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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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책 - 읽는 것은 거울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서재를쌓다 2008. 6. 26. 15:26
검은 책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민음사 내가 가진 유일한 세계지도, 삼성지능업 세계지도에서 보자면 터키를 대표하는 건 성 소피아 성당이다. 포털 검색창에서 '터키 성 소피아 성당'이라고 치니 성 소피아 성당을 앞에 우뚝 세우고 가지각색의 하늘이 펼쳐진다. 사파이어 빛깔의 파아란 하늘, 금세 쏟아질 것 같은 회색빛 하늘, 노을을 품은 주홍빛 하늘, 야경만 환히 빛나는 까아만 하늘. 성당의 지붕, 돔 위에 하얗게 눈이 내려앉은 사진도 있다. 이 즈음이 의 계절일테지. 이 곳에서 쓰여진 책을 읽었다. 언젠가 친구가 꼭 가보고 싶어했지만 결국 계획에서 빼버릴 수밖에 없다고 했던 나라, 터키. 내겐 사람에게도 그렇듯 책에게도 첫인상이 있다. 물론 사람에게도 첫인상을 착각해 나랑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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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언니들아극장에가다 2008. 6. 25. 03:28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작가정신 영화 를 보러 가는 내 가방 안에 김연수의 가 들어있었다. 나는 작가 김연수에 빠져들고 있는 중이였고, 그건 내가 읽은 그의 네번째 책이었다. 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건 팔레노프시스 때문이었다고 광수는 생각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광수는 자신의 결혼식날 신부의 부케 속 줄기가 부러진 팔레노프시스를 보곤 마음이 복잡해진다. 왜 멀쩡한 팔레노프시스가 꺾여졌는가. 왜 하필 내 아리따운 신부가 예전에 끔찍히도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의 친구인가. 영화를 보면서 내내 그 문장을 생각했다. '모든 건 팔레노프시스 때문이었다고 광수는 생각했다.' 왜 티비에서는 꽤 근사해보였던 40대 섹스앤더시티 언니들의 과도한 메이크업이 커다란 스크린 위에서는 그리 거북했는지를 1시간 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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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건사고 - 우리의 오늘도 영화가 될 수가 있다서재를쌓다 2008. 5. 12. 11:26
오늘의 사건사고 시바사키 토모카 지음, 신유희 옮김/소담출판사 를 '읽은' 건 를 재밌게 '보았기' 때문에. 영화 의 원작 소설과 원작자가 영화 촬영 현장에 다녀온 뒷 이야기가 함께 있는 책이라고 해서 집어 들었다. 읽고 난 후의 소감은 영화가 훨씬 낫다. 소설은 날아갈 것처럼 가볍고, 촬영장을 다녀온 뒷 이야기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별 게 없었다. 영화는 원작소설을 거의 그대로 스크린에 옮겼다. 건물 속에 끼인 사내 이야기와 마지막 해변의 고래 이야기만 첨가하고.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영화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긴 했는데, 역시 결론은 영화가 훨씬 이 사소하고도 소소한 이야기를 잘 표현했다는 것. 똑같은 시간이지만 여러 장소에서 상상하지도 못할 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의 감독도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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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2008년 봄호 - Foot,이 아니라 풋,서재를쌓다 2008. 4. 27. 17:07
풋 2008년 봄호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문학동네 Foot,이 아니라 풋,이다. 풋사과할 때 풋. 풋사랑할 때 풋. 풋풋하다할 때 풋. 빠알갛게 여물기 전 단단한 연두빛의 아삭한 접두사. 더 열심히 물을 빨고, 햇살을 쬐면 먹음직스럽고 탐스럽게 영글 글자. 풋,하고 웃는 수줍은 소리. 그 풋,이다. 그러니 내가 이 따스한 봄에 연두빛 청소년 잡지 풋,을 만난건 당연한 일이다. 을 산 건 김연수 작가의 새 연재물 때문이다. 늘 그렇듯 김연수 작가의 글은 따스했다. '원더보이'라는 놀라운 초능력을 가진 소년의 이야기다. 소년은 소설의 첫번째 이야기에서 아버지를 잃고 초능력을 얻었다. 그리고 첫번째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소년은 창 밖의 내리는 눈을 마주한다. 눈을 묘사한 마지막 장을 읽고서 나도 모르게 아,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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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 서늘하고 아득한 이언 매큐언의 결말서재를쌓다 2008. 4. 14. 02:52
책을 다 읽고 양장 위에 덮여진 파아란 표지를 빼냈다. 4면으로 접혀져 있었던 표지가 하나로 이어지면서 푸른 체실비치 풍경이 길다랗게 펼쳐졌다. 아니, 푸르다는 표현으로 부족하다. 뭐랄까. 아득해지는 빛깔이랄까.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표지를 펼쳐 보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릴게 분명하다. 해가 거의 진 후, 바닷가에 홀로 서 있으면 이런 느낌일까. 서글프다는 말로도, 시리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아득하다는 말로도, 저리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저기 앞에 하늘하늘 걸어가는 여인. 플로렌스. 나는 에드워드 대신 그 뒷모습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단번에 달려가 말해주고 싶다. 당신 마음은 그게 아니잖아요. 에드워드 마음도 그게 아니예요. 이렇게 끝내고 평생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 하지만 소설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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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 누구를 위한 속죄인가서재를쌓다 2008. 3. 11. 13:58
