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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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일들모퉁이다방 2017. 3. 1. 00:20
2017년 3월을 시작하며 기록하는 2016년 12월의 일들.아, 벌써 1분기 마지막 달이다. 상수에서 아름씨를 만났다. 우리는 세일을 하는, 가격이 꽤 나가는 맥주를 한 병 시켜 나눠 마시기로 했는데, 센스있게 세일가를 저렇게 현금으로 장식해주셨다. 아름씨가 산미가 꽤 있을 거라고 했는데 적당하게 맛있었다. 단둘이서 첫만남이라 나름 긴장했던 저녁. 지은씨와 지숑님이 합류하여 2차까지 갔다. 지숑님은 이날의 술자리를 굉장히 특이했던 술자리로 회자하고 계시는데. 이제 네덜란드 이야기가 나오면 슬며시 웃는 지숑님. 사촌동생에게 좋은 일이 생겼고, 다같이 축하해줬다. 그러니까 퇴근 후의 삶이 필요하구나, 생각했던 저녁. 토마스 쿡의 입담은 여전했다. 원주행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렀던 주말 아침. 원주. 스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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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학교모퉁이다방 2017. 2. 26. 17:27
토요일. 응암역에서 강남역까지 가는 중이었다. 주말 오후, 지하철은 한산했다. 이번 주에는 좋아하는 작가들이 술에 빠져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부러 문가에 서서 갔는데, 책을 읽다 창밖으로 지상 풍경이 펼쳐지면 책을 잠시 덮었다.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에서 두 사람이 탔다. 여자는 일반석으로 가려는 다른 여자에게 엄마 여기, 라고 외쳤다. 두 사람은 노약자석에 앉았다. 여자는 다른 여자에게 엄마, 그래서, 엄마, 그 사람이, 라고 쉴새 없이 이야기했다. 다른 여자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음 정거장인 신대방역에서 내렸다. 백발의 등이 굽은 엄마와 긴 생머리의 중년의 딸이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한참을 내다봤다. 그리고 어느 역에서는 노약자석이 꽉 차 있었고, 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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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씨모퉁이다방 2017. 2. 13. 00:30
아름씨에겐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맥주학교 1학년 마지막 시간,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함께 나눠 먹다가 지숑님이 이야기해줬다. 아름씨가 우리 회사에서 제일 책을 많이 읽어요. 이 말에 아름씨는 그렇지요, 라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 뒤 내게 있는 책이 한 권 더 생겼는데, 갑자기 아름씨 생각이 났다. 맥주학교 밴드에서 아름씨 번호를 찾아 문자를 보냈다. 아름씨, 이 책 읽었어요? 가지고 있는 책인데 또 한 권 생겼다고, 혹시 읽지 않았으면 선물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름씨는 읽지 않은 책이라고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주겠다는 나의 말에 2학년 수업 때까지 시간이 너무 머니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아름씨는 긍정왕이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집으로 가서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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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모퉁이다방 2017. 2. 9. 23:12
그녀는 실리의 책상으로 다가가 첫번째 서랍에서 그것을 찾아냈다. 납작한 가죽 필통에 만년필이 들어 있었고 그게 언제나 거기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끈으로 묶인 가죽 필통을 열 때 허둥댔다. 실리의 만년필이 거기 있었고 그녀는 만족스러워 그것을 손에 쥐었다. 종이에 글을 적을 때는 만년필로. 그건 그녀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실리의 생각이었다. 실리는 자주 그렇게 말하곤 했고 평생 두 자루의 만년필을 가졌는데 어쩌면 그녀가 모르는 만년필을 한 자루쯤 더 가졌는지도 몰랐다. 누가 알겠나. 그녀는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누가 알겠나...... 그녀는 서랍에 든 잉크병을 쥐고 뚜껑을 비틀어보았다. 검푸른 가루가 떨어졌다. 잉크는 고체가 되어서 병을 뒤집어도 흐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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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모퉁이다방 2017. 2. 6. 22:34
