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령
이순원 지음/굿북(GoodBook)


2천 5백만 년 전 당신에게


   이건 2천 5백만 년 전의 당신에게 보내는 글이지만, 2천 5백만 년 후의 당신에게 보내는 글일지도 몰라요. 겹겹이 쌓여있는 영겁의 시간을 지나 우리가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나는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어제는 장맛비가 한참을 내리고 오래간만에 맑은 날씨였어요. 비 개인 뒤의 이런 날이라면 별들이 평소보다 1미터쯤은 가까이 다가와 있을거란 생각을 했지요. 나는 별을 자주 보지 않는 사람이예요. 언제부턴가 그렇게 되어버렸지요. 어제는 고깃집이 즐비한 큰 길가를 지나 중랑천에까지 걸어 나갔어요. 이곳이 내가 사는 곳보다 별이 좀 더 보이는 곳이죠. 별을 자주 보지 않는 나도 그쯤은 알아요. 나는 선 채로 고개를 젖히고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작가의 말이 생각나 풀밭을 찾아 그대로 뒤로 벌렁 누워 버렸어요. 아, 정말 밤이 한 눈에 넓게 들어오더군요. 서울이란 곳은 별자리를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밝은 곳이라 그저 몇 개의 별 뿐이였지만, 그럼 어때요. 나는 밤을 이렇게나 넓게 올려다보고 있는 걸요. 밤하늘을요. 별들을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어요. 모든 사랑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하지요. 여자는 남자의 옛 친구의 부인이고, 남자는 여자의 남편의 옛 친구예요.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는 으레 이런 조건을 포함하고 있지요. 남자는 중국의 돈황까지 가서야 장거리 전화를 걸어 여자의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여자는 누군가를 잊고 누군가와 시작할 수 있을까, 눈이 쌓인 은비령으로 가는 위태로운 고개들을 넘으며 생각을 해요. 이루어질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 사랑은 가질 수 없기에 더 간절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은비령>은 사랑이야기예요. 늦게 찾아왔지만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싶고, 고민 없이 눈앞에 보이는 이 길에서 우회전을 해 함께 바다를 보고 싶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시간이 2천 5백만 년 전에도 반복되었던 시간이라면 2천 5백만 년 후에도 역시 당신과 그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는, 나와 당신의 공전궤도가 닮아 일 년에 한 번쯤은 만나 후회 없이 사랑을 나눴으면 하는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중국의 길고 긴 사막길의 실크로드 위에서야 여자를 깊이 사랑한다고 느꼈던 남자나, 만날지도 모르면서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은비령으로 길을 나섰던 여자나 무척이나 외로운 사람들이였던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어제 <은비령>을 읽었어요. 폭염주의보가 한반도 어디엔가 내려졌다는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요. 어제 나는 소설 속 남자를 따라 강원도 한계령까지 갔어요. 도심의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운전석의 남자가 씨디 플레이어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엔야의 노래가 흘러나왔어요. 그 순간, 정말 거짓말같이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새하얀 눈이 흩날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은비(銀飛). 남자가 중얼거렸어요. 은비령으로 가지. 그렇게 은비령으로 가게 된 거예요. 44번 국도를 타고 한계령 정상에서 인제로 빠지는 갈림길에서 나는 남자가 건네준 김이 모락모락나는 호빵과 캔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눈이 소복이 쌓인 비밀스런 고개 마루가 나타났죠. 은비(隱秘). 그 곳에서 나는 남자와 남자가 나중에 데려온 여자와 함께 별을 보았어요. 77년 만에 나타난다는 핼리혜성. 이생에서 더 이상 이 혜성의 반짝이는 꼬리를 올려다보는 일은 없겠죠. 우리는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2천 5백만 년 뒤에도 이렇게 핼리혜성의 반짝이는 꼬리를 올려다보며 이생에선 이게 다겠죠, 라고 생각 할 거라고. 우주를 생각하니, 그 까마득한 어둠을 생각하니 몸이 으슬으슬 떨려오더라구요. 한 여름인데도 말이예요.

   2천 5백만 년 전의 당신, 아니 2천 5백만 년 후의 당신. 나는 어제 한 여름의 풀밭에 벌러덩 누워 밤하늘을 넓게 올려다보는 동안 지금의 나와 어쩌면 2천 5백만 년 전의 나와, 그리고 2천 5백만 년 후의 나를 생각했어요. 강원도 어느 곳에 있다는 은비가 내리는, 비밀스런 고개 은비령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쩌지 못해 2천 5백만 년 후를 기약했을 가여운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생각했어요. 그러자 외로워졌어요. 이렇게 혼자 풀밭에 누워있는 나도, 산 속 깊이 숨어있던 외로운 고개 은비령도, 어쩌지 못하는 사랑에 머뭇머뭇 손을 잡지 못했던 남자와 여자도, 깜깜한 어둠 속에서 혼자서 힘들게 타원형을 그리며 공전하는 별도, 내리자마자 스르르 녹아버리는 3월의 눈도, 얼음 사이를 뚫고 올라오는 독이 가득한 예쁜 이름의 꽃, 바람꽃도. 우리 모두는 우주 아래 외로운 존재인 거예요. 그렇지만 다행이지요. 우리에겐 2천 5백만 년 전의 외로움과 2천 5백만 년 후의 외로움이 있으니. 그건 누구나 겹겹이 쌓인 영겁의 시간이 지나도 외롭다는 거잖아요. 얼마나 다행이예요. 혼자 외로운 게 아니니.

   나는 2천 5백만 년 후에도 은비령을 만나고 있을 거예요. 밤하늘도 올려다보겠죠. 여전히 별이 별로 없는 도심의 무심한 하늘 아래일 지도 몰라요. 땀을 뻘뻘 흘린 뒤 강바람에 얼굴을 식히며 눈을 감고 은비령의 눈을 그릴지도 모르죠. 책 속에만 있었지만 이제는 땅 위에 존재하는 이름, 은비(銀飛)령. 작가 혼자 외롭게 스쳐 지나가는 별들의 이름으로 만들어냈지만 이제는 모두가 소리 내어 불러주는 이름, 은비(隱秘)령. 소리 내어 보면 참 예쁜 이름이예요. 나는 잔디밭에서 일어나 옷을 털면서 알았어요. 내 옷이 하얀색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렇게 오래 누워 은비령에 다녀오는 동안 하얀 티셔츠 가득 연둣빛 풀물이 올랐다는 걸.

