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53 힘빼기의 기술 짜증나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면, 가만히 생각해본다. 그 사람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생각했을까. 어떻게 이 상황을 넘겼을까. 내가 상상하게 되는 '그 사람'은 내게 없는 장점들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 이것 따위! 하고 힘든 생각들을 냅다 내다버릴 수 있는 담대함, 무한한 긍정적 기운. 최근에 책도 읽고, 팟캐스트도 듣고 해서인지 긍정 기운을 생각하며 김하나 씨를 생각한 적도 있다. 김하나 씨는 의 김민철 씨 인스타에서 처음 얼굴을 뵈었는데, 술을 마시고 찍은 사진들이었다. 포즈들이 굉장히 역동적이고, 코믹하기도 하고, 힘찼다. 긍정 기운이 그득한 분일 거라고 생각했고, 책을 읽고 난 뒤에는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둥실 둥실, 두둥실. 올해의 남은 날들은 힘을 .. 2017. 11. 28. 매거진 라인 4호 - S에게 그는 맨 처음 이곳에 내려 왔을 때,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기억들을 이야기했다. 나이가 많은 편도 아니었기에 서툴렀고, 그래서 가로막히는 막막한 순간이 계속됐다. 지역을 되살리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맡은 일을 잘 해내야 되겠다는, 어떻게 보면 그리 크지 않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일을 진정성 있게 해나가면서 나 자신에게 가장 떳떳하기 위해선 지금의 묵호를 이해하고 만들어 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지역을 잘 담아내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그는 보다 가깝게 묵호의 일상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통하며 다양하게 지금의 묵호를 그려내고 있는 중이다. - p. 33 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지만 그는 한창 젊었다. 무척 앳된 .. 2016. 11. 29.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놀란 것은 사람들이 책을 매우 열심히 읽는다는 점이다. 아마 겨울이 걸어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독서에 매우 큰 의미가 가치를 두는 듯하다. 집의 서가가 얼마나 충실한가로 그 사람의 가치가 판가름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인구에 비해 대형 서점이 많고, 아이슬란드 문단도 활발해, 1955년에는 할도르 락스네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대표 장편소설 을 라디오에서 몇 주에 걸쳐 낭독했고, 그 시간에는 전국민이 말 그대로 라디오 앞에 못박혀 있었다고 한다. 버스가 운행을 멈추고, 어선도 조업을 중지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작가수도 많아서 에리캬비크에만 340명이 '작가'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나가세 마사토시 주연의 영화 에서 언급.. 2016. 8. 23. 이 고도를 사랑한다 어른이 되고 경주를 세 번 갔다. 한 번은 무더운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불국사 길을 걸었다. 한 번은 추운 겨울에.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문무대왕릉을 보러 갔다. 그리고 올해 늦여름. 부산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날, 경주에 있었다. 비를 쫄딱 맞으며 양동마을을 걸었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왔더니 딱 때를 맞춰 이 책이 출간되었다. 마침 옛다, 읽으렴, 이라는 듯. 세 번이나 다녀왔으니 경주를 좀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니 나는 아직도 경주를 모른다. 하긴 소개팅을 해도 세 번을 만나고 더 만날 사람인지 그만 만날 사람인지 알 수 있듯이. 이제 나는 겨우 경주의 마음에 든 것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제 더 친해질 일이 남았다. 깊어질 일만 남았다. 때론 토라질 일도 있겠지만. 책은.. 2014. 9. 15. 도쿄의 북카페 상암동에 맥주를 파는 작은 북카페가 있다고 해서 7월에 갔었다. 상암동 지리를 잘 몰라 조금 헤맸다. 해가 진 뒤에 도착해서 맥주 한 잔을 시키고 이 책 저 책을 구경하다가 요 책을 꺼내 들었다. 처음엔 심드렁하게 보기 시작했는데, 어떤 서점의 소개글을 읽고 괜찮네, 생각이 들었다. 맥주 한 잔을 더 시키고 알딸딸해질 무렵 카페를 나오면서 결국 읽고 있던 책을 그대로 샀다. 나중에 이런 카페를 해도 좋겠다, 생각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던 여름밤. 카페를 나서려는데, "이거 스테디셀러인데요. 헤밍웨이의 은 정말 좋아요."라며 나를 붙잡는다. 문 닫을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손님들이 돌아갈 생각 없이 눌러앉아 있자 푸념을 늘어놓는 웨이터. 그러자 나이 지긋한 다른 웨이터가 '사람은 누구나 밤늦은 .. 2014. 8. 2. 밑줄긋기_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지금 거론한 예는 하나같이 장난 같지만, 같은 방식으로 진지하게 소설을 쓴 적도 있다. 처음에 쓴 두 개의 단편소설 와 는 둘 다 제목을 먼저 붙였다. 그뒤에 이런 제목으로 단편소설을 쓰면 어떤 얘기가 될까 하고 생각했다. 보통은 순서가 반대다. 먼저 이야기가 있고 나중에 제목이 붙는다. 내 경우는 그렇지 않고 먼저 틀을 만든다. 그리고 '음, 이 틀 속에 어떤 얘기가 들어갈까?'를 생각한다. 왜 그랬는가 하면, 그 당시 쓰고 싶은 것이 특별히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고 싶은데 쓸 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인생 경험도 아직 부족했고, 그래서 먼저 제목을 지어놓고 그 제목에 맞는 얘기를 어디선가 끌어왔다. 즉 '말장난'에서 소설을 풀어내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 건 문학적으로 성실하지 못한 태도라고 .. 2012. 11. 17. 이전 1 2 3 4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