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오랜만에 편지 드립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회사를 그만둔 후 전혀 예상도 못했던 가게를 시작하고 시간은 어느새 물 흐르듯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새로운 만남도 조금은 쓸쓸했던 헤어짐도 있었습니다. 오래전 몇 번이나 이 마을에서 벗어나려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태어난 후 줄곧 집에만 머물렀던 자신이 답답하고 화가 나서 풀죽어 있던 적도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랬던 저에게서 갑작스레 어머니가 떠나시며 내치듯 혼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살아왔던 장소에서 시작된 새로운 시간 가운데 저는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날 묶어두었던 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선생님, 저는 너무 진지하기만 했습니다. 이제부터 조금 불량해지렵니다. 자신이 먼저 자유로워져야 다른 이들과의 시간이 비로소 시작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알고 있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좋아하는 대로 가게를 해 나가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불량한 사람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를 다시 찾아주세요. 분명 무언가가 변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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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이어 '변한다', '변하고 있다', '변했다' 라는 말에 마음이 들뜬다. 물론 그 앞에 '좋은 사람으로', '좋은 사람으로 인해',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가 붙는다. 이 말에 마음이 들뜨는 이유는 좀더 좋은 사람으로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자연스럽게 변하고 싶기 때문에. 이 드라마에 만삭인 임산부가 식사를 하고 갑자기 잠이 쏟아져 주체할 수 없어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만삭도 아니고, 임산부도 아니지만 지난 일요일에 잠이 쏟아져서 예매해뒀던 두 편의 영화를 취소했다. 그리고 잠이 쏟아지는 사이사이에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를 다시 봤다. 다 보고 나니, 드라마는 이런 이야기더라.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였다. 나는 어머니처럼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없을까봐 두렵다. 어머니와 나는 다른 사람이다.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어머니와 나는 절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는 나대로, '좋은' 사람이 되면 되는 거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하면 되는 거다. 당신이 틀린 것이 아니다. 좋은 이야기는, 그것을 마주하는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것이 내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보는 이유이다. 오늘도 야근을 했지만, 내일은 금요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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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데이즈

from 티비를보다 2014. 10. 19. 20:38

 

 

 

    연인이 된 카이와 사에. 사에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몇년 전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우연히 둘은 만나게 되고, 모난 성격의 사에를 카이는 때로는 이해하고, 때로는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마음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사에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그녀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노력한다. 사에는 그 마음을 잘 알지만, 그래서 너무 고맙지만 자신의 현실 때문에 행여 그에게 누를 끼칠까봐 더 모나게 행동하기도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해가고, 좋아하는 마음을 키워간다. 카이에겐 똑 부러진 연상의 여자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마음만 각자 키워간다.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들키지 않을 리가 없다. 바라는 미래가 달라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된 카이. 두 사람은 그 마음을 대놓고 들켜버리고, 어느새 연인이 된다.

 

    어느 날 레코드 가게에 가게 된 두 사람.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카이를 사에는 멀리서 지켜본다. 레코드 가게를 나서며 사에가 카이에게 묻는다. 그 곡 어떤 느낌이야? 카이는 당황한다. 어떤 느낌이지? 어떤 느낌. 밴드 곡이었는데, 카이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한다. 애절한 느낌이 드는 곡이야. 사에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카이인지 사에인지 누군가가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손가락을 아래로 하고 코까지 일직선으로 떨어뜨린다. 그건 일본어로 소-. 그래, 라는 뜻의 수화다. 그날부터 카이는 그 곡의 느낌을 그림을 그린다. 사에를 위해. 나중에 완성된 그 그림에는 커다란 유리병이 있고, 그 병에 빨간 장미꽃이 꽂혀 있다. 그 병 안에 남자와 여자와 등을 마주하고 앉아 있다. 쿠루리의 곡이다. 드라마를 보고 이 곡을 계속 듣고, 가사도 찾아봤다. 그러다 맥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그 그림이 완전히 이해가 됐다. 아, 하고 혼자서 지하철 안에서 웃었다. 마음이 이상해졌다. 막 설레였다.

