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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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모퉁이다방 2009. 1. 24. 18:40
내게는 라는 제목의 책이 있어요. 지난 여름 즈음에 이벤트로 받은 책인데, 마음에 드는 책이에요. 일단 표지 전체가 나무 사진이예요. 튼튼해보이는 까만 나무 기둥과 싱싱한 초록잎이 그득한 사진이예요. 표지만 보고 있어도 이 나무들의 기운이 내게 전해지는 듯한 기분, 산림욕하는 듯한 기분이에요. 어제는 아주 추운 날이었잖아요. 자판기 옆에 서서 화장실 간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창 밖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그 책 생각이 나는 거예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책 속 어떤 나무 생각이었죠. 여름에 그 나무들을 한참 들여다보다 사진도, 짧은 글귀도 너무나 예뻐 노란 포스트잇을 붙여두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들여다보았던 나무가 있거든요. 그래서 화장실을 다녀온 누군가에게 말했죠. 오늘 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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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 우리가 가진 문장서재를쌓다 2009. 1. 17. 02:39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민음사 지난 주말에는 많이 아팠다. 목요일부터 몸이 심상치 않았는데, 금요일에는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씻고 바로 누웠다. 그 길로 주말내내 끙끙 앓았다. 누가 내가 아픈 걸 알아주지 못할까봐 일부러 소리내서 앓았다. 아야, 아야, 소리를 내면서. 쥬스를 마시고 자고, 죽을 먹고 자고, 약을 먹고 잤다. 주말내내 큰소리 내며 잠만 잤다. 그리고 마침내 감기가 나았을 때, 그럼에도 가만히 누워있었을 때 이 소설을 생각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 2009년을 이 소설로 시작했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섰을 때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생각치도 못한 반가운 손님이었다. 아주 예쁜 눈이었다. 소리없이 펑펑 쏟아지는 아주 새하얀 눈이었다. 휴대폰 사진기로 사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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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자신만 푸르른 슬픈 청춘인 사람극장에가다 2009. 1. 14. 23:36
오늘은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들렀어요. 긴 머리보다는 짧은 머리를 좋아해서, 조금만 길어지면 싹둑싹둑 잘라네요. 퇴근길의 지하철에서였죠. 장한평즈음이었나. 갑자기 사가정에서 내려서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자르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 거예요. 그렇게 저는 몽실이가 되었답니다. 그세사의 송혜교 머리를 늘 탐내왔었는데, 정말 누구말대로 송혜교가 하니깐 예쁘지, 저의 경우는 완전 몽실이에요. 흠. 이게 아닌데. 아무튼 전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결심한 장한평 즈음의 지하철에서 를 읽고 있었지요. 그리고 월요일에는 를 보고 있었구요. 한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도 읽기 전에 이 이야기가 가진 설정 자체가 너무나 흥미로운 거예요. 신비스럽구요. 80세의 노인으로 태어나 갓난아기가 되어서 죽는 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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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복된 새해를서재를쌓다 2009. 1. 7. 00:52
작년 여름이었나보다. 맙소사, 벌써 작년이 되어버렸다. 도서관에서 을 읽었다. 책상이 부족해 벽에 나란히 여분의 나무 의자를 붙여 놓은 그 의자 위에서였다. 공선옥의 '폐경전야'도 읽었고, 김애란의 '도도한 생활'도 읽었지만, 역시 내가 좋아한 소설은 김연수의 '모두에게 복된 새해를'이었다. 나는 그 소설의 마지막 문단을 곱씹으며 올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날, 이 소설을 꼭 한번 다시 읽어야지, 생각했다. 따뜻한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에.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7 이청준 외 지음/현대문학 지난 주말에 오래간만에 도서관에 들러 이 책을 대출했다. 그리고 주말내내 이 짧은 소설을 음미해가며 읽었다. 그야말로 '당신에게 복된 새해를'이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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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를 읽는 계절서재를쌓다 2008. 12. 21. 17:16
p.304-305 오늘 이 문장들을 다시 읽었다.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따뜻해졌다. 12월에 나는 윤대녕의 를 읽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야 내가 윤대녕을 읽은 계절이 거의 겨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겨울과 윤대녕. 이건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조합이다. 소설은 겨울이 한창일 때 시작되었다가, 봄이 오기 직전, 그러니까 겨울이 가기 직전에 끝이 났다. 아주 깜깜한 어둠이 아니라 파랗게 어스름이 깔려오는 새벽녘이라는 뜻이다. 요즘 브로콜리 너마저의 '유자차'라는 노래를 듣고 있는데, '유자차' 노래가사에 비유하자면, 과거를 유자 사이에 켜켜이 넣고 뜨거운 눈물을 부어 마시는 거다. 그리고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소설을 읽으면서 언젠가 잡지에서 본 적이 있는 윤대녕의 작업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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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 꿈과 이야기를 믿는 아이극장에가다 2008. 12. 4. 21:40
