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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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국모퉁이다방 2017. 12. 23. 23:01
동생이 끓여준 미역국이 끝이 보였다. 갑자기 명절 때 먹는 탕국이 생각났다. 레시피를 찾아보려고 검색해보니 탕국이 경상도 음식이었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절 음식은 해물이 가득 들어간 탕국이랑 야들야들하게 익혀 적당한 두께로 자른 문어. 문어는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보다 소금이 들어간 참기름장에 먹는 걸 좋아한다. 엄마한테 레시피를 물으니 소고기도 들어가네. 엄마가 알려준 레시피에서 소고기는 뺐다. 멸치와 다시다 국물을 낸 뒤에 마트에 다녀왔다. 해물을 듬뿍 넣고 싶어 홍합살과 새우살과 바지락살, 굴을 사고 알래스카산 말린 황태도 샀다. 내일 먹으려고 두부도 사고, 아몬드도 샀다. 계란도 떨어져 6개 대란 한 통을 샀다. 다코야끼볼 과자를 사려다가 오늘 사둔 통밀 스콘이 있으니 참았다. 집에 와 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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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모퉁이다방 2017. 12. 22. 07:54
닷새동안 침대 두 개가 들어가고 조금 남을 만치의 공간을 온전히 가졌다. 침대는 하나였고, 앞과 옆으로는 커튼이 쳐져 있었다. 침대에 앉아 오른쪽의 커튼을 치면 창문이었다. 창가에 손에 자주 닿는 물건들을 놓아두고 썼다. 수첩과 펜, 책과 립밤, 휴지와 이어폰, 엽서와 물통. 첫 날은 동생이 함께 왔고, 다음 날에 동생과 엄마가 왔다. 다음 날에는 친구들이 와주었다. 그 다음 날엔 혼자였다. 밤에 동생이 퇴근을 하고 와 무거운 짐을 가지고 가줬다. 마지막 날엔 아침밥을 먹고, 책을 읽다가, 옷을 갈아입고, 원무과에 가서 정산을 하고, 퇴원증을 간호사에게 건네주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지난 두어달 겁이 났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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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모퉁이다방 2017. 12. 16. 22:10
가을의 사진들을 모아놓고 보니, 죄다 먹고 마신 사진들이구나. 나는 먹고 마실 때 가장 행복한가 보다. 2017년 가을도 수고했다아. 요즘 맥주를 전혀 마시고 있지 않는 상태에서 지난 가을 맥주 사진들을 보니 뭔가 만감이 교차하네. 맥주를 마시지 않는 나날들은 생각보다 괜찮다. 마시지 않는 날들이 꽤 되니, 생각이 아예 나질 않는데, 그럼에도 술모임에는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 무알콜 맥주를 사들고. 사람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적당하게 취해가는 걸 보는 게 꽤 좋다. 이 가을의 끝에 내게 온 일. 소윤이는 짧은 서울행에 잠깐 시간을 내 보자고 했다. 이 속 깊은 어린 친구는 내가 더 걱정할까봐 의연하고도 단단하게 다 잘 될 거라고, 언니는 더 튼튼해질 거라고 얘기해줬다. 내 얘길 듣고 고심해서 고른 게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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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모퉁이다방 2017. 12. 12. 04:29
일요일에는 사당역에서 고기를 먹었다. 고기 좋아하세요? 라고 묻더니, 10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5층인 줄 알았던 4층의 고깃집은 분위기가 꽤나 좋았다. 고가도로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던 그가 고기를 잘 구울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다 구워져 내 앞접시에 올려지는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이건 좀 부담스러운 것 같아요. 그러면 불판 위에 올려놓을테니 집어 가라고 했다. 이번 가을과 겨울에는 왠일인지 주변 사람들이 자꾸 사람을 소개해줬다. 위안이 되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터라 소개해주면 무조건 만난다고 했다. 한 번 만난 사람도 있고, 두 번 만난 사람도 있다. 그는 세 번 만난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좀 담백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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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선셋모퉁이다방 2017. 12. 6. 22:00
지난 주의 일. 연차였고,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다. 충무로의 병원에 갔다가 광화문까지 걸었다. 든든한 걸 먹고 싶어 광화문 국밥에 갔다. 깔끔하게 맛나더라. 좋아하는 오짓어 젓갈도 반찬으로 나왔다. 바 자리에 앉아 그릇을 싹싹 비웠다. 영화를 바로 볼까 커피를 한 잔 마실까 고민하다가 테라로사에 갔다. 그 전주에 친구랑 처음 갔는데 엄청 맛있는 머핀을 발견했거든. 그날 친구는 십년도 더 된 일을 말하면서 그때의 생각들을 후회한다고 했다. 그때는 나와는 먼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 친구에게도 찾아왔다고. 그때 그 일이 내 일이 아니여서 정말 다행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좋은 사람인 거라고 말해줬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그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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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카레모퉁이다방 2017. 11. 25. 00:40
