다. 최갑수 시인은 군산에 가라고 했다. 특별한 일 없이 가을을 쓸쓸히 보냈다면, 철길이 있고 예쁜 창문을 볼 수 있는 군산으로 여행을 떠나라고 했다. 그 글이 좋아서 결국 잡지까지 샀다. 여러 번 읽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군산에 가야지. 군산에 갔고, 철길과 예쁜 창문을 보지 못했지만, 쓸쓸한 기분이 더해져 돌아왔지만, 좋았다. 쓸쓸해서 마음에 남는 군산이었다. 또 어딘가 나를 떠나게 만들어 줄 것만 같아서 산 책이다. . 사실 처음에는 좀 실망했다. 여행지마다 소개하는 글이 너무 짧았다. 한 페이지에서 세 페이지 정도다. 에 실린 긴 글을 기대했던 내게는 너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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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절반은 맛이다서재를쌓다 2014. 2. 5. 22:32
생각해보니 이번 겨울에는 주로 먹는 이야기를 읽었다. 음식 이야기를 읽으면 왜 이렇게 신이 나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트위터에서 '하루키 레시피'를 팔로우했다. 하루키의 작품 속 레시피들을 트윗해주는데, 오늘은 이런 트윗이 올라왔다. "후카에리는 얼그레이를 마시고 토스트에 딸기잼을 발라 먹었다. 그녀는 마치 옷의 주름을 그리는 렘브란트처럼 주의깊게 시간을 들여 토스트에 잼을 발랐다." 의 문장이란다. 먹는 이야기를 쓴 책 뿐만 아니라 먹는 이야기를 하는 영상도 좋아한다. 을 즐겨보는데, 얼마 전에 못생긴 생선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보는 내내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속초에 갔을 때 '도치알탕'이라는 간판을 봤는데, 그저그런 알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야 알탕마니아) 을 보니 보통 알탕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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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린디합을서재를쌓다 2014. 1. 27. 22:48
언니가 그랬다. 손보미 읽어봤니? 내가 아직이라고 했고, 언니가 말했다. 한번 읽어봐. 이상해. 읽어보면 아마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거야. 손보미의 첫 소설집을 읽었다. 그때 언니의 말이 생각났다. 정말 희안하게도, 신기하게도 그때 언니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해서 이상하다는 말.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내 경우에는 좋은 쪽으로 저울의 바늘이 좀 더 많이 가 있다. 동생이 얼굴에 자그마한 혹이 나 수술을 했는데, 평일에 휴가를 내고 병원에 같이 갔다. 동생이 수술을 하는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했다. 아침을 못 먹은 터라 배가 고팠다. 그렇다고 혼자 뭘 먹을 수가 없었다. 수술하는 동생에 대한 배신, 따위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