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해당되는 글 231건

  1.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2 2017.10.15
  2. 사랑과 순례 2017.09.12
  3. 모든 일이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시작되었다. 2017.08.03
  4. 마음 8 2017.08.02
  5. 사랑한다면 스페인 2017.07.25
  6.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28 2017.06.06
  7. 골목 바이 골목 6 2017.05.07
  8. 침묵의 소리 2017.05.05
  9. 베를린 일기 2 2017.03.09
  10. 분노 2017.03.01




   여행을 좋아하는가. 사실 나는 이 질문에 대해 고민 해왔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많은 여행자들이 돌아오는 날 무척 아쉽다고 하는데, 내 기억을 더듬어 보면 돌아오는 것이 다행인 날들이 많았다. 이만 하면 돌아가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날들이 많았다. 내가 여행지와 진정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계획을 짜는 중일 때나 (사실 계획도 잘 짜지 않는다) 여행 중일 때보다, 돌아와서 일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돌아와서 그곳의 이야기와 역사가 더 잘 읽히고, 보이고, 들린다. 남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글을 읽어 보면 그렇지 않아서 늘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남들의 여행은 떠나 있는 순간 전부가 늘 행복하고, 축복이며, 즐거워보였다. 나는 늘 그렇진 않았으니까. 많은 순간 행복하고 즐거웠지만, 모든 시간이 그렇진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고, 저녁 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일정이 버거울 때가 있었는데, 큰 돈 들여 이 곳에 왔으니 나가야지하고 움직일 때면 이것이 진정한 휴식인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내가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면서 조금씩 느리게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점점 깨닫고 있다. (나이 때문일까 흑흑)


   여행기도 좀더 솔직하게 쓰고 싶고, 좀더 솔직한 여행기를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책을 만났다. 속초의 동아서점에서 만든 '아주 사적인 속초 여행지도'를 얻기 위해 샀는데, 불광문고에서 여행서 두 권 이상 구매하는 사람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이 책과 다른 여행책을 샀는데, 둘다 그런 책이었다. 행복 일색이 아닌 좀더 솔직한 여행기. 이다혜 기자는 친구가 무척 좋아하는데, 씨네21의 책소개 코너에서 글을 봤을 때와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목소리를 들었을 때의 이미지가 무척 달랐다. 아무래도 이름 때문인 것 같은데, 좀더 다정한 목소리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친구는 이다혜 기자가 혼자서 잘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아서 좋다고 했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구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앞부분은 잘 안 읽히기도 했는데, 뒷부분으로 갈수록 훨씬 잘 읽혔다. 읽고 싶은 책들도 생겼다. 아래는 포스트잇 붙힌 문장들. 많이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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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났을 때만 '나'일 수 있는 사람들은 나름의 행복을 찾은 이들이겠지만, 나는 떠났을 때만 자기 자신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결국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는, 나라는 인간의 통일성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여행이다. 이곳에서의 삶을 위한 떠나기.

- 9쪽


   나는 여행을 떠나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을 싫어한다.

   우리는 여행에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 나 자신을 가지고 간다. 속옷 한 장 없이 떠날 수 있지만 나 자신이 없이는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한다.

    진정한 자아는 어디 있는가? 성지에? 템플스테이에? 인도에? 내 자아는 내 집, 내 방에 있지 않을까? 전혀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비일상의 경험을 하며 자아를 찾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런 생활을 지속해야 할 일이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왕복 여정을 떠난다면, 내 자아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의 상황을 주시할 일이다.

- 13쫄


    일행이 있는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반드시 혼자 떠나는 여행을 또 가야 성이 차는 나와(일행 유무에 따라 여행은 완전히 다른 장르로 나뉜다), 가족이 함께 가는 여행이 아니면 아예 돈이 낫다는 주위의 어머니는 얼마나 같고 다른 사람인 걸까. 어머니가 좀 더 건강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지금의 나는 더 길고 자세하게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 24쪽


   뉴질랜드 북섬 로토루아에는 와이토모 동굴이라는 곳이 있다. 반딧불 동굴이라고도 불리는데, 동굴의 바닥까지 내려가, 마지막에는 캄캄한 가운데 밧줄을 붙잡고 동굴 바닥을 흐르는 물길 위에 뜬 쪽배에 올라탄다. 모두 안전하게 탄 게 확인되면 안전요원이 설명한다. 이제부터 불을 끌 것이다. 전혀 위험하지 않다. 당신들은 옆에 만져지는 밧줄을 당겨라, 그러면 배는 조금씩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곳으로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불을 끄면 위를 쳐다보아라. 그리고 정말 완전한 소등. 암흑, 암흑? 머리 위를 보는 순간 마치 가장 공기가 맑고 빛이 없는 지역 밤하늘처럼 반딧불 수천 마리가 빛나는 장관이 펼쳐진다. 하늘은 멀지만, 동굴 천장은 멀지 않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안전요원의 설명대로 보트를 맨 줄을 당겨가며 앞으로 이동하면서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냥 여기에 더 머물고 싶다고. 밖으로 나와 숲을 산책하면서, 반딧불은 곤충 아닌가? 그 위에 수천 마리가 그러고 어쩌고 있는 거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막 떨어지고 그런 것도 있을 텐데, 어두워서 못 본건가? 으윽. 원효의 해골물 같은 경험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렇게 관광객이 드나드는 일이 반딧불이에게는 괜찮은 것일까도 근심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와 그 경험을 떠올려보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것, 그것뿐이다.

- 49-50쪽


   처음에는 정보 얻기가 수월해서 한국인이 가는 숙소, 한국인이 가는 코스를 답습하다가 그 코스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트랙을 벗어나 오프로드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만의 여행이 완전한 사이클을 갖게 된다.

- 65쪽


   굳이 혼자 떠나야 한다는 말을 할 생각은 없다. 일행을 원하는 마음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비용 문제일 경우도 있고,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맞는 줄 알았던 일행과 안 맞는다는 것을 배우는 것도 여행이 가르쳐 주는 큰 가르침 중 하나. 가족과 사는 일과 혼자 사는 일은 다를 뿐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여행도 마찬가지 아닐까.

- 100쪽


   여행이라는 것은, 우울치료제로 여행을 복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에서 더없이 넓은 동굴이고 또한 가장 작은 동굴이다. 그런 여행에서는 아무와도 친구가 되지 않는다. 나 자신과도 더 친해지지 않는다. 그냥 나를 잘 모르겠고 내가 싫은 상태로 어딘가로 갔다가 그대로 다시 돌아온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냥, 동굴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게 전부다.

- 107쪽


내가 웃은 것과 별개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귀 기울일 만한 것인데, 이런 것이다.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는 평소 습관에서 벗어나고자 멀리 여행을 떠날 필요는 없다는 것."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그 경험이 의미를 획득하고 내 자아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과정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일어난다. 집에 가만이 앉아, 내가 본 것들을 오래 지속되는 통찰력에 차곡차곡 담을 때 비로소 그 경험은 내 것이 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 154-155권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

졸리지 않으면 자지 않는다.

음악을 배경으로 쓰지 않는다. (일 능률이 안 올라서 '노동요'를 틀고 울며 일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알리라 믿는다.)

뜻을 모르겠는 여행지의 소음 속에 그냥 서 있는다.

팔과 다리의 움직임을 생각하며 바람을 느끼며 걷는다.

