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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날마다 축제 - 헤밍웨이의 젊은 날 파리는 날마다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주순애 옮김/이숲 운 좋게 그날 작업이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줄줄이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글을 쓸 때면 언제나 한 대목을 완성하기 전에는 중간에 일을 멈추지 않았고, 또 다음번에 쓸 내용을 미리 생각해둔 다음에야 하루 일을 끝냈다. 그런 식으로 다음 날도 무난히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때로 새로 시작한 글이 전혀 진척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벽난로 앞에 앉아 귤 껍질을 손가락으로 눌러 짜서 그 즙을 벌건 불덩이에 떨어뜨리며 타닥타닥 튀는 파란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창가에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마음 속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넌 전에도 늘 잘 썼으니, 이번.. 2012. 5. 13.
치코와 리타 나는 죽은 뒤에 뭔가 남는다거나, 다시 태어난다는 거, 믿지 않아. 왜. 믿고 싶지 않으니까. 어째서. 가혹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아. 뭐가 가혹해. 예를 들어, 네가 죽어서 나한테 붙는다고 해도 나는 모를 거 아냐. 모를까. 모르지 않을까. 사랑으로, 알아차려봐. 농담이 아니라, 너는 나를 보는데 내가 너를 볼 수 없다면 너는 어떨 것 같아. 쓸쓸하겠지. p.56 대니 드비토 너의 이름은 유라. 나의 이름은 유도씨. 황정은의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유라. 죽은 원령이다. 나는 죽었고, 유도씨는 살아가고 있다. 나는 죽었고, 원령이 되었다. 언젠가 두 사람이 침대에 나란히 누워 나눴던 말. 내가 먼저 죽으면 유도씨가 나를 붙여줘. 나는 죽어서도 쓸쓸할 테니까. 그러자 유도씨가 붙어. 얼마든지.. 2012. 2. 12.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앤드루 포터! 여기는 아득한 청춘의 그림자들이 고요히 스며들던 한 생애의 뒷골목, 저녁이면 녹색의 별들이 뜨는 리스본 7월 24일 거리 나는 7월 23일의 거리를 걸어 한없이 그대에게로 가고 있었는데 그대는 여전히 7월 24일 거리에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테지 우리의 청춘은 늘 시차가 다르던 생의 거리 - 리스본 7월 24일 거리 중에서 이번 주 내내 장소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이야기들이 시작되고, 성장하고, 끝을 맺게 되는 장소들을 찾아 헤맸다. 여전히 찾고 있지만. 어제는 조금 늦게 회사에서 나와 Y씨랑 사람들이 꽉 찬 이천이백번을 타고 합정으로 왔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 산책길을 걸어 떡볶이와 맥주를 먹으러 갔다. 가는 길에 누군가를 본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본 것 같아요. Y씨.. 2012. 1. 14.
희랍어 시간 - 밑줄긋기 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문학동네 한강의 소설은 시를 읽듯, 그렇게 읽게 된다. 지난해 십일월과 십이월에 천천히 읽어 나간 한강의 노래.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후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 적기 시작했다. 목적도, 맥락도 없이 그저 인상 깊다고 느낀 낱말들이었는데, 그중 그녀가 가장 아꼈던 것은 '숲'이었다. 옛날의 탑을 닮은 조형적인 글자였다. ㅍ은 기단, ㅜ은 탑신, ㅅ은 탑의 상단. ㅅ-ㅜ-ㅍ이라고 발음할 때 먼저 입술이 오므라들고, 그 다음으로 바람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새어나오는 느낌을 그녀는 좋아했다. 그리고는 닫히는 입술. 침묵으로 완성되는 말. 발음과 뜻, 형상이 모두 정적에 둘러싸인 그 단어에 이끌려 그녀는 썼다. 숲. .. 2012. 1. 8.
2012 서재쌓기 심야식당 8. 우리, 선화. 파씨의 입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골드보이, 에메랄드 걸.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원더보이. 패션왕 1. 울분.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 화성의 인류학자.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 집을 짓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 물방울. 노인과 바다. 은교.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3 - 중국.라오스.미얀마 편. 먼 북소리.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킬리만자로의 눈. 제49호 품목의 경매. 열대식당. 소중한 날의 꿈. 비행운. 사랑해야 하는 딸들. 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삶.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2만원의 행복 : 게스트하우스에서의 하룻밤. 계간 아시아 2012.가을호 : 삿포로.. 2012. 1. 7.
우리는, 슬픈 짐승 슬픈 짐승 (반양장) 모니카 마론 지음, 김미선 옮김/문학동네 "나는 기록보관실에 배치되었다. 이제 브라키오사우루스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게 된 것이었다. 그것이 분명 내 마음을 상하게 했을 텐데 지금 생각하니 별로 상관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이 믿었던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예배에 가기를 포기하는 것처럼 나도 이미 얼마 전에 브라키오사우루스의 발아래서 드리는 나의 아침 예배를 포기한 뒤였다. (...)" p.190-191 9월의 어느 날이었다. 자주 가는 서재에 이 책에 관한 리뷰가 올라왔다. 어떤 리뷰는 당장 오프라인 서점으로 달려가게도 한다. 지금 당장, 이 책을 읽지 못하면 죽을 것처럼. 내게 이 책이 그랬다. 오랜만에 오프라인 매장에서 책을 구입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2011.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