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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이 분다, 가라
    서재를쌓다 2010. 3. 31. 00:10



        한강이 봄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나를 불러 세운다. 잠깐만요. 여기 앉아볼래요? 이제부터 내가 아주 긴 노래를 들려줄게요. 나는 얕은 눈보라가 치는 미시령 절벽 위에 서 있다. 눈보라 때문에 앞이 보이질 않는다. 무릎을 안고 쪼그려 앉아본다. 까마득하다. 정확히 두 발만 더 내디디면... 그녀를, 그녀의 엄마를 만날 수 있다. 한강이 긴 노래를 끝낸 날, 어떤 이가 목을 맸다. 그이는 그 날 미시령 고개에 있었던 거다. 두 발 앞이 벼랑이었던 거다. 그이는 그 벼랑의 허공에서 그녀를 보았던 거다. 그녀가 손짓했겠지. 그이는 안심했던 거다. 그리고 발을 내밀었던 거다. 우리는 모두 미시령의 어느 절벽 위에 서 있다. 한강이 아주 긴 노래를 끝내고 떠나고, 나는 얕은 눈보라가 치는 절벽 위에 남았다. 절벽 위에 무릎을 세우고 가만히 앉아 있다. 눈보라가 서서히 잦아들고, 바람이 견딜만 해졌다. 한강은 떠났지만, 어디선가 그녀의 기타선율이 미시령의 바람에 머물고 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앉아 있는다. 그리고 본다. 미시령에 봄이 찾아오는 것을. 눈이 멈추는 것을. 눈이 녹는 것을. 새싹이 돋는 것을. 꽃이 피는 것을. 그리고 바람이 부는 것을.


         한강의 새 소설을 읽었다. 아주 긴 노래였다. 헝겊 위에 퍼지는 별의 흔적처럼 마음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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