    소설 속 별을 보는 뒷집 남자가 내게 해 준 말. 정말 위로가 되는 말 아닌가요. 나는 지금 엔야를 듣고 있어요. 정말 별들이 1미터쯤 위에서 속삭이는 것 같아요. 외로워하지 말아요.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럼, 2천 5백만 년 뒤에 다시 만나요, 우리. 안녕.

                                                                                                                          2008년 7월

 


 
- 이순원의 단편 은비령이 단행본으로 나왔다. 어울리지 않는 일러스트나 지나치게 큰 글자크기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덕분에 다시 한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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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함정임 지음/강



    이 땅에 김소진이라는 소설가가 있었다. <소진의 기억>이라는 책을 읽었다. 나는 김소진이라는 작가를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이제는 이 땅에 없는 그를 떠올리며 쓴 글이 있다기에 찾아본 책이었다. <소진의 기억>을 읽으며 정작 그의 글은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주제에, 30분 전에는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던 주제에, 나는 몇 번인가 울었다. 제일 크게 울어버린 건 아마도 성석제의 글을 읽으면서였다. 나는 성석제가 그려주는 김소진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려 봤다. 깡마르고 선하게 웃는 츄리닝을 입은 소설가. 그가 내어오는 찻잔을 생각했다. 찻잔을 담은 쟁반을 든 소설가의 정직한 손을 생각해봤다. 가슴이 뻐근해져 왔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후, 그를 기억하는 문인들의 글과 비평들로 이루어진 <소진의 기억>을 나는 끝까지 읽지를 못했다. 김중혁의 소설이 끝나고 '2000년대 비평이 김소진에게'라는 다섯번째 챕터 앞에서 책을 덮었다. 이 다음 글들은 김소진의 소설을 읽은 후에 읽으리라. 그런 다음에 내가 읽은 글은 김소진의 글이 아니라 그의 아내, 함정임의 글이었다. 이 땅을 떠난 사람이 이 땅에 머물렀을 적에 썼던 글보다 이 땅에 이제 없는 사람을 그리며 이 땅에 홀로 남겨진 뒤에 쓴 자기 치유적인 글은 얼마나 아플까 생각해보다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 때 나는 그녀의 슬픔을 빌려 엉엉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땅에 김소진이라는 소설가가 있었다. 그는 열심히 살았고, 1997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동행>은 93년 그와 결혼한 소설가 함정임의 소설들을 모은 책이다. 93년과 98년 사이에 그녀가 쓴 소설들이다. '함정임 소설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이건 분명 수기에 가까운 글들이야, 나는 생각했다. 소설을 읽어나가며 표지의 사진을 여러 번 들여다봤다. 93년 마라도로 가는 신혼여행 길, 배 위에서 찍은 김소진과 함정임의 사진. 그야말로 새 신랑과 새 신부. 그들 앞에 펼쳐질 새로운 삶. 이 사진에서 김소진의 표정은 얼마나 푸근하고 산뜻한지. 그는 행복을 입꼬리에 가득 머금고 있어서 이 사진만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첫 번째 소설은 표제작인 '동행'이다. 나는 '동행'을 읽으며 그야말로 엉엉 울었다. 취기가 살짝 오른 후이기도 했는데 눈물이 자꾸 고여 글자가 안 보이기 시작하더니 울음이 터져 나왔다. '동행'에서 소설가 소진은 병을 얻는다. 죽음을 선고받는다. 침대 위에 누워 사경을 헤매며 두 사람의 처음을 생각한다. 1992년 영상자료원. 그런 그를 보며 그녀는 생각한다. "그때 우리가 그곳에서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막 외출하려던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내가 날 만나고 싶으면 예술의 전당에 나가려던 참이니 영상자료원으로 오라고 그에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또 그리고 그날 밤 그가 느닷없이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우리는 지금쯤......  (p.14)" 그리고 어느 날 저녁, 그는 이 땅에 살았던 사람이 되었고, 그녀는 이 땅에 여전히 살아갈 사람이 되었다. "벽이 갈라지듯 세상이 쪼개지듯 쩡!하는 소리(p.38)"만 들리던 그날 밤.

   남겨진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게 되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 구석구석에 있다. 남편과 뱃 속의 아이를 함께 보낸 여자, 연달아 두 명의 자식을 병으로 잃은 어머니, 남편을 잃고 혼자된 딸 아이가 안타까운 어머니, 언니, 그리고 또 다르게 사랑하는 이를 사고로 잃은 미경씨. 이 얇은 소설집을 읽으면서 나는 끝까지 엉엉 울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냈지만 마음을 다 잡으며 살아나가는 소설가처럼 내 마음도 그러했다.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고, 그녀가, 그와 그녀의 아들이, 그의 어머니가 이제는 씩씩하게 그를 추억하며 꽤 잘 살아나갈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여전히 뻐근했지만 눈물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병신 손가락'이란 소설을 읽으면 그와 그녀가 살았던 신혼집이 나온다. 튼튼한 벽돌로 둘러쌓인 2층집이었는데, 주인집인 1층에는 피아노를 가르치는 노처녀 언니와 그의 어머니가 함께 살았다. 그 따듯한 2층의 신혼집에서는 드뷔시의 음악이 흘러 퍼지고, 그는 그녀에게 불구자,라고 놀리며 발톱을 깍고, 그녀는 새 에이프런을 두르고 요리를 한다. 집 뒤로 산이 있고, 마당에는 나무가 있어 새들이 쉴새없이 지저귀는 그늘 같은 신혼집. 늦잠을 자고, 가만히 누워 빗소리를 듣고, 야근 때문에 늦는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는 평온한 곳. 나는 소설집을 덮고 난 뒤에도 며칠을 그 집을 생각했다. 그야말로 따스한 신혼집의 풍경을 말이다.

