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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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극장에가다 2019. 3. 26. 21:05
요즘 '잊지 않으려고 쓰는' 일이 예전 같지 않다. 읽는 일도, 보는 일도 예전 같지가 않다. 끙. 써놓고 보면 부족하고, 내가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닌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많은 말을 쓴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설명을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지. 그렇지만 그때는 그래도 쓰려고, 남기려고 나름 노력했는데. 잊지 않으려고 말이다. 그리하여 다시 열심히 해보자는 다짐. 짧은 글이라도 부지런히 남겨보자는 다짐이다. 아자아자. 삼월의 어느 목요일, 퇴근을 하고 상암으로 가 을 봤다. 시간이 딱딱 잘 맞았다. 자유로도 막히지 않았고, 7시 즈음 시작하는 영화가 있었고, 여유가 있어 좋아하는 커피집의 라떼도 샀다. 그런데 영화가 계속될수록 그냥 집에 갈 걸, 가서 책이나 티비를 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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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마블극장에가다 2019. 3. 12. 21:09
이 글은 에 대한 스포일러 글이 될 것이다. 메가박스 의자가 얼마나 좋은지 상암 CGV가 메가박스로 바뀌고 나서 알게 됐다. 한 번 밖에 못 가본 1관의 의자는 아주 예술이다. 좌석과 좌석 사이에 수납공간이 있어 가방을 넣어놓을 수 있다. 다른 관도 의자의 쿠션감과 접촉감이 정말 좋다.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아주 작은 관조차도. 그런데 CGV에는 아트하우스 프로그램이 있어 예술영화를 종일 틀어주는 관이 있었는데, 메가박스는 아주 보기 힘든 시간대에만 배치해놓아 없는만 못하다. 보고 싶은 영화는 개봉주 평일에 되도록이면 봐야하겠더라. 그리하여 보고픈 영화들을 못 보고 있다는 이야기. 최근 관람한 영화로는 과 이 있다. 상영관이 많기 때문에 보게 되었다. 물론 재밌었다. 도 그러한데 (사실 이날은 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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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영극장에가다 2019. 1. 9. 21:23
올해 첫 영화. 일찍 일어난 주말, 해가 뜨기 전에 틀었다. 주말, 제일 좋아하는 시간과 행위. 얼마 전에 동생이 보았는데, 너무나 좋았다는 후기를 전해 개봉 즈음 극장에서 봤던 영화를 다시 봤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첫 장에 이런 글귀가 있다. "우리가 글로 쓴 것들은 우리와 함께 늙어가지 않습니다." 이 문장을 보고 고개도 끄덕이고, 친구에게 보내주기도 했는데 을 다시 보고 나니 저 말은 거짓같다. 우리가 쓴 글과 영화는 우리와 함께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청년들과 어울리는 중년부부가 유치하고 철없이 느껴졌었는데, 다시 보니 이해가 됐다. 공감이 되다 막 서글퍼지더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을 이렇게 설명하면 무리일까. 아이를 갖지 못하고 있는 중년의 부부가 아이를 막 가진 절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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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르츠극장에가다 2018. 12. 7. 14:16
제주에서 귤을 보내줬다. 유기농 귤이라 빨리 먹어야 한다는 메모가 있었다. 며칠 두었더니 상자 아래에 터지기 시작하는 귤들이 있어 어쩌지 하다 귤잼을 만들었다. 히라마쓰 요코의 조언대로 밤에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터지고 무른 귤들을 골라내 껍질을 벗겨내고 한 알 한 알 떼어냈다. 인터넷의 레시피대로 믹서에 돌리지 않고 나무주걱으로 꾹꾹 눌러 과육이 나오게 터트렸다. 그렇게 끓이고, 설탕과 꿀을 넣고, 가끔 주걱을 휘저으면서 생애 첫 귤잼을 완성했다. 집안 가득 달달한 냄새가 가득했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먹기 좋게 식어있었다. 사놓은 식빵이 없어 요거트에 넣어 먹었다. 레시피는 를 그대로 따랐다. "중요한 것은 왁스를 칠하지 않은 제철 과일을 사용하는 것. 산에 강한 냄비를 사용하는 것. 그리고 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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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리극장에가다 2018. 12. 5. 12:24
휴가 첫날. 늦어서 택시를 탔다. 커다란 횡단보도를 건넌 뒤 모범택시 바로 뒤에 오는 개인택시를 잡았다. 자켓 차림에 머리카락을 반듯하게 넘긴 기사님이었다. 목적지를 말했다. 택시 안은 라디오 소리만 들리고 조용했다. 우회전을 했다. 기사님이 입을 여셨는데, 실은 계속 직진을 할 줄 알았다고 했다.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이었는데, 그곳에서 택시를 잡길래 직진손님인 줄 알았다고. 뭔가 정중하게 이야기 하셔서 나도 모르게 죄송해요, 라고 말했다. 기사님이 아니예요, 라며 영화 보시러 가시나봐요, 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틀어놓은 티비로 예능 프로그램이 나왔고, 한때 이 예능에 출연했던 정치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 지금도 그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라고 반문하니, 있지요,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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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시간들극장에가다 2018. 11. 17. 08:12
