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해당되는 글 231건
- 배달되어온 봄 6 2008.02.22
- 아빠의 스크랩 4 2008.02.16
- 대성당 - 그의 문장은 빵집 주인 같아 4 2008.02.15
- 명랑한 밤길 - 낮게 거니는 비 내리는 밤길 10 2008.02.13
- 엄마의 집 - 나는 소년이 되었다 20 2008.01.31
- 암스테르담 - 누가 그들이 틀렸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6 2008.01.24
- 외출, 영화와 책 사이 6 2008.01.19
- 오늘의 거짓말 - 서울내기같은 그녀의 소설들 8 2008.01.15
-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 - 그녀들이 사는 곳 2 2008.01.14
- 나라 없는 사람 - 커트 보네거트, 당신을 이제서야 만납니다. 13 2008.01.08
연휴가 끝나갈 때쯤 아빠가 오래된 책을 건네 주셨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내게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말라는 아빠의 말씀.
손때가 잔뜩 묻고, 밑줄이 그어져 있고, 몇몇 책장들은 찢어져 나가려고 하는
이 오래된 책 맨 앞 장에 아빠는 정민 선생님의 한시 해설 한 편을 스크랩 해 두셨다.
가을 산이 자꾸 길을 지운다는, 그 곳에서 길을 잃는다는.
아,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아야지.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문학동네 |
커피를 내렸다. 친구가 싸 준 원두커피. 브라우니 한 조각을 냈다. 친구가 만들어 준 초코 케잌. 그것들을 야금야금, 홀짝홀짝 먹어치우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다시 읽었다.
레이먼드 카버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 이 두 단편이 살아남는다면 자신이 정말 행복할 거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이 두 단편을 읽으면서 그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읽게 해준 것에 정말 행복해했다. 지상의 말이 하늘까지 닿는다면,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고마워요. 당신은 글은 정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 도움이 되었답니다.
'대성당'의 마지막 부분도 뭉클했지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마지막 부분에 나는 울어버렸다. 사경을 헤매다 결국 아이를 잃은 부모. 케잌 하나가 뭐라고 끊임없이 협박 전화를 걸어온 빵집 주인. 이 세 사람이 컴컴한 새벽에 결국 갓 구운 빵 냄새가 가득한 빵집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말이다. 아이없이 중년을 지나는 외로움을 아는 빵집 주인이 이제 아이없이 중년이 될 부부에게 그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코끝으로는 이내 갓 구운 행복한 빵냄새로 가득해졌고, 그 가운데 쓸쓸한 세 명의 뒷모습이 저 멀리 보였다.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하루 아침에 애지중지하던 아이를 잃을 수 있게 되는 것. 그래서 미리 주문해놓은 케잌을 찾을 수 없는 것. 그렇지만 어느 순간 베이킹 파우더를 넣어 한껏 부풀어진 빵들처럼 슬픔도 외로움도 잊고 살아가는 일에 부풀어오를 수 있는 것. 그래야만 하는 것이므로.
레이먼드 카버의 문장들은 짧고 건조하다. 무엇을 했다고로만 가득차 있는 그의 문장에서는 수분이 날아가버린 말라버린 야채에게서 느껴지는 그 무엇이 느껴진다. 전혀 일말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문장 하나하나를 따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만들어지는 감성의 뭉치들이 스물스물 몰려오다 먹구름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나는 마지막 순간 슬퍼지고, 쓸쓸해지고, 때로는 행복해진다.
엉뚱하게도 이제 내가 사랑하게 된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속 빵집 주인이 카버의 문장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에게 친절한 인사따위는 건네지 않는 무뚝뚝한 사람. 그저 빵을 굽고 그 빵을 파는 사람. 그러다 케잌을 찾아가지 않는 손님에게 그것을 잊어버린 거냐고 짧게 호통만 치고는 전화를 끊어버리는 사람. 전화를 끊고나서는 주인 잃은 케잌을 물끄러미 쳐다 봤을 것 같은 사람. 그러다 어느 날 찾아온 정말 주인을 잃은 케잌의 부모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편안한 빵을 배부를 때까지 내 올 사람. 그래서 염치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아이를 방금 잃은 부모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들게 할 사람. 조심스럽게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할 것만 같은 사람. 그러면 보지 않아도 눈가가 촉촉해져 있을 사람. 투박한 손을 가졌을 사람. 내 고개를 끄덕이게 할 사람. 그리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묵묵히 빵을 구울 사람.
빵집 아들이었던 김연수 작가가 이 소설을 번역하면서 자신의 기억 속 어떤 빵냄새를 기억해냈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분명 어떤 종류의 빵 냄새든 떠올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 허기진 하교길에 빵집으로 후다닥 들어와 손도 씻지 않고 갓 구워진 빵 하나를 깨물었을 때의 냄새였을까. 아니면 그가 자전적 소설 <뉴욕 제과점>에서 말하던 버려지는 빵 부스러기들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어치울 때의 냄새일까.
