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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가 말하길, 이천십년 꽃봄
    서재를쌓다 2010. 4. 12. 23:55

         그가 이렇게 적어줬다. 이천십년 꽃봄. 이번엔 어디에 사인을 받을까 고민하다 <청춘의 문장들>을 들고 나갔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은 처음부터 사인본이었고. 그를 만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책을 뒤적거리다 글 몇 개를 읽었다. 봄이었다. 책이 온통 봄이었다. 지하철 창 밖도 봄이었고, 날씨도 봄이었다. 신촌도 봄이었고, 소설가도 봄이었다. 갈색의 예쁜 자켓을 입고 등장해서는, 어김없이 예의 그 유머를 남발한 소설가.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 맘 때에 태어났어요. 이 맘 때에는 아무 것도 안 해요. 그냥 있어요. 오늘 여기 온 것도 오늘 하는 일의 다예요. 따뜻한 바람이 불기 전에 시와씨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자기도 했어요. 좋았어요. 소설가는 말했다. 시와의 음악을 듣었고, 곧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그 생각만으로도 조바심이 났다고.

        어제 신촌에서 구두소리가 텅텅 울리는 나무 바닥에 앉아서 시와의 음악을 듣고, 김연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번갈아가며 낭독을 했다. 어떤 불꽃에 대해 이야기했고, 어떤 예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와는 소설가의 소설을 읽고 영감을 받은 노래를 불러줬고, 우리는 그 노래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소설가는 사실은 잘 몰라요, 라는 말을 남발했다.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으응?) 소설가는말했다. 결심을 하는 건 정말 멋진 일 같아요. 여러분도 여러 번 결심하세요. 이틀 뒤에 깨지는 결심이라도, 하는 순간만은 정말 멋진 거예요. 수도 없이 결심을 하는 거예요. 나는 오늘 셔틀 버스 안에서 옆의 동료에게 결심하는 건 정말 멋진 거 같애요, 라고 말했다. 올해는 수백번 결심해 보리라 다짐했다지.

         아, 작가의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응?) 작가의 말을 읽으려고 소설을 읽는 어이없는 사람이 있다면서. (으응?) 그건 속지 살려고 음반을 사는 것과 똑같다며 (끙) 그리하여 생애 최초로 작가의 말을 낭독하겠다며. (와)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작가의 말을 낭독해주셨다. 내가 어제 얼마나 멋진 시간을 보냈는지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리고 우리의 유머러스하고 멋지고 센스있으시며 수줍어하시는 소설가님은 이 열혈독자를 알아봐주셨다. 고마워요, 작가님. 아, 정말 열혈 감동이었답니다. 

         비님이 오신다. 아, 비님. 오늘 명란젓국을 끓였다. 간단하다. 명란젓 넣고, 두부 넣고, 다진 마늘 넣고, 파 넣고, 물 넣고 팔팔 끓이는 것. 그러면 약간 짭잘한 밥도둑 국이 완성된다. 비님은 오시고, 보일러를 간만에 빵빵하게 틀었고, 내일 아침 일찍 먹을 명란젓국 냄새가 집 안 가득하고, 내일은 춥단다. 그렇다면 소설가가 적어준 꽃봄은 조금 기다려야겠지만, 그러다 잡지도 못하고 금세 가버리겠지만, 곧 소설가를 설레게 만드는 4월의 따뜻한 바람이 또 불어올 거니까. 목련꽃이 활짝 피었으니까. 개나리도 활짝 피었으니까. 진달래도 활짝 피었으니까. 봄이 가고 있으니까. 소설가는 얼른 소설을 쓰시고, 이 봄이 가기 전에 이 열혈독자에게 새 책을 안겨주시길.





        정말 아름다운 여름이었다. 햇살을 받은 이파리들은 초록색 그늘을 우리 머리 위에 드리웠고 바람에 따라 그 그늘이 조금씩 자리를 바꿨다. 금방이라도 초록색 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나무 그늘 아래를 달리면서 나는 "열무와 나의 두번째 여름이다"라고 혼자 말해봤다.
    p.25 청춘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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