 

    이 드라마를 왜 이제 보게 된걸까. 예전에 한번 보려고 했었는데, 사에가 너무 모난 성격이어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1회만 보고 그만두었던 것 같다. 끝까지 보니 그건 그녀의 성격이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될까봐 항상 노심초사했던 착한 아이였다. 그러면서도 왜 나한테만 이런 불행이 와야 하냐고 참지 못하고 화를 내기도 했던 현실적인 아이였다. 어떤 순간은 좋아한다고 말하고, 금방 마음을 돌려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아이였다. 그건 그녀의 진심이 아니었다. 카이는 그 마음을 다 알았다. 좋아한다고 말할 때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도 그녀를 다 이해했다. 그런 사람이 있는 사에가 부러웠다.

 

    카이. 그러니까 사토시는 이 드라마에서 어찌나 빛나던지. 진짜 최고. 사토시는 진짜 사랑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사에에게 지었던 그 표정들. 안타깝고 서운하고 서글퍼하던 그 표정들. 너는 이제 나랑 헤어지고 서른 두살이 되었을 때, 20대에 이런 저런 여자들을 만났고 그 중에 귀가 아픈 아이가 있었지, 라고 회상하게 될 거라며 이별을 통보하는 사에에게, 그럴리는 없다고, 귀가 아픈 아이가 있었지, 그 이후의 이야기는 없다고, 스물 두살의 그 이야기만 무한반복할 뿐일 거라고, 말하며 지었던 그 진짜 스물 두 살의 표정. 그 표정들 때문에 지난 일주일 간 마구 설레였다. 사에, 카이.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야. 사에와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어 수화를 조금씩 배워오던 오렌지 데이즈의 친구들도. 이제라도 만나서 정말 다행이었다. 수화는 외국어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 나라에 가기 위해, 그 나라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 처럼. 사에를 만나기 위해 배우는 또 하나의 언어. 손으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언어. 드라마에서 수화를 쓸 때 무척 좋았다. 덕분에 사토시의 목소리도 더 좋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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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이 언니에게 완전히 반했다. 이름은 치아키. 나이는 46살. 독신이다. 직업은 드라마 프로듀서. 이야기는 치아키가 카마쿠라라는 도쿄 근교 도시의 오래된 주택을 구입해 살면서 시작된다. 이 언니는 이쁘고, 당당하고, 예의도 바르다. 할 말은 확실하게 하고, 남의 이야기도 잘 들어준다. 그래서 이 언니의 집에는 상담손님이 제 집인양 끊임없이 방문해서 며칠씩 자고 가기도 하고, 맥주를 그냥 막 꺼내 마시고, 주인없는 집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기도 한다. 완벽해보이지만 이 언니에게도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거의 먹여 살린 연하의 남자가 포스트잇으로 이별을 고하기도 했고, 카마쿠라에서 다 같이 살자는 술자리 친구들의 말을 믿고 바로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결국 치아키만 카마쿠라에 집을 얻었다. 이 언니가 정말 멋진 건,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좋아하게 된 남자가 불치병에 걸렸었고 재발하면 살지 못한다는 고백을 해도 아직 병에 걸린 게 아니잖아, 하면서 힘을 준다. 옆집의 히키코모리 여자아이가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때에도, 치아키는 웃으면서 고마워, 라고 말한다. 사귀는 사람의 형이랑 술에 잔뜩 취해 키스를 했다고 생각했을 때나, 결국 하게 되었을 때도 정색하는 남자를 보고 자신에게서 그런 순수함은 언제 빠져나가버린 걸까 생각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46살이 된 여자와 50살의 남자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이 때문이 아니다. 둘이 함께 있으면 이야기가 끊임이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구 갈궜다. 겉으로는 기분 나빠하면서도, 속으로는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스페셜 드라마를 보니 여자는 남자와 이야기를 하면 여동지와 얘기를 하는 느낌이라고 하고, 남자는 남동지와 이야기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뻥 뚫린 곳에서 한참을 떠들더니 남자가 말했다. 속이 시원해졌다고. 두 사람은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을 줬다. 출근길의 전철에서 우연히 마주치면서, 퇴근길의 개찰구에서 여자가 카드를 찾지 못해 가방을 뒤적거리는 걸 매번 보면서, 전철역에서 걸어나와 기차길을 함께 건너고 골목길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느 날은 동네 술집에 들러 걸쭉하게 술을 마시면서, 매일매일 말꼬리를 잡으며 옥신각신 다투면서, 술에 잔뜩 취해 평소보다 열배는 더 분위기 업 되어 큰소리로 웃고 서로의 몸을 찰싹거리면서. 여자의 생일 날 남자는 46개의 초를 준비한다. 여자는 큰 거 4개, 작은 거 6개나, 이쁜 숫자초를 준비하지 이게 뭐냐고 투덜거린다. 남자는 그건 초의 갯수만큼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보내는 박수라며 전혀 창피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여자는 남자의 51살 생일을 51개의 초로 축하한다. 흠. 46개나 51개나 초에 불을 붙이면 케잌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한 회 한 회 지날수록 이야기며 인물들이며 좋아져서 나름, 아주 천천히 아껴봤다.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 사랑스러운데, 치아키의 친구들도 그렇다. 치아키와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술을 마신다. 셋 다 독신. 술을 마시며 결혼해서 누군가 옆에 있는 삶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이제 아이는 가질 수 없을 삶에 대해 아쉬워하기도 한다. 23살 여자아이의 케잌을 보고 딱 절반이구나 하고 자신들의 나이를 곱씹기도 하고, 선택받지 못한 채 몇 바퀴를 계속 돌다가 결국 버림을 받는 회전초밥집의 3종모듬초밥접시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치아키가 그런다. 드라마의 마지막에. 앞으로 사랑이 다가오면 그게 우리 삶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말자고. 마지막에서 두번째 사랑이라고 생각하자고. 외로움을 감추지 위해 사랑을 하진 말자고. 사랑이 없어도 멋진 인생은 분명히 있다고. 46살 독신. 인생에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롭지 않은 어른따윈 없다고. 자신의 미래를 사랑하자고. 이 언니,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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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 마이 홈

