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편지들

from 서재를쌓다 2013. 9. 14. 22:05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나카무라 요시후미.진 도모노리 지음, 황선종 옮김/더숲

 

 

    새로나온 책 목록을 보다가 발견한 책. <집을, 짓다>의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책이다. <집을, 짓다>의 부제가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돌아가고 싶은, 낭비 없고 간소한 나만의 집을 짓는 것에 대하여'. 이번 책의 부제는 '세계적 건축가와 작은 시골 빵집주인이 나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건축 이야기'.  홋카이도에 '맛카리무라'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거기에 '블랑제리 진'이라는 작은 빵집이 있다. 꾸밈 없는 건강한 빵을 장작에서 구워내어 파는 빵집이다. 블랑제리 진에서 장작에서 빵을 구워내는 진 도모노리가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에게 손편지를 보낸다. '이런 저희 가족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작은 빵집을 부탁드립니다'라고 마무리되는 의뢰서였다. 편지를 받고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감동한다. 손편지를 받아본 적도 오래되었고, 더군다나 설계 의뢰 문의였다.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오랜만에 직접 손으로 쓴 의뢰 편지를 받아서 그런지 가슴속에 등불이 켜진 듯이 따뜻한 기분을 느끼면서 여러 번 되풀이해 읽어보았습니다.' 라는 문장이 있는 답장을 보낸다. 그의 편지는 '맛카리무라에서 뵙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로 끝난다. 이 책은 세계적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와 시골 빵집주인 진 도모노리가 나눈 편지를 엮은 책이다. 부제처럼 따뜻하다.

 

   진 도모노리에게는 아내가 있고, 활달한 아들이 있다. 그들의 빵집이자 그들의 집은, 조립식 패널을 이용해서 지은 집 겸 매장과 장작가마가 설치된 작은 벽돌집과 양철 지붕을 얹은 오래된 창고, 세 건물이다. 진 도모노리가 직접 설치한 장작이 오래되어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고, 새로 설치해야 할 지경이 되자 진 도모노리는 평소에 좋아하던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에게 의뢰를 한다. 진 도모노리는 빵집 주인이지만, 건축책도 자주 보고 관심도 많고, 직접 집을 고치기도 하는 단순한 의뢰자는 아니었다.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그와 편지를 주고 받고, 직접 그의 빵집을 방문하면서 그가 단순한 의뢰자가 아니라는 걸 눈치챈다. 건축에 관심도 많고, 재능도 있다는 걸 알아챈다. 그리고 그의 의견을 존중한다.  진 도모노리가 제안해 다시 설계를 하고, 그는 무릎을 친다. '그 한마디로 진 도모노리 씨는 의뢰인이면서 동시에 공동 설계자로서 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가 있게 되었어요.' 2010년 8월의 편지다.

 

    겨울을 좋아하고, 추운 계절과 추운 날씨와 추위로 인해 발생되는 따듯함에 대한 동경이 있는 나는, 이 편지들에서, 그리고 책에 삽입된 사진들에서 느낄 수 있는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 맛카리무라의 겨울 풍경들을 보면서 마음이 설렜다. 맛카리무라에는 사람 키를 넘을 정도의 눈이 쌓인단다. 그야말로 폭설. 진 도모노리에게 익숙한 이 풍경에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놀랜다. 사람 키를 넘는 눈이라니, 하면서. 이들은 건물을 조금씩 고쳐나간다. 어쩔 수 없이 새로 증축해야 되는 건물에는 이전 건물의 부속품을 떼어내 새 건물의 일부가 되게 해 옛 기억을 계속 이어나간다. 바뀐 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예전의 장작가마 벽돌집이 아주 근사한 유럽풍의 손님방 겸 서재로 바뀐 것. 눈이 많이 내린 저녁에 밖에서 이 작은 집을 찍은 사진이 있는데, 아주 따뜻하다. 창문 너머로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이 보이고 아주 따뜻한 주황색 불빛이 창 너머로 따뜻하게 스며 나오고 있다. 눈이 많이 쌓여 있는데, 정말 따뜻한 사진이다. 그 사진은 188페이지에 있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 186페이지에는 책이 가득하고 따뜻한 소파 겸 침대가 있는 방의 풍경사진이 있는데, 그 밖으로 새하얀 겨울의 홋카이도 풍경이 보인다. 이 사진도 무척 따뜻하게 느껴진다. 밤에 이 집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이 좀더 있는데 사진들이 다 좋다. 사진들에 모두 따뜻한 주황색 불빛들이 있다.