    아마도 나는 자주 이 책을 생각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주 들춰볼 것이라고. 어느 날은 엉엉 울고, 어느 날은 울지 않을 거라고. 이런 구절을 읽었다. 남자와 전에 사귀었던 여자에게 소설가가 하는 말이다. "그냥 그렇게 거기서 견디라고. 누구도 오래 행복할 수는 없고 아주 잠시 행복한 순간만이 스쳐지나갈 뿐이라고.(p.137)" 나는 이 문장을 자주 들춰 볼 것이다. 그리고 잠시 행복해하고, 오래 견딜 것이다. 이 땅에 김소진이라는 소설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 지금도 이 땅을 살아가는 소설가, 함정임이 있다. <동행>의 소설들은 그가 떠난 후, 그와 함께 열심히 살아나가기 위해 씌여진 글들이다. 아, 그리고 위의 저 문장이 씌여진 짧은 소설의 제목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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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가든
편혜영 지음/문학과지성사


   돌아보니 시퍼런 마을이 있다. 하나의 저수지(첫째, 둘째, 셋째가 산다), 하나의 아파트(그 곳엔 개구리비가 내린다), 하나의 맨홀(임신한 어른의 배를 가진 아이가 있다), 하나의 동굴(빨간 터틀넥을 입은 여자의 시체), 하나의 세탁소(그는 하얀 양말을 신은 발로 금붕어를 터뜨려 죽인다), 하나의 박람회(개와 아이가 피를 흘리며 싸운다), 하나의 숲(고양이를 약으로 먹는 할머니가 있다), 하나의 방(친척의 아이를 낳은), 하나의 강(토막난 시체들이 차례로 낚여지는)으로 구성된 아오이 마을. 그런데 희안한 일이다. 피와 쥐, 구더기들이 난무하는 이 마을을 굽이굽이 지나쳐온 내 몸에 한 방울의 피도, 한 마리의 구더기도 옮겨 붙지 않았다. 깨끗하다. 배를 갈라 자궁을 싹뚝 잘라내 베란다 너머로 버리는 수술대 바로 옆에 가만히 서서 고개를 있는대로 숙이고 들여다봤는데도 내게는 피 한방울 튀지 않았다.

   그런 꿈을 계속해서 꾸었던 적이 있다. 도망가야 하는 꿈. 달아나야 하는 꿈. 그런데 내 몸이 꼭 매트릭스의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던 꿈. 모두가 슬로우 모션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꼭 그런 꿈에서는 나만 슬로우 모션이다. 지각하는 꿈. 꼭 입어야 할 옷이 없어 내내 그 옷만 찾으며 발을 동동 굴리다가 끝이 나는 꿈. 그러니까 시작도 못한 꿈. 이야기가 될 수 없는 꿈. 그런 꿈을 꾸다보면 하도 답답해서 어느 순간 이게 꿈이구나, 느껴지게 된다. 그렇다고 이건 꿈이니깐 지금 일어나버리자, 고 마음먹고 깨어날 수도 없다. 계속해서 옷을 찾아야 하고, 계속해서 슬로우 모션으로 도망가야 한다.

   그럴 때의 내 몸, 땅으로부터 1센티미터만큼 공중부양한 채 달아가는 모양을 하고 있는 괴로운 내 몸을 아오이 마을에서처럼 토막내본다. 텍사스의 전기톱을 닮은 아오이가든의 녹이 슨 톱을 빌려 내 팔을, 내 다리를, 내 자궁을 쓰삭쓰삭 잘라본다. 어느새 나는 도망가야 하지만 도망가지 못하는 어정쩡한 모양새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조각난 팔 두 개, 다리 두 개, 몸 하나, 자궁 하나, 눈 알 두 개로 분리되어 있다. 누군가 나를, 아니 나라고 할 수 없게 보이는 내 부분들을 아오이 마을의 강에 내다버린다. 풍덩, 질퍽한 소리가 난다. 잠시 후 한 낚시꾼이 다리 하나를 낚았다. 형사는 내게 전화를 한다. 나는 개구리 비가 내리는 아오이 마을까지 운전해서 간다. 이게 당신 다린가요? 나는 내 왼쪽 다리를 내려다보고 그 테이블 위의 다리를 다시 올려다봐도 그게 내 다린지 아닌지조차 모르겠다. 그저 왼쪽 무릎이 간지러워 긁적긁적거릴 뿐. 제일 마지막에 발견된 내 눈 알을 입 속에 넣고 쪽쪽 빠는 상상도 해 본다. 입 안 가득 지린내가 진동할 거다. 나는 보지 않아도 좋을 많은 것을 봐왔으니. 나는 그걸 삼킬 수 있을까. 우걱우걱 씹어 넘길 수 있을까.

    이건 소설이니까, 이건 상상이니까 가능한 거다,고 생각한다. 아오이 마을따위는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버리고 싶다. 그러니까 내 옷에 피가 하나도 묻지 않았고, 나는 이 끔찍한 이야기들을 아주 재미있게 읽어내려갔다고 말해버리고 싶다. 그런데 이 소설집을 읽고 나서 마음이 서늘해지는 건 아오이 마을이 단지 편혜영의 머릿속에서만 손 끝에서만, 내 꿈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너무나 잘 아는 아오이 마을이기 때문에. 나는 매일 그 강을, 그 저수지를, 그 맨홀 위를 지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언제고 또 다시 나만 슬로우 모션인 꿈을 꿀 것이기 때문에. 꼭 입어야 하는 옷이 없어 이야기가 되지 못하는 꿈을 꿀 것임을 알고 있기에. 꼼짝달싹 못하는 꿈에서 깨어났을 때 멀리서 개골개골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면 바로 그곳이 아오이 마을이다. 나는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내 몸 구석구석을 참 많이도 긁적거렸다. 눈알을 손가락 끝으로 돌리면 뽀드득 소리가 났다. 목욕탕에 가야겠다. 때도 밀어야겠다. 무더운 여름에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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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
김진규 지음/문학동네