시계를 보지 않고 맛을 느끼며 먹는다.

지하철에서 뛰지 않는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바뀌는 신호등을 보내고, 출발하는 버스를 그냥 보낸다.

시간을 그냥 보낸다.

고작 이런 걸 하기 위해 날 찾는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지낸다. 바다를 보고 있거나 정원을 보고 있거나 그냥 잠만 자거나.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없이 살아본다. '혼자' 여행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이 시간이 내게 소중해서다. 시간을 그냥 보내기 위해서.

- 159-160쪽


   가끔은, 여행을 간다는 자체가 예쁜 쓰레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축의 중요성을 내게 설파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그럴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도 그렇다는 말이다. 의미 있고 즐겁고, 그 순간에는 무한히 행복하지만, 결국 다시 꺼내보지 않을 사진을 잔뜩 찍고, 카드명세서를 길게 만들어 억겁의 후회를 하게 만들고, 그냥 누워서 잠이나 잤으면 피로라도 풀렸을 텐데 피로를 더 쌓고 끝나는 그런.

   나에게나 의미 있는 일.

   그래, 그걸 인생이라고 부르더라고, 보통의 인생.

   나에게나 의미 있는 일.

- 167-168쪽


그리고 나중에 바티칸 기념품숍에서 천장화 그림을 하나 사가세요. 앗, 참고로 거기서 그림을 사신다고 제게 돈이 떨어지거나 하는 건 전혀 아니거든요. 사고 싶으면 사시고 아니면 안 사셔도 아무 상관 없어요. 하지만 나중에 살아가는 일이 힘에 부친다는 느낌이 들면 천장화를 꺼내 보시고 오늘 이곳에서 본 천장화를 떠올려보십시오. 그 그림을 몇 년에 걸쳐, 완성할 지 기약도 없는 채로 그려갔던 미켈란젤로를 떠올려보십시오. 그러면 아주 조금은, 더 노력해보자는 힘이 나지 않을까요.

- 202-203쪽


왜 1천 명이 넘는 학생들을 밤새 걷게 하는 학교 전통이 있을까를 불만 섞인 마음으로 지켜보던 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역시 온다 리쿠의 문장들이다. 살고 있는 동네를 80킬로미터나 걷는다는 것은, 평소에 가지 않던 지역으로 들어선다는 뜻이 된다. 간략화된 지도롸 노선도로만 세상을 바라보다가, 선과 면, 최적의 거리가 아니라 그냥 이 세계의 모든 곳에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출발한 직후에는 쉬지 않고 떠들던 학생들은 몸이 피곤해지면서 점차 말수가 줄어든다. 그리고 저마다의 생각이 잠긴다.

- 227쪽


제주도에 수국이 가장 아름답던 계절에 방문한 적이 있다. 버스정류장에서부터 집까지 30분, 등도 없는 어둑한 밤에 오솔길을 걷던 시간을 잊을 수 없다. 수국의 계절이 모퉁이 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마다, 그 고요한 만개의 풍경에 마음이 셀렌다.

- 238쪽


   서울 시내에서 이런 산책을 부르는 길은, (내 친구들은 다 나와 몇번씩 이 길을 걸었을 텐데) 경복궁역에서 부암동 주민센터까지의 길과 북촌의 골목을 에두르는 가회동 길, 그리고 시청역에서 정동길을 걸어 도착하는 경향신문사까지의 길이다. 이 길을 나란히 걸으며 대화를 하면 못 할 이야기가 없고, 흘리지 못할 눈물이 없다.

    견디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정동길을 혼자 걷는다. 비오는 주말 밤의 이 길은 조금은, 살아있기를 잘했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 248쪽


   봄이나 가을도 장소에 따라서는 성수기가 된다. 한국의 봄, 가을은 짧아서 문제지 날씨만으로도 무한히 행복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때가 된다. 이 계절의 기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영원히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스피츠의 노래 <운명의 사람> 가사를 빌면, '달린다 아득한 이 별의 끝까지'의 기분. 이런 때는 집 근처 산책을 가장 열심히 하지만, 벚꽃놀이나 단풍놀이를 위해 일본도 꽤 다녔다. 성수기에는 방 잡기도 어렵고 식당 빈 자리 찾기도 어렵고 극심할 때는 매표소 줄을 30분씩 서서 들어가 앞사람과 밀착하다시피 걸어야 하기도 하지만, 다녀보면 성수기가 성수기인 이유가 있다. 그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 있다. 사진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행의 재미라는 것은 퉁퉁 부은 발과 견딜 수 없는 허기짐, 약간 춥거나 더운 날씨와 그 모든 불평을 일시에 재우는 "와..."의 순간, 말을 잊게 하는 그 한순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에는 상쇄해야 할 고통이 없다. 원래 상쇄해야 할 고통이 있으면, 별로 안 좋은 것도 더 좋게 느끼고 그러는 법이거든. (웃음) 그리고 그런 정신승리는 어떤 경험이든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중에 남들이 보면 의미 없지만 내게는 의미 있는 사진들이 있다. 그건, 거기 숨은 이야기를, 프레임 밖의 사연을 나는 몸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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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순례

from 서재를쌓다 2017. 9. 12. 21:22




    시간이 정말 빠르다. 7권 나온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8권이다. 이번 권에서는 두 가지 마음을 담아뒀는데, 첫번째는 고독. 무뚝뚝한 것만 같은, 바삭하고 고소할 것이 분명한 잔멸치 토스트를 만들 줄 아는, 외모는 아줌마인데 아저씨라고 나오니 남자라고 믿을 수 밖에 없는, 혼자 사는 후쿠다 씨가 훗날을 대비해 유언을 남기자 사카시타 과장은 요시노에게 말한다.


- 사람은 마지막엔 누군가한테 신세를 지게 된다고. 말씀하셨잖아. 근데 외로워졌다거아 그런 건 아닐거야. 고립과 고독은 다르니까. 후쿠다 씨는 고독을 즐기지만 고립돼 있는 건 아니야.

   이 장면을 보고 되뇌였다. 고립과 고독은 다르니까. 고독을 즐기지만 고립돼 있는 건 아니야. 고독을 즐기지만 고립돼 있는 건 아니야.

   두번째는 스즈의 또다른 시작. 새로 입학할 시즈오카에 있는 중학교를 큰언니와 함께 다녀오게 된 스즈. 불안하고 초조해보이는 스즈에게 큰언니는 말한다.

- 다들 불안해 보인다. 다 마찬가지야, 스즈. 모두 똑같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누구라도 불안해서 마음이 어수선해.

    새로운 일을 앞두고 눈이 가득 쌓인 저녁의 길상사를 혼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생각이 났다. 그리고 뭔가 시작하고 싶어졌다. 지금의 나는 지겹고, 무료하다는 생각.

