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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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하루키를 읽는 밤서재를쌓다 2008. 8. 30. 15:55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문학사상사 하루키의 데뷔작 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실로 간단하다.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정말 불현듯 쓰고 싶어졌다." 아니. 이건 이를테면 프롤로그고, 실제 시작하는 문장은 이렇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학교 1학년 때 내게 꽤 나이 차이가 나는 남자를 소개시켜준 선배가 있었다. 나는 그 남자의 나이가 부담스러워 만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러면 선배는 메일이라도 주고받아보라고 했다. 선배는 내게 그 남자가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고 소개했다.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는 내게 종종 메일과 함께 사진을 보내왔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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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피플 - 따듯한 겨울 풍경들극장에가다 2008. 8. 23. 16:49
동생의 졸업식 날.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사진을 찍었다. 학사모와 가운을 뒤집어쓰고 학교 구석구석을 찾아 다녔다. 여름의 졸업식 풍경은 무척 한산하더라. 가운 입고 사진 찍는 졸업생은 동생을 제외하고 딱 두 명 더 봤다. 길고 높은 계단을 타고 내려와 너무나 배가 고파 버스를 타고 나가 베니건스에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계단 아래 제일 첫 번째로 보이는 중국집에 들어갔다. 쟁반짜장과 깐풍육을 시키고 TV에서 해주는 올림픽 태권도 경기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나와 한 때 내가 갈망했던 KFC의 커다란 치킨통을 닮은 팝콘 대자를 들고 를 보러갔다. 내가 아는 누구는 제목이 '스마트 피플'이라니까 내 얘기잖아, 말했다. (-_-) 이건 정확하게 말하자면 머리는 스마트하지만 마음은 스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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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릿파크 - 살얼음판을 건너는 일에 대하여서재를쌓다 2008. 8. 19. 17:24
불릿파크 존 치버 지음, 황보석 옮김/문학동네 이 소설을 읽고 기억에 남은, 아니 마음에 남은 두 가지. 마법과 노란방. 이 몇 페이지를 읽는 동안 마음이 벅차 올랐다. 아, 이건 내가 찾아 헤맨 마법, 그리고 노란방이야. 미국 교외 중산층에 대한 반어적인 풍자와 코미디 이런 해석은 이미 멀리 보내 버렸다. 토니의 마법, 해머의 노란방. 어제 술자리에서 동생은 인생이란 살얼음판이야, 라고 중얼거렸다. 튼튼해보여도 언제 내 밑의 얼음이 깨져 풍덩 차가운 물 속으로 빠져버릴지 몰라. 동생은 일주일 전만 해도 다닌지 한 달이 채 안 된 회사에서 돌아와 매일 울었다. 나와 동생의 남자친구는 멀지 않은 곳에서 내내 따라가겠다고, 그러다 니가 빠지면 재빠르게 밧줄을 휘둘러 구해주겠다고 안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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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령 - 2천 5백만 년 전 당신에게서재를쌓다 2008. 8. 19. 14:42
은비령 이순원 지음/굿북(GoodBook) 2천 5백만 년 전 당신에게 이건 2천 5백만 년 전의 당신에게 보내는 글이지만, 2천 5백만 년 후의 당신에게 보내는 글일지도 몰라요. 겹겹이 쌓여있는 영겁의 시간을 지나 우리가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나는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어제는 장맛비가 한참을 내리고 오래간만에 맑은 날씨였어요. 비 개인 뒤의 이런 날이라면 별들이 평소보다 1미터쯤은 가까이 다가와 있을거란 생각을 했지요. 나는 별을 자주 보지 않는 사람이예요. 언제부턴가 그렇게 되어버렸지요. 어제는 고깃집이 즐비한 큰 길가를 지나 중랑천에까지 걸어 나갔어요. 이곳이 내가 사는 곳보다 별이 좀 더 보이는 곳이죠. 별을 자주 보지 않는 나도 그쯤은 알아요. 나는 선 채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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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 이 땅에 김소진이라는 소설가가 있었다.서재를쌓다 2008. 8. 18. 14:55
동행 함정임 지음/강 이 땅에 김소진이라는 소설가가 있었다. 이라는 책을 읽었다. 나는 김소진이라는 작가를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이제는 이 땅에 없는 그를 떠올리며 쓴 글이 있다기에 찾아본 책이었다. 을 읽으며 정작 그의 글은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주제에, 30분 전에는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던 주제에, 나는 몇 번인가 울었다. 제일 크게 울어버린 건 아마도 성석제의 글을 읽으면서였다. 나는 성석제가 그려주는 김소진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려 봤다. 깡마르고 선하게 웃는 츄리닝을 입은 소설가. 그가 내어오는 찻잔을 생각했다. 찻잔을 담은 쟁반을 든 소설가의 정직한 손을 생각해봤다. 가슴이 뻐근해져 왔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후, 그를 기억하는 문인들의 글과 비평들로 이루어진 을 나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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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가든 - 때를 밀어야겠다서재를쌓다 2008. 8. 12. 15:10