   가을에 읽었으면 더 좋았을뻔 했다, 라는 생각을 어젯밤에 문득 했다. 서늘해진 가을바람에 마음이 조금은 쓸쓸해지지 않았을까. 스무살에 읽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 봤다. 스무살의 <깊은 슬픔>처럼 그렇게 울어버리지는 않았을까. 오늘이 반납마감일이다. 오랫동안 이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긴 했지만 단숨에 읽어 내려간 건 며칠사이다. 어제는 오늘 이 책을 반납할 생각으로 읽는내내 프린트해 책갈피 대용으로 썼던 그림을 새 종이에 다시 출력했다. 작가의 블로그에 올려져 있던 등장인물들간의 관계도. 이 그림을 보면 묘연이 누구의 자식이고, 누구의 어미인지 난이와 향이의 가여운 운명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누구의 표현대로 '조각보같은' 이 소설을 좀더 쉽게 끼어맞춰나갈 수 있다. 묘연의 첫번째 이야기, 라고 시작되면 관계도의 묘연을 한번 슬쩍 들여다봐주고 시작하면 된다. 이 소설을 읽어 나가는데 내게 도움이 되었듯이 이 책을 다음에 읽을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혹시라도 처음 책을 뒤적일 때 잡동사니라고 치부해 버리고 버리지만 않기를 바라면서 빳빳하게 프린트된 관계도를 보기 좋게 오려서 꽂아뒀다.

   워낙 진기한 (내게는 그랬다) 단어들이 많아 처음에는 그걸 내 단어장에 꼬박꼬박 적어뒀다. 요즘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짓을 하고 있다. 몇 페이지씩 단어들을 정리해 적어두고 심심할 때마다 읽으면 소설만큼이나 재미있다. 이런 식이다.

오달지다                          달을 먹다 p.36
[허술한 데가 없이] 야무지고 실속이 있다.
최약국의 두루마기 옆선이 제 성정만큼이나 날카로웠다.
뜨거운 인두가 한두 번 지난 길이 아니었다.
하연의 오달진 노동의 흔적이었다.

   워낙 생소한 단어들이 많아 책 읽는 속도가 느렸다. 몇 페이지 안 가서 또 사전을 뒤적거리고 단어장에 정리해야 했으니깐. 오달지다, 밭다, 음전, 조갈, 갈급, 궤연, 벙글다, 동티, 자늑자늑, 되통스럽다, 등등.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 사전찾는 일을 그만 두었다. 귀찮은 일은 아니었다. 사전 찾는 일은 즐거웠다. 생소한 단어들을 입밖으로 소리내어 보면 달큰한 입내가 났다. 한번도 발음해 본 적 없는 것 같지만 익숙한 소리들이 이와 혀 사이로 새어나왔다. 그걸 내가 아끼는 삼색볼펜으로 이렇게 저렇게 적어내는 일도 꽤 즐거웠다. 그런데 이러다가 소설 자체를 온전히 읽어내지 못할 것 같아서. 왠지 공부하듯이 책을 읽게 되는 것 같아서 이 책에서만큼은 그만뒀다. 모르는 단어들은 후에도 끊임없이 나왔지만 읽어 내는데는 무리가 없다. 그냥 이런 단어들을, 표현들을 사전 하나 보지 않고 줄줄이 쓰여 냈을 것만 같은 작가가 대단할 뿐. 역시 다독이 큰 재산인가 보다.

   읽으면서 느꼈던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 책을 쓴 작가는 대단하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으려고 처음 마음 먹었을 때는 지난 겨울즈음이었는데 한 편의 단편소설조차 써 보지 않았던 작가가 단번에 장편소설을 써 내고 그 소설이 문학동네소설상에 당선되었다는 사실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 했다는 말. 당신에게 입력된 만큼 출력이 필요해, 그 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소설이라는 것 때문에. 이건 정말 소설같은 시작이다. 조금 더 넘쳤으면 좋았을 거라고, 결말이 너무 픽 갈대처럼 쓰러져 버린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흠. 나는 이 단정한 소설을 주로 단정치 못한 마음으로 읽었다. 그래서 늘 덮었다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는 흐트러진 자세였다. 잠시만 편안한 자세였다. 곧 허리가, 팔이, 다리가 아파올 자세. 그러다 몇 페이지 더 읽어가면 나도 모르게 자세가 꼿꼿해졌다. 맨 윗 단추에서 소매 맨 아래 단추까지 꼼꼼하게 끌어 잠구고는 단정하게 앉아 있는 소설 앞에서 나도 이내 자세를 바로 잡곤 했다.      

   어젯밤은, 아니 오늘 새벽에는 잠이 안 와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왜 달을 먹다, 인가를 설명한 작가의 글을 발견했다. "그래서 제목도 [달을 먹다]입니다. 월식을 응용한 것이지요. 월식이란 것이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가려지는 현상을 말하듯이, 누구나 자신의 그림자로 상대방을 가리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더워서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나는 달의 그림자, 지구의 그림자를 생각했다. 당신의 그림자도. 여름이 너무 길다. 더위도. 당신도, 당신의 그림자도 이 더위 속에서 무사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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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지음/아트북스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뒀다. 왠지 이번 책은 사서 보기가 싫었다. 그리고 지금, 그 선택에 아주 만족해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편이랑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여행자 시리즈의 첫번째 책인 하이델베르크 편에 나는 그럭저럭 만족했다. 책이 생각보다 너무 얇네, 글이 너무 적네, (이건 확실히 좀 실망스러웠다) 투덜거리긴 했지만. 확실히 이번 도쿄편은 이전보다 책이 두꺼워졌다. 묵직하다. 그만큼 가격도 상승. 역시 글은 너무 적다. 하이델베르크 편에 비해 산문이 더 늘긴 했다. 나는 왜 하이델베르크를 담은 책처럼 도쿄를 담은 책을 그럭저럭 만족하지 못하는걸까. 이런 결론까지 내렸다. 아무래도 앞으로 쭉 나올 여행자 시리즈를 좋아하긴 힘들 것 같다는.

