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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옷의책5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예전에 어떤 마음으로 외국의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정기후원을 했었다. 후원을 하면 그 아이의 사진과 좋아하는 것 등이 적힌 간략한 프로필, 후원자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도착했는데 어느 날 후원하던 아이가 갑자기 바뀌었다. 단체에 이유를 물어보니 현지에서 연락이 끊긴 거고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때 후원을 중단하고 싶었는데 어찌어찌 이어나갔다. 남편과 연애 중일 때 남편이 내가 하는 후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비슷한 성격의 다른 단체에서 후원받은 돈을 아이들을 위해 쓰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다른 형식의 후원을 알려주며 이건 사연을 보고 직접 후원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망설이다 정기후원을 중단했다. 그런데 소파에서 나란히 티비를 보다 남편이 갑자기 그러는 거다. 아,.. 2021. 11. 18.
마음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나쓰메 소세키를 온전히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 권 밖에 읽지 못했지만, 100년이 더 된 나쓰메 소세키의 이야기가 아직도 잘 읽히고 있는 이유를, 나는 나에게서 찾았다. 나는 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마음이 되었다. 책을 읽을 당시 나는 친구와 싸웠고,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너는 절대 모른다는 친구의 말이 무척이나 서운했다. 이렇게 말해도 너는 모르는 거야, 라는 마음으로 지금껏 내게 그 많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은 건가 생각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내가 아는 친구의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 '나'는 선생님을 가마쿠라 바닷가에서 만난다. 나는 선생님을 '발견'하고 단번에 마음에 끌린다. 그렇게 나의 일방적인 구애로 두 사람의 관계는 시작된다. 선생님은 자.. 2017. 8. 2.
남편의 아름다움 기석이가 고른 책은 다 기석이 같다. 그동안의 책 중 가장 얇고, 글자가 적은 덕분에 다 읽었지만, 녹록치 않았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두 장을 한꺼번에 넘긴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계속 읽었다. 무심코 앞장을 넘기다 너무나 생경한 페이지가 있어 앞뒤를 넘겨보니 내가 건너뛴 페이지였다. 어제는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내가 읽고 있는 기석이라는 사람에게도 그런 페이지가 있는 건 아닐까. 건너뛴 페이지가 자연스러웠다면, 돌아가 부러 발견하고 다시 읽는 게 좋은 걸까, 그 페이지 쯤은 발견하지 않은 채 흘러 가게 두는 게 좋은 걸까. 누구에게나 그런 페이지가 한 두장씩은 있겠지. 제목과 표지가 무척 아름다운 2017년 첫 시옷의 책 . 세 개의 포스트잇을 붙여뒀다. 14페이지, 그는 행복한 듯.. 2017. 2. 15.
낮의 목욕탕과 술 동생이랑 오사카-교토 여행을 갔을 때, 우리는 들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동네 사람들만 갈 법한 자그마한 술집에 들어가 꼬치를 시키고, 맥주를 시키고, 사케와 오뎅탕을 시킬 작정이었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면서, 들어가면 훈훈한 분위기에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믿으며 그렇게 생각을 했더랬다. 그래서 오사카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돌아다닐 때 일부러 큰 길 쪽에 있는 가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골목과 골목 사이를 거닐면서 여긴 어떨까, 여기가 더 낫다,며 많이도 기웃거렸다. 그러다 이 가게다 싶은 곳이 있었다! 크기도, 밖에서 언뜻 보이는 분위기도 딱이었다. 살며시 문을 열었는데, 벌써 만석이었다. 자리가 없었다. 아주 작은 가게였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고, 몇 번을 거절 당하다, 결국 큰.. 2016. 8. 30.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어제 시옷의 모임이 있었고, 이건 어제의 페이퍼. [7월에 만나는 6월의 시옷 -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빠져들려면 기슭을 떠나야 한다. 구명대 없이. 뭍에서 팔을 몇 번 젓는지 세지만 말고 말이다.” - p.13 우리는 함께 줌파 라히리의 이탈리아어 이야기를 읽었고, 이것은 나의 이야기입니다.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라면, 나는 일본어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처음은 오다기리 죠였습니다. 나는 그 시절, 일본의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드라마며 영화며. 이야기가 좋아 보다보니, 사람이 좋아졌고, 사는 모습도 좋아보였고, 특유의 억양들도 좋아져 혼자 흉내를 내곤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꽤 있어서 일본의 배우들이 내한을 해 무대 인사나 관객과의 대.. 2016. 7. 2.