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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 불러 터져도 좋을 행복한 만찬
    서재를쌓다 2008. 7. 6. 03:25
    행복한 만찬
    공선옥 지음/달


       사실 저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어요. 공선옥 작가가 다 차려놓은 행복한 밥상에 숟가락 하나 들고 열심히 떠 먹은 것밖에, 라며 배를 두드리기라도 해야할 것만 같은 이 기분 좋은 포만감. 공선옥 작가의 행복한 산문집을 읽었다. 읽는 내내 나는 따땃한 아랫목에 자리잡고 앉아 작가의 흙내나는 밥상을 염치없게 내어주는대로 받아 맛나게 먹었다. 됐다고, 배부르다고, 이제 더이상 못 먹겠노라고 손사래 치는 일 없이 나는 그녀가 내어주는 음식을 그릇소리가 나도록 싹싹 긁어가며 맛나게 비웠다. 그러면 그녀는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아, 이것도 있다며 구수한 냄새 그득한 오래된 부엌으로 달려가 금세 무치고 부쳐 땅내 고스란히 담긴 음식을 뚝딱 만들어왔다.
     
       그녀의 음식들은 값비싼 재료로 만든 것도 아니고, (아니다. 요즘은 웰빙웰빙해서 이런 농약도 없는 땅내나는 재료들이 더 귀하다) 화려한 장식을 해서 먹기 부담스러울 정도도 아니다. 그저 이 땅 어딘가에 뿌려놓은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잎이 난 뒤 열매를 맺은 재료들. 봄의 공기와 여름의 태양과 가을의 바람을 양분삼아 건강하게 자란 우리 땅의 먹거리들을 내 새끼 생각하며 정성스레 만들어 내어 놓은 어미의 소박하지만 무엇보다 풍성한,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이다. 아, 또 침 넘어간다.  

       엄마의 정성어린 집밥이 생각나면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스르르 넘겨 읽으면 좋을 책. 집에 먹을 것도 없고, 사 먹는 음식은 싫고, 엄마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행복한' 만찬이 아니라 오히려 '괴로운' 만찬이 되기 십상이지만 혹시나 모를 일이다. 기적처럼 누군가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를 대신해 맛난 밥상 차려놨으니 당장 달려 오라고 말해 줄지도. 내게는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 행복한 만찬을 맛나게 읽고 있던 중에 외할머니가 멀리서 커다란 택배를 보내셨다. 명절때나 먹을 수 있는(나는 절대해도 이 맛이 안나는) 밥도둑 할머니표 찌짐, 딱 먹기좋게 익은 묵은지, 싱싱하게 손질되어 있는 장어, 먹기 좋게 한번 쪄서 보내 주신 남쪽 바다의 맛난 생선들, 옥수수에 멸치에 직접 기르신 튼실한 깻잎에, 참기름내 솔솔 나는 명란젓, 짭짤한 나물, 맛나게 양념된 새우와 꽁치와 마늘, 아침에 직접 볶으셨다는 깨에다가 고춧가루, 사탕에 초콜렛까지. 이 택배를 받아들고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찔끔 나올뻔 했다. 당장 장어를 구워 깻잎에 싸서 마늘도 넣고 양념을 듬뿍 묻혀 입 안으로 쉴새없이 집어 넣었다. 정말 눈물 날 정도로 맛있었다. 그러니 공선옥 작가의 <행복한 만찬>을 펼치면 정말 마법같은 '행복한 만찬'이 당신에게도 짜잔, 배달될지도 모르니 당장 요 흙내나는 책을 집어드시길.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게 마법의 책이다.

       나는 요즘 입에 착착 달라붙는, 틀에 박힌 식상한 표현보다 뭔가 발음되어졌을 때 입안이 가득 차 오르는 풍성한 말들을 하고 싶어 책을 읽다 생소한 우리말을 만나면 수첩에 적어두고 사전을 찾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처럼. 고등학교 때 국어사전을 모조리 외우고 학교에 들어왔다는 소문이 자자한 국어선생님이 계셨다. 아나운서 외모에 단 한번도 똑같은 옷을 입는 걸 본 적이 없는 그 선생님께서 어찌나 사전, 사전을 입에 달고 다니셨는지 그 때 우리 모두 국어사전 노이로제에 걸려 있었다. 사전없이는 수업도 들을 수 없어 복도로 나가야했고, 국어책에 생소한 단어라도 나오면 무조건 그 날의 번호들을 불러 일으켜 세워 그 뜻을 물었다. 물론 정확한 국어사전식 대답을 해야만 앉을 수 있었다. 그 선생님만 아니였으면 나는 일찍부터 국어사전을 사랑하였을터인데. 아무튼 자판을 두드리는 컴퓨터 사전말고 책장 구석, 먼지에 쌓여있던 두꺼운 종이사전에 꺼내 침을 묻혀가면서 찾고 있다. <행복한 만찬>에서는 이런 말들을 찾았다. 도도록하다. 설핏하다. 톱톱하다. 바특하다. 톡톡하다. 역시 공선옥 책의 어떤 구절들은 직접 소리내어 읽으면 더 좋은 것처럼 이 표현들도 그렇다. 톱톱하다. 바특하다. 톡톡하다. 아, 그리고 여기 <행복한 만찬>에서 소리내어 읽었던 좋은 구절. 다이어리에 적어뒀다. 

       아. 어둠과 비와 바람과 달과 별빛을 먹는 우리들. 단순한 채소가 아니다. 봄의 바람과 여름의 비, 가을의 달, 겨울의 별빛. 배 불러 터져도 좋을 행복한 만찬. 외할머니는 택배를 보내시고 아침이고 저녁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오신다. 오늘은 뭐 해 먹었노? 장어는 맛있드제? 깻잎은 먹었나? 할머니가 직접 기른거다. 하모. 서울에서 파는 거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새우는 먹었나? 물 좀 더 넣고 끓여 먹지 그랬나? 그랬나? 잘했다. 옥수수는 쪄 먹었고? 달달하드제? 한참 먹겄제? 그래. 맛있게 묵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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