   그게 있었다. 음악 씨디. 작가가 하이델베르크에서 들었다고 했던가, 하이델베르크를 생각하며 골랐다고 했던가. 내가 산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편에는 그 씨디가 보너스처럼 실려 있었다. 물론 이건 내가 부지런해서 얻은 것이다. 당시 예약주문한 사람들에게만 공짜로 끼워 주었으니까. 나중에는 따로 음반을 판매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 음악들이 좋았다. 씨디를 리핑해 엠피쓰리 플레이어에 옮겨두고 '김영하'라고 입력한 폴더에 넣어뒀다. 책을 읽을 때 잠깐 듣고는 내내 잊고 있었는데, 어느 저녁 꽉 막히는 도로 위 버스 안에서 심심해 플레이어를 뒤적거리다 찾아내곤 들어볼까하고 재생시켰던 음악들. 그 때 나는 버스 제일 맨 뒷 좌석 오른쪽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버스가 한강 다리 부근에서 거의 정차되어 있었다. 노을이 슬며시 지고 있었고, 버스 안이며 버스 밖이며 옴짝달짝할 수 없어 짜증나는 얼굴을 한 사람들이며 차들뿐이었는데 그 음악들을 들으며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만 그 속에서 생기있게 느껴지는 거였다. 나만 달리는 것 같고, 나만 즐거운 것 같았다. 나만 행복한 것 같았다. 30분이면 올 거리를 1시간 걸려 왔는데도 내리기가 싫었다. 이 버스를 타고 이 음악들을 계속 들으며 앉아 있고 싶었다. 맨 뒷 좌석 오른쪽 창가 자리에 앉아서 나른한 기분으로.

   그러니까 나는 그 때 하이델베르크가 배경인 아주 짧은 소설과 카메라와 도시 이야기가 담긴 짧은 산문과 도시를 담은 사진들, 작가가 직접 고른 14곡의 음악을 9,800원을 주고 샀다. 인터넷으로 산 거니 몇 백원은 더 할인 받았을 거다. 그리고 이번에는 14곡이 음악을 빼고, 도쿄가 배경으로 짧게 등장하는 단편 소설 한 편과 도쿄와 카메라 이야기의 산문, 도시의 사진들을 주고 13,800원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12,420원, 마일리지 1,250원 플러스) 지불해야 된다는 건데. 흠.

    뭐랄까. 여행자 시리즈라는 이름이 있지만 '소설가 김영하의 사진집'이라고 소개하는 편이 더 확실하지 않을까 싶다. (글은 보너스같다) 소설과 에세이, 사진의 결합이라고는 하지만 글을 쓰는 소설가의 여행책을 기대하는 나같은 독자에겐 여행자 시리즈의 글은 너무 적다. 사진을 좀 더 줄이고 글을 더 늘여도 좋으련만. 산문이든, 소설이든. 사실 도쿄편의 소설은 내겐 좀 별로였다. 풍선처럼 가벼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도 했다. 차라리 앞으로 여행할 도시들에서 끌어낼 각각의 도시를 담은 단편소설을 한 책에 묶어내는 편이 독자들에게는 더 알찼을거라는. 아무래도 나는 소설가의 사진보다는 소설가의 글을 기대하는 거였나보다. 그럴려면 이 책을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1-2시간이면 후루룩 읽을수 있는 책이다. 기억에 남는 건 거품 가득한 일본의 맛있는 생맥주와 캔맥주 이야기. 침이 고였다. 그 옆에 있는 생맥주 사진에 한번 더. 아무튼. 김영하의 하이델베르크를 보고나서는 도쿄가 기다려졌는데, 도쿄를 보고나니 다음 도시는 별로 기다려지지 않을 것 같다. (이러면서 나오면 또 궁금해서 볼 거면서) 그러니까 아무래도 나는 사진 찍는 소설가보다 글 쓰는 소설가가 더 좋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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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키핑
메릴린 로빈슨 지음, 유향란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구절을 한 군데만 말해보라고 한다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소설에 나오는 두 소녀, 언니와 동생, 그러니까 루스와 루실이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그들은 외로웠으므로 아주 늦게까지, 어둠이 꽁꽁 언 호수 위에 소리 없이 내려 앉을 때까지 빙글빙글 스케이트를 탔다. 같이 타던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두 사람만 남을 때까지. 내가 좋아하는 구절은 바로 이 부분이다. 루스와 루실이 어둠이 내려앉은 호수 위에서 마을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하는 생각들. 이건 정말이지 따'듯'한 문장이다.

p.49-50

   <하우스키핑>은 외로움에 관한 책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이 책에는 온갖 외로움들이 나열되어 있다. 외로움이란 편의점에 진열되어 있는 커피우유의 종류처럼 한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만큼 비슷비슷한 거 아닌가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곳에는 열 개의 외로움이 있다. 백 명의 사람들이 있다면 말할 것도 없이 그 곳에는 백 개의 외로움이 있다. 외롭다는 것, 우리가 모두 한 가지씩 각자의 외로움을 지닌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이 외로움에 관한 우리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그건 스케이트로 뒤로 가는 법을 배워야하는 것이고 한 발로 도는 법을 연습해야하는 것이다. 살을 에이는 차가운 바람을 얼굴로 맞기 좋아하는 사람이 더 외로운 사람이라는 걸 안다. 불빛 하나가 위안이 된다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 나는 안다.

   핑거본의 호수 아래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잠겨져 있다. 새까만 밤, 기차는 소리없이 추락했고 사람들은 호수 아래에서 잠들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표정이 아주 평온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소를 짓고 있었을 거라고. 루스와 루실을 할머니집에 데려다 준 엄마도 호수 아래로 떨어졌다. 경쾌한 엔진소리를 내면서. 엄마는 웃고 있었을 거다. 눈물이 얼굴 위로 쏟아지는 채로. 외로움이 적은 사람은 호수의 도시, 겨울의 도시 핑거본을 견디지 못했다. 그들은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을, 파묻혀버릴지도 모르게 쏟아지는 눈을 무서워했다. 그들은 핑거본을 떠났다. 외로움이 아주 많은 사람도 그랬다. 그들도 기차가 매일 몇 번씩이나 소리없이 지나가는 호수 아래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사람들이었다. 핑거본에 영원히 머무르거나, 영원히 떠나거나. 당연하게도 핑거본에는 그런 사람들이 살았다.