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문학동네 영화가 개봉한 뒤에 붙여진 띠지일 거다. 영화를 보고 급히 주문한 의 띠지에는 의 포스터가 새겨져 있었다. 보통 책을 읽는 데 걸리적거려서 띠지는 책꽂이로 사용하거나 그냥 버려 버린다. 의 띠지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유명한 소설가와 어느 신문사의 극찬 문구와 함께 있었던 한 독자의 문구. '통곡하듯 울렸던 10월의 어느 가을 아침 9시', '문자 그대로 걸핏하면 울었다'. 이 문장들 그대로 를 읽어 내려가고 싶었다. 책 표지에는 얼룩진 컵받침같은 무늬가 나뭇잎 사이로 새겨져 있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후회했다. 영화를 먼저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영화를 상당히 '좋게' 먼저 봐버린 내 머릿속에는 이미 등장인물의 체형과 얼굴, 옷들까지도 생생하게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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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 요시다 슈이치가 맞습니까?서재를쌓다 2008. 2. 23. 14:52
악인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은행나무 . . . 지금 당장 거짓말을 죽이지 않으면 진실이 죽임을 당할 것 같아 두려웠다. p.347 惡人. 요시다 슈이치가 악한 사람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니,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요시다 슈이치 이름으로 국내에 발간된 책 제목들을 쭉 훓어보니 나는 그의 책을 반쯤은 읽었다. 그의 소설들이 좋은 이유는 그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일요일들'의 느낌 때문이다. 그의 책에는 항상 여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는 그 한 명 한 명의 평범한 일상을 엇갈리듯, 무심하게, 스쳐가듯 이야기한다. 마치 어젯밤 건대입구역에서 탄 7호선의 4-1에서 지하철에 올라탄 나와 4-1에서 내린 어떤 사람을 이야기하듯이. 우리는 한번도 인사를 나눈 적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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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 그의 문장은 빵집 주인 같아서재를쌓다 2008. 2. 15. 10:08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문학동네 커피를 내렸다. 친구가 싸 준 원두커피. 브라우니 한 조각을 냈다. 친구가 만들어 준 초코 케잌. 그것들을 야금야금, 홀짝홀짝 먹어치우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다시 읽었다. 레이먼드 카버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 이 두 단편이 살아남는다면 자신이 정말 행복할 거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이 두 단편을 읽으면서 그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읽게 해준 것에 정말 행복해했다. 지상의 말이 하늘까지 닿는다면,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고마워요. 당신은 글은 정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 도움이 되었답니다. '대성당'의 마지막 부분도 뭉클했지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마지막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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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집 - 나는 소년이 되었다서재를쌓다 2008. 1. 31. 11:26
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열림원 갑자기 어깨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내 머리카락들이 무겁게 느껴졌다. 이것들을 당장 잘라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가는 길 모퉁이에 작은 동네 미용실이 있다. 늘 눈여겨 보았던 곳. 문을 열고 들어갔다. 컷트를 하러 왔다고 했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니 이건 너무 짧지 않냐고 한다. 그럼 그냥 컷트로 잘라주세요. 그러고보니 자르는 컷트와 짧은 머리 모양의 컷트의 말이 같다. 잘려나가는 내 머리카락들을 보며 한창 읽고 있던 전경린의 을 떠올렸다. 의 스무 한 살의 주인공은 엄마가 골라주는 예쁜 여자용 옷이며 신발을 거부한다. 나랑 어울리지 않아. 정 원한다면 언젠가 입고 싶어질 때 입을게. 서른 살쯤? 아니, 마흔 다섯 살쯤? 핸드폰에 저장해 온 머리보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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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영화와 책 사이극장에가다 2008. 1. 19. 04:36
아침에 신문을 뒤적거리다 이 금요일 MBC 주말의 영화인 걸 봤어요. 의 성공적인 종영과 의 개봉에 힘 입어 편성된 거 아닌가 혼자 생각하면서요. 2년 전 영화네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날의 기억이 생생해요. 친구와 지금은 친구의 시누이가 되어버린 이와 함께였고, 영화를 보기 전에 명동에서 감자탕을 먹었고, 커피를 들고 컵홀더가 없던 2관에서 보았어요. 오랫동안 기다려온 허진호 감독의 영화라 보기 전부터 설레였고, 약간의 실망을 했지만 사람들 반응만큼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면서 극장을 나섰지요.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게 되면 처음에 보이지 않던 세세한 것들이 보여요. 일상적인 소품이나 사소한 배우의 표정, 스쳐 지나갔던 대사 하나. 오늘도 을 보면서 2년 전 극장에서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