from 티비를보다 2013. 11. 24. 15:41

 

 

 

   어젯밤, 드디어 마쳤다. 고잉 마이 홈. 처음 방영을 시작했을 때 시도했었는데 매번 2시간 가까이 되는 1화를 넘기지를 못했다. 가을. 뭔가 마음에 진하게 남을 드라마를 보고 싶었다. 가볍지 않고 여운이 남는 그런 이야기. 우리 집에 여덟 개의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오르면 가슴 정도까지 오는 복층 공간이 있다. 여름에는 더워서 올라갈 생각을 못했는데, 조금씩 쌀쌀해지자 밤이 되면 올라갔다. 따뜻한 이불을 깔아놓고 그리고 덮고서는 노트북을 켰다. 그렇게 1화부터 천천히 봤다. 늘 한 회를 무사히 넘기지 못했다. 어떤 날은 반쯤 보다 잠들었고, 어떤 날은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켜자마자 잠들었다. 같은 회를 여러 날에 걸쳐 봤다. 그렇게 조금씩 보니, 그 시간들이 기다려졌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집에 가서 얼른 씻고 올라가서 드라마를 보며 잠들자 생각했다. 초겨울이 왔다, 드디어 마쳤다. 이야기가 끝났다.

 

   어제는 전날의 숙취로 낮에 세시 넘어서까지 계속 잠을 잤다. 그러고 나니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새벽에 혼자 말똥말똥했다. 비장한 각오로 노트북을 켰다. 마지막 회다. 이 드라마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이야기가 시작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그동안 서먹하고 어색하고 짐을 떠밀기만 했던 가족들이 서로의 기억들을 조금씩 되찾아가며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하고, 걱정하고, 이해하게 되어가는 이야기, 라고 나는 이해했다. 아버지를 미워했던 아들은 어느 밤, 아버지의 죽은 얼굴을 마주하고 혼자 흐느끼며 운다. 서럽게 운다. 엉엉 소리내며 운다. 자기 곁으로 오는 아내에게 말한다. 더 많이 얘기했으면 좋았을 걸. 아내가 손수건을 건네며 미소 지으며 말한다. 더 할 얘기 없다고 했었는데 말이야. 남자가 말한다. 후회인가. 아내가 말한다.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말이잖아. 남자가 말한다. 그럼 후회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네. 아내가 팔짱을 끼며 말한다. 그렇네. 나쁘지 않을 지도.

