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윤대녕5

1월의 일들 토요일에서 일요일이 되는 동안, 우리는 시인의 방에 있었다. 다섯 명이서 한 대의 택시를 타고 연남동으로 왔다. 택시 아저씨는 시작하는 연인들의 풋풋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 풋풋한 택시의 기운을 받아야 한다고 조잘거렸다. 서촌에서 시인은 이야기했다. 지금 시작되고 있는 자신의 사랑에 대해. 언제나 그렇듯 물어봐야 겨우 답했지만, 나는 그의 '좋은' 기운을 느꼈다. 우리는 시인의 방에서 방백도 듣고, 이소라도 들었다. 나와 동생은 요즘 하루에 한 개씩 버리는 중이다. 좁은 원룸에 살고 있는데, 살면 살수록 짐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살펴보면 대부분이 필요없는 것들. 그걸 하루에 하나씩 찾아내 버리고 있다. 어떤 날은 더이상 나오지 않는 볼펜을 버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일년 내내 한 번.. 2016. 1. 26.
윤대녕 소설, 대설주의보 추석 동안 나와 함께 한 책. 이번 추석에 이 책과 나의 궁합이 잘 맞았다. 를 읽고 눈이 내리는 소설이 좀더 보고 싶어서 읽은 책이다. 소설집인데, 표제작인 '대설주의보'에서 눈이 많이 내린다. 펑펑 내려서 대설주의보까지 내려지고, 강원도의 절에서 여자와 만나기로 했던 남자는 발이 묶인다. 인연이었던 남자와 여자가 긴 세월을 둘러 다시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소설집 중에서 이 소설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특히 마지막 장면. 갤로퍼는 유턴을 한 다음 곧 눈발 속으로 사라졌다. 윤수는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눌러쓰고 주차장을 모로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산문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갈수록 바람이 잦아들어 그다지 추운 느낌은 없었다. 길은 완만했으나 정강이까지 눈이 차올라 걸음이 더뎠다. 손전등을 빌려오지 않았.. 2013. 9. 25.
안녕, 눈사람 - 눈의 여행자 눈의 여행자 윤대녕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를 꺼내 읽은 건 김연수 산문집 때문이었다. 김연수는 언젠가 꼭 한번은 눈에 고립되고 싶다면서 두 작품을 언급하는데 한 작품이 이제하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이고, 다른 한 작품이 이다. 산문집을 읽고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찾아 읽었다. 그리고 를 꺼냈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이다. 가물가물하지만 소설가가 나왔고, 소설가가 눈 속을 헤매였고, 한 여자가 있었다. 소설가가 눈 속에서 울기도 했다. 그런 이미지만 남아 있었다. 다시 꺼내 읽으니 내가 이 소설을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었던 건, 순전히 눈 때문인 것 같다.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는 소설가는 어느 날 한 통의 소포를 받는다. 일본에서 온 소포 안에는 어린 아이들이 공부하는 숫자놀.. 2013. 9. 5.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를 읽는 계절 p.304-305 오늘 이 문장들을 다시 읽었다.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따뜻해졌다. 12월에 나는 윤대녕의 를 읽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야 내가 윤대녕을 읽은 계절이 거의 겨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겨울과 윤대녕. 이건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조합이다. 소설은 겨울이 한창일 때 시작되었다가, 봄이 오기 직전, 그러니까 겨울이 가기 직전에 끝이 났다. 아주 깜깜한 어둠이 아니라 파랗게 어스름이 깔려오는 새벽녘이라는 뜻이다. 요즘 브로콜리 너마저의 '유자차'라는 노래를 듣고 있는데, '유자차' 노래가사에 비유하자면, 과거를 유자 사이에 켜켜이 넣고 뜨거운 눈물을 부어 마시는 거다. 그리고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소설을 읽으면서 언젠가 잡지에서 본 적이 있는 윤대녕의 작업실을.. 2008. 12. 21.
제비를 기르다 - 고독하기 때문에 읽는다 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내게는 소설보다도 작가의 말을 더 기다리게 만드는 작가가 있다. 아마 을 읽었을 때였을 거다. 은어가 강물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 작가의 말이 있었다. 세세한 구절들이 떠오르진 않지만, 나는 한 장 남짓의 소설가의 시같은 작가의 말을 읽고는 책을 그냥 덮어버리지 못하고 그 구절들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그 뒤로 윤대녕의 예의 그 감성적인 글의 촉감들도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작가의 말을 남겼을까 기대하면서 읽게 된다. 그리고 소설을 끝나기 전에는 절대 뒤로 넘겨 먼저 읽지 않는다. 작가의 말은 소설이 끝난 다음에 읽는 것이 가장 빛나므로. 사실 이러면서도 그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내가 읽은 그의 글들은 , , 그리고 약간의 실망을 금치 못했던 .. 2007.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