이번 주는 길고, 힘들었다. 많은 생각을 했는데, 무엇 하나 녹록치 않구나 생각했다. 관계란 뭘까. 이번 주의 결론은, 언제든 깨어지기 쉬운 것. 누군가의 노력이 있다면, 다시 이어붙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전만큼 튼튼해질 순 없을 것이다. 요즘 들어 지난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 그 사람, 그렇게 힘들었을텐데, 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했네, 하고. 요즘 저녁을 가볍게 먹으려고 하고 있다. 맥주는 (무척 아쉽지만) 마시지 않은 지 몇 주 되었다. 신기하게 마시지 않게 되자, 별로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언젠가 한 잔을 아주 찐-하고 맛나게 마실 그 날을 기다리며. 겨울이니, 병맥주를 사야지. 깊은 맛이 나는 진한 걸로. 유리컵을 씻어 냉장고에 넣어뒀다 꺼내야지. 삿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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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닥, 네번째 롤모퉁이다방 2017. 11. 15. 21:51
오늘은 일을 하다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는 집을 설계하는 일을 하시는데, 예전에는 모두들 손으로 설계도를 그렸다. 사무실에 가면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커다란 책상들이 있었고, 커다란 종이들에 건물 도면들이 곧게 그려져 있었다. 시대가 변했고, 아빠는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했다. 캐드며, 그 딴 것들을 배워뒀어야 했는데. 이제는 누구도 손으로 설계도를 그리지 않는 것 같다. 내 일이 그러하듯 메일로 중요한 자료들을 주고 받고. 아빠는 그것들에 익숙하지 못하고. 오늘 전화로 자료를 요청하는데, 잘 모르고 보낸 것이 다라고 계속 이야기하셔서 짜증이 났다. 그런데 가만 듣고 보니 우리 아빠 같은 거다. 제가 잘 몰라서 그래요, 하시길래 그럼 필요한 부분들을 다 적어 보낼테니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 차장님은 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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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모퉁이다방 2017. 11. 13. 22:04
지난 주말에는 1시간 40분 거리에 있는 친구네 집에 다녀왔다. 친구는 스테이크도 구워주고, 스크램블도 만들어 주고, 양파도 구워 주었다. 스무살 때 돈이 없었던 우리는 친구에게 찾아가 술을 사달라고 했었다. 자주 그랬다. 친구는 언제나 군말없이 사주었기 때문에 언제나 돈이 넉넉하게 있는 줄 알았다. 사실은 그게 얼마 남지 않은 용돈이었고, 다시 부모님께 전화를 해 조금 더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줄은 정말 몰랐다. 그랬던 키가 크고 삐쩍 마르기만 했던 친구는 이제 구연동화를 하며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빠가 되었다. 또 다른 친구는 샐러드를 만들어주고, 내가 오니까 청소를 실렁실렁 했다고 남편에게 칭찬 받고,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이게 그때 대만에서 니가 사준 다기라며 그 다기로 내가 가지고 간 보이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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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모퉁이다방 2017. 11. 9. 21:21
지난 한주동안 마음이 사막같았다. 결국 두 달 뒤에 살펴보기로 한 일을, 두 달이 되기 전에 하기로 했다. 차장님이 두 달을 기다리는 동안 너무 힘들거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정말 그렇더라. 괜찮고 마음을 잘 다스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주에 혓바늘도 나고 눈이 시뻘겋게 충혈이 되었다. 책도 안 읽히고, 음악도 안 들렸다. 안되겠다 싶어 연차를 내고 아침 일찍 병원에 다녀왔다. 덕분에 괜찮아졌고, 안심이 됐다. 가보니 결론은 그냥 두 달 기다려도 되었던 거였는데, 그렇게 초조하고 겁이 나고 서러웠댔다. 오늘 가길 잘했다. 마음과 몸은 정말 연결되어 있는 게 맞는 게, 새벽에 욱씬거렸던 것이 오전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제 마음 편히 기다리면 된다. 마음이 나아지니, 먹고 싶고, 걷고 싶고,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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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의 산책모퉁이다방 2017. 11. 5. 08:44
아침에는 단호박 스프를 끓여 먹었다. 얼마전 구내식당에 나온 메뉴인데 너무 맛있어서 직접 해보고 싶어졌다. 단호박을 찌고 양파를 잘게 채썰어 포도씨유와 마가린을 넣고 볶았다. 버터와 올리브유를 넣어야 한다는데, 집에 있는 게 포도씨유와 마가린 뿐이었다. 우유를 넣고 끓이다 조금 식히고 난 뒤 믹서기로 갈았다. 그리고 다시 몽글몽글 끓여 후추를 뿌리고 먹었다. 건강한 맛이 났다. 점심으로는 당근을 채썰어 계란말이를 만들고, 이번주에 주문한 노르웨이 고등어에 카레가루를 뿌려 구웠다. 어젯밤에 쪄 놓은 브로콜리와 버섯도 함께 먹었다. 밥은 검은 콩을 넣은 현미밥으로 지었다.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조그만 북페스티벌이 열리는 서울혁신파크에 가봤다. 처음 가보는 거였는데, 불광동인 줄 알았는데, 녹번동이었다. 불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