커피도 달고, 브라우니도 달다. 이 모든 걸 감싸고 있는 공기도 달고. 오늘 하루는 나도 달고, 당신도 달았으면 좋겠다. 살아가는 일이 늘 그래프의 상위 곡선을 그릴 수는 없지만 오늘 하루쯤은 제법 달달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이른 아침 두 눈을 비비고 만든 시원한 무와 바지락을 썰어넣은 무국을 마시며 예감했던 것처럼.
명랑한 밤길 공선옥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기어코 맥주 2병을 사왔다. 집에서 가져온 예쁜 팔각형 유리컵에 맥주를 좔좔좔 따르고 벌컥벌컥 마셨다. 달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한 뒤 책이 들어왔다는 문자를 받고 달려가 받아와놓고선 다른 책만 읽어댔다. 그러다 반납기간이 얼추 다가오는 것 같아 연장을 하려고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벌써 누군가 예약 신청을 해버린 바람에 연장이 안됐다. 연휴동안 내려가서 다 읽고 오자고 생각했는데 뒹굴거리기만 한 탓에 반납기간이 넘어서 읽기 시작했다. 누군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텐데. 염치없게도 3일을 더 가지고 있었다. 내일은 꼭 반납해야지.
첫번째 단편, '꽃 진 자리'를 읽고선 맨 앞 장의 작가 사진을 유심히 봤다. 이름을 소리내어 읽었다. 공.선.옥. 두번째 단편, '영희는 언제 우는가'를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읽었다. 휴게소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동시에 글이 끝났다. 아득한 느낌. 세번째 단편 '도넛과 토마토'를 읽으면서 서울에 도착했다. 긴 연휴가 끝났다. 휴우. 네번째 단편 '아무도 모르는 가을'을 읽으면서 잠이 들었다. 서울의 밤은 고요하다. 작가의 대화체가 신기하다. 소리나는 것과 비슷한데 같지는 않다. '날 안아주세요오오옹'의 서글픈 메아리가 가슴을 둥둥 친다.
다섯째 단편, '명랑한 밤길'은 화장실에서 일을 보면서 마저 읽었다. 이상하다. 작가의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보았던 것처럼 자꾸만 마음에 가는 글귀들을 소리내어 읽어보게 된다. '난 사장님, 돈 줘 소리 못하겠어, 사장 돈 없어, 몸 아파, 어머니 아파, 사장 슬퍼.' 이런 부분들. 여섯번째 단편 '빗속에서'를 읽으며 이 소설집에서 끊임없이 비가 내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비는 그냥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처럼 감정을 싣고 떨어진다. 구슬프게. 갑자기 비가 그리워졌다. 일곱번째 단편, '언덕너머 눈구름'을 선 채로 읽었다. 여덟번째 단편, '비오는 달밤'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 순전히 추석을 혼자 지내는 아부지와의 통화 내용때문에. 비오는 밤에도 달은 뜬다.
아홉번째 '79년의 아이'를 읽고 비지찌개를 끓여 먹었다. 비지가 담백하지 않고 비렸다. 뭐가 덜 들어간걸까. 아니면 더 들어간건가. 열번째 '지독한 우정'을 창가에서 읽었다. 엄마는 나를 악아,라고 부른다. 이게 무슨 뜻일까 싶었는데 마지막에 가서 나는 악아,를 입밖으로 소리내어 봤다. 이해가 됐다. 열한번째 '폐경 전야' 를 읽고 꼭 책이 끝나면 술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이 올만큼 추운 날씨인데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열 두번째, '별이 총총한 언덕'을 읽고 갑자기 동태찌개가 먹고 싶어졌다. 비릿하고 얼큰한 생선찌개. 소설에 등장한 건 삼겹살과 딸긴데, 나는 왜 비릿한 것이 땡길까. 날씨 때문인가.
마지막 장, 마흔 다섯의 공선옥이 쓴 작가의 말을 읽고 책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앞 장으로 넘겨 작가의 사진을 봤다. 작년에 대학로 어느 건물에서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한 대목의 낭독 플래쉬를 본 적이 있다. 성우 목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작가가 직접 낭독한 것이었다. 작가의 목소리도 마음에 든다. 낭독을 듣고는 수첩 귀퉁이에 작가 이름과 제목을 적어뒀었다. 택시를 타고 담배를 피는 엄마를 기사가 욕한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다고. 그리고 마지막 문장. '기사의 욕도 얼굴에 맞는다. 나는 담배를 깊숙이, 양껏, 힘차게 빨아 당긴다.'
