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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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모퉁이다방 2018. 11. 27. 22:28
지난 주에는 두 명의 친구를 만났다. 한 친구는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다. 대전 쪽에서 지내던 친구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가족은 세종시에 있고, 자기만 이직을 해서 서울에 올라와 있다고, 같이 있다 혼자 있으려니 외로운 느낌이 든다고, 언제 한 번 얼굴 보자고. 우리는 반 년 전에 만났던 사람처럼 퇴근 후 합정역에서 만나 곱창을 먹으러 갔다. 실은 그애가 결혼한 뒤 한참 만에 만난 거면서. 애가 벌써 둘이니까. 옛날 얘기를 하면서, 예전 친구들 얘기를 나누면서, 곱창을 먹었다. 2차를 가서는 먹태와 라면땅도 먹었다. 친구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중학교 때 왜 그렇게 니네들이랑 대면대면 하게 지냈을까. 그때 친하게 지냈으면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을 거 같은데. 우리는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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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카레모퉁이다방 2018. 11. 20. 20:39
간만에 보경이와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샤브샤브집에서 만났다. 이를테면 우리의 단골집인데, 샤브샤브집에 간 것도 오랜만이었고, 우리가 만난 것도 오랜만이었다. 내가 오픈시간을 알아보지도 않고 약속시간을 정해서 근처 커피집에서 샤브샤브집 문이 열 때까지 기다렸다. 보경이가 종이가방을 건넸는데, 거기에 태국에서 사온 선물들이 있었다. 어유 언니 말도 마, 로 시작하는 보경이네 부부 태국 여행담에는 이보다 틀어질 수가 없다, 싶을 만큼 여러 일들이 있었다. 공항에서 픽업 택시를 예약해뒀는데, 날짜를 잘못 예약해서 택시는 전날 이미 왔다 갔고, 좋은 마사지숍을 예약해뒀는데, 예약변경요청 메일이 왔지만 받지를 못 해 이미 취소되어 있었고 등등.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은 여행담을 듣는데, 나는 들으면서 고생했겠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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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모퉁이다방 2018. 11. 6. 22:31
2월에 만났으니 9개월 만이었다. 문래동 곱창집에서 만나 모듬구이 하나와 곱창 하나, 대창 둘을 시켜놓고 소맥을 마셨다. 2월에는 나도 어색했는데, 이번에는 편안해서 좋았다. 근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새우튀김과 감자튀김, 삼치구이를 시켜놓고 2차를 하는데, 산내의 게스트하우스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의 남편, 그 아이도 내 친구다, 그러니 친구가 올해 초에 너무 가고싶어 연락을 해봤는데, 이제 안한다고 했다고. 나는 그럴리가 없다며 얼마전에도 아궁이에 불을 때우는 인스타 사진을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친구와 나는 그해 여름 산내 게스트하우스에 함께 있었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다 갈 생각으로 내려왔는데, 친구가 하루인가 이틀 있다가 따라 내려왔다. 각자 과제를 한다고 방도 두 개로 잡아놓고서, 결국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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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모퉁이다방 2018. 10. 25. 21:38
언제 고백을 했더라. 열렬한 야구덕후라고. 뭐라고 고백을 했더라. 시작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시즌이 시작되면 첫 경기는 꼭 보러 가자고 했던 말은 생각난다. 고척에서 하는데, 돔구장이라 미세먼지도 없고, 춥지도 않다고. 물론 생맥주도 있다고. (야호) 내가 예매를 했는데, 야구장 좌석을 잘 몰라서 엄청난 중간 자리로 했더니 들어갈 때 고생해서 살짝 얼굴을 찡그린 것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맥주덕후인 내게 더 곤혹인 자리였다. 맥주를 마시면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나 화장실 가자고 옆 사람들을 다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 뒤로 좌석 예매는 그 아이 전담.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거다. 몇 년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자신은 한화 팬이라고. 어릴 때부터 줄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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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시옷모퉁이다방 2018. 10. 23. 22:31
봄이가 충무로로 이사를 갔고, 시월에는 충무로에서 모였다. 우리는 골목길에 있는,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이 자주 올 법한 술집에 들어가서 먹고 싶은 안주들을 잔뜩 시켰다. 낙지떡볶이, 두부김치, 계란말이, 김치전. 낙지떡볶이에는 공기밥을 시켜 밥을 비벼 먹었다. 맥주도 마시고, 소주도 마시고, 소맥도 마셨다. 테이블에서 떨어지고 있던 소주병을 잽빠르게 잡아내고 박수를 받았다. 하하하. 최은영의 새 소설집을 읽고 만나기로 했는데, 반 밖에 못 읽었다. 요새 왜 그런지 소설을 읽는 게 쉽지 않다. 읽은 소설 중에 자매의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행복하지 않았던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뒤 대면대면해진 자매가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였는데,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겪은 일도 아니면서, 겪은 것 마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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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모퉁이다방 2018. 10. 1. 20:27
