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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쌓다341

작가를 만나고 온 밤에는, 오늘 밤은 어떤 문장도 쓰지 않으려 했는데. 집에 들어오는 길에 맥주를 사버리는 바람에. 어제는 공선옥 작가님과 정한아 작가를 만났다. 역시 작가와의 만남 자리였다. 아주 커다란 나무 테이블이 있는 합정역 근처의 카페였다. 거의 2시간 동안 함께했다.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그 커다란 나무 테이블에 앉아 그저 무덤덤하게 들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받아적어두고 싶은 말들이 있었다. 아무 종이나 꺼내서 이런 저런 말들을 적어두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종이가 마트 영수증이었다. 6월 10일 날짜의 영수증. 나는 그 날 역시 마트에서 카스캔을 하나 사고, 물도 사고, 껌도 샀다. 그 영수증 뒤에다 이런 말을 받아적었다. '친구가 없고, 외로웠어요.', '내 안을 한 번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의 지층이 꽤 깊.. 2009. 6. 24.
자전거 여행 - 아름다운 문장들 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생각의나무  5월에는 정기승차권을 다 썼다. 정기승차권은 한 달 동안 지하철만 60번 이용할 수 있다. 한 달이 지나면, 횟수가 남아도 소용이 없다. 다시 한 달을, 60번을 충전해야 한다. 몇 달을 정기승차권을 샀지만, 어느 달도 60번을 다 쓴 적은 없었는데, 5월에는 다 썼다. 이건 내가 5월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일. 발발거리면서 5월의 거리를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는 증거다. 나는 5월에 공연장에도 가고, 극장에도 가고, 술집에도 가고, 카페에도 가고, 서점에도 갔다.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아, 5월에는 친구에게서 예쁜 하얀색 운동화도 선물받았다. 6월에는 더 많이 걸어야지. 그리고 이건 6월에 생긴 습관. 아침마다 7호선 건대입구에서 2호선 .. 2009. 6. 15.
여보, 나좀 도와줘 여보, 나좀 도와줘 노무현 지음/새터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그가 이제 이 땅에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강했던 그가 스스로 바위산 위에서 몸을 던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이 땅 위엔 없고, 그 날 새벽 바위산 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책의 마지막, 238쪽에서 239쪽에는 지은이의 약력, 즉 노무현 대통령의 약력이 나와 있다. 경남 김해군 진영에서 출생한 1946년부터 1993년에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연소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해까지 기록되어 있다. 책은 1994년에 발간되었다. 그 뒤로 2009년까지. 이 책의 기록은 93년에 멈췄지만 그는 2009년까지 쉼없이 달려왔다. 그 기록들은 아마도 240쪽을 넘어 241쪽을 넘어 242쪽 너머까지 이어졌겠지. 그리고 243쪽.. 2009. 6. 8.
돼지꿈 - 새로이 시작하기에도, 포기하기에도 어려운 돼지꿈 오정희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친구는 요시다 슈이치를 만나는 자리에서 이 책을 가지고 왔다. 나를 만나러 오다, 나를 기다리다 산 책이라 했다. 짧은 글들이 담긴 책인데, 내가 오는 동안 몇 편을 읽었다고 괜찮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 날도 비가 왔다. 우리는 요시다씨를 만나고, 우산을 펴고 우겹살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 언제였더라. 김동영 작가를 만나는 날이었던가. 친구는 또 한 번 이 책 이야기를 꺼냈었다. 다 읽었다고, 아주 좋았다고, 너도 읽으라고 했다. 그리고 책 속의 어떤 한 소설의 느낌을 이야기해줬는데, 나는 요시다씨를 만난 뒤 잠깐 들른 커피숍에서 읽었던 이 책 속 작은 은점이(작고 강한 아이다)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내 친구가 말해준 그 이야기 때문에 이 책이 빨리 읽고 싶어졌.. 2009. 6. 7.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마해금이는 예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표지를 봤을 때 공선옥스러운 표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청보리밭에서 막걸리 한 잔 나누고 싶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공선옥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표지가 아니었다. 이건 너무 예쁘잖아, 색도, 일러스트도. 그렇게 생각했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투박한 이미지에 비해서 너무 팬시적인 표지라고. 책을 다 읽고 다시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표지가 너무 예뻤다. 이건 공선옥이 '쓴' 이야기지만, 스무살 아주 예쁜 해금이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표지 속 민들레를 예쁘게 후-하고 부는 볼이 발그레한 아이는 해금이. 해금이는 예쁜 아이다. 이야기를 다 읽고 나니, 이 표지가 이해가 되었다. 해금이에겐 아주 예쁜 표지가 필요하다. 예쁜 색이 필요하고, 예쁜 얼굴이 필요하다. 마해금.. 2009. 6. 4.
7월 24일 거리 - 밤의 버스를 좋아한다 7월 24일 거리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요시다 슈이치의 는 작은 항구도시에 사는 주인공 사유리가 출근길 항구에서 나비의 시체를 보면서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표본이었던 호랑나비가 항구 제방에 떨어진 것을 본 것이다. 사유리는 조금 특별하다. 이를테면 일본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꿈꾸는 여자다. 사유리는 자신의 고향의 거리들을 리스본에 있는 거리로 바꿔 부르기를 좋아한다. 물론 혼자 있을 때의 일이다. 예를 들면, 늘 버스를 타는 '미루야마 신사 앞'이란 정거장을 '제로니모스 수도원 앞'이라고 부르고, 제방과 나란한 현도는 '7월 24일 거리'라고 부른다. 재개발 덕분에 항구에 조성된 '물가 공원'은 '코메르시오 광장'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이렇게 부르면, 사유미가.. 2009.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