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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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온천 - 차가운 몸을 녹이는 순간서재를쌓다 2007. 8. 16. 16:18
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Media2.0 일본 노천 온천에 대한 환상이 있다. 코 끝에 닿는 바람이 지독하게 차가운 겨울 날, 산이 있고 나무들이 보이는 노천 온천으로 들어가 차가운 몸을 따뜻한 물에 녹이는 순간. 아, 이 순간 정말 행복하다, 라고 느끼는 순간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 거다. 아니면 초저녁, 밤하늘의 별이 하나 둘씩 반짝이기 시작해도 좋을 거 같다. 생각만해도 행복해지는 그 기분. 이 보고 싶었던 이유는 순전히 이 일본 노천 온천에 대한 환상때문이었다. 물론 요시다 슈이치라는 이름 때문이기도 했고. 아직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밖에 읽지 못했는데, 그의 사소하고 스쳐가는 듯한, 고요하고 가끔은 서글픈, 덤덤한 공기의 이야기들이 좋다. 어제 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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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 이런 세상이라서 미안해서재를쌓다 2007. 8. 12. 20:54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갑자기 목이 말라왔다. 냉장고로 가서 물통을 꺼내 커다란 물컵에 가득 따라서 벌컥벌컥 마셨다. 일요일 저녁의 집 안이 너무 조용한 것만 같아 라디오를 켰다. 그리고는 어젯밤에 널어놓은 빨래를 하나씩 개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보니 밖이 주홍빛이다. 아니, 정확한 색을 대지 못하는 오묘한 빛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빛이 그렇다. 그러다 갑자기 1분동안 세차게 비가 내린다. 황석영 선생님을 한번 뵌 적이 있다. 학교에서 강연회가 있었는데 그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세세하게 기억 나진 않지만, 나는 그가 참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키도 컸고, 체격도 컸다. 목소리도 컸고, 웃음도 컸고, 그가 하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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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피델리티 - 귀가 즐거운 소설서재를쌓다 2007. 8. 10. 14:22
하이 피델리티 닉 혼비 지음, 오득주 옮김/Media2.0 나는 그 아이랑 헤어진 후 어떻게 할 지를 몰랐다. 그래서 술을 마셨고, 매일 울어댔고, 내 생활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때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같은 하숙집에 있었던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며 내 넋두리를 하는 거였다. 그럴리야 없어. 니가 더 잘 알잖아. 얼마나 나한테 잘해줬던 아이였는데. 한순간 이렇게 모질게 변해버릴 순 없는거다. 친구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여줬고 술잔을 내밀어줬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항상 비가 왔다. 그 여름, 내가 흘린 눈물만큼 많은 비가 왔다. 가끔 그 아이한테 전화를 했다. 그 아이는 받지 않거나, 받게 되면 화를 냈고, 나는 그런 그 아이가 너무 믿어지지 않아서 전화기에 대고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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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 이광두, 이광두 어디간거야?서재를쌓다 2007. 8. 4. 03:00
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휴머니스트 몇달 전, 푸른숲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공지영 작가와 함께한 상해 대담 기사에 곧 위화의 새 소설이 한국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소식이 없어서 언제쯤 출간되느냐고. 푸른숲에서는 이번 책은 출판사 휴머니스트 사장님에 대한 우정의 표시로 그곳에서 7월 안에 출판될 거라는 답변을 받았다. 올해 봄, 나는 위화의 새 이야기가 너무 그리웠고 8월이 오기 전에 다 읽어버렸다. 책장이 너무나 빨리 넘어져서 다 읽어버렸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위화는 내게 봄과 여름의 경계선을 닮은 작가다.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읽게 된 계기가 된 연극 '허삼관 매혈기'도 그때 만났고, 연극이 너무 좋아서 원작을 찾아 읽었고, 그 원작이 너무 좋아서 다른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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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 모두들 잘 살고 있습니까?서재를쌓다 2007. 7. 30. 00:13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릴리 프랭키의 를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이가 든 후에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느 정도의 눈물샘을 자극하겠다는 작정인거다. 