   호수 아래의 세상을 생각해봤다. 호수 아래에도 외로운 사람들의 세상이 있다. 겨울이 시작되면, 호수물이 꽁꽁 얼기 시작하면 살을 에는 차가운 물에 얼굴이 바짝 닿는 사람들. 수면 위로 어렴풋이 보이는 불빛이 위로가 된다며 속삭일 사람들. 봄이 오고 빙판이 녹기 시작하면 그들은 호수 바닥에서 축제를 벌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또 한 계절이 갔어요. 이렇게 또 한 계절이 오고 있답니다. 댄스 파티. 아주 천천히 물살에 몸을 맡기는 춤을 추는. 상상해보면 그건 왠지 좀 슬픈 동작처럼 보일 것 같다. 그러면 호수 위의 이들에게까지 그 동작이, 그 기운이 전달될 것이다. 출렁이는 호수 밑바닥에 이는 흙탕물의 냄새까지. 핑거본은 '바람 속에서도 호수 냄새가 나고, 마시는 물에서도 호수 맛이 느껴지는' 곳이니까.

   이 소설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야 한다) 읽어나가면 겨울을 만날 수 있다. 무더운 여름날, 눈이 지독하게 많이 내리는 호수의 도시 이야기는 꽤 매력적이다. 당장 그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많이도 내린다. 외로움도 많이도 내린다. 이 호수의 도시에서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집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외로움이 쌓이고 쌓여 호수 아래로 떨어지는 수밖에 없나 걱정해야 한다. (호수 아래에는 이미 많은 외로움이 있다) 결국 두 여자는 호수 아래로 떨어지는 대신 핑거본을 떠났다. 그리고 덕분에 가끔 자신의 외로움을 어두운 창가에서 발견하는 사람이 생겼다. 밖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낮 말고 밖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래서 안만 훤히 내비치는 밤의 창가에서 자신을 꼭 닮은 서늘하고도 따듯한 외로움을 발견하는 사람. 이건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니까. 신기하게도 그런데도 자꾸만 따뜻해지는 이야기니까. 우리 모두는 마음 속에 핑거본의 호수를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살을 에는 적막한, 사람을 마비시키는 차가운 공기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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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따위 일에 가슴이 먹먹해지다니. 서둘러 익스플로어 창을 닫고 냉장고를 열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달콤한 나의 도시'를 펼쳐놓고 통통 튀어다니는 문장들을 때려잡아 머릿 속에 꾸역꾸역 집어 넣었다. 결국 은수는 김영수를 떠나보냈다. 서른 둘, 다시 혼자가 된 은수는 내리는 비를 맛 보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서울의 맛이라고 했다. 때마침 책을 다 읽은 이 곳의 서울에도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창 밖으로 손을 뻗어 비를 맛보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서울의 맛.


이건 2006년 8월의 나의 흔적. 2006년 8월의 나의 말이다.
2006년. 이런 말도 덧붙였다.


그 아이는 또 다시 연애를 시작하고, 나는 여전히 연애를 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 사이에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서울의 비가 내릴 뿐.


2006년. 이런 문장은 오려두었다.                                                                 


사랑이 저무는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누군가와 이별할 순간이 도래하면 엉뚱하게도 오래전 운동회가 생각난다.  줄다리기 시합. 청군과 백군이 동아줄 하나를 마주 잡고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그때 불현듯 한쪽에서 동아줄을 홱 놔버린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모든 것이 덧 없다는 듯. 그럼 다른 한쪽은 어떻게 될까. 게임의 승자가 되겠지만 그걸 진짜 이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게임이 끝나버렸는데 누가 승리자이고 패배자인지를 가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08년. 달콤한 나의 도시가 끝났다. 나는 마치 연애하듯 이 드라마를 보았다. 처음에는 무척 아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방영시간을 기다렸다. 남유를 응원하고 그녀가 꽤 멋지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친구는 드라마를 보다가 너무 좋아서 뛰쳐나가 남유와 오은수가 마시는 맥주잔과 비슷한 잔을 사들고 들어와 혼자 꿀꺽대며 마셨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러다 나는 오은수가 조금은 비겁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친구들 앞에서 자신을 더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웠다. 한 순간에 이 드라마를 향한 내 마음은 심드렁해져버렸다. 금요일 밤에 약속을 잡았다. 기다리지 않았다. 가끔 지나가다 드문드문 봤다. 나의 연애는 항상 그렇다. 있을 때 잘할 것을. 늘 후회투성인 것을. 가고나면 그리운 것을.


마지막 장면의 대사. 참 좋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오은수예요. 반가워요. 윤태경입니다.


영수와 헤어진 은수는 태경과 봄날같은 연애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쨍쩅한 여름 햇살만이 그득했다. 은수가 스쿠터를 타고 달릴 때 볼을 스치는 바람처럼 기분 좋은 연애가 펼쳐질 게 틀림없는 해피엔딩이었다. 이제 변덕스런 마음으로 안타깝게 놓쳤던 이야기들을 다시 봐야겠다. 이건 2008년 8월의 나의 흔적, 나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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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검시관과 CSI

from 티비를보다 2008. 8. 1. 23:06
종신검시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사실 난 <종신검시관>의 구라이시가 별로였다. 모두가 칭송해마지않는 그야말로 종신검시관, 구라이시였지만 내게는 독불장군이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이 책에는 8가지 사건들이 들어있다. 모두 종신검시관, 구라이시가 등장하는 단편들. 구라이시는 현장에 소리없이 쓰윽 나타나 단번에 사건의 진상을 알아차린다. 그는 길게 말하는 법이 없다. 이 사건은 자살이네. 이 사건은 타살이야. 이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지. 그는 사생활에서는 난잡하지만 일에서는 완벽하다. 완벽주의자. 실수는 절대 없다. 의미를 담고 일부러 실수하지 않는 한. 그는 독보적이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질투하거나, 존경하거나 둘 중 하나다. 같이 일을 한다거나, 힘을 합치고 머리를 합쳐 사건을 처리해나간다기보다 혼자 완벽하게 쓰윽 둘러보곤 정답은 이것이야, 이렇게. 동료들 속에서 섞이지 않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사람, 나는 그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남은 땀을 뻘뻘흘리며 찾아내는 것을 뒷짐지고 쓰윽 둘러보면 정답불이 딩동 들어오는 사람. 나는 왠지 그가 미웠다. 구라이시, 당신은 너무 완벽하기만 해.