좋아하는 작가 목록에 공선옥을 올리고,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전문을 찾아 읽어봐야지. 맥주 한 병에 알딸딸해지는 나는 언젠가 동네 골목길에서 만난 동남아시아쪽의 한 여자를 생각해냈다. 나이가 꽤 있어보이던 여자는 지나가는 나에게 휴대폰을 내밀며 문자 하나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멈춰서서 내용을 부르라고 했고,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 미안해요. 지금 술 한 잔 할 수 있어요?' 미안하다고 했는지 잘못했다고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여자의 표정에 다급함이 묻어났었다. 정말 미안해하는 표정. 정말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는 표정. 나는 핸드폰 자판을 누르면서 정말 여자가 언니에게 잘못을 했을까 생각했다. 여자는 나에게 이렇게 보내면 괜찮을까요, 라고 물었다. 그 때 한 한국 여자가 나타났고 그 동남 아시아 여자에게 아는 척을 했다. 여자는 그 한국 여자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지만. 그래서 동남 아시아 여자는 언니와 만나 술 한 잔 했을까? 언니는 여자를 용서해줬을까?
공선옥은 낮게 낮게 걸어간다. 비오는 낮길을, 비오는 밤길을 낮게 낮게. 나는 그녀가 퍽 마음에 든다.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낭독 들을 수 있는 곳
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열림원 |
갑자기 어깨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내 머리카락들이 무겁게 느껴졌다. 이것들을 당장 잘라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가는 길 모퉁이에 작은 동네 미용실이 있다. 늘 눈여겨 보았던 곳. 문을 열고 들어갔다. 컷트를 하러 왔다고 했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니 이건 너무 짧지 않냐고 한다. 그럼 그냥 컷트로 잘라주세요. 그러고보니 자르는 컷트와 짧은 머리 모양의 컷트의 말이 같다.
잘려나가는 내 머리카락들을 보며 한창 읽고 있던 전경린의 <엄마의 집>을 떠올렸다. <엄마의 집>의 스무 한 살의 주인공은 엄마가 골라주는 예쁜 여자용 옷이며 신발을 거부한다. 나랑 어울리지 않아. 정 원한다면 언젠가 입고 싶어질 때 입을게. 서른 살쯤? 아니, 마흔 다섯 살쯤? 핸드폰에 저장해 온 머리보다 조금 길게 잘랐다. 나는 소년이 되고 싶은 걸까. 스물 아홉의 애인이 없어 선을 보는 예쁜 여자가 되기 싫은 걸까. 엄마는 얼마 전 전화를 걸어와서 내게 선자리가 들어왔다며 기쁘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다른 엄마들처럼 별 수 없구나, 싶어 웃으면서 싫다고 했는데 엄마는 그걸 나도 드디어 선을 볼 수 있게 된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나보다.
나는 왜 핸드폰에 그녀의 사진을 저장해가선 똑같이 잘라달라고 한걸까. 그녀는 이제 전 남편을 잃고 두 살짜리 딸 아이를 혼자 키우며 살아갈 나와는 나이만 같은 동갑내기일 뿐인데. 조금이라도 더 짧게 자르고 싶은 마음에 뒷 머리를 조금 더 잘라줄 수 없냐고 했다가 동네 미용실 언니는 자존심이 상한듯 금방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것까지 자르면 이쁘지가 않아요. 아줌마처럼 된다구요. 나는 집에 가서 대충 잘라봐야지, 생각하고 만원을 건넸다. 컷트를 하는 내내 생글생글 재잘거렸던 미용실 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삼천원을 건네준다. 정 그러면 일주일 안에 와요. 잘라줄게.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일주일 안에 안 올거고, 미용실 언니도 잘라줄 마음이 전혀 없다는 걸. 그리고 내 등 뒤에서 미용실에 있던 미용실 언니의 언니와 내 험담을 시작할 거란 걸. 내가 컷트를 하는 내내 다른 손님 험담을 한 것처럼. 나는 갑자기 전경린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알고 있던 예전의 그녀의 글이 아니라고.