   결론은, 이번에도 따듯했다는 것. 또 9권이 금방 오겠지. 시간은 또 금세 흐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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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어도 사람들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변하고,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그건 단순히 책만 읽는다고 이루어지는 건 아니고, 노력하는 내가 있어야 한다는 걸. 더 잘 살기 위한, 더 좋은 사랑을 하기 위한 노력. 출판사 시절, 소윤이는 만날 때 마다 많은 걸 건네줬는데 이 책도 그 중 하나였다. 언니가 좋아할 것 같아, 읽어봐. 책은 작가의 스펙타클한 이력만큼 잘 읽힌다. 작가 셀리 킹은 잘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 된 이후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다는 결심을 하고 그 꿈을 이룬다. 이 책이 그 꿈의 실현이다. 말랑말랑한 로맨스 소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읽어 나가다 보면 깊숙한 부분들이 있다. 소설은 헌책을 파는 공간을 보여준다. 헌책들은 제각기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책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기도 하는데, 그 책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필담이 새겨져 있었다. 주인공은 번득하고 깔끔한 새 책보다 특별한 생명력이 담긴, 오래 되고 손길이 많이 닿아 뜯어져 버리기까지 한 헌 책을 소중히 여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과, 그런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줄을 긋지도 않고, 책 귀퉁이를 접지도 않는데, 이 책을 읽을 때는 그래 보았다. 그리하여 내가 밑줄 그은 문장들. 귀퉁이를 접은 페이지도 많은데, 읽은 지가 오래되어 어떤 문장이었는지 찾기가 힘이 드네. 실직의 충격을 극복하고, 첫 소설로 350페이지를 넘긴 작가에게 박수를.


- 아주 오랜만에 내가 다시 젊고 무한한 존재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p. 81)

- 누군가를 원하고 하루 종일 그 사람만 생각하고 어느새 사랑에 빠져들게 하는 갈망 말이다. (p. 127)

- 어쩐지 나 자신이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p. 133)

- 책에서는 낡은 종이와 케케묵은 약속들의 냄새가 났다. (p. 133)

- 얼른 내면의 괴짜를 찾아내, 매기. 그 괴짜마저 사랑해 주지 않는 사람이라면 절대 만족하지 마. 그가 말했다. (p. 287)

- 나는 여름이 시작될 무렵의 내가 더 이상 아니었다. 나는 끝내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p.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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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from 서재를쌓다 2017. 8. 2. 23:04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나쓰메 소세키를 온전히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 권 밖에 읽지 못했지만, 100년이 더 된 나쓰메 소세키의 이야기가 아직도 잘 읽히고 있는 이유를, 나는 나에게서 찾았다. 나는 <마음>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마음이 되었다. 책을 읽을 당시 나는 친구와 싸웠고,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너는 절대 모른다는 친구의 말이 무척이나 서운했다. 이렇게 말해도 너는 모르는 거야, 라는 마음으로 지금껏 내게 그 많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은 건가 생각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내가 아는 친구의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 '나'는 선생님을 가마쿠라 바닷가에서 만난다. 나는 선생님을 '발견'하고 단번에 마음에 끌린다. 그렇게 나의 일방적인 구애로 두 사람의 관계는 시작된다. 선생님은 자신을 찾아오는 '나'에게 이런저런 깊은 속내를 알 수 없는 말들을 던지곤 했는데, 그 속내는 하 '선생님과 유서'에서 대부분 이해할 수 있다. 선생님이 '나'에게 보내는 길고 긴 편지이자 제목 그대로 유서이다.


   '나'이니까, 등장인물 '나'에 공감이 많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나는 선생님이 거니는 마음의 길을 곧장 걷고 있었다. 선생님은 젊은 시절에 어떤 일을 겪었고, 그 일로 인해 남은 인생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애쓰지 않으며 살고 있었다. 그 일은 선생님이 시작한 일이긴 했지만, 어쩌면 선생님이 시작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혹은 시작하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끝이 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일이다. 그렇게 끝이 날 줄 알았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일이다. 그렇지만 결국 그렇게 끝나버린 일이다. 사건 이후, 선생님이 애쓰지 않으며 조용히 살아가면서 그 일들을 끊임없이 떠올려 보는 생각을 해봤다. 그 일의 시작 전 평화로운 시절로 가보기도 하고, 그 일의 시작점에 서 보기도 하고, 그 일의 중간 지점에 서서 그것을 포기해 버린 자신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일의 끝에 서 그 비극을 지켜보기도 한다. 나는 그것이 선생님의 '마음'이라 생각했다. 그건 그 당시의 나의 일이기도 해서, 나는 100년도 전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이렇게 마음이 훅 들어와 잘 읽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100년 전에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오늘날의 이야기처럼 생생한 이유에 대해. 


   책도 좋았고, 책을 선정해 준 소윤이도 고마웠다. 전주에 내려가 작은 방에 셋이서 나란히 누워 요를 깔고 잔 것과 다음날 아침, 요를 정리하고 커피를 나눠 마시며 책에 대해 나눴던 시간도 좋았다. 소윤이는 많은 <마음> 중에 현암사 책을 선택한 건 좋은 번역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좋은 번역인 건 역자의 말, 그러니까 '<마음> 번역을 마치고'만 봐도 알 수 있다. 번역가 송태욱은 역자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K에게 감정이입하여 읽으면 선생님의 또 다른 마음이 보인다." K는 선생님이 애쓰지 않고 살게 된 그 일과 관련된 인물이다. 책장에 오래 꽂아두었다가, 불현듯 다시 꺼내 K의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친구와는 그로부터 한 달 뒤에 화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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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외로운 사람이네." 선생님이 말했다. "그러니 자네가 와주는 건 기쁜 일이지. 그래서 왜 그렇게 자주 오는 거냐고 물었던 거네."

   "그건 또 왜죠?"

   내가 이렇게 반문했을 때 선생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얼굴을 보며 "자넨 몇 살인가?" 라고 물었을 뿐이다.

- 32쪽


   내게는 선생님의 대답이 너무나 평범해서 실망스러웠다. 선생님이 별로 신명이 나지 않듯이 나도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자연히 선생님은 살짝 뒤쳐졌다. 선생님은 뒤에서 "이보게, 자네" 라고 말을 걸었다.

   "그것 보게."

   "뭘요?"

   "자네의 기분도 내 대답 하나에 금세 변하지 않았다?"

   기다리려고 뒤돌아서 멈춘 내 얼굴을 보며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 86쪽


    아버지는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눈앞에 닥쳐오는 죽음 자체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이제 곧 나으면 다시 한번 도쿄에 놀러 가야지.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말이야.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살아 있을 때 해두는 게 제일이거든."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그때는 저도 데려가주세요" 하고 맞장구를 쳤다.

   어떤 때는 굉장히 쓸쓸해했다.

   "내가 죽으면 부디 어머니를 잘 모셔라."

- 126-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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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스페인

from 서재를쌓다 2017. 7. 25. 21:12


 

   그래도 나름 읽은 게 있어서, 누군가 스페인 여행 어땠냐고 물어보면 나는 바르셀로나를 다녀왔다고 대답했다. 그런 주제에 바르셀로나에서는 장난감 파는 가게 주인에게 아 유 스페니쉬? 라고 물어봤다. 주인은 웃으면서 대답해줬지만, 가게를 나온 뒤에야 아차, 싶었다. "바르셀로나에는 스페인 사람이 없다. 그저 카탈루냐 사람만 산다.(p.20)" 카탈루냐 사람들은 지금도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책은 바르셀로나에서 시작해 카다케스와 피게레스에서 끝난다. 바르셀로나에서 시작해 돌고 돌아 바르셀로나 인근에서 끝나는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앞두고 <사랑한다면 이탈리아>를 읽으며 너무나 좋았던 동생이, 내가 바르셀로나에 있는 동안 작가와의 만남에 참석해 사인까지 받아줬다. 다녀오면 읽으라고. 다녀왔고, 읽었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여행을 가기 전에 읽는 것이 더 좋겠고, 만일 진짜 가기 전에 읽었다면, 그러니까 숙소를 결제하기 전에 읽었다면 한 도시 정도 이동을 했을 것 같다. '헤밍웨이 산책길'이라 이름 붙여진 길이 있는 론다가 궁금해졌다. 해질녁 높은 곳에 위치한 산마을 소도시의 풍경도. 역사 이야기가 많아 좋다. 


