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450 아멘 오늘은 기계 위에서 땀 흘리며 걷기 싫어서 불광천을 걸었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촌동생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사촌동생의 외할아버지라고 하면 멀게 느껴지는데, 숙모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의 거리가 엄청나게 좁혀진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이렇게나 잘해주는 숙모의 아빠인 것이다. 나는 엄청나게 습해진 여름밤길을 걸으면서 그날을 떠올렸다. 명절이었고, 숙모와 사촌동생이 고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 우리를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준 밤. 기약없이 늦어지는 버스를 간이 정류장 벤치에서 기다리던 밤. 인적이 드문 그곳에서 숙모가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나즈막히 이야기했다. 젊은 시절, 숙모의 아버지는 반듯한 분이었다고 했다. 너무 반듯해서 숙모는 .. 2018. 7. 11. 몸 지난 주부터 아침 저녁 식단을 조절하고 있다. 대충 많이 먹던 것을 신경써서 적당히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퇴근하고 와서는 몸을 움직이려고 한다. 동생이 추천해 준 초보 홈트 영상을 보고 30분간 따라하거나, 집까지 11층을 걸어 올라오거나 하는 등. 체중을 줄이기 위한 몸부림(!)은 타의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진작부터 실천해야 하는 것이긴 했다. 지금까지의 엄청난 다이어트 실패들을 교훈 삼아, 이 식단과 운동을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도록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밥도 여러가지 만들어 보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친구집에서 이유식 책을 봤는데, 거기에 남은 이유식 재료로 만든 성인요리가 있었다. 두 가지를 유심히 봤는데, 계란오이볶음과 렌틸콩마늘볶음. 계란오이볶음은 해먹어 봤는데, 아주 맛났다. 얼른 .. 2018. 6. 20. 유월 유월이 되고, 저녁 바람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일년 전 생각을 하고 있다. 일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두 주 가까이 혼자 지냈던 기억들을 이곳에 정리해놓아야겠다. 더 늦어지면 영영 꺼내놓지 못할 것 같다. 가 케이블에서 하면 채널을 돌리다가 멈추고 본다. 1시즌은 이소라 때문에 보았고, 2시즌의 처음 팀은 김윤아 때문에 보았다가, 역시나 로이킴에 푹 빠졌다. 이번 두번째 팀도 첫번째 팀에 이어 포르투갈. 첫번째 팀은 포르투에서 시작했고, 두번째 팀은 리스본에 있다. 저번에 본 방송에서 두번째 팀이 파두하우스에 갔는데, 파두는 '침묵'에서 비롯된 음악이라고 했다. 모두들 그 침묵에서 비롯된 음악을 경건하게 들었다. 아, 나는 내 유럽 여행의 시작이 포르투갈이어서 참 좋다. 오늘은 박정현이 라이브 바에서 .. 2018. 6. 9. 상상 어느 날은, 시골에 가서 소 키우며 살래? 라고 물었다. 나는 잡아먹힐 소를 어떻게 애지중지 키우냐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시골에 가 소 키우고 밭 가꾸며 사는 조용한 삶에 대해서 상상해봤다. 일찍 일어나 몸 움직여 일하고, 오후부터는 내 삶이 있는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 오후 볕이 있고, 달콤한 낮잠도 있고, 느긋한 저녁 시간이 있는 삶. 물론 그렇게 달달한 삶만이 아니겠지만, 그 속에 놓여 있는 나를 상상해봤다. 어느 날은, 친구가 미국으로 이직을 한다며, 영어 잘해? 라고 물었다. 나는 다 그만두고 미국에 가는 상상을 해본다. 빠듯하게 일해서 집렌트비 내고, 생활비 내고, 술집에도 가지 않고, 저녁에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삶일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 외롭겠지? 외로울 거야. 영.. 2018. 5. 18. 안부 월요일 저녁에는 소윤이에게 전화가 왔다. 요가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고 했다. 집까지 30분 정도 걸린다며, 생각이 나 전화를 했다고 했다. 서로 별일이 없는지 안부를 물었고, 최근의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셔틀을 타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니까 어둠이 가볍게 깔린 그 시간의 시내 버스 풍경을 근래에 떠올려 본 적이 없는데, 소윤이 덕분에 그려 봤다. 소도시의 한적한 저녁 버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느긋한 풍경.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 있는 버스 좌석. 운동을 끝내고 봄바람에 가만히 내 생각이 났을 아이. 그렇게 조곤조곤 마음으로 이어진 서울과 전주. 소윤이는 버스를 잘못 탔다고, 내려서 다시 잘 탔다고 했다. 서로 월요일 하루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통화를 끝냈는데, 마음이 고요하고 따스해졌.. 2018. 4. 25. 연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달큰하게 취한 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일주일 뒤에 너는, 사실 그 말은 참고 참은 말이라고, 그날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불쑥 튀어나와 버렸다고 했다. 나는 너의 머리카락을 뒤적거리다 흰머리들을 발견하고 말했다. 우리는 이렇게 흰머리가 나버린 뒤에 만났네. 친구를 만날 때나, 혼자 영화를 볼 때, 곁에 있던 니가 훅하고 납작해져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친구와 헤어지고, 영화가 끝났을 때, 니가 훅하고 자라는데 이렇게 되어버린 내 마음이 신기하다.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녹초가 되어 테이블 위에 불편하게 엎드려 자는 모습을 두 번 사진으로 찍어뒀다. 보고 싶다는 말이 무척 애틋한 말임을 새삼 깨닫고 있는 날들. 항상 어딘가를 같이 가자고, 누군가를 같이 만나자고 말해주는.. 2018. 3. 13. 이전 1 ··· 18 19 20 21 22 23 24 ··· 7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