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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득이 - 자식, 좀 웃기더라
    서재를쌓다 2008. 5. 18. 16:08
    완득이
    김려령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친구네 자취방은 옥탑방이었다. 그 건물의 3층까지 올라가다보면 큰 철제문이 나왔다. 왜 대문에나 있을 법한 그런 철제문. 그 철제문을 열쇠로 따고 올라가면 주인집이 나오고, 한 층을 더 올라가면 옥상이 나왔다. 친구의 자취방은 거기 있었다. 말이 옥탑방이지 여름 밤, 문 열어놓으면 날벌레가 조금 들어오는 것만 빼곤 나는 그 방이 좋았다. 지은지 얼마 안 되서 깨끗하고 무엇보다 넓었다. 그 때 나는 동생이랑 둘이서 나란히 누우면 꽉 들어차는 좁은 하숙방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의 옥탑방은 정말 대궐같았다. 안락하고 아늑했다. 친구는 자주 놀러오라고 하고선 밥도 만들어주고, 술도 사다줬다.

       친구의 옥탑방에서 가장 좋았던 건 자고 가고 다음 날이었다. 문을 열고 나와서 옥상의 난간 끝에 서면 성북동 조밀조밀한 주택의 전경이 아래로 펼쳐졌다. 옆으로 돌리면 3층 높이의 옆집 옥상이 고스란히 내려다보였다. 저기 멀리에는 갈 때마다 달라지는 높이의 아파트 공사 건물도 보였다. 상쾌하기로는 그 때 내가 살던 도봉산 밑 동네가 더 상쾌했겠지만, 도봉산 밑에서 매일 아침 내가 맡을 수 있는 공기의 높이는 겨우 1층이었고, 친구의 옥탑방 성북동 공기는 4층이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는 친구네 공기가 훨씬 더 상쾌하게 느껴졌다.

       <완득이>를 읽고 표지의 일러스트 그림이랑 책의 앞 뒤에 있는 완득이가 사는 동네, 운동했던 체육관의 그림을 찬찬히 보면서 그 때 친구의 옥탑방을 떠올렸다. 아침마다 맡았던 4층의 상쾌한 공기. 옆집 3층 높이의 옥상 위를 내려다보았던 기억. 아, 친구의 집 앞에 신문 배급소도 있었다. 그 신문배급소를 지나갔던 기억은 없고, 내려다 봤던 기억만 있지만. 아무튼. 그 때 그 옥탑방을 다시 가게 된다면 그 옥상의 난간 끝에 서면 이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햇반 하나 던지라는 완득이의 담임 똥주와 그래도 선생이라 차마 말은 못하지만 마음 속으로 일백번 죽어라, 죽어라, 악 쓰면서 태연하게 햇반을 던져 줄 완득이, 완득인지 만득인지 누군데 매일 이렇게 시끄럽게 구냐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앞집 아저씨를 왠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그러면 나는 그 난간 끝에 끼여서 '완득이 집에 전화 없다잖아, 이 양반아'라는 똥주의 대사를 먼저 내던지면서 왜 내 대사 훔쳐가라는 똥주의 고함소리에 '재밌잖아, 이 양반아'로 낄낄댈 수 있을 거라는 쓰잘데기 없는 상상.

       <완득이>를 공짜로 두 권이나 얻었다. 한 권은 신경림 시인 북콘서트에 가서, 또 한 권은 다른 곳에서. 두 번째 책이 배달된 건 첫 번째로 받은 책을 다 읽은 후였는데, 그 때 동생이 누워있다 이 책을 집어들고는 뒤적거리고 있었다. 조금 있다 보니 금세 다 읽을 태세였다. 책장이 거의 다 넘겨져 있었다. 그렇다. <완득이>는 빨리 읽힌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박장대소를 했다. 나는 컴퓨터를 하다말고 달려가서 그 부분을 확인했다. 그리고 같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그렇지? 나 혼자만 여기서 웃겨 자빠진 게 아니였지? 아, 정말 눈물나게 웃겼다. 그리고 그 웃음이 날라가자 마음이 짠해졌다. 키가 조금 작은 아버지, 베트남 출신의 어머니, 정신이 조금 느린 삼촌(그래, 온전치 않다기보다 느린 거다), 세상 속엘 끼여들길 거부하는 완득이, 그리고 완득이 맨날 삥뜯는 담임 똥주똥주(꼭 두 번 불어줘야한다. 아, 똥주!). 이 최루성 눈물을 터뜨릴 요소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완득이>는 슬프기보다 웃긴다. 그 웃음이 날아간 뒤로 그래, 그래, 따위를 나부렁거릴 수 있는 짠하고 시큰한 틈이 생기니 너무 가볍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래, 그렇다고 공선옥 작가의 추천글처럼 완득이를 연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뭐가 더 잘났다고 완득이를 연민한단 말이냐. 나는 혹시 어디선가 섀도복싱을 하면서 폼 잡고 지나가는 눈썹이 짙은 완득이와 마주치게 된다면 나는 어이, 완득이, 라고 불러 세울 거다. 그리곤 여유있게 완득이 앞으로 걸어가선 등을 한번 팍 쳐주고 자식, 좀 웃기더라, 라고 말하곤 지나가야지. 그럼 이 자식이 미쳤나, 하면서 뒤에서 눈깔 빠질듯 째려보겠지. 아니다. 한 대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계획 수정. 웃기더라, 그러고는 당장 뛰기 시작하는 거다. 그러면서 외치는 거지. 열심히 해라, 누나가 너 좋게 봤다, 이 완득아! 라고.

        아, 나머지 한 권은 이 책을 좋아할 게 분명할 옥탑방의 친구에게 줬다. 이 책에서 진짜 웃긴 부분이 있는데, 거기서 나 웃겨서 죽는 줄 알았잖아. 너도 분명 그 부분 읽고 웃겨서 죽을걸, 이라고 말하면서. 친구의 집은 이제 3층인데, 옥탑방이 아니라 자고가는 다음 날 상쾌한 공기는 맡을 수 없다. 대신 깨 쏟아지는 냄새가 솔솔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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