 

  건포도.크랜베리.살구.오렌지.아몬드 등 말린 과일을 듬뿍 넣은 빵, 맛카리무라에서 여름에 채취한 참피나무의 벌꿀을 사용한 벌꿀 빵, 계절 한정의 호밀빵, 1.2킬로그램으로 크게 사각으로 구운 루스티크, 깜빠뉴, 무화과호두 빵, 초콜릿칩을 넣은 부드러운 버터 빵, 에멘탈 치즈를 듬뿍 갈아넣어 만든 치즈 빵, 가마의 뜨거운 열로 바삭하게 굽는 크로아상, 파리에서 빵을 배웠던 가게의 특제품이기도 한 알자스의 전통과자 구겔후프, 파스타에 자주 사용하는 세몰리나 가루를 사용한 빵, 계절에 따라 안에 넣는 크림이 바뀌는 빵. 블랑제리 진에서 파는 빵들이다.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설계 비용의 반을 빵으로 받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진 도모노리는 한 달에 두번씩 택배 상자 가득 향기로운 냄새를 담긴 빵이 보낸다. 진 도모노리는 이렇게 답했다. '그럼, 선생님 말에 못이기는 척하며 빵으로 지불하게요. 이번 달부터 한 달에 두 번씩 블랑제리 진이 나카무리 요시후미 선생님의 사무실이 없어질 때까지 빵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와, 따뜻한 책이다. 따뜻한 사람들이다.

 

   "이곳에는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다운 삶이 있다고 느꼈죠. 욕심을 부려 무리하지 않고 기죽지도 않고, 자신들이 믿는 일과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나가며 만족하는 생활이 있었고, 그 풍요로움과 존귀함을 강하게 느꼈어요."

- 나카무라 요시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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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행자
윤대녕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눈의 여행자>를 꺼내 읽은 건 김연수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 때문이었다. 김연수는 언젠가 꼭 한번은 눈에 고립되고 싶다면서 두 작품을 언급하는데 한 작품이 이제하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이고, 다른 한 작품이 <눈의 여행자>이다. 산문집을 읽고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찾아 읽었다. 그리고 <눈의 여행자>를 꺼냈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이다. 가물가물하지만 소설가가 나왔고, 소설가가 눈 속을 헤매였고, 한 여자가 있었다. 소설가가 눈 속에서 울기도 했다. 그런 이미지만 남아 있었다. 다시 꺼내 읽으니 내가 이 소설을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었던 건, 순전히 눈 때문인 것 같다.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는 소설가는 어느 날 한 통의 소포를 받는다. 일본에서 온 소포 안에는 어린 아이들이 공부하는 숫자놀이 책이 있었다. 열 개의 숫자가 있었고 열 개의 메모가 있었다. 눈을 찾아 이동하는 메모였다. 어디에 왔으며, 어디에 묵었으며, 무엇을 먹었는지를 기록한 메모. 그리고 눈이 얼마만큼 왔는지도 기록했다. 이 메모대로 여행해 달라는 편지였다. 이유는 적혀있지 않았다. 여행을 하게 되면 자신을 언젠가 만나게 될 거라고 보낸 이는 덧붙였다.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는 소설가니까, 에이전시에서는 무조건 가라고 한다. 가서 소설을 완성해 오라고 한다. 모든 경비를 지원해 준다고. 권유가 아니라 강요다. 어쩔 수 없이 소설가는 떠난다. 한 달 전 누군가 눈을 찾아 떠난 도시와 도시를 그대로 이동한다. 되도록이면 같은 방에 묵으려고 하고, 같은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 소설의 마지막, 소설가는 그 메모의 주인을 만나게 된다. 이유도 알게 된다. 왜 자신이 이 눈의 도시들을 떠돌 수 밖에 없었는 지를.

 

    2004년의 나는 이 소설을 어떻게 읽었을까. 2013년의 나에게 이 소설은 오직 눈의 이미지, 그것 뿐이다. 눈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윤대녕은 결심하고 이 소설을 쓴다. 인터뷰를 찾아보니 소설이 씌여지지 않는 시기였다고 한다. 보름동안 일본에 머물면서 초고를 순식간에 완성했다고 한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처음에 몹시 궁금했던 이야기들이 퍼즐을 맞춰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실망했다. 오직 눈 때문에 끝까지 읽었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눈을 만날 수 있다. 고독하고 쓸쓸한 느낌의 눈.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소리 없이 차곡차곡 눈이 내린다. 자판기에서 빼내 온 맥주 한 캔을, 무미의 청주 한 잔을, 식어가는 커피 한 잔을, 꺼질듯 말듯한 장작불 한 줌을 마주하는 눈.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 소설이다. 소설에서 눈은 계속 내리고, 등장하는 인물 누구나 혼자다. 혼자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런 저런 눈에 대한 이야기들을 마음에 담아본다. 홋카이도보다 눈이 많이 온다는 동북부 지역. 일본의 건물은 잘 휘청거리기 때문에 종종 지붕 위로 올라가 눈을 치워줘야 된다는 이야기. 내리는 눈의 종류가 열 가지나 되는 도시 요코테. 학의 탕, 눈의 음이라는 온천이름과 술 이름. 이 소설을 읽고 2004년의 나도 메모를 남겼다. 보라색 하이테크 펜으로 책 앞장에. '04년 2월 14일 토요일 밤. 유키로 가득한 책 한 권을 끝내고 잠바를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 앞 슈퍼에 들린다. 카스 맥주 2캔, 김, 소세지, 초콜릿, 아폴로, 꿀맛 쫀드기. 마셔야지 ^^' 아, 이건 내 메모에 대한 변명같지만, 소설의 주인공이 굉장히 많이 먹는다. 그..래서 그런 거겠지? 나 발렌타인 데이 때 혼자 뭐 하고 있었던 거니! 뭐.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응?