   책을 읽으면서 상상해본 것들.

오페라 돈 카를로

고야의 말년.

돈키호테 완독.

론다의 절경.

알람브라 아벤세라헤스 천장.

카다케스, 달리와 로르카의 달빛수영.


  그리고 포스트잇을 붙인 이야기.

  고야는 평생 2,000점에 가까운 작품을 남겼다. 행여 병을 이기지 못하면 죽었다면 고야는 아마도 귀족에게 아첨하며 살던 화가로만 남았을 터다. 청력을 잃은 고야는 보는 눈이 달라진다. 달콤한 소리가 사라진 그의 세상은 온통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화사하고 말랑말랑했던 화풍을 거두고 우리의 고야는 부조리한 세테를 고발하는 풍자화가로 돌아선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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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시간 새벽 2시 20분. 정말정말 오래간만에 잠이 오질 않는다. 사실 아까 한 차례의 고비가 찾아왔는데, 영화를 보던 중이었고, 내일 쉬는 것이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러고나니 잠이 달아났다. 한때 내가 사랑하던 새벽 시간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열 두시 되기 전에 잠들어 푹 자는 것이 가장 큰 행복. 간만에 새벽의 행복을 맛보고 있다. 잠이 확 달아나버려 아예 일어났다. SNS에서 오지은이 알려준 뒤로 냉밀크티를 종종 해먹는데 맛있다. 우유에 홍차잎을 가득 담아 냉장고에 밤새 넣어두기만 하면 된다. 나는 단 걸 안 좋아해서 시럽도 안 넣고 그냥 마신다. 내일 아침에 마셔야지. 그러고 물을 끓여 차를 우려냈다. 우유도 살짝 섞었다. 노트북을 켜고 책장에서 책을 가지고 왔다. 올해 시작하며 읽었던 책. 소설 속 계절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사실 빗소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서울에는 큰 비가 오지 않을 것 같다. 시원한 장대비가 내일 쉬는 내내 내려주면 좋을텐데. 오늘은 퇴근을 하고 합정의 중고서점에 들러 책을 여러 권 팔았다. 다 팔고 이만 삼백원의 현금을 받았다. 가지고 간 책 중 한 권은 매입을 못한다고 했다. 직원이 말해서 보니 음료자국이 책귀퉁이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더라. 아무래도 유용할 것 같아서 어제, 아니 그제 마트에서 아이팟 셔플을 샀는데, 그 가격을 충당해야 한다. 정말 뜻밖에도 자주 애용하던 블로그 의류 마켓에서 그동안 잘 모르고 받았다던, 자기네 이익으로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던, 카드 수수료를 돌려준다고 했다. 이렇게 저렇게 모으면 셔플 가격이 나올 것 같다.

    내게 귀중한 새벽 시간이 있었을 즈음엔 돈은 없고 시간은 무척 많을 때여서 매일 도서관에 갔더랬다. 읽고 기록을 남기는 일이, 아무 대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을 때였으니까 소중했다. 그나마 이것이라도 하고 있다, 라고 스스로 위안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반납을 해야 하니까, 언제고 읽어보고 싶은 좋은 구절들은 표시해뒀다가 다 기록해뒀었다. 나중에 읽어보니 참 좋더라. 그때보다 시간은 없어지고, 돈이 좀더 생기자, 도서관까지 가는 일이 귀찮아서 읽고 싶은 책이 있음 무조건 사게 된다. 그러다보니 기록하는 일에 게을러지고. 돈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은데, (무척 좋았지만 한번으로 되었다) 그때의 기록에 대한 집착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리하여, 잠이 깨어버렸고, 내일은 황금같은 공휴일이고, 빗소리를 좀더 기다려보자 생각하며 좋았던 구절들을 옮겨 적어본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추천받은 대로 참 좋은 책이었다. 좋은 기록을 남기고 싶었는데, 미루다 미루다 구체적이었던 마음들이 둥글둥글해져 버렸다. 흠. 이 소설을 생각하면 나무들이 무성한 좋은 숲길을 걷고 싶어지고, 방금 끓인 물로 만든 몽글몽글한 밀크티에, 지금 막 구운 "밝고 마른 햇볕 냄새가 나는" 스콘을 잼과 크림을 듬뿍 발라 먹고 싶어진다. 좋은 스승을 만나고 싶어지고, 지금 내게 중요한 일들이 훗날 희미하게 잊혀지거나 되려 선명하게 새겨지겠구나 생각도 한다. 사실 나는 이 책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이력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작가 소개에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은 이렇게 축약된다. "인간을 격려하고 삶을 위로하는 건축을 추구하는 노건축가와 그를 경외하며 뒤따르는 주인공 청년의 아름다운 여름날."

*

선생님은 산책을 가신 것 같다. 밤의 숲에서 차가워진 공기가 망사문을 통해 천천히 들어온다. 여름 별장은 다시 조용해진다. - 9쪽

우체통 바닥에 편지봉투 떨어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남았다. - 17쪽

   나는 나한테 배정된 이층 서고에 짐을 갖다놓고는 양말을 벗고 맨발이 되어보았다. 나무 바닥이 차가워서 기분이 좋다. 여름 내내 맨발로 보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가운뎃마당에 면한 작은 유리창을 열자, 눈앞에 커다란 계수나무가 보였다. 늦게 온 치프 격인 가와라자키 씨 차가 계수나무 밑을 빙 돌아서 주차하는 참이었다.

  모든 유리창이 열리고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여름 별장이 천천히 호흡을 되찾아간다. - 27쪽

  런던 식료품 가게 로고 마크가 작게 인쇄된 캔버스지 에코백은, 물렁하고 부드럽게 손에 녹아들었다. 여러 번 빨았는지 가게 전화번호는 거의 지워져 있었다. 이 에코백은 내가 모르는 마리코의 시간을 알고 있구나. - 97쪽

   "남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돼오는 것을 좋아해. 빙빙 돌리거나 복잡한 것은 싫거든. 새들도 세력 범위라든다 사랑이라든가 심플한 것을 노래하니까 순진하고 예쁜 소리를 내는 게 아닐까?"

    커브가 끝나도 똑바른 길이 앞에 펼쳐지고 뻗어 있다. 마리코는 다시 가볍게 액셀을 밟는다.

    "순진하고 밝은 것은 탁해지지 않아."