아오이가든 편혜영 지음/문학과지성사 돌아보니 시퍼런 마을이 있다. 하나의 저수지(첫째, 둘째, 셋째가 산다), 하나의 아파트(그 곳엔 개구리비가 내린다), 하나의 맨홀(임신한 어른의 배를 가진 아이가 있다), 하나의 동굴(빨간 터틀넥을 입은 여자의 시체), 하나의 세탁소(그는 하얀 양말을 신은 발로 금붕어를 터뜨려 죽인다), 하나의 박람회(개와 아이가 피를 흘리며 싸운다), 하나의 숲(고양이를 약으로 먹는 할머니가 있다), 하나의 방(친척의 아이를 낳은), 하나의 강(토막난 시체들이 차례로 낚여지는)으로 구성된 아오이 마을. 그런데 희안한 일이다. 피와 쥐, 구더기들이 난무하는 이 마을을 굽이굽이 지나쳐온 내 몸에 한 방울의 피도, 한 마리의 구더기도 옮겨 붙지 않았다. 깨끗하다. 배를 갈라 자궁을 싹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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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 - 달과 지구, 그리고 당신의 그림자서재를쌓다 2008. 8. 8. 13:04
달을 먹다 김진규 지음/문학동네 가을에 읽었으면 더 좋았을뻔 했다, 라는 생각을 어젯밤에 문득 했다. 서늘해진 가을바람에 마음이 조금은 쓸쓸해지지 않았을까. 스무살에 읽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 봤다. 스무살의 처럼 그렇게 울어버리지는 않았을까. 오늘이 반납마감일이다. 오랫동안 이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긴 했지만 단숨에 읽어 내려간 건 며칠사이다. 어제는 오늘 이 책을 반납할 생각으로 읽는내내 프린트해 책갈피 대용으로 썼던 그림을 새 종이에 다시 출력했다. 작가의 블로그에 올려져 있던 등장인물들간의 관계도. 이 그림을 보면 묘연이 누구의 자식이고, 누구의 어미인지 난이와 향이의 가여운 운명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누구의 표현대로 '조각보같은' 이 소설을 좀더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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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도쿄 - 김영하의 사진집서재를쌓다 2008. 8. 8. 02:59
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지음/아트북스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뒀다. 왠지 이번 책은 사서 보기가 싫었다. 그리고 지금, 그 선택에 아주 만족해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편이랑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여행자 시리즈의 첫번째 책인 하이델베르크 편에 나는 그럭저럭 만족했다. 책이 생각보다 너무 얇네, 글이 너무 적네, (이건 확실히 좀 실망스러웠다) 투덜거리긴 했지만. 확실히 이번 도쿄편은 이전보다 책이 두꺼워졌다. 묵직하다. 그만큼 가격도 상승. 역시 글은 너무 적다. 하이델베르크 편에 비해 산문이 더 늘긴 했다. 나는 왜 하이델베르크를 담은 책처럼 도쿄를 담은 책을 그럭저럭 만족하지 못하는걸까. 이런 결론까지 내렸다. 아무래도 앞으로 쭉 나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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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키핑 - 이건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서재를쌓다 2008. 8. 6. 02:20
하우스키핑 메릴린 로빈슨 지음, 유향란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구절을 한 군데만 말해보라고 한다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소설에 나오는 두 소녀, 언니와 동생, 그러니까 루스와 루실이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그들은 외로웠으므로 아주 늦게까지, 어둠이 꽁꽁 언 호수 위에 소리 없이 내려 앉을 때까지 빙글빙글 스케이트를 탔다. 같이 타던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두 사람만 남을 때까지. 내가 좋아하는 구절은 바로 이 부분이다. 루스와 루실이 어둠이 내려앉은 호수 위에서 마을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하는 생각들. 이건 정말이지 따'듯'한 문장이다. p.49-50 은 외로움에 관한 책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이 책에는 온갖 외로움들이 나열되어 있다. 외로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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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어 - 2008 新별주부전 즐기기극장에가다 2008. 7. 30. 18:46
'두웅- 이게 뭔 징소리여. 촌스럽게 영화 시작하면서 징소리는 뭐다냐' 식의 추임새부터 시작해서 '입소문 좀 많이 내 주소. 요즘 그런 말 하면, 아이쿠 인터넷에 악플이 얼마나 무서운줄 모르는겨, 얼른 와. 그기 뭐가 어때서' 식의 추임새로 막을 내리는 영화. 두둥- 영화 를 보고 왔다. 일단 강추. 시사회에 당첨됐는데 몸 상태도 안 좋고, 날씨도 너무 더워서 신촌까지 갈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갈까말까 일백번 망설이다가 결국 갔다.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도착해서 봤는데, 안 왔으면 후회할 뻔 했다. 오길 잘 했단 생각을 영화보면서 한 열 번쯤 한 것 같다.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액션영화인데 내가 싫어하는 잔인하고 무자비한 욕설이 난무하지 않는다. 신명난다고 해야할까. 아, 이 영화의 배경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