그 길로 도서관에 들렀다.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가 있다. 책 진열장을 지나 창가에 의자만 나란히 놓아둔 자리. 여기 앉아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이해될 것처럼. 책갈피를 꺼내고 그 곳에서부터 <엄마의 집>을 읽는다. 내가 아는 전경린은 이렇다. 그래, 그녀의 모든 책은 읽지 못했다. 세어보니 세, 네 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기억력이 좋지 않은 탓에 오래 전에 읽은 책들은 내용이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친구가 무척 좋아했다. 전경린. 다른 여자 작가들과 달라서 좋다고 했다. 관습적이지 않아서. 늘 선을 벗어나려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 친구는 전경린을 여전히 좋아한다. 얼마 전 <엄마의 집> 신간 소식을 듣고 문자를 보냈더니 전경린이 좀 더 자주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중반까지 읽으면서 이건 전경린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건 너무 따뜻해. 이건 너무 평온해. 이건 너무 교훈적이야. 이건 너무 평범해. 스물 한 살 주인공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사춘기 시절 엄마와 함께 살지 못했고, 아빠는 금새 재혼을 했다. 운동권이였던 아빠는 직업을 제대로 가지지 못한채 세상을 맴돌고, 엄마에게는 새 애인이 생겼다. 어느 날 아빠는 재혼한 여자의 딸을 자신과 엄마에게 맡기고 갔고, 엄마는 그 아이에게 자신을 친척 아줌마라고 생각하라고 한다. 스물 한 살의 내가 사랑했던 K는 여자다. 그래, 이건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다. 너무나 극적인 상황들의 조합이다. 그런데 이것을 이야기하는 전경린의 시선이 너무나 따스하다. 62년생 실제 작가의 시선이 아니라 88년생쯤의 주인공 아이의 1인칭이라 그랬던 걸까. 이건 친구가 좋아했던 전경린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러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전경린이구나 싶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이야기. 전경린은 말한다. 잠자는 공주도, 덩쿨도, 그 덩쿨을 휘두르는 칼도, 공주를 구하려 오는 왕자도 모두 '나'라고. 덩쿨도, 칼도, 왕자도 모두 공주, 바로 나 자신이라고. 나는 내가 휘감은 덩쿨에 갇혀있고, 내가 스스로 무찔러야 할 칼을 집어 들어야 하고, 그걸 휘둘려야 할 사람은 왕자가 아닌 잠자고 있는 공주, 바로 나라고. 결국 잠자는 나는 내 자신만이 깨울 수 있는 거라고. 이제야 모든 것이 전경린다워진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장까지 조금 따스해져서, 교훈적이게 말하는 엄마의 이야기들이 여전히 전경린스럽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변한 것도 전경린이고 그 속에 전경린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을 느끼며 읽어내려갔다. 삼인칭 시점으로 바뀌는 순간은 어쩐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책을 덮고 나니 스물 한 살의 주인공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1인칭으로 쓰여진 소설. 주인공의 이름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은 걸까. 엄마의 이름은 또렷했다. 윤진. 처음 엄마의 이름을 읽었을 때, 작가의 소설 <내 생애 꼭 하나뿐일 특별한 날>을 원작으로 한 영화 <밀애>의 여배우 김'윤진'을 떠올렸다. 남편에게서 상처 받는 여자, 아슬아슬한 다른 사랑을 즐기는 여자. 제도 안에서 제도 밖을 꿈꾸는 여자. 결국 그 여자가 이혼을 했던가. 그녀의 사랑이 계속 되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린 아이였던 그녀의 딸이 이렇게 커서 '엄마의 집'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 아닐까. 한 십년쯤 후에. 다시 책을 뒤적거리다 알았다. 이 책에서 주인공 이름은 엄마 윤진에 의해서 꽤 많이 불려졌단 걸. 엄마는 항상 호은아, 라고 다정하게 딸의 이름을 부르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호은아. 호은아. 꽤 멋진 이름이다. 소녀같지도 소년같지도 않은 이름.
미용실에 다녀온 다음 날 머리를 감고보니 꽤 마음에 들었다. 뒷머리도 자르지 않는 게 나았다. 미용실 언니의 판단이 옳았다. 확실히 어깨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가 꽤 무게가 나갔음에 틀림없다. 이렇게 마음이 가벼워진 것 보면. 나는 소년이 되었다. 그렇게도 원하던.
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Media2.0 |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수확은 작가 이언 매큐언을 알게 되었다는 것. 마지막 장을 덮고 앞 표지에 씌여진 작가 소개를 다시 읽었다. 48년생의 영국 출신 작가.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한 작가. <암스테르담>으로는 부커상을 받은 작가. 곧 그의 다른 작품 <속죄>을 원작으로 한 영화 <어톤먼트> 가 국내 개봉 예정인 작가.
표지 그림에는 매력적인 여인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사진기 한 대. 이 여인의 이름은 몰리.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모두 이 여인으로부터 비롯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두 남자, 클라이브와 버넌은 이 여인을 열렬히 사랑한 적이 있었고, 소설의 결말은 모두 이 여인이 찍은 사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아니, 사실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다. 모든 일이 그렇듯 근본적인 원인은 이 두 당사자들에게 있었으니 남 탓 할 수는 없겠다.
누구도 대나무처럼 정확하고 곧은 도덕적 잣대로 분명 너의 그 판단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네덜란드가 다른 국가에서는 금지하고 있는 안락사, 마약,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고 있는 것을 두고 그들이 분명하게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분별하고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그들은 그들 자신들이 정한 틀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 나름의 틀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뿐.