 

    "이 소설은 아키타 현에 속해 있는 요코테라는 작은 도시에서 썼는데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밤낮으로 눈이 퍼붓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낯선 곳에서 혼자였으므로 고독하고 행복한 순간이 매일 똑같이 되풀이되었다. 쉴새없이 퍼붓는 눈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눈이 내리면 대낮에도 세상은 어둡고 불현듯 삶은 막막했다. 쌓인 눈은 흰색이지만 내릴 때는 캄캄한 회색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그 일이 추억으로 변했다. 사람이란 추억을 기다리며 삶을 견디는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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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밤, 걷기

from 서재를쌓다 2013. 8. 25. 18:27

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마음의숲

 

 

    요즘 걷고 있다. 조금 열심히 걷고 있다. 퇴근을 하고 간단한 복장으로 갈아 입은 후 운동화를 신고 불광천으로 나간다. 나이키 러닝 어플을 켜놓고 빠른 걸음으로 두 팔을 흔들며 걷는다. 어떤 날은 1시간 정도 걷고, 어떤 날은 1시간 반 정도 걷는다. 그 시간에 불광천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걷고, 뛰는 사람들. 누군가를 앞질러 가기도 하고, 누군가의 땀냄새를 스쳐가기도 하면서 걷는다. 오늘은 걷지 말까 이래저래 고민하는데, 일단 걷기 시작하면 즐거운 마음이 든다. 한 달 반 정도 되어가는데, 걷는 동안 이 책을 읽었다. 출간했을 당시 사두었다가 이제야 꺼내 읽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어떤 문장 때문이었다. 신촌에서 새로운 수업을 듣기 시작한 친구가 첫 날 받은 프린트물을 내게 줬다. 어떤 기사를 프린트 한 거였는데, 거기에 이 책 속의 어떤 문장이 있었다. 그 문장이 있는 완전한 글을 읽고 싶어 책을 꺼냈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읽어 나갔다.

 

    이 책에는 내내 뛰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라톤을 여러 번 완주한 작가가 매일 뛰면서 느끼는 것들, 생각하는 것들. 나는 겨우 빠르게 걷고 있지만 공감되는 부분이 제법 있었다. 뛰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감사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나도 요즘 그런 느낌이다. 대개 응암에서 시작해서 상암까지 걷는데 응암에서 상암까지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날은 좀더 걷고 싶어 조금 더 먼 상암까지 걸어가는데, 어느 순간 선선한 기운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내내 앞만 보았던 고개를 옆으로 돌리게 된다. 왜 갑자기 시원해졌지? 그러면 주위에 사람들이 적어지고, 나무들이 많아진 게 보인다. 그리고 요즘 바람이 달라졌다. 여전히 덥지만 바람에 차가운 기운이 섞여있다. 전보다 땀이 덜 나고 조금 시원해졌다. 순간 가을이 오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있으면 나무들의 빛깔이 달라지겠구나. 바람이 달라지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여름이 가는 게 아쉬워졌고, 가을이 좀더 기다려졌다. 얼마 전에 본 영화 <마지막 4중주> 생각이 났다. 거기서 한겨울에 조깅을 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겨울에 걷을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추운 날 걷는 게 더 좋다. 이상하게 그렇다. 추우면 더 기운이 난다. 이 책에도 추운 겨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목도 마음에 든다. '눈, 해산물, 운하, 맥주, 친구'.