 

   다다이마.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이 말은 집에 돌아왔을 때의 인사말. 장례식에 다녀온 미야자키 아오이가 아무도 없는 집에 대고 '다다이마'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장례식을 함께 다녀온 아버지가 가만히 딸의 얼굴을 들여다 보다 지금 한 말을 다시 해보라고 한다. 다다이마, 이 말 다시 해 봐. 딸이 웃으며 말한다. 아버지한테 한 말 아니야. 엄마한테 한 거야. 엄마는 죽었다. 아빠가 말한다. 그래도 좋아. 다녀왔다는 말 좋네. 그리고 함께 웃는다. 다다이마. 다녀왔습니다.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정원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던 나무 의자.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친구의 손자가 만들어온 녹기 전의 눈사람.

   쿠나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보라색 꽃으로 만든 한 다발의 꽃.

   나무와 단풍과 집과 산의 풍경들이 지나가고 드라마가 끝난다. 끝났다. 

 

   영화 <라스트 나잇>에서도 그 장면이 좋았다. 다툰 두 사람이 새벽에 일어나 화해를 하며 남편이 아내에게 만들어 주던 오믈렛. 계란을 풀고 우유를 넣어 부드럽게 만들어 접시에 담아 내밀던 그 새벽의 온도. 이 드라마에서도 함께 먹는 음식의 모습이 자주, 그리고 정성스럽게 비춰진다. 마지막 장면도 그렇다. 베란다의 문을 고치다 베란다에 갇혀 버린 남편. 계절은 가을을 지나 겨울이다. 잠옷 차림의 남편은 밖에서 베란다 문을 두드린다. 똑똑. 똑똑. 똑똑똑. 안에서 딸과 함께 잠을 자던 아내가 나와 문을 열어준다. 어떻게 된거야? 그리고 파와 브로콜리를 볶고 우유를 넣은 따뜻한 스프를 만들어 준다. 두 사람은 그 음식을 만드는 동안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나눈다. 당신 전봇대 역할을 했단 말이야? 사람이 아니잖아, 하면서. 아내가 남편에게 스프 그릇을 내밀고, 남편이 말한다. 잘 먹겠습니다. 참고 참아 마지막 회까지 보길 잘했다. 처음 기대했던 것처럼 잔잔하고 여운이 짙은 드라마였다. 다다이마, 라고 인사말을 건넬 수 있는 가족에 대해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생각했다. 그리고 1화를 다시 틀어놓고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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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로역전번외지

from 티비를보다 2013. 9. 28. 08:53

 

 

    

    오래된 지인이 소개해주는 영화나 책이나 드라마는 결국에는 좋다. 오래 알고 지내는 사람은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이니, 그 사람이 좋다고 한 것이 내게도 좋은 건 당연한 일. 그런데 반신반의할 때가 있다. 처음이 힘든 종류의 것들. Y언니가 추천해 준 이 드라마도 그랬다. 처음에 재미가 없고, 30분 여 남짓의 1회를 다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Y언니가 미리 해준 충고. 1회 보고, 2회 정도만 보고 나면 그 뒤로는 재밌게 술술 넘어갈 거라고. 그렇게 인내의 1회와 2회를 지나니 정말 언니의 말처럼 재미있는 시간들이 찾아왔다. 마지막회까지 금방 봤다.

 