결국 클라이브와 버넌의 최후는 자신들 각자의 잣대를 상대방에게 들이민 것이다. 물론 시작은 서로에게 그런 부탁을 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누구 잘못이라고 할 것도 없다. 아니, 그 최후가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로써 가장 정확한 판단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때떄로 우리는 절망에 파묻쳐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니까. 총리를 꿈꾸는 외무장관의 성적 취향이 적나라하게 담긴 사진을 신문 1면에 공개하든 안 하든, 한적한 산길에서 다툼을 심하게 벌이고 있는 남녀를 음악적 영감의 흐름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그냥 지나치든 말든, 누가 그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옮긴이의 말을 보면 이언 매큐언은 더 이상 뺄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삭제하고 삭제해 이 짤막하고 재미있는 플롯의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소설이 탄탄하다. 군더더기없이. 두 주인공이 올라탄 플롯의 곡선이 함께 시작해 따로 물결치다 함께 만나는 지점까지 매끄럽게 읽힌다. 군살 없는 콜라병 같은 소설. 캔이며 패트 일색인 진열장의 콜라 행렬 속에서 매끈하게 빠진 콜라병을 발견하면 가끔 나는 묵직하고 따기 힘든 병을 살 때가 있다. 펑하고 상콤하게 마개를 타고, 긴 빨대를 꼽는다. 아랫배까지 싸해지는 탄산 덩어리들을 쭉쭉 빨아 마시고는 깨끗하게 씻어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면 고 투명하고 매끈한 병이 그렇게 눈부실 수가 없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게 되면 처음에 보이지 않던 세세한 것들이 보여요. 일상적인 소품이나 사소한 배우의 표정, 스쳐 지나갔던 대사 하나. 오늘도 <외출>을 보면서 2년 전 극장에서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좋았던 장면들과 그 때는 놓쳤던 사소한 것들을 찾으면서 재밌게 봤어요. 역시 <외출>의 가장 큰 오점은 배용준이라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다시 봐도 그 역할에 어울리지 않았어요. 한 여자의 남편같지도 않고, 소주 잔을 입 안에 털어넣는 동작은 어찌나 완벽하던지요. 배의 식스팩이며. 배용준은 완벽해지려는 사람이라 이제 보통 사람의 역할은 어울릴 것 같지 않다는 생각만 확고하게 했지요.
영화 <외출>이 개봉했을 때 김형경 작가의 소설 <외출>이 같이 출간되었어요. 영화를 촬영하는 것과 동시에 김형경 작가도 시나리오만 읽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해요. 기획성이 짙어서 별로 안 땡겼는데 김형경 작가가 썼다기에 영화를 보고 바로 구입해서 읽었어요. 괜찮았어요. 같은 이야기와 한 시나리오에서 나온 이야기니까 많은 부분이 겹쳤지만 소설과 영화가 이렇게 다른 매체구나를 실감했었어요. 오늘 영화를 다시 보고 소설의 몇 부분을 다시 찾아 읽어봤어요.
"차 좀 세워주세요."
목소리에 울음기가 가득했다. 인수가 길가에 차를 세우자 서영은 황급히 차에서 내려 텅 빈 도로를 가로질러 건넜다. 벌판을 향하고 서서 속엣것을 올리듯 울음을 토해냈다. 단 한 번의 울음에도 내장이 달려 올라올 듯해서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 자세가 더 나쁘다는 것을 서영은 웅크리고 앉은 다음에야 알았다. 그 자세는 오래도록, 깊이 울게 되기 좋은 자세였다.
외출, 김형경. p.73-74
마지막에 인수의 아내가 깨어나고, 인수는 아내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아요. 그 남자 누구냐, 둘이 언제부터 만났냐, 나 속이면서 바람피니까 그렇게 좋았냐, 한 때는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고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또렷하게 보며 차라리 죽지 그랬냐고 하던 사람이였는데. 그냥 인수는 이 말만 해요. '처음엔 궁금한 거 많았는데 지금은 없어졌어'. 그렇게 되기 시작한 시작일 거예요. 저 장면.
저는 이 장면이 참 좋았어요. 그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그랬어요. 여자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려서 텅빈 도로 끝에서 엉엉 울어대던 장면이요.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일어섰겠죠. 남자는 그때까지 여자 뒤에 우두커니 서 있었을테구요. 다시 운전하기 시작하는 창가에 어둠이 퍼렇게 내려 앉아있어요. 엉엉 울었고, 스스르 잠도 몰려오고, 저녁의 어스름이 눈 앞에 보이고, 이제 더 나쁠 건 없을 거라는 평온한 순간이 찾아오는 거예요. 사랑에 빠진 배우자를 대신해서 상갓집에 다녀온 여자의 울음과 남자의 담배. 감정을 다 토해내고 나서 찾아오는 침묵은 말할 수 없이 평온해요.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서영이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식당 밖으로 나갈 때까지도 인수는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서영이 식당 출입문을 열고 나가 수족관 앞으로 걸어갈 때, 그제야 인수는 반쯤 풀린 눈빛인 채 서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취한 몸보다 마음이 더 많이 흔들렸다.
외출, 김형경. p.98
이 영화는 제게 손예진의 재발견이였죠. 이 배우, 예쁘고 새침하고 내숭떨고 있다고만 생각하고 괜히 되지도 않는 질투하고 있었는데, 연기 잘하구나, 어쩌면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었죠. 지금은 그 생각이 <연애시대>를 거쳐서 완전히 굳어졌어요. 좋은 배우라고. 이 횟집 장면에서 손예진의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하며, 정말 술 한 잔 하고 찍었던 것이 분명한 것 같은 그 취한 연기와 울먹이면서 이어가던 대사들에서 어찌나 사실감이 느껴지던지요. 진짜 같았어요. 진짜. 배우도 진짜. 술도 진짜. 서러움도 진짜. 맥주를 마시는 여자와 소주를 마시는 남자. 소주를 마시는 남자를 남겨두고 비틀거리며 맥주를 마시는 여자가 통유리 너머의 횟집 밖으로 나갔을 때, 남자처럼 여자인 제 마음도 흔들렸어요. 저런 여자라면.