지난주는 좋지 않았다. 놓쳐버릴까 조마조마한 순간이 있었다. 지난주의 끝, 다짐했다. 시월에는 좋은 시간만 보내겠다고. 단단한 것을 굳게 믿고,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서늘한 길을 오래 걷겠다고. 시월이 되고 공기가 차가워지니 살 것 같다. 이제 코끝이 바알갛게 시려지는 계절이 오겠지. 두터운 목도리도 하고. 토요일에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울적해하는 내게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이야기들을 해줬다. 모든 건 장단점이 있어. 그 이야기들은 내 태도를 바꿔주고, 마음의 여유를 주었다. 우리는 짙은 파란색 두툼한 목도리를 함께 봤다. 추석에 만난 숙모는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마음이 무척 괴로울 때 하던 일을 멈추고 곧장 부엌으로 가서 이것저것 재료를 꺼내 칼질을 하고 불을 지피고 음식들을 볶아내다보면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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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모퉁이다방 2018. 8. 16. 21:19
세상에나.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올라왔는데 바람이 분다. 큰 바람이 분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세상에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올 여름이 가고 있다. 절기라는 것이 어쩜 이리 신기한지. 말복에 시원한 바람이 분다. 올 여름 우리들 무척이나 수고했다며 바람을 보내주셨네. 집에 와 동생이 틀어놓은 에어컨을 껐다. 여름내 꽁꽁 닫아두었던 창문을 활짝 열고, 맞바람이 불 수 있게 현관문도 걸개를 채우고 열었다. 세상에, 바람이 분다. 지난 주였나. 지지난 주였나. 오늘보다 덜했지만 바람이 분 날이 있었다. 그날 연신내로 콩물을 사러 갔었다. 바람이 불어 걷기도 할 겸 간 거였는데, 그날따라 두꺼운 청바지를 입었고 조금 걷다 보니 땀이 주르륵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간간이 바람이 불어주었고, 해가 지기 시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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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모퉁이다방 2018. 8. 3. 17:06
위가 안 좋아 병원에 다녀왔다는 아빠는 의사를 탓했다. 진찰실이 너무 좁고, 진찰을 하고 있으면 다음 환자 노크 소리가 들리고, 의사도 성의가 없다는 것. 젊은 의사가 아빠에게 말이 너무 많다고 했단다. 나는 그 얘길 듣고, 아빠가 이번에는 무슨 소리를 그렇게 많이 했을까 생각했다. 서울의 병원에 함께 가 본 바, 아빠는 확실히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다. 젊은 의사를 잘 신뢰하지 못했고, 종합병원의 지위가 있는 의사에겐 유명하신 분이라 들었다, 는 말부터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혹여나 아빠를 하찮게 볼까봐 진료실에 나와서 신신당부를 했다. 아빠, 너무 많이 말하지 마. 의사가 싫어해. 할 말만 하고, 못 믿겠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마. 기분 나빠하잖아. 엄마의 말에 의하면 진주에서 유명한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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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모퉁이다방 2018. 8. 2. 15:08
어떤 이야기 끝에 차장님이 그러셨다. 질투를 하지 않아서 그래. 점잖은 사람인 거야.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점잖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며칠 뒤에 사전 검색창에 '질투'라고 쳐봤다. 두번째 설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함." 식사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를 했다. 죄다 자랑이었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자신의 혈연이 가진 것도 있었다. 아니, 저런 것까지 자랑을 하나. 자신보다 덜 가진 사람에 대한 험담도 있었다. 그 자리가 무척 불편했는데, 자리에서 빠져나오자 나도 그에 대한 험담을 시작하는 거였다. 그게 싫었다. 정말 싫었는데, 내가 그 사람을 질투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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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모퉁이다방 2018. 7. 11. 23:40
오늘은 기계 위에서 땀 흘리며 걷기 싫어서 불광천을 걸었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촌동생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사촌동생의 외할아버지라고 하면 멀게 느껴지는데, 숙모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의 거리가 엄청나게 좁혀진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이렇게나 잘해주는 숙모의 아빠인 것이다. 나는 엄청나게 습해진 여름밤길을 걸으면서 그날을 떠올렸다. 명절이었고, 숙모와 사촌동생이 고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 우리를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준 밤. 기약없이 늦어지는 버스를 간이 정류장 벤치에서 기다리던 밤. 인적이 드문 그곳에서 숙모가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나즈막히 이야기했다. 젊은 시절, 숙모의 아버지는 반듯한 분이었다고 했다. 너무 반듯해서 숙모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