    마호로에서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다다와 교텐이 있다. 두 사람은, 아니 실질적으로 에이타인 다다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해 의뢰가 들어오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심부름을 수행해 내려고 한다. 마츠다 류헤이인 그의 파트너 교텐. 드라마가 진행될 수록 교텐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나사가 다섯 개 쯤 풀린 듯한 교텐. 그의 특유의 웃음이 있다. 장난스러운 듯하면서 어이없는데 재밌다는 듯 뱉어내는 웃음. 그것도 중독이다. 다다의 일에 심드렁한 듯 보여도 항상 함께하는 교텐. 무심한 듯 하지만 속이 깊고 따뜻한 남자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사건을 맡으며 일어나는 소소하고 조금은 따듯한 이야기들이다. 생각보다 어둡진 않다. 보면서 마츠다 류헤이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고, 에이타는 정말 연기를 잘하구나 생각했다. <최고의 이혼>이랑 같은 분기 드라마인데, 그 찌질남을 떠올릴 수 없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연기해낸다. <최고의 이혼>의 여배우가 마지막 두 회에 걸쳐 나와서 신기했다. 귀여운 드라마였다. 영화를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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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협에서 맥주가 나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동네 두레생협에 갔는데, 거기가 아닌가봐. 맥주가 없어서 그냥 이것저것 구경하고 나왔다. 플레인 요구르트도 맛나 보이고, 아버지 두부도 맛나 보이고, 여러가지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빈 손으로 나왔다. 파리빠게뜨에 들러 호밀식빵을 사고, 정육점에 들러 왕란 한 판을 샀다. 시금치도 사고 싶었는데, 짐이 너무 많아 멀리 가질 못하겠어서 실패. 아무래도 생협에서 팔던 치즈는 사 올걸 그랬나보다. 만원이 넘어서 바로 진열대에 놓아버렸는데, 정말 건강해 보이는 동그랗고 커다란 치즈 덩어리였다.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까지 이 드라마를 봤다. 제목이 아주 길다.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이게 다 제목이라니. 흐- 보는 내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입 안에 침은 고이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주인공. 주인공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신다. 어머니는 동네에서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다. 마침 회사에서 엉뚱한 부서로 발령이 나고,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어머니의 가게를 운영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찌어찌하여 용기를 내어본다. 리모델링을 하고, 자신 있는 메뉴부터 시작해보기로 한다. 메뉴는 건강한 샌드위치와 정성스런 스프. 오늘의 샌드위치 두 가지가 있고, 빵은 세 가지 중에 고를 수 있다. 스프는 하나. 오늘의 스프. 조금 엉거주춤해보이기는 하지만, 성실하고 편안한, 키가 큰 여자아이와 함께 일을 하게 된다. 가게는 개업하자마자 잘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 들러 빵과 스프를 먹고 고개를 끄덕이며 행복한 미소를 보인다. 오이시이. 주인공과 키가 큰 여자아이는 그 날 준비한 재료가 다 떨어지면 가게 문을 닫는다. 어떤 날은 앞집에 들러 커피를 함께 마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조금 더 걸어가 맛있는 안주에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눈다. <수박>의 대사처럼. 나 이렇게도 괜찮을까요? 그러면 그러니 좋아, 라는 식이다. 두 사람은 오래 알고 지내 온 사람처럼 그렇게 한 테이블에 앉아 한 사람은 맥주를, 한 사람은 청주를 마신다. 각자의 취향대로, 각자의 방식대로. 1시간씩 총 4화인데, 마지막 회에서는 왠지 눈물이 고였다. 사람들이 맛있는 표정을 보일 때, 늘 혼자 술을 마시던 주인공의 식탁에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 별 것 아닌 말에 뒤로 넘어갈 듯 커다랗게 웃으며 고기와 술을 마실 때. 그래, 이렇게 사는 게 맞지. 원하는 대로. 원하는 속도대로. 누구도 틀린 사람은 없지. 느리다고 뭐라 하면 안 되는 거지. 이런 생각들.

 

    샌드위치들이 다 맛있어 보였지만, 제일 간단해 보이기도 했고, 맛있어 보이기도 했다. 요즘 몽글몽글한 스크램블이 참 좋다. 내가 하면 다 말라 버리지만. 드라마 속 샌드위치는 이렇다. 센 불에 데친 시금치를 볶는다. 소금도 넣고 후추도 넣고, 적당하게 간 하고. 스크램블 에그를 만든다. 몽글몽글, 촉촉하게. 빵 위에 스크램블을 얹고, 시금치 볶은 걸 얹고, 그 위의 치즈, 그 위에 빵. 시금치는 없으니 그냥 몽글몽글 촉촉한 스크램블 만들어서 먹어보려고. 왠지 아침이랑 어울리는 샌드위치 같다. 맛있어야 하는데. 빨리 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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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이혼

from 티비를보다 2013. 6. 24. 09:48

 

 

 