   모르겠다. 모두들 따뜻하다고 칭찬하는 책을 나만 왜 삐딱하게 읽어냈는지. 내 마음이 삐딱한건지. 늦은 밤, 꽉 막힌 동대문즈음의 버스 안에서 이 책을 마쳤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얼른 집에 가서 CSI를 보자고 생각했다. 모두가 협동해서 사건을 해결하고, 치명적인 실수도 하고, 돌이킬 수 없는 범죄들이 즐비하고, 피 비린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상처받고, 성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화려한 라스베가스의 이야기. 집에 돌아와 얼른 CSI 라스베가스 시즌 1의 첫회를 봤다. 라스베가스 이야기에 그렇게 열광했으면서 이들이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사건들과 처음으로 맞닥뜨렸는지 몰랐다. 나는 이제까지 최근 시즌만 봤으니까.

 
   시즌 1, 첫 번째 이야기에서 라스베가스팀은 동료를 잃는다. 시즌 1, 첫 번째 이야기에서 나중에 미결 사건으로 그리썸 반장과 소름끼치게 대적했던 범죄자와 마주한다. (이 특수분장사가 첫 번째 이야기에 용의자로 등장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그리썸 반장님은 훗날 일은 아무 것도 모르고 친절하게 '그리썸입니다' 인사하고)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 그리썸은 반장이 되고, 사라가 등장한다. 그리썸과 캐서린은 첫 번째 이야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먼저 그리썸의 이야기. 거짓말을 하는 것같은 용의자 때문에 오리무중인 워릭에게.
 
    

   워릭은 승진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그리썸의 저 충고덕분에 워릭은 증거는 찾았지만 자신에 집중하는 바람에 끔찍한 실수를 해 버렸다. 그리고 이건 캐서린의 말. 캐서린은 엄마때문에 할 수 없이 지원했다는 이제 일을 시작한 홀리에게. 


   홀리는 그 날 죽었다. 첫 번째 사건도 해결 못한 채. 현장을 다시 찾은 강도의 총에 맞아서. 그녀는 첫 날이였지만 CSI답게 충분한 증거를 남겼고. 라스베가스팀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홀리의 죽음에 자책했다. 이게 내가 CSI를 좋아하는 이유다. 어떤 날은 통쾌하게 사건을 마무리짓고, 어떤 날의 사건은 미결로 남아 오랫동안 요원들을 괴롭히고,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범죄에 그들 또한 노출되고 아프고 힘들고 화내면서 서로 힘이 되어주고 성장할 수 있게 해 주는 힘. 그게 CSI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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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틈새
권여선 지음/문학동네

 
    지난 가을 <분홍리본의 시절>을 읽었다. 아직도 나는 그 소설집을 생각하면 조건반사마냥 입 안의 침이 고인다. 수십마리의 생선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하얀 죽의 빛깔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아직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뽈찜이 무슨 맛일까 궁금하고, 김치볶음밥을 만들 때 김치의 반은 먼저, 반은 나중에 넣게 되었다. 그 뒤로 여기저기서 권여선의 단편을 만났다. 그러다 <소진의 기억>을 읽을 때에 나는 권여선,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자, 고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적어놓았다. 그녀의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를 읽었다.

   이번 <문학동네> 여름호의 젊은작가특집에 권여선이 실렸다. 아직 자전소설은 읽지 못하고 '미인 작가 권여선을 말한다' 제목의 작가초상만 먼저 읽었다. 이런 식의 구절이 있었다. 그녀가 소주를 마시는 걸 보면 소주는 본래 저렇게 맛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 나질 않는데 아무튼 권여선 작가가 소주를 무척이나 맛나게 잘 마신다는 이야기였다. 

   작가 권여선의 본명은 권희선이다. 그녀는 소주를 잘 마시고, 욕설도 유쾌하게 하는 사람이다. <분홍리본의 시절>을 읽을 때 한강과 비슷하게 깡마르고 여린 느낌이었는데, 정반대인가보다. 

   그녀는 소주를 잘 마시고, 유쾌한 욕설을 하며, 넉넉한 사람이다. 

    왜 내가 그녀의 소설들을 읽으며 입맛을 다지고, 그날 저녁에는 그녀가 소설 속에서 말해주었던 음식들을 하나씩 만들어보았는지 의문이 풀렸다. 그녀는 소주를 잘 마시고, 유쾌한 욕설을 하며, 넉넉하고,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소주를 잘 마시고, 유쾌한 욕설을 하며, 넉넉하고, 요리를 좋아하며, 나이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 <푸르른 틈새>를 읽으며 여러번 울었다. 엉엉 울어버린 게 아니라, 마음이 저릿저릿 아파오며 한방울씩 떨어지는 눈물이었다. 여자의 아버지 이야기에서 많이 울었다. 젊은 시절, 망망대해를 헤치며 호탕한 뱃사람으로 기세등등했던 그가 나이가 들고 무릎이 꺽이여 술을 먹고 '이년들아! 나, 손재우 아직 안 죽었다!'를 연거푸 외치는 외로운 사내가 되었을 때. 그와 여자가 나란히 서서 각자의 라면을 끓이고, 나란히 앉아 각자 한 병씩의 소주를 비워낼 때. 그가 여자에게 용돈을 줄 때 하던 말들. 바다를 헤쳐나가던 그가 거리 위에서 죽었을 때. 그리고 이제 여자가 '이년들아! 이년들아! 나, 손미옥이, 아직 안 죽었다!' 외쳐댈 때.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아버지, 정말 천하일품이예요!" 그리고 여자가 사귀던 남자의 결혼상대를 알게 되었을 때.