지난 금요일에는 영화를 봤다. 라고 니콜 키드먼과 휴 잭맨이 나오는 영화다. 호주 출신의 바즈 루어만 감독 영화다. 당연하게도 호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사실 내가 관심있었던 건 영화보다는 와인이었다. 영화 상영 1시간 전에 와인 파티를 한다는 거였는데, 안타깝게도 압구정 지리에 깜깜한 친구와 나는 길을 잃고 상영 전에 겨우 극장에 도착했다. 그래도 와인 한 잔은 마셨다. 그리고 영화를 봤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는 영화. 벌써 일주일 전 이야기다. 나는 요즘 책도 잘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영화도 보지 않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이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였다.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무미건조하게. 이야기도 읽지 않고, 이야기도 보지 않고. 밥 먹고, 잠만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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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랜덤 - 달의 반대쪽에는 꿈을 꾸는 이가 있다는 이야기서재를쌓다 2008. 9. 30. 23:52
로버랜덤 J.R.R 톨킨 지음, 크리스티나 스컬 & 웨인 G. 해몬드 엮음, 박주영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이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톨킨이 이 이야기를 만들게 된 동기때문이었다. 톨킨의 둘째 아들 마이클에게는 굉장히 좋아한 나머지 밥 먹을 때도, 손 씻을 때도 놓지 않는 바둑이 인형이 있었는데, 어느날 바닷가에서 물수제비를 뜬다고 잠시 자갈밭에 놓아두고는 잃어버렸다. (이걸 보면 마이클은 인형보다는 물수제비가 더 좋아한 건데) 이 인형은 하얀색과 검은색이 섞인 납인형이었는데 자갈밭에 놓아두었으니 찾기는 다 글렀다. 며칠을 울며 바둑이 인형을 그리워하는 아들을 위해 톨킨은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로버, 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있었는데, 요 장난꾸러기가 마법사의 바지를 물어뜯은 거야. 마법사는 화가 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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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 진짜라는 이야기서재를쌓다 2008. 9. 9. 01:09
나는 아주 오래 이 책을 기다려왔다. 1년도 더 된 것 같은데. 라는 소설이 있는데 아주 따뜻하다더라, 는 말을 듣고 도서관에서 기다리기를 몇 달. 인기 있는 이 소설은 늘 대출중이었고, 심지어 예약까지 되어있어서 그저 반납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날은 집에서 검색해봤을 때 '대출가능'으로 되어 있어서 룰루랄라 뛰어갔는데, 서가에 없어 한참을 찾다가 다시 검색을 해 보면 '대출중'이라는 문구가 떴다. 그러니까 는 우리우리 도서관에서 아주아주 인기 있는 책. 그리고 돌고돌아 드디어 내게도 도착해주었다는 말씀. 나는 몇일을 품에 안고 다니며 이 푸른책을 아껴 읽었다. 지난 금요일에는 친구가 쌀국수를 사준다고 오라고 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내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는데, 바로 서쪽 하늘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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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하루키를 읽는 밤서재를쌓다 2008. 8. 30. 15:55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문학사상사 하루키의 데뷔작 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실로 간단하다.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정말 불현듯 쓰고 싶어졌다." 아니. 이건 이를테면 프롤로그고, 실제 시작하는 문장은 이렇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학교 1학년 때 내게 꽤 나이 차이가 나는 남자를 소개시켜준 선배가 있었다. 나는 그 남자의 나이가 부담스러워 만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러면 선배는 메일이라도 주고받아보라고 했다. 선배는 내게 그 남자가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고 소개했다.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는 내게 종종 메일과 함께 사진을 보내왔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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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릿파크 - 살얼음판을 건너는 일에 대하여서재를쌓다 2008. 8. 19. 17:24
불릿파크 존 치버 지음, 황보석 옮김/문학동네 이 소설을 읽고 기억에 남은, 아니 마음에 남은 두 가지. 마법과 노란방. 이 몇 페이지를 읽는 동안 마음이 벅차 올랐다. 아, 이건 내가 찾아 헤맨 마법, 그리고 노란방이야. 미국 교외 중산층에 대한 반어적인 풍자와 코미디 이런 해석은 이미 멀리 보내 버렸다. 토니의 마법, 해머의 노란방. 어제 술자리에서 동생은 인생이란 살얼음판이야, 라고 중얼거렸다. 튼튼해보여도 언제 내 밑의 얼음이 깨져 풍덩 차가운 물 속으로 빠져버릴지 몰라. 동생은 일주일 전만 해도 다닌지 한 달이 채 안 된 회사에서 돌아와 매일 울었다. 나와 동생의 남자친구는 멀지 않은 곳에서 내내 따라가겠다고, 그러다 니가 빠지면 재빠르게 밧줄을 휘둘러 구해주겠다고 안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