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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래의 여자 - 이곳에 살면서 구멍에 빠지는 곤충을 기다려 잡아먹는다
    서재를쌓다 2008. 7. 18. 03:37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민음사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 제1장 첫번째 이야기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8월 어느 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되었다." 그리고 첫번째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 "이렇게 하여 아무도 그가 실종된 진정한 이유를 모르는 채 7년이 지나, 민법 제30조에 의해 끝내 사망으로 인정되고 말았다."

       <모래의 여자>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 제1장 첫번째 이야기, 9페이지에서 11페이지에 걸쳐 짧게 요약되어있다. 아니, 나는 그렇다고 본다. 실종된 '진정한' 이유는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도 나는 잘 모르겠다. 어렴풋이 알 것 같지만, <모래의 여자>를 읽지 않은 누군가가 그래, 7년이 지나게 그 남자가 실종된 '진정한' 이유란 뭐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글쎄요, 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제1장 첫번째 이야기에는 실종된 '진정한' 이유를 추측을 해 보는 문장들이 있다.

    살인이나 사고로 실종됐다면 확실한 증거가 남아 있을 것이고, 납치 같은 경우라도 관계자에게는 일단 그 동기가 명시되는 법이다(p.9)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에는 모두들 은밀한 남녀 관계 때문,이라고 상상하였다 (p.10)  세상살이에 넌더리가 나 자살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피력되었다. (p.10)

       <모래의 여자>를 읽지 않은 누군가가 내게 이 문장들을 이용해 질문한다고 생각해보자면, 이런 질문들이 되겠지. '그 남자는 살인이나 사고로 실종됐나요?' 나는 글쎄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요, 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럼 그 남자가 납치당한 건가요?' 글쎄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요. '역시 은밀한 남녀 관계 때문이었지요?' 글쎄요,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혹시 자살인가요?' 그러면 나는 또 다시 1분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글쎄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한 남자가 있다. 8월의 어느 날, 그는 실종되었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곤충채집. 그는 모래 위에서 살아가는 곤충에 관심이 많아 그 곳을 찾았다. 바다가 가까이 있는 모래로 뒤덮인 마을. 모래구멍이라고 해야 하나, 모래에 파묻혀 있는 집들이라고 해야하나. 여하튼 그 독특한 구조의 집에 단지 하룻밤 머물다 가려 했는데 믿을 수 없게도 갇혀 버렸다. 그는 이제 매일 모래의 여자와 함께 모래의 집에서 집 주위로 밀려드는 모래들을 파내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그렇게 그는 실종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는 어떻게든 이 모래의 집에서, 모래의 여자로부터, 모래의 마을로부터 탈출하려 애쓴다.

      대충의 줄거리다. 결론은 소설의 맨 처음에 제시되었으니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그는 7년동안 실종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7년동안 모래의 마을에서 탈출하지 못한 것이겠지. 그러니 이 소설을 읽는동안 궁금증은 과연 남자는 탈출했느냐, 실패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탈출 방법을 시도했으며, 왜 끝끝내 탈출에 성공하지 못했나, 에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이런 순서로 읽었다. 1장, 2장, 3장까지 한 권을 다 읽고, 마지막에 처음으로 다시 돌아와 제1장의 첫번째 이야기를 읽었다. 그렇게 읽으면 소설은 좀 더 명확하게 끝이 난다.

       일단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잘 읽힌다. 읽어갈수록 좋은 책이라는 확신이 드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모래, 라는 물질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늘 고여있는, 정지되어 있는 물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설을 읽는동안 머릿속에 그려진 노오란 모래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명체였다. 물결처럼, 바람처럼 흐르는. 그러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모래가 담겨져 있는 이미지들을 기억속에서 죄다 불러내보았다. 그 이미지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과연 모래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보이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바람에 날리고 물에 깍이며 작고 강한 생명체처럼 떼지어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이건 조금 코믹한 상상이라 이 소설과는 어울리지 않긴 하지만, 움직이는 모래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다가 영화 <미이라>까지 갔다. 그건 확실히 역동적이고 거대하고 사악한 모래의 이미지니까. 모래 입에서 검은 벌레들이 막 나오고! 흐흠.)

       마지막에 딱 한번 실종 신고 최고장에서만 이름이 밝혀지는 남자는 처음 모래마을을 찾았을 때 이런 생각을 한다. 모래땅에 사는 새로운 종을 발견해서 곤충도감에 이름을 올리자. 그렇게 곤충이란 형태를 빌려서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자. 그에겐 반영구적인 삶에 대한 바람이 있었다. 결국 모래의 마을에서 그는 정반대의 결과와 마주한다. 이 책의 끝이 남자의 나머지 생의 모습의 반복이라면 말이다. 남자의 이름은 니키 준페이였다. 하지만 모래 위의 주인공은 이름도 없이 그냥 한 남자였다. 모래 위에 새겨진 글자처럼 니키 준페이라는 이름도, 나이도, 선생이라는 직업도 어디선가 스르르 바람이 불면 금방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삶. 소설은 그렇게 끝을 맺는다. 우리들의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이.

       니키 준페이가, 아니 남자가 모래 위에 사는 곤충을 채집하려 왔을 때, 그가 열심히 찾았던 곤충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길앞잡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녀석이다. 등껍질에서 에메랄드빛이 나는 화려한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다면) 이 길앞잡이의 설명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먼저 수직으로 땅에 구멍을 파기 시작한다. 이곳에 살면서 구멍에 빠지는 곤충을 기다려 잡아먹는다." 찾았다. 바로 이 두 문장이다. 이 두 문장으로 길앞잡이의 습성도,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 소설도 모두 설명되어질 수 있겠다. 딱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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