    "밝고 낭랑하게 노래하지 않는 새도 있어요." - 98쪽

나는 이 너무 조용하지 않은 고요함이 좋았다. 우치다 씨 목소리도 큰 상수리나무 부근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에 겹쳐서 아마 나한테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 104쪽

   선생님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 아이들에게도 똑같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평소에 속한 사회나 가족과 떨어져서 책의 세계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아이가 그것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살아가는 데 하나의 의지처가 되겠지. 독서라는 것은, 아니 도서관이라는 것은 교회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혼자 가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야." - 180~181쪽

   여름 별장에 들어가자, 유리창이 열려 있는데도 벌레 소리가 썰물처럼 사라졌다. 식당에는 우치다 씨가 구운 어린양고기 로스트 냄새가 로즈마리 향과 섞여 여유롭게 떠돌고 있었다. 암흑은 집 밖에 머물러 있었다. 집은 옛날부터 이렇게 어둠의 압력에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존재했을 것이다. 난로 앞 소파에는 이구치 씨와 마리코, 그리고 선생님이 계셨다. 식당에 들어가자 마리코가 우리를 보고 "어서 와"하고 말했다. 이야기 소리가 한순간 그치고 세 명의 시선이 우리에게 부어졌다. - 248~249쪽

    선생님은 노안경을 벗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봤다.

    "한 점의 틈도 그늘도 없는 완벽한 건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런 것은 아무도 못 만들어. 언제까지나 주물럭대면서 상대방을 기다리게 할 만한 것이 자신한테 있는지, 그렇게 자문하면서 설계해야 한다네." - 286쪽

   "그게 재미있는 점인데 뻔뻔한 꽃에 한 해 줄기나 잎사귀는 패기가 없어요. 줄기에 맥이 없거나 잎사귀와 잎사귀 사이가 이상하게 휑하거나 뭔가 전체적으로 감칠맛이 없고 힘이 없지요. 꽃이 에너지를 다 뺏어간 것처럼. 큰비라도 내리면 제일 먼저 고개를 숙여버리고, 한 송이만 잘라서 꽃병에 꽂으면 그 순간 의기소침해진 것처럼 생기가 없어지죠. 뻔뻔한 꽃들은 떼를 지어요. 고독에 약하지." - 316쪽

  "꽃은 그냥 사랑하면 되지만, 계통을 더듬어가거나 번식하는 지역이랑 기후를 조사하다 보면 그런 모양이 된 이유와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돼요." - 320쪽

   "우치다는 그만 됐어요. 요컨대 사카니시 군에게 선생님이 반한 거니까." 후지사와 씨는 그렇게 말하고 명랑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결정하는 것은 슌스케 씨가 아니잖아요. 사카니시 군하고 마리코지. 성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둘 다 아직 황당할 만큼 젊으니까."

  나는 되돌릴 말을 못 찾은 채, 후지사와 씨 댁을 나왔다.

  "잘 가요. 오늘은 고마웠어요."

   헤어질 때 후지사와 씨는 여느 때의 웃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 369쪽

*

  스콘 먹는 부분들은 다 좋은데, 너무 길어서 옮길 수가 없네. 맛있는 스콘 먹을 때마다 이 소설 생각이 날 것 같다. 그러면 집에 와 다시 그 구절들을 들춰볼테지. 오늘 새벽시간이 찾아온 덕분에 좋은 기운이 담긴 곳을 발견했다. 여름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D-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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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바이 골목

from 서재를쌓다 2017. 5. 7. 22:57





   연휴 첫날, 앞으로의 3일을 알차게 보내보겠노라고 일찍 일어나 조조영화를 보러 갔더랬다. <나의 사랑, 그리스>였는데, 동생이 말한대로 영화는 제목만큼 밝지 않았고,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기까지한 우리의 IMF 생각이 났다. 동생은 그때 엄마가 휴지를 사주지 않아서 예전에 엄마 가게에서 쓰려고 만들어놓은 냅킨을 일일이 펴서 일을 봤었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그 시절 혼자 서울에서 흥청망청 산 것만 같아 미안했다. 우리는 이제 그 이야기를 하며 조금은 웃을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의 그리스는 어떨까,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영화를 보고 생각해봤다.


   영화를 보고 나와 걷는데, 너무 더웠다. 아직 겨우 5월인데, 벌써 한여름이 성큼 온 것만 같았다. 결국 걷다가 뭔가 시원한 걸 마셔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가게를 지나고, 늘 지나면서 궁금했던 맥주가게 앞에서 망설였다. 이제 오픈하시는 것 같은데. 용기를 내서 들어가서 안주 없이 맥주만 마시고 가고 되겠느냐고 물었다. 주인 아저씨가 그럼요, 라고 말했다. 나는 카스 생맥주를 한잔 시켰고, 이층에 올라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불광천을 걸을 때마다 언젠가 저 2층에 앉아 맥주를 마셔보리라 생각을 했던 장소였다. 그러니까 연휴 첫 날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와 진정한 낮맥을 했다는 이야기. 맥주가 들어가니 알딸딸해지는데, 2층 열어놓은 창밖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래, 나는 카스 생맥이면 되는 사람인 것이다. 취기가 오르고 바람이 불면 그곳이 어느 곳이든 최고가 되는, 쉬운 사람인 것이다. 아, 좋았다. 한 잔 더 마시고, 읽던 책도 다 끝내고 나와서 집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남은 이틀은 미세먼지 핑계대고 집안에서 뒹굴대면서 티비를 보고 잠만 자댔다는 이야기. 아, 시간을 돌리고 싶다. 김종관 감독의 <골목 바이 골목>은 아쉬운 구석이 많은 산문집이었다. 물론 저때 맥주 마시면서 읽을 때는 최고였다.

*

   인파에 몸을 실을 때도 있지만 집으로 가기 위해 그 풍경을 벗어나냐 할 때가 있다. 데이비드 린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군중들을 역류하자면 나란히 걸을 때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단지 몸의 방향을 바꿨을 뿐임에도 순간 나는 외지인이 된다. 거주지에 있지만 관광객이 된 듯한 시선으로 행진에 압도된 채 군중을 가로지른다. 수많은 얼굴들이 다가온다. 표정들이 다가온다. 끊임없이 스쳐가고 나는 너무 많은 얼굴을 본다. 내가 아는 얼굴, 혹은 나를 아는 얼굴이 다가올 수도 있다. 나는 갑자기 그 많은 얼굴들을 볼 자신이 없어진다. 큰길의 차도를 걷다가 가장자리로 간다. 좁게 이어진 골목들을 타고 집으로 갈 요량으로 대로를 벗어나 보지만 골목 입구에는 의경들이 진을 치고 있다. 저 조용한 골목의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의경들에게 내가 이곳의 거주인임을 증명해야 한다. 나는 함성 가득한 그곳에 서서 의경들로 메워진 골목의 입구를 지나기 위해 지갑 속 신분증을 꺼냈다.
- p. 60

   얼마 후 사진을 현상해보니 사진 안에는 밀랍 신사의 표정도 그가 보던 사진도 없었다. 찍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담지 못한 실패한 사진이었다. 하지만 더러 실패한 사진도 이야기를 한다. 그들과 나 사이의 먼 거리를, 액자 너머의 세상을 보는 그들보다 더 먼 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같은 장소에 있음에도 경계면 너머에 이를 수 없었던 그곳에 대한 기억을.
- p. 89-94
 
   (...) 우리는 별말 없이 걸었고 때로는 많은 말을 하기도 했다. 흑해 너머에는 터키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 앞에서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 길을 말수 없는 그 소년과 걷다 보니 문득 끝없는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그럭저럭 잘 견뎌낸 한 사람의 표정이 보였다. 좋은 계절에 있지만 머물지 않는 사람들의 산책 속에서, 머물고 있지만 가장 먼 곳까지도 갈 수 있는 그의 외로움이 멋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 p. 133-136