    분명 십여년 전에 발표되었던 이 장편소설 후에 발표한, 그러니까 내가 이 장편소설 전에 읽었던 그녀의 단편소설들이 이 푸르른 장편소설보다 더 잘 쓴 작품이라는 건 알겠는데도 나는 이 긴 소설을 읽으면서 그 단편들보다 더 아껴주었다. 너는 참 좋은 책이야. 좋은 이야기야. 여러번 말해주었다. 꼼꼼하고 잘 쓰여진 단편소설들보다 그저 생각이 흐르는대로 쓰여진 것 같은 이 하얗고 긴 책에 더 마음이 갔다. <새의 선물>과 같은 시기에 문학상에 당선된 작품이라는데, 내가 <새의 선물>을 읽을 때 이 소설도 함께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지금보다 좀 더 젊은 나이일 때 읽어두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마지막으로. 인터넷에서 인터뷰 기사도 찾아 읽었다. 여기까지 보면 그녀는 소주를 잘 마시고, 유쾌한 욕설을 하며, 넉넉하고, 요리를 좋아하며, 나이 먹는 것을 좋아하고, 꿈을 이룬 사람이다. 앞으로 더 많은 소설을 읽어가면서 그녀를 더 잘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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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열린책들


  '금령씨에게 잘해줄게요'로 끝나는 메일을 받았다. 나는 내가 아끼는 김연수의 낭독 파일을 첨부해 보냈다. '난 이걸 우울할 때마다 꺼내 들어요. 슬픈 날에도요.' 라고 쓴 메일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성기완 시집의 낭송 파일을 보내왔다. '기분이 조금 좋아지더라구요. 솜사탕도 사탕일까, 솜솜솜.' 어제 오늘 나는 여러번 이 파일을 꺼내 들었다. '솜은 왜 솜이 되었을까. 솜솜솜. 솜사탕도 사탕일까. 솜솜솜.' 나는 그녀의 메일을 받고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거기다 어제부터 시작된 이 비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장맛비는 도대체 언제오는거야, 노래를 불렀었는데. 가끔씩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쏴아쏴아 쏟아져준 덕분에 오늘 하루 아주 자알 보냈다. 저녁에는 도서관에서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빌렸다. 신간도서코너에 이언 매큐언의 새 책이 놓여져 있었는데, 오늘은 정말이지 복잡한 이야기는 읽고 싶지 않았다.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촉촉한 이야기였으면 했다. 얼마전 자주 들르는 블로그에서 이 책에 관한 짧은 글귀를 봤는데, 오늘이야말로 내가 이 책을 읽을 더할나위없는 날이라는 생각에 도서관 검색창에 '얼굴 빨개지는'이라고 친 뒤 청구기호 'NB863-ㅅ194얼'를 쪽지에 옮겨적고 책들 사이에서 얼굴이 빨간 요 녀석을 찾아 대출했다. 도서관 1층에서 비가 내리는 풍경을 보며 크림커피를 한 잔 하면서 '이불솜 틀어드립니다' 파일을 꺼내 들었다.

   들어오는 길에 집 앞 슈퍼에서 밀가루와 서울쌀막걸리를 샀다. 막걸리는 누가 뭐라해도 서울쌀막걸리다. 톡 쏘며 새콤달콤한 서울쌀막걸리의 맛. 나는 이 맛에 반했다. 그래서 비오는 날은 혀가 먼저 반응을 한다. 서울쌀막걸리를 사. 신김치를 꺼내 사각사각 썰고 냉동실에서 오징어도 꺼내 길쭉하게 썰었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후라이팬에 식용유 약간 두른 뒤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 동생이랑 예쁜 잔에 막걸리를 따라놓고 맛나게 먹어치웠다. 먼저 한 장 구워 먹고 있는 사이에 후라이팬 위에 반죽을 얹어놓고, 먹고 있는 김치전이 반쯤 사라지면 가스렌지로 가 노릇노릇 익고 있는 전을 한 번 뒤집었다. 그렇게 한 7장 정도를 먹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기분이 조금 더 좋아졌다.

   그리고 배 깔고 누워 9시 뉴스를 기다리며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읽었다. 술 기운이 올라오는지 이 작고 귀여운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특히 이 부분들.


그러나 (이 글자는 좀더 까만색이다. 왜냐하면, 이어질 이야기들이 조금은 슬픈 것이기 때문이다.)
65페이지.
그리고 (이 글자가 왜 분홍색으로 씌어졌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98페이지.


   마지막장을 넘기고 나서 나는 기분이 더 좋아졌다. 이 책을 쓰고 그린 장 자끄 상뻬가 <꼬마 니콜라>를 그린 이라는 걸 발견하고 난 뒤에 더더욱. 나는 니콜라는 사랑했었다. 아, 그 책들 고향집에 가면 아직도 있을텐데. (동생과 최근에 니콜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 니콜라 나 그 아이 너무 좋았어' 라고 말한 동생이 사랑한 건 스누피의 찰리 브라운였다는 게 이런저런 대화 끝에 밝혀졌다. 동생은 찰리 브라운을 니콜라로 기억하고 있었다. -_-) 그리고 배를 두드리며 천장을 향해 돌아 누으며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꺼내 '이불솜 틀어드립니다'를 다시 들었다. '나는 솜이라는 글자를 생각보다 오래도록 쳐다봅니다. 솜 솜 솜사탕.' 이 파일을 보내준 그녀는 메일에 이렇게 적기도 했다. '가족과 친구들이 그러는 것처럼 다정하게 내 진짜 이름을 불러주는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아, 나는 서울쌀막걸리에 취해 얼굴이 빨개졌다. 예전엔 술을 마셔도 빨개지지 않았는데 요새는 자주 그런다. 그렇다면 그녀는 지금 재채기를 하고 있을까. 감기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나는 조금 더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니까 오늘밤 나는 아주 많이 행복하다는 말씀.


그들은 정말로 좋은 친구였다. 그들은 짓궃은 장난을 하며 놀기도 했지만,
58페이지.
또 전혀 놀지 않고도, 전혀 말하지 않고도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전혀 지루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
5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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