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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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모퉁이다방 2017. 11. 1. 20:43
어제는 퇴근을 하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있는 서점에 들러 영어 잘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듣기부터 해야 말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한 문장을 수십번 따라하다보면 저절로 말을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했다. 외우지 말라고 했다. 그냥 끊임없이 따라하라고 했다. 세상의 온갖 손쉬운 학습법에 현혹되지 말라고 했다. 임계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디지만 물을 한 방울 한 방울 담다보면, 언젠가 항아리에서 물이 쏟아질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은 대부분 서스럼 없이 접근을 하지만, 3분도 안돼 이 아이가 내 말을 하나도 못 알아 듣고 있구나 눈치 챈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웃펐다. 우리는 서점 지하에 줄지어 앉아 와우, 마델, 쉬즈마델, 룩킹굳, 하우스더패밀리굳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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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림이모퉁이다방 2017. 10. 27. 22:59
사실 조림이가 모임에 얼마 나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 날, 조림이가 온 날 비가 많이 왔었고, 내가 선정한 책을 읽고 이야기했었다. 줌파 라히리의 . 우리는 노잼 멤버를 결성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중간에 소윤이가 왔는데, 내가 데리러 나갔다. 소윤이에게 어쩌면 이제 안 나올 것 같아, 라고 이야기했었다. 소윤이가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라고 말했던 것 같다.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졌고, 3차를 가기 전에 조림이가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내일 아침 일찍 강아지를 데려 와야 한다고 했다. 유기견을 입양하기로 했다고. 강아지 이름은 '마리'가 되었다. 그 때 조금 얇은 겉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으니 가을 즈음이었나 보다. 그리고 다음해 봄에 우리는 전주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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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훼션드모퉁이다방 2017. 10. 12. 22:55
old-fashioned1. 옛날식의, 구식의 2.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구식인 덩치와 달리,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얼마 전 우연히 기사를 보다 알았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단다. 그랬구나. 맥주를 얻고, 초콜렛을 잃었다. 던킨의 도너츠들은 단 것들 천지. 그러므로, 맥주를 좋아하는 나는 던킨을 좋아하지 않는데, 유일하게 좋아하는 도넛이 있다. 그 이름은 촌스럽게도 '올드 훼션드'. 옛날 시장에서 먹을 수 있었던 담백한 도너츠다. 그런데 이 담백한 맛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없는지 (여러분, 맥주를 마시세요) 모든 매장에 있지는 않았다. 달디단 글레이즈드는 어느 매장에나 있지. 나의 일반적인 동선은 응암-합정-파주인데, 세 곳 모두 던킨이 있다. 이중 유일하게 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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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고성모퉁이다방 2017. 10. 11. 22:06
이번 연휴는 무척 길어서 집에 오래 머무를 수 있었다. 집에 있는 동안 버스를 타고 진주 유등축제에도 가고, 우리 가족 모두가 인정한 통영 돼지갈비 맛집에도 가고, 삼천포에 생겼다는 바다가 보이는 극장에도 가는 등 꿈은 원대했지만, 추석날을 제외하곤 고성 밖으로 움직이질 못했다. 그렇지만 좋았다. 익숙했던 곳에도 가고, 새로 생긴 곳에도 가보고. 외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스러웠던 것만 빼면, 편안하고 좋은 날들이었다. 아, 한번 엉엉 울어버리긴 했지만. ... 그러니까, 내 고향 고성은, 강원도 고성이 아니라 경상남도 고성이다. 아침산책을 나서는 내게 이런 구름들을 보여주고, 이런 고운 빛깔도 보여주었다. 잘 익은 벼 곁에는 허수아비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고성은 옛날 옛적 소가야의 중심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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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사일모퉁이다방 2017. 10. 10. 21:54
우리는 장유의 임시 시외버스정류소 바깥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대중교통으로 장유에서 고성으로 가려면 창원으로 가서 시외버스를 타야 했는데, 작년부터 바로 가는 버스가 생겼다. 그 버스는 김해에서 출발해 장유를 거쳐 배둔에서 한번 서고, 고성에서 또 한번 선다. 그 다음 번에는 어딜 가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저녁 7시 반에 출발하는 막차를 타려고 왔다. 임시 정류소에 근무하는 얇은 가디건을 걸친 직원이 나와 지금 김해에서 차가 많이 막혀 제 시간에 버스가 도착 못하고, 많이 기다려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류소까지 차로 데려다 준 숙모와 사촌동생은 같이 기다려준다고 했다. 괜찮다고 우리끼리 기다리면 된다고 몇번을 말했지만, 숙모는 니네랑 이렇게 잠시동안 여유롭게 앉아 있는 것이 좋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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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구일모퉁이다방 2017. 10. 9. 22:18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동생과 함께 가방을 챙겨 나왔다. 둘이서 나란히 놓여 있는 따릉이를 대여해 불광천을 달렸다. 나는 상암에서 멈췄고, 동생은 한강까지 간다고 했다. 8시에 시작하는 을 봤다. 내일 나는 8시에 합정역에 도착해서 셔틀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가고 있을 거다. 은 괜찮았다. 이병헌은 첫 등장부터 마지막 울음씬까지 내 마음을 계속 움직였는데, 눈빛과 목소리 때문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의 마지막 새벽 울음씬이 생각이 났다.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내게 좋은 배우인 건 확실하다. 영화 속에서 그 해 겨울을 표현한 것처럼, '깊다'. 점심에는 보경이가 샤브샤브를 먹자고 해서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만났다. 보경이와 샤브샤브를 먹을 때는 언제나 디엠씨의 소담촌에 간다. 어느 날 우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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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이일모퉁이다방 2017. 10. 2. 23:55
기사 아저씨는 출발 전에 복도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좋겠습니다. 연휴 때 쉴 수 있어서요. 저는 쉴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을 잘 모실테니 이것만 주의해주십시오. 첫째, 바닥에 뭘 흘리지 말아주세요. 둘째, 휴게소에서 시간을 많이 드릴테니 음식은 무조건 밖에서 먹고 타세요. 창문이 없으니 냄새가 진동합니다. 오늘 잘 데려다 드릴테니 이것만 꼭 지켜주세요. 그리고 다음에 또 만납시다. 대전 부근이었는데, 터널 입구에서 접촉 사고가 났다. 내가 탄 버스가 뒤에서 앞차를 박았다. 아저씨는 운전석 옆에 앉은 여자분이 목격자라며 앞차가 깜빡이도 켜지 않고 끼어들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운전석 바로 옆에 좌석도 아닌 자리에 한 여자분이 앉아 있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아저씨는 넓은 공간으로 이동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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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모퉁이다방 2017. 10. 2. 07:41
밥을 먹다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너무너무 좋아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때면, 언제나 좀더 나빠질 순간을 예감하게 된다고. 경험을 해보니 그런 순간들이 대부분 오더라구요. S씨는 오후에 메신저로 물었다. 금령씨 아까 얘기한 거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그냥 큰의미를 두지 않고 한 말이었는데, S씨가 한번 더 물어보니 나의 그런 마음에 대해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요즘 혼자 하는 일들을 많이 계획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간 숙소에서 혼자 이 곳에 어떤 계절에 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하고, 친구들과 함께 발견한 새 길에서 혼자 이 곳을 어떤 계절에 걸으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했다. 혼자 지내는 것에 얼마나 익숙해지고 있는 걸까. 이러면 누굴 만나지도 못한다고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