   내가 섬에 머물렀던 날에는 해질 무렵부터 많지 않은 비가 내렸다. 관광객들을 위한 거리는 텅 비고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은 문을 닫았다. 몇 개의 선술집에만 등이 달려 있고 마을 사람들과 료칸에 하루 묵어가는 손님들만 남는다. 취한 연인들이 술집에서 나와 숙소를 찾는다. 하루를 머물고 하루라는 시간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그다지 갈 데 없는 거리를 반복해서 걷는다. 누군가는 고급 료칸을, 누군가는 주머니 가벼운 여행객을 위한 작은 료칸을 찾는다. 맥주 한 잔에 적당한 산책을 하고 주머니 가벼운 나를 위한 료칸에 들어가 내가 머무는 섬과 그 너머의 바다와 그 너머의 도시를 보았다. 바람결에 어디선가 대나무 풍경이 노닥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길 끝에서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번지고 사그라졌다. 여행객을 가워 놓은 섬은 비밀스럽다. 밤이 지나고 나는 작은 소란이 들리는 방 안에 누워 가로등 불빛이 스며든 천장을 보았다. 세 시간의 거리, 하지만 제법 먼 곳에 숨어들어 여행의 첫날을 맞이했다. 작은 섬, 작은 방에, 완전히 갇힌 채로.
- p.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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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소리

from 서재를쌓다 2017. 5. 5. 18:41




   <사일런스>는 기다리던 영화였다. 작년에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고 여러 이미지들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을 했다고 해서 그 부분들이 어떻게 영화화되었을까 궁금했다. 영화는 역시 원작의 기대에 미치진 못했지만, 꽤 괜찮았다. 영화를 보고 기사를 찾아보니 마틴 스콜세지는 오래된 가톨릭 신자이고, 젊은 시절에 <침묵>을 읽고 그때부터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여러 번 무산이 되고 그의 나이 60대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나이가 들고 세상을 보는 눈이 젊은 시절보다 깊어진 뒤에 만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내 생각인지 마틴 스콜세지의 말이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로드리게스 신부 역의 앤드류 가필드는 늘 얼굴이 어린 이미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영화에서 그를 좀더 다르게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데, 후반부가 이상한 거다. <침묵>은 저런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결말을 재해석해서 이야기를 좀더 늘어뜨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출간되자마자 사다놓았다가 잘 읽히지 않아 책장에 꽂아뒀던 <침묵의 소리>생각이 났다. 이 책은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가 사람들이 <침묵>을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제목 그대로 '신이 침묵하고 있다'라고 읽어내는 걸 보고 그렇지 않다고 '신은 침묵하지 않고 그 침묵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해주기 위해 그의 말년에 펴낸 책이다. 소설 <침묵>의 집필 과정 등에 대한 에세이와 <침묵>과 관련된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은 잘 읽히지 않았는데, 에세이는 잘 읽혔다. 그리고 소설의 중요한 결말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결말이 관리인의 일지 형식으로 되어 있어 많은 나라에서 책을 출간을 할 때 해설 부분으로 생각을 하고 싣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그 일지 부분이 <침묵의 소리>에 실려있다. 그 일지 부분이 바로 영화의 마지막 결말 부분이다.


   책을 읽어나가는데, <침묵>에서 잊혀지지 않던 이미지들이 있었던 것처럼, 영화 <사일런스>의 한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로드리게스 신부, 그러니까 앤드류 가필드가 관청으로 고문을 받으러 떠나는 신자들에게 재차 낮게 읊조리던 장면. 밟으세요, 밟으세요. 순교하지 말고, 신의 조각상을 발로 밟고 배교하라는 것. 그 장면으로 앤드류 가필드를 다시 보게 됐다. 언젠가 나가사키에 가보고 싶다. 엔도 슈사쿠가 주로 머물렀던 호텔을 검색해봤는데, 오래된 호텔이었다. 높은 곳에 있어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좀 힘든 곳이란다. 그 대신 나가사키 전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그 호텔에 머무르면서 나가사키 야경을 내려다보며 소설 <침묵> 속 인물들을 떠올려 보고 싶다. 신을 믿는 신자들에게 신을 새긴 조각상을 발로 밟아도 괜찮다고 했던 신부, 박해받는 이국의 땅에서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던 신부, 갖은 고문과 집요한 강요로 인해 개종을 했지만 마음 속 깊이 자신의 신을 섬기고 있었던 신부. 그리고 끊임없이 배교하고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던 신도.


*


   내가 취재하러 가는 목적은 사실을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면 이미 충분히 조사해놓았기에 머릿속에 이미 들어가 있다. 내가 그곳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은 나의 주인공들이 일찍이 거기서 맡았던 공기의 냄새나 귀로 들었던 바람 소리, 눈으로 보았던 태양빛과 풍경인 것이다.

   그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확인하면서 '그는 이 바람소리를 이렇게 들었겠지.' '틀림없이 이 바다를 이렇게 보았을 거야'라고 상상한다. 그것이 소설을 쓸 때 자신감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나가사키를 다시 찾아감으로써 내 안의 주인공들의 모습을 차츰 분명하게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 p. 27-28


   그러나 "왜 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는가?"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냥 소설가의 감이겠지요."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가란 자기 자신을 투영하기 쉬운 인물을 직관적으로 알아내기 때문이다.

- p. 40


   여담이지만, 일찍이 내 소설 중 하나가 대학 입학시험 문제에 출제된 적이 있었다. 작품의 일부가 지문으로 인용되고 나서 "주인공은 어떤 기분으로 그러한 행위를 하였는지, 다음의 보기에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항을 선택하시오"라는 질문이었다. 나중에 나도 문제를 풀어 보았지만,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대학이 정답으로 인정했던 답은 전혀 달랐다. 즉 나는 모든 항목을 다 선택했는데, 대학은 단 하나의 항목만이 정답이라고 정해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말해 두거니와, 그 글을 쓴 작가는 대학교수가 아니라 바로 나다.

- p. 77


   아마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가장 적합한 거리나 장소를 그 어딘가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마음의 열쇠가 꼭 들어맞는 열쇠 구멍을 일본 혹은 외국의 어딘가에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예를 들어서 나는 가나자와를 좋아한다. 집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아름다우며, 음식도 맛있고, 정서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좋아하는 도시'에 불과할 뿐이다.

   오카야마에 비세이쵸라는 마을도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그곳은 어머니의 고향이다. 하지만 '나 자신의 거리'라는 느낌은 없다.

   '자기의 거리'란 자기 자신이 지금까지 품어왔던 문제, 지금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 이런 것들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장소이다.

   호리 타츠오는 자신의 내면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를 나카노 현의 오이와케에서 찾아냈다. 나에게는 그것이 나가사키이다.

   어떤 사람에게 나가사키는 단지 하나의 관광도시일지도 모르고, 또 어떤 사람에게 나가사키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도시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경우에는 각자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나가사키는 내가 소년 시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끌어안고 왔던 문제를 모두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마치 맛도 있고 영양분도 풍부한 음식처럼.

   나가사키에 가면 그 거리가 내게 끊임없이 문제를 내주고 말을 건네준다. 그것은 그러나 나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나가사키를 보아야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각자만의 문제가 있고, 또 자신만의 마음의 장소가 있다.

