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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
    서재를쌓다 2020. 12. 13. 16:56

     

       추위에도 익숙해졌나 생각했던 어느 아침, 일어나 보니 눈이 오고 있었다. 허겁지겁 창문으로 내다보니 밖은 새하얗다. 이미 4월도 끝나려 하는데 완전한 설경이었다.

       깜짝 놀라서 곧바로 딸에게 말해줬다. 딸은 당시 열 살. 겨울을 좋아하고 눈도 무척 좋아하는 딸이다. 몹시 기뻐하며 둘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에는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옆집 사람이 이미 스키복을 껴입고 집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웃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눈에 신바람이 난 우리를 보고 "맞다, 잠깐 기다려봐요"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의 손에는 그릇과 숟가락, 그리고 시럽이 들려 있었다. 그릇은 비어 있었다. 무엇을 하는 걸까 싶어서 지켜보고 있었더니 갓 쌓인 새하얀 눈을 펐다. 그릇에 폭신폭신한 눈의 산이 생겼다. 거기에 초록색 시럽을 휘둘러 뿌렸다.

       "맛있어요."

       이웃은 나와 딸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이런 산속에 내리는 눈은 깨끗하니까요."

       주뻣주뻣 입으로 가져가자 차갑고 폭신폭신한 최고의 빙수였다.

       "4월의 눈은 특히 맛있답니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봤다. 계절에 따라 눈도 맛이 달라는 걸까?

       "한겨울의 눈은 가루눈이니까요. 바슬바슬해서 시폰케이크 같아요. 이 계절의 눈은 폭신하니까 입안에서 사르르 녹지요. 빙수로는 최고랍니다."

    - 262-263쪽

     

     

        아침에 일어나니 창문이 뿌옜다. 핸드폰을 켜 날씨를 보니 '눈'이었다. 거실 커튼을 젖히니 세상이 하얬다. 아직 눈이 내리고 있었다. 건너편 숲에도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첫눈이었다. 이문세와 자이언티의 화음이 절로 떠오르는, 누-운-. 창문을 열고 방충망도 열고 사진을 찍었다. 오늘 저녁은 어젯밤 정육점에서 사두었던 백숙이다. 냉동실에서 오래 묵히고 있는 백숙용 한방재료를 넣고 푹 끓여 소금에 찍어 먹을 거다. 국물에 밥과 대파를 넣고 닭죽도 끓여 먹어야지.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십이월이 되었다.

     

        남편은 미역국 잘 끓이는 법을 아느냐고 물었다.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는데, 나는 원래 미역국에 마늘도 듬뿍 참기름도 듬뿍 넣는 편이었다. 남편의 막내고모님이 요리를 무척 잘하시는데 미역국이 너무 맛있어서 레시피를 물어봤단다. 고모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주 약간의 마늘과 아주 약간의 참기름이면 된다고. 소고기 넣고 미역 볶다 그냥 오래 푹 끓이면 된다고. 처음엔 내 식대로 미역국을 끓였는데 마늘과 참기름 맛이 너무 강하다고 하길래 다음에 끓일 때는 고모님의 레시피를 떠올렸다. 일단 좋은 소고기가 필요했다. 소고기를 잘게 잘라 정말정말 소량의 마늘과 참기름을 넣고 볶았다. 먹기 좋게 잘라놓은 미역도 볶았다. 물을 넣고 아주 오래 끓인 뒤 액젓과 소금과 국간장으로 간을 했다. 그렇게 끓였더니 마늘맛과 참기름맛이 올라오지 않는, 국물이 잘 우러난 재료 본연의 미역국이 되었다. 처음엔 심심한 듯 했지만 계속 먹으니 국물이 진국이었다. 그 뒤로부터는 고모님의 레시피대로 미역국을 끓인다. 다른 요리를 할 때도 떠올린다. 좋은 재료로 본연의 맛을 살리는 레시피.

     

       '4월의 빙수'는 작가의 가족이 일년동안 홋카이도 깊은 숲속에 들어가 살 때의 경험인데, 그때의 경험으로 한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단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 이불 뒤집어 쓰고 읽어보고 싶다. 열린음악회에서 최백호가 손을 가지런히 모르고 정밀아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들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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