지난 금요일에는 엄마의 검진으로 아버지와 엄마가 올라오셨는데, 시간을 잘 보내다 마지막에 성질을 내버렸다. 내가 울먹였는데, 아버지는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마음이 내내 아팠다고 했다. 나는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읽지 않은 채 전철을 타고 집에 와 핸드폰을 꺼두고 자려고 노력했다. 초저녁부터 내내 누워 있었다. 아버지는 동생에게 내가 마음이 너무 약해서 걱정이라고 했단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는 날들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하다 먹먹해졌다. 나는 나이를 어디로 먹고 있는 걸까. 언제쯤 굳건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버지는 '오늘 애썼다'로 시작하는 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동네 커피집에 들러 아침에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오십 페이지의 책을 읽었고, 몇 정거장을 걸었다. 내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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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일들모퉁이다방 2017. 2. 5. 20:38
추워지면 몽글몽글 라떼가 진리. 요즘엔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탄생하게 된 역사가 제일 궁금하다.그리하여 맥주의 역사에 대해 읽어보았다. 동생이랑 평일 저녁 산낙지. 다이어트 한다고 산낙지만 주문했는데, 결국 낙지전도 추가 주문. 황작가 커피. 퇴근을 하고 셔틀버스 타러 내려갔는데, 차장님과 H씨가 서 있었다. 금령아, 브루어리 갈래? 그렇게 가게 된 플레이 그라운드.교통이 불편한 곳에 있는데도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안주들도 맛있었다.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버스를 타고 제일 뒷자리에 앉아 쓸쓸한 음악을 듣는 일. 집에서 마시려고, 캔도 사왔다. 다이어트 시도는 계속 되었지만, 합정점에서 시옷의 책 득템. 책을 사고 단톡방에 이 사진을 올리니, 몇 시간 전에 하진이가 다녀갔다고.재고 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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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모퉁이다방 2017. 2. 3. 08:10
장유에서 고성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면서 엄마가 누군가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고성에서 내려 보니 키가 아담하고 선하게 생긴 젊은 캄보디아 남자였다. 이전에 엄마는 이 캄보디아 남자와 같이 일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엄마는 숙모가 싸준 가방에서 커다란 사과 하나를 찾아 건넸다. 이거 집에 가서 묵어라. 남자는 괜찮다고 거절을 하다 엄마가 계속 사과를 내밀자 고맙다고 받아서 자기 가방에 넣었다. 터미널을 나가면서 엄마와 남자는 요즘에는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느냐 등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사투리 가득한 엄마의 말을 남자는 용케 다 알아듣고 대답을 했다. 엄마는 남자와 헤어지자마자 말했다. 참 성실하고 착하다고. 여기서 일한 돈을 모아 집에 보낸다고. 언젠가 캄보디아 집 사진을 보여줬는데, 참 근사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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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일들모퉁이다방 2017. 1. 15. 22:20
2016년은 내게는 좀 특별한 해여서 미뤄두었던 기록들을 남겨본다.2016년 10월의 일들. 하진이는 9월의 모임에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다. 세심한 하진이. 언제나 옳은 치맥. 언제나 옳은 거품. 김연수의 문장을 읽는 가을. 서울 구석구석을 오래된 사람의 시선으로 산책하고 싶어졌다. "이제 서울 시내에서 답교할 다리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나는 명절이면 집집마다 수박들, 붕어등과 풍경을 내다걸고 부녀자들이 소원을 빌며 다리를 걸어다니는 광경을 그리워한다. 백 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우리가 가졌던 가장 아름다운 광경들이 모두 사라졌다. 내가 세태소설을 유난히 좋아하는 까닭은, 박태원의 천변풍경을 두고두고 읽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마트에서 구입한 가을. 상암의 저렴하고 맛난 커피집도 발견했다. 늘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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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씨모퉁이다방 2017. 1. 10. 23:01
두 명이 나갔고, 두 명이 들어왔다. 이번주로 야근이 끝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야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야근이 확정되는 오후가 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대로 괜찮을까. 그러다 퇴근할 무렵이 되면, 또 생각한다. 그래, 이대로도 괜찮겠지. 아직까지는. 월급을 받고, 좋아하는 책을 사 읽고, 좋아하는 영화를 사 보고, 좋아하는 맥주를 사 마시는 일. 어제까지는 최민석 작가의 를 읽었다. 올해 베를린에 갈 수 있을까. 2주 휴가 동안 베를린에 가 있는 상상을 한다. 에 포르투갈의 포르투 이야기가 나왔는데, 최민석 작가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곳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새로 읽을 책을 골라야 했는데, 소설이었으면 했다. 맞다, 지난 달에 황정은의 신간을 사 놓았다. 출근길에 두 장 정도 읽었는데,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