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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24

원을 세우며 기도하옵니다 - 금요일 저녁. 열심히 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한 밤. - 어젯밤에 인터넷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선물이 받고 싶어졌다. 똑똑. 문을 두드리면 배달왔습니다, 라며 누군가 내게 안겨주는 선물. 갑자기 뭔가 선물받고 싶어졌어, 라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없으니 인터넷 서점에서 찜해두었던 책을 주문했다. 현장비평가가 선정한 올해의 좋은 소설들과 중국어 책. 이건 순전히 인터넷을 떠돌다가 발견하게 된 보물같은 블로그들에서 발견한 리스트. 장마가 시작할 때쯤엔 항상 이 책이 나온다고 했던 소설집과 이건 너무 시적이라며 공부책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절들을 옮겨놓은 중국어 책.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인터넷 서점도 오전 10시 이전에 주문하면 당일 배송이다. 똑똑. 저녁, 선물이 도착했다. 아, .. 2008. 6. 28.
불면증 불면증이 시작됐다. 더워서 잠이 오지 않던 지난 여름의 괴로웠던 밤들이 떠올라 끔찍했다. 우리집은 확실히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계절을 충실히 따르는 집이다. 어제는 또 잠이 안 올까 두려워 8시쯤에 동생이랑 중랑천엘 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밤운동을 하고 있는지 미처 몰랐다. 그렇게 강가의 저녁바람이 시원한지도 몰랐다. 가지고 갔던 엠피쓰리를 내려놓고 뛰고 걸으면서 물 흘러가는 소리, 바람 넘실대는 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다 떠는 소리를 들었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비스듬히 누워 시청률 한자리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보고, 무릎팍도사를 봤다. 김주하 언니의 마감뉴스까지 챙겨보니 저절로 잠이 달아나버렸다. 다시 물대포다. 며칠 전엔 길치에다 바보같은 나는 늘 가던 약수터 위였는데도 빙 둘러서.. 2008. 6. 26.
성년이 되는, 군인이 되는 너에게 내일, 아니 12시가 지났으니 오늘 사촌 동생이 군대에 가요. 가기 전에 같이 밥이라도 먹었어야 했는데. 미안한 마음에 사촌동생 홈피 방명록에 가서 몇 자 끄적거렸는데, 밤에 전화가 왔어요. 밖으로 나와서 우두커니 입대 전 마지막 전화들을 돌리고 있는 모양이예요. 막내 동생에게 걸려온 전화니 막내 동생이 먼저 받고, 다음에 둘째 동생이 받고, 마지막으로 제가 받았죠. 예의 그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무뚝뚝한 음성으로 그러길 바랄 뿐이지, 그러네요. 이제 군생활이 2년도 안 된다며? 그러니 시간이 금방 갈거다, 그러니깐 그러길 바랄 뿐이지, 그러네요. 저희는 세 자매니 말할 것도 없고, 친가 친척들 중에서는 제일 먼저 군대를 가는 녀석이예요.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타고, 무뚝뚝해서, 말을 시켜도 몇 마디를 .. 2008. 5. 20.
채식주의자, 라고 할 순 없지만 연휴가 지나고 동생이 무거운 종이 가방을 안고 돌아왔다. 그 안에 고추장으로 볶은 크고 작은 멸치볶음, 동생이 제일 좋아하는 고추장 진미채볶음이 락앤락에 가득 담겨져 있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군침을 돌게 한 건 팔뚝만한 애호박 세 덩이와 굵기로 소문난 내 손가락보다 더 굵고 큰 풋고추'들'. 셋이서 자취를 처음 시작하던 때에 우리는 삼겹살을 구우면서 흥분했다. (그렇다고 지금 삼겹살에 흥분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노릇노릇해질 정도로 바삭 구워 참기름 장에 찍어서 먹으면서 맛있다, 맛있다 소리를 연발했다. 정말 맛있었다. 그 꼬글꼬글한 삼겹살의 육질. 우린 진정한 육식주의자였다. 그러던 우리가 이제는 저런 알찬 채소에 흥분한다. 예전엔 시장에서 쇠고기 덩어리를 보고 저건 얼마나 비쌀까, 도리도리질 했었.. 2008. 5. 14.
어젯밤 메모 어젯밤 메모. 비님이 오신다. 창문을 덜커덩거리는 바람과 함께. 기분이 좋아진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를 읽는다. 날씨와 딱 어울리는 표지 아닌가. 집에 들어오는 동생에게 우유 가득 들어간 라떼를 부탁한다. 동생은 생긋생긋 웃으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떼를 내 손에 쥐어준다. 라떼를 홀짝홀짝 마시며 오랜만에 을 본다. 얼마 전 을 읽고 돈 냄새가 나는 서점이 아닌 사람 냄새가 나는 포근하고 따스한 서점의 모습이 그리워 도 다시 보았다. 따닥따닥 노트북 자판 소리를 내며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은 룰루랄라 뉴욕의 가을을, 아침의 행복을 노래한다. 알콜 한 방울 없이도 행복한 금요일 밤이다. 2008. 4. 26.
새해 기똥찬 다짐들 새로운 1년이 시작되었네요. 정말. 어제는 힙합 Big 4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자유로운 영혼들 틈에 끼여서 몸을 까딱까딱, 손을 까딱까딱이면서 소리지르다 보니깐 저도 뭔가 자유로워지는 듯한 기운을 받으면서 2007년을 마무리했어요. 좋았어요. 따라간 거고 유명한 노래들만 알아서 좀 머쓱한 순간들이 있긴 했지만요. 2007년 마지막에 한 달 먼저 쓰기 시작한 2008년 다이어리와 작가님이 직접 싸인해 준 책을 잃어버렸어요. 어이없게 도서관에 가면서 뒤로 메는 가방을 반쯤 열고 나간거예요. 음악도 빵빵하게 들으면서 걸었으니 묵직한 두 권의 책이 두둑 떨어지는 소리따위는 들을 리가 있었겠어요? 어찌 이리 무딜까요. 혹시나 갔던 길을 되돌아와보고, 분명 넣은 기억이 확실하지만 혹시나 가방에 넣을라고 생각만 .. 2008.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