 

    행사를 끝마치고 나올 때부터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근처 맥줏집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동안에도 눈은 계속 내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다음과 같다. 눈, 해산물, 운하, 맥주, 친구. 이 중에서 두 개만 동그라미를 칠 수 있어도 대단한 행운인데(몇 년 전 홋카이도 오타루에 갔을 때, 나는 다섯 개에다 모두 동그라미를 칠 수 있었다) 그 날은 4개까지 가능했다. 새벽까지 눈에 두 번 동그라미를 칠 만큼 많은 눈이 내렸고 서울의 교통은 마비됐다. 결국 나는 홍대 앞에서 폭설에 고립되는 행운을 맞은 것이다. 진짜 인생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게 진짜 인생이다. 물론 그중에서도 뜻하지 않은 폭설이라면 최고의 인생이리라.

p.70

 

    내가 찾던 문장은 267페이지에 있었다. 제목은 '물방울처럼, 유리처럼'.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을 썼다. 소설 얘기는 하지 않고 건방지다거나 세상에 너무 화를 내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간신히 소설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면 상당히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도무지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없다거나 재미없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듣고 돌아온 날이면 언제나 잠을 설쳤다. 말하지만 나는 비가 내릴 때마다 젖는 사람이었고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지는 사람이었다. 소설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그 마음은 너무나 쉽게 허물어졌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그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는 대부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마치 사랑하는 여자와는 결혼하지 못하는 소심한 남자처럼.

 

   그 프린트물에 없던 문장이 다음 페이지 268쪽에 나온다.

 

   그렇다면 젖지 않는 방법은, 쓰러지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믿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나 자신이 너무나 투명해지는 일이었다. 물방울처럼, 유리처럼 투명해지는 일이었다. 스스로 속이지 않는 마음의 상태.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봐 겁내지 않는 상태. 아닌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말하는 상태.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건 대단히 가슴이 떨린다. 왜냐하면 거기까지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했는데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정말 안 되는 일이니까. 그제야 나는 용기란 한없이 떨리는 몸에서 나오는 힘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게 바로 세상의 모든 영웅들이 한 일이다.

 

 

 

 

 

    이건 오늘 걸으며 찍은 사진들. 걸어서 상암까지 가서 <투 마더스>를 보고 다시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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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바닷가

from 서재를쌓다 2013. 7. 11. 22:27

 

  

    그래. 이 책들을 또 다 포장하고 풀고 할 순 없다. 언제고 이사를 또 갈거고, 제일 문제는 책이다. 이사짐센터 아저씨들도 책이 제일 싫다고 했다. 몇년 전에 사 놓고 아직도 안 본 책들, 아끼지만 두 번 읽을 것 같지는 않은 책들, 이미 마음 속에 담아 놓아 보내도 될 책들. 그리고 점점 책 욕심이 많아져서 (여기서 책 욕심은 책을 소유하고픈 욕심.) 다 읽지도 못하면서 책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결심했다. 지금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당장 필요한 두 권의 책을 제외하고 이제 책을 팔고 난 돈으로만 새 책을 사기로. 그러려면 안 읽은 책들을 열심히 읽어야 겠지. 그렇게 팔고, 또 사고, 읽고, 팔고, 그렇게. 그런데 죄다 아끼는 책이니 그냥 보낼 순 없다. 너와 내가 만났다는 기록은 남겨두어야지.

 

    이 책은, <나를 닮은 집짓기>, <열대식당>, <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의 작가의 또 하나의 에세이. 이 작가의 책이 재미나서 계속 읽기 시작해서 <바닷가의 모든 날들>까지 왔다. 출간 순서에 상관없이 읽었더니 저 책에서 했던 얘기가 이 책에도 나오기도 했다. 이 책은 <나를 닮은 집짓기> 전, 혹은 짓는 중, 그리고 후의 이야기. 후의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전이랑 중의 이야기도 조금씩 나온다. 재미나게 읽었다. 결혼한 사람인데 자유로운 결혼생활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작가는 혼자 있는 시간들이 많았고, 그걸 즐겼다. 좋아 보였다. 이 부부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고. 작가는 강원도 바닷가에 직접 집을 짓고, 거기서 산다. 이 책은 거기서 사는 이야기. 작가는 개도 키우고 (한 마리는 도망가고, 한 마리는 작가의 다리에 부비부비를 했다) 닭도 키우고, 그 닭에서 난 계란을 소중하게 여기며 (당연하게) 먹었다. 맛나게. 바닷가에 가서 수영을 하기도 하고, 며칠동안 내리는 눈에 밖에 나가지 못하고 고립되기도 하고, 감성돔 낚시를 하는 아저씨에게 머리를 자르기도 했다. 이런저런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제일 재미나게 읽었던 부분은 동물들에 대한 것인데. 특히 닭! 흥미로웠다. 이런 닭이 있구나, 하고. 나는 닭이면 다 닭대가리 그런 닭들인지 알았지. 제목이 '왕국 없는 왕녀, 타이거.' 타이거는 작가가 키우는 닭의 이름이다. 부부는 닭에게 모두 이름을 붙여줬다.

