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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코와 리타
    극장에가다 2012. 2. 12. 11:14

    나는 죽은 뒤에 뭔가 남는다거나, 다시 태어난다는 거, 믿지 않아.
    왜.
    믿고 싶지 않으니까.
    어째서.
    가혹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아.
    뭐가 가혹해.
    예를 들어, 네가 죽어서 나한테 붙는다고 해도 나는 모를 거 아냐.
    모를까.
    모르지 않을까.
    사랑으로, 알아차려봐.
    농담이 아니라, 너는 나를 보는데 내가 너를 볼 수 없다면 너는 어떨 것 같아.
    쓸쓸하겠지.
    p.56 대니 드비토

       너의 이름은 유라. 나의 이름은 유도씨. 황정은의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유라. 죽은 원령이다. 나는 죽었고, 유도씨는 살아가고 있다. 나는 죽었고, 원령이 되었다. 언젠가 두 사람이 침대에 나란히 누워 나눴던 말. 내가 먼저 죽으면 유도씨가 나를 붙여줘. 나는 죽어서도 쓸쓸할 테니까. 그러자 유도씨가 붙어. 얼마든지 붙어, 라고 한 그 대화 때문일 거다. 나는 유도씨가 살아가는 것을 지켜본다.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무심코 부르는 모습을, 새로운 여자가 집으로 찾아오는 모습을, 두 사람이 결혼을 하는 모습을, 나와 유도씨가 함께 기르던 고양이 복자가 죽는 모습을, 유도씨에게 아이가 생기는 모습을, 새로운 여자 그러니까 미라씨가 죽는 모습을, 결국 유도씨가 죽는 모습까지. 쓸쓸하게, 오랫동안 지켜본다. 황정은의 소설들이 그렇듯, 이 소설 또한 무척이나 쓸쓸한데 따듯하다. 

        어제는 모모에 가서 <치코와 리타>를 보았다. 멀어서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지금 보지 않으면 못 볼 거 같아서 지하철을 타고 갔다. 가는 길에 이런 문장을 읽었다. "누군가 가슴속에 들어왔다고 인정하는 순간 너는 바보가 되는 거야.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널 이길 수 없어. 알겠니, 모얀?" 화장실을 다녀와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는 그 곳에 있던 임범의 <내가 만난 술꾼> 문소리 편을 읽었다. 그리고 <치코와 리타>를 보았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야기는 진부하고, 마지막 엔딩은 정말 참을 수 없었지만, 이 영화가 시종일관 풍기는 분위기, 그리고 음악이 꽤 좋았다. 극 중 리타의 목소리가 참 좋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들. 경연에서 우승한 곡도 좋았지만, 나는 치코와 리타, 두 사람이 처음 만날 때 불렀던 그 노래, 베사메 무초가 참 좋았다. 이 노래가 이런 가사를 가지고 있는지 처음 알았다. 키스해 달라고. 오늘 밤이 마지막인 것처럼 키스해 달라고. 당신을 잃을까봐 두렵다고. 항상 당신 곁에 있고 싶다고. 생각해 보라고. 내일 내가 멀리 있어 보지 못하게 된다고. 그러니 키스해 달라고. 오늘 밤이 마지막인 것처럼. 

       영화를 보고 나와 두세 정거장을 걸었다. 쓸쓸한 음악들을 들으면서. 그러자 이 밤이 꽤 근사하게 느껴졌다. 다시 전철을 타고 집에 와 황정은의 소설을 다시 읽었다. 어느새 잠이 들었고, 꿈을 꿨다. 꿈에서 전철이 뒤집혔다. 그걸 나는 지켜봤다. 새로운 카페에도 갔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도 만났다. 그러다 새벽에 깼는데, 혼자였다. 티비를 켜고 리모콘을 돌리니 <악마를 보았다>의 마지막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이병헌이 모든 것을 끝내고 텅빈 도로 위를 걸으며 엉엉 울기 시작하는 장면. 그걸 보다가 다시 베사메 무초를 찾아 들었다. 리타의 목소리. 당신을 잃을까봐 두렵다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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