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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쌓다341

침대와 책 - 정혜윤 언니가 생각해 낸 수십권의 책 침대와 책 정혜윤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구식이라 그런지 모니터 상으로 긴 글을 잘 읽어내질 못하겠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긴 글은 출력해서 읽는 경우가 많다. 마우스로 쭉쭉 내리며 보고 나서 다음 페이지를 클릭하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글은 왠지 글이 아닌 것만 같다. 하얀 종이 위에 새겨진 까만 글자들을 매끈한 종이의 감촉을 느끼며 침을 묻히며 넘겨 읽어야만 진정 글을 읽는 것만 같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매일 들르는 채널예스에서 자주 업데이트 되는 정혜윤PD의 칼럼에서 제일 정확히, 자주 읽었던 건 마지막의 소개글이었다. 그리고 이 몽롱한 그림같은 표지사진 가운데 하얗게 삐뚤빼뚤 새겨진 침대와 책. 그러니까 불면 날라가버릴 인터넷 칼럼이 아닌, 힘이 센 내가 아무리 헥헥대며 불어도 날라갈리 없는.. 2008. 5. 22.
완득이 - 자식, 좀 웃기더라 완득이 김려령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친구네 자취방은 옥탑방이었다. 그 건물의 3층까지 올라가다보면 큰 철제문이 나왔다. 왜 대문에나 있을 법한 그런 철제문. 그 철제문을 열쇠로 따고 올라가면 주인집이 나오고, 한 층을 더 올라가면 옥상이 나왔다. 친구의 자취방은 거기 있었다. 말이 옥탑방이지 여름 밤, 문 열어놓으면 날벌레가 조금 들어오는 것만 빼곤 나는 그 방이 좋았다. 지은지 얼마 안 되서 깨끗하고 무엇보다 넓었다. 그 때 나는 동생이랑 둘이서 나란히 누우면 꽉 들어차는 좁은 하숙방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의 옥탑방은 정말 대궐같았다. 안락하고 아늑했다. 친구는 자주 놀러오라고 하고선 밥도 만들어주고, 술도 사다줬다. 친구의 옥탑방에서 가장 좋았던 건 자고 가고 다음 날이었다. 문을 열고 나와.. 2008. 5. 18.
여행할 권리 - 참 다행이다, 당신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꿈에 김연수 작가가 나왔다. 무슨 내용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중요한 건 '내' 꿈에 김연수 작가가 나왔다는 거다. 꿈이 미래를 예언해주는 건 아닐까 간절히 바라면서 깨어나던 아침들이 있었다. 그 때 나는 꿈을 부여잡고 놓칠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예언처럼 깨달았다. 그 집착이 참 부질없다는 것을. 그러니 이제 꿈을 꾸고 프로이트의 을 뒤적거리는 날들은 없다. 누군가 내 꿈에 나오는 건 뭔가 이유가 있는 거다. 무언가 켜 둔 채로 잠에 들었거나, 그 사람을 많이 생각했거나. 이번의 경우는 후자다. 김연수 작가의 블로그에서 곧 여행에 관한 산문집이 나온다는 글을 보고 그 뒤로 매일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서 '여행할 권리'를 검색했다. 알라딘에서는 모린 오코너의 만.. 2008. 5. 17.
천 개의 찬란한 태양 - 라일라의 봄을 꿈꾸며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현대문학 얼마 전 세계지도를 샀다. 뉴스에서 듣는 나라들이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순간들이 많아진 후로 커다란 세계지도를 하나 사서 벽에 붙여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들이 사용하는 빛깔이 예쁜, 저렴한 것으로 구입했다. 바다는 짙은 하늘빛, 대륙은 아이보리 빛깔이다. 진하게 새겨진 나라 이름 옆에 그 나라의 특산물이나 명소가 귀엽게 그려져 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태평양의 한 가운데 돌고래 두 마리가 사이좋게 뛰어 놀고 있고, 북극의 그린란드에선 지친 기색이 역력한 개 두 마리가 헉헉거리며 눈썰매를 끌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벽에 붙여놓은 지도를 미술관의 명화를 감상하듯 가만히 들여다봤다. 어찌나 평화로운 곡선과 빛깔.. 2008. 5. 16.
오늘의 사건사고 - 우리의 오늘도 영화가 될 수가 있다 오늘의 사건사고 시바사키 토모카 지음, 신유희 옮김/소담출판사 를 '읽은' 건 를 재밌게 '보았기' 때문에. 영화 의 원작 소설과 원작자가 영화 촬영 현장에 다녀온 뒷 이야기가 함께 있는 책이라고 해서 집어 들었다. 읽고 난 후의 소감은 영화가 훨씬 낫다. 소설은 날아갈 것처럼 가볍고, 촬영장을 다녀온 뒷 이야기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별 게 없었다. 영화는 원작소설을 거의 그대로 스크린에 옮겼다. 건물 속에 끼인 사내 이야기와 마지막 해변의 고래 이야기만 첨가하고.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영화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긴 했는데, 역시 결론은 영화가 훨씬 이 사소하고도 소소한 이야기를 잘 표현했다는 것. 똑같은 시간이지만 여러 장소에서 상상하지도 못할 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의 감독도 이런.. 2008. 5. 12.
첫사랑 - 나의 뒷모습을 마주하는 일 첫사랑 수필드림팀 지음/해드림출판사 첫사랑. 처음 표지를 보고선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사진이라 생각했다. 뒷모습이라니. 덧니 하나가 박혀 커다란 미소를 터뜨리는 앞모습이여도 부족할 터인데 무얼 보고 있는지, 무얼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뒷모습과 첫사랑이라니. 그렇게 심드렁하게 첫 장을 넘겼다. 그리고 마지막 장. 책을 덮고 ‘첫사랑’이란 제목과 나란히 앉은 표지의 뒷모습을 다시 마주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뒷모습은 ‘사랑’이리라. ‘첫’은 빨간 색으로 칠해져 확실히 뒷모습 위에 위치하고 있다. ‘첫-’은 ‘풋-’이 그렇듯 다음 단어를 더 싱그럽고 아련하게 해 줄 빠알간 접미사일 뿐이다. 그러니 사랑과 나란히 앉은 두 볼이 발그레할 것이 분명할 ‘첫-’스런 뒷모습. 헝클어진 듯 자연스레 묶은 머리 위.. 2008.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