 

   "대부분의 싸움닭 종자들이 다른 개체에는 호전적이나 인간에게는 매우 친화적이다."

   나중에 책을 읽어보니 이런 구절이 있었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토종닭들과 달리 타이거는 나를 겁내지 않았다. 부르면 오고, 잡으면 잡혔다. 귓볼을 쓰다듬어주면 만족스러운듯 나직하게 꾸르륵거렸다.

   "타이거!"

   마당으로 나가 이름을 부르면 바람처럼 나타나 뒤뚱거리며 걸어 오는 하얀 새.

   "성격이 토종닭들과는 판이하게 달라. 마당 일을 할 때에도 졸졸 따라다니고 외출하려고 하면 계단까지 따라 내려온다니까."

   타이거는 아름다운 닭으로 성장했다. 맵시 있게 몸을 조이는 프록코트를 입은 듯 귀족적인 다리는 날씬하게 뻗어 있고 우아한 몸통은 적당히 통통할 뿐 토종닭처럼 펑퍼짐하지 않았다. 갈색이 밝힌 꼬리 깃털은 부채처럼 하늘을 향해 곧추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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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거!"

  정원 어디에 있든, 잠에서 깬 내가 비틀거리며 바깥으로 나오면 타이거는 긴 다리로 성큼거리며 곧 내 앞에 나타난다. 표정 없는 오렌지색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꾸르륵거린다. 나 여기 있어, 주인님아.

   "이리 와, 우리 공주."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안아 들면 그 애는 가만히 있다. 내 어깨 위나 팔 위에 올려놓으면 겁이 나는지 날카로운 발톱에 잔뜩 힘을 주고 바들거리며 서 있다.

   다 큰 지금도, 타이거는 병아리 시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토종닭보다 작다. 털갈이가 시작되는지 윤기 자르르 흐르던 하얀 깃털이 조금 보송해졌다. 살진 앞가슴에 손을 넣어 집어 들면 마치 배우기라도 한 것 처럼 훌륭하게 밸런스를 잡는다.

p. 238-240

 

   훌륭한 닭이다. 이런 닭도 있구나. 지금쯤 타이거는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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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문학사상사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출판된 후에,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게 소설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쓸 수 있다"라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그 작품이 소설로 통용된다면 누구나 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적어도, 그런 말을 한 사람 어느 누구도 소설을 쓰지 않았다. 아마 써야 할 필연성이 없었던 것이리라. 필연성이 없으면 - 가령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해도 - 아무도 소설 따위는 쓰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썼다. 그것은 역시 내 안에 그럴 만한 필연성이 존재했다는 뜻이리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최종 심사에 올라갔다고 <군조> 편집부의 M씨가 알려준 날의 일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른 봄 일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이미 서른 살이었다. 그 무렵에는 신인상에 응모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으므로 (송고를 한 것은 가을이었다) 전화가 걸려와 최종 심사까지 올라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 무척 기뻤다. 나는 작가가 되어 여러 가지 기쁨을 경험했지만, 그때처럼 기뻤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정작 신인상을 받았을 때도 그처럼 기쁘지는 않았다.

   그 전화를 끊고 아내와 둘이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센다가야 초등학교 앞에서, 날개에 상처를 입어 날지 못하는 비둘기를 발견했다. 나는 그 비둘기를 두 손에 감싸 들고 하라주쿠까지 걸어가, 오모테산도 파출소에 신고했다. 내내 비둘기는 내 손 안에서 파르르 떨었다. 그 아스라한 생명의 증거와 온기를 나는 지금도 손바닥으로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귀중한 생명의 향기가 사방에 충만한 따사로운 봄날의 아침이었다. 신인상을 받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 근거도 없는 예감으로.

    그리고 나는 실제로 상을 받았다.

p.156-157 작가의 말.

 

   

     에세이를 읽다 갑자기 첫 소설이 생각나 다시 꺼내 읽었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고 책을 덮는데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장마란다. 역시 이 소설은 작가의 말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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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보도자료를 읽는 일을 한다. 아니다. 보도자료를 옮기는 일을 한다. 아무튼. 이 책의 보도자료를 봤다. 아니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샀다. 어제, 권여선의 소설집을 다 읽고 뭘 읽을까 고민하다가 여러 책들을 꺼내 놓고 누웠다. 이 책 저 책 뒤적거렸다. 많이 걸어서 그런지 금방 잠이 들었다. 손에서 책이 빠져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꿈이었는데 배경음악이 있었다. 무지하게 슬픈 음악이었다. 뻔하고 비극적인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처럼 소리가 무척 컸다. 그래서 심장이 더 크게 뛰었다. 내 앞에 아빠가 있었고, 삼촌들이 있었다. 아빠가 내 앞을 그냥 지나갔다. 그러자 삼촌들이 여기 큰딸 있네, 그랬다. 그런데 아빠가 나를 못 알아봤다. 누구쇼, 그랬다. 깜짝 놀라 아빠 손을 덥석 하고 잡았는데, 그때부터 눈물이 났다. 아빠는 계속 나를 몰라봤다. 너무너무 마음이 아파서 벌떡 눈이 뜨였다. 다행이었다. 꿈이었다. 동생이 조그마한 등 하나를 켜두었더라. 깜깜했으면 그대로 엉엉 울어버렸을 지도 모를 새벽이었다. 이 책 때문이었다. 이 책을 옆에 두고 자서. 이 책을 뒤적거리다 자서. 아침 출근길에 이 책을 다 보았다. 그리 슬픈 책은 아니다. 따뜻한 책이다.