- p. 89-90


   일본에 신의 복음을 전하러 온 성자인 기리시단 신부(바테렌)는 왜 소박한 일본 신도들에게 가혹한 박해를 참으라는 지혜를 강요했을까? 어째서 박해를 참으면서까지 천국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 왜 가혹한 박해를 벗어나기 위해서 배교하나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신이 만일 자비의 신이라면 이런 경우 배교했다고 해서 벌을 주실 리는 없지 않겠는가?

- p. 108


   그들은 여기에서 '어머니'의 이미지를 보았다. 그들은 '아버지'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배교자인 그들에게는 자기의 어두운 과거를 알고 있는 데우스가 무서웠다. 이때 그들에게 있어서 데우스는 추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틀림없이 순교한 서구의 선교사의 이미지로서 느껴졌을 것이다. <순교의 권유>를 그들에게 말하면서 자기 자신도 고문을 참고 견디면서 신앙을 관찰했던 이들 서구 선교사가 그대로 데우스의 이미지와 겹쳐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강한 선교사나 강한 신도는 배교자에게 진노하고, 배교자를 책망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엄격한 '아버지' 대신에 자신들을 용서해주고, 그 상처를 같이 아파해주는 존재가 필요하였다. 분노의 아머지가 아니라 자상하고 부드러운 어머니를 필요로 했다. 개신교도들에게 성모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에게 있어서는 성모는 중개자로서의 의미가 있다. 성모에게 드리는 기도 속에 여러 번 "중개"라는 말이 들어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성모는 배교한 자들과 그들의 자손에게 자신들을 위해 빌어 주시는 어머니가 되었던 것이다.

- p. 114


   지오로 일행이 돌아간 뒤에 방에 돌아왔다. 술 탓일까, 열이 나서 창문을 열자 큰 북을 두드리는 듯한 바닷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움은 깊숙이 깔려 있었다. 바닷소리가 어두움과 정적을 한층 깊게 만들고 있는 듯 하였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밤을 보냈지만 이처럼 깊은 밤은 드문 일이었다.

- p,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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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일기

from 서재를쌓다 2017. 3. 9. 23:13




   이 글은 밀크팬이 없어 양은냄비로 끓인 핸드메이드 밀크티를 마시며 쓰고 있다.


   베를린에 가볼까 했다. 그렇다면 관련된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 검색을 했는데 이 책이 나왔다. 최민석 작가가 '고독한 도시' 베를린에 90일간 머물면서 쓴 일기다. 평에 엄청 웃기다는 얘기가 있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웃겼다. 어떤 페이지는 정말이지 너무 웃겨서 책을 덮고 소리내서 엄청 웃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너무 웃겨서. 그리고 역시 사람은 일기를 써야 돼, 라는 결론을 내렸다. 최민석 작가도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 않는 고독한 도시 베를린에서 가을과 겨울을 보내면서 '한 번 써볼까' 하고 독자에게 선물받은 다이어리가 마침 있어 쓰기 시작한 일기다. 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하루도 빠짐없이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쓰다보니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처음엔 혼자였던 작가에게 꽤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고독한 도시 베를린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일기를 읽어보면 꽤 많은 일들을 했다. 이렇게 완성된 90일의 일기는 근사했다. 매일매일은 별 게 아닌데, 그 매일매일이 500여 페이지로 모이니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작가만의 근사한 어떤 것이 되었다. 나는 그 어떤 것이 부러워, 나의 일상도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500페이지쯤 모아보고 근사할 것이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베를린 일기 표지색을 닮은 대망의 2017년 스타벅스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겨우 이틀치를 썼을 뿐이다. 젠장.


   나의 이 게으름은 "밥 먹고 바로 자면 소 된다"의 소만이 이해할 것이다.


   아, 버섯머리, 택시국제호구 등등의 이야기는 정말 웃기다. 버섯머리 일기가 끝나고 문제의 그 버섯머리 사진이 나올 때는 정말 책을 덮고 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흐흐흐흐흐흐-



   포스트잇,


   고독은 현재 진행형일 때는 처참하지만, 과거 완료형일 때는 낭만적일 수 있다.

   자발적인 이 일기가 그 낭만의 증거가 되길 바란다.

   일곱 번째 날이었다.

- p. 42


   생각보다 체코인의 생활이 풍요롭지 않은 것 같다. 숙소를 제외한 물가가 예상보다 훨씬 낮다. 나보다 나이가 약간 많아 보이는 한 남자가 주변을 살피다, 거리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털어 주머니에 넣었다. 서울에서 평소에 치르는 값의 반, 혹은 1/3을 치르고 먹고 마셨다.

   어쩌면 나는 이곳에서 부자일지도 모르겠다. 전혀, 기쁘지 않았다. 순간 "왜 독일은 맥주가 싸느냐?"라는 내 질문에 대한 학과장의 대답이 떠올랐다. "맥줏값이 비싸지면,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요!" 노동자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땀의 가치가 다이아몬드보다 빛난다는 전설이 이 세상에도 통용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프라하는 살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흔한 수사지만, 슬프도록 아름다운 도시다.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열여섯 번째 날이다.

- p. 85


   유럽인들이 왜 눈인사를 하고, 즉각 동거를 하고, 시와 소설을 들고 다니고, 사소한 모임에 모이는지 알겠다. 이들은 춥고 외로운 것이다.

- p. 97


  오늘은 학원을 개강한 이틀째다.

  나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모두가 실업자였다.

  그들은 모두 어렸고, 모두 가난했다.

  나는 이차와 삼차를 샀고, 전철이 끊겨 택시를 타고 왔다.

  택시비는 서울에서 수원까지 가는 비용 이상이 나왔지만 나는 친구를 사그ㅟ었다.

  모두가 나를 좋아했다.

  Tonight everyone liked me.

  구것이 전부다.

- p. 104


   지난 한 달간 나는 生에서 人間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아직 생의 종착역까지는 많이 남았다. 내 열차가 너무 많은 승객들로 대화조차 불가능한 것은 곤란하지만, 아무 승객도 없이 그저 운행 일정을 지키기 위해 달리는 열차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종착역은 같지 않더라도,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한 명의 승객이 있었으면 좋겠다.

   젠장, 이곳도 가을이다.

   서른한 번째 밤이다.

- p. 162


  살면서 여러 번 느꼈지만 영어를 전혀 못 하면 인생의 범위는 60억분의 5천만, 즉 120분의 1로 줄어든다. 달리 말해 전 세계의 범위가 1이라면, 인생을 살며 분노를 느끼든, 좌절을 겪든, 정부에 불만이 쌓이든, 혹은 주머니에 돈이 쌓이든 간에 상관없이, 그저 120분의 1의 세계에만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영어를 그럭저럭 구사하면 자신이 머무를 수 있는 세계의 범위는 2분의 1로 확장된다. 스페인어까지 하면 5분의 3, 그 외 불어, 독어, 이태리어까지 하면 자기 세계의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는 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은 고단한 이방인의 삶이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애석하지만 이것이 현실이기에, 다시 영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해 볼까 생각 중이다. 그다음에 어중간하게 끝내 버린 일본어를 다시 해 볼까 싶다. 프랑스엔 별 관심이 없으니 통과하고, 이태리어와 독어는 (양국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다음이다(냉정하게 말하지만, 그만큼 쓸 일이 없는 것이다).