올해 건강검진은 늦었다. 접수 데스크에 가니 늦게 오셨네요, 했다. 오전 시간에만 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다음날 Y씨에게 물어보니 7시까지였단다. 9시 넘어 도착했으니 확실히 늦었네. 하지만 느즈막히 끝난 덕분에 근처 골목길에서 생선구이 정식을 점심으로 먹고, 아빠와 간만에 통화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이수역으로 가 이 영화를 봤다. . 어느 영화의 예고편에서 보았는데, 아파트가 커다란 나무에 둘러쌓여 있는 풍경이었다. 여름이었고, 초록색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파트를 감싸고 있는 나뭇잎들이 일제히 쏴아-하고 움직이니 마치 그 아파트 자체가 살아 숨을 쉬는 느낌이었다. 그 예고편을 보고, 개봉하면 꼭 봐야지 하고 개봉일도 알아뒀는데, 개봉관이 많지 않아 포기하고 있었더랬다. 시간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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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이즈 본극장에가다 2018. 11. 8. 22:43
은 좋았다.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봤는데, 보다가 꽤 울었다. 영화를 보고 평을 보니, 이야기가 구식이고 뻔하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나는 잘 모르겠더라. 왜냐면 나는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줄곧 여자가 남자를 냉정하게 차버릴 거라고 생각했거든. 레이디 가가는 육고기 드레스 정도 밖에 모르고 사실 얼굴도 몰랐는데, 연기가 좋더라. 배우로도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후반부에 레이디 가가, 아니 앨리가 부르는 노래들은 별로였다. 제일 마지막에 장엄한 오케스트라 군단과 함께 불렀던 슬픔의 노래도 그냥 그랬다. 소소하고, 담담하게 불렀으면 좋았을 걸 생각했다. 브래들리 쿠퍼, 아니 잭슨과 함께 투어를 하며 밴드와 혹은 혼자 연주를 하며 부르는 노래들이 좋았다. 그게 진짜 앨리의 노래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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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극장에가다 2018. 10. 29. 21:21
영화를 보고 나서 핸드폰으로 '라무네 사이다'를 검색했다. 당장 마셔보고 싶었는데, 지에스 편의점에서 최근 판매를 하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영화 속에서 이 사이다를 엄마와 아들이 함께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았지만,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엄마가 된, 그렇지만 엄마라고 부르지는 않는, 그걸 개의치 않는 '엄마'. 파칭코 주차장 차 안에 혼자 방치되어 있다가 지금의 '엄마', '아빠'에게 발견되어 지금의 가족들과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기 시작한 '아들'. 두 사람은 역시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할머니'의 연금을 인출한 뒤 이 라무네 사이다를 하나씩 사들고 시장 거리를 걷는다. 어떤 상인이 '엄마'에게 아이의 엄마라는 호칭을 써 신기해하고 좋아라 하면서. 마지막 모금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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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극장에가다 2018. 10. 6. 17:40
이 영화에 반전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러니 이 글은 영화의 반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를 보실 분은 읽지 마시길. 여자는 쌍안경을 이용해 먼 곳을 보았다. 한번 확인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고, 다시 한번 더 확인을 했다. 아마 아주 여러 번 확인을 했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타히티 섬에서 만났다. 고갱이 행복한 그림을 많이 그렸던 타히티 섬. 남자와 여자는 이 곳에서 만나 첫눈에 반했다. 남자가 직접 만든 배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는데, 서로가 잘 어울리는 연인이 될 거란 걸 그 밤을 보내면서 알았다. 여자는 남자가 살아온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남자는 배를 타고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었다. 남자는 높은 절벽에서 거침없이 풍덩 뛰어드는 여자를 보고, 당신은 내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여자야, 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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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필 프리티극장에가다 2018. 6. 28. 22:02
극장에 가는 중이었다. 집에서 연신내까지는 걷고, 연신내에서 버스를 타고 은평몰까지 가기로 했다. 아직 초여름이고, 아침이었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편 커다란 나무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는데, 순간 엄청나게 행복해졌다. 나뭇잎들이 보이고, 그 나뭇잎들이 만들어낸 그늘이 보이고, 그 나뭇잎들을 흔들거렸던 바람이 내 얼굴에 닿는 것이 느껴지고. 어제까지의 나는 조금 불행했던 것 같은데, 오늘의 나는 무척 행복했다. "나는 나!" 얼마 전에 읽은 문구를 떠올렸다. 그래, 나는 나. 이렇게 초여름 아침 바람에 행복해지는 사람. 이 풍경에, 내가 그동안 겪었던 온갖 소소한 행복들이 줄줄이 떠올려지는 사람. 이런 나를 기억하자고, 이런 나를 생각하자고 다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