더군다나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소설이였고. 그래서 이번 릴리 프랭키의 새 책이 출간되었다고 했을 때 망설였다. 실제로는 이전에 집필했던 단편들이고 에서 너무 눈물을 빼버려서 이번 책에서 왠지 실망할 것만 같았다. 책을 읽고 난 후, 반반이였던 것 같다. 괜찮았다에 반, 역시 에서 너무 많이 기대했었구나 반. 는 6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대마농가의 신부'에서는 도쿄의 여자 다에코가 대마를 생산하는 어느 농촌의 대부호 기이치로와 선을 보는 이야기다.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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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2 - 휴일 아침 아빠의 토스트서재를쌓다 2007. 7. 25. 00:40
식객 2 허영만 지음/김영사 어릴 때 아빠는 우리 세자매를 위해서 가끔 토스트를 구워 주셨다. 일요일 아침, 겨우 눈을 비비고 잠에서 깨어나면 집 안에 울리는 마가린냄새. 아빠의 토스트는 별 게 없다. 마가린 가득 빵에 발라서 구워내고, 계란 하나를 깨뜨려 지글지글 후라이를 만들고, 빵 사이에 계란을 넣고 정확하게 4등분으로 나눈다. 접시 한 쪽에 마가린을 조금 퍼 담으면 끝. 요 간단하고 기름기 넘치는 토스트를 우리는 정말 좋아라했다. 그때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런 것이 똑같은 요리법으로 우리가 만들어내면 그 때 그 맛이 안 난다. 아무리 마가린을 퍼 부어도 그 맛이 나오지 않는다. 잠옷바람으로 마가린 냄새에 취해 아빠의 정성에 취해 먹어댔던 느끼한 토스트 한 조각.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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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홈즈 전집1, 주홍색 연구 - 셜록홈즈를 읽다서재를쌓다 2007. 7. 20. 15:19
셜록 홈즈 전집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황금가지 셜록 홈즈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황금가지에서 셜록 홈즈 전집이 나왔을 때, 좋아라하며 전집을 금새 읽어내던 아이. 그렇게 재밌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끄덕였었던 아이. 아무튼 셜록 홈즈를 읽는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는데 약속때문에 시간이 얼마 없었다. 가장 가까운 책장에 눈에 띄었던 책이 셜록 홈즈라 그냥 대출해서 나왔는데, 책을 읽다보니 내게도 셜록 홈즈에 관한 추억이 하나 있더라. 셜록 홈즈는 워낙 유명해서 책을 읽지 않아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한 둘씩은 꼭 있어서 읽지 않아도 마치 읽은 것같은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1권을 후다닥 끝내고 서평들을 찾아보니 이제 이어질 이야기들이 훨씬 더 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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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 - 현재를 살아나가기 위해서재를쌓다 2007. 7. 16. 13:56
영화와 소설의 스포일러 있어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북스토리 영화 를 보고 가장 궁금했던 건 마코토의 이모 가즈코의 존재. 츠츠이 야스타카의 원작은 이모 가즈코의 이야기라고 해서 읽어봤다. 소설 는 영화에서 박물관에서 복원사로 근무하는 가즈코 이모의 20여년 전의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마코토가 타임 립을 처음 경험하고 놀라 가즈코 이모에게 달려가서 상담을 했을 때 가즈코는 전혀 놀라지 않고 당연한듯 마코토에게 이렇게 말한다. 니 또래 여자애들한테는 종종 있는 일이야. 소설 속의 고등학생 가즈코는 어느 날 마코토와 마찬가지로 과학실에서 타임 립을 경험하게 된다. 호두같은 기계에 멀리, 높이 달려나가면 타임 립을 하게 되는 마코토와는 달리 가즈코는 라벤더향이 나는 한 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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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 눈물이 주룩주룩서재를쌓다 2007. 7. 14. 19:10
도쿄 타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몇시였더나? 우리집은 요즘 독서열풍에 빠졌다. 늘 켜져 있던 티비를 끄고 라디오나 음악을 잔잔하게 켜놓고 세 자매가 나란히 누워 독서를 즐기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한 9시쯤이였나? 한참 그렇게 각자의 책을 읽고 있었는데, 조용한 가운데 막내동생이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해서 영문도 모르고 있다가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다줬다. 휴지로 코를 팽 풀고 눈가를 몇 번 훔치더니 쥐고있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드문 일이였다. 막내동생이 책을 읽고 엉엉 울다니. 언젠가 읽어둬야지 다이어리에 써 넣고 깜빡했었는데. 그렇게 읽게 되었다.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무딘줄 알았던 내 동생을 엉엉 울게 만든 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