 

    사실 어제의 그것은 꿈이었지만, 마냥 꿈인 이야기만은 아니다. 아빠에게, 삼촌들에게, 누구쇼, 하는 우리 할머니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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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리틀은 남편이었다. <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를 읽고 궁금했던 건, 둘리틀이 누구냐는 것. 성별은 남자이고, 작가와 정말 친한 사람. 둘리틀은 휴가를 내고 핀란드까지 날라와 작가의 여행 마지막 나날들을 함께 보내고 귀국한다. <열대식당>과 <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 두 책을 읽고, 나는 이 사람이 결혼했다고 생각하질 못했다.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책도 쓰고, 그러다 강원도 어느 바닷가 근처에 집을 짓고 혼자서 생활하고 있는 싱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둘리틀이 친한 남자친구인 줄 알았지. 남편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세상에. 둘리틀은 남편이었다. 그리고 내가 전작을 읽으며 상상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이 책 마지막 부분에 둘리틀과 작가인 듯한 사람의 모습이 사진으로 자그맣게 찍혀 있는데, 왜 둘리틀이라고 이름붙여졌는지 알겠더라. 그리고 그는 생각보다 체구가 작았다. 나는 키가 아주 큰 사람인 줄 알았다. 게다가 그는 연하!

   

   서울의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에서 그만 살고 싶었던 작가는 집을 짓기로 한다. 서울은 너무 비싸고, 여러 곳의 땅을 검토해보다 결국 강원도의 바닷가 근처로 결정. 둘리틀의 근무지는 서울. 느긋하고 평화로운 둘리틀이다. 이 책에서 작가가 집을 짓느라 공사장 아저씨들과 싸우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 속상해 할 때마다 둘리틀은 느긋하고 평화롭게 이런듯 어떠리 저런듯 어떠리 식의 멘트를 날린다. 아, 나는 하루종일 여름 땡볕에서 개고생하다 전화를 했을 때 그저 멀리서 다 이해하라는 식의 말만 하면 무지 화가 날 것 같은데, 작가는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많더라. 아무튼 둘리틀은 주말에 내려오거나, 아니면 나중에 회사를 그만두고 바닷가 집에 와서 생활할 생각을 하고 집터를 강원도로 결정. 그렇게 6개월동안 집을 짓는다. 바닷가 바로 근처는 너무 비싸서 포기하고, 바닷가에서 가까운 곳에.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에 갈 수 있고, 집 뒤로는 나즈막한 산이 있는 그런 곳에.

 

    자신에게 꼭 맞는 집을 짓기 위해, 그리고 최대한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작가는 여러가지를 직접 한다. 설계도도 그려보고, 벽돌도 직접 고르고, 데크의 나무자재도 직접 고른다. 돈 아끼려고 부엌가구를 초짜 사장에게 맡겼다가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고, 매일 삼시세끼 밥을 식당과 공사장을 오가며 나르고, 간식도 챙기고, 음료수도 챙긴다. 아저씨들이 자신의 금쪽같은 집터에 카아카아하고 가래침을 하루에도 수도 없이 뱉어내는 꼴을 보고 인내심을 기르고, 계획대로 하지 않고선 늘 괜찮습니다를 일삼는 안 부장과는 마지막에 결국 한 판 한다. 힘들게 구해온 이탈리아 산 달덩이 조명 하나를 인부들이 깨뜨리기도 하고, 아직 개시하지 않은 변기를 우유 때문에 탈이 난 누군가가 먼저 쓰게 되기도 한다. 수줍음 많은 목수를 만났으며, 마당 한복판에 박아 놓는 바람에 작가를 화나게 만들었던 전봇대는 결국 다시 뽑는다. 이 책의 대부분은 이런 이야기들이다. 초짜 건축주가 6개월에 걸쳐 집을 짓는 동안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이야기들. 작가는 중간중간 말한다. 이렇게는 하지 마라. 나는 이렇게 해서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은 조금씩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았지만 말이다.