    2013년 1분기 드라마. 인터넷 검색하다가 어떤 평을 보고 한번 봐볼까 생각이 들어 보기 시작했다. 1회 보자마자 멈출수가 없어서 어떤 날은 2회 연속 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금방 끝내기 아쉬워 아껴 봤다. 그리고 에이타의 팬이 되었다. 이런 찌질한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다니. 게다가 찌질한데도 사랑스럽다니. <그래도 살아간다> 작가 작품인데, 이제 이 작가의 드라마는 챙겨 보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걷는 것에서 시작해 걷는 것으로 끝난다. 밤에 두 사람이 오랫동안 함께 걷는 이야기가 두 번 나오는데, 그 부분이 참 좋았다. 남자와 여자는 큰 지진이 있던 날, 그래서 지하철도 버스도 다니지 않던 날, 모두가 걸어서 이동을 하던 날, 우연히 만나 집까지 함께 걷는다. 두 사람은 일 때문에 안면만 있는 정도였다. 지진으로 불안해하고 있을 때, 우연히 길에서 만난 거다. 남자는 말한다. 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안심이 되었다고. 여자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사소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걷는다. 헤어지기 아쉬워 타코야키를 사 들고 여자의 집에 간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마지막 회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세 시간 동안 함께 걷는다. 걱정하는 부모님에게 예전에도 이렇게 오래 걸었던 적이 있다고 말한다. 남자는 그때 지진이 아니었다면, 그 밤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이 결혼하는 일도, 성격이 맞지 않아 결혼생활 매일매일 다투지도, 그래서 결국 이혼을 하는 일까지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혼을 하고 난 뒤에 깨닫는다. 지진이 난 밤 만나 다행이었다고, 매일매일 티격태격거리며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좀더 배려해 주지 못한 자신을 되돌아본다. 여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자신을 나무란다. 그래서 남자는 용기를 내서 여자를 열차 안으로 끌어당기고, 다시 시작해보자 한다. 세 시간을 걷는 동안 남자와 여자는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시시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해가 뜨기 시작할 때 도착한 메구로 강. 집 앞의 강을 바라보며 다행이다, 생각하고 함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간다.

 

   드라마의 배경도 좋고.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다. 검색해 보니 벚꽃이 피면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라고. 주민들이 밖으로 나와 벚꽃나무 아래서 맥주를 마신다고 한다. 캐릭터들도 사랑스러웠다. 벚꽃을 좋아해 벚꽃나무가 가득한 곳에 시집와 기쁘다고 말하는 여자. 여자는 술을 좋아하고, 요리는 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괴로워'를 입에 달고 다니는 남자. 매년 좋아하는 동물 순위를 비밀수첩에 적어놓고, 벚꽃 피는 게 싫다고 말한다. 그리고 겉보기에는 최상의 커플이었지만 실은 엉망진창이었던 다른 커플까지. 남자주인공의 직업도 평범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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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한 시간

from 티비를보다 2012. 9. 9. 20:12

 

 

 

문에 달린 종이 울린다.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마스터가 그 쪽을 보고 인사한다.

어서 오세요.

손님이 카페를 가로질러 한 면이 커다란 통유리인 바 자리로 걸어 들어온다.

마스터가 말한다.

저희는 커피를 손님이 직접 갈 수 있게 해드리는데, 그렇게 하시겠어요?

손님이 그러겠다고 한다.

마스터는 핸드밀과 한 사람 분량의 커피콩을 내어놓는다.

손님은 자신이 마실 한 잔 분량의 커피콩을 간다.

커피 가는 소리.

마스터가 커피 내릴 준비를 한다.

하얀 천으로 된 드립퍼를 힘을 줘 한번 쭉 짜고, 커피 잔을 뜨거운 물에 데운다.

손님이 자신이 간 커피를 마스터에게 건네주면, 마스터는 커피를 내린다.

 

마주보는 통유리창 너머로 단풍이 한창이었는데, 어느 순간 첫 눈이 내렸다.

폭설이 쏟아지는 날도 있었다.

그 사이 마스터와 그의 아들은, 각각의 자리에서 폭설을 견뎠다.

11화. 마지막 회에서야 비로소 두 사람이 만난다.

 

가을이나, 겨울이나 강릉의 커피집에 한번 더 다녀와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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優しい時間 - 明日

from 음악을듣다 2012. 8. 28. 21:03

 

 

明日

 

 

요즘 보는 드라마. 출근길에, 퇴근길에 보고 있는데 하루종일 커피마시고 싶어진다. 그냥 커피 말고, 누가 내려주는 정성스런 커피. 1화에서는 늦가을 혹은 초겨울 즈음이었는데, 어느새 한겨울이 되었다. 눈이 아주 펑펑 내린다. 그 풍경에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아, 좋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 좋다. 그래, 나는 아무래도 봄.여름.가을보다 겨울이 좋다. 이 곡에 임형주가 직접 작사해서 부른 노래도 있는데, 그 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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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잔뜩.

