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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다방450

마흔 ​ 유월의 첫째주 토요일에 망원동의 너랑나랑호프에 있었다. 예약은 안된다고 했는데, 8시 즈음에 손님이 나가게 되면 그 테이블을 받지 않고 있을테니 잽싸게 오라고 했다. 그렇게 8시에 테이블에 안착했다. 고민을 거듭하다 갓김치와 파김치가 있는 육전과 국물떡볶이와 오백 다섯 잔을 시켰다. 맛난 맥스 생맥주였고, 김치들은 먹기 좋게 가지런히 잘라 주셨다. 육전은 따끈할 때 먹을 수 있도록 조금씩 나왔다. 길다란 떡이 들어간 떡볶이가 무척 맛있었다. 호프집은 손님들로 꽉 찼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나, 마시려고 하고 있었나 하는데 늦게 도착한다고 했던 소윤이가 가게 바깥에서부터 케잌에 불을 붙이고 환한 얼굴을 하고서 들어왔다. 마치 짠 것처럼 호프집 사장님이 생일축하음악을 틀어주셨고, 진짜 짠 것이 맞는 맞은 .. 2019. 6. 5.
물대기 ​ 요즘은 늘 스마트폰이다. 지하철 안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화장실 안에서도, 그 짧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어쩌다 이렇게 중독이 되었을까. 오늘 출근길에 셔틀이 파주에 거의 도착했을 때 스마트폰에서 손을 놓고 밖을 내다 보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던 물 웅덩이들이 생겼더라. 논에 물을 대는 시기구나 생각했다. 물이 가득 채워진 논이 참 예뻤다. 물에 하늘이 비치고, 옆의 산도 비치고, 나무도 비치고. 이렇게 멋진 풍경이 많은 계절에 나는 스마트폰만 보고 있구나. 한심하지만 퇴근길에 또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고. 의식적으로 줄여 나가야 겠다. 이렇게 바보가 될 순 없다! 요즘 내게는 여러 소소한 고민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너무 많은 말이다. 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나와 뭐든 너무 많은.. 2019. 5. 14.
토마토야채스프 4월의 어느 금요일 밤에 곡예사 언니의 집에 갔다. 우리는 라자냐를 먹고, 통닭을 먹고, 맥주와 까바를 마시면서 다이어트에 대해 이야기했다. 언니는 내게 어떤 글을 보내줬는데, 자신이 몇년 전에 이 방법을 알았더라면 이것대로 했을 거라고 했다. 언니는 몇년 전에 수영으로 시작해 개인 피티로 끝나는 몇달을 보냈는데, 그때 10키로를 뺐다고 했다. 그 글에는 운동없이 한 달에 10키로를 뺄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하얀 것을 먹지 말 것! 하얗게 생긴 것은 물론이거니와 몸 안에 들어가서 하얗게 변하는 것들도. 잡곡도 먹지 말라고 했다. 단 과일도 먹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먹느냐면 토마토와 아보카도. (-_-) 토마토는 맛이 없어서 싫어했는데, 최근 짭잘이 토마토를 맛보고 어쩌면 토마토를.. 2019. 5. 10.
다행 ​ 아직 추웠고, 잠실이었다. 간만에 셋이 모였다. 가격이 꽤 해서 뭔가 더 시킬 때마다 부담스러웠던 수제맥주집에 있다 근처에 생맥주를 파는 맥주집으로 이동을 했다. 동네의 저렴한 술집을 찾는 거였는데, 거기도 잠실인지라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결 편안해진 기분으로 안주를 시키고, 맥주를 추가해서 마셨다. 술잔을 기울이며 더듬어 보니 우린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왔고, 그게 새삼스러웠다. 셋이었을 때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주로 함께 여행을 간 일. 그 여행길에서 한 헛짓들. 엄청나게 짠 대게를 길 위에서 사고, 맥주가 모잘라 긴긴 밤길을 걷고, 나간 두 사람을 한 사람이 기다렸던 일. 맥주가게 무제한 맥주축제를 기다렸다가 셋이 가서 엄청나게 큰 잔으로 엄청나게 마셔댔던 밤. 내 오랜 친구는 일을.. 2019. 5. 8.
진주 직통 통영에서 미러리스 카메라를 쓰려고 간만에 꺼내 충전을 했다. 저장공간이 부족해 지울 사진이 없나 첫 사진부터 쭉 봤다. 왠지 모르겠는데, 클라우드에 따로 옮겨놨는데도 지우질 못하겠다. 간만에 오래된 사진들을 보는데 뭔가 뭉클했다. 그곳에 리스본이, 포르투가, 바르셀로나가, 삿포로가, 오타루가, 강릉이, 울릉로가 있었다. 얼마 전 방영을 시작한 에서 류준열이 그러더라. 사진을 원래 찍지 않았는데,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기록이 없으니까 기억이 자주 변형되더라고. 기억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류준열의 사진기 속에 쿠바의 풍경이, 거리에서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동감있게 담겼다. 올해는 여행을 많이 하고 싶다. 좋은 풍경도 많이 담고 싶고, 모르는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고 싶다. 그러다 용기.. 2019. 2. 27.
1월과 2월 ​​​​​ 1월에는 만나는 사람의 아버지를 만났고, 2월에는 만나는 사람이 우리 부모님을 만났다. 1월에는 호수 근처에 있는 밥집에서 옻닭을 먹었고, 2월에는 이영자가 티비에서 추천해준 중국집에서 코스요리를 먹었다. 1월의 나는 몹시 긴장했는데, 2월의 그 사람은 그리 긴장해 보이지 않고 씩씩해서 대견했는데 자세히 보니 물병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더라. 1월의 아버지와는 막걸리 한 병과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셨다. 그 사람은 운전을 해야해서 물만 마셨다. 아버지는 나를 유심히 보지 않으시는 것 같았는데, 막걸리를 반쯤 나눠 마셨을 때 인상이 좋다며 칭찬해주셨다. 앞으로 함께 맛있는 걸 자주 먹자고도 하셨다. 2월의 아빠는 그 사람을 가만히, 유심히 바라보더라. 자주 웃었고, 그 사람 명함을 한 장 .. 2019.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