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기

from 모퉁이다방 2019.05.14 22:53



   요즘은 늘 스마트폰이다. 지하철 안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화장실 안에서도, 그 짧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어쩌다 이렇게 중독이 되었을까. 오늘 출근길에 셔틀이 파주에 거의 도착했을 때 스마트폰에서 손을 놓고 밖을 내다 보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던 물 웅덩이들이 생겼더라. 논에 물을 대는 시기구나 생각했다. 물이 가득 채워진 논이 참 예뻤다. 물에 하늘이 비치고, 옆의 산도 비치고, 나무도 비치고. 이렇게 멋진 풍경이 많은 계절에 나는 스마트폰만 보고 있구나. 한심하지만 퇴근길에 또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고. 의식적으로 줄여 나가야 겠다. 이렇게 바보가 될 순 없다!


   요즘 내게는 여러 소소한 고민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너무 많은 말이다. 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나와 뭐든 너무 많은 것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 늘 넘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함을 소중히 여겼던 나이기이에 그런 고민 중에 만난 이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요즘 한수희 작가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를 읽고 있다. 


   나는 이제 어른이,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만약 내가 조언을 하는 나를 보게 된다면 나 자신을 때려주고 싶을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내 인생뿐이다. 그런 내가 어떻게 남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나는 떠든다. 정말 꼴 보기 싫다. 그러고 난 다음엔 언제나 술자리에서의 추태를 떠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어쩌면 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괜찮은 어른으로 비치고 싶어 이런 것을 고민하는지도 모른다. 사랑받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나를 싫어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나를 좋아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나는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은 사람도 아니고 괜찮은 사람도 아니며 대개 지질할 것이다. 나는 그저 나이 든 아주머니일 뿐이다. (119-120쪽) 


   스쳐 지나간,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그런 말들. 곁에 있는 누군가가 했던 그런 말들이 어느 순간 섬광처럼 이해가 될 때가 있다. 그때는 분명 그건 좀 아니지요, 라고 생각했던 일인데. 나는 요즘 그럴 때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구나 생각한다. 많은 경험들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좋은 경험만 쌓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좋은 경험이 많았으면 좋겠다. 결론은, 스마트폰을 열심히 하는 와중에도 책은 찔끔찔끔 읽고 있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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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치다 : 1. 빛이 나서 환하게 되다 / 달빛이 환하게 ~

2. 빛을 받아 모양이 나타나 보이다 / 거울에 ~

3. 투명하거나 얇은 것을 통해 속의 것이 드러나다 / 속살이 비치는 잠옷

4. 뜻이나 마음이 드러나 보이다 / 서운해 하는 기색이 ~

(민중엣센스국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