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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아영
    극장에가다 2019. 1. 9. 21:23



       올해 첫 영화. 일찍 일어난 주말, 해가 뜨기 전에 틀었다. 주말, 제일 좋아하는 시간과 행위. 얼마 전에 동생이 보았는데, 너무나 좋았다는 후기를 전해 개봉 즈음 극장에서 봤던 영화를 다시 봤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첫 장에 이런 글귀가 있다. "우리가 글로 쓴 것들은 우리와 함께 늙어가지 않습니다." 이 문장을 보고 고개도 끄덕이고, 친구에게 보내주기도 했는데 <위아영>을 다시 보고 나니 저 말은 거짓같다. 우리가 쓴 글과 영화는 우리와 함께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청년들과 어울리는 중년부부가 유치하고 철없이 느껴졌었는데, 다시 보니 이해가 됐다. 공감이 되다 막 서글퍼지더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위아영>을 이렇게 설명하면 무리일까. 아이를 갖지 못하고 있는 중년의 부부가 아이를 막 가진 절친 부부와 사이가 서먹서먹해지고, 이어 죽이 잘 맞는 청년부부를 만나게 되어 어울리다 결국 스스로를 깨닫고 인정하고, 다시 안정을 찾아가는 이야기. 정말 좋았던 대사가 둘 있었는데, 하나는 "내 인생에선 여전히 내가 제일 중요해.". 벤 스틸러는 아내와 다투고 서먹서먹해진 친구네 집에 찾아간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갓난아이 때문에 정신이 없는 친구가 사실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고, 힘이 든다고 이야기하면서 털어놓는 말이다. 두번째는 벤 스틸러의 대사. "난 마흔넷이야. 못 할 일도 있고, 못 가질 것도 있는 나이." 재능있고 잇속을 잘 챙기는 청년의 실체를 마주하고 결국 자기자신을 깨달은 그가 자신을 위로하는 아내에게 건넨 말이다. 그러니 이제 괜찮다고. 끝내지도 못하는 다큐를 8년동안 만들고 있는 그는 이제 다른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인다. 


       그런 날이 있다. 그게 누구든 가족이든, 애인이든, 친구든,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조금 서글플 때. 상대의 처지가 근사하게 느껴지고, 내 처지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그런 때. 지하철 좌석에 앉아, 버스 좌석에 앉아, 걸으면서 생각한다. 나는 왜 다큐를 끝내지 못하나. 8년이나 되었는데. 어떻게 하다 모든 장면들이 중요해 한 컷도 잘라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나. 왜 그 아이처럼 번뜩이는 재능이 없나. 그게 실은 거짓일 지라도, 자기 잇속만 가득 챙기는 이기적인 행동일 지라도, 내게는 왜 그런 능력이 없는 것인가. 내가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그런 때. 되돌아보니 그런 서글픔과 절망과 포기의 순간들이 나를 점점 둥글둥글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어떤 좌절과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나는 계속 모서리가 뾰족하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단단한 돌인 채로 있었을 것이다. 어떤 충고와 조언과 칭찬이 침투할 수 없는 그냥 단단하기만 한 돌. 누군가를 만나고 그이와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또 누군가를 만나 행복해하고 좌절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또 만나 지금의 내가 되었다. 모서리는 적당히 닳았고, 어느 정도 무르고, 어느 정도 단단해졌다. 그러니 벤 스틸러와 나오미 왓츠 부부가 젊디젊은 아담 드라이버와 아만다 사이프리드 부부를 만나 힙합을 추고, 약에 취한 시간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것이다. 몇년 전 내가 느꼈던 것처럼 유치하기만 한 시간들이 아닌 것이다. 그 시간들을 거쳤기에 8년동안 만든 다큐에서 누군가 불필요하다고 조언해준 장면들을 쓱싹하고 잘라버릴 수 있는 것이다.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니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첫 문장을 다시 써보자. "우리가 글로 쓴 것들은 우리와 함께 늙어갑니다. " 이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와 함께 늙어가는 것이 또 하나 있다는 게. 아주 큰 위안이 된다. 



    * 중년(中年) : 청년과 노년 사이의 나이. 곧,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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