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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의 일들
    모퉁이다방 2016. 1. 26. 22:21

     

     

     

       토요일에서 일요일이 되는 동안, 우리는 시인의 방에 있었다. 다섯 명이서 한 대의 택시를 타고 연남동으로 왔다. 택시 아저씨는 시작하는 연인들의 풋풋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 풋풋한 택시의 기운을 받아야 한다고 조잘거렸다. 서촌에서 시인은 이야기했다. 지금 시작되고 있는 자신의 사랑에 대해. 언제나 그렇듯 물어봐야 겨우 답했지만, 나는 그의 '좋은' 기운을 느꼈다. 우리는 시인의 방에서 방백도 듣고, 이소라도 들었다.

     

       나와 동생은 요즘 하루에 한 개씩 버리는 중이다. 좁은 원룸에 살고 있는데, 살면 살수록 짐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살펴보면 대부분이 필요없는 것들. 그걸 하루에 하나씩 찾아내 버리고 있다. 어떤 날은 더이상 나오지 않는 볼펜을 버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일년 내내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을 버리기도 했다. 어떤 날은 마음을 버렸다. 나는 '그' 마음을 정말 버렸다고 생각했다.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내 일상은 일어나서 씻고,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일본어 공부를 해야 하는데, 책을 읽어야 하는데 걱정을 하면서 티비를 보다 씻고 잠들기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1월이니까, 뭔가 결심을 해야 한다. 그래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열심히 적게 먹고, 열심히 맥주를 덜 마시고 있다. 지금의 내 일상은 일어나서 씻고, 몸무게를 재고, 아침을 먹고 (가장 먹고 싶은 것, 가장 칼로리가 높은 것), 노랗고 얇은 종이에 그 날의 일본어를 가득 써서 호주머니에 넣고 출근을 한다. 일을 하고, 화장실에 가는 동안 노랗고 얇은 종이를 꺼내 한번씩 읽어본다. 잘 읽히지 않는다. 어쩜 나는 이렇게 바보일까 자책을 한다. 때때로 칼퇴를 하고, 때때로 야근을 한다. 늦게까지 야근을 하지 않으면 운동을 하러 간다. 타원형으로 나열되어 있는 기구를 이용해 몸을 움직이고, 발판 위에서 뛴다. 그렇게 두 바퀴를 돈다. 스트레칭을 하고 집에 온다. 우유를 마신다. 내일 점심으로 먹을 샐러드를 준비하고, 공부를 조금 하고, 책을 조금 읽고 잔다. 그런다. 운동을 하면서 듣는 말을 일상을 살아가면서 떠올리고 있다. 트레이너들이 매일매일 말한다. 허리를 펴고, 가슴을 내밀고, 시선은 정면으로. '허리를 펴고, 가슴을 내밀고 시선은 정면으로.'

     

       어떤 날은, 아주 추운 날이었는데, 너무너무너무 슬펐다. 마음이 마구마구마구 아팠다. 그래서 집으로 가는 횡단보도를 하나 남겨두고 엉엉 울었다. 결국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고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마저 울었다. 그렇게 울고나니 시원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생각했다. 집에 와 씻고 이불 덮고 잘 잤다.

     

       <치즈인더트랩>에 빠져 있는데, 지난 일요일에 1화부터 쭉 다 봤다.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설이가 개떡같은 조원들 때문에 장학금을 받지 못할 것이 확실시 되자, 맥이 풀리고 기운도 없어져서, 친구랑도 싸우고, 그러고 낮의 거리를 이어폰을 끼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장면. 유정선배가 따라가며 설이의 빈 손을 바라보는 장면. 설이는 무슨 음악을 듣고 있었을까. 집 앞 오르막길을 설이가 오르는 장면. 인호가 설이를 발견하고 말을 거는 장면. 둘이 나란히 오르막길을 오르는 모습을 뒤에서 유정선배가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장면. 이 장면들이 담긴, 밤도 아닌, '낮'의 풍경들.

     

      이번 주 듣고 있는 노래들. 현재 '재생' 목록의 처음 열 곡.

    - 이브나 / 가을방학, 김재훈

    - 시시콜콜한 이야기 / 이소라

    - 하도리 가는 길 / 강아솔

    - 심정 / 방백

    - 방공호 / 9와 숫자들

    - 비밀 / 짙은, 한희정

    - 집까지 무사히 / 루시드 폴

    - Norway / 슬로우 쥰

    - 아직, 있다 / 루시드 폴

    - 새 (어쿠스틱, 이규호) / 루시드 폴

     

        아, 그리고 시인은 말했다. 그 사람, 내 삶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같아서. 나는 시인의 그 말이 좋아서,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내 '삶'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멋지다, 시인아. 고운 사랑하길.

     

       나흘 후에 나는 상고선을 타고 전장포구로 돌아와 임자도를 떠났다. 그 나흘 동안 우리는 일절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다만 난데없는 꿈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서야 나는 그날 밤 그와의 관계가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떤 여자와 막 사랑에 빠져들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즈음 나는 매일매일 하나의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요컨대 나라는 거울을 통해 매 순간 상대를 찾고 그리워하는 일이 바로 사랑이었다. 또한 상대를 통해 나라는 존재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누구한테나 우주와의 경이로운 일체감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날 밤 그와 내가 그러한 순간에 처해 있었던 것처럼, 이제 와서야 말할 수 있지만, 별들의 생성과 소멸처럼 우리도 어느 순간 파괴되면서 동시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 410쪽, 윤대녕 <반달>

    2015년 12월-2016년 1월 '시옷'의 책.

     

       내일, 그 아이를 만나기로 했다. 새 책은 '오늘'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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