  두번째 일기장을 다 썼다.

- p. 251-252


   확실히 동독 출신 독일인들은 세속적인 욕심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상을 준다(한국 나이로 예순인 그는 유행이 지난 청바지를 매일 입고, 배낭을 직접 메고 다니며, 학교에서 독일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지낸다). 그러면서 그는 "연금이 나올 때까지 계속 일해야 해" 하며, 내 식사 값까지 치르고 연구실로 갔다.

   (...)

   돌아오는 길에 캠퍼스 한구석에 대나무가 심겨 있었는데, 그는 잠시 멈추더니 "으음, 한국 냄새"하며 공기 중에 떠다니는 대나무 향을 흠뻑 마셨다.

- p. 281


   나는 이제 무엇에도 크게 들뜨지 않거나, 무엇에도 심드렁하거나, 무엇이든 이미 최상의 경험을 해 봤을 나이에 도달했는지 모른다. 혹, 그런 나이가 아니라면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겪고 즐기고, 고통받았는지 모르겠다. 그 탓에 크게 화를 내거나, 크게 실망할 일은 없지만, 이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 p. 302


  돌이켜 보니, 일기를 쓰는 시간이 큰 힘이 됐던 것 같다.

  돌아갈 날까지 일기를 계속 쓸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실수하면 인정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사과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감사하고, 남은 시간을 소중히 쓰기로 했다.

- p. 319


   포르토는 실로 마음에 들었다. 베니스처럼 아름답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친절하고 여유가 넘쳤으며, 적당한 자존심과 적당한 관용을 선보였다. 거리엔 따뜻한 햇살이 넘실거렸으며, 믿기 어렵게도 나는 1월 1일에 노천카페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식사를 했다. 많은 시민들이 시 당국이 설치한 의자에 앉아 햇살을 쬐고 있었다. 아마 훗날 내가 불순한 예술적 반역 행위를 저질러, 모국의 정부로부터 추방을 당한다면 그때 나는 포르투갈의 포르토를 자발적 유배지로 선택할 것이다. 사람들과 풍경과, 바다와 강과, 건물의 적당한 낡음과 거리의 적당한 어지러움이 내 마음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 p. 426-427


   어젯밤 택시 기사에게 요금을 두 배로 지불한 것 빼고는 모든 것이 순조롭다(역시, 유럽은 방심할 수 없는 곳이다. 그래도 나폴리나 상하이만큼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 p. 450


   많은 사람을 만났고, 해일처럼 그 만남들이 모두 지나가니, 결국 비수기의 해변처럼 쓸쓸하고 차가운 일상만이 남았다. 다시 할 일은 없어졌고, 어쩌면 1년 내내 이런 날들이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인가'하는 상대성이지만, 크게 보자면 지금 맞은 한 해가 여생과 별 차이 없을 지도 모른다.

- p.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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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from 서재를쌓다 2017. 3. 1. 18:31






"아빠, 내가 다시로 군 데리고 들어갈게."

2권까지 다 읽고 요시다 슈이치 인터뷰를 찾아봤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

- 당신은 왜 소설을 쓰는가?

- 언어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이 소설을 통하면,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 사람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3월에 개봉하는 모양이다. 사실 소설보다 영화가 더 좋을 것 같다. 영화 캐스팅을 알고 소설을 읽었더니 영화의 장면들이 눈에 그려졌다. 내 상상 속에서는 동성애 연기를 하는 츠마부키 사토시가 꽤 잘 어울렸다. 두꺼운 두께로 두 권이나 되지만, 가독성이 상당하다. 잔인한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최근 곁에 나타나 아주 친해진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뉴스에서 보도하는 용의자와 생김새가 상당히 비슷하다. 나는 그 사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사람의 말을 백퍼센트 신뢰할 수 있을까?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랬을 거다. 의심하고, 또 의심했을 것이다.



포스트잇,


(...) 그런데 막상 앉아보니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해서 다시로가 그 자리에서 도시락을 먹고 싶어하는 심정도 이해가 갔다.

   아이코가 손수건을 풀어 헤치고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닭튀김, 새우튀김, 미트볼, 계란말이, 잔멸치를 뿌려놓은 밥.

   아이코가 옆에 있는 다시로에게 시선을 돌렸다. 흥미 없어 보였던 것치고는 도시락 내용물을 꽤나 찬찬히 살펴본다.

   "이거 먹어." 아이코가 닭튀김을 손으로 집어서 다시로의 도시락에 넣어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 1권, p.41-42


   아스카는 그런 남자들과 10년 가까이 생활하던 무렵에 료를 만났다. 일하고 있던 캬바쿠라에 불쑥 들어온 손님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료가 가게 문을 열기 몇 초 전, 아스카는 '아,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도 뭐가 왔는지는 몰랐지만, 그런데도 뭔가가 왔다는 것만은 강렬하게 느껴졌다.

- 1권, p.79


   무인도가 점점 더 멀어졌다. 이즈미는 남자가 있었던 폐가에서 밤을 맞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별이 총총 빛나는 오키나와의 밤하늘은 깊고 깊다. 지금까지 봐왔던 평범한 밤하늘이 밀푀유처럼 켜켜이 겹쳐진 것처럼 보인다. 이즈미는 언제나 그 속에 자기 팔을 넣어보고 싶었다. 끝도 없이 깊이 빠져드는 팔에 따끔따끔한 별들의 감촉이 느껴질 것 같았다.

- 1권, p.132


   "어?"

   "아냐, 아무것도."

   나오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돌아섰다. 유마는 눈을 감고 지금 본 나오토의 얼굴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는지 시험해 보았다. 늘 특징이 없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특징이 없는 얼굴에는 특징이 없는 얼굴 나름의 특징도 있었다.

- 1권, p.151


   "그렇군요. 그럼,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복도로 나오는 순간,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복권에 당첨된 백만 엔을 숨길 장소를 찾아 헤매던 가족들의 옛모습이 떠올랐다. 어제까지는 없었던 것인데도 막상 손에 들어 오자, 이제는 그 돈이 사라질까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 1권, p.222


(...) 다쓰야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대만고무나무에 기대어 있는 이즈미만 색칠이 안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슬펐던 것은 기다리고 있던 와카나가 학교 건물에서 나온 순간, 마치 마지막 힘까지 짜내듯 미소 띤 표정을 지으며 와카나에게 달려가는 이즈미의 모습이었다.

- 1권, p.302


   결국 소중한 사람이 생긴다는 의미는 지금까지 소중했던 것이 이제 소중하지 않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중한 것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줄어가는 것이다.

- 2권, p.35


   '널 믿어도 되겠지?'

   나오토에게 전하고 싶었던 간단한 말이 그것이라고 알아차렸다. 그러나 말로 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웠다. 유마는 오렌지를 나오토 손에 건네주고, "됐어. 말하고 싶지 않으면"이라며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 2권, p.45


   친구가 가자고 청하면 클럽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지난번에는 아침까지 마시며 떠들썩하게 즐기다 그 클럽에서 알게 된 남자와 호텔에 갔다. 나오토를 만나기 전의 생활로 돌아가면, 다 잊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오토를 만나기 이전의 생활과 나오토를 모르는 생활은 다르다. 이미 만난 이상, 안 만난 것으로 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뼈저르게 깨달을 뿐이었다.

- 2권,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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