 

 

 

    금요일. Y언니를 만나 세계맥주를 잔뜩 마셨다. 칼로리 폭발 햄버거와 감자튀김과 함께. 세계맥주를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계산을 하니까 코로나에서 나온 핸드폰 충전기를 하나씩 줬다. 모든 기종의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는 충전기였다. 우와, 우리는 코로나는 마시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세계맥주를 마시면서 이 드라마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이야기를 했다. 언니가 이 드라마를 나한테 추천해 준 게 2009년.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언니의 말에 따르면, 언니는 나에게 이 드라마와 <사랑이 하고 싶어x3>을 추천해줬는데 내가 이 드라마는 보다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면서 그만뒀단다. <사랑이 하고 싶어x3>은 끝까지 다 보고, 감동하고, 이 드라마 제목을 사랑이 하고 싶어 곱하기 삼이라고 말하면 화내고. 언니, 사랑이 하고 싶어 곱하기 삼이라니요. 사랑이 하고 싶어 사랑이 하고 싶어 사랑이 하고 싶어 이렇게 다 불러줘야 해요, 이러면서. (이제는 곱하기 삼이라고 불러줘도 된다. ㅎ)

 

   <수박> 같은, <섹시 보이스 앤 로보>같은 드라마를 해주지 않으니까 이 드라마를 다시 다운받아 봤다. 보다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래, 이 장면은 기억난다. 어, 나 그때 꽤 많이 봤네. 이러면서 5화 정도까지 드문드문 봤다. 꾸준히 본 건 아니고, 지하철에서 책 읽기 싫을 때, 음악도 듣기 싫을 때, 졸리지도 않을 때, 켜놓고 조금씩 봤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마지막 9화를 봤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전철을 타고 오는데 오늘 마지막회를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에서 반쯤 보고, 집에 와 샤워를 했다. 시원해진 상태로 이불을 깔고 누워 나머지 반을 봤다. 늦은 시간이었는데, 엉엉 울었다. 정말 많이 울었다. 어떡해, 어떡해, 이러면서. 이렇게 사라지면 남겨진 사람들은 어떡해, 그러면서. 내가 일찍 알아보지 못했을 뿐 정말 좋은 드라마였다. 처음에는 떠난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였다. 충분한 이별의 시간을 보내고, 앞으로 건강하게 잘 살아가기 위한 이야기였다. 아, 훌륭하다.

 

   십년 전, 하늘을 날던 한 비행기가 사라졌다. 주인공 마유즈미는 이 사고로 사랑하는 친구와 애인을 잃었다. 그 후 마유즈미는 집-회사, 그리고 미래에 타게 될 연금만을 기다리고 있다. 특별한 일 없이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삶 속에서 위안을 얻고 있다. 그런 주인공 앞에 십년 전에 사라졌던 비행기가 나타난다. 사라졌던 친구와 애인도 나타난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마유즈미의 10년 전 별명은 얏치. 그녀의 친구의 별명은 앗치. 얏치와 앗치가 10년 후에 만난다. 38살의 얏치와 28살의 앗치로. 상부의 지시로 일을 끝내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 38살의 얏치에게 28살의 앗치가 말한다.

- 늙었구나. 10년이면 그렇게 되는구나. 10년 따위에 지면 안되는 거야. 땀을 내라고. 마음에 말이야. 마음에 땀이 안 흐르잖아. 인생을 버리면 안돼.

그러자 38살의 얏치가 말한다.

- 18살에서 28살의 10년과 28살에서 39살의 10년은 다른거야. 같은 10년이어도 다른거야.

 

   그런데 38살의 얏치가 얼마 뒤 알게 된 사실. 이들이 10일 뒤면 다시 사라질 거 라는 거. 그걸 28살의 앗치도 알게 된다. 자신이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가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알고 앗치는 잠시 실의에 빠지지만, 곧 기운을 차리고 38살의 얏치에게 말한다.