 

    읽으면서 작가가 너무 고생을 해서, 아 진짜 이럴 거면 돈이 더 들더라도 그냥 잘 하는 업자에게 맡기지, 너무 지친다, 언제 집 다 지어, 싶었다. 그러다 이 페이지를 만났다. 집을 짓는 동안 숙소를 몇 번이나 옮겨 다니던 작가에게 영화같은 일이 일어난다. 오래된 여관에서 장기투숙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여관의 옥상 물탱크가 터진 것. 너무 낡은 곳이라 보수하는 것으론 안되고, 아예 건물을 허물어야 할 지경. 당장 그날 밤 잘 곳이 없어진 것. 작가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공사 중인 집에서 밤을 보내기로 한다. 여름이고, 창문도 다 끼워 넣었고, 조명도 달았고, 밤을 보내기에 괜찮을 거 같았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아끼는 두 페이지. 236, 237쪽이다.

 

 

   잠을 자기 위해서 잠자리를 만들었다. 현장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스티로폼 조각을 몇 개 모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던 매트를 덮었다. 겨울 스웨터를 둘둘 말아 베개로 삼자 초라한 침대가 완성되었다. 누우니 등이 배겨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다.

    바깥은 이미 칠흑처럼 어두웠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 바다처럼,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변화가 일어난 것은 집 안의 불을 모두 끈 후 몇 분이 지나서였다. 짙은 어둠의 연기가 점차 가라앉는 것처럼, 창밖이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했다.

    검정색에서 암회색으로, 다시 회청색으로 변해갔다.

    하늘 저편에 달이 떠올랐다. 어둠에 창백한 하얀빛이 내려앉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숲과 벌판에 깃든 조그만 영혼들이 내는 소리들. 집 바깥과 집 안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존재와 마주한 듯 경외심이 밀려왔다. 수천 수만의 조그만 풀벌레 중 한 마리가 된 듯한 느낌.

   "마당 너머로 산이 보인다. 아주 나지막해..."

   나는 전화기 건너편 서울에 누운 둘리틀에게 들려주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자연 한복판에 빠져든 것처럼, 온통 낯선 것들 투성이다. 지금 보이는 모든 것들을, 들리는 모든 소리들을, 떠오르는 모든 감정들을 빠짐없이 전해주고 싶었다.

   "산을 경계로 해서 그 위쪽은 하늘이라 환하고 그 아래 산은 아주 어두워. 마치 거인이 길게 누워 있는 것처럼 굴곡이 있어. 어떤 광경인지 상상할 수 있겠니?"

    집 아래 펼쳐진 논에서 전력을 다해 우는 개구리와 풀벌레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요란한 소리지만 배경음으로 가라앉아 전혀 시끄럽지 않다.

    나는 아직도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시멘트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었다. 아주 먼 곳에서 시작된 바람, 차가운 바다를 오랫동안 스치며 날아오느라 서늘해진 무언가가 얼굴에, 내 몸에 닿았다. 이불 삼아 덮고 있던 신문지를 코 아래까지 끌어올렸다.

    흔한 축배도 없이,

 

    첫날 밤이다.

 

 

    이 책. 예전에 <하우스>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이 수정되어 다시 나온 것 같다. <바닷가의 모든 날들>이 이 집에서 살면서 쓴 이야기들 같은데, 이제 이 책을 읽을 차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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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헌트>를 봤고, 소설 <원숭이와 게의 전쟁>을 읽었다. <더 헌트>는 한 어린아이의 거짓말로 시작된 마녀사냥 이야기.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이야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보고나면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믿음'과 '불신'은 앞면과 뒷면 같다. 반대인 것 같지만, 실은 공존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내 뒤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원숭이와 게의 전쟁>은 약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 강한 사람을 이기는 이야기인데, 기대를 많이 해서인지 좀 실망하긴 했다. 어쨌든.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 요시다 슈이치가 선한 사람이라는 걸 확신하게 된다. 결말 부분에 특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데, 그건 약한 사람들이 잘 살길 바라는 작가의 선한 마음 때문인 것 같다. 그는 긴 소설을 썼고, 그의 열혈독자인 나는 긴 소설을 읽었고, 그는 약한 사람들을 응원하고 있고, 나도 힘을 내야겠다. <더 헌트>는 진짜 세상 이야기 같고, <원숭이와 게의 전쟁>은 해피엔딩의 동화 같다. 그렇게 느끼는 건 참 슬픈 일인 것 같다. 아무튼 이번 소설도 잘 읽었습니다. :)

 

 

