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오늘의 사건사고 - 우리의 오늘도 영화가 될 수가 있다
    서재를쌓다 2008. 5. 12. 11:26
    오늘의 사건사고
    시바사키 토모카 지음, 신유희 옮김/소담출판사


       <오늘의 사건사고>를 '읽은' 건 <오늘의 사건사고>를 재밌게 '보았기' 때문에. 영화 <오늘의 사건사고>의 원작 소설과 원작자가 영화 촬영 현장에 다녀온 뒷 이야기가 함께 있는 책이라고 해서 집어 들었다. 읽고 난 후의 소감은 영화가 훨씬 낫다. 소설은 날아갈 것처럼 가볍고, 촬영장을 다녀온 뒷 이야기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별 게 없었다. 영화는 원작소설을 거의 그대로 스크린에 옮겼다. 건물 속에 끼인 사내 이야기와 마지막 해변의 고래 이야기만 첨가하고.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영화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긴 했는데, 역시 결론은 영화가 훨씬 이 사소하고도 소소한 이야기를 잘 표현했다는 것.

       똑같은 시간이지만 여러 장소에서 상상하지도 못할 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오늘의 사건사고>의 감독도 이런 점이 마음에 들어서 소설을 영화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예전에 영화 개봉 때 그런 기사를 읽었던 것 같은데 찾아보니 없네.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서 여관방에 박혀있었는데 TV를 켜니 9.11테러로 뉴욕에서는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단다. 자신이 속한 공간은 이렇게 고요한데, 지구 어딘가에선 사람들이 죽어가는 이런 현실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였다는. 그래서 만들게 되었다는 오늘의 사건사고.

       그래. 나도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의 인생이, 나의 하루가 왜 영화나 드라마가 되지 못하는가에 대해. 현실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극적인데, 왜 우리의 하루는 그렇지 못한가. 드라마에서는 헤어진 남녀가 애틋한 마음을 부여잡고 기가 막히게 엇갈려서 보는 사람을 이리도 애태우는데, 왜 우리의 사랑은 그렇지 못한가. 그 때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의 하루도 애틋하다고. 우리의 사랑도 분명 극적일 거라고. 단지 드라마처럼 전지적 시점에서 보지 못해서 그럴 뿐이라고. 우리가 TV 드라마를 보듯 누군가 하늘 위에서 우리네 인생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우리의 사랑도, 우리의 하루도 기가 막히게 애틋하고 극적일 거라고. 단지 우리는 모르니까. 그 사람이 나를 잡기 위해 마지막으로 달려와 한참을 기다리다 돌아간 그 밤을 말하지 않아 알지 못했으니까. 내가 그 사람을 울며 찾아가 허탕치고 온 날, 그 사람도 나를 찾아 울며 애태웠다는 걸 그 사람도 다른 누군가도 일러주지 않았으니까. 사람 많은 명동 길에서 스쳐가듯 지나쳐 설레이며 다시 우연히 만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던 것을 알지 못하니까 그런 거라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과거와 미래와 스쳐 지나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오늘이 재미없는 드라마가 되어버리고 있다고 내멋대로 결론을 내렸었다. 


       영화 <오늘의 사건사고>도 소설 <오늘의 사건사고>도 그런 이야기다.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어느 날.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도 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줄 알았지만, 지나보면 어떤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한 그런 날의 이야기. 그렇게 지나가는 사소하고 소소한 이야기.

       영화 <오늘의 사건사고>를 생각하면 밤새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창 밖의 검푸른 이미지가 떠오른다. 조용하고 편안해서 이대로 계속 달리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영영 집에 도착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 케이토가 술이 취하면 들어가는 올챙이알 속같은 느낌. 덜컹거리는 작은 진동과 함께 나의 자리가 작지만 분명한 곳. 내 무릎 옆에 누군가 바짝 당겨 앉아 있지만 동시에 철저히 혼자일 수 있는 시간. 혼자지만 외롭지 않은 느낌. 한밤 중 차 안의 그런 느낌이 참 좋다. 그래서 결국 도착한 곳이 집이 아니라 어느 바닷가고, 그 바닷가엔 고래들이 육지 위로 올라와 자살을 진행 중이다. 그건 너무나 육중하고 매끄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바라보게만 되는 그런 느린 자살이다. 우리가 자살을 하는 것처럼 고래도 자살을 꿈꾸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생각이 절로 드는 아름다운 검푸른 새벽의 바닷가. 다행히 영화의 끝에 고래는 저절로 사라졌다. 저절로 바다로 돌아갔다. 그래. 살아야지. 분수처럼 시원하게 물을 뿜고, 넘실넘실 헤엄치며, 아무리 사소하고 소소해도, 아무리 극적인 해피엔딩이 찾아올 기미가 보이질 않아도 그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그렇게 느리고 슬프게 죽어갈 순 없지. 암. 그렇고 말고.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