저는 <외출>의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았나봐요. 좋아하는 장면들도 죄다 여자가 크게 보이는 장면들이네요. 여자가 혼자 여관에서 병맥주를 시켜놓고 씨디피로 음악을 들으면서 마시는 그녀에겐 끔찍했던 그 시간도 기억에 오래 남구요. 남자가 '너무 멀리 왔나봐요'라며 뛰던 강변, 여자가 '죽이지 마세요'라며 화분을 건네던 병원. 오늘 본 사소한 것 하나하나 기억해둡니다. 어쩌다 세번째로 어딘가에서 <외출>을 보게 되면 오늘까지 생생하게 기억되도록.
봄을 좋아한다던 여자와 눈을 좋아한다던 남자였어요. 어디든 언제든 누구에게든 사랑은 스멀스멀 시작되는 건가봐요. 허진호의 사랑은 늘 그렇죠.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사랑이 한 번 다녀간 뒤에도, 배우자의 불륜을 앞에 두고도요. 그래서 지독하기도 하고, 그래서 다행이기도 해요. 4월에 눈이 내리면 어딘가에서 사랑이 스멀스멀 시작되고 있다는 거겠죠?
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문학과지성사 |
정이현 작가의 소설은 <달콤한 나의 도시>에 이어서 두번째예요. 첫번째 단편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은 읽을 생각만 하다가 아직까지 못 읽었어요. 지난 여름 강연회에서 새 책에 사인까지 받아와 놓고서는 고이 책장에 모셔두다가 얼마 전에 잃어버렸어요. 마침 동생이 이 책을 선물받아 왔던 게 있어서 바로 읽긴 했는데, 한 집에 같은 책 두 권이 뭐가 필요있냐고 그렇게 된건지. 누군가 주워서 읽고 있겠죠? 잃어버리니 <오늘의 거짓말>을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마저 사라지기전에.
정이현 작가는 서울내기 같아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을 한번도 떠나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요. 실제로 프로필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했구요. 제가 지방에서 올라와서 그런지 서울내기들은 딱 보면 알 수 있어요. 저같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딱 보면 알 수 있구요. 사투리를 쓰지 않아도, 얼굴에 그렇게 써져 있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닌데 그래요. 그런데 그녀를 닮은 그녀의 소설도 서울내기 같아요. 사투리 섞인 대화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소설 어딘가에 그런 딱지가 붙여져 있는 것도 아니고, 책에서는 단지 종이와 글자 냄새만 날 뿐인데 그래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아온, 그래서 지방에 잠시 내려갔다가도 서울 톨게이트 팻말이 보이기 시작하면 안심이 되는 서울내기의 소설 같아요.
재밌고 빠르게 읽었어요. '타인의 고독'과 '삼풍백화점'은 예전에 문학상 수상집에서 읽었는데, 다시 읽어도 좋았어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엉엉 울면서 썼다는 '삼풍백화점'. 저는 이 단편이 참 좋아요. 냉소적인 시선이 가장 많이 들어간 '어금니'의 무표정함도, 박정희 대통령이 윗집에 살고 있다는 '오늘의 거짓말'의 상상도, 자꾸만 내 몸을 킁킁대며 냄새를 맡아보게 되었던 '그 남자의 리허설'도, 자판기 밀크 커피에서 스무살의 맛을 느끼는 한 여고생의 '비밀과외'도, 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 '빛의 제국'도, 둥그렇고 말아 뻣뻣하게 올렸던 그 때의 앞머리를 생각나게 했던 '위험한 독신녀'도, 소설가들은 늘 이렇게 메마르고 건조한 부부만 그린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결혼생활은 다 그런 거겠지, 라고 결론을 내어버린 '어두워지기 전에'도, 항문을 찍은 사진을 보고 흥분하는 '익명의 당신에게'까지. 재밌고, 공감했지만, 끄덕거렸지만, 뭔가 허전한 구석이 있어요. 가려운 부분을 긁긴 한데 시원하게 박박 긁지 못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녀를 다음 번에도 꼭 다시 만날 거지만, 이번에 만나고 뒤돌아서는 순간 왠지 우리가 더 깊이 내려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드는 그런 허전함이요.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떠들어대야 하는 거 아닌가, 발라당 넘어지는 실수 한 번쯤 해서 무안하게 웃다가 같이 크게 웃어버리고 그런 순간들이 있어야 했던 거 아닌가 하구요.