- 내가 사라진 후 많은 것들이 유행했겠지. 나는 분한데, 얏치의 10년에 내가 없었던 것이 분해. 옆에서 여기저기 마구 끌고 다니고 싶었는데. 28살에서 38살까지의 시간을 함께 지내고 싶었어. 난 억울하니까 얏치가 남겨진 시간을 풍요롭게 해주고 싶어. 얏치의 시간이야. 나하고 테츠가 없어지면 얏치는 어차피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갈테니 그때까지는 내가 옆에서 얏치에게 남겨진 시간을 최고로 멋진 시간으로 만들어 줄 거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둘도 없이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어 줄 거야.

 

   그리고 얏치의 남자친구 테츠도 감동적이다. 누군가 얏치가 왜 좋냐고 묻는다. 그 바보같은 여자를 왜 좋아하느냐고. 그러자 테츠가 말한다.

- 그 친구가 아니면 안된다구요. 둘이 함께 있으면 너무 자연스럽고 그 친구가 있으면 안심하고 숨쉴 수 있다고 할까. 즐거웠었죠.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어요.

 

    드라마가 한 회, 한 회 진행될수록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하루씩 줄어든다. 무뚝뚝하고 사무적이기만 하던 38살의 얏치도 조금씩 변한다. 조금씩 즐거워지고, 조금씩 행복해진다. 두 사람이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 즐겁게 지내면 지낼수록 점점 쓸쓸해진다. 한번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 눈 앞에 있다는 현실이. 그런데 다시 잃어버린다는 현실. 너무나도 엉뚱한 이 현실을.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쓸쓸해져 온다.

 

   그리고 마지막회. 이 드라마는 이 마지막 이십분을 위한 드라마다. 정말 얼마나 슬픈지 이 이십분 내내 엉엉 울 수 밖에 없다. 이들은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방법을 찾아본다. 다시 돌아가도 죽지 않을 방법을 마지막까지 찾아본다. 결국 성공했을까. 어쨌든 이들은 이별한다. 다시 이별한다. 10년 전의 갑작스런 이별과는 달리, 이번에는 충분한 (아니다, 그걸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별의 시간을 가진다. 서로를 좀 더 이해하려 한다. 좀 더 표현하려 한다. 내가 너를 이렇게 아껴. 니가 사라진 후 이렇게 힘들었어. 그리고 찾아 온 이별의 시간. 주인공 뿐만 아니라 이 비행기에 탔던 다른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 사랑하는 이에게 다시 찾아온 이별의 시간. 드라마는 이 이별의 시간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처음 비행기가 다시 나타났을 때 38살의 얏치는 기운 넘치는 이십대(정확한 나이는;; 오빠인 듯 한데)의 남자친구에게 말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꽃다발을 주고 반지와 함께 사랑을 고백하려 했다. 그러자 38살의 얏치는 한 발 물러선다. 너는 지금의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28살의 나를 좋아하는 거라고. 자신은 이제 38살이라고. 달라졌다고. 그런데 이 사랑스런 드라마의 남자주인공 테츠는 마지막 9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 나는 네가 좋아. 10년 전의 네가 아니라 지금의 너를 사랑해. 38살의 너를 사랑한다.

또 이렇게.

- 나도 널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 10년 후의 널 사랑할 수 있게 돼서 좋았어. 또 만나자.

마지막은 이 인사로.

- 사요나라.

엉엉.

 

   얏치는 남겨졌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남겨졌다. 친구 앗치와 함께 길을 걷다가 조금 앞서 걸었는데, 등 뒤로 바람이 불었다. 얏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자신이 또다시 홀로 남겨졌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얏치는 남겨졌지만, 이번에는 10년 전과는 달랐다. 여전히 슬펐지만, 그랬지만, 여자는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꿈을 잃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영원히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 당신 만나서 좋았어. 같이 지낼 수 있어서 좋았어.

 

   이별의 순간, 쇼팽의 피아노 연주곡 '이별의 곡'이 흘렀다. 아, 이건 현재를 더 소중히 여기라는 드라마였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이야기였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격려하는 드라마였다. 좋은 드라마였다. 또 이런 드라마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Y언니랑 나는 세계맥주 잔을 부딪혔다. 힘내자, 우리.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어떤 이유로든 남겨진 우리들, 힘내자.

 

   여름, 바람이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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