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쌓다341 소설가가 말하길, 이천십년 꽃봄 그가 이렇게 적어줬다. 이천십년 꽃봄. 이번엔 어디에 사인을 받을까 고민하다 을 들고 나갔다. 은 처음부터 사인본이었고. 그를 만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책을 뒤적거리다 글 몇 개를 읽었다. 봄이었다. 책이 온통 봄이었다. 지하철 창 밖도 봄이었고, 날씨도 봄이었다. 신촌도 봄이었고, 소설가도 봄이었다. 갈색의 예쁜 자켓을 입고 등장해서는, 어김없이 예의 그 유머를 남발한 소설가.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 맘 때에 태어났어요. 이 맘 때에는 아무 것도 안 해요. 그냥 있어요. 오늘 여기 온 것도 오늘 하는 일의 다예요. 따뜻한 바람이 불기 전에 시와씨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자기도 했어요. 좋았어요. 소설가는 말했다. 시와의 음악을 듣었고, 곧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2010. 4. 12. 바람이 분다, 가라 한강이 봄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나를 불러 세운다. 잠깐만요. 여기 앉아볼래요? 이제부터 내가 아주 긴 노래를 들려줄게요. 나는 얕은 눈보라가 치는 미시령 절벽 위에 서 있다. 눈보라 때문에 앞이 보이질 않는다. 무릎을 안고 쪼그려 앉아본다. 까마득하다. 정확히 두 발만 더 내디디면... 그녀를, 그녀의 엄마를 만날 수 있다. 한강이 긴 노래를 끝낸 날, 어떤 이가 목을 맸다. 그이는 그 날 미시령 고개에 있었던 거다. 두 발 앞이 벼랑이었던 거다. 그이는 그 벼랑의 허공에서 그녀를 보았던 거다. 그녀가 손짓했겠지. 그이는 안심했던 거다. 그리고 발을 내밀었던 거다. 우리는 모두 미시령의 어느 절벽 위에 서 있다. 한강이 아주 긴 노래를 끝내고 떠나고, 나는 얕은 눈보라가 치는 절벽 위에 남았다. 절벽 .. 2010. 3. 31.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김이설 지음/문학과지성사 삼월인데 눈이 온다. 내가 기억하기론 벌써 세 번째다. 처음에는 예전에도 삼월에 눈이 왔던가 생각했다. 두 번째는 언젠가 삼월에도 눈이 온 적이 있었는데 내가 기억을 못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는, 영화 을 생각했다. 영화의 마지막, 거짓말처럼 사월에 눈이 내렸다. 사월에 눈이 내리고, 인수는 서영을 생각한다. 그리고 전화를 한다. 내가 곧 갈게요, 이런 대사였던 것 같다. 그 땐, 인수가 서영에게 달려가는 상황이 아니라, 그리하여 둘의 사랑이 어찌어찌된다는 그 결말이 아니라, 사월에 눈이 온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 터무니 없어서 이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결론이야, 생각했는데. 사월에 눈이 올 수도 있겠다. 인수가 서영을 만나러 갈 수도, 그리.. 2010. 3. 22. 채링크로스 84번지 - 헬렌의 입맞춤을 가득 담아 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궁리 내게도 헬렌이 있다. 그녀도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우리의 경우는 메일이었다. 나는 채링크로스 84번지에 근무하지도, 희귀한 헌 책들을 뚝딱 구해올 능력도 없지만, 내게는 그녀에게 없는 책 한 권이 있었다. 그건 어디서도 더 이상 살 수 없는 책이었다. 출판사에서 아주 소량만 만들어 배포했던 거니까. 나는 그 책을 두 권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그 책을 한 권 보냈다. 우리는 같은 작가를 좋아했고, 그 책은 그 작가의 블로그 모음집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내게 책을 보내왔다. 절판되어서 구하지 못하고 있던 책, 그 작가는 페루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게도 헬렌이 있다. 그녀와 나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마크스 서점의 식구들과 헬렌이.. 2010. 2. 6. 싱글맨 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그책 읽을 때보다, 읽은 후에 더 많이 생각났던 소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한 남자의 하루를 그린 소설이라는 소개에 끌려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자의 슬픔, 그 남자의 하루, 그 남자의 그리움과 아픔, 그런 감정들을 예상했었는데, 소설은 언젠가 한 남자에게 다가올 온전한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 소설의 처음은 남자가 잠에서 깨어날 때이고, 시간은 아침이다. 남자는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자신이 '여기' '지금' '있음'을 깨닫고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은 남자가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잠이 들 때다. 시간은 밤(혹은 새벽). 역시 남자는 죽음을 생각한다. 남자는 늙었고, 사랑하는 사람은 먼저 떠났고.. 2009. 12. 24. 2층의 봄,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좋아하는 카페가 생겼다. 무척 추웠던 토요일, 화요비랑 커피 마실 공간을 찾아 사가정을 헤맬때 우연히 발견한 공간이다. 그러고 두 번을 더 갔다. 처음에 가서는 진한 라떼를 마시고, 또 와인을 마셨다. 두 번째 갔을 때는 돈까스를 먹고 나쵸에 맥주를 마셨다. 세 번째 갔을 때는 볶음밥에 역시 진한 라떼를 마셨다. 음악도 좋고, 공간도 좋다. 커피맛도 좋다. 돈까스는 잘 모르겠다. (사실 좀...) 아직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혼자 가서 따뜻한 커피를 시켜놓고 창가자리에 앉아 책을 읽을 테다. 요즘에 시작한 뜨개질을 할 지도 몰라. 홍대의 카페처럼 멀지 않으니 주섬주섬 챙겨 일어나 적립카드에 소년, 혹은 소녀 도장을 찍고 10분만 걸으면 바집로 이다. 아, 행복한 공간. 좋아하는 곳 사진이니, 아주.. 2009. 11. 19. 이전 1 ··· 33 34 35 36 37 38 39 ··· 5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