학교를 서울에서 다니면서 새 친구들을 사귈 때 서울사람이라고 그러면 왠지 불편하고 쉽게 깊어지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아, 지금 생각해도 이 생각 너무 촌스러워요. 지방에서 올라온 우리끼리 '서울사람'이라는 호칭을 써가면서 이야기하고 그랬거든요. 물론 그러면서 친해진 친구들도 있었지만, 같은 지방 사람이라면 사투리를 쓰지 않아도, 인사를 하면서부터 편안해지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에게는 좀 더 내가 먼저 다가가고 싶다, 이 사람에게는 내 부족한 면들을 보여줘도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촌스럽게도 서울에서 생활하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그런 면이 남아 있어요. 아, 촌스럽다.
아무튼 자꾸 만나고 싶어요. 자꾸 그녀에게 관심이 가요. 그리고 좋아지기 시작해요. 그녀의 새초롬해 보이는 이야기도 좋고, 조금 차가워 보이는 시선도 좋아요. 실은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 것 같구요. 다음 번에는 우리의 관계가 좀 더 깊어지길 바래요. 실수 하나씩 하고, 이번보다 좀 더 크게 떠들면서 이야기 나눠요. 그 때는 소주 한 잔 어때요? 달큰하게 취해가면서. 헤헤. 오늘의 거짓말이 내일의 거짓말이 되지 않길 바래요. 두번째 만남, 즐거웠어요. 그나저나 잃어버린 책은 포기해야겠죠? 그 책이 가방에서 스르르 떨어져 나갔다는 게 오늘의 거짓말이길 바랬지만, 결국 오늘의 진실이였듯이요.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 신경숙.츠시마 유코 지음, 김훈아 옮김/현대문학 |
책을 읽으면서 12월에 다녀왔던 신경숙 작가님의 강연회 생각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넓고 넉넉한 공간이였는데 마이크가 안되는 바람에 작가님 곁으로 다들 옹기종기 의자를 끌어다가 둥그렇게 앉았어요. 첫 줄이라 작가님의 얼굴이 바로 코 앞에 보였어요. 마이크는 금방 해결이 됐지만 그 거리 그대로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었죠. 고백하건데 강연회를 들으면서 울어본 건 처음이예요. 더군다나 그게 한 번에 그친 게 아니였어요. 슬픈 이야기도 아니였는데 어느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거예요. 아무도 모르게 슬쩍 눈물을 닦아냈는데, 얼마 안 있어서 또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 날 이후로 작가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확실하게 깨달은 거죠. 그런데 다리 위에서 만난 아버지 이야기는 좀 슬펐던 것 같아요.
도서관 새로 들어온 책 코너에 이 책이 놓어져 있길래 냉큼 빌렸어요. 신경숙 작가님과 일본의 츠시마 유코 작가님이 1년동안 12번씩 교환한 편지글이예요. 사는 곳, 어린 시절, 살아가는 모습 등의 개인적인 모습과 생각들이 많이 담겨져 있어요. 급하게 읽지 않으려고 하나씩 천천히 읽어나가려고 했는데 그만 밤새 다 읽어버렸어요. 조금만 읽고 자자, 다음 편지만 읽고 자자, 했던 것이 어느새 마지막 편지까지 가 버렸더라구요.
두 작가님이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각자의 어머니에 관한 것이예요. 어머니는, 이라고 시작하는 문장들이 많았어요. 신경숙 작가님의 늘 일하시던 어머니, 츠시마 유코 작가님의 남편때문에 자식에게 엄격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그리고 처음 듣는 것 같은 신경숙 작가님의 아버지 이야기. 역시 처음 들은 츠시마 유코 작가님의 아버지 이야기. 츠시마 유코 작가님의 아버지가 <인간 실격>의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어요. <인간 실격>을 읽었거든요. 읽고 나서 무척이나 우울했었는데. 그리고 장애가 있었던 오빠에 관한 이야기두요. 문학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죠.
각자 사는 곳에 관한 이야기도 많았어요. 이 책의 제목도 두 작가님의 사는 곳 때문에 붙여졌대요. 신경숙 작가님이 사시는 곳은 북한산 근처이고, 츠시마 유코 작가님의 집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는데 아직도 우물이 있대요.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무시무시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 빠질 수 없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두 작가님이 직접 손으로 쓴 편지처럼 정성스럽게 담겨져 있어요.
책을 읽고 갑자기 <작가의 방>이 생각이 나서 책장에서 꺼내 펼쳤어요. 신경숙 작가님이 자신의 집, 그 집이 위치한 산, 글을 쓰고 있는 서재 이야기를 여러 번 언급하셨거든요. 제일 마지막에 있는 신경숙의 방의 사진들을 다시 유심히 들여다 봤어요. 처음 책을 볼 때 탐났던 커다란 책장과 책상, 그 속의 책들, 볕이 잘 들어오던 창과 화분들, 그리고 무릎을 안고 있는 여인의 조각상까지요. 그러다 발견했어요. 사진들 중에 츠시마 유코 작가님의 <나>의 책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사진이요. 그리고 그 곁의 글을 읽는데, 이 취재가 이루어질 당시에 서신 교환은 이미 끝났고 책으로 엮는 작업이 진행 중이였나봐요. 이 책의 원고가 책상 위에 놓여져 있었다는 글에 츠시마 유코님과의 인연에 대한 간단한 언급이 있었어요. 갑자기 반가운 마음이 들어 몇 번을 그 사진을 들여다 봤어요.