맑은 날은 물론, 설령 비 오는 날일지라도 독서는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 독서를 통해 한국의 독자 여러분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에 대해 지금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 요시다 슈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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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마스다 미리 3종 세트를 샀다. 너무 좋다면서 내게도 빌려줬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는 감흥이 덜했고, 나머지 두 권이 무척 좋았다. <주말엔 숲으로>를 보면서는 내게도 숲 가까이 사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주말마다 가기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친구. 친구는 내게 그럴 의향이 없냐고 물었다. 니가 그렇게 시골에 살면 좋겠다. 내가 주말마다 니네 집에 놀러가고. 만화처럼. 나도나도. 낮에는 숲에 다녀오고, 신선한 채소로 가득한 저녁을 함께 만들어 먹고, 목욕을 한 뒤 달이 보이는 마루에 앉아 병맥주를 나눠마시는 그런 주말.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주말엔 숲으로> 보다 더 좋았던 건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서른 넷이 되었고, 애인도 없고, 결혼할 마음도 없고, 그렇지만 혼자 늙는 건 걱정스러운 나. 그런 내게 이 만화는 괜찮지 않을까, 라고 말해준다. 오늘 N언니를 만나 12층의 극장 로비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와인을 마셨는데, 먼저 이 만화를 본 언니가 그랬다. 결국 답은 없었는데, 이상하게 위로해주는 느낌이었다고. 우리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중년의 실버타운과 고독사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 만화를 떠올리며 행복해했다. 결혼을 하든, 결혼을 해서 애가 있든, 애인 없이 혼자 살든, 애인이 있고 혼자 살든 모두가 외롭다는 걸 이 만화를 이야기한다고, 언니가 말했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들어와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감사했다. 내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음에. 내게는 낮술을 할 수 있는 사람,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사람, 좋아하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여행을 함께 갈 수 있는 사람, 언제든 놀러간다 그러면 재워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좋다. 결혼하지 않아도 좋다. 일요일,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영화를 보고, 집에 들어왔다. 지금 나는 충만하다, 라고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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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라, 지은, 우리

from 서재를쌓다 2013. 1. 24. 21:51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어제 꿈을 꿨다. 꿈에 지금은 만나고 있지 않지만, 가끔 보고파지는 사람이 나왔다. 그 사람이 내 옆에 꼭 붙어 있었다. 그런데 그가 내게 하는 말이 다 거짓이었다. 그는 도망쳐 나온 거였고, 쫓기고 있는 거였는데, 내겐 평온하다 했다. 행복하다 했다. 꿈에서도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의 말들과 행동이 거짓이라는 걸. 꿈에서도 나는 생각했다. 이건 너무하잖아. 그리고 슬퍼졌다. 어제 그 꿈을 꾸기 전에, 집에 오는 길에 아주 밝은 달과 아주 선명한 별을 봤다. 별들이 많았다.

 

    작년 추석에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엄마와 통영에 갔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거기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 통영이 충무였던 시절. 이렇게 동양의 나폴리가 될 줄 몰랐던 시절. 나는 바다가 있는 곳에서 성장했는데, 의외로 바다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답답해서 바다를 보러 간다든지, 신이 나서 바다를 보러 갔다든지 그런 기억이 없다. 그냥 진한 굴 껍데기 냄새 뿐이다. 아무튼 통영에 가서 엄마랑 바다를 옆에 두고 걸었다. 통영의 바다는 고향의 바다와 다르게 정말 반짝반짝 빛났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때 본 통영의 바다를 생각했다. 동피랑 마을 꼭대기에 불었던 바람도 생각했다. 초판 3쇄. 작가님이 너무 인기가 많아져서 조금 심드렁한 마음으로 (왠지는 몰라도) 천천히 구입했다. 다른 책들 주문하면서 슬쩍 집어 넣었다. 그러고도 한참. 몇 장을 읽다가 또 심드렁해져 다시 책들 사이에 끼어 두었었다. 12월 어느 날, 책 표지와 책등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다시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마음이 아파서, 행복해졌다. 이번 책은 영화 같다. 장면들이 머릿 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카밀라, 동백꽃, 지은, 양관, 진남. 특히 마지막 장 '2012년의 카밀라, 혹은 1984년의 정지은'. 내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카밀라에서 정지은으로 바뀌는 순간, 페이지도 바뀐다. 앞장에는 카밀라가 뒷장에는 정지은이 서 있다. 이 장면이 나는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아, 좋았어. 벅찬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깊고 어둡고 서늘한 심연이다. 살아오면서 여러 번 그 심연 앞에서 주춤거렸다. 심연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건너갈 수 없다."

    나를 혼잣말하는 고독한 사람으로 만드는 게 바로 그 심연이다. 심연에서, 거기서, 건너가지 못한 채, 그럼에도 뭔가 말할 때, 가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심연 저편의 당신을 향해 말을 걸 때, 그때 내 소설이 시작됐다."

- 작가의 말 중에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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