마지막 책장을 덮고 처음 든 생각은 벌써 새벽 4시다, 빨리 자야겠다는 것과 자고 일어나면 꼭 누군가 보고 싶은 사람에게 메일을 써야겠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좀 더 자주 메일을 쓰자고, 손편지도 가끔은 쓰자고 다짐을 하고 금방 잠들었어요. 아, 유일하게 번역되어 있는 츠시마 유코 작가님의 <나>도 꼭 읽어야 겠다는 것두요.
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문학동네 |
우선 김애란 작가 이야기예요. 지난 해 낭독회에서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김애란 작가가 얼마 전에 이 책을 읽었다고 했어요. 이 책 속의 서사에 관한 그래프가 있는데 이 선의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져서 그걸 오려서 작업실 벽에 붙여놨다고 했어요. 햄릿의 그래프는 일직선뿐이라는 이야기도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궁금했었어요. 그 그래프의 곡선들에 관해서요.
'문예창작을 위한 충고'에 이 그래프들이 있었어요. 다섯 종류의 이야기에 대한 거예요. '구덩이에 빠진 남자'의 그래프는 구덩이를 닮았어요. 행운에서 시작해서 불운으로 이어지고 행운으로 마무리되는 곡선이예요. '소년, 소녀를 만나다' 그래프는 행운으로 솟아올라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불운으로, 그리고 행운으로 끝나요. '신데렐라'의 그래프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불운에서 시작해요. 계단식으로 차츰차츰 행복해지다가 불운으로의 절벽을 맞이한 후에 행운의 무한대로 신데렐라는 날라가요. '카프카'는 불운의 무한대, '햄릿'의 그것은 불운도 행운도 아닌 곧은 직선만이 존재할 뿐이예요. 저도 김애란 작가가 아름답다고 표현한 이 곡선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어요. 제 눈에 아름답지까지는 않았지만, 그가 이야기를 부드러운 곡선같은 마음이 느껴졌죠. 김애란 작가의 그 마음두요.
제일 신났던 수필은 '러다이트의 즐거운 나들이'예요. 컴퓨터를 쓰기 전에 타자기로 글을 쓸 때의 이야기예요. 글을 쓰고 연필로 사각거리며 간단한 교정을 한 뒤 카피라이트에게 전화를 걸어 간단한 수다를 떨고 새로운 글을 타이핑해 줄 수 있겠냐고 부탁의 전화를 끝낸 뒤, 아내에게 봉투를 사러 나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길을 나서요. 항상 가는 가게에서 봉투를 사고, 항상 가는 우체국에 들러서 우표를 붙이면서 우리들에게 자신은 사실 우체국 아가씨에게 사랑에 빠졌다는 고백을 하죠. 그리고는 우체통에 봉투를 넣고 집에 돌아오는 이 간단한 나들이를 쓴 글인데 그가 이런 행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생생히 느껴져요. 왜 그가 봉투를 대량으로 구입해 놓고 쓰지 않는지 이 글을 읽으면 단번에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요. 저도 이런 사소한 즐거움을 무척이나 사랑하거든요.
커트 보네거트는 책 속에는 미국에 대한, 지식인들에 대한, 석유 소비에 대한. 환경에 신경쓰지 않는 것에 대한, 전쟁과 침략에 대한, 이 세상의 모든 차별에 부조리한 것에 대한 비판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배웠다고 말하는 우리들이 얼마나 현재에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지금 풍요롭게 살기 위해 얼마나 미래를 고갈하고 있는지를 알아야한다고, 정말 모르는 거냐고 이야기해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했어요. 거트 보네거트가 지금 살아 있다면, 우리나라의 서해안 석유 유출 사건을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하구요. '그것 봐. 내가 그랬잖아. 이 어리석은 사람들아' 라고 하지는 않았을까 하구요.
박찬욱 감독님이 <제5도살장>인가, <고양이 요람>을 무척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읽었던 것 같아요. 이제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을 읽을 거예요.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알았으니 그의 소설들이 더 잘 이해될 것만 같아요. <제5도살장>을 먼저 읽을까요? <고양이 요람>을 먼저 읽을까요? 앗. 그가 '문예창작을 위한 충고'에서 세미콜론을 쓰지 말라고 충고했는데, 이렇게 많이 쓰다니요. 심지어 이 문장에서까지도. 아, 저는 좋은 문장을 쓸 수 없는 걸까요? 거트 보